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애초엔 플라톤의 <국가>에 대해 적으려고 했지만 새로 번역된 <고르기아스>(민지사, 2011)의 한 대목을 읽고서 방향을 약간 틀었다. 칼럼에 나오는 승계호 교수의 플라톤론은 <서양철학과 주제학>(아카넷, 2008)에서 참고할 수 있다.  

한겨레(11. 10. 29) 정의는 약자의 속임수고 철학은 유해하다고?

오래전 학부 시절의 일이다. 비슷한 시기에 제대한 복학생으로 강의를 같이 들으며 절친했던 동기와 하루는 철학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서양문학을 전공하니까 서양철학도 좀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문제의식에서였다. 정확하진 않다. 그냥 강의실 밖에서도 ‘학술적인’ 우정을 나누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철학 공부를 하자고 뜻을 모았다. 그렇다고 ‘신병’(新兵) 수준은 아니어서 윌 듀랜트의 <철학이야기>나 러셀의 <서양철학사> 같은 책은 이미 읽어둔 터였다. 무얼 먼저 읽을까 의논하다가 또 자연스레 플라톤부터 읽어보자고 합의했다.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플라톤을 전체주의 사상의 원조로 맹공격한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 대학가에서 읽히던 때였다.

문제는 마땅히 읽을 만한 플라톤의 ‘대화편’ 번역이 드물었다는 점이다. 옥스퍼드대학출판부에서 나온 입문서를 대신 손에 들었지만 읽어낼 엄두를 내지 못해서 결국은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의 문제들>을 원서로 강독했다. 번역본이 나와 있기도 했지만 가장 얇은 책이라는 게 선택의 주된 이유였다. 그게 개인적으론 플라톤과 근접 조우한 기억이다. 거의 만날 뻔했으나 스쳐지나간 인연이라고 할까.

이후에 번역된 대화편들을 간간이 구입하면서도 열독할 만한 계기는 얻지 못했다. 이제는 같이 읽을 친구가 없는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사후정당화이긴 하지만 조금 더 ‘학술적인’ 이유를 대자면 초기 대화편인 <고르기아스>가 새로 번역되지 않은 것도 이유에 포함된다.

미번역된 <플라톤 재발견>의 저자 승계호 미 텍사스대 석좌교수에 따르면 플라톤의 철학적 여정은 <고르기아스>에서부터 시작한다. 플라톤의 모든 대화편이 주제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이어진다는 ‘연결주의적’ 입장에서 승 교수는 플라톤철학이 소피스트들의 도전에 대한 응전이라고 정리한다.

가령 <고르기아스>에서 주인공 소크라테스는 칼리클레스의 권력정치에 대한 옹호와 대면한다. 칼리클레스는 공정이란 관념이 약자들이 강자를 속이기 위해서 고안해낸 속임수이며 강자는 약자를 정복하고 약탈하는 권리를 지닌다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칼리클레스의 주장을 물리칠 만한 강력한 논증을 제시하지 못한 채 <고르기아스>는 마무리되고, 플라톤의 이어지는 대화편들은 이 문제에 대한 일련의 응답이라는 게 승 교수의 주장이다. 가장 유명한 중기 대화편 <국가>도 사실 이러한 전체 구도를 반복한다. 제1권에서 소피스트인 트라시마코스는 올바름(정의)이란 강자의 편익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소크라테스는 이에 대해 반박하지만 그 반박은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제2권에서 제10권까지 아주 긴 분량을 할애해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서 올바름이란 무엇이고, 올바른 국가란 또 어떠해야 하는지 자세히 살핀다. 개인적 차원에 앞서 국가적 차원에서 올바름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를 벗어난 개인의 존재는 의미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피스트들의 주장은 정의의 문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고르기아스>에서 칼리클레스는 철학 유해론 또한 주장한다. 젊었을 때 적당히 접촉하는 건 괜찮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철학을 한다면 익살스러운 일이 될 거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것은 정치로 충분하지 굳이 정치철학이 필요한가라는 반문으로도 정리될 수 있다. 그렇다면 플라톤의 철학은 올바름과 함께 철학 자체를 옹호하기 위한 긴 여정으로도 볼 수 있다. 사정이 그러하기에 중년의 나이에도 플라톤을 손에 드는 것은 ‘플라톤과 함께’ 철학 무용론에 맞선다는 의미도 갖는다

11. 10. 28.  

P.S. 도서관을 검색해보면 <고르기아스> 번역은 1980년대 초반 상서각에서 나온 대화편에 포함돼 나온 적이 있다. 서광사판 희랍 고전 번역 근간 목록에 포함돼 있지만 아직은 감감 무소식이다. 이번에 나온 민지사판은 역자가 "영어판과 일어판을 기초로 비교 대조해 가며" 옮긴 중역본이다. 역자는 <고르기아스>, <프로타고라스>, <파이드로스> 세 권을 묶어서 '소크라테스의 스피치 철학'이라고 부른다. <고르기아스>를 스피치 철학, 혹은 소피스트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소개한 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또한 일종의 '도전'이라면 번역의 차원에서도 철학계의 발빠른 응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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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29 21: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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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30 00: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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