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지나간 한 주였다. '정신없다'는 건 한 가지에 얽매여 다른 걸 생각할 여지가 없거나 적은 경우를 이른다. 때문에 정신없다는 것 자체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삼매경도 있고, 황홀경도 있으니까. 다만 그것이 타의에 의한 것일 때 '정신없는 삶'은 '정신나간 삶'보다 낫다고 말하기 어렵다. 불행한 건 우리가 때로 정신없이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다행스러운 건 내가 몇 시간 전에 해방되었다는 것. 다시 읽어야 할 책들과 써야 하거나 쓰고 싶은 글들이 읽는 책상머리로 되돌아왔다... 

편혜영의 <사육장 쪽으로>와 브루스 핑크의 <에크리 읽기>와 크리스테바의 <반항의 의미와 무의미> 등이 책상과 그 주변에 놓여 있지만(실상은 거의 헌책방 수준인지라 책상에 쌓아올려놓은 책만도 몇 십 권은 되겠다), 기운이 없는 관계로 주말 북리뷰나 훑어보다가 별로 관심이 가는 책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짐멜의 두꺼운 책이 출간됐지만 나는 <돈의 철학>이나 재출간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레세크 코와코프스키의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유로서적, 전3권, 2007) 출간을 다룬 기사들이나 옮겨놓기로 했다.     

문화일보(07. 08. 24) 마르크스주의 계보 총정리 혁명가·정책 비판도 담아

책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안내서이자 개괄서다. 저자는 1권에서 마르크스주의의 기원을 검토하면서, 헤겔과 계몽주의를 거쳐 신플라톤주의에 이르는 마르크스주의의 유산들을 추적한다. 이어 마르크스 사상의 발전을 분석하고, 여러 형태의 사회주의와 갈라지는 지점들을 짚는다. 2권에선 주도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교의와 제2인터내셔널 시기에 벌어진 그들간의 논쟁을 다루고 있다.

이 시기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쏟아졌다. 마지막 3권에선 스탈린주의를 분석하고, 마르크스주의가 소비에트 형성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다. 이어 저자는 트로츠키·그람시·루카치·마르쿠제와 여타의 마르크스주의 논객들이 세운 공적들을 검토하면서 2차 세계대전 이후 마르크스주의가 걸어온 다양한 발전 양상들을 추적한다.

1927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저자는 1953년 바르샤바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교수로 임용돼 철학역사학부의 학장에까지 올랐다. 처음엔 정통 마르크스주의자였지만 스탈린주의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는 ‘무엇이 사회주의인가’라는 글을 썼다. 이 글 때문에 망명길에 올라야 했던 저자는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과 영국 옥스퍼드 대학 등에서 객원 교수를 역임했다. 자신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이 책으로 미국의 ‘국회도서관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신판(2004년) 서문에서 “소비에트연방이 붕괴된 이후 지성의 면에서 무능했지만 억압과 수탈의 도구로서는 효과를 발휘했던 마르크스주의가 연구의 주제로서는 완전히 매장되어, 망각의 늪에서 더 이상 그것을 건져 올릴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면서 “그러나 이는 근거 없어 보인다. 과거의 이념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그 지적 가치에 의존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들의 현재적 설득력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론적·교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는 몇몇 학술기관들의 복도를 초췌한 모습으로 배회하고 있는” 형국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를 연구할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저자는 1981년판 서문에서 책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의 안내책자로 씌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책 곳곳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정책들, 혁명가들의 성격을 은근히 비틀어 꼬집고 있는 저자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9세기말 무정부자들의 입을 빌려 “마르크스주의 교의는 인간사회를 거대한 집단수용소로 바꾸는 데 적합한 청사진이었다”고 지적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사회철학의 교과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자는 말한다.(김영번기자)

한국일보(07. 08. 25) [저자초대석]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 변상출

변상출(46)씨는 이제 좀 낯이 서는 기분이다. 1990년대 손에 넣은 뒤로는 떼 놓은 적 없던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흐름>을 막 옮긴 것이다. 국내 초역. 폴란드 마르크시스트 레셰크 코와코프스키의 역저다. “마르크시즘이 이론과 현실 사이를 오가던 당시, 사회주의 몰락 소식을 접하고는 미뤄뒀던 번역을 하자고 결심했어요.”

그러나 2,0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정말 출판될까가 아니라, 지루한 번역 작업을 감내해낼 지가 현안이었다. “일이 끝난 밤 10시께부터, 이 닦듯 매일 최소한 1~2쪽은 옮겼습니다.” 그 결과, 도서출판 유로서적에서 전 3권의 두툼한 세트로 선보이게 됐다.

“2권까지 옮겨 놓고 나서, 저작권 문제를 놓고 함께 논의했던 출판사예요. 갈수록 수요가 높아져 가고 있는 고전이라는 확신도 공유했죠.” 스탈린 비판으로 망명길에 올라야 했던 정통 마르크시스트의 따가운 지적은 이 시대 한국에도 중요한 발언을 하고 있다는 것.

신자유주의적 세계, 아니 한국에서부터 영향력이 체감돼 가고 있는 마르크시즘이 걸어 온 방대한 여정을 철학적ㆍ역사적ㆍ현실정치적으로 곱씹어 보게 만드는 책이다. “자본주의의 지구화, 자본주의적 물질주의, 인간 소외, 비정규직 문제, 현실 사회주의 등에 대한 통찰은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죠.” 특히 신비주의적으로 비칠 수도 있을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에 대해 한 장이나 할애하고 있음은 이 책을 더욱 미덥게 하는 일례이기도 하다.

리얼리즘 문예 이론가 루카치를 전공한 그는 “마르크시즘을 재정립하고, 포스트 모더니즘의 해체론적 담론과 정면 대결하는 데 긴요한 책을 쓸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자신은 좌파는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인간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추구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론적 실천에 경도된 구조주의적 마르크시즘은 이를테면 단성 생식이죠.” 1980년대말, 알튀세류의 현란한 구조주의가 마르크시즘의 본령을 흐린다며 못마땅해 하던 그는 영국의 좌파 역사학자 E. P. 톰슨에게서 진정한 지성인을 보았다. 톰슨과 서신으로 쌓은 친교는 그의 주저 <이론의 빈곤> 번역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톰슨은 코와코프스키와 이론적 실천의 문제를 두고 공개 서한을 나누기도 했으니, 톰슨-코와코프스키-변씨 사이에는 모종의 ‘좌파적 연대감’이 흐르고 있는 셈이다. 영남대 등지에서 독문학, 미학, 문예 이론, 민중 문화 등을 강의중이다.(장병욱 기자) 

07. 08. 25.

P.S. '국내 초역'이라는 이 책을 '오래된 새책'으로 분류한 것은 예전에 출간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Leszek Kolakowski)와 서명 자체가 낯설지 않아서 도서관을 검색해보니 <콜라코프스키의 마르크스주의>(한겨레, 1989)로 출간됐었다. 도서관에는 서지가 1-3권이라고 돼 있지만(그렇다면 완역돼 있는 셈이다) 기억엔 1권만(혹은 2권까지?) 번역되었던 게 아닌가도 싶다. 아무튼 이건 직접 확인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국내 초역'이란 말은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하겠다. 코와코프스키(콜라코프스키)의 또 다른 책으론 <베그르송>(지성의샘, 1994)가 있다. 이건 내가 읽은 책이니 저자의 이름이 어찌 낯익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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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타 2007-08-25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 보는 순간 우선 1권만 주문했는데 어떨지 모르겠군요. (아, 저는 항상 로쟈님 서재에 기웃거리기만 했던 풋내기 서재인이랍니다;;. 처음으로 답글을 남기네요^^;)

로쟈 2007-08-25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풋내기'도 금방 노장이 됩니다. 실상은 저도 '서재인' 생활 4년차에 불과하니까 신참 하사관 정도라고나 할까요...

짱꿀라 2007-08-25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로쟈님을 신참이라고 하겠습니까? 항상 큰 도움을 주시는 전문가시죠.

람혼 2007-08-25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들뜨게 하는 신간 소식에 감사드립니다.^^

philocinema 2007-08-25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감사의 말씀!

로쟈 2007-08-26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르코프스키 영화의 제목을 빌자면, 그냥 '스토커'일 뿐입니다. 어느 '구역'의 입구까지만 안내하는...
 

<이론 이후의 삶>이 나온 걸 계기로 데리다의 책을 몇 권 꼽아둔다. 마음놓고 읽을 수 있는 책이 얼마 되지 않아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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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이후 삶- 데리다와 현대이론을 말하다
자크 데리다 외 지음, 마이클 페인.존 샤드 엮음, 강우성.정소영 옮김 / 민음사 / 2007년 8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07년 08월 23일에 저장
품절
대담집이라 무난하게 읽힌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자크 데리다 지음, 진태원 옮김 / 이제이북스 / 2007년 9월
19,000원 → 17,100원(10%할인) / 마일리지 950원(5% 적립)
2007년 10월 02일에 저장
절판
드디어 출간됐다! <법의 힘>에 이어서 오랜만에 나온 믿을 만한 번역본 데리다.
법의 힘
자크 데리다 지음, 진태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7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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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지만 믿을 만한 번역.
목소리와 현상- 후설 현상학에서 기호 문제에 대한 입문
자크 데리다 지음, 김상록 옮김 / 인간사랑 / 2006년 1월
15,000원 → 14,250원(5%할인) / 마일리지 430원(3% 적립)
2007년 10월 09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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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cinema 2007-08-23 18:35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짧은 코멘트들은 번역의 질을 모른채 "저자"에 대한 관심과 "제목"의 친근함만으로 책을 구입해야 하는 저에겐 길 없는 열대밀림에서의 "나침반"입니다. 님 덕분에 아낄 수 있었던 많은 시간들...늘 감사합니다.

로쟈 2007-08-23 19:18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

퍼그 2007-08-23 23:45   좋아요 0 | URL
'한 줄'들이 이보다 더 유용하긴 힘들 듯합니다. 잘 골라 읽어 보겠습니다.^^

람혼 2007-08-24 05:28   좋아요 0 | URL
진태원 번역의 <법의 힘>은 정말 로쟈 님 말씀대로 "믿을 만한" 듬직한 번역이긴 하지만, [아마도 편집상의 실수일 것으로 사료되나] 중요한 단락 하나의 번역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정말 옥에 티라고 해야겠지요. 2쇄에서는 수정되었는지 모르겠군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김상록 번역의 <목소리와 현상>이 <법의 힘> 다음으로 가장 괜찮은 번역 중 하나인 듯 한데, 로쟈 님의 리스트에는 빠져 있군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에코그라피>의 번역도 참 좋았었는데, 왜 좋은 책들은 저리도 빨리 품절되는 것인지, 여전히 미스테리랍니다. <그라마톨로지>는 예전에 대우학술총서의 일환으로 김성도 선생의 번역을 통해 출간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몇 가지 부정확한 번역이 있었지만 원본과 비교해서 보기에는 그리 큰 무리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과거 김보현 편역의 <해체>라는 책도 출간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은 절판된 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겠지요. 또한 위 리스트에 올려놓으신 <글쓰기와 차이>의 번역은 별로 좋다고 할 수 없습니다(개인적으로 점검해본 적이 있는데 오역도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오히려 번역본을 본다면 영역본과의 비교 독해를 추천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데리다 수용 초기에는 김형효 선생의 <데리다의 해체철학>도 나름대로 괜찮은 개설서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마 지금 다시 읽으면 실소를 금치 못할 부분도 어쩔 수 없이 조금 있을 듯 합니다.^^ 또한 시인 프랑시스 퐁주(Francis Ponge)에 대한 데리다의 책인 <시네퐁주> 역시 과거 번역된 적이 있었으나 개인적으로 번역의 질은 점검해볼 기회가 없었네요. Glas나 La carte postale 같은 데리다의 책도 번역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지 오래인데, 아마도 오래 걸리거나 더 많이 기다려야겠지요... 현재로서는 이제이북스에서 진태원 번역으로 조만간 다시 출간될 예정인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기대해보고 있습니다(예전에 양운덕 번역의 첫 국역본은 참으로 처참한 지경이었더랬습니다...).

로쟈 2007-08-25 01:56   좋아요 0 | URL
저도 데리다의 책은 대부분은 영어본과 대조해가면서 읽습니다. <목소리와 현상>은 그다지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는데, '고혼' 같은 번역어들이 거슬리더군요('람혼'님에게는 친근할 수도 있겠지만). 저에겐 러시아어본도 있어서 자세히 검토해보려 했는데, 언젠부턴가 책이 보이질 않습니다.--;

람혼 2007-08-25 02:19   좋아요 0 | URL
La dissémination이나 Marges de la philosophie 같은 데리다의 '주저'들이 아직 번역되고 있지 못한 것도 아쉬운 일인 것 같습니다. 데리다의 영역본이나 노역본들의 질은 어떤지 로쟈 님의 고견이 궁금합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책'을 찾는 일은, 참으로 곤혹스럽죠...ㅎㅎ 예전에 까치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머피의 법칙 관련서에서 보았던 구절이 왠지 갑자기 떠오르는군요. 제 기억이 맞다면, "테제: 찾는 물건[로쟈 님이나 저에게는 책?]은 언제나 가장 나중에 찾는 곳에 있다. 안티테제: 찾는 물건은 언제나 처음 찾는 곳에 있다. 다만 처음 찾을 때는 보이지 않을 뿐이다." ^^

philocinema 2007-08-24 09:18   좋아요 0 | URL
람혼님! 오랜만입니다. 안녕하시죠?
람혼님의 글 잘 보았고, 역시나 큰 도움 되었습니다.

람혼 2007-08-25 02:21   좋아요 0 | URL
risper3 님, 오랜만입니다. 부여의 날씨는 좀 시원해졌을까요? ^^;

philocinema 2007-08-25 11:40   좋아요 0 | URL
부여는 아침 저녁으론 가을이 묻어납니다.
다가올 환절기 건강 유의하시면서 "공부"하시길...
 

늦은 귀가길에 조간신문을 야간신문으로 읽었다. 아직 한편의 영화도 보지 못했지만 모스크바 영화학교를 졸업했다는 '학력' 떄문에 기억해두고 있는 영화감독 민병훈씨의 두번째 작품 <괜찮아, 울지마>(2001)가 6년만에 개봉한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었고 바로 페이퍼로 옮겨질 거라고 직감했다(이런 판단에는 0.1초도 걸리지 않는다). 해야 할 다른 일들을 잠시 미뤄두고 '작업'을 하는 이유이다.

전철에서 읽은 기사를 인터넷에서 찾다보니 소박한 홈피도 눈에 띈다(http://www.letsnotcry.co.kr/). 예고편을 감상했는데, 나로선 무엇보다도 첫번째 영화 <벌이 날다>와 마찬가지로 우즈베키스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든다. 옮겨놓은 스틸사진들만 보아도 영화의 소박한 진심이 느껴진다. 이 정도면 봐둘 만한 영화이다. 인터뷰기사가 정작 영화에 대해서는 별로 다루고 있지 않아 아쉽지만 더 나은 기사도 눈에 띄지 않기에 일단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7. 08. 22) "예술영화도 '한뼘 설 땅'은 필요하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한국에서 예술영화, 혹은 독립영화를 한다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작업을 이렇게 표현한다. 영화를 오락의 수단으로만 찾는 대중 앞에 ‘예술’ 타이틀이 붙는 영화를 찍는 사람들은 늘 외롭다. 이들이 두려워 하는 것은 흥행 실패도, 평단의 혹평도, 인터넷 ‘악플’도 아니다. 영화판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관객의 무관심이다.

민병훈(37)도 그런 고독에 몸부림치는 감독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의 두 번째 작품 <괜찮아, 울지마>가 30일 개봉된다. 이 영화는 200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은 뒤 2002년 카를로비바리 영화제 비평가상, 테살로니키 영화제 예술 공헌상 등을 휩쓸며 일찌감치 작품가치를 인정받은 수작이다. 그러나 제작완료부터 개봉까지 꼭 6년이 걸렸다. 마케팅비만 수십 억원씩 쏟아 붓는 영화계에서, 총제작비 10억원 미만의 예술영화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_오랜 만의 개봉이라 감회가 남다르겠다.
“100만 관객이 들든 단 1명이 보든,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만든 영화인데 어떻게든 개봉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70% 정도 찍었는데, 제작사가 돈 떨어졌다고 철수하라고 그러고…. 개봉관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세 번째 영화 <포도나무를 베어라>(2004년)가 먼저 개봉되기도 했다. 원래 영화를 만들 때는 세상 사람들에게 ‘괜찮아, 울지마’라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는데, 결국 나 자신을 위한 말이 됐다.”

_대부분 사람들이 영화를 대중문화 상품으로 ‘소비’한다. 예술영화의 대중성, 또는 상업성 확보가 가능할까.
“나도 상업영화를 하고 있다. 투자를 받아서 작품을 만들고, 극장에 걸어서 관람료로 수익을 낸다. 다만 다른 영화들과 색깔이 달라 조금 생소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대학원 이상의 고급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위한 영화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지적 사기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이나 <향수> 같은 영화도, 정작 그 영화를 즐긴 것은 농민들이었다. ‘너 정말 이 영화 이해해?’라는 평론가들의 질문에, 농민들은 ‘시(詩)를 왜 분석해’라고 대답했다. 이른바 예술영화라는 작품들이 결코 소수를 위한 지적 자의식의 산물은 아니다.”

_그렇다면 <트랜스포머> 같은 영화와 <괜찮아, 울지마>는 어떻게 다른가.
“오락영화는 마케팅적인 계산을 먼저 하고 철저히 거기에 맞춰 기획한다. 시작부터 관객의 반응까지 정답이 있는 영화다. 하지만 난 답이 아니라 질문을 주는 영화를 만든다. 관객이 스스로 생각할 여백과, 고통을 이겨내고 답을 찾게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 <트랜스포머>는 그런 것이 생략된 영화고…. 이를테면 장르의 차이지, 영화라는 본질의 차이는 아니라고 본다.”

_<디 워> 신드롬을 어떻게 보나. 그리고 그런 신드롬을 만들어낸 영화산업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디 워>든 그것보다 훨씬 못한 영화든, 관객이 거기에 열광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다만 다양성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계 전체, 특히 폭력적인 배급시스템의 책임이다. (소수 상업영화의) 독과점이 분명 자본의 입장에서는 이득이 있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영화에 20개 관이라도 잡아 줄 수 있지 않는가? 스크린 쿼터 문제에는 거리에 나서지만, 스크린독과점 문제에는 침묵하는 영화인들도 문제다. 언론도 오락영화를 소개하는 양의 5%만이라도 독립영화를 소개해줬으면 한다.

_ 예술영화가 살아 남을 대안은 무엇일까.
“배급 상황이 나쁠수록 작품에 공을 들여야 한다. 좋은 영화는 결국 관객과 만나게 된다. 영화시장 3%의 관객이 소문을 내 1%의 관객을 더 데리고 올 수 있도록, 그래서 한국영화계의 쏠림현상을 관객 스스로가 거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외국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도 장 뤽 고다르 특별전이나 이마무라 쇼헤이의 회고전에 1만명 정도의 관객이 들지 않나. 한 나라에 1만명씩, 100개국이면 100만명이 영화를 보는 것이 된다.” 

●괜찮아, 울지마
모스크바에서 도박빚을 지고 우즈베키스탄의 고향 마을로 도망쳐 온 남자의 이야기.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남자의 심리를 통해, 모든 사람들의 내면 속에 감춰진 두려움의 실체를 직면하게 한다. 전작 <벌이 날다>(1998년)처럼 우화적이고 키치적인 소재로 자칫 사변적으로 흐를 수 있는 영화에 운율을 더했다. 탈무드의 한 토막 같은 전설로 현실의 번민에 빠진 주인공에게 슬며시 희망의 빛을 던져 준다. 서울 종로 미로스페이스 단관 개봉.(유상호 기자)

07. 08.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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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 2007-08-2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박한 돌집을 보니까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아요.
여백이 있어 보이는 영화, 보러 가고 싶네요.

로쟈 2007-08-23 11:25   좋아요 0 | URL
보고 소감 올려주실 거죠?^^

philocinema 2007-08-23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곳 부여는 개봉관 자체가 없으니...
아니 있어도 이런 시골에 개봉을 하긴 하려는지...
예술영화를 개봉관에서 보려면 서울로 이사를 해야하는건지...

예술영화의 개봉이 서울에 집중되는 것은 또하나의 폭력은 아닌지...

로쟈 2007-08-23 19:17   좋아요 0 | URL
저도 보고 싶다는 것이지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philocinema 2007-08-23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렴요!

책읽기는즐거움 2007-08-24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기다린지 6년째 이제야 개봉이 되네요. 하재봉씨가 나왔던 <시네마 월드>에서 이 영화를 소개하는걸 보고 정말 보고싶은 영화가 되었는데 기다리다 정말 지쳤다는ㅋ
그때 민병훈 감독과 저 외국배우도 같이 나와서 하재봉씨하고 이야기도 하고 그랬는데...
하여튼 이제라도 개봉되어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저 영화를 보고 자꾸 예술영화 예술영화 하는게 오히려 저 영화가 난해하다든가등의 잘못된 신비감만 조성하는 듯 하는 느낌이 드네요.
어디서 민감독이 이야기하는것을 읽었는데 자신의 영화가 그렇게만 보여지는게
싫고 자신도 예술영화를 하는게 아니라고 한 것 같아요
(정확히 기억이 안나네요-_-;;)
어떻게 생각하면 저 영화도 이세상의 수많은 감동적인 영화중 한개라고 볼수도 있는게 아닐까요? 그렇다고 저 작품의 가치가 낮다는게 아니고요ㅋ
일단 보고나서 어렇다 저렇다 말하는게 우선일듯 하네요ㅋ
8월 30일 개봉이라 되어있으니 계획을 잡아야 겠어요

로쟈님 좋은 정보 정말 감사합니다ㅋ
잘못하면 까먹고 가지 못할 번 했네요

로쟈 2007-08-25 01:57   좋아요 0 | URL
정보야 널려 있는 걸요. 다만 보는 눈들이 다를 뿐이지요.^^
 

<킹콩걸>이 출간된 김에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밀린) 읽을 책들을 몇 권 꼽아둔다. 페미니즘 관련서의 문제점은 너무 많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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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걸- '못난' 여자들을 위한 페미니즘 이야기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민병숙 옮김 / 마고북스 / 2007년 8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7년 08월 21일에 저장
절판
베즈 무아
비르지니 데팡트 지음, 최경란 옮김 / 책세상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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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반양장
린다 하트 지음 / 인간사랑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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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 신화 마돈나
조르주-클로드 길베르 지음, 김승욱 옮김 / 들녘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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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1 12:02   좋아요 0 | URL
참고하겠습니다 로쟈님 감사합니다 :)

로쟈 2007-08-21 12:22   좋아요 0 | URL
빙산의 일각일 뿐인데요 뭐...

로즈마리 2007-08-21 18:41   좋아요 0 | URL
저도^^
 

입추가 지난 지 여러 날이 되었지만 늦더위가 만만찮다. 어디 휴양지에나 가 있어야 딱 좋을 날씨이긴 한데, 그럴 여유는 없고 무거운 머리와 씨름만 하고 있다. 잠시 커피 브레이크에 예전에 쓴 시집의 글들을 뒤적이다가 한 대목을 창고로 옮겨온다(돌아보니 12년 전에 쓴 글이다). 내가 중학교 때부터 좋아한 시 이상의 '꽃나무'에 대해 몇 자 적어놓은 것이다. 하긴 여름날의 꽃나무들도 휴가는커녕 꼼작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 터이다. 그이들을 사랑한다.

나는 이상적인 시의 번역이란 시적 ‘삶’의 번역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시는 원칙적으로 번역되지 않는다). 불어의 ‘번역하다(traduire)’란 말은 ‘가로질러가는 행위․운동’을 뜻한다. 시를 번역하는 것은 시 속의 ‘삶’을 가로질러가는 행위․운동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 행위․운동이란 것은 주체적인 것이기 때문에 시를 읽어내는 사람마다에게 고유한 것이다. 따라서 시 번역에는 방법론이 있을 수가 없다(몇 가지 요령은 있을까?). 자신의 전 존재를 투여하는 수밖에. 여기서는 다만 이상의 시 '꽃나무'의 말뜻만 따라가 보기로 하겠다. 편의상, 띄어쓰기를 하겠다. 

벌판 한복판에 꽃나무 하나가 있소 근처에는 꽃나무가 하나도 없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를 열심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으로 꽃을 피워가지고 섰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게 갈 수 없소 나는 막 달아났소 한 꽃나무를 위하여 그러는 것처럼 나는 참 그런 이상스러운 흉내를 내었소.

 

이 시의 핵심은 나와 꽃나무의 대비적인 관계이다. 이들을 연결시켜주는 것은 ‘흉내’이다. 나는 꽃나무를 흉내낸다(꽃나무는 나의 은유이다). 나는 꽃나무‘처럼’ (서)있다. 이 ‘처럼’이 직접적으로 겹쳐지는 부분이 “나는 막 달아났소”이다. 앞에서 문장의 주어였던 ‘꽃나무’가 여기서 ‘나’로 교체된다. ‘꽃나무’에만 국한된 시라면 이 시는 “꽃나무는 막 달아났소”라고 끝나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나’가 개입한다. 내가 ‘꽃나무’의 바톤을 이어받는 것이다. ‘나’는 ‘꽃나무’인 것.

 

그렇다면 이 시의 처음부터 ‘꽃나무’는 ‘나’이다. 그럼 아예 이렇게 다시 읽을 수 있다: “벌판 한복판에 나 혼자 있소. 근처에는 아무도 없소. 나는 나 혼자 열심으로 나만을 생각하며 서 있소. (그러나?) 나는 내가 바라는 나는 될 수 없소. 나는 (슬퍼서? 절망해서?) 막 달아났소.”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꽃나무’와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를 같은 존재로 볼 것인가, 서로 다른 존재로 볼 것인가, 이다.

"내가 바라는 나”가 ‘이상적인 나’인가, 아니면 ‘당신’인가 하는 것. 그건 읽는 사람의 마음이 결정할 문제일까? 어쨌든 시적 화자(나=꽃나무)는 나름대로 열심히 꽃을 피우고자 하는, 사랑하고자 하는, 진정한 자기발견에 이르고자 하는 존재이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지레짐작한, 아니면 그런 불가능성을 몸으로 확인한 존재이다. 그는 그 불가능성을 견디지 못해서 달아난다. 그는 지극히 ‘이상’적인 존재이다.

 

 

 

 

‘꽃’을 노래하는 것과 ‘꽃나무’를 노래하는 것은 시의 계열이 다르다. 꽃은 다만 피고 지는 것을 주특기로 하지만 꽃나무는 그런 꽃들을 거느리면서 한편으론 “숙명적 상승의 전략”(이성복, '등나무')을 구사해야 한다. 내가 꽃나무를 가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아, 꽃핀 나무들(=꽃나무들)의 열렬한 괴로움이여! 이상(1910-1937)과 이성복(1952- )의 시 몇 편은 바로 이 주제에 바쳐진다...  

 

나는 어느 새 이상보다 많은 나이를 먹었구나! 생의 막바지에 그는 레몬인가 멜론인가를 달라고 그랬다지. 나는 오렌지를 달라고 할까? “레몬 즙보다는 후두(喉頭)가 더 크게 벌어지도록 강요하는” 오렌지 즙을 말이다. 우리의 안쓰러운 오렌지.

 

스펀지처럼 오렌지에도 표현의 시련을 감내한 뒤 형태를 다시 찾으려는 열망이 있다. 그러나 스펀지는 항상 성공하지만 오렌지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다. 그 세포들은 파열되었고 조직체는 찢겨나갔기  때문이다. 단지 껍질만이 탄성 덕분으로 완만하게 자신의 형태로 되돌아가고, 그동안 방향성 액체가 흘러나온다. 언제나 감미로운 향내와 신선함을 지니고서. 그렇지만 씨앗의 너무 이른 배출에 대한 씁쓸한 의식도 번번이 동반한다.(F. 퐁주, '오렌지')  

 

 

우리는 오렌지를 닮았는가, 씁쓸하게도? 시계태엽이 감긴 오렌지(Clockwork Orange)? 내 방 책상머리에는 언제부터인가 S. 큐브릭의 이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다. 대학 1학년 때 H대학 영화제에서 본 듯한데, 별로 유쾌한 영화가 아니었다(反유토피아 영화던가?). 그러니 좋아하지도 않고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몇 장면만이 머릿속에 들어있다 이 포스터의 문구 그대로이다(http://www.thefoolsparadise.com/clockwork-orange/ 참조).



“여기 한 젊은이의 모험이 있다. 오로지 그의 관심은 강간과 무지막지한 폭력, 그리고 베토벤!(Being the adventures of a young man whose principal interests are rape, ultra-violence and Beethoven.)” 이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착한 오렌지인가!.. 

 

 

07. 0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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