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애초엔 플라톤의 <국가>에 대해 적으려고 했지만 새로 번역된 <고르기아스>(민지사, 2011)의 한 대목을 읽고서 방향을 약간 틀었다. 칼럼에 나오는 승계호 교수의 플라톤론은 <서양철학과 주제학>(아카넷, 2008)에서 참고할 수 있다.  

한겨레(11. 10. 29) 정의는 약자의 속임수고 철학은 유해하다고?

오래전 학부 시절의 일이다. 비슷한 시기에 제대한 복학생으로 강의를 같이 들으며 절친했던 동기와 하루는 철학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서양문학을 전공하니까 서양철학도 좀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문제의식에서였다. 정확하진 않다. 그냥 강의실 밖에서도 ‘학술적인’ 우정을 나누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철학 공부를 하자고 뜻을 모았다. 그렇다고 ‘신병’(新兵) 수준은 아니어서 윌 듀랜트의 <철학이야기>나 러셀의 <서양철학사> 같은 책은 이미 읽어둔 터였다. 무얼 먼저 읽을까 의논하다가 또 자연스레 플라톤부터 읽어보자고 합의했다.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플라톤을 전체주의 사상의 원조로 맹공격한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 대학가에서 읽히던 때였다.

문제는 마땅히 읽을 만한 플라톤의 ‘대화편’ 번역이 드물었다는 점이다. 옥스퍼드대학출판부에서 나온 입문서를 대신 손에 들었지만 읽어낼 엄두를 내지 못해서 결국은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의 문제들>을 원서로 강독했다. 번역본이 나와 있기도 했지만 가장 얇은 책이라는 게 선택의 주된 이유였다. 그게 개인적으론 플라톤과 근접 조우한 기억이다. 거의 만날 뻔했으나 스쳐지나간 인연이라고 할까.

이후에 번역된 대화편들을 간간이 구입하면서도 열독할 만한 계기는 얻지 못했다. 이제는 같이 읽을 친구가 없는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사후정당화이긴 하지만 조금 더 ‘학술적인’ 이유를 대자면 초기 대화편인 <고르기아스>가 새로 번역되지 않은 것도 이유에 포함된다.

미번역된 <플라톤 재발견>의 저자 승계호 미 텍사스대 석좌교수에 따르면 플라톤의 철학적 여정은 <고르기아스>에서부터 시작한다. 플라톤의 모든 대화편이 주제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이어진다는 ‘연결주의적’ 입장에서 승 교수는 플라톤철학이 소피스트들의 도전에 대한 응전이라고 정리한다.

가령 <고르기아스>에서 주인공 소크라테스는 칼리클레스의 권력정치에 대한 옹호와 대면한다. 칼리클레스는 공정이란 관념이 약자들이 강자를 속이기 위해서 고안해낸 속임수이며 강자는 약자를 정복하고 약탈하는 권리를 지닌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칼리클레스의 주장을 물리칠 만한 강력한 논증을 제시하지 못한 채 <고르기아스>는 마무리되고, 플라톤의 이어지는 대화편들은 이 문제에 대한 일련의 응답이라는 게 승 교수의 주장이다. 가장 유명한 중기 대화편 <국가>도 사실 이러한 전체 구도를 반복한다. 제1권에서 소피스트인 트라시마코스는 올바름(정의)이란 강자의 편익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소크라테스는 이에 대해 반박하지만 그 반박은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제2권에서 제10권까지 아주 긴 분량을 할애해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서 올바름이란 무엇이고, 올바른 국가란 또 어떠해야 하는지 자세히 살핀다. 개인적 차원에 앞서 국가적 차원에서 올바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를 벗어난 개인의 존재는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피스트들의 주장은 정의의 문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고르기아스>에서 칼리클레스는 철학 유해론 또한 주장한다. 젊었을 때 적당히 접촉하는 건 괜찮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철학을 한다면 익살스러운 일이 될 거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것은 정치로 충분하지 굳이 정치철학이 필요한가라는 반문으로도 정리될 수 있다. 그렇다면 플라톤의 철학은 올바름과 함께 철학 자체를 옹호하기 위한 긴 여정으로도 볼 수 있다. 사정이 그러하기에 중년의 나이에도 플라톤을 손에 드는 것은 ‘플라톤과 함께’ 철학 무용론에 맞선다는 의미도 갖는다

11. 10. 28.  

P.S. 도서관을 검색해보면 <고르기아스> 번역은 1980년대 초반 상서각에서 나온 대화편에 포함돼 나온 적이 있다. 서광사판 희랍 고전 번역 근간 목록에 포함돼 있지만 아직은 감감 무소식이다. 이번에 나온 민지사판은 역자가 "영어판과 일어판을 기초로 비교 대조해 가며" 옮긴 중역본이다. 역자는 <고르기아스>, <프로타고라스>, <파이드로스> 세 권을 묶어서 '소크라테스의 스피치 철학'이라고 부른다. <고르기아스>를 스피치 철학, 혹은 소피스트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소개한 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또한 일종의 '도전'이라면 번역의 차원에서도 철학계의 발빠른 응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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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9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30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칼럼을 미리 옮겨놓는다. 무얼 써야 하나 고심하다가 오전을 공치고 오후에 들어서야 겨우 써보낸 원고이다(덕분에 다른 원고들이 다 순연돼 아직도 갈길이 멀다). 어제 서울시장 보선 결과에 대해선 기사나 칼럼이 많을 듯하여, 약간 비껴서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푸른숲, 2011) 얘기를 조금 적었다...

경향신문(11. 10. 28) [문화와 세상]‘닥치고 정치’와 염치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에서 불공정 측면을 지적들 하는데 이 분야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불공정이 많이 대두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어록이다.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는 오랜 국민적 인식에 바로 공감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읽을 수 있어서 감동적이다. 게다가 짐작엔 현직에서 가장 자주 눈물을 보인 대통령 아닌가. 서민의 고통에 대한 뼈저린 공감이 없었다면 민생 경제를 위해 그만큼 애를 쓰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불공정한 사회적 관행을 타파하고 고질적인 병폐들을 마치 전봇대처럼 훌쩍 뽑아내기 위해 불철주야 전력을 다해온 점 또한 이명박 정부의 치적으로 손색이 없다. 공정사회론에 뒤이어 동반성장과 공생발전을 국정운영의 지표로 내세운 것도 CEO 대통령의 혜안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소수의 가진 자들을 위한 정치가 아닌 국민 다수를 위한 정치를 지향한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대개 현직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냉정하며 인색하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것과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론 그 점이 늘 마음에 걸렸는데, 다행스럽게도 몇달 전부터 그런 ‘죄의식’을 좀 덜어주는 새로운 형식의 방송이 생겨났다. 청와대 비서진도 미처 생각지 못한 ‘가카 헌정방송’ <나는 꼼수다>가 그것이다. 방송을 통해서 우리는 온갖 비방과 유언비어에도 불구하고 “가카는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시다”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이고, 국민생활 전반에 걸쳐 꼼꼼히 챙기는 대통령의 스타일에 환호하며, 사소한 도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호연지기에 경탄하게 된다.

하지만 경탄만 하고 있을 수 없고 어떻게 이런 방송이 탄생하게 됐을까 궁금해서 책을 손에 들었다.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의 <닥치고 정치>다. 애초에 스마트폰용 방송을 새로 시작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은 사람들이 몰라. 하지만 이거 대박 난다.” 그리고 실제로 대박이 났다. ‘무학의 통찰’임을 내세우지만 저자의 예지가 범상한 수준을 넘어선다.

‘명랑시민 정치교본’을 자처하는 <닥치고 정치>에는 <나는 꼼수다>와 마찬가지로 명랑한 아이러니와 풍자가 가득하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정치적 ‘좌’와 ‘우’가 인류의 조상이 원시 사바나에서 겪은 공포에 대한 두 가지 대처방식이라고 정리한 김 총수는 그 ‘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사유재산이라고 말한다. 왜 중요한가? “그로 인해 자신의 위계와 계급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그 사유재산이 바로 자신의 가치와 신분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니까. 동물이니까 그게 얼마나 초라한 건지는 전혀 몰라.”

하지만 사실 그 ‘초라함’은 우리의 기본조건이다. 우리는 모두 일단은 동물이니까. 동물에서 시작하니까. 동물 혹은 유인원의 처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는 건 모든 게 먹고사는 문제로만 환원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승인할 때이다. 일가의 재산과 부동산만이 유일한 관심사라고 한다면 우리의 수준은 ‘잘사는 동물’ 정도에서 멈출 것이다. 부러움을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존경의 대상은 아니다. 눈앞의 이익에만 매몰돼 사회적 대의에 눈감는다면 딴은 ‘순결한 동물’이라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김 총수의 표현을 빌리면 “뇌가 완전 청순한” 상태를 가리킨다. 반면에 정치란 ‘먹고사니즘’이 전부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행위다. ‘먹는 게 남는 거’라며 안면 몰수하는 게 아니라 내 몫이 정당한지 염치를 갖고 따져보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정치적 동물’이 된다. 단지 동물인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을 앞두고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냥 먹고 살기만 하믄 무슨 재민겨?” 

11.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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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ent 2011-10-28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꼼수다를 들어보시지 않은 것 같네요.. 대통령헌정방송은 반어법인데..혹시 제가 이글의 반어법을 이해 못한 것인지?

알케 2011-10-28 00:33   좋아요 0 | URL
로자님의 반어법으로 읽히는데요
나꼼수 어법의...ㅎㅎ

알케 2011-10-28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무선 음성지원 모듈을 책날개에 장착했더군요^^;

로쟈 2011-10-28 11:32   좋아요 0 | URL
전 김어준씨와 격주로 보다 보니 현장음으로 들리더라구요.^^

그후 2011-10-28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6일 나는 꼼수다의 김용민 평론가의 맨션에 의하면) 김어준총수 왈 "이제 태클의 쓰나미가 몰려올거다". 나꼼수가 일종의 반작용이었는데, 메이저 방송 및 언론들의 나꼼수에대한 반작용이 앞으로 점입가경이 될듯 하네요.

로쟈 2011-10-28 11:33   좋아요 0 | URL
나경원캠프에서 벌써 고발을 했더군요...

전호인 2011-10-28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카께서는 깊게 생각하시고 실행하는 판단과 통찰력 그리고 불도저식 결단력도 뛰어나시죠. 나꼼수의 내란음모 방송으로 인해 서울시가 종북좌파세력에게 점령당했음을 직시하고, 선거다음날 명박산성을 만들어낸 어청수장군을 경호처장으로 임명하는 신속한 결단을 하셨더라구요.신변의 위협을 느끼셨나봐요ㅜㅜ우리는 감히 생각하지도 못할 동물적 감각에 혀를 내두르게 하니 대단한 정수인 거죠(절대 꼼수 아니죠?ㅋㅋ). 5.18때 군홧발과 몽둥이 찜질을 당하던 선배동지들의 모습을 다시볼 수 있게 해 주신 분도 어장군님이잖아요. 이젠 가카께서 안전하시겠죠?

로쟈 2011-10-28 11:34   좋아요 0 | URL
꼼수인데, 보통 복잡한 꼽수는 아니더라구요. 나름대로 배려하는 거 같아요.^^;

봄날 2011-11-01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어 왔네요..태클의 쓰나미를 보고 있었는데, 여기서 닥정을 보다니 너무 반가워요 ㅋㅋ

로쟈 2011-11-04 08:57   좋아요 0 | URL
닥정이 뭔가 했네요.^^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제는 강연차 광주에 내려갔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돌아왔다. 그런 일정이야 일기에나 적으면 될 일인데, 뜻밖에도 기사화까지 됐다. 이왕 들통난 김에 '기념사진'을 대신하여 스크랩해놓는다(사진만 크게 올라오기도 했다). 내용은 특별히 새로운 건 없었고, 기사도 강연자료를 조금 발췌해놓은 것이다.(조선대 늬우스는 http://blog.naver.com/chosununi/140142904477 참조.) 

 

머니투데이(11. 10. 26) "독서력은 민주사회 토대이자 버팀목”

‘로쟈’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인터넷 서평꾼 이현우씨가 조선대에서 강연을 가졌다. 이 씨는 25일 오후 4시 서석홀 4층 대강당에서 열린 ‘문화초대석’ 강사로 초청돼 ‘책을 읽을 자유’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 ‘로쟈의 저공비행’이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연재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그는 “독서는 ‘나’를 ‘우리’로 확장시켜주면서, 사회역사적 존재로 거듭나게 한다”며 “기본적인 독서력은 민주사회의 기본 토대이자 버팀목이다”고 강조했다.

이 씨는 “한국인의 평균 독서량이 ‘한 달에 한 권’ 정도”라며 “독서량과 독서문화는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개인적 차원에서나 사회적 차원에서나 다수의 책을 읽는 일은 독서가 습관이자 문화일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 독서 습관과 문화를 가질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책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읽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라도 책을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읽는다”고 했다. ‘우리시대 왜 인문학을 말하는가’에 대해 이 씨는 “사고력과 판단력의 원천이라 할 지식과 교양은 책과 독서를 통해서 얻어진다”며 “하루에 30분씩만 책을 읽어도 200~300쪽짜리 책을 일주일에 한 권은 너끈히 읽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독서목록보다는 독서력, 책을 읽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면서 “책과 많은 연애를 하는 사람, 그런 연애를 통해서 가끔 혹은 자주 새로운 책을 낳기도 하는 사람이 곧 독서의 달인이다”고 말했다. 

11. 10. 26.  

P.S. 광주의 조선대에는 어제 처음 가본 것이었는데, 교정도 크고 무등산 자락의 전망과 '백악관'이라 불린다는 흰색 건물들이 인상적이었다. 나희덕, 이장욱 두 시인 교수와 담소를 나누고 더불어 두 분의 신간 <더 레터>(좋은생각, 2011)와 <생년월일>(창비, 2011)도 선물로 받았다. 밀린 원고들 외에도 강의와 강연으로 정신없이 한주 한주가 지나가고 있는데, 덧붙이자면 오늘도 일반강연이 있다. <애도와 우울증>(그린비, 2011)에 대한 강연을 종로도서관에서 저녁 7시부터 갖는다. 혹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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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린고양이 2011-10-26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과 비슷한 외모를 상상했는데... 음음, 더 멋지십니다.

로쟈 2011-10-26 15:51   좋아요 0 | URL
제가 흉내낼 수 없어서 그렇지 멋있는 거야 지젝이 멋있죠.^^;

2011-10-26 14: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6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6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7 13: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8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31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1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7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8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10-28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광주에 오셨었군요. 미리 알았으면 로쟈님 뵈러 갔을텐데....아쉽네요.
조대의 하얀건물은 백악관이 아니라 '악마의 성'으로 불리던 때가 있었다지요.^^
이장욱 시인은 지난 8월에 유홍준 선생님과 완도 보길도 답사길에 함께 해서, 해남에서 광주까지 고속버스도 같이 타고 왔는데...^^

로쟈 2011-10-28 11:32   좋아요 0 | URL
네 암행모드로 다녀오긴 했는데, 기사가 떠버렸어요.^^;

노이에자이트 2011-10-29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광주에 오셨군요.조선대 외에 어디어디를 들르셨나요? 유명한 광주의 음식도 맛보셨는지요?

로쟈 2011-10-29 18:00   좋아요 0 | URL
당일치기이기 때문에 들를 여유는 없고요, 점심엔 한정식, 저녁엔 이탈리아식 뷔페를 맛봤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0-29 20:48   좋아요 0 | URL
다음번엔 넉넉히 시간 잡아서 부근의 담양이나 화순 쪽도 들러보세요.

가명 2020-10-31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자님 예전에 강의들을 때부터 느낀건데 인상이 너무 날카로우세요 웃으면 괜찮으신데 자주 웃으세요
 

종교분야의 책은 따로 분류하고 있진 않지만 '이주의 종교서'에 해당하는 책은 박노자의 <붓다를 죽인 부처>(인물과사상사, 2011)였다. 당장은 손에 들 여유가 없어서 제쳐놓았었는데, 막간을 이용해(목에다 파스를 붙이고 잠시 쉬고 있다) 기사라도 스크랩해놓는다.    

한국일보(11. 10. 22) 대입 수험 기도·대형 불사 건립… 한국의 불교 지나치게 세속화"

"한국에서 불교는 자본주의의 병리 현상을 내면화한 개신교와 정체성이 다르지 않습니다. 국가와 유착하고 기복의 상징처럼 돼 버린 건 불교 정신의 변질일 뿐이지요."

한국 사회의 국수주의, 자본주의 문제 등을 비판해온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가 이번에는 세속에 찌든 한국 불교에 죽비를 내리쳤다. 계간 인물과사상에 연재한 글을 묶은 <붓다를 죽인 부처>(인물과사상사 발행)에서다. 그가 불교를 화두로 삼았다는 게 언뜻 생뚱맞아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박 교수는 자신을 "남을 살리는 불교적 삶을 동경하는 불자"라고 자주 말해왔다. <우승열패의 신화>(2005)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2007) 같은 저서에서는 불교적인 생각을 사회과학적인 용어로 설명했다. 



이번 책에서 그는 "깨달은 자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붓다'는 고다마 싯다르타의 다른 명칭으로 중국으로 건너가 음역되는 과정에서 한자 '불(佛)'이 됐고 다시 한국에서 '부처'라고 불렸다"며 "부처란 말은 한국화한 불교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붓다, 즉 원리불교를 죽이고 부처(한국화 된 불교)가 된 종교가 국가와 자본에 종속되거나 최소한 편안한 공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박 교수는 고향인 러시아 레닌그라드에서 고등학생 시절 <법구경>을 읽으며 불교와 처음 만났다. 그가 불교에 '꽂힌' 이유는 연대와 상생이라는 불교의 철학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소련 붕괴과정을 차례로 지켜보며 인간의 폭력성을 고민하던 당시, 상생과 비폭력을 설파했던 불교 경전은 '큰 충격이면서 감동'(44쪽)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정작 불교 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에서 만난 불교는 자신이 경전으로 알던 불교와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불교에는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것이 너무 좋았어요. 꼭 신이 있어야 종교가 되는 게 아니니까. 종교는 개인을 압도할 수 있는 인식의 패러다임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부처님께 기도를 하죠. 불교가 세속화하면서 초자연적인 힘이 개입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는 책에서 '대입수험 기도' 같은 기복신앙, 대형 불사 추진 등 한국 불교계의 문제점을 두루 지적하며 불교가 한국에서 국가주의와 결탁해온 과정을 추적했다. 이를 테면 호국불교라는 말은 살인하는 부처 같은 모순적인 단어이지만 '세속오계'를 강조하는 국가(신라)의 지속적인 교육과 불교계의 묵인으로 거부감 없는 단어가 되고 말았다.

"한국의 기독교에는 문제가 없나"는 질문에 그는 "한국 개신교는 자본주의의 이념이 되어버린 느낌"이라며 "대형 교회의 설교를 들어보면 가난을 신앙 부족으로 설명하거나 부자가 되는 걸 신이 바라는 것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바로 한국 자본주의의 병리적 현상을 내면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불교의 형편도 기독교와 다르지 않다. 그는 "불교 역시 자본주의와 대립각을 세우는데 실패했고 크게 볼 때 두 종교가 다르지 않지만 불교는 기독교에 비해 힘이 없는 게 현실"이라며 "초기 불교 교리로 돌아가 '붓다'의 가르침을 되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불교를 신앙으로서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사회와 우주를 사색하는 밑거름으로 삼았으면 한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처음 이메일 인터뷰를 청했지만 그는 전화로 이야기 하자고 했다. "최근 10주간 육아휴직을 해서 9살, 10개월 된 두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그 편이 시간이 덜 걸린다는 이유였다. 자신의 한국학 수업은 다른 강사가 대신한다. 한국의 대학교수라면 상상조차 못할 일이지만 박 교수는 "노르웨이는 복지가 잘 돼 있어 일반인이 자본주의 모순을 덜 느끼는 게 사실"이라며 "반자본주의 시위도 여기서는 별로 없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그가 "꼭 하고 싶은 말"이라며 한 마디 덧붙였다. "저에게 종교는 목적이 아니고 수단입니다. 남과 연대하거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수단이지요."(이윤주기자) 

11. 10. 23.  

P.S. 짐작할 수 있지만 불교서적은 차고 넘친다(기독교서적만큼은 아닐지라도). 그중 '교양 불교'로 분류할 만한 책 몇권을 골라놓는다. 읽은 책이 아니라 언젠가 읽어보려는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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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1-10-23 19:32   좋아요 0 | URL
지금은 품절이지만, 불연 선생님의 불교개론강의도 좋은 책이지요.

로쟈 2011-10-23 20:0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관련서가 너무 많아서, 저로선 종교학자들의 책을 고르게 됩니다...

2011-10-23 1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23 2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1-10-24 19:57   좋아요 0 | URL
여튼 우리나라에만 들어오면 모든 종교는 기복의 대상이 되는 것 같아욤..ㅎㅎ

로쟈 2011-10-26 08:26   좋아요 0 | URL
저는 한국적 허무주의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과학분야의 이번주 관심도서는 리처드 랭엄의 <요리본능>(사이언스북스, 2011)이다. 원서는 'Catching Fire'이고 그 부제는 '어떻게 요리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는가'이다. '본능'이란 말 때문에 자연스레 떠올린 책은 <전쟁본능>(살림, 2010)인데, 전쟁이 인간의 일곱번째 본능이라고 주장하는 책도 이번주에 나왔다. 중국의 저술가 자오신산의 <전쟁호르몬>(시그마북스, 2011). 전작인 <천재적인 광기와 미친 천재성>(시그마북스, 2010)도 사두긴 했지만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이 생소한 저자에 대해선 판단을 보류해놓은 상태다. 긴가민가하지만 <전쟁본능>도 구해놓은 터라 <전쟁호르몬>도 주문은 넣었다. 물론 먼저 읽을 책은 <요리본능>이다.    

서울신문(11. 10. 22) 요리를 시작한 인류, 진화에 속도를 붙이다

야구 좋아하는 할머니와 함께 서울 잠실야구장에 갔다고 치자. 대략 6만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경기장이다. 당신 오른편엔 할머니를, 그 옆부터는 증조할머니 등 모계를 거슬러 올라가며 순서대로 유령들을 앉힌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당신 왼편에서 누군가 툭툭 치며 알은체를 할 게다. 할머니라 부르기조차 민망한 그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다. 그 원시 인류가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 당신에게 오기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건 무엇일까. 



그 답을 ‘요리’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인류 진화 생물학자 리처드 랭엄이 지은 ‘요리 본능’(조현욱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의 골자다. 랭엄은 책을 통해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의 계기를 제공한 것은 불의 사용과 익힌 음식의 등장”이라고 주장한다. ‘불에 익혀 먹는 행위’, 즉 요리가 인간의 해부학적 변화를 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리적·심리적·사회적 변화로 이어져 인간이라는 종 전체를 혁신적으로 진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저자가 수십 년에 걸쳐 연구한 침팬지의 먹이 행동과 생태, 인류의 생활 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한 오지의 원시 부족들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 그리고 선행 인류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을 기반으로 더욱 공고한 설득력을 갖는다.  

불에 익힌 음식은 맛도 좋지만 소화율도 높다. 그 덕에 인간의 몸이 소화에 드는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게 됐다. 이뿐 아니다. 가열 조리는 세균이나 각종 병원균을 제거해 보다 안전하게 음식을 섭취할 수 있게 했다. 날것을 씹을 때보다 품도 덜 든다. 이때 여분의 시간과 에너지가 발생하는데, 인간은 이를 품이 많이 드는 사냥 등에 투자했다. 게다가 날것에 비해 익힌 음식에서 추가 에너지가 생기고, 소화 기관이 줄어들며 절약하게 된 에너지와 합쳐져 지구상 그 어떤 동물보다 큰 용량의 뇌를 갖게 됐다.  

랭엄은 불에 먹거리를 익혀 먹기 시작하면서 인류가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역설한다. 유인원 같은 모습을 벗어 던지고 더 이상 어두운 밤과 추운 겨울, 대형 육식 동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되레 이들과 맞서 싸우며 아프리카 대륙 밖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불가에 모여 앉아 사냥한 먹이를 나눠 먹으며 집단을 이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성 등을 발달시켰고, 사냥을 하는 자와 요리를 하는 자라는 성별 분업과 결혼이라는 남녀 간의 제도적 결합도 탄생시켰다. 이처럼 익힌 음식으로부터 얻은 풍부한 열량은 지구상 그 어느 종보다 큰 두뇌를 가질 수 있게 한 데 더해 고도로 발달한 언어와 문명사회를 이룩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요리다.(손원천기자) 

11. 10. 22. 

 

P.S. 요리 얘기가 나온 김에 거들자면, 이탈리아 요리계의 '스타 셰프'로 통하는 박찬일의 신작도 이번주에 나왔다. <어쨌든, 잇태리>(난다, 2011). 내가 추천사를 썼던 엘레나 코스튜코비치의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음식 이야기를 좋아할까?>(랜덤하우스코리아, 2010)의 감수를 본 이가 박찬일 셰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엊그제도 들렀던 홍대 앞 레스토랑 '라꼼마'의 주방장이므로 인연이 아예 없진 않다. 음, 주말엔 어쨌든,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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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2 15: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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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2 17: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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