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조심 - 조종사와 비행에 관한 아홉 편의 이야기
로알드 달 지음, 권민정 옮김 / 강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왜 이 작품을 보면서 뜬금없이 <캔디>에 등장했던 스테아가 생각났을까? 마음씨 착한 스테아, 페티랑 결혼하자고 약속해 놓고 전쟁에 나갔었지. 그리고 비행기가 추락해서 영영 이별을 하고 말았다. 그 장면에서도 참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내 나이 여덟 살 때. 그 나이에 죽음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 전쟁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슬픈 건 슬픈 거라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어린 아이도 슬퍼하게 된다. 그런데 왜 전쟁을 해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사랑하는 사람을 가슴에 묻게 하고,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냥 우두머리끼리 팔씨름을 하던, 가위 바위 보를 하던 그런 걸로 해서 결정을 짓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우두머리가 나가서 싸우던가. 이제 고작 열여덟 살짜리를 싸움터에 내보내고 그 아들을 떠나보내게 부모를 슬프게 하고 어린 소녀를 폭격으로 혼자 살아남아 증오와 복수심으로 주먹 쥐게 만들고 절망하게 만들고 광대로 만들고 당신들이 지금 어느 곳에 당신의 자식 같은 병사를 전쟁터에 내보냈다면 이런 일을 겪게 만들고 있다는 걸 당신은 아는가 묻고 싶다.

개 조심이 아니라 사람 조심, 우두머리 조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로알드 달의 유머도 슬프고 그들의 모든 일상이 슬픔으로 가득 차 있어 독특함도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반전을 외쳐대는데 세상에서는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난다. 어쩌면 슬픈 건 절대 달라지지 않고 나아지지 않는 이런 일들의 반복일지도 모르겠다.

또 너무 흥분했다. 로알드 달의 단편집 가운데 가장 슬픈 단편집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는 것보다, 적군을 물리치는 것보다, 내 머리가 돌아버리는 것보다, 술에 취하는 것보다 차라리 죽음이 행복이고 축복이라는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 그것이 진짜 영원한 안식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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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5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이 눈에 띄였는데 <맛>이 제게는 많이 엽기적이어서 망설이고 있었어요.

물만두 2007-09-15 14:18   좋아요 0 | URL
이 책은 로알드 달의 작품 중에 가장 평범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읽으시기 괜찮으실 겁니다.

순오기 2007-09-15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희는 모두 로알드 달 팬인데, 이 책이 나온줄도 몰랐어요. 감사하며 바구니에 담습니다!

물만두 2007-09-15 21:15   좋아요 0 | URL
전투 비행사만의 이야기를 모은 단편집이라 색다르더군요.

미미달 2007-09-15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으 로알드 달 !

물만두 2007-09-15 21:16   좋아요 0 | URL
ㅋㅋㅋ

땡땡 2007-09-15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읽을래요. 읽다 울라...

물만두 2007-09-16 15:08   좋아요 0 | URL
이런....

sokdagi 2007-09-26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로알드 달 팬인데 이건 몰랐네요 . 정보 감사해요~

물만두 2007-09-27 10:08   좋아요 0 | URL
넵~
 

필립 K. 딕 상을 수상했다는 것이 눈에 띠었다.
기이한 서커스단이 존재하는 19세기 런던,
그리고 미래에서 온 시간 여행과 그밖의 SF적 요소가 결합해서 기묘한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저 문으로 들어가면 무엇이 나올지,
내가 발견할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작가의 일상 이야기라...
작가도 결국 사람이고 수 많은 평범한 사람 중 한 사람일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작품같다.
흠... 째째한 복수가 어떤 건지 구경하고 싶어진다^^;;;

또 도둑맞은 명화를 찾는 이야기다.
실제 사건을 쓴 작품이다.
이번 작품은 카라바조의 그리스도의 체포다.
이런 소재도 이젠 좀 그만나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워낙 명화 도난 사고가 많았으니 어쩜 더 나올지도 모르지...

로버트 해리스를 토머스 해리스로 착각했다.
아, 정말 울 엄니의 "뿜빠이"랑 비교된다.
엄니는 웃기기라도 하지 ㅜ.ㅜ
폼페이 그 최후의 날이 있기 48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의 전작들을 봤으면 알겠지만 이 작가의 팩션은 믿을만 하다.

난감한 일이로고.
명랑갱이 속편까지 나오다니.
이거 읽어? 말어?
그렇다고 지금까지 다 샀는데 여기서 그만할 수도 없고 참...
이번엔 은행이 아니고 아가씨네?
흠... 고민중...이다...

나왔다. 김전일...
또 상권만일세 ㅡㅡ;;;
애장판으로 가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서 그냥 사?
이것도 고민일세.
그나저나 너도 전설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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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7-09-14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명랑한 갱은 첨 들어봤는데, 재미있을 것 같아요. 표지도 귀엽고요.^-^

물만두 2007-09-14 11:48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처음 보시다니 속편이니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를 먼저 보시와요^^

mong 2007-09-14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누비스의 문하고 폼페이는 저도 관심도서~ ^^

물만두 2007-09-14 11:49   좋아요 0 | URL
몽님 폼페이 무지 두툼합니다^^

가넷 2007-09-14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올려면 하권까지 같이 내던지... 정말 감질맛만 납니다.ㅡㅡ;;

물만두 2007-09-14 12:55   좋아요 0 | URL
제 말이요. 그래서 하권까지 기다렸다가 산다니까요 ㅡㅡ;;;

레몬향기 2007-09-14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스트 페인팅.. 제목이 참.. 사라진 명화가 훨씬 좋을 것 같은데.. 그냥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품페이는 참 재밌을 것 같네요..^-^

물만두 2007-09-14 14:12   좋아요 0 | URL
그게 사라진 명화들이란 책이 이미 나왔거든요^^:;

부리 2007-09-14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월 14일 관심서재인: 부리. 일명 부리부리.

물만두 2007-09-14 18:35   좋아요 0 | URL
부리부리박사 생각나네요^^
마태님과 사이좋게 지내세요~

정의 2007-09-14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랑한 갱의 일상과 습격]은 [면장선거] 미니북을 주지 말고,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 미니북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
도대체 왜 [면장선거] 미니북만 주는지 모르겠어요 ㅠ_ㅠ

물만두 2007-09-14 20:07   좋아요 0 | URL
만든게 남았나봅니다. 저도 그러면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Kitty 2007-09-15 01:58   좋아요 0 | URL
만든게 남았나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만두님의 시니컬한 해석이 너무 웃겨요 ㅋㅋㅋ
저도 쨰째한 이야기가 끌리네요.
(근데 김전일은 아직도 고등학교 졸업 안하고 죽음을 부르고 있나요?;;;)

물만두 2007-09-15 10:50   좋아요 0 | URL
ㅋㅋㅋ 김전일은 아직도 그러고 있습니다.

정의 2007-09-15 12:52   좋아요 0 | URL
코난이 아직 안 크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
전 [명랑한 갱]이후로 이사카 코타로에게 실망했는데,
제동생은 [명랑한 갱]을 사라고 강하게 압력을 넣고 있네요.
그러면 집에 [면장선거] 미니북이 늘어날텐데ㅠ_ㅠ

물만두 2007-09-15 13:26   좋아요 0 | URL
코난이 아직도 안 크고 있다구요?
참 오래도 멈춰있네요.
그나저나 동생들이 문제예요 ㅡ..ㅡ

라로 2007-09-14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세상에서 가장 쩨쩨한 하케씨 이야기요~~.
읽으시고 리뷰 올려주세요~~~.

물만두 2007-09-14 21:04   좋아요 0 | URL
에고, 님이 먼저 읽으시는게 빠를겁니다.
책이 마이 밀려서리 언제 살지 몰라요^^:;;

Kitty 2007-09-15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퇴근하기 전에 다시 들러서 만두님께 질문;;
김전일 1편 끝나고 어떻게 된건가요? 지금은 2부?
애장판과 특별편과 외전, 단편집은 뭐죠?
저는 1편의 25권정도까지 봤는데 오랜만에 만두님 페퍼를 보고 슬슬 다시 읽어볼까 하고 검색을 해봤더니 이건 뭐 책이 후덜덜하게 나왔네요;;
순서를 전혀 모르겠다는 -_-;;;

물만두 2007-09-15 11:17   좋아요 0 | URL
1편은 예전에 나온 판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애장판은 그것을 애장판으로 만든것이고요.
특별판, 외전, 단편집도 모두 1편에 나온 겁니다.
간단하게 예전판과 애장판으로 구분하시고요.
지금은 2편, 그러니까 2부가 새롭게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도 애장판으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표지로 구분하세요.
예전에 보던 표지면 그 뒤부터 보시면 되구요.
애장판은 표지가 틀리니 예전판의 새로운 판형이라고 보심 됩니다.

Kitty 2007-09-15 15:12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책이 수십권이나 되서 이게 뭔가 했어요..;;
그냥 저는 예전판으로 봐야겠네요.
만두님 답변 감사 ^^ 역시 오늘도 추리계의 지식in 덕을 봅니다 ^^

물만두 2007-09-15 15:59   좋아요 0 | URL
그게 저도 헷갈려서 애장판을 새로 나왔다고 샀다가 취소한 경험이 있어서 알아봤었답니다^^;;;

BRINY 2007-09-16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누비스의 문, 리뷰 기대요~

물만두 2007-09-16 15:08   좋아요 0 | URL
글쎄요^^;;;

비로그인 2007-12-31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케씨 이야기, 땡스투 하고 갑니다~

물만두 2007-12-31 20:35   좋아요 0 | URL
새해에 뵈어요^^
 
흑소소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黑笑, 즉 검은 웃음, 블랙 유머라는 얘기다. 하지만 작품들을 읽다보니 이 사람들 눈앞이 캄캄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암전, 기절초풍, 허무, 대략난감, 비관 등의 단어가 떠올랐다. 세상에 대한 풍자보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하고 기묘한 외줄타기에서 오는 애환이 <독소소설>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 속에는 그런 것들이 포함됨으로써 비로소 히가시노 게이고표 블랙 유머가 완성되는 것을 이 단편집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인만큼 사람에 공감하고 사람에 동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떤 장르라 할지라도, 추리소설적 재미나 설정, 트릭도 반감하게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문학상 하나에 목을 매고, 애인에게 스토커가 되라는 소리에 쓰레기를 뒤지고, 딸아이가 왕따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장난감을 사주고, 발모제를 발명하려다고 바아그라의 반대인 임포그라를 발명한 친구를 위해 그것의 홍보를 하는 남자와 여자에게 친구 이상은 될 수 없는 남자의 비애, 특히 소설가와 편집자, 출판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이어져서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곳 얘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디 작가로 성공하기가 쉽겠냐마는 편집자 입장에서도 그동안 작품을 의뢰하던 작가를 가지치기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신데렐라를 새롭게 재해석해서 백야행스럽게 만들기까지 하고 작가의 <독소소설>보다는 재미있고 유머러스하지만 좀 가벼움에 치중한 느낌이 들었다. 인간의 일상을 가벼운 블랙 유머로 처리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기발했지만 역시 제목처럼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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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7-09-14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단편일지 기대되요.

물만두 2007-09-14 10:16   좋아요 0 | URL
이 작가의 글은 일단 일정부분은 안심하고 보게 되잖아요.
단편도 잘쓰더군요^^

바람돌이 2007-09-14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히가시노 게이고는 끊임없이 나오는것 같군요. ㅎㅎ

물만두 2007-09-14 11:05   좋아요 0 | URL
히가시노 게이고만요? 온다 리쿠, 이사카 코다로, 아주 저를 죽이고 있습니다^^ㅋㅋㅋ

딸기 2007-09-15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가시노 작품, '백야행' 하나밖에 못 봤지만...
이 작가의 '유머'는 대체 어떨지 상상이 안 되네요.
그나저나 언니 올만예요~

물만두 2007-09-15 15:58   좋아요 0 | URL
딸기님 방가방가^^
유머도 좀 독합니다. 뭐, 제목이 벌써 말을 하고 있으니까요.
읽어보세용~
 
비잔틴 살인사건
줄리아 크리스테바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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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 중 하나는 자살에 대한 욕구다. 하지만 그 욕구는 대부분 욕구로만 그치지만 때론 그것이 반작용으로 타살이라는 추리소설에서의 살인과 같은 범죄가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인간이 추리소설을 읽는 것 또한 어쩌면 이런 자살, 타살의 욕구의 대리만족일지 모른다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추리소설의 형식을 가지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복합적으로 늘어놓고 있다.

연쇄 살인이라는 범죄가 일어나는 산타바르바라에서 작가는 경찰과 기자가 그것에만 몰두하게 만들지 않고 한 이민 역사학자의 실종, 아니 족적을 따라 비잔틴이라는 11세기의 역사 속으로 여행을 하게 만든다. 그곳에서 만나는 것은 그 역사학자가 사랑하게 되면서 자신의 뿌리를 찾게 만드는 안나 황녀가 있고 제1차 십자군 전쟁에서 그녀가 만난 한 남자가 있다. 여기서 작가는 십자군 전쟁에 대한 정의를 반이슬람 전쟁이 아닌 동로마제국이 다시 서로마제국에 귀속되게 하기 위한 전쟁이었다고 한다. 그것과 겹쳐지는 현대의 십자군전쟁 양상을 띠는 아랍권과의 전쟁이 종교전쟁이 아닌 석유전쟁이듯이 말이다. 사실이 그런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이민자들의 삶은 불행하다고 못 박고 있는 점은 그의 가치관이 국수주의 또는 혈통주의로 흐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있는 그대로의 지금의 프랑스의 모습을 보여주려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호학자이자 정신분석가라는 작가의 이력이 추리소설을 쓰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모든 것은 분석하고 기호화하려 해서 정작 알맹이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갑자기 끝나버린 사건의 해결과 다시 되풀이 되는 테러는 무엇을 암시하려 함인지 모르겠다. 이 사건이나 치밀하게 마무리할 것이지.

어쩌면 좋은 작품을 내가 이해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살인이 난무하는 추리소설을 본다고 그 사람에게 살인의 욕구가 잠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으로 더 범죄가 늘어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책 그 자체는 살인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대다수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세상에 살인의 욕구가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 아닐까? 인간이라는 잔인한 동물에게 그것이 본능이라면 말이다.

읽고 괜히 읽었다고 생각된 작품이었다. 하지만 절판된 전작을 찾지 않게 된 것 만으로도 읽은 가치는 있다. 세상에 가치 없는 책은 없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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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9-13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나름대로 저자의 철학이 들어있는 것이라 물만두님의 끝구절을 읽고 언듯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가치가 있는 법이지요.

물만두 2007-09-13 16:14   좋아요 0 | URL
저자의 철학이 너무 많이 들어 있어 제가 다 이해할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페르니쿠스 신드롬
앙리 뢰벤브뤽 지음, 권지현 옮김 / 들녘 / 200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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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 신드롬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본질적이고 중요한 진리를 알고 있다는 확신이 강해서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망상증, 편집증, 정신분열증에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이 말이 왜 이 책의 제목이 되었느냐 하면 15년 동안 자신이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고 생각하고 치료를 받던 비고라는 남자가 어느 날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치료를 받기 위해 자신의 주치의가 있는 건물에 들어서다가 자신이 자주 듣는 환청을 듣고 그 건물을 뛰어 나왔는데 바로 그때 그 건물이 마치 미국의 국제무역센터가 무너지듯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비고가 그때 들은 말이 이상한 말과 함께 건물에 폭파 이런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비고는 자신의 정신분열증을 의심하게 되는데 그 건물에 있어야 하는 자신이 다니던 병원이 존재하지도 않는 병원이라는 사실을 듣고 다른 상담사를 찾아가 자신이 진짜 정신분열증인지를 알고자 하는데 거기에서 만난 여인에게 도움을 받아 자신의 주치의도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며 자신의 이름마저 가짜이고 자신의 집, 다니던 직장이 사라졌고 거기다 누군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자신을 돕겠다는 해커집단 스핑크스를 만나 자신의 뒤에, 자신의 과거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파헤친다.

이 작품은 한 정신분열증 환자의 단순한 자아 찾기라거나 쫓고 쫓기는 생존게임이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거대한 음모론을 선보이고 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어디에선가 진행되고 있을지 모르는 그런 일에 대해서...

하나의 작품에서 두 가지의 만족을 얻기란 쉽지 않은데 이 작품은 그런 두 가지를 모두 채워주고 있다. 한 가지는 미스터리 스릴러가 가지는 긴박감과 스릴, 음모와 그것을 파헤치는 일련의 일들이 숨 쉴 틈 없이 사로잡아 마지막까지 쉼 없이 달리게 만드는 작가의 미스터리와 스릴러, 그리고 어쩌면 SF적인 느낌이 가미된 그러면서 그것들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게 엮어내는 능력이다. 물론 그 마지막이 약간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는 하지만 그런 결말이 아니라면 어떤 결말이 어울리겠는가를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도 있다. 그 작은 약점을 다른 한 가지인 몰스킨 수첩이라는 비고가 가지고 다니는 수첩에 적어 내려가는 것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 존재론에 관한 것을 하나의 주제로 잘 끝까지 마무리하고 보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몰스킨 수첩으로 이 작품은 단순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서 좀 더 광범위한 장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몰스킨 수첩에 적어 내려가는 것은 이 작품의 표면적인 미스터리 스릴러의 내면이다. 미스터리 스릴러가 거울이라면 그 거울의 이면, 우리가 진짜 바라봐야 하는 것을 이 작은 수첩의 메모로 작가는 전달하고 있다. 이 방법은 작품에 균형을 맞춰주고 가치를 높여주는 단단한 알맹이 역할을 하고 있다. 몰스킨에 적혀 있는 것 중 내 맘에 드는 메모 하나를 여기에 적는다.

474쪽에 이런 메모가 있다.

   
 

중요한 문제는 타자를 이해할 수 있느냐에 앞서 인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타자성, 즉 타자와의 차이를 인정하고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나는 그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우리 모두 익숙해져야 한다. 타자성은 위협도 아니고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도 아니다. 타자성은 우리를 풍요롭게 해준다. 그렇다. 진실은 그렇게 간단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나와 타자의 인식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 거리는 교환을 통한 풍요로움을 가능하게 만든다. 동일성은 교환되지 않는다. 차이만이 교환 가능하다.

남을 알고 싶지 않다. 남이 나를 아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단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 뿐이다.

 
   

 

이 작품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9.11 테러가 일어난 것도 각지에서 끊임없이 총소리가 들리는 것도 가장 단순한 ‘나’와 ‘너’라는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에는 이런 거대한 음모와 끔찍한 재앙, 그리고 한 개인의 인생을 망각의 늪에 빠트린 것이다. 우리가 이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것은 크게 보면 거대한 음모로 볼 수 있지만 작게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소통과 소통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소통을 못하면 안 된다는 우리 주변을 다시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같아진다는 뜻은 아니다. 같아질 필요는 없다. 단지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인정하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코페르니쿠스 신드롬에 빠져 있는 것인지 모른다. 내 의견만 옳고 다른 이의 의견은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 것이 쌓여 거대해지면 어떤 일이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지 이 책을 통해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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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돌이 2007-09-12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자를 인식하는 것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분명히 이벌식과 삼벌식은 차이가 있으니까요. 음냐.

물만두 2007-09-12 12:20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잘 안되서 그렇지요^^:;;

비로그인 2007-09-12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트릭스, 13층, 트루먼 쇼 같은 영화들이 생각이 납니다.

물만두 2007-09-12 13:22   좋아요 0 | URL
네. 그 비슷한 점이 있네요.

jedai2000 2007-09-12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관심 없었는데 급땡기는군요 ^^

물만두 2007-09-12 15:09   좋아요 0 | URL
제다이님이시라면 좀 결말이 시시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중요한 건 몰스킨 수첩이라는 거를 강조하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