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귀가길에 조간신문을 야간신문으로 읽었다. 아직 한편의 영화도 보지 못했지만 모스크바 영화학교를 졸업했다는 '학력' 떄문에 기억해두고 있는 영화감독 민병훈씨의 두번째 작품 <괜찮아, 울지마>(2001)가 6년만에 개봉한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었고 바로 페이퍼로 옮겨질 거라고 직감했다(이런 판단에는 0.1초도 걸리지 않는다). 해야 할 다른 일들을 잠시 미뤄두고 '작업'을 하는 이유이다.

전철에서 읽은 기사를 인터넷에서 찾다보니 소박한 홈피도 눈에 띈다(http://www.letsnotcry.co.kr/). 예고편을 감상했는데, 나로선 무엇보다도 첫번째 영화 <벌이 날다>와 마찬가지로 우즈베키스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든다. 옮겨놓은 스틸사진들만 보아도 영화의 소박한 진심이 느껴진다. 이 정도면 봐둘 만한 영화이다. 인터뷰기사가 정작 영화에 대해서는 별로 다루고 있지 않아 아쉽지만 더 나은 기사도 눈에 띄지 않기에 일단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7. 08. 22) "예술영화도 '한뼘 설 땅'은 필요하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한국에서 예술영화, 혹은 독립영화를 한다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작업을 이렇게 표현한다. 영화를 오락의 수단으로만 찾는 대중 앞에 ‘예술’ 타이틀이 붙는 영화를 찍는 사람들은 늘 외롭다. 이들이 두려워 하는 것은 흥행 실패도, 평단의 혹평도, 인터넷 ‘악플’도 아니다. 영화판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관객의 무관심이다.

민병훈(37)도 그런 고독에 몸부림치는 감독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의 두 번째 작품 <괜찮아, 울지마>가 30일 개봉된다. 이 영화는 200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은 뒤 2002년 카를로비바리 영화제 비평가상, 테살로니키 영화제 예술 공헌상 등을 휩쓸며 일찌감치 작품가치를 인정받은 수작이다. 그러나 제작완료부터 개봉까지 꼭 6년이 걸렸다. 마케팅비만 수십 억원씩 쏟아 붓는 영화계에서, 총제작비 10억원 미만의 예술영화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_오랜 만의 개봉이라 감회가 남다르겠다.
“100만 관객이 들든 단 1명이 보든,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만든 영화인데 어떻게든 개봉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70% 정도 찍었는데, 제작사가 돈 떨어졌다고 철수하라고 그러고…. 개봉관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세 번째 영화 <포도나무를 베어라>(2004년)가 먼저 개봉되기도 했다. 원래 영화를 만들 때는 세상 사람들에게 ‘괜찮아, 울지마’라는 얘기를 들려주고 싶었는데, 결국 나 자신을 위한 말이 됐다.”

_대부분 사람들이 영화를 대중문화 상품으로 ‘소비’한다. 예술영화의 대중성, 또는 상업성 확보가 가능할까.
“나도 상업영화를 하고 있다. 투자를 받아서 작품을 만들고, 극장에 걸어서 관람료로 수익을 낸다. 다만 다른 영화들과 색깔이 달라 조금 생소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대학원 이상의 고급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위한 영화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지적 사기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이나 <향수> 같은 영화도, 정작 그 영화를 즐긴 것은 농민들이었다. ‘너 정말 이 영화 이해해?’라는 평론가들의 질문에, 농민들은 ‘시(詩)를 왜 분석해’라고 대답했다. 이른바 예술영화라는 작품들이 결코 소수를 위한 지적 자의식의 산물은 아니다.”

_그렇다면 <트랜스포머> 같은 영화와 <괜찮아, 울지마>는 어떻게 다른가.
“오락영화는 마케팅적인 계산을 먼저 하고 철저히 거기에 맞춰 기획한다. 시작부터 관객의 반응까지 정답이 있는 영화다. 하지만 난 답이 아니라 질문을 주는 영화를 만든다. 관객이 스스로 생각할 여백과, 고통을 이겨내고 답을 찾게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 <트랜스포머>는 그런 것이 생략된 영화고…. 이를테면 장르의 차이지, 영화라는 본질의 차이는 아니라고 본다.”

_<디 워> 신드롬을 어떻게 보나. 그리고 그런 신드롬을 만들어낸 영화산업의 시스템에 대해서는.
“<디 워>든 그것보다 훨씬 못한 영화든, 관객이 거기에 열광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다. 다만 다양성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계 전체, 특히 폭력적인 배급시스템의 책임이다. (소수 상업영화의) 독과점이 분명 자본의 입장에서는 이득이 있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영화에 20개 관이라도 잡아 줄 수 있지 않는가? 스크린 쿼터 문제에는 거리에 나서지만, 스크린독과점 문제에는 침묵하는 영화인들도 문제다. 언론도 오락영화를 소개하는 양의 5%만이라도 독립영화를 소개해줬으면 한다.

_ 예술영화가 살아 남을 대안은 무엇일까.
“배급 상황이 나쁠수록 작품에 공을 들여야 한다. 좋은 영화는 결국 관객과 만나게 된다. 영화시장 3%의 관객이 소문을 내 1%의 관객을 더 데리고 올 수 있도록, 그래서 한국영화계의 쏠림현상을 관객 스스로가 거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외국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도 장 뤽 고다르 특별전이나 이마무라 쇼헤이의 회고전에 1만명 정도의 관객이 들지 않나. 한 나라에 1만명씩, 100개국이면 100만명이 영화를 보는 것이 된다.” 

●괜찮아, 울지마
모스크바에서 도박빚을 지고 우즈베키스탄의 고향 마을로 도망쳐 온 남자의 이야기.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남자의 심리를 통해, 모든 사람들의 내면 속에 감춰진 두려움의 실체를 직면하게 한다. 전작 <벌이 날다>(1998년)처럼 우화적이고 키치적인 소재로 자칫 사변적으로 흐를 수 있는 영화에 운율을 더했다. 탈무드의 한 토막 같은 전설로 현실의 번민에 빠진 주인공에게 슬며시 희망의 빛을 던져 준다. 서울 종로 미로스페이스 단관 개봉.(유상호 기자)

07. 08.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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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 2007-08-2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박한 돌집을 보니까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아요.
여백이 있어 보이는 영화, 보러 가고 싶네요.

로쟈 2007-08-23 11:25   좋아요 0 | URL
보고 소감 올려주실 거죠?^^

philocinema 2007-08-23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곳 부여는 개봉관 자체가 없으니...
아니 있어도 이런 시골에 개봉을 하긴 하려는지...
예술영화를 개봉관에서 보려면 서울로 이사를 해야하는건지...

예술영화의 개봉이 서울에 집중되는 것은 또하나의 폭력은 아닌지...

로쟈 2007-08-23 19:17   좋아요 0 | URL
저도 보고 싶다는 것이지 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philocinema 2007-08-23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렴요!

책읽기는즐거움 2007-08-24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기다린지 6년째 이제야 개봉이 되네요. 하재봉씨가 나왔던 <시네마 월드>에서 이 영화를 소개하는걸 보고 정말 보고싶은 영화가 되었는데 기다리다 정말 지쳤다는ㅋ
그때 민병훈 감독과 저 외국배우도 같이 나와서 하재봉씨하고 이야기도 하고 그랬는데...
하여튼 이제라도 개봉되어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저 영화를 보고 자꾸 예술영화 예술영화 하는게 오히려 저 영화가 난해하다든가등의 잘못된 신비감만 조성하는 듯 하는 느낌이 드네요.
어디서 민감독이 이야기하는것을 읽었는데 자신의 영화가 그렇게만 보여지는게
싫고 자신도 예술영화를 하는게 아니라고 한 것 같아요
(정확히 기억이 안나네요-_-;;)
어떻게 생각하면 저 영화도 이세상의 수많은 감동적인 영화중 한개라고 볼수도 있는게 아닐까요? 그렇다고 저 작품의 가치가 낮다는게 아니고요ㅋ
일단 보고나서 어렇다 저렇다 말하는게 우선일듯 하네요ㅋ
8월 30일 개봉이라 되어있으니 계획을 잡아야 겠어요

로쟈님 좋은 정보 정말 감사합니다ㅋ
잘못하면 까먹고 가지 못할 번 했네요

로쟈 2007-08-25 01:57   좋아요 0 | URL
정보야 널려 있는 걸요. 다만 보는 눈들이 다를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