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무거운 이유 창비시선 252
맹문재 지음 / 창비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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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을 생각한다.
-맹문재

길거리에서 나물 파는 할머니를 만날 때
저녁 밥상에 숟가락질하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
텔레비젼에 나와 말 잘하는 사람들을 볼 때
이력서를 낸 곳으로부터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
크레인이 설치된 공사장을 지나갈 때
도서관에서 일제 강점기의 자료를 찾을 때
미루나무에 지어진 까치집을 올려다볼 때
육교를 걸어 올라갈 때
가로등 없는 골목길을 지나갈 때
이 빠진 채 웃고 있는 장승과 마주 섰을 때
슈퍼마켓에서 일회용 면도기를 살 때
정류장에서 낙엽을 밟으며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릴 때
총동창회 모임 초청장을 받았을 때
주인공이 어렵게 살아남은 영화가 끝났을 때
연둣빛으로 물든 봄 산을 건너다볼 때
고속도로의 터널을 지나갈 때
전철을 올라타면서 비어 있는 노약자 좌석을 발견할 때
사십이 넘은 사실에 새삼 놀랄 때

인상된 대출금 이자를 확인할 때

.................................................

시가 그려내는 상황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때
너와 나는
이미 사십이 넘었다.


책이 무거운 이유
-맹문재

어느 시인은 책이 무거운 이유가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책이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시험을 위해
알았을 뿐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에 밑줄을 그었다.

나는 그 뒤 책을 읽을 때마다
나무를 떠올리는 버릇이 생겼다
나무만을 너무 생각하느라
자살한 노동자의 유서에 스며 있는 슬픔이나
비전향자의 편지에 쌓인 세월을 잊을지 모른다고
때로는 겁났지만
나무를 뽑아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한 그루의 나무를 기준으로 삼아
몸무게를 달고
생활계획표를 짜고
유망직종을 찾아보았다
그럴수록 나무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채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었다

내게 지금 책이 무거운 이유는
눈물조차 보이지 않고 묵묵히 뿌리 박고 서 있는
그 나무 때문이다
................................................

그러므로 내곁에 뿌리 박고 서 있는
나무가 몇 그루인가?
그래서 나의 책들은
그저 무겁기만 하다.

삶 자체가 아름다움이신 님으로부터 전해온,
맹문재 시인의 책으로 인해,
내 삶은 풍성해 지더이다.

15.<책이 무거운 이유>
맹문재/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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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6-02-17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문 이미지 너무너무 좋은데요!!!
시인의 시와 시 사이에 책나무 님의 덧글도 시처럼 느껴지고, 한덩어리로 녹아내려 제 마음에 스미네요... !

책읽는나무 2016-02-17 14:11   좋아요 2 | URL
올해 초 등산 갔다가 넘 힘들어서 말이죠~주저 앉고 싶었는데 고개 드니 딱 저 풍경!! 저곳만 넘어가면 너른 평원이??? 라고 기대하며 숨도 안쉬고 올라갔거든요
근데 저길 넘어갔는데도 또 고개가 똬악 있던 반전ㅜㅜ
그랬거나 어쨌거나 그런 심정으로 살아보고자 대문사진 바꿨어요
저기까지만 걸어 간다면!!!
하는 심정으로^^

여튼 좋게 읽어주시고 보아주시니 고맙습니다^^

수이 2016-02-17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겠어요_

책읽는나무 2016-02-17 14:12   좋아요 0 | URL

시가 좋았어요
맹문재님의 시!!^^

단발머리 2016-02-17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읽어봐야겠어요...

책읽는나무 2016-02-17 14:13   좋아요 0 | URL
맹문재 시인의 시는 덤덤하면서도 마음이 많이 가는 시였던 것 같아요^^

컨디션 2016-02-17 2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이 무거운 이유. 이 책이 시집일 줄은 정말 몰랐어요. 시집은 가벼우니까요.ㅎㅎ
그나저나 지금 제가 북플 화면인데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첫부분 인용하신 내용도 책읽는나무님의 단상(?)인줄 알았어요. 심하게 감동하며 읽어내려가다가 오잉, 이 거 시집이었구나. 했다는 거죠^^

오거서 2016-02-17 22:42   좋아요 1 | URL
제목으로 무게감을 더한 것 같아요. ^^; 그리고 저도 책읽는나무 님이 주는 감동에 대해 같은 첫인상을 가졌다고 고백합니다.

책읽는나무 2016-02-17 22:46   좋아요 0 | URL
컨디션님.....
ㅋㅋㅋ
제가 시인처럼 저렇게 글을 잘쓴다면야~~바로 등단을!!ㅋㅋ
저도 선물받은 시집인데 처음 본 제목이라 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참,제 닉넴을 다 적으시려면 길어서 힘드시니 팍 줄여서 그냥 나무라고 적으세요^^
손가락 관절 조심해야지요!!ㅋ

책읽는나무 2016-02-17 22:46   좋아요 0 | URL
오거서님......
제목 쓰고 시인이름 적어 놓았는데 다들 놓치신건가요?
이런 황홀한 오해들을^^
오해가 됐든지간에 이밤 감동스럽게 쭈욱 가는걸로 합시다
편안한 밤 되시옵소서!^^

오거서 2016-02-17 23:45   좋아요 1 | URL
심지어 나무 님이 삼십대인가 착각했어요. 그보다 더 젊으시다면 미안하지만서도. ^^;
나무 님은 황홀하고 편안한 밤 되시겠어요 ㅎㅎ

책읽는나무 2016-02-18 07:24   좋아요 0 | URL
오거서님.....
아침에 눈을 떠도 황홀함의 연장이로군요^^
글 중 살짝 나이 언급이 된 듯한데요 삼십 대는 몇 년전에 건너왔어요^^
그래도 젊게 봐주시니 저야 뭐 감읍할 따름입니다
오늘 하루는 삼십 대의 마음으로 살아야지!!
굳게 다짐하였습니다^^

해피북 2016-02-22 1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사십의 강을 뛰어넘지 못했지만 시를 읽으며 고개가 절로 끄덕거려졌다는요.ㅜㅜ

책읽는나무 2016-02-22 17:59   좋아요 0 | URL
이미 마음의 준비가 다 되신게로군요?^^
저는 39 그해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어서 엄청 심란하고 힘들었어요
엄마도 아프셨었고ㅜㅜ

막상 사십이 넘으니 홀가분하고 또다른 매력이 있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