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지난 토요일 난생 처음 작가라는 사람을 직접 대면했었다.
김애란이 이작은 중소도시에 강연회를 온다는 문구를 이틀전에 확인하고,순간 내눈을 의심했었다.
설마?!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가봐야지 않을까?
헌데 신랑이 볼일이 생겨 영 짬이 나질 않을 것같아 어찌할까? 고민에 고민을 하였다.
홀로 너무 심각했던지!
전날 밤 꿈도 꿨다.강연회장을 뒤늦게 뛰어가 문을 여니 객석에 자리가 꽉 차 있고,무대에는 아직 작가의 얼굴은 보이질 않았다.
가게 된다면 작가의 싸인을 받아야 할 것이고,내겐 "달려라 아비"밖엔 없었다.'비행운'을 미리 구입한다는 것이 차일피일 미룬 것을 뒤늦게 후회했다.다른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것이라 소장하고 있지 않았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초조하였는데 작가와 인연이 닿으려 했는지 신랑은 시간맞춰 집에 돌아와 주었고,아이들 소아과 병원에 다녀와 약도 탔고,서점에 달려가 '침이 고인다'와 '비행운'을 잽싸게 집어 와 가방속에 넣어 두었고,순대국밥으로 간단히 점심 해결까지 하였다.
명색이 소설가를 만나는데 순대국밥은 또 좀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것같다라는 생각은 잠깐 했었지만,폭풍이 몰려온다는 여파로 그날 비도 좀 내리고 바람도 제법 차가워 뜨끈한 국물을 먹고 싶었다.대신 아이들과 편의점에 들러 각각의 껌을 하나씩 구입하여 입냄새를 제거하는 매너(?)를 행했다.
사실 내겐 작가의 강연회가 처음이었다.그저 서울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나 접할 수 있는 하나의 문화라고만 여겨 그림의 떡으로만 그저 부러워만 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그래서 내가 직접 그런 장소에 앉아 있을 것이란 상상을 별로 해보질 않은 탓에 작가의 강연회에 뚜벅뚜벅 걸어간 난 부끄럽게도 그날 강연회의 목적이 되고 있는 '두근두근 내 인생'이란 책도 읽지 않고 찾아갔었다.
목적지에 도착하고서 아차~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고,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 앞쪽에 앉았다.
(하필! 김애란작가의 책 중에서 읽지 않은 책이 '두근두근 내 인생'이란 말인가!)
작가는 내가 기대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녀에게 어떤 모습을 기대했던 걸까?
아마도 '달려라 아비'를 읽고 느꼈던 첫 인상을 여적 끌고 왔던 것일테다.
유쾌하고,통통 튀는 문체로 느껴져 작가도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막연히 머릿속에 심어 놓고 있었나보다.막상 대면한 그녀는 의외로 수수하고,조신하고,참~했다.목소리도 고분고분,나긋나긋~
그래서 처음 10분 정도는 낯설었다.김애란이 과연 맞나? 혹시 다른 사람이 위장하고 있는 것인가? 뭐 그런 이상한 생각들로 머리가 어수선하였으나 점점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기 시작하면서 진짜 김애란을 발견하게 되었고,간간히 소설속에서 보였던 발랄한 그모습들이 언뜻 비춰지기 시작했다.초반에는 작가도 몹시 긴장된 듯한 모습이 보였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독자들을 휘어잡고 끌고 가기 시작했다.
특히나 책에 대한 질문들이 오고 갈때 작가의 진가가 발휘되었다.나야 뭐~ 책을 읽지 않아 찍! 소리 않고 경청만 하였지만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한 질문들을 성심껏 잘 받아주었다.10대들은 도에 지나친다 싶은 질문에, 작가도 이런 질문은 처음 받아본다고 당황 한 듯하였으나 진솔하게 자신의 의견을 답해주었고, 50대 한아주머니의 왜 17세 미성년자가 주인공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우리가 듣기엔 궁금해서 묻는 말로 들렸으나 타지방 사람들이 듣기엔 따지는 것처럼,나무라는 것처럼 들렸을 경상도식 스타일의 질문에도 "잘못했습니다"로 순발력을 발휘하면서 조근조근 작품의 의도를 잘 설명하여 위기를 넘기는 기지에 감탄했었다.
덕분에 많이 웃고,작가에게 공감하는 부분들도 많았고,작가가 아니었으면 직접 들어보지 못했을 작가의 사적인 이야기들도 또 다른 하나의 소설로 다가왔다.
확실히 김애란은 말을 잘하는 작가였다.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 글도 잘 쓰는 것일까?
작가는 지구가 사라진다면 한 가지 남겨 놓고 싶은 것에 사과나무 대신 농담을 선택했다.
'농담'은 상대를 위로해주고 싶을때 수치심을 가지지 않는 선에서 따뜻하게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농담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또한 무거움과 가벼움을 잡아 줄 수 있는 방점이라고 했다.
나 또한 농담을 즐기는 사람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작가의 글이 끌렸던 것일까? 주억거려 보기도 했다.
또한 작가는 말이 글을 앞지르지 않고,글이 삶을 앞지르지 않길 원한다고도 하였다.
작가의 생각들이 나이처럼 점점 깊어지는 만큼 지금의 소설은 초반의 소설들보다는 다소 무겁다라는 평을 받는 것같다.그것에 작가는 약간 신경이 쓰이는 눈치인지는 잘 모르겠으나,내눈엔 이미 콩깍지가 씌었는지 읽고 있는 '비행운'에선 무르익은 농담으로 읽혀는데 잘 모르겠다.나도 이미 나이를 먹고 있으니까!
작가의 싸인을 받을 수 있는 시간들이 주어져 줄을 섰다.
이상하게 그순간부터 내 심장이 쿵쿵거리기 시작하였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무척 당황하였다.얼굴은 이미 홍시처럼 발그레해져 짝사랑이나,첫사랑 앞에 서는 사람처럼 줄곧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내모습에서 앞에 선 10대 고등학교 소녀들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나도 그들처럼 얼굴이 발개져 흥분하고 있었다.
연예인을 만나도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았었는데 말이다.(아~ 솔직히 말하면 몇 년 전 우연히 정우성과 가까운 거리에서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순간 심장이 딱 멈추는 기분을 느낀적이 한 번 있었다.20년을 가까이 알고 있는 옆지기 울신랑은 한 번도 심장을 멈추게 해준적이 없었는데....ㅠ)
내차례가 되어 책을 세 권 내밀었더니 김애란 작가는 눈을 반짝이며, 작가도 흥분되었는지 부끄러워하고 있었는지, 발개진 얼굴 모습으로 "완소 독자님이시네요!"라고 말을 붙이는데 난 이미 넋이 나가버린 상태라 그말이 무슨 뜻인지 귀에 잘 들리지도 않아...무뚝뚝하게 경상도 스타일대로 내얼굴 표정은 무작정 덤덤하게, 당연한 것 아니냔 식으로 그렇게, 밀고 있었다.아마 작가는 좀 무안했으리라~~ 순간 내가 애교가 많은 성격이었으면 내가 작가님 완전 빠순이이에요! 뭐 그런 푼수도 좀 떨고 했음 오죽 좋았으랴~
뭔가 말은 붙여 보고 싶은데 머리는 하얗고,무심코 튀어나온 말은 글쎄 뜬금없는 "나도 쌍둥이 키워요!"ㅡ.ㅡ;; 이게 뭔???
(실은 작가가 쌍둥이중 동생이라고 강연회에서 얘길 했었는데 나는 그것이 귀에 쏙 박혀 있었나보다.) 그리 내뱉고도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게 아주 근엄하게 서 있었고 속으로는 '아! 이게 아닌데~~' 아이고~를 연발하고 있었고....다행히 작가는 웃으면서 자신은 쌍둥이 인데다 연년생 형제가 하나 더 있어 엄마가 무척 힘들게 키우셨다고 말하면서 울집 쌍둥이는 딸이냐고 물었는데 나는 또 당황해서 "위에 오빠가 하나 더 있구요.그밑에 딸 쌍둥이에요"라는 좀 이상한 대답을 하고 얼른 도망쳐 왔다는~~~ㅠ
집으로 돌아와서는 생전 처음 만나 본 작가와의 자리에서 나눈 대화가 소설 이야기나 책 이야기가 아닌 온통 쌍둥이 얘기였다는 것이 너무 웃겨 혼자서 쿡~ 많이 웃었다.마중 나와 준 신랑에게도 소감을 전해주는데 역시 쌍둥이 아빠라서 그런지 작가가 쌍둥이 동생이더라는 말에 반색을 하였다. 작가와의 강연회에 그닥 관심 없어 보이더니 그래도 작가의 싸인본을 보여 주니 건성으로 보는 듯해도 볼 건 다 보는 것같았다.그래 내친김에 다음번엔 작가의 강연회가 있음 함께 가볼 수 있겠느냐? 물었더니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란다.
사실 신랑은 소설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그래서 소설가나 시인에겐 완전 무관심이다.그래서 이해는 된다만...혹시나 싶어 "만약 안철수가 내려 왔다면?" 물었더니 신랑은 반색하며 안철수나 박경철이 온다면 당장 달려가겠단다.ㅡ.ㅡ;;
흠~ 순간 신랑을 소설책을 읽게 만들어야지 않을까? 심각하게 고민해 봤지만,울아들보다 더 말 안듣는 신랑에게 소설을 읽히느니 김애란 작가가 얼른 안철수와 박경철보다 더 유명해지는 것이 훨씬 빠르겠단 생각을 해본다.(김애란 화이팅!)
암튼..'두근두근 내 인생'이책은 그렇게 그날 공짜로 받아 유쾌한 인연을 맺으면서 내 손에 들어온 책이었다.유일하게 읽지 않은 책이었는데 어떻게 이책이 또 김애란 싸인이 담긴 책으로 내품에 안기게 되었는지...^^;;
페이퍼를 적다보니 책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고,완전 곁다리 자랑질 비슷한 내용만 쭈루룩~ 적게 되었다.그래도 괜찮다.작가는 분명 그날 그랬다.독자들의 현학적인 리뷰도 좋아하지만,자신의 글이 핑계가 되어 이야기 충동을 일으킬 수 있는 리뷰, 그러니까 삼천포 리뷰도 많이 좋아한다고 고백했다.그러니 나처럼 삼천포 리뷰나 페이퍼 적는 이들이여! 힘을 내자!^^
작가의 호흡,기다란 손가락의 미세한 떨림,멋쩍을 때마다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튕기는 독특한 습관, 그모든 것들을 가까이서 보고,느낄 수 있다는 것은 작가의 모습에 더 몰입하여 작가의 매력을 더 찾게 되는 순간,순간이 되는 것같다.
왜 팬들이 직접 콘서트장을 찾아가고,작가 강연회를 애써 찾아가는지 이제 이해가 되었다.그런 문화를 접할 수 없는 곳인지라 그런 기회가 몇 번 있었어도 애써 시간을 내가면서 찾아보질 못해 나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라 여겼었다.(보통 이곳 사람들은 몇몇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그러한 것에 무신경한 편이다.심지어 그날 나의 흥분을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얘길 해줘도 다들 그랬어?? 뭐 그정도의 반응!ㅡ.ㅡ;; 다들 책을 읽지 않고 있나??
그나마 모두들 반색하면서 듣는 장면은 하나같이 '두근두근 내 인생' 작가가 싸인한 책을 공짜로 받아왔다는 대목!ㅠ 그중 한,두 명만 내년엔 같이 가서 들어보자~ 그정도!)
암튼,<달려라 아비>,<침이 고인다>,<비행운>,<두근두근 내 인생>이 네 권의 책들은 또 다른 특별한 인연으로 내 책장에 꽂아 놓는다.특히 <두근두근 내 인생>책은 볼때마다 그야말로 그날의 두근대던 내 심장소리가 들리는 듯하다.책 속에 나오는 엄마 뱃속에서 아름이가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듣던 바로 그소리만큼 작가앞에 선 내심장소리도 컸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모든 신경선들을 풀가동 시킨 탓에 몸살이 나서 약을 먹고 고꾸라졌었다.ㅠ
다음엔 작가를 만난다면 순대국밥에 자일00껌 보다는 우황청심환을 하나 삼키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