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 !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하나도 없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긍정보다는 부정으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
영화도 그렇다. 지나치게 스타일을 강조하다 보면 콘텐츠가 죽는 현상도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 결과'이다. 영원불변의 법칙, < 투머치 > 는 < 무심한 듯 시크하게 > 를 이길 수 없다. 영화 << 하드코어 헨리, 2015 >> 는 주인공이 머리에 소형 카메라를 장착하고 찍은 에브리바디 풀타임 1인칭 시점 영화로 전자오락 < 서든어택 > 의 영화판 실사'인 셈이다. 시도 자체는 나쁘다고 볼 수는 없으나 관객은 보는 내내 흔들리는 카메라 때문에 멀미로 고생하게 된다. 시골 버스를 타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90분 동안 달릴 때의 기분이랄까 ?
삭혀서 아래로 보내야 할 음식이 멀미로 인해 목구멍 위로 쏟아져 나올 상황이니 창밖 풍경이 그 아무리 절경이라 해도 제대로 눈에 들어올 리 없다(참고로 시골 버스는 뒷좌석보다는 앞 좌석에 앉아서 그나마 멀미를 최소화할 수 있다). 풀타임 시점 숏'이라는 스타일리시한 기획 의도는 참신하나 지나치면 독이 되는 법이다. 멋을 내보겠다고 지나치게 바지를 끌어올려서 엉덩이에 바지가 먹히는 경우라고나 할까 ? 뒤태가 황홀하다는 유지태라 해도 엉덩이가 바지를 잡아먹는 순간 no 뒤태가 된다. 문학도 그렇다. 김애란 소설집 << 바깥은, 여름 >> 은 문장을 다듬느라 지나치게 글자를 쪼물딱거리다 보니 내용이 주저앉은 경우다.
공자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 문(형식)보다 질(내용)이 나으면 촌스럽고, 문이 질보다 나으면 사치스럽다. 문과 질이 잘 조화돼야만 군자라 할 만하다(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然後君子) ". 김애란 소설은 질(내용)보다 문(형식)에 대하여 지나치게 신경을 쓰다 보니 전체적으로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경우다. 하지만 형식이 내용을 지배했으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경우도 있다. 문재인과 김정은의 2차 남북 정상 회담이 그런 경우'이다. < 정상 외교 벙개팅 > 이란 파격적 형식은 내용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사전 계획 없이 전화 통화 한 통 만으로도 두 사람이 격의와 절차 없이 국경을 넘어 서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남북이 한핏줄이란 사실을 새삼 일깨운 장면이었다. 극성스러운 파파라치를 피해 밀회를 즐기는 두 남자의 브로맨스는 관객 마음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한다. 김정은은 뜨거운 전화기를 들고 외쳤을 것이다. 우리 지금 만나 / 당장 만나 / 우리 지금 만나 / 당장 만나....... 2차 정상회담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었다. 쓰빽따끌러하며 쓰따일리시한 " 벙개팅 " 은 의전과 절차를 최소화했다는 측면에서 겉으로 보기에는 형식을 최대한 축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파격은 가장 인상 깊은 형식이자 격식'이었다. 디자인을 최소화한 애플폰 디자인이 21세기 디자인 혁명이었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