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각 매체마다 책읽기에 유난한 관심들을 보이고 있다. 경향신문의 '사회적 독서' 운동에 이어서 한국일보에서는 '우리시대의 명저 50' 시리즈를 연재한다고 한다. '명저'라고는 돼 있지만 목록을 보면, 당대의 베스트셀러들도 많이 망라돼 있다. '명저'라는 게 이름이 널리 알려진 책이란 뜻도 갖는다는 점을 고려한 듯싶다. 아무튼 이 50권에 대한 해제가 다 게재되면 올 한해도 다 가는 게 아닌가 싶다(하냥 섭섭할까?). 50권의 면면들을 구경해볼까라는 '무모한' 욕심도 품어봄 직하지만, 이미 펌글에 도서(상품) 이미지를 집어넣지 말도록 재차 당부를 받은 터라 자제하기로 한다(이러한 펌글도 가급적 자제할 예정이다). 맨숭맨숭하긴 하지만, 목록만을 한번 일람해보는 것으로 '책구경'을 대신해야겠다(시간이 남아서 좋긴 하군).  

한국일보(07. 01. 04) 우리시대의 명저 50

우리 저술의 숲은 건강하고 우람했다. 지성의 숲을 거니는 일은, 굳이 한 그루 한 그루의 결을 더듬고 껴안아보지 않고서도, 황홀하고 뿌듯했다. 책의 전문가들이 전해온 목록의 갈피에서 밀려오던 희열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또 저자와 책이 갖는 이름의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기획팀은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 고통마저도 행복했다.

추천ㆍ자문단과 기획팀은 선행 연구로 불모의 땅을 일군 선구적 저서와 학문적으로 고전의 무게를 지닌 책, 지식 대중화를 선도한 책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또 특정 저서의 가치 못지않게 해당 저자가 우리 지성사에 미친 영향을 높이 산 경우도 있다. 시대적 담론과 이슈의 중심에 섰던 문제적 저작들도 놓치지 않으려고 고심했다.

식민지 사관과 실증 사학을 넘어 지배집단의 교체라는 독자적 사관으로 한국사를 정립한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고난의 역사를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로 나아가고자 했던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서양 신학과 전통 종교사상을 대비하며 우리 문화의 보편적 소통의 가능성을 탐색한 유동식의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 재야 학자로서 학문적 엄밀성과 함께 역사의 빈틈을 성실히 메워준 이이화의 <한국사이야기>, 서양고대철학 연구의 수원지로 여전히 마를 기미 없이 푸르게 출렁이는 박홍규의 <희랍철학논고>, 우리 역사에서 ‘자생적 근대화론’ ‘자본주의 맹아론’의 학술적 근거를 실증해 그 문제 의식을 지금까지 이어온 김용섭의 <조선후기 농업사 연구>, 해당 분야에서 아직도 이들의 업적을 넘어서는 저작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는 김두종, 전상운, 김용준, 유민영 등의 노작들이 그렇게 선정됐다.

암울한 군사독재의 억압을 뚫고 비판적 저널리즘의 시각에서 지성의 균형점을 잡아준 리영희, 1980년대의 질곡에 <민중신학>이라는 독보적인 신학적 응답을 제시했던 안병무, <전태일 평전>으로 1970년대와 80년대 변혁운동의 맥을 이어준 조영래, 마당극이라는 전통 연희의 현대적ㆍ변혁적 연구와 실천으로 당대 문화의 큰 정신을 구축했던 채희완, 억압의 시절을 몸으로 살았고 몸의 고백으로 시대를 움직인 서준식 정수일 홍세화의 저작들도 놓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명저로 꼽혔다.

경제학이 강단을 벗어나 어떻게 현실과 만날 수 있는지를 가슴으로 보여준 정운영의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 고도의 과학 전문 연구분야를 대중적 글쓰기로 선도한 최재천의 <개미 제국의 발견>, 20세기 신화 열풍을 주도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동양미술의 오주석, 서양미술의 이주헌, 한시의 정민, 미학의 진중권 등은 인문학 대중화의 전범으로 꼽혔다. 또 우리 글과 우리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을 아프게 일깨운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쓰기>, 우리 문학의 오랜 딜레마였던 ‘근대’의 숙제를 성실히 풀고자 한 김윤식 김현의 <한국문학사> 등도 목록에 들었다.

기획팀의 어두운 눈과 선택의 편의로 막판에 누락된 소중한 책들도 수두룩하다. 이들 책에 대한 응당한 예우는 눈 밝은 독자들의 몫으로 넘기고자 한다. 우리는 저자들이 먼저 닦은 저 편한 길을 최대한 힘들여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고자 한다. 인문학을 사랑하는 지성의 독자들과 함께.

● 추천 위원 기고: 무엇이 책을 숨쉬게 하는가

광복 이후 '나라 세우기'와 상응하는 '학문의 토대 쌓기'는 광복 직후의 혼란상과 한국전쟁의 상흔 탓에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김두종의 <한국의학사>, 김원룡의 <한국미술사>, 전상운의 <한국과학기술사> 등이 대표적이다. 수용자, 즉 독자 측면에서 보면 60년대는 전집 출판의 전성기였다. 외판원에게 구입한 문학이나 사상 전집을 거실에 꽂아두는 허영심이 팽배했으나, 그 허영심이란 바꿔 말하면 일종의 지적 허기이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의 60년대는 배만 고팠던 게 아니다.

특기할 만 한 것은 1970, 71년에 나온 김용섭의 <조선후기 농업사 연구>다. 이 책은 우리 역사에서 내발적(內發的) 근대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인문학과 사회과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고 김현, 김윤식의 <한국문학사>도 김용섭의 연구 성과에 크게 자극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70년대는 근대화의 기치 아래 개발 독재와 정치적 억압으로 점철된 시대였고, 출판과 책도 그러한 시대 상황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나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사회과학의 시대로도 불리는 1980년대에는 좌파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많은 지식인들이 정당성 없는 권력의 폭압적 전횡에 맞서며 새로운 사회를 꿈꾸었다. 한완상의 <민중사회학>, 이진경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등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되찾은 우리 글과 말로 토대를 쌓고 틀을 짓는 시기, 어떤 의미에서는 각 분야에서 개척자적 노력이 요구되었던 시기가 1950, 60년대라면 1970, 80년대는 학문과 출판과 책이 시대와 현실의 요청에 충실히 응답하려 했던 시기다. 무너뜨려야 할 우상도, 싸워야 할 대상도, 이뤄야 할 목표도 분명했던 시대, 그래서 일종의 전선(戰線) 시대라 칭해도 좋을 그런 시대였지만 1990년대가 되면서 전선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잃은 것은 전선이었고 얻은 것은 다양성이었다. 우리 출판과 책의 지형도는 매우 다채로워진 것은 물론 훨씬 더 독자 지향적으로 바뀌었다. 개성 넘치는 문장 스타일, 입말에 가까운 글쓰기, 엄숙한 강의가 아니라 정겨운 수다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저자들이 부각됐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 <미학 오디세이>의 진중권이 그러했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윤기가 그러했다.

최근 들어와 많은 이들이 책을 걱정한다. 그들이 보기에 독자들은 더 이상 책의 존엄을 경외하지 않는다. 어떤 주제의 얼개와 뜻을 깊이 파고드는 책은 좀처럼 환영 받지 못한다. 책의 위기, 책의 죽음까지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출판과 책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책은 위기였다. 다만 위기 속에서도 시대의 중추를 정확히 건드리며 한 획을 그은 소수의, 아니 극소수의 책들이 있었기에 책의 역사는 단절되지 않았다.(표정훈 출판평론가)

07. 0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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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1-04 09:41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
'강만길 등'이라는 표현이 눈에 띄네요. ㅎ 사실 '외'라는 표현은 참여한 학자들의 이름을 생각해봐도 너무 '소외'시키는 것 같아요. 앞으로 공저는 '등'으로 표현하면 좋을 것 같아요.
ㅋ 근데 고미숙 선생의 책이라니! 재미는 물론 있지만, 결국 연암의 글은 '우리시대'가 될 수 없다는 걸까요.
'우리시대'라는 것으로 묶으려는 시도는, 항상 '우리'라는 게 누구일까 궁금하게 합니다.

로쟈 2007-01-04 10:28   좋아요 0 | URL
이건, 말 그대로 우리시대(동시대) 저자들이 산출해낸 책들을 가리키는데요. 해방이후 현재까지...

biosculp 2007-01-04 18:23   좋아요 0 | URL
죽 보니 읽거나 가지고 있는 책이 21권이군요.
개인적으로는 김용옥, 정운영, 최장집 책이 제일 애착이 가는데

로쟈 2007-01-04 18:57   좋아요 0 | URL
저도 절반 조금 못 미치는 정도군요. 90년대 이후의 책들이 목록의 절반 가량인데, 좀 과대평가된 건 아닌가란 생각도 듭니다. 보다 직접적인 의미의 '우리시대'이긴 하나 선자들의 연령대가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작년인가 한 일간지에서 '제3의 문화'의 주창자 브록맨이 이끌고 있는 엣지(Edge) 재단의 저널 '디 엣지'의 신년 설문을 크게 다룬 적이 있다. 작년의 물음은 "당신의 위험한 생각은 무엇인가?"였는데, 경향신문의 기사를 보니까 올해의 질문은 "당신은 무엇을 낙관하는가? 왜?"이다. 기사의 타이틀은 "25년 안에 종교-미신 힘 못 쓴다"라고 돼 있는데, 역시나 과학자들이 현실에 대해서 대체적으로 좀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듯하다. 우리에게 친숙한 과학자들의 이름이 보이고(친숙한 이름들 중에 누락된 것도 여럿 된다), 일부의 주장은 서로 상충되기에 흥미롭다. 연초부터 잿빛 전망들에 다소 우울한 독자들이라면 이 '올해의 질문'에 답해보면서 기운을 좀 내보는 것도 좋겠다.

 

 

 

 

경향신문(06. 01. 03) "25년 안에 종교·미신 힘 못쓴다”

'앞으로 25년 안에 종교와 미신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전쟁과 자폐증은 사라지고 100살이 넘어서도 활동적으로 사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닌 날이 도래할 것이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인터넷 잡지 ‘디 엣지(The Edge)’가 과학자와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당신이 낙관하는 것은?’이라고 물은 데 대한 답변들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같은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에 대해 “TV나 인터넷을 통한 정보획득이 더 손쉽게 이뤄지고 과학자들이 모든 현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는 최종이론 발견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엣지는 사회·자연과학자 집단인 제3의문화 회원들을 대상으로 매년 ‘올해의 질문’을 던진 뒤 1월1일 홈페이지(www.edge.org)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157명의 사계의 권위자들이 답변했다(*답변자는 더 늘어나서 최종적으론 160명이다). 이들이 쏟아낸 주제는 물리학의 초끈이론, 정보, 인구증가, 암, 기후, 22세기, 과학의 미래, 고등교육의 세계화, 우정 등 다양했다. 엣지는 과학자나 과학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은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진다는 전통적인 생각과 달리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이 종식되고 폭력이 감소할 것이라는 데에 일부 학자들은 공감을 표시했다. 반면 모든 현상을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는 최종이론에 대해서는 과학들간에 의견이 엇갈렸다. “최상의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강조한 심리학자의 진단은 곱씹을 만하다. 대표적인 답변들을 요약해 소개한다.

◇“종교에 대한 경외심 증발”(다니엘 데니트/철학자)=앞으로 25년 안에 종교는 현재와 같은 경외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통한 정보의 확산은 종교에 대한 광신적인 믿음과 편견을 낳는 사고방식들을 서서히, 그리고 저항할 수 없게 허물어버릴 것이다.

◇“폭력의 감소”(스티븐 핀커/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20세기의 피로 얼룩진 역사로 고통받은 많은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주장이라고 하지만, 그동안의 연구를 보면 조직적인 폭력사태는 하향국면에 접어들었다.

◇“자폐증과 디지털 시대의 부상”(사이먼 바론 코언/케임브리지대 심리학 교수)=자폐증이 증가추세이긴 하지만 미래는 낙관적이다. 상당 비율의 자폐증은 역대 최상의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혁명으로 컴퓨터가 등장한 것은 1953년이다. 많은 아이들이 컴퓨터를 갖게 된 것은 불과 54년이 지난 후이다. 디지털시대는 자폐 심리와도 놀라울 정도로 조화를 이룰 것이다. 다른 어린이들이 사람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를 키워가는 것처럼 많은 자폐아동들도 컴퓨터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를 키워나갈 것이다.

◇“100살이 넘도록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살 것”(리오 차루파/UC데이비스대 신경생물학 교수)=21세기 중반에는 100살이 넘는 사람들이 활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도 특별한 일이 아닐 것이다. 세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선진국의 수명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나머지 둘은 생명을 연장할 수 있도록 세포 기능을 통제할 수 있고, 손상된 뇌 부위를 재생할 수 있는 생명의학 분야의 발전에 따른 것이다.

◇“에너지 도전”(마틴 리즈/영국왕립연구소 소장)=몇년 전 쓴 ‘우리의 마지막 세기’라는 책에서 파괴적인 퇴보없이 2100년을 버틸 수 있는 문명은 50%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 더 비관적이었으며 그후 나는 낙관주의자가 됐다. 사실 기술적 낙관주의자의 근거는 많다. 하지만 개도국이든 선진국이든 청정하고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 과학의 최우선 과제이다.

◇“올바른 선택이 지배할 것”(자레드 다이아몬드/UCLA 생물학자)=현 상황에 대해 낙관적인 데 이유는 두가지이다. 첫째는 대기업이 장기적으로 인류의 미래에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이 결국 이익이 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며, 민주주의 하에서 유권자들은 나쁜 선택보다는 올바른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진보”(샘 해리스/신경과학 연구자)=끊이지 않는 모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도덕성 부분에 있어서는 명백한 진보를 이뤄왔다. 우리의 감정이입 능력은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인류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할 상황에 있다.

◇“우정은 생존한다”(주디스 리치 해리스/이론가)=우정에 대해 일부는 비관적이지만 우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정은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할 뿐이다. 사람들은 서로 사귀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볼링을 같이 할 친구는 찾기 힘들어도 대화할 상대는 찾기 쉽다. 대화하는 방법은 많기 때문이다.

◇“최상은 아직 아니다”(니컬러스 험프리/런던정경대 심리학자)=나는 1007년에 살았다 하더라도 모차르트 음악이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미리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예술적 재능은 항상 우리를 놀라게 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2007년인 지금 나는 최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믿는다. 어느 시대도 경험하지 못한 예술의 위대한 작품은 항상 우리 미래에 오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의 낙관주의”(리처드 도킨스/옥스포드대 진화생물학자)=물리학자들이 아인슈타인이 꿈꿔온 물리학의 근본이론을 하나로 통합하는, 모든 것을 관장하는 최종이론을 발견할 것으로 낙관한다. 또 과학을 통한 각성은 기존의 종교와 새로 생겨나고 있는 종교에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최후의 일격을 가할 것이이다.

◇“최종이론은 성취 못할 것”(프랭크 윌첵/MIT 물리학교수·200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물리학은 모든 현상을 하나로 설명하는 최종이론을 규명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라면 최종이론은 매력적이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리를 놀라게도, 가르치지도 않는다는 것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이 우리를 계속 환상적이고도 근본적인 방법으로 놀라게 만들 것으로 여긴다.(조찬제 기자)

The Edge Annual Question — 2007

WHAT ARE YOU OPTIMISTIC ABOUT? WHY?

As an activity, as a state of mind, science is fundamentally optimistic. Science figures out how things work and thus can make them work better. Much of the news is either good news or news that can be made good, thanks to ever deepening knowledge and ever more efficient and powerful tools and techniques. Science, on its frontiers, poses more and ever better questions, ever better put. What are you optimistic about? Why? Surprise us!

몇몇 학자들의 답변을 전문 인용한다.

Daniel C. Dennett

The Evaporation of the Powerful Mystique of Religion

I’m so optimistic that I expect to live to see the evaporation of the powerful mystique of religion. I think that in about twenty-five years almost all religions will have evolved into very different phenomena, so much so that in most quarters religion will no longer command the awe it does today. Of course many people–perhaps a majority of people in the world–will still cling to their religion with the sort of passion that can fuel violence and other intolerant and reprehensible behavior.  But the rest of the world will see this behavior for what it is, and learn to work around it until it subsides, as it surely will.  That’s the good news. The bad news is that we will need every morsel of this reasonable attitude to deal with such complex global problems as climate change, fresh water, and economic inequality in an effective way. It will be touch and go, and in my pessimistic moods I think Sir Martin Rees may be right: some disaffected religious (or political) group may unleash a biological or nuclear catastrophe that forecloses all our good efforts. But I do think we have the resources and the knowledge to forestall such calamities if we are vigilant.

Recall that only fifty years ago smoking was a high status activity and it was considered rude to ask somebody to stop smoking in one’s presence. Today  we’ve learned that we  shouldn’t make the mistake of trying to prohibit smoking altogether, and so we still have plenty of cigarettes and smokers, but we have certainly contained the noxious aspects within quite acceptable boundaries.  Smoking is no longer cool, and the day will come when religion is, first, a take-it-or-leave-it choice, and later: no longer cool–except in its socially valuable forms, where it will be one type of allegiance among many. Will those descendant institutions still be religions?  Or will religions have thereby morphed themselves into extinction?  It all depends on what you think the key or defining elements of religion are. Are dinosaurs extinct, or do their lineages live on as birds?

Why am I confident that this will happen?  Mainly because of the asymmetry in the information explosion.  With the worldwide spread of information technology (not just the internet, but cell phones and portable radios and television), it is no longer feasible for guardians of religious traditions to protect their young from exposure to the kinds of facts (and, yes, of course, misinformation and junk of every genre) that gently, irresistibly undermine the mindsets requisite for religious fanaticism and intolerance. The religious fervor of today is a last, desperate attempt by our generation to block the eyes and ears of the coming generations, and it isn’t working. For every well-publicized victory–the inundation of the Bush administration with evangelicals, the growing number of home schoolers in the USA, the rise of radical Islam, the much exaggerated “rebound” of religion in Russia following the collapse of the Soviet Union, to take the most obvious cases–there are many less dramatic defeats, as young people quietly walk away from the faith of their parents and grandparents.  That trend will continue, especially when young people come to know how many of their peers are making this low-profile choice.  Around the world, the category of “not religious” is growing faster than the Mormons, faster than the evangelicals, faster even than Islam, whose growth is due almost entirely to fecundity, not conversion, and is bound to level off soon.

Those who are secular can encourage their own children to drink from the well of knowledge wherever it leads them, confident that only a small percentage will rebel against their secular upbringing and turn to one religion or another.  Cults will rise and fall, as they do today and have done for millennia, but only those that can metamorphose into socially benign organizations will be able to flourish.  Many religions have already made the transition, quietly de-emphasizing the irrational elements in their heritages, abandoning the xenophobic and sexist prohibitions of their quite recent past, and turning their attention from doctrinal purity to moral effectiveness.  The fact that these adapting religions are scorned as former religions by the diehard purists shows how brittle the objects of their desperate allegiance have become.  As the world informs itself about these transitions, those who are devout in the old-fashioned way will have to work around the clock to provide attractions, distractions—and guilt trips—to hold the attention and allegiance of their children.  They will not succeed, and it will not be a painless transition. Families will be torn apart, and generations will accuse each other of disloyalty and worse: the young will be appalled by their discovery of the deliberate misrepresentations of their elders, and their elders will feel abandoned and betrayed by their descendants.  We must not underestimate the anguish that these cultural transformations will engender, and we should try to anticipate the main effects and be ready to provide relief and hope for those who are afflicted.

I think the main problem we face today is overreaction, making martyrs out of people who desperately want to become martyrs.  What it will take is patience, good information, and a steady demand for universal education about the world’s religions.  This will favor the evolution of avirulent forms of religion, which we can all welcome as continuing parts of our planet’s cultural heritage. Eventually the truth will set us free.

Steven Pinker

The Decline of Violence

In 16th century Paris, a popular form of entertainment was cat-burning, in which a cat was hoisted on a stage and was slowly lowered into a fire. According to the historian Norman Davies, "the spectators, including kings and queens, shrieked with laughter as the animals, howling with pain, were singed, roasted, and finally carbonized."

As horrific as present-day events are, such sadism would be unthinkable today in most of the world. This is just one example of the most important and under appreciated trend in the history of our species: the decline of violence. Cruelty as popular entertainment, human sacrifice to indulge superstition, slavery as a labor-saving device, genocide for convenience, torture and mutilation as routine forms of punishment, execution for trivial crimes and misdemeanors, assassination as a means of political succession, pogroms as an outlet for frustration, and homicide as the major means of conflict resolution—all were unexceptionable features of life for most of human history. Yet today they are statistically rare in the West, less common elsewhere than they used to be, and widely condemned when they do occur.

Most people, sickened by the headlines and the bloody history of the twentieth century, find this claim incredible. Yet as far as I know, every systematic attempt to document the prevalence of violence over centuries and millennia (and, for that matter, the past fifty years), particularly in the West, has shown that the overall trend is downward (though of course with many zigzags). The most thorough is James Payne’s The History of Force; other studies include Lawrence Keeley’s War Before Civilization, Martin Daly & Margo Wilson’s Homicide, Donald Horowitz’s The Deadly Ethnic Riot, Robert Wright’s Nonzero, Peter Singer’s The Expanding Circle, Stephen Leblanc’s Constant Battles, and surveys of the ethnographic and archeological record by Bruce Knauft and Philip Walker.

Anyone who doubts this by pointing to residues of force in America (capital punishment in Texas, Abu Ghraib, sex slavery in immigrant groups, and so on) misses two key points. One is that statistically, the prevalence of these practices is almost certainly a tiny fraction of what it was in centuries past. The other is that these practices are, to varying degrees, hidden, illegal, condemned, or at the very least (as in the case of capital punishment) intensely controversial. In the past, they were no big deal. Even the mass murders of the twentieth century in Europe, China, and the Soviet Union probably killed a smaller proportion of the population than a typical hunter-gatherer feud or biblical conquest. The world’s population has exploded, and wars and killings are scrutinized and documented, so we are more aware of violence, even when it may be statistically less extensive.

What went right? No one knows, possibly because we have been asking the wrong question—"Why is there war?" instead of “Why is there peace?" There have been some suggestions, all unproven. Perhaps the gradual perfecting of a democratic Leviathan—"a common power to keep [men] in awe"—has removed the incentive to do it to them before they do it to us. Payne suggests that it’s because for many people, life has become longer and less awful—when pain, tragedy, and early death are expected features of one’s own life, one feels fewer compunctions about inflicting them on others. Wright points to technologies that enhance networks of reciprocity and trade, which make other people more valuable alive than dead. Singer attributes it to the inexorable logic of the golden rule: the more one knows and thinks, the harder it is to privilege one’s own interests over those of other sentient beings. Perhaps this is amplified by cosmopolitanism, in which history, journalism, memoir, and realistic fiction make the inner lives of other people, and the contingent nature of one’s own station, more palpable—the feeling that "there but for fortune go I."

My optimism lies in the hope that the decline of force over the centuries is a real phenomenon, that is the product of systematic forces that will continue to operate, and that we can identify those forces and perhaps concentrate and bottle them.

Jared Diamond

Good Choices Sometimes Prevail

I am cautiously optimistic about the state of the world, because: 1. Big businesses sometimes conclude that what is good for the long-term future of humanity is also good for their bottom line (cf. Wal-Mart's recent decision to shift their seafood purchases entirely to certified sustainable fisheries within the next three to five years). 2. Voters in democracy sometimes make good choices and avoid bad choices (cf. some recent elections in a major First World country).

Richard Dawkins

The Final Scientific Enlightenment

I am optimistic that the physicists of our species will complete Einstein's dream and discover the final theory of everything before superior creatures, evolved on another world, make contact and tell us the answer. I am optimistic that, although the theory of everything will bring fundamental physics to a convincing closure, the enterprise of physics itself will continue to flourish, just as biology went on growing after Darwin solved its deep problem. I am optimistic that the two theories together will furnish a totally satisfying naturalistic explanation for the existence of the universe and everything that's in it including ourselves. And I am optimistic that this final scientific enlightenment will deal an overdue deathblow to religion and other juvenile superstitions.

07. 0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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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7-01-03 09:19   좋아요 0 | URL
음냐 뭐랄까. 저는 데넷은 철학자로서, 사회 철학의 지점에서는 데리다나 지젝이 보다 급이 '떨어지는'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물론 개설서 정도 읽어본 수준이지만...

하이데거의 66년 슈피겔 지와의 대담과 입장이 전혀 딴판이군요.

로쟈 2007-01-03 09:23   좋아요 0 | URL
데닛은 소위 '강한' 인지주의를 대표하고, 그런 입장에서 보자면 '종교-미신 종언론'은 그다지 새로운 게 아니라고 봅니다(마르크스의 예언은 어떤가요?). 그리고 물론 그는 '사회철학자'가 아니죠.^^

자꾸때리다 2007-01-03 10:05   좋아요 0 | URL
아. 리플을 지우려고 했는데 그새 다셨네요..ㅡㅡ; 데넷은 사회철학자가 아니죠. 다만 제 생각에는 데넷의 입장들 중에 사회적 함축을 띄고 있는 것들이 그렇다는 것이죠... 특히 'Darwin's dangerous idea'에 담긴 주장 중에는 사회 철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주장들이 있지 않나요? 부분 부분 읽어보기만 했지만...


전 별로 데넷에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인지라...
 

책장에서 그냥 눈에 띄길래 랭보의 시집 한권을 꺼내들었다. 랭보의 시집들과 관련서들은 대개 박스에 들어가 있고 달랑 남아있는 건 함유선 번역의 <나쁜 혈통>(밝은세상, 2005)과 펭귄판의 불역 대역본 시선집뿐이다. 거기에 러시아어로 된 프랑스 상징주의 시선집이 어딘가 꽂혀 있을 것이다. 짐작에 랭보의 시집은 최소한 대여섯 종류의 번역본이 출간돼 있다. 내가 갖고 있는 건 세 종 정도인 듯한데, 당장 곁에 있는 건 함유선본뿐이다. 거기에 피에르 프티필의 전기 <랭보, 지옥으로부터의 자유>(홍익출판사, 2001)를 손가락으로만 꼽아두고 있다. 사실 말라르메와 함께 가장 난해하고 손꼽히는 이 '천재 시인'을 간혹 읽어보려고 하는 것은 크리스테바의 <시적 언어의 혁명>(동문선, 2000)을 읽기 위함이다.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한 이유는 된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서시를 읽다가 문득 자료라도 모아놓자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리뷰를 일단 옮겨놓는다. 전기 <랭보>에 관한 것이다.

 

 

 

 

북데일리(06. 06. 16) 무서운 어머니 때문에 비뚤어졌던 시인?

“정말 참을 수 없는 건 참을 수 없는 게 없다는 것이야.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날 생각하는 것이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미소년적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영화 ‘토탈 이클립스’에 나오는 대사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호연을 통해 천재시인이라 불렸던 랭보(1854~1891)의 여러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 랭보의 삶과 알려지지 않은 가족사, 성장배경을 다룬 <랭보, 지옥으로부터의 자유>(홍익출판사. 2001)에 의하면 랭보는 어릴 때부터 천재적인 문학성을 보였다.

“우리들 중 누군가가 기하학정리 몇 개를 증명하는 동안, 랭보는 라틴시 몇 편을 순식간에 해치우곤 했어요. 그것들 모두 재기 넘치는 것이었죠. 제목은 똑같았어요. 하지만 시구의 표현양식과 사상 논지의 전개가 아주 달랐기 때문에 선생님은 한사람의 손으로 씌어진 것인 줄 몰랐지요. 그가 거기에 바친 시간에 비하면 정말 곡예와 같은 솜씨였어요. 이런 일이 꽤 자꾸 있었지요. 이건 보증할 수 있어요”

랭보와 함께 학습했던 학우의 고백은 그의 천재적 문학성을 드러낸다. 그는 실제로, 수학과 기하학에 매우 둔했으며 (거의 보통사람의 수준에도 못 미칠 정도였다) 관심도 거의 갖지 못했다. 그러나 문장을 만들 때만큼은 독창적인 어휘들로 채우기 위해 집요한 노력과 발상을 아끼지 않았다.

랭보의 어머니는 난폭할 정도의 자기주장과 독선과 아집을 가진 여성이었다. 지독한 보수주의자로 이웃들과의 싸움을 쉬지 않고 자행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는 시인 베를렌느앞에서도 자신의 아들 랭보의 따귀를 때리는 일을 서슴지 않았으며, 그를 뒤쫓고 감시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어머니의 훈육방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칠고 엄격했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였던 랭보의 어머니는 남편의 부재가 주는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자녀교육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나 이런 관심은 랭보를 더욱 비뚤어 나가게 만든 요인이 될 뿐이었다.

“일이라는 게 대체 뭐야, 내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것은 다 파괴하고, 다 지워버려야 해, 아! 담벼락 구석에 버려져서 아무렇게 자라고, 어른이 되어서나 선생들이나 가족이 주입한 관념이라곤 전혀 없는 아이는 행복하겠어! 새롭고, 순수하고, 원칙도 관념도 없으니까. 사람들이 우리한테 가르친 것은 모두다 거짓이니까 말이야! 자유로운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아이 말이야!”

랭보의 항변은 성장기에 겪었던 혼란과 고통을 여실히 보여준다. 저자 삐에르 쁘띠피스(쁘띠필?)는 랭보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정의 내리려 하지 않는다. 시대와 사랑, 가족과 철학과 세상 앞에서 느꼈던 랭보의 고통을 열어 보일 뿐이다. 3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랭보의 조부, 부모세대의 이야기, 형제, 그가 만났던 예술가들의 삶이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김민영 기자)

07. 01. 02.

P.S. 때로 아이를 시인으로 만드는 비결은 단순해보이기도 한다. "난폭할 정도의 자기주장과 독선과 아집을 갖고서 이웃들과 싸움을 쉬지 않고, 친구 앞에서도 아들의 따귀를 때리는 일을 서슴지 않기" 말이다. 물론 절반의 리스크는 감수해야 한다. 천재시인이 되거나 반항적인 패륜아가 되거나. 그 '지옥'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 말이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서두는 이렇다(따로 '서시'라 표기돼 있지는 않은 듯하지만, 서시의 역할을 하는 시이다). 원시와 영역시인데, 영역은 펭귄북에서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얻어왔다(대동소이하다).   

Jadis, si je me souviens bien, ma vie était un festin où s'ouvraient tous les coeurs, où tous les vins coulaient.
  Un soir, j'ai assis la Beauté sur mes genoux. - Et je l'ai trouvée amère. - Et je l'ai injuriée. 

  Je me suis armé contre la justice.
  Je me suis enfui. O sorcières, ô misère, ô haine, c'est à vous que mon trésor a été confié !
  Je parvins à faire s'évanouir dans mon esprit toute l'espérance humaine. Sur toute joie pour l'étrangler j'ai fait le bond sourd de la bête féroce.
  J'ai appelé les bourreaux pour, en périssant, mordre la crosse de leurs fusils. J'ai appelé les fléaux, pour m'étouffer avec le sable, avec le sang. Le malheur a été mon dieu. Je me suis allongé dans la boue. Je me suis séché à l'air du crime. Et j'ai joué de bons tours à la folie.
  Et le printemps m'a apporté l'affreux rire de l'idiot.
  Or, tout dernièrement, m'étant trouvé sur le point de faire le dernier
couac ! j'ai songé à rechercher la clef du festin ancien, où je reprendrais peut-être appétit.
  La charité est cette clef. - Cette inspiration prouve que j'ai rêvé !
  "Tu resteras hyène, etc..." se récrie le démon qui me couronna de si aimables pavots. "Gagne la mort avec tous tes appétits, et ton égoïsme et tous les péchés capitaux."
  Ah ! j'en ai trop pris : - Mais, cher Satan, je vous en conjure, une prunelle moins irritée ! et en attendant les quelques petites lâchetés en retard, vous qui aimez dans l'écrivain l'absence des facultés descriptives ou instructives, je vous détache des quelques hideux feuillets de mon carnet de damné.

  Once, if I remember well, my life was a feast where all hearts opened, where all wines flowed. 
  One night, I sat Beauty on my knees.—And I found her bitter.—And I reviled her. 
  I armed myself against justice. 
  I fled. O witches, o misery, o hate, to you my treasure was entrusted!
  I managed to vanquish all human hope from my spirit. So as to strangle every joy, I made the silent leap of a wild beast. 
  I called the executioners as I died in order to bite their rifle butts.I called on plagues to choke me with sand, blood. Misfortune was my god. I lay spread in the mud. I dried myself with the air of crime. And I played fine tricks on madness. 
  And spring brought me the appalling laugh of the idiot. 
  However, only lately, on the point of making my final squawk, I thought of seeking the key to the ancient feast, where I might take up my old appetite. 
  Charity is that key.—This inspiration proves I was dreaming! 
  “You’ll remain a hyena…” etc., cries the demon who crowned me with such pleasant poppies. 
  “Win death with all your appetites, and your selfishness, and all the deadly sins.” 
  Ah! I took too much:—But, dear Satan, I entreat you, an eye less inflamed! and while we wait on some little, late cowardice, you who love the absence of descriptive or instructive faculties in a writer, let me tear out some hideous pages from this notebook of a damned soul.

 

  오래전, 기억해보면, 내 삶은 축제였다, 누구나 마음 열었고 온갖 술 흘러넘쳤다.

  어느날 저녁 난 아름다운 여인을 무릎에 앉혔다. 그녀가 고약한 것을 깨달았다. 욕을 퍼부어주었다.

  나는 정의에 대비했다.

  나는 도망쳤다. 오 마녀여, 오 불행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을 너희에게 맡겼노라!

  나는 마침내 정신 속에서 인간의 희망 몽땅 사라지게 했다. 그 목을 비트는 데 즐거움을 느껴, 나는 사나운 짐승처럼 음험하게 껑충껑충 뛰었다.

  나는 죽어가면서 사형 집행인을 불러 그들의 총 자루 물어뜯으려고 했다. 나는 재앙을 불러 피와 모래에 질식했다. 불행은 나의 신이었다.

  나는 진흙 속에 누웠다. 나는 범죄의 바람에

  몸을 말렸다. 나는 광기를 잘 속여넘겼다.

  봄은 내게 백치의 웃음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엉뚱한 소리 내려는 순간에! 난 옛 축제의 열쇠를 찾으려 했다. 어쩜 욕망도 되찾을지 모른다.

  자비가 그 열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내가 전에 꿈을 꾸었나보다.

  “저는 하이에나로 남으리...” 아주 멋진 양귀비꽃 관을 나에게 씌어준 악마가 외친다.

  “네 욕망과 이기주의와 죄악 모조리 짊어지고 죽어라.”

  아! 난 너무나 많은 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탄이여, 정말 간청하니, 화를 좀 내지 마시라! 뒤늦게 몇 가지 비겁한 짓을 기다리며, 작가에게 묘사하고 훈계하는 능력이 부족한 점을 사랑하는 당신, 나 그대에게 내 저주받은 자의 수첩에서 보기 흉한 몇 장을 떼어내준다.(함유선 옮김)  

 

07. 01. 02 - 07.

 

P.S. 번역문을 옮겨놓은 다음에 몇 자 적어볼까해서 쁘띠피스의 전기를 구입했다. 한데 유감스럽게도 이 두툼한 전기에 색인이 붙어 있지 않아서 인용시나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일일이 뒤적거려 보아야 하게끔 돼 있다. 그럴 여유가 없는지라 랭보에 대해서 몇 자 적는 일은 다음 기회로 미뤄둔다. 본문 인용기사에서도 암시되고 있지만, 나의 관심은 랭보와 그의 어머니 사이의 관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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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일들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까 생각하던 중에 장문의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었다. 한국일보에 '100℃ 인터뷰' 코너가 새로 생긴 모양인데(원래 있었나?) 소설가 공지영과의 아주 '뜨거운' 인터뷰를 싣고 있다(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01/h2007010119334584290.htm). 아침신문에 게재될 듯한데, 이만한 분량이 전재된다는 게 일단 놀랍다. 지난해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인 만큼 안티독자들도 많이 거느리고 있는 '문제적인' 작가 공지영의 세계를 들여다 보는 데 아주 요긴한 '창' 구실을 할 듯해서 옮겨놓는다(강조는 나의 것이다). 기사 원문은 아직 정리가 덜 된 상태인 듯한데, 부분적으로 발췌하도록 한다(어쩐지 너무 길다 싶었다). 아무래도 아침에 기사를 읽고서 다시 정리해야겠다... 

유치원 방학중인 아이를 앞동 외갓집에 데려다주고 학교에 나가는 대신에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깎았다. 그리고는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한국일보를 사들고 왔다(스포츠와 경제신문 말고는 한국일보만 달랑 한 부가 남아 있었다). 역시나 파격적인 분량의 인터뷰가 양면에 게재돼 있었는데, 다시 역시나 전문이 전재된 건 아니었다. 나머지는 한국아이닷컴을 참조하라고 돼 있는데, 인터넷주소는 앞에 적어놓았다. 온라인상의 인터뷰에는 중복되는 대목들이 많아서 일단 오프라인의 기사를 바탕으로 정리를 해두도록 한다. 정초부터 왜 이런 일을? 다들 '행복'을 바라는 신년이므로 작년에 가장 행복했던 작가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어보는 것도 무용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또 어찌 알겠는가? 그 비결이라도 전수받을 수 있을지...

한국일보(07. 01. 02) 소설가 공지영

이 만남은 뜨겁다. 덕담이나 입에 발린 말은 사양한다. 까칠하게 묻고 집요하게 말꼬리 잡는다. 새해를 맞아 한국일보가 논란과 화제의 중심에 서있는 사회 각계 인물들을 찾아가 그들의 생생한 모습을 파헤치는 다자(多者) 입체 인터뷰를 선보인다. 한 무리의 기자들이 치열하게 묻고 따지는 반론과 해명의 이 펄펄 끓는 현장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편집자주

아주 좋거나 아주 싫거나! 그 중간은 없다.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소설가 공지영(44)씨. 어지간히 잘 나가는 작가도 1만부를 넘기기 어려운 문학의 장기 침체 속에서 홀로 78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 그에게는 작품 외에도 늘 다양한 이미지가 따라붙는다. 운동권, 페미니스트, 미모, 세 번의 이혼, 성이 다른 세 아이를 기르는 '싱글맘'…. 공지영이라는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저 단어들로 인해 오해와 편견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그를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네 명이 만났다. 지난해 12월28일 오후 6시, 홍대앞 한 퓨전식당에서 시작된 이 까칠하고도 뜨거운 인터뷰는 술잔을 기울이며 자정을 넘겨서까지 계속됐다.

_<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덕분에 지난 한 해가 ‘나의 행복한 시간’이었겠어요.

“네. 당분간 생활비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그게 제일 행복하고요. ‘사형제 폐지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작가로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어요.

_불편한 반응들도 있지 않아요?

“많죠. 반은 그렇다고 보면 돼요. 참 이상한 게 그런 리뷰들은 대개 ‘나는 공지영이 너무 싫다’로 시작하는데 끝에 가면 ‘그런데 책은 다 읽었다’ 이렇게 끝나.(웃음) 이게 되게 이상한 현상인 거 같아요. 처음엔 ‘왜 나를 미워하지? 싫으면 안 읽으면 되지 왜 다 읽고, 여기다 리뷰까지 달면서 날 미워할까’ 생각했는데, 뭐 어차피 대중들의 시각이란 게 완벽하게 일치하는 게 이상한 거죠. 어쨌든 저야 팔아주시니까 고맙죠. "

_78만부나 팔았으면 죽을 때까지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겨우 생활비 걱정 면한 건가요.

“아니, 얼마 전까지 생활비 걱정 했다니까 왜 그래요.(웃음) 막내 대학까지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며 밤마다 울었다니까요.”

_한 달 수입이 30만~50만원도 안 되는 작가들도 많은데 그렇게 말하면 다른 작가들 맥빠지겠어요.

“맞아요. 좀 그렇긴 하죠. 하지만 다 사연이 있으니까 걱정이 된다는 거죠. 돈이라는 게 번대로 착착 쌓일 수도 없는 거고….”

_공지영 소설은 20대 여성이 가장 많이 읽잖아요. 젊은 세대와 통하는 게 있다는 얘긴데.

대학 때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중학교 때 전기가 처음 들어와서 감전된 적 있다’ 이런 얘기들을 막 하는데 너무 놀랐어요. 전 공선옥씨의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을 읽고 도무지 이해가 안 갔어요. ‘왜 대학까지 중퇴한 여자가 이런 데 가서 이 고생을 하지? 취직을 하든가 장사라도 하지’ 이해가 안 가요. 나중에 느꼈는데 60년대산들은 지역이 불균형하게 개발될 때다 보니까 지역별로 세대차가 막 나더라구요.

저는 우연히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경제개발의 혜택을 제일 먼저 입은 세대로 자라나서 초등학교 2학년 때 아파트로 이사를 갔어요. 바로 롤러스케이트 타고, 자전거를 탔죠. 당연히 TV도 봤고. 어떤 의미에서는 70년대 중반산들과 같은 경험을 가진 거예요. 아파트키드라는 거, 대도시적 감수성 가진 거. 문학소녀일 때는 대도시에 태어난 게 너무 창피했었어요. 그때 문학은 다 농촌정서 얘기하는데 나는 도저히 그게 무슨 얘긴지도 모르겠고, 그러면서 열등감을 느꼈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오히려 제 정서가 더 보편적이 된 거 같아요. 제가 잘 해서 선취한 것이 아니라 제가 자라온 환경이 그렇게 만든 거죠.”

_공지영씨의 좌파적 가치가 젊은 세대와 통하는 것 아닐까요.

“전 제가 좌파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어느날 토론에 나갔다가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낙태에 관해 기본적으로 반대입장 취하거든요. 그런데 ‘넌 좌파가 어떻게 낙태를 반대하느냐, 더군다나 페미니스트인데’ 하면서 굉장히 공격을 받았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가 정치적인 면에서만 좌파고 나머진 굉장히 보수적이더라구요.”

_예를 들면요?

“결혼 같은 거. 이거 웃긴 얘기지만, 남자와 여자는 꼭 결혼을 해야한다든가, 하하. 사람들이 왜 자꾸 결혼을 하냐고 물어서 제가 ‘아니, 사랑하면 결혼해야 되는 거 아냐?’ 그랬거든요. 물론 요즘 좀 생각이 바뀌었지만. 아무튼 그런 면에서 되게 보수적인데, 저는 사안에 따라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는 게 훨씬 더 고뇌에 차고 가치 있는 삶인 것 같아요. 좌파, 우파로 나누면 제가 어느 쪽인지 모르겠고, 최소한 상식과 합리가 있는 길을 가고 싶어요.”(*어느 쪽인지 모르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굴곡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생활우파의 삶을 살았고 관념적으로 자신이 좌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_운동은 왜 했어요?

“나 진~짜 운동하기 싫었어요. 안 하려고 엄청 애썼고. 그런데 왜 하필 나랑 친한 애들은 다 운동하고, 잡혀가고, 죽고 그러는지. 난 무섭고 귀찮고 싫고 피하고 싶었는데 운동하는 사람들이 너무 예쁜 거예요.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이상을 가장 근접해 실현하고 있었어요.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이쪽으로 따라갔죠.

또 하나는 안 하고 있으면 너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차라리 내가 가서 괴로움 당하는 게 낫지. 멀리서 남들 괴로워하는 거 보면서 마음 괴로운 거보다 몸으로 때우는 게 덜 괴로웠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거예요. 그것이 오늘날의 절 만드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죠. 만약 이 과정이 없었다면 저는 정말로 재수없는 부르주아 여성이 됐을 거예요. 전두환이라는 사람이 내 인생에 기여한 바가 참 많아요. 나를 정말 사람 만들어줬죠.

_사실 공지영 소설이 문체가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미학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니잖아요. 서사가 강해서 번역해도 잃을 게 하나도 없는데.

“전 소설을 대하는 입장이 동시대의 다른 문인들과 달라요. 그래서 이런 삐그덕거리는 일들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저는 문체가 아름답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그게 뭐예요, 도대체? 아름다운 단어를 써야 아름다운 문체인가요?

저는 처음부터 미사여구 쓰지 않고, 화려한 문체보다는 단문으로 이해하기 쉽게 쓰려고 했어요. 소설은 캐릭터와 상황의 문제예요. 중요한 건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하고, 그 캐릭터를 어떤 상황에 배치하는가죠. 사람들은 <춘향전>이나 <베니스의 상인>을 원전으로 읽지 않아도 춘향이와 샤일록이라는 캐릭터는 알아요. 제가 추구한 것은 삶의 본질, 인간성, 시대의 본질을 전달하는 거예요. 그래서 문체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 들었을 때 굉장히 당황했어요. 서사가 강한 게 뭘 그렇게 잘못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나는 소설이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항상 보면 ‘극단적인 캐릭터다’, ‘문체가 너무나 거칠다’ 이런 평들을 하니까. 왜 내가 추구하는 것들은 하나도 얘기 안 하죠?"

_<춘향전>이나 셰익스피어의 소설미학과는 다른 시대잖아요. 오히려 공지영의 소설이 낡았다는 얘기 아닌가요.

“문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서사의 회복과 캐릭터의 독특성이라는 정공법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현대 문학 중 가장 높이 평가하는 게 <해리 포터>인데, 이건 19, 20세기 정통 영국소설의 문법이거든요. 그 소설은 그렇게 책을 읽지 않는 애들로 하여금 책을 잡게 만들었어요. 서운할 때 드는 생각은 저라는 사람이 2000년대 대한민국에 있는 3만명의 소설가 중 하나인데 왜 나에게 이 모든 것을 원하냐는 거예요. 우리가 최민식 송강호 같은 배우들한테 ‘요즘 영화배우답지 않게 너희는 왜 그렇게 얼굴이 크냐’ 안 그러잖아요. 이나영, 강동원 같은 배우는 연기는 좀 못하지만 클로즈업 하면 우리가 즐겁고. 그런 게 다채로운 영화를 만들어가듯이 한국문학도 다양성 속에서 크게 아울러야 해요.”

_다양하게 아우를 수 있는 시장상황이면 좋지만 혼자서 책을 다 팔고 계시잖아요.

“다양하게 아우르지 않으니까 독자들이 자꾸 떨어져나가는지도 모르죠. 평론가들이 왜 그걸 포용을 못하는지, 포용의 문화가 좀 아쉬워요.”

_평론가들로부터 외면 받으면서 “넌 네 길을 가라, 난 내 길을 간다” 식이 돼버렸는데.

“그럼 내가 어떡해요. 그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할 수도 없는 거고. 상도 안 주는데 내가 왜 해.(웃음) 사실 보상이란 게 꼭 평론가들만이 주는 건 아니고, 제가 독자들한테 물질적이거나 심리적으로 보상받기 때문에 상관 없어요. ‘나는 왜 문학적으로 평가 받지 못하는 거야’ 그런 생각도 별로 안 하고. 이 시대의 평론가들, 상을 주는 심사위원들이 모든 문학을 끝까지 쥐고 있고, 앞으로도 쥘 수 있을지…, 아, 이렇게 자꾸 말하지 말라 그랬는데, 사람들이.(일동 웃음) 이러면 점점 멀어져서 돌이킬 수 없다는데.”

_상하고 인연은 진짜 없죠?

“세 번이면 됐죠. 이런 말해서 좀 그렇지만, 솔직히 이상, 동인 별로 존경하지도 않는데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받고 싶지 않아요.

_한국일보문학상이면?

“그건 괜찮아요. 가치중립적이니까. 근데 안 주잖아.”(웃음)

_얼마 전 라디오 설문조사에서 미녀배우들과 함께 ‘20대 여성이 뽑은 닮고 싶은 여성’ 4위에 올랐어요.

“하하하. 1위가 김혜수, 2위가 고현정, 3위가 이나영, 5위가 손예진이었어요. 내가 그거 다 외워. 황당했지만 기분은 좋았어요. 내가 올 초에 3번 이혼한 사실을 밝힐 때까지 어려운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 남의 반응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는데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아, 이 죄인을’이었고. 난 나대로 불행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닮고 싶다니. 세대가 바뀌긴 바뀌었나 봐요.”

_남성잡지 <에스콰이어>가 뽑은 ‘남성들이 가장 만나고 싶은 작가’ 1위에도 올랐어요.

“와. 그러니까 자꾸 광고가 들어와서 날 힘들게 하는구나.”

_광고가 들어와요?

“커피 광고도 들어오고, 소주, 아파트 광고도 들어왔는데 다 거절했어요. ‘묶어서 한 10억 부르고 한 십년 쉬어?’ 하는 그런 생각도 했는데요(웃음). 예전에 돈이 너무 없을 때였는데, 자동차 지면 광고가 들어온 적이 있어요. 너무 유혹적이었죠. 하지만 내가 자본주의도 비판해야 하는데, 거기 가서 ‘이 차 사세요. 좋아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잖아요. 내가 언젠가 그랑 부르주아를 소설에 등장시켜서 깔 수도 있는데, ‘이 차 너무 좋거든요’, ‘이 소주 너무 좋아요’ 이러면 내가 나중에 그걸 어떻게 비판을 해요.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자유를 위해 돈을 포기한 거죠. 얼굴 팔리면 제 생명이 끝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건 익명으로서의 삶이 끝나는 것이고, 그건 내가 보통인들이 느끼는 체험을 못하고 특별 대우를 받는다는 의미잖아요. 그러면 저의 작가로서의 삶도 끝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가장 중요한 이유예요.”(*지면 기사에는 좀더 압축돼 있다. '그랑 부르주아'는 '쁘띠 부르주아'의 상대어이다.)

_본인도 자기가 예쁜 거 아시죠?

“아니요. 몰라요.”(웃음) 사실 그거 작가생활 하는 데 저 너무 불리해요. 전 정말 제가 못 생겼으면 책이 배는 팔렸을 거라고 생각해요."

_(이구동성으로) 그 반대 아니에요?

“아뇨, 아뇨. 강동원과 이나영의 연기력이 폄하되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요. 장동건씨가 전에 “정말 잘 생긴 게 이렇게 핸디캡일지 몰랐다”고 했는데, 난 잘 생겼다고 생각지도 않지만 이렇게 노력을 많이 했는데도 사람들은 아직도 여전히 내 얼굴만 봐요. 얼마 전 조선일보에서 박완서 선배가 공지영 신드롬의 원인 중 하나로 미모를 꼽았을 때 굉장히 불쾌했어요.”(*작가는 두 가지를 혼동하고 있다. 짐작에 그녀가 못 생겼다면, 판매고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을 테지만 문학적 평가는 다소 상향조정됐을지도 모른다. "전 정말 제가 못 생겼으면 책이 배는 팔렸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무슨 '미녀는 괴로워'식의 대사인가?)

_지금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외모가 메리트가 되잖아요.

내 직업에선 핸디캡으로 작용해요. 전에 김훈 선배가 재미있는 농담을 했는데, ‘우리 업계가 이게(외모)가 좀 낮아’서 그렇대요. 영화인들이 저희한테 ‘너희는 공지영이 심은하급 되나보지?’ 하고 비웃어서 다들 자지러지게 웃은 적도 있어요.”

_소위 운동을 했다는데, 드러난 작가의 사생활이 너무 풍족했고, 지금도 소설 써서 충분히 보상을 받는 것 같아서 배신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잘 나가는 작가 공지영에 대한 비판의 기저에는 그런 것이 있지 않을까요.

분명히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전 제가 얼마나 유복하게 살았는지 정말 몰랐어요. 다들 비슷하게 사는 줄 알았어요. 제가 재벌집 딸도 아니고, 배고픔의 서러움을 겪지 않았을 뿐이지 저도 아버지 월급을 받아야 용돈을 받을 수 있는 평범한 아이였어요. 그런데 이 문단이라는 데를 나오니까 전부 가난한 사람들인 거예요.(웃음) 이 계가 진짜 나를 너무나 부자로 만들어준 거야. 내가 이 계가 아니라 화류계, 영화계를 들어갔으면 난 굉장히 평범한 집에서 자란 평범한 애였을 텐데, 전통적으로 가난한 것이 미덕이 중요한 계에 들어와서, 제가 아주 계를 잘못 들었죠. 엉뚱한 제가 갑자기 난데없는 상류층에, 난데없는 미모에 황당해요.

대학 때 우리집이 차압을 당해 먼 잠실로 이사 갔어요. 그때 시인 기형도 형이 몇몇 형들이랑 저희 집에 놀러왔는데, 이 형들이 와서는 나를 경원하고 멸시하는 표정인 거예요. 나는 그 형들이 아무 말도 안해서 얼마나 가난한지 정말 몰랐어요. 나중에 기형도 산문집 읽고 절대가난이라는 걸 알았는데 미안하기도 했고 분하기도 했어요. 왜 나한테 슬프고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나는 “형, 우리집 너무 누추해”라고 말하지도 않았을 텐데. 너무 배신감 느낀 거예요.

 

‘캐비어 좌파’라는 말이 있잖아요. 캐비어를 먹는 사람은 꼭 우파여야 하나요? 비록 캐비어를 먹지만, 좌파적 입장에서 제3세계 얘기하는 게 사실은 더 훌륭한 게 아닐까요.”

_나는 몰랐고, 이 업계가 가난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은 수긍하기 좀 그런데요.

나 잘못하면 필화사건 나겠다. 그리고 저 좌파적으로 살았어요, 왜 이러세요.(웃음) 저 연탄 때는 10평짜리 전세 아파트 살다가 연탄가스 먹고 병원에도 가고, 원당읍에 15평 주공 아파트에도 살았고 계속 전셋집 옮겨 다녔어요. 혜화동 천에 십만원짜리도, 삼선교 2,500짜리 반지하도 살았어요. 아 진짜, 이런 구차한 변명까지 해야 되나. 지금 사는 집이 제 첫 집이에요. 제가 차를 바꾼다고 하니까 어느 선배가 벤츠를 사라고 하더군요. “아니, 어떻게 작가가 벤츠를 타” 그랬더니, 그 선배는 우리 문인들이 잘 되서 외제차 타면서 지탄받는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대요. 그 말을 듣고 20년 동안 간직해왔던 부에 대한 죄의식을 털어버렸어요. ‘인세 많이 들어와서 좋아요’ 라고 말하고 다닌 지 몇 년 안됐어요. 옛날에는 ‘저는요, 꼭 팔려고 했던 건 아닌데요’ 그랬거든요.

나는 진짜 밥을 벌기 위해서 밤 새워가며 앉아서 글 썼어요. 이제껏 결혼을 3번 했지만 지금까지 제가 생활비를 대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23세 이후부터 현재까지 내가 집안의 가장이었고, 사력을 다해 글 쓰는 게 내 밥벌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내가 독자들이 좀 더 좋아할 수 있는 책을 써서 생활비를 댈까 이것이 오직 나의 관건이었죠. 돈은 버는 족족 어디로 갔지만.(웃음) 그래서 <우행시>로 평생 처음 돈을 저축했어요. 남편이 없기 때문에 이제 돈 저축이 되는 거죠.”

_소설에 늘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그런 비판이나 죄의식을 풀기 위한 건가요?

“그런 면도 없지 않아요. 22세에 첫 결혼을 했는데 그때부터 제 인생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구요. 제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무리 인내를 해도 어쩔 수 없는 방향으로, 너무 끔찍하고 슬프고 진짜 어디 가서 하소연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런 부분들이 나로 하여금 <우행시>에서 사형수를 만나러 가게 했어요. 내가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왜 여기까지 왔나, 나는 왜 이런 낙인을 줄줄이 달고 있나, 난 왜 전과 기록처럼 이런 걸 줄줄이 달고 서 있어야 하나, 이런 게 너무 절망스러웠어요. 사회적 사형선고 받은 느낌이었어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극한으로 내몰렸던 마음의 경험을 했기 때문에, 정말 내 인생이 정말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체험들을 했기 때문에 나는 사형수들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었어요. 결국 이 모든 것이 내가 소설가로 만들어지게 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좋은 환경에 놔두었다면 밤 새워 내가 굳이 글을 쓸 이유도 없었겠죠. 돈 있고 남편이 등 따시고 배부르게 해주면 내가 뭐 하러 글을 써요.”(*문학평론가 김윤식 선생의 어법을 빌면, 문학은 현실에 패배한 자들이 그 현실에 복수하는 것이다.) 

_공지영에 대한 관심이 작가에 대한 관심엔 파란만장한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요.

“제가 두 번째 이혼을 했을 땐데 안티들이 나를 너무 상처 주더라구요. 제가 친구에게 “나 너무 불쌍하지 않냐. 난 심지어 이혼까지 이렇게 많이 해서 진짜 힘들다” 했더니 그 친구가 “너 이혼했다는 사실 때문에 미움 받는 거야. 여자들이 너 같은 경우라고 다 이혼하는 게 아냐. 너는 능력 있으니까 이혼했어” 하더라구요. 난 항상 하늘이 몇 조각 나는 경험을 하는 건데, 그런 말 많이 들어요. ‘나도 당신만큼 능력이 있으면 당장 이혼했어’라는 말. 솔직히 그때 화가 많이 나서 조금만 어렸으면, “저 있잖아요. 제가 이혼했을 때 천만원에 10만원 하는 지하방에 살았거든요. 난 그때 소설 수입도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랬을 텐데 지금은 죽음의 시간 같은 것들을 넘어왔기 때문에 이해해요.”

_죽음의 시간이라뇨?

“마지막 고비(이혼)가 너무 힘들었어요. 제 소원이 비행기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 트럭이 나를 덮쳤으면 좋겠다 그런 거였어요. 그땐 친한 친구에게도 더 이상 말할 수 없어서, 하느님한테 갔어요. 18년 만에요. 가서 “항복합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이야기했고, 그랬더니 정말 살려주시더라구요. 제가 그 힘을 가지고, 남들이 보기엔 당당하고 내가 보기엔 좀 담담하게 사람들 앞에 나섰죠.”

_또 결혼하실 겁니까?

“저는 결혼이란 제도를 상당히 좋아해요. 저희 식구들이 다 첫사랑이랑 결혼해서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하게 살았어요. 그래서 처음 만나면 빨리 결혼해야 하는 건지 알았고, 그렇게 하면 결혼이란 게 아무 문제가 없을 줄 알았죠. 그런데 내가 해보니까 나는 왜 안 되는 거야. 결혼이란 제도의 미덕이 있어요. 약속을 관철하게 하는 약간의 강제적 힘 같은 것. 사람이란 너무 변덕스럽고 불안하니까요. 그건 아직도 믿어요. 하지만 앞으로 또 결혼을 할지는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사랑은 하고 말 거야. 언젠가."

_그렇게 당하고도 또 사랑을 하고 싶으세요? 

"사람들은 그렇게 당하고도 또 사랑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는데, 내가 만난 것은 저 사람이었지 남자 일반은 아니에요. 전 ‘남자는 다 그래’라는 말 참 싫어해요. 그건 여자는 다 그래란 말과 똑같다고 봐요.”

_앞으로 쓸 작품은요?

“저희 큰 딸이 고3이고 밑으로 초등학생 아들 둘이 있는데, 우리 가족을 모델로 한 <즐거운 나의 집>을 쓸 거예요. 참 축복인 게 우리 애들이 무지 밝아요. 나의 죄책감이 있기 때문에 학교 가면 애들이 밝나 안 밝나 그런 것부터 보거든요. 다들 에미 닮아서 대책 없이 밝아요.

언젠가 제가 딸한테 “엄마가 이혼 너무 많이 해서 미안해, 너한테 이런 모습 보여줘서 미안해” 얘기하니까 자기는 그거 잘 모르겠대요. 자기가 오직 항의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우리 아빠랑 왜 이혼했어”뿐이고, 나머지는 엄마의 사생활이니까 인정한대요. 대신 자기가 엄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엄마는 엄마 차의 시동을 한 때 껐지만 엄마의 열쇠를 던져버리지는 않았잖아. 내 친구 엄마들은 다시 못 찾게 강물 속에다 다 던져버렸어. 그래서 누가 밀어주기 전에는 다신 못 떠나. 그런데 엄마는 그것을 주머니 속에 감춰두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시동을 켜고 떠났잖아” 그러는 거예요. 저 이제는 안 버려요. 이제는 열쇠를 버릴 생각도 없고, 시동을 끌 생각도 없어요.”(*지면 기사는 여기까지이다. 이후의 내용은 중복이 많다. 발췌해서 옮겨놓는다.) 

_이제 공지영이라는 이름은 확실한 브랜드가 된 것 같아요. 무슨 책을 써도 기본은 팔린다는 관측인데.

그건 오직 신만이 아시는 거죠. 독자들은 너무 변덕스러워서 그 기호를 따라가다가는 제가 망해요. 그냥 제 배짱대로 쓰는 거죠. 우리 문단에서 ‘밥벌이 때문에 소설 쓴다. 밥벌이 안되면 미련 없이 떠난다’고 말하는 사람이 저랑 김훈 선배예요. 난 가장이기 때문에 노동의 대가가 충분치 않을 경우 하시라도 국수집을 할 태도가 돼 있어요. 국수 맛있게 마는 비법이 하나 있거든요. 제겐 프로작가로서의 내 노동이 우리 아이들과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요.

_사람들이 많이 알아보죠?

"아니에요. 전혀 몰라봐요. '혹시 공지영씨와 많이 닮았다는 소리 안 들어요?' 이런 말도 들어봤어요. 그럼 '아니요' 그래요. 난 공지영이지 닮은 건 아니니까. 지면사진과 달리 실제로 생기발랄해서 더더욱 못 알아봐요. 그런데 TV는 잠깐만 나와도 알아보더라구요. 아주 소름끼쳤어요."

_영화는 실망스럽지 않았어요? 캐스팅도 젊은 배우고.

"전 만족해요. 선남선녀가 안 나오면 누가 보겠어요. 이쁜 여자가 나오니까 시간이 잘 가잖아. 영화 흥행이 책 매출에 엄청난 영향을 주는데 다소 맥 빠지는 쓸쓸함도 느낄 것 같아요. "영상의 막강한 파워를, 영상이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인정해요. 문학은 갔구나, 아름다운 문학이여, 이런 식으로 생각지는 않아요. 그게 영화화 됐다는 것은 이미 제 작품을 본 독자들이 많다는 의미도 되니까. 영화 때문에 팔리긴 했어도 영화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_봉순이 언니 만나셨어요?

"그게 다 사실이 아니고 소설이에요. 시집가서 남편이 죽는 것까지만 실화예요. 나중에 언니가 찾아왔어요. 그래서 내가 저 언니가 책 읽었으면 어떡하지 했죠(웃음). 다행히 안 읽은 눈친데, 언니가 워낙 순하고 그래서 읽었더라도 봐줬을 거예요. 어린 시절 세팅이나 언니 존재는 실화예요. 30년 만에 만났는데, 잘 살더라구요. 멀리 멀리 시집갔는데 분당 우리 집옆에 죽전에 살더라구요. 옛날에 거기 땅이 있어서 보상 받아 아파트 살고 있었고 아이들도 잘 키워서 아들 하나는 분당 삼성플라자 직원이더라구요.

 

 

 

   

-산도르 마라이 좋아한다면서요.

"내가 왜 그렇게 좋아하나 봤더니, 그 사람이 운명과 싸우더라구요. 현대 유럽작가와 다르게 운명이나 비극을 담고 있다는 평을 봤어요. 아마 그런 것이 나를 매료시킨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제 자신이 마흔이 넘어갈 무렵에 운명이란 게 있구나, 너무 강력해서 내가 피할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굉장히 많이 들었거든요. 나의 노력, 의지, 선의와 상관없는 그런 일들이 내 인생에서 일어나고 있는 꼴을 보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운명이란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가진 많은 것들, 말하자면 키가 큰 것, 좋은 부모님 만난 거. 머리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거, 그래서 공부도 잘 했던 거, 가난하지 않게 살았던 거. 내 의지가 하나도 개입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우스운 말이지만 얼굴 생긴 것도 내 의지랑 아무 상관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나를 규정해 왔고,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거예요. 아, 이게 장난이 아니구나 느끼면서 신에게 돌아간 것 같아요. 정말 항복합니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운명이라는 것을 생각할 기회가 많았어요. 작가로서는 그게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한 여자, 한 인간으로서 굉장히 많은 비극을 갖고 있지만, 작가가 되는 데 고통의 문제, 폭력, 운명의 문제를 나로 하여금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줬던 거 같아요."

-공지영 신드롬이라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요?

"아, 근데 그거 94년도에도 한 번 했었어요. 공지영 신드롬, 최영미 신드롬이 있었는데. 전 데뷔 때부터 문학 지상론자는 아니거든요. 이 문장 하나 만들기 위해 내 목숨 다 바치겠다,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전. 그래서 사실 보상이란 것이 꼭 평론가들만 주는 건 아니고, 제가 독자들한테 물질적이거나 심리적으로 보상받기 때문에 독자들의 리뷰나 그런 것으로부터도 받아서 그것이 어떤 일이든 그것이 상관이 없어요. 나는 왜 문학적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거야. 뭐 그런 생각도 별로 안 하고. 이 시대의 평론가들, 상을 주는 심사위원들이 모든 문학을 끝까지 쥐고 있고, 앞으로도 쥘 수 있을지…, 아, 이렇게 자꾸 말하지 말라 그랬는데, 사람들이.(일동 웃음) 이럼 점점 멀어져서 돌이킬 수 없다는데."

-심중의 얘기들을 감추지 못하는 성격으로 자신이 준 상처, 받은 상처 그런 기억들은?

"내 말투, 농담을 함부로 하지 말자 뭐 그런 거 있어요. 저 사람들에게 정말 악의 없어요. 근데 항상 너무나 미움을 많이 받는데, 내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넌 항상 본질을 빨리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서 그걸 말하는 것 자체가 상처를 주는 것 같다고. 제가 상처 받는 건 언제나 이런 거예요. 봉순이 언니에서도 많이 썼는데. 이런 말 해도 되나. 난 꼬인 데 가 없고 사람을 오래 미워하는 법이 없어요.

시인 김정환형한테 "형. 난 왜 이렇게 사람들이 나한테 잘못한 거 금세 잊어버리지" 푸념하니까 "지영아, 넌 너무 착해" 이럴 줄 알았더니 "넌 너무 머리가 좋아서 그래"라더군요. 똑똑한 사람들은 남 미워하는데 오래 끙끙거리지 않고 비생산적인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대요. 난 그냥 말에 사람들이 상처받고 그러는 것 같아요. 난 금세 잊는데, 나한테 상처받았다는 사람은 너무나 많이 나타나는 거예요. 넌 날 상처 입혔어, 그러면서 가버려요. 아니라고 해도 그리곤 다시는 나를 안 보는 거예요. 그런 것에 제가 상처받았죠."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상처를 받지 않을 걸로 생각하는데.

"네. 별로 상처 안 받아요. 하도 받다보면 나도 살아야 되니까 처리하는 법을 배우잖아요. 30분 정도 걸려요. 미움을 하도 많이 받아서. 고등학교 때 왕따였어요. 어느날 보니 나를 따 시키더라구요. '어머. 사실 나도 너희들과 얘기하고 싶지 않았어' 생각하고 혼자 그렇게 살았어요. 전 진짜 조숙해서, 지금은 그 조숙만 믿다가 미숙의 경지에 다다랐지만, 친구들이 말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어요. 드라마 얘기하고, 전 그런 얘기 하면 옆에서 고개 돌리고 다른 책을 읽고 그랬는데 친구들은 그게 오만방자해 보였겠죠.

-소설 낼 때마다 소외 당하지도 않았지만, 이처럼 단기간에 뜨겁진 않았잖아요. 뭐가 달라졌나요?

"제 소설보다 제가 취재해서 쓴 현실 자체가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거 같아요. 그게 좋았어요. 다른 소설들은 제 경험 윤색하거나 시대의 얘기였는데 이건 전혀 동떨어진 세계를 발견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해서 그걸 옮겨다 이쪽에 준 거죠. 그게 너무 가슴 아파서 취재하는 동안 많이 울고 취재 시작부터 소설 쓴 후까지 마음이 아프기도 했어요. 이 책보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더 뒤인데, 그건 제가 전적으로 지어낸 소설이라 그게 각광받았다면 내가 잘 나서 그랬구나 그런 생각했을 텐데 제가 다 취재한 것이기 때문에 각별한 느낌이 있었어요(*'다 취재한 것이기'는 인터뷰에서 뭉개져 있는 부분을 내가 채워넣은 것이다). 나는 어떤 의미에서 말 그대로 인터뷰어, 옮겨놓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 현실이 각광받는 게 더 중요했고. 다른 게 각광받았다면 느낌이 달랐을 듯해요."

-이젠 스타라 무슨 책을 내든 잘 팔릴 것 같은데요.

"그건 아니에요. 조용필도 안 팔리는 시대인데. 우리사회가 생각보다 그렇지 않아요. 지금 네티즌들이 얼마나 무서운데요. 제가 제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이라 그렇지만 저는 독자들이 무지 냉정하고 제가 스타라면 그것에 대한 안티의 눈도 굉장히 많아서, 제가 정말 정신 차려서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소설을 내지 않으면 바로 끝장날 거라고 생각해요. 94년에 베스트셀러 여러 개 낼 때부터 생각한 건데 독자라는 사람들은 굉장히 변덕스럽고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냉정하고 정확해요. 그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바라고 있거든요. 스타작가에 대한 평가는 더 혹독하고.

지금도 생각하는 건. 94년부터 제가 아까 생활비 걱정 안 해서 감사하다는 얘기는, 내가 우연히 독자 기호에 맞아떨어져서 이렇게 됐지만, 어떤 의미에서 소설을 쓰는 것은 대중의 기호를 맞춘다는 것은 할리우드 사람들도 잘 몰라요 그거. 그렇기 때문에 반 장사(50%)예요. 내가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바로 망해요. 그래서 내 자신의 내적 필연성을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내 자신에게 이 걸 쓰는 동안 이것만 생각하고 내 자신에게 도움이 됐다면 평가는 온니 갓 노우즈거든요. 거의 신경 안 써요. 이게 제 배짱일 수 있고."

-너무 일찍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서 다음 작품에 부담은 없어요?

"무소의 뿔 다음에 고등어 쓰는 데 출판사에서 이거 최소 50만부 찍어야 하는데 이러는 거예요. 난 고등어는 절대 안 팔린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성공하니까 이젠 불안하더라구요. 그 때 내가 대중들을 따라가면 망한다 그런 생각했어요."

-일본 작가들 작품은 어때요?

"전 별로 안 좋더라구요. 키친 하나 빼고 별로예요. 차라리 우리 작가들 소설이 나은 것 같아요"

 

 

 

 

-어떤 독자들이 기억에 남아요?

"제가 제일 행복해 하는 독자들이 있는데 그게 30대 중반의 독자들이에요. 선배들의 강요로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를 대학 초년에 읽고, 그 후 <무소 뿔> 읽고 그랬던. 저와 함께 성장해온 친구들이죠. 그 친구들이 출판사의 편집하는 사람이 많아요. 저도 내년 데뷔 20년인데 그럴 때 가장 행복해요."

-왜 소설을 써요?

"얼마 전에 문학 캠프를 갔는데, 김훈 선생과 함께 독자와의 대화를 했어요. 왜 소설을 쓰시냐는 질문이 있었어요. 선배가 "난 밥을 벌기 위해 쓴다. 이게 밥이 안 되는 순간 미련 없이 떠날 거다" 그러더라구요. 깜짝 놀란 게 문단에 나와서 밥 때문에 소설을 쓴다고 했던 게 저였는데 김훈 선생님도 그렇더라구요. "저도 그렇다. 난 가장이기 때문에 노동의 대가가 충분치 않을 경우 하시라도 국수집을 할 태도가 돼 있다" 그랬죠.(*이 문학캠프 기사는 이전에 옮겨놓은 바 있다.) 

근데 문단에서 우리 둘만 그런 것 같아. 전 문학 지상주의자도 아니고. 문학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문화의 베이스이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내가 밥도 안 되고 애들도 굶고 있는데 내가 거기 가 있을 필요도 없고, 프로작가로서 이게 내 노동으로서 우리 아이들과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느냐가 굉장히 커요. 반농담으로 국수집 차릴 거다, 국수 아주 맛있는 비법이 하나 있어요, 그랬어요. 실제 가격을 얼마로 매길까 고민도 많이 했다니까요."

 

 

 

 

-어떤 작가 좋아해요.

"황석영의 단편 <몰개월의 새> 제일 좋아해요. 황 선생님은 영화적 작법을 써요. 감정을 묘사하는 대신 정황으로 묘사를 해요. 외로움을 묘사하는 대신 우두커니 서 있는 빗자루, 우산을 쓰죠. 그게 단편에서 두드러지는데 객관적이고 냉정한 묘사를 해요. 저는 '그때 혼자 있는 게 어땠다'는 식으로 써버리거든요. 그분의 문학과 사회에 대한 자세들이 좋아요. 상복도 없어요. 그 다음은 박경리 선생님. 그 분도 상을 하나도 못 받았어요. 그래서 좋아한 것은 아닌데, 하도 상 때문에 말이 많아서 찾아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박경리 선생님은 김성종 문학상인가 하나 받았어요. 젊은 작가는 박민규. 저는 <카스테라> 좋게 봤어요. 저는 젊은 작가들이 좀 더 도발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미 늙어서 아이들을 부러워 하는 형편이니까 형식 내용 모두 도발적으로 가면 제가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고. 그의 소설은 상당히 슬퍼요. 그래서 연민이 크다는 점이 좋았어요. 다른 작가들은 읽고 나면 이들이 나보다 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장편은 주목을 받았지만 단편은 기억되는 게 없는 듯해요.

"세계적으로 유명 소설가들이 단편으로 주목받은 경우는 거의 없어요. 단편으로 주목받은 건 일본 정도. 주로 장편을 좋아한 후 단편을 좋아하는 식이죠. 우리 문단의 폐해일 수 있는데 이것도 시각의 차이인 것 같은데, 서사고 로망이고 하는 것은 장편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어요. 누가 단편으로 주목 받나? 에쿠니 가오리, 코엘료 다 장편이에요. 전 그 짧은 순간 그 사람을 다 표현할 수 없어요. 김유정의 경우는 단편을 잘 쓰는데, 당시엔 기자를 말한다면 떠오르는게 있어요. 그런데 현대는 너무 달라요. 조선일보 기자, 한국일보 기자, 한겨레 기자 다 다른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을 묘사하면 길어지고. 상황을 묘사하면…, 쉽지 않아요.

잘 쓴 단편의 경우는 일부를 떼고 보면 한 편의 시 같아요. <몰개월의 새>의 경우도 그랬고. 그 작품은 이성복의 시 같아요. 그런 부분은 장편에서는 그렇게 쓸 수는 없어요. 장편과 단편 소설은 서로 다른 장르라고 생각해요. 김유정 이후에도 김승옥 <무진기행> 하나 빼면 와 닿은 것은 별로 없더라. 단편으로 노벨상 받은 사람은 없어요."

-소설이 밥 벌이이기 때문에 쓴다고 했는데, 다른 밥 벌이를 사용할 수도 있잖아요.

"아니죠. 그 때도 난 얼굴 팔리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아요. 소설이, 독자들이 나를 이 영역에서 내쫓는다면 모를까, 내가 소설 쓰다 폐병 걸리고 우리 애는 아파서 울고 그러면 몰라도 그렇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 쪽으로 갈 필요는 없으니까.요 아직은 나를 그래도 밥은 먹게 하니까, 지금은 잘 먹고 있지만, 예전에도 밥은 먹게 했으니까. 저는 할 줄 아는 게 소설 쓰는 것하고 국수밖에 없어요."

-소설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그런 비판이나 죄의식을 받아온 것을 풀기 위한 것인가요?

"그런 면도 없지 않아요. 제 중 1학년때 웃긴 얘기가 있어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주 가난한 사람에 대한 연민이 많았어요. 제가 서울여중이라는 서강대 옆 중학교를 다녔는데 공덕동에서 48번을 타고 다녔어요. 그때 우리 엄마가 연보라색 벙어리 장갑을 짜 줬는데, 어느날 한 아저씨가 길을 물어보는데 손을 보니까 손이 터져서 막 피가 나는 거예? 그래서 제가 버스 타기 전에 손이 아플 것 같다며 그걸 억지로 드리고 창피해서 막 뛰어서 버스를 탄 기억이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돈을 주든지 왜 그 이쁜, 할아버지가 낄 수도 없는 것을 드렸을까. 이것이 어떤 상징일 수 있겠다 싶어요.

사형수 문제도 그런 연민이 기본적으로 깔리고요. 22살에 첫 결혼을 했는데 그 때부터 제 인생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더라구요. 제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무리 인내를 해도 어쩔 수 없는 방향으로, 너무 끔찍하고 슬프고 진짜 어디 가서 하소연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런 부분들이 나로 하여금 <우행시>의 사형수 만나러 가게 했어요. 내가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생각하니까 더 이상 물러설 데도 없고, 나는 왜 여기까지 왔나, 나는 왜 이런 낙인을 줄줄이 달고 있나. 도대체 난 뭔가. 난 한번도 이런 걸 원한 적도 없고, 난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난 왜 여기까지 왔을까. 난 왜 전과 기록처럼 이런 걸 줄줄이 달고 서 있어야 하나, 이런 게 너무 절망스러웠어요.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 사회적 사형선고 받은 느낌이었죠. 그래서 사형수에게 갔고 가서 그들의 삶이 독자들이 보는 것과 전혀 다르게 나하고 너무 닮아있었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감정이입이 무지무지 잘됐던 듯해요. 너희들도 이런 걸 원치 않았겠지, 어느날 보니까 자기가 이런 처지가 돼 있었겠구나 싶었어요. 각도는 다르지만 감정이입하긴 좋았죠.

그 모든 것이 결국은 내가 소설가로 만들어지게 된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고, 나를 좋은 환경에 놔두었다면 밤 새워 내가 굳이 글을 쓸 이유도 없었겠죠. 돈 있고 남편이 등 따시고 배부르게 해주면 내가 뭐 하러 글을 써요. 그땐 아, 아름다운 백합화, 막 문체 신경 쓰고, 솔직히 그랬을지도 몰라요. 근데 너무나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극한으로 내몰렸던 마음의 경험을 했기 때문에, 내 인생이 정말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체험들을 했기 때문에 나는 사형수들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었어요. 그건 독자가 어떻게 보든 상관없이 소설가로서의 나의 자부심이에요. 나는 그곳에 갔었고, 내가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함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확신, 소설가로서 자부심이 생겼어요.

-공지영이라는 작가에 대한 관심에는 파란만장한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요.

"제가 두 번째 이혼하고 있었을 때 너무나도 안티들이 나를 상처 주더라구요. 친구에게 '나 너무 불쌍하지 않냐. 난 심지어 이혼까지 이렇게 많이 해서 진짜 힘들다' 했더니 '너 이혼했다는 사실 때문에 미움 받는 거야' 하는 거예요. 아니 요즘 이혼이 그렇게 큰 죄도 아니고 '나도 이거 어쩔 수 없었는데, 너도 어떤 상황인지 알잖아' 그랬더니 '나도 네가 미워. 넌 이혼도 했잖아" 그래요. 아니 난 항상 하늘이 몇 조각이 나는 경험을 하는 건데, '야 너 여자들이 너 같은 경우라고 다 이혼하는 게 아냐. 너는 능력 있으니까 이혼했어' 그러더라구요.

그런 말 많이 들어요. "나도 당신만큼 능력이 있으면 당장 이혼했어"라는 말도 들었어요. 솔직히 그때 화가 많이 나서 조금만 어렸으면, "저 있잖아요. 제가 이혼했을 때 천만원에 10만원 하는 지하방에 살았거든요. 난 그때 소설 수입도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랬을 텐데 지금은 죽음의 시간 같은 것들을 넘어왔기 때문에 이제는 생각해요. 각자의 길이 있고 자기 몫의 짐을 지고 걸어가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짐이 가벼워 보이는 것이고. 내가 보기에는 그 여자들 팔자가 더 좋아보이기도 하고, 가끔 나도 그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내 길이니까 내 운명이고 내 짐이니까 걸어간다 생각하면 너무 평안하고 감사해요.

이 얘긴 꼭 써주세요. 요즘은 너무 행복하냐고 물어보는데 정말 행복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성모상 앞에 촛불을 켜고 내가 생각하는 사람 이름을 하나씩 불러요. 우리 애들 이름부터요. 집이 너무 따뜻해서 감사해요. 건강하고 밤에 아이들이 잘 자는 것 감사해요. 내가 기도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해요. 그 세 가지 기도를 할 수 있어 감사하고. 그것을 하고 나면 하루가 기쁘고 즐거워요.

94년에 이보다 더 많은 돈을 벼락같이 벌었어요. 하나도 안 행복했어요. 정말 지옥 같았어요. 지금은 빚도 좀 갚고, 저축 조금 하고, 열심히 하면 막내도 대학 보낼 수 있을 것 같고 너무 행복해요. 아주 해피하게 살고 있어요."

-큰 딸이 소설을 쓰면 엄마에 관한 걸 쓴다고 했다면서요?

"내가 엄마가 이혼 너무 많이 해서 미안해, 너한테 이런 모습 보여줘서 미안해 얘기하니까 자기는 그거 잘 모르겠대요. 왜냐면 자기가 오직 항의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우리 아빠랑 왜 이혼했어'는 항의할 측면이 있는데, 나머지는 엄마의 사생활이고, 자기는 인정하는데, 대신 내가 엄마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엄마는 엄마 차의 시동을 한 때 껐지만 엄마의 열쇠를 던져버리지는 않았잖아"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소리야. 열쇠를 던지는 엄마가 어딨어" 했더니 "아냐, 엄마. 내 친구 엄마들은 다 던져버렸어. 강물 속에다. 다시 못 찾게. 그래서 다신 못 떠나. 누가 밀어주기 전에는. 근데 엄마는 그것을 주머니 속에 감춰두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시동을 켜고 떠났잖아" 그러더라구요. 이제는 안 버려요. 이제는 버릴 생각도 없고, 시동을 끌 생각도 없어요.

저는 결혼이란 제도를 상당히 좋아해요. 저는 집안이 우리 엄마 아버지가 동네 첫사랑이었어요. 14살에 만난. 아버지는 보통 한국 남자들이 그 시대에 저지를 수 있는 죄책사유를 하나도 저지르지 않았고, 지금도 손 잡고 우리 다음에 태어나도 또 만나자 이런 쓸데없는 소리하고, 더군다나 언니 오빠 다들 처음 만난 사람들과 결혼했어요.

지금까지 다 무난하게 살았고. 난 사람이란 다 저런 건 줄 알았어요. 그래서 처음 만나면 빨리 결혼해야 하는 건지 알았고, 그렇게 하면 결혼이란 게 아무 문제가 없는 건 줄 알았고. 그런데 내가 해보니까 나는 왜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엄청 갈등을 했죠. 그래서 저는 아직도 결혼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많이 갖고 있어요. 내 주변에 좋은 결혼생활을 보여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특히 엄마는 아직도 '김장 했는데 아버지가 하루종일 마늘만 까고 파는 안 까주셨다' 뭐 이런 푸념도 해요.

그런 것만 보고 살다가 이런 세계가 있다는 걸 우리 가족들도 나 때문에 안 거예요. 대신 가족들이 한 번도 나를 비난한 적이 없었어요. 그건 너무나 큰 힘이에요. 너무나 이해해줬고, 그 집 귀신 되라 이런 얘기 절대 한 적 없어요. 하루 빨리 탈피해라, 오히려 밍기적거린 건 나였고, 지금도 굉장히 어떤 의미에서 자랑스러워해 주시고. 그게 큰 힘이죠. 우리 애들도 아빠가 없으니까 오빠가 아빠노릇 비슷하게 놀이공원이라도 한 번 더 데려가려고 하고. 농담으로 이 모든 게 나를 소설가로 만들려는 하느님의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고 말해요."

 

 

 

 

-아이러니하게 이 과정을 겪고 사랑에 대한 소설을 썼어요.

"죽는 줄 알았어요. 츠지의 제안이 너무 매력적이라서 쓰기로 했는데 너무 겁이 나더라고요. 구상을 하는데 필이 전혀 안 오는 거예요. 이건 순전히 필로 해야 하는 건데. 옛날 필 살리려고 7080 노래를 받아서 매일 들었어요. 내가 사랑을 아직 믿었던 시절의 느낌을 다시 가져보려고 무지무지 애를 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 리뷰에 "이 여자는 연애를 안 했나 보다"라는 게 있었는데 그걸 보고 "어머, 너무 정확하다" 했어요.(웃음) 사형수를 취재하는 게 훨씬 쉬웠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좋아요. 앞으로 진짜 사랑을 하면 앞으로 연애소설을 얼마나 잘 쓰겠어."

-사랑을 믿어요?

"지금은 진짜 믿어요.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으로 사형수에게 갔는데, 저는 남녀간의 사랑이 따로 분류되는 사랑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사형수 보면서 사랑을 믿게 되었어요. 사형수들은 어쩜 개만도 못한 사람이었는데 교화위원들이 10년 넘게 그렇게 돌보면서 교화가 된 거예요. 그러면 왜 나에게 그런 사랑을 주냐고, 나 너무 힘들다고 하는 윤수 같은 상황이 온대요.

처음엔 빵이나 얻어 먹고 그러다가 그들의 진심을 읽고 화를 내고 그 후부터 변하는 식으로요. 야, 이거 정말 인간이 변하는 것이구나. 그 아줌마들은 봉사하러 오는 천주교 신자들일 뿐인데 그냥 와서 '이거 먹어봐. 이거 방에 들어가면 못 먹어 어서 먹어' 엄마처럼 그런 것 뿐인데 사형수들은 한번도 못 받아본 사랑을 접하면서 금방 변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렇게 당하고도 또 사랑을 하고 싶어?' 물어보는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래요.

이건 제 의지의 노력이었는데, 내가 만난 것은 저 사람이었지 남자 일반은 아니다. 제가 싫어하는 말은 남자는 다 그래. 저 그런 말 되게 싫어해요. 그것은 여자는 다 그래란 말과 똑같다고 봐요. 심수봉 노래는 가끔 부르기도 하지만. 저도 남자들 좋아해요. 아가페와 에로스라는 이분법을 잘 모르겠어요. 에로스만의 사랑이 있나요? 그런데 저는 플라토닉 러브는 너무 싫어하거든요. 저는 그게 제가 그렇게 싫어하는 하룻밤 사랑과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플라토닉만 해요? 난 이해가 안 가."

-난 남녀간의 사랑이 다시 온다면요?

"그럼요. 기꺼이."

-현재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요?

"우리집을 모델로 한 <즐거운 나의 집> 써야 합니다."

-작품 쓸 때 시간관리는?

"저도 노동자인데 낮에 쓰고 일과 시간에 써야죠. 밤에는 자거나 술 마시거나 놀아야죠. 애들이 크고 나서 바뀌었어요. 엄마 노릇이라도 하려면 아침에는 일어나야 하니까. 밤에 하면 애들을 못 챙겨주고. 그러니까 밤에는 일찍 자려고 하고. 그러다 보면 점심때 시간이 남아요. 애들 재우고 새벽 3~4시까지 하기도 했는데. 주로 2시부터 5~6시까지 쓰죠. <우행시>는 너무 잘 써져서 단 두 시간만 자면서 쓰기도 했어요. 출판사에 일정보다 일찍 넘겨줄 정도였죠."

-또래 작가들과 친분은?

"아무도 안 친해요. 전에 친해지려고 노력한 적 있었는데 내가 한 말이 바로 소설로 나오더라구요. 작가들은 친해지면 안돼요. 먼저 쓰는 게 임자인데 난 게으르니까. 시인들은 더 심하답니다."

-애들은 말은 잘 들어요?

"어휴. 지옥 같은 날들이에요.(웃음) 엄마 말을 끝끝내 안 듣는 이 아이들. 큰 딸이 제일 말을 안 들어요."

-연말연초 계획은?

"집에 있어요. 애들 다 키우고 나면 봉쇄 수도원에 가서 한 일년 동안 가고 싶어요. 국내로요. 아무리 서로 묵언을 해도 그렇지 굳이 말도 안 통하는 해외 가서 어쩌자는 거예요. 애들만 크면 맘대로 여행도 다니고. 아이들이 제 쓸데없는 욕망의 발목을 잡는, 현실에 묶어주는 족쇄이기도 하고, 하나의 축복이고 행복인 것 같아요.

우리 애들은 제가 가장 축복인 게. 우리 애들이 무지 밝아요. 학교 가서 볼 때 애들이 밝나 안 밝나 그런 것을 봐요. 나의 죄책감이 있기 때문에. 근데 애들이 다들 에미 닮아서 대책없이 밝아요. 애들에게 상처 주는 선생님들이 있잖아요. 막내의 경우도 왔어요. 저는 '니가 이런 선생님을 만났단다'하고 솔직히 말해요. 선생님이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야 라고 하고 싶진 않아요. 선생님이 우리 막내를 너무 애정 결핍으로 보는 것에 대해 상처받았어요. 엄마가 너무 바쁘니까 우리 애들을 그렇게 보시는 거죠. 제가 학교 가면 선생님들이 그런 얘기해요. 바쁜 것 가지고 말이죠. 전 우리 부모 세대처럼 다 널 위해 하는 거란 말하지 않고 1년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어요. 난 애들에게 거짓말로 감싸고 싶지 않았어요."

-솔직한 것도 하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부르주아의 건강성이랄까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저에요. 저."

07. 01. 02.

P.S. 공지영 소설을 별로 읽은 바 없다. <인간에 대한 예의>(창비사, 1994/2006)의 초판을 읽으며 '좋은 인상'을 받은 게 거의 전부이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풀빛, 1989/ 푸른숲, 1998)은 제목부터 유치하다고 생각해서 서평을 읽는 걸로 대체했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문예마당, 1993/ 푸른숲, 2006)는 영화감상으로 대신했다(거기 모스크바의 풍경이 등장하고 아는 선배도 출연했다).그리고는 '고등어'와 '봉순이 언니' 신드롬이었다. 견문에 평론가들로부터 가장 호평을 받은 작품은 <별들의 들판>(창비사, 2004)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 2005)으로 쏠렸으며 그러한 '사회적 현상'이 '우리들의 행복한 공지영'을 낳았다. 작가가 <즐거운 나의 집>을 차기작으로 꼽아두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징후적이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아무튼 편집하느라 애먹었다. 아무리 인터뷰 정리기사라지만 이렇게 뒤죽박죽으로 중복이 심한 기사는 처음 봤다. 기자가 편집을 하다 나가떨어진 게 아닌가 싶다. 기사에서 내가 건진 건 세 가지이다. 먼저, 중1 때의 에피소드. "서강대 옆 중학교를 다녔는데 공덕동에서 48번을 타고 다녔어요. 그때 우리 엄마가 연보라색 벙어리 장갑을 짜 줬는데, 어느날 한 아저씨가 길을 물어보는데 손을 보니까 손이 터져서 막 피가 나는 거예? 그래서 제가 버스 타기 전에 손이 아플 것 같다며 그걸 억지로 드리고 창피해서 막 뛰어서 버스를 탄 기억이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돈을 주든지 왜 그 이쁜, 할아버지가 낄 수도 없는 것을 드렸을까. 이것이 어떤 상징일 수 있겠다 싶어요." 맞다, 상징이다. 그것도 그녀의 작가적 세계관을 집약해주는.

그리고 산도르 마라이 소설에 대한 열광: "내가 왜 그렇게 좋아하나 봤더니, 그 사람이 운명과 싸우더라구요. 현대 유럽작가와 다르게 운명이나 비극을 담고 있다는 평을 봤어요. 아마 그런 것이 나를 매료시킨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제 자신이 마흔이 넘어갈 무렵에 운명이란 게 있구나, 너무 강력해서 내가 피할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굉장히 많이 들었거든요. 나의 노력, 의지, 선의와 상관없는 그런 일들이 내 인생에서 일어나고 있는 꼴을 보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운명이란 것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수도원 기행> 같은 게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밥벌이'로서의 글쓰기: "나는 진짜 밥을 벌기 위해서 밤 새워가며 앉아서 글 썼어요. 이제껏 결혼을 3번 했지만 지금까지 제가 생활비를 대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23세 이후부터 현재까지 내가 집안의 가장이었고, 사력을 다해 글 쓰는 게 내 밥벌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내가 독자들이 좀 더 좋아할 수 있는 책을 써서 생활비를 댈까 이것이 오직 나의 관건이었죠." 둘러대지 않아서 좋다. 그것이 공지영의 힘이다. 비록 허구를 꾸며대는 소설가이지만, 그녀의 삶과 소설 사이의 관계는 아주 투명해 보인다. 액면 그대로이다. 이 작가는 아직도 쓸어갈 판돈이 더 남아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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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1-02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우행시 영화로 봤는데 좀 아쉬운 게 많더라구요. 근데 나만 그런가봐요. 그래도 공지영 보면 볼수록 참 진솔한 사람 같아 좋으네요. 잘 됐으면 좋겠어요.
한참 읽었네요. 공지영도 공지영이지만 기자의 질문도 명품 같네요.^^

로쟈 2007-01-02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읽을 만한 인터뷰인데, 편집은 좀 엉망입니다.--;

마노아 2007-01-02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지영에 대한 몇몇 편견을 지울 수 있는 인터뷰였어요. 읽고 나니 더 좋아지네요. ^^

로쟈 2007-01-02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자의 표현이지만, '부르주아의 건강성'의 최대치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적 올바름의 문학, 그리고 밥벌이, 그렇게 요약될 수 있는...

페일레스 2007-01-03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체에 대한 답변은 일종의 변명처럼 들리기도 했는데, 예전에 남재훈이 김훈을 인터뷰했을 때 "자신의 문장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던 질문에 김훈이 했던 대답이 생각나더군요:
"사람들이 문장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들으면 대개 옳다. 그런데 그런 지적들이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문장은 내면에서 올라오는 필연성이다. 오류를 알지만 고쳐지지 않는다. 다른 길이 보여도 발이 그쪽으로 가지지 않는다. 나는 글을 쓸 때 어떤 전압에 끌린다. 전압이 높은 문장이 좋다. 전압을 얻으려면 상당히 많은 축적이 필요하다. 또 그만큼 버려야 한다. 버리는 과정에서 전압이 발생한다. 안 버리면 전압이 생길 수 없다."
'문체'를 '한 번 확립되면 바꾸기 힘든 것'으로 인식하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저는 김훈의 대답에 더 공감이 갑니다...

로쟈 2007-01-04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과 달리 공지영은 문체주의자가 아닌 것이죠.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긴 해도, 사실 두 사람 간의 공통점을 발견하기란 매우 어려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부 2007-01-04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장정일의 독서일기에서였던가.. 신경숙과 공지영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신경숙은 '여자'가 얼마나 예쁜 존재인지를 계속 이야기하려는 작가라면 공지영은 '내가'얼마나 예쁜지를 자꾸 말하려는 작가라고 했던 이야기에 박장대소하면서도 좀 씁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음.. 전 공지영에 대한 몇몇 편견들이 강해진 인터뷰였습니다.-_-

로쟈 2007-01-04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정일답습니다.^^

yoonta 2007-01-04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렇게 꼼꼼히 정리해주시니 생전 관심도 없던 공지영씨 소설도 한번 들춰보고 싶어지네요..^^ 안그래두 읽어야 될 책이 산더미인뎅...책임지세요.. 로쟈님^^

로쟈 2007-01-04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뜻밖입니다. 그런 욕심을 다 내시다니.^^

2007-01-06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06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저도 '삐뚤어진' 생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로쟈 2007-01-20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뵙는 거 같은데, 종종 의견을 남겨주시길.^^
 

장 뤽 고다르 특별전이 열린다. 1월 3일부터이고 장소는 서울아트시네마이다. 관련기사를 읽은 건 '씨네21'에서인데, 유운성 평론가가 쓴 기사의 타이틀은 '이미지의 정치학을 사유한다'이다. 여기서는 경향신문의 간략한 소개기사만을 옮겨놓는다. 주로 80년대의 대표작들이 상영되는데, <주말 Week-end> <원 플러스 원 One Plus One> <즐거운 자식 Le gai savoir> <넘버 2 Numéro deux> <잘 돼 갑니까? Comment ca va> <열정 Passion> <카르멘이란 이름 Prénom Carmen> <탐정 Détective> 등 총 여덟 작품 가운데, <주말>과 <카르멘이란 이름>을 제외한 여섯 편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영되는 것이라고 한다. 영화팬들이라면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경향신문(06. 12. 29) 실험 가득한 ‘대가의 美學’ 장 뤼크 고다르전

현대 영화의 혁명가’ 장 뤼크 고다르 특별전이 1월3∼14일 종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감독 데뷔 이전 평론가로 활동했던 고다르는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를 통해 관습적인 영화문법에 함몰돼 있던 이전 세대 프랑스 감독들을 혹독히 비판했다. 그는 1959년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를 내놓으며 새로운 영화언어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입증해보였다. 프랑수와 트뤼포 등과 함께 프랑스 누벨 바그를 이끌었고, 68년 5월혁명 이후에는 ‘지가 베르토프’ 집단을 조직해 기존 상업 배급망과 절연한 급진적 제작 환경을 실험했다. 상업영화계에 복귀한 80년대 이후에도 영화 미학의 한계를 실험하는 파격적 작품들을 제작했다.

이번 특별전에는 그동안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6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작품 8편이 소개된다. ‘주말’(67)은 파리 교외로 빠져나가려는 끝없는 자동차 대열을 10분간 보여주는 수평 트래킹 샷으로 유명한 걸작이다. 중산층 부부의 순탄치 않은 주말 여행 과정을 보여준다. 고다르는 영화의 공간적 깊이감을 의도적으로 제거해 현대 자본주의 세계의 얄팍함을 폭로한다. ‘원 플러스 원’(68)은 신보를 녹음중이던 록그룹 롤링 스톤스와 흑인 민권 운동가의 인터뷰를 콜라주해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대안 매체로서의 비디오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넘버2’(75), 이미지와 텍스트의 상관성에 대한 탐구 ‘잘 돼 갑니까’(76)도 보기 힘들었던 작품이다. ‘열정’(82)에선 이자벨 위페르, 한나 쉬굴라 등 유럽권 명우들의 연기를 볼 수 있다. 김성태씨(파리3대학 영화학 박사)와 김성욱씨(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가 6, 7일 강연을 통해 작품 이해를 돕는다.(백승찬 기자)

형편상 상영작들을 모두 챙겨볼 여유는 없는데, 그래도 <열정>(1982) 정도는 시간을 내고 싶다. 이자벨 위페르와 한나 쉬굴라라는 걸출한 여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본전은 뽑을 영화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개에 따르면, "렘브란트, 고야, 앵그르, 들라크루아, 엘 그레코의 걸작들을 영화적 활인화로 완벽하게 재현해낸 촬영감독 라울 쿠타르의 솜씨는 탄성을 내뱉게 만든다. 시몬느 베이유의 저서 <중력과 은총>에 대한 헌사이기도 한 이 영화를 두고 콜린 매케이브는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고다르 작품'이라 평하기도 했다"니까 더욱 궁금하기도 하고.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레흐 바웬사를 앞세운 자유 노조가 집권에 성공한 즈음, 폴란드 영화감독 예르지는 프랑스에서 TV 영화를 만든다. 명화들을 재현하는 이 영화는  예산을 초과하고, 영감마저 바닥난 듯 보이는 예르지는 지지부진하게 연출 작업을 한다. 한나는 영화 스태프들이 묵는 호텔 주인이다. 그녀는 공장을 운영하는 미셸과 함께 사는데, 미셀은 공장에서 일하던 이자벨을 해고한다. 한나와 이자벨은 예르지에게 끌리고, 호텔 메이드들은 영화 엑스트라가 되기 위해 일을 그만둔다. 이 영화를 알랭 베르갈라는 실재계와 사랑의 스펙타클의 차이에 대한 다큐멘터리라 칭했다." 이것만으로는 물론 갈피를 잡을 수 없지만...

 

 

 

 

한편, 고다르와 관련하여 놀라운 점은 그에 관한 단행본 저작이 거의 전무하다는 것. 내가 갖고 있는 책으로는 리차드 라우니의 <장 뤽 고다르>(예니, 1991)와 제임스 모나코의 <뉴 웨이브1,2>(한나래, 1996) 정도가 고다르와 누벨 바그를 다루고 있다. 고다르의 영화가 갖는 영화사적 맥락에 대해서는 로도윅의 <현대 영화이론의 궤적>(한나래,  1999), 로버트 스탬의 <자기반영의 영화와 문학>(한나래, 1998), 안니 골드만의 <영화와 현대사회>(민음사, 1998) 등을 참조할 수 있다. 모두가 중량감 있는 책들이다.

그 중에서도 로도윅의 <현대 영화이론의 궤적>은 원제가 <정치적 모더니즘의 위기(The Crisis of Political Modernism)>(1989)이며, 조만간 자세히 읽을 계획을 갖고 있는 책이다. 그러고 보면 2000년 이후에 이 주제와 관련한 무게 있는 책들이 전혀 출간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영화/영상의 시대'란 말을 무색하게 한다. 다들 무슨 공부를 하는 것일까?(물론 전공자들이야 번역서를 필요로 하지 않는지도 모르겠지만.)

07. 0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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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3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유 2007-01-03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들라크루아적이고 앵그르적이네요. 잘 알았습니다.^^

나비80 2007-01-1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로쟈님의 페이퍼를 보고 있자면 세상이 풍요로운 느낌입니다.

로쟈 2007-01-12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안타깝게도 시간이 안 날 거 같습니다.--;
소이부답님/ 좋게 봐주시는 것일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