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에서 그냥 눈에 띄길래 랭보의 시집 한권을 꺼내들었다. 랭보의 시집들과 관련서들은 대개 박스에 들어가 있고 달랑 남아있는 건 함유선 번역의 <나쁜 혈통>(밝은세상, 2005)과 펭귄판의 불역 대역본 시선집뿐이다. 거기에 러시아어로 된 프랑스 상징주의 시선집이 어딘가 꽂혀 있을 것이다. 짐작에 랭보의 시집은 최소한 대여섯 종류의 번역본이 출간돼 있다. 내가 갖고 있는 건 세 종 정도인 듯한데, 당장 곁에 있는 건 함유선본뿐이다. 거기에 피에르 프티필의 전기 <랭보, 지옥으로부터의 자유>(홍익출판사, 2001)를 손가락으로만 꼽아두고 있다. 사실 말라르메와 함께 가장 난해하고 손꼽히는 이 '천재 시인'을 간혹 읽어보려고 하는 것은 크리스테바의 <시적 언어의 혁명>(동문선, 2000)을 읽기 위함이다.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한 이유는 된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서시를 읽다가 문득 자료라도 모아놓자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리뷰를 일단 옮겨놓는다. 전기 <랭보>에 관한 것이다.

 

 

 

 

북데일리(06. 06. 16) 무서운 어머니 때문에 비뚤어졌던 시인?

“정말 참을 수 없는 건 참을 수 없는 게 없다는 것이야.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이 날 생각하는 것이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미소년적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영화 ‘토탈 이클립스’에 나오는 대사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호연을 통해 천재시인이라 불렸던 랭보(1854~1891)의 여러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다. 랭보의 삶과 알려지지 않은 가족사, 성장배경을 다룬 <랭보, 지옥으로부터의 자유>(홍익출판사. 2001)에 의하면 랭보는 어릴 때부터 천재적인 문학성을 보였다.

“우리들 중 누군가가 기하학정리 몇 개를 증명하는 동안, 랭보는 라틴시 몇 편을 순식간에 해치우곤 했어요. 그것들 모두 재기 넘치는 것이었죠. 제목은 똑같았어요. 하지만 시구의 표현양식과 사상 논지의 전개가 아주 달랐기 때문에 선생님은 한사람의 손으로 씌어진 것인 줄 몰랐지요. 그가 거기에 바친 시간에 비하면 정말 곡예와 같은 솜씨였어요. 이런 일이 꽤 자꾸 있었지요. 이건 보증할 수 있어요”

랭보와 함께 학습했던 학우의 고백은 그의 천재적 문학성을 드러낸다. 그는 실제로, 수학과 기하학에 매우 둔했으며 (거의 보통사람의 수준에도 못 미칠 정도였다) 관심도 거의 갖지 못했다. 그러나 문장을 만들 때만큼은 독창적인 어휘들로 채우기 위해 집요한 노력과 발상을 아끼지 않았다.

랭보의 어머니는 난폭할 정도의 자기주장과 독선과 아집을 가진 여성이었다. 지독한 보수주의자로 이웃들과의 싸움을 쉬지 않고 자행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는 시인 베를렌느앞에서도 자신의 아들 랭보의 따귀를 때리는 일을 서슴지 않았으며, 그를 뒤쫓고 감시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어머니의 훈육방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칠고 엄격했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였던 랭보의 어머니는 남편의 부재가 주는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자녀교육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나 이런 관심은 랭보를 더욱 비뚤어 나가게 만든 요인이 될 뿐이었다.

“일이라는 게 대체 뭐야, 내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것은 다 파괴하고, 다 지워버려야 해, 아! 담벼락 구석에 버려져서 아무렇게 자라고, 어른이 되어서나 선생들이나 가족이 주입한 관념이라곤 전혀 없는 아이는 행복하겠어! 새롭고, 순수하고, 원칙도 관념도 없으니까. 사람들이 우리한테 가르친 것은 모두다 거짓이니까 말이야! 자유로운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아이 말이야!”

랭보의 항변은 성장기에 겪었던 혼란과 고통을 여실히 보여준다. 저자 삐에르 쁘띠피스(쁘띠필?)는 랭보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정의 내리려 하지 않는다. 시대와 사랑, 가족과 철학과 세상 앞에서 느꼈던 랭보의 고통을 열어 보일 뿐이다. 3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랭보의 조부, 부모세대의 이야기, 형제, 그가 만났던 예술가들의 삶이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김민영 기자)

07. 01. 02.

P.S. 때로 아이를 시인으로 만드는 비결은 단순해보이기도 한다. "난폭할 정도의 자기주장과 독선과 아집을 갖고서 이웃들과 싸움을 쉬지 않고, 친구 앞에서도 아들의 따귀를 때리는 일을 서슴지 않기" 말이다. 물론 절반의 리스크는 감수해야 한다. 천재시인이 되거나 반항적인 패륜아가 되거나. 그 '지옥'으로부터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 말이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의 서두는 이렇다(따로 '서시'라 표기돼 있지는 않은 듯하지만, 서시의 역할을 하는 시이다). 원시와 영역시인데, 영역은 펭귄북에서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얻어왔다(대동소이하다).   

Jadis, si je me souviens bien, ma vie était un festin où s'ouvraient tous les coeurs, où tous les vins coulaient.
  Un soir, j'ai assis la Beauté sur mes genoux. - Et je l'ai trouvée amère. - Et je l'ai injuriée. 

  Je me suis armé contre la justice.
  Je me suis enfui. O sorcières, ô misère, ô haine, c'est à vous que mon trésor a été confié !
  Je parvins à faire s'évanouir dans mon esprit toute l'espérance humaine. Sur toute joie pour l'étrangler j'ai fait le bond sourd de la bête féroce.
  J'ai appelé les bourreaux pour, en périssant, mordre la crosse de leurs fusils. J'ai appelé les fléaux, pour m'étouffer avec le sable, avec le sang. Le malheur a été mon dieu. Je me suis allongé dans la boue. Je me suis séché à l'air du crime. Et j'ai joué de bons tours à la folie.
  Et le printemps m'a apporté l'affreux rire de l'idiot.
  Or, tout dernièrement, m'étant trouvé sur le point de faire le dernier
couac ! j'ai songé à rechercher la clef du festin ancien, où je reprendrais peut-être appétit.
  La charité est cette clef. - Cette inspiration prouve que j'ai rêvé !
  "Tu resteras hyène, etc..." se récrie le démon qui me couronna de si aimables pavots. "Gagne la mort avec tous tes appétits, et ton égoïsme et tous les péchés capitaux."
  Ah ! j'en ai trop pris : - Mais, cher Satan, je vous en conjure, une prunelle moins irritée ! et en attendant les quelques petites lâchetés en retard, vous qui aimez dans l'écrivain l'absence des facultés descriptives ou instructives, je vous détache des quelques hideux feuillets de mon carnet de damné.

  Once, if I remember well, my life was a feast where all hearts opened, where all wines flowed. 
  One night, I sat Beauty on my knees.—And I found her bitter.—And I reviled her. 
  I armed myself against justice. 
  I fled. O witches, o misery, o hate, to you my treasure was entrusted!
  I managed to vanquish all human hope from my spirit. So as to strangle every joy, I made the silent leap of a wild beast. 
  I called the executioners as I died in order to bite their rifle butts.I called on plagues to choke me with sand, blood. Misfortune was my god. I lay spread in the mud. I dried myself with the air of crime. And I played fine tricks on madness. 
  And spring brought me the appalling laugh of the idiot. 
  However, only lately, on the point of making my final squawk, I thought of seeking the key to the ancient feast, where I might take up my old appetite. 
  Charity is that key.—This inspiration proves I was dreaming! 
  “You’ll remain a hyena…” etc., cries the demon who crowned me with such pleasant poppies. 
  “Win death with all your appetites, and your selfishness, and all the deadly sins.” 
  Ah! I took too much:—But, dear Satan, I entreat you, an eye less inflamed! and while we wait on some little, late cowardice, you who love the absence of descriptive or instructive faculties in a writer, let me tear out some hideous pages from this notebook of a damned soul.

 

  오래전, 기억해보면, 내 삶은 축제였다, 누구나 마음 열었고 온갖 술 흘러넘쳤다.

  어느날 저녁 난 아름다운 여인을 무릎에 앉혔다. 그녀가 고약한 것을 깨달았다. 욕을 퍼부어주었다.

  나는 정의에 대비했다.

  나는 도망쳤다. 오 마녀여, 오 불행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을 너희에게 맡겼노라!

  나는 마침내 정신 속에서 인간의 희망 몽땅 사라지게 했다. 그 목을 비트는 데 즐거움을 느껴, 나는 사나운 짐승처럼 음험하게 껑충껑충 뛰었다.

  나는 죽어가면서 사형 집행인을 불러 그들의 총 자루 물어뜯으려고 했다. 나는 재앙을 불러 피와 모래에 질식했다. 불행은 나의 신이었다.

  나는 진흙 속에 누웠다. 나는 범죄의 바람에

  몸을 말렸다. 나는 광기를 잘 속여넘겼다.

  봄은 내게 백치의 웃음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엉뚱한 소리 내려는 순간에! 난 옛 축제의 열쇠를 찾으려 했다. 어쩜 욕망도 되찾을지 모른다.

  자비가 그 열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내가 전에 꿈을 꾸었나보다.

  “저는 하이에나로 남으리...” 아주 멋진 양귀비꽃 관을 나에게 씌어준 악마가 외친다.

  “네 욕망과 이기주의와 죄악 모조리 짊어지고 죽어라.”

  아! 난 너무나 많은 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탄이여, 정말 간청하니, 화를 좀 내지 마시라! 뒤늦게 몇 가지 비겁한 짓을 기다리며, 작가에게 묘사하고 훈계하는 능력이 부족한 점을 사랑하는 당신, 나 그대에게 내 저주받은 자의 수첩에서 보기 흉한 몇 장을 떼어내준다.(함유선 옮김)  

 

07. 01. 02 - 07.

 

P.S. 번역문을 옮겨놓은 다음에 몇 자 적어볼까해서 쁘띠피스의 전기를 구입했다. 한데 유감스럽게도 이 두툼한 전기에 색인이 붙어 있지 않아서 인용시나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일일이 뒤적거려 보아야 하게끔 돼 있다. 그럴 여유가 없는지라 랭보에 대해서 몇 자 적는 일은 다음 기회로 미뤄둔다. 본문 인용기사에서도 암시되고 있지만, 나의 관심은 랭보와 그의 어머니 사이의 관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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