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홈피에서 며칠 전 블로그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41050.html). 작성자는 '내 마음속의 굴렁쇠'님이고, 러시아 록음악의 전설 '빅토르 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기사에 이미지 몇 개를 추가했다). 빅토르 최의 노래는 나도 자주 유튜브에서 찾아듣는 편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어제 책 정리를 하다 보니까 빅토르 최에 대한 러시아어 평전도 눈에 띄었는데(러시아에는 여러 종이 출간돼 있다), 국내에도 그럴 듯한 규모의 책이 소개되면 좋겠다. 키노(빅토르 최)의 노래 링크는 '키노-슬픔-젬피라'(http://blog.aladin.co.kr/mramor/1735750) 참조.   

한겨레(09, 02, 26) [블로그] 빅토르 최, 그는 살아 있다

“오늘 나는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

자유와 저항을 노래했던 음유시인 빅토르 최(Виктор Цой, Victor choi)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말 그대로 불꽃 같이 살다간 청년이다. 그에게는 조선의 피가 흐른다. 1962년 그가 태어난 나라는 카자흐스탄공화국. 아버지는 고려인 2세며,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사람이다. 강제이주 70년 고려인의 삶을 더듬던 나에게 이 젊은 요절가수는 계단 끝 비상구와 같은 존재다.

Igla.jpg picture by vkovalch 

까레이스키 3세, 그는 옛소련의 전설적인 록가수다. 영화에도 출연했다.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그를 가리켜 ‘마지막 영웅’(Last Hero)이라 부른다. 이러한 믿음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언제나 그리워하고 지금도 빅토르 최가 남긴 흔적을 태양의 흑점으로 여기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바뀐 것이라면 빅토르 최는 죽었고 추모의 주인공이 됐다는 사실 뿐이다.

빅토르 최의 신화는 모스크바 예술의 거리 아르바트에 있는 추모의 벽(일명 ‘통곡의 벽’)과 제단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조국공연을 앞두고 의문의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영혼은 이 세상에 머물고 있다.     

» <추모의 벽>. 이 벽에는 "그는 살았고, 살고 있고, 살 것이다", "빅토르! 너는 영원히 우리의 심장에 함께 있다",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는 몰라도 빅토르 최는 우리를 바꿨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낡은 벽 앞에서 언제나 울려 퍼지는 노래 ‘끄루빠 끄로위’(혈액형), 그의 배지를 단 젊은이들이 어깨 걸고 부르는 생전의 그의 노래들, 그를 기리는 빽빽한 추모글들, 이곳 그의 제단과 페테르부르크 보코슬로 스코야 클라드비세 묘지를 지키는 마르지 않는 조화들, 그의 이름으로 러시아 곳곳에서 만들어지는 거리들.  

그랬다. 그는 1993년 모스크바 콘서트홀 앞 명예가수의 전당에 장군의 아들이면서 ‘민중의 양심’으로 불렸던 옛소련의 영원한 인민가수 블라디미르 브소츠키(1938~1980) 다음으로 헌액(獻額)되는 영광을 누렸다. 소련 역사를 움직인 13명 가운데 한 명으로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생전의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고난이 뒤따랐고, 가난을 벗지 못했다. 그 역시 세상의 슬픔과 희망을 안고 살아갔던 고려인이었다. 월급 50루블을 받는 청년노동자로 살며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에 내몰린 서러운 조선인의 후예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의 음악혈관에는 이렇듯 고려인의 애환과 꿈이 뒤엉켜 있었다. 낡은 아파트의 보일러실 화부로 일하며 노랫말을 짓고 곡을 만들며 노래를 불렀다. 지금 그 곳은 그를 추모하는 또 하나의 성지가 되고 있다.

음악은 빅토르 최를 이 세상에 발을 딛게 한 힘이었다. 그는 음악에 관한 그 어떠한 교육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천부적인 음악 재능에 더없이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는지도 모른다. 짧다면 짧은 음악활동 10년, 화구의 불꽃과 함께 그의 노래는 점화되기 시작했다. 옛소련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그룹 키노(KINO)는 그의 삶에 날개를 달아줬다. 1984년 핵무기가 없는 땅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한 '나는 선언한다'로 러시아 국제평화재단이 주는 반전가수상을 받기도 했다.  

빅토르 최의 음악은 러시아 펑크록의 대명사다. 그의 노래를 이끄는 선율은 저항과 자유의 음표로 가득 차 있다. 펑크록답게 노랫말도 살아있다. 목소리는 낮고 음울하지만 뿌리를 휘감는 힘이 있다. 대표곡으로 혈액형(группа крови), 변화를 원해(хочу перемен), 마지막 영웅(последний Герой), 전설(легенда), 별(звезда) 등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실패한 개혁’으로 보고 있지만, 옛소련의 해체를 가져왔던 페레스트로이카 전선에 그의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와 인민을 위해 빅토르 최에게 ‘당신의 힘’을 빌려달라고 했다. 위기에 직면한 소련 공산당이 그를 좋아할 리 없었다.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그의 죽음에 ‘암살설’이 뒤따르는 것도 이해가 된다. 페레스트로이카를 노래한 곡으로 <변화를 원해>가 유명하다. 이 노래가 상징하듯 그는 러시아인들이 열망하는 시대의 요구를 거부하지 않는 아이콘이 됐다.

“활활 타오르는 도시에 그늘이 내린다/ 우리의 가슴은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눈은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웃음에/ 우리의 눈물에/ 그리고 우리의 맥박에, 변화!/ 우리는 변화를 기다린다” (빅토르 최의 <변화를 원해>에서)  

1990년 8월 15일, 빅토르 최는 죽었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 아니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옛소련의 진보신문들이 그의 죽음을 알렸고, 명복을 빌었다.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5명의 소련 여성이 목숨을 끊어 그의 저승길에 동행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그가 가는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그의 주검 앞에 눈물을 뿌린 장미꽃을 헌화했다.

빅토르 최가 죽자 이 ‘영웅’을 차지하려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사이에서 국적 논쟁이 벌어졌다. 국적은 러시아로 하되, 출생지는 카자흐스탄으로 ‘반드시 표기’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지만, 지금도 카자흐스탄인들에게 빅토르 최는 영원한 카자흐스탄인이다. 하지만 나라가 없는 슬픈 조선유랑민들에게는 그 역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운명을 살다가 간 고려인이었다.

그의 죽음과 함께 분신이었던 록그룹 키노는 해체됐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여전히 영혼의 날개를 달고 세상을 향해 비상 중이다. 이 젊은 영혼이 갈망했던 꿈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일까. 여전히 궁금하다. 시대가 그에게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09. 02. 28. 

P.S. 기사에서 몇 가지 표기는 착오이다. 러시아 인민가수 '블라디미르 브소츠키'는 '비소츠키'가 맞다(비소츠키의 노래 링크는 http://blog.aladin.co.kr/mramor/1038835). 그리고 빅토르 최의 노래 '혈액형'은 러시아어는 '끄루빠 끄로위’가 아니라 '그룹빠 끄로비'이다(영화 <이글라>에 삽입된 버전으로는 http://www.youtube.com/watch?v=PuQ4Y_MnaFc 참조. 노래 가사에 맞는 버전으론 http://www.youtube.com/watch?v=kXRJkMsIwVg&feature=related) '이글라'는 '(주사)바늘'이란 뜻이다). '변화를 원해'(http://www.youtube.com/watch?v=f9dpPdbnTHA, 라이브는 http://www.youtube.com/watch?v=jyorQevSPI0&feature=related), '마지막 영웅'(http://www.youtube.com/watch?v=3m5peDpAFVs), '전설'(http://www.youtube.com/watch?v=ce3PBE9lUIk), '별'(http://www.youtube.com/watch?v=niTdmRhzyVM) 등도 한번 들어보시길(찾아보니 굉장히 다양한 버전들이다). 마지막은 러시아의 또 다른 젊은 영웅이었던(마찬가지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세르게이 보드로프' 주연의 영화 <형제2>에 삽입된 '마지막 영웅'(http://www.youtube.com/watch?v=m2HPWiqesks&feature=related) 1편에서 러시아 마피아를 상대하던 보드로프가 2편에서 상대하는 건 미국 마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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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2-2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을 읽었는데 거기 "나는 있었다, 나는 있다, 나는 있으리라"라는 말이 나오던데, 추모의 벽에도 비슷한 문구가 나오네요.
인용인것같은데, 누구의 말인지 알수 있을까요.

로쟈 2009-03-01 13:10   좋아요 0 | URL
레닌에게도 그런 말을 쓰죠. 관용화된 표현 같아요...

비로그인 2009-02-2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빅토르최의 노래중에 <엄마, 우린 모두 중환자예요>라는 노래의 가사를 참 좋아했어요.
러시아에서는 키노의 가사를 시집으로 내기도 했다더라구요.
혈액형을 다시 부른 윤도현의 곡은 정말 별로였어요;

로쟈 2009-03-01 13:10   좋아요 0 | URL
네, 빅토르 최 책이 여러 권 나와 있었어요. 좀 허름한 장정들이었지만...

Kir 2009-02-28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때, 러시아 관련 강좌에서 혈액형이랑 마지막 히어로를 들은 적이 있어요. 가사를 알고 들으면서 더욱 그랬지만, 가사를 알기 전에도 -몇번 들려주고 난 뒤에 가사를 알려주셨거든요- 그 애조 띤 음울한 목소리와 그의 생애가 겹쳐져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에 참 우울했습니다.

로쟈 2009-03-01 13:11   좋아요 0 | URL
러시아 강좌도 들으시는군요.^^

파란여우 2009-03-0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쪽 롹 시작하는 젊은이들은 반드시 찾아봐야 할 장소로 빅토르 최의 무덤순례를 한다더군요. 교통사고라고 하지만 그것도 좀 미심쩍은 구석이 많고요, 아무래도 반정부 활동을 하다보니 정황이 묘하게 되었습니다만. 근데 아내와 무덤이 나란히 있는게 아니고 한 구역이긴한데 좀 떨어져 있어서 그렇더군요.

로쟈 2009-03-01 22:16   좋아요 0 | URL
빅토르 최의 무덤에도 가보셨나요?!..

파란여우 2009-03-02 14:33   좋아요 0 | URL
앞으로 갈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ㅎㅎㅎ
텔레비전에서 본겁니다.

로쟈 2009-03-03 00:04   좋아요 0 | URL
꿈이 이루어지시길!^^
 

이번주 시사IN의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씨가 김윤식 선생의 신간 <내가 살아온 한국 현대문학사>(문학과지성사, 2009)를 다루고 있다. 몇 주 전에 책을 사서 서문을 읽어두었는데, 마침 서평은 서문과 표제글에서 언급되고 있는 미국의 경제학자 'W. W. 로스토우'(로스토)의 근대화론,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경제성장 단계론'에 대해 몇 마디 덧붙이고 있다. 개인적으로 로스토우에 대해서는 몇 달 전에 알게 되어 몇 가지 자료조사를 한 적이 있다. 서평기사에 나도 몇 마디 덧붙여본다. 참고로, "논문과 대담을 모은 김윤식의 <내가 살아온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대담은 부경대 국문과 남송우 교수와의 대담 두 꼭지이다. 각각 <일제말기 한국인 학병세대의 체험적 글쓰기론>(서울대출판부, 2007)과 <백철 연구>(소명출판, 2008)가 대담의 화제다.  

시사IN(09. 02. 24) '숨은 신’의 이면 파헤쳐 식민사관 극복하기  

김윤식 교수는 스스로 자신을 ‘벤허선의 노예’로 표현한 적이 있다. 그는 ‘필사적으로’라는 표현에 걸맞게 한국 근대문학과 비평의 현장에서 글쓰기를 멈춘 적이 없다. 비유컨대 그에게 ‘근대’란 ‘숨은 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신에 대한 열망이 크고 높을수록, 그것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절망은 넓고 깊었을 것이다. 



논문과 대담을 모은 김윤식의 <내가 살아온 한국 현대문학사>는 일종의 자전적 고백의 성격도 띠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의 폐허와도 같은 현실 속에서, 그가 어떻게 제로 상태의 한국 근대문학 연구에 매진할 의지를 다질 수 있었는지, 또 그 학문적·비평적 실천의 야심은 무엇이었는지를 이 저작처럼 성실하게 보여주는 책은 없다.

이 책의 여러 논문에서 그는 근대문학 연구를 향한 집념의 뿌리에 ‘식민지 사관’의 극복이 있었음을 밝혔다. 그는 식민지화를 가능케 한 ‘근대’의 성격과 이념에 대한 지적 탐구 경로를 밝히는 한편, 오늘의 중진 자본주의 단계에 도달한 한국의 정치경제학적 현실 속에서 왜 ‘소설’에 대한 관심이 ‘글쓰기’로 전환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논의한다.

소설이야말로 역사적 근대에 조응하는 미학적 양식이었다는 것. 이는 그가 선용하는 게오르그 루카치의 이론이거니와, 오늘과 같은 말기 근대의 성격 변화와 인간적 위엄을 상실한 시민계층의 속물화는 그 미학적 결과로 소설 양식의 쇠락을 초래할 것이다. 1991년 이후의 현실에서 그는 이것을 ‘인간은 벌레다’라는 명제에서 찾았고, 이것이 소설 양식의 쇠락을 대체한 ‘글쓰기’에 대한 탐구로 그를 이끌어, 다시 일제 말기와 광복 공간의 ‘글쓰기’를 야심차게 조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물론 후학의 처지에서 보면, 김윤식의 ‘근대’에 대한 시각 역시 또 다른 비평의 대상이다. 가령 그의 ‘근대 공부’에 충격을 가한 로스토의 <경제성장의 제 단계> 등을 포함한 근대화 이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 한 예다. 로스토의 근대화론은 김윤식은 물론 1960년대 학계에서 ‘근대’를 조망하는 유력한 프리즘 구실을 한 것이 사실이고, 일정한 학문적 성과는 물론 경제개발계획의 이론적 원천으로서 실질 효과를 낳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로스토의 근대화론이란 실제로는 제3세계에 대해 미국의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정책 프로젝트의 하나로 기획한 기술합리적 통치담론(정일준)이었다. 따라서 그것을 가치중립적 보편담론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험하다. 동시에 분단 이후 남북한 문학사를 기술하는 데 ‘원리적으로’ 통일문학사론은 불가능하다는 시각 역시 논쟁의 뇌관을 품고 있는 주장이다.(이명원_문학평론가) 

09. 0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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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사IN] '숨은 신’의 이면 파헤쳐 식민사관 극복하기 / 이명원 (문학평론가)
    from 자기치유 : 간혹 한가한 시간에는 울증이 오지 않습니까? 2009-02-27 19:03 
    김윤식 교수는 스스로 자신을 ‘벤허선의 노예’로 표현한 적이 있다. 그는 ‘필사적으로’라는 표현에 걸맞게 한국 근대문학과 비평의 현장에서 글쓰기를 멈춘 적이 없다. 비유컨대 그에게 ‘근대’란 ‘숨은 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신에 대한 열망이 크고 높을수록, 그것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절망은 넓고 깊었을 것이다. 논문과 대담을 모은 김윤식의 는 일종의 자전적 고백의 성격도 띠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의 폐허와도 같은 현실 속..
 
 
베토벤 2009-02-27 14:12   좋아요 0 | URL
어느새 10년에 가까운 일이 되어버렸지만, 김윤식 선생의 책에 대한 이명원씨의 서평. 묘한 기분이 드는군요. ^^

로쟈 2009-02-28 11:44   좋아요 0 | URL
흠을 잡을 순 있지만, 너무 업적이 많은 분이예요...

2009-02-27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8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2-28 00:20   좋아요 0 | URL
이명원과 김윤식...하하하...궁금하군요.
로스토우가 베트남전 때 경제성장의 단계론에 입각해 초강경 외교정책을 직접 입안했고 그때문에 그 인상을 절대 못지우더라구요.근대화론자도 여러명이 있지만 로스토우가 워낙 악명이 높은 탓에 근대화론 자체에 부정적 인상을 받은 사람도 많을 거예요.우리나라에서는 리영희<전환시대의 논리>에 나오는 베트남 전쟁 으로 알려졌지요.리영희는 그를 최악의 지식인으로 평가했습니다.그런데 베트남전 다룬 책들은 로스토우를 별로 좋게 안 보더라구요.한일 국교정상화 때도 막후 인물로도 활동했고 우리나라에도 종종 왔지요.

로쟈 2009-02-28 11:41   좋아요 0 | URL
네, 박태균 교수의 논문들을 읽어보니 그랬더군요. 단행본 분량의 책이 나오면 좋겠어요. 박태균 교수가 직접 인터뷰도 몇 차례 가졌는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아쉬워하더라구요...

노이에자이트 2009-02-28 17:12   좋아요 0 | URL
박태균 씨가 인터뷰할 때까지 그가 살았군요.저한테 로스토우가 1983년 가을에 방한했을 때 한국경제에 대한 신동아와의 인터뷰가 있는데 그때도 나이가 들었더라구요.
박태균 씨가 한 인터뷰에선 무슨 문답이 오고 갔을까요? 성향으로 볼 때 로스토우에 호의적이지는 않을 것 같아요.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에 관해서는 간혹 들어본 적이 있지만 단행본 글모음집까지 펴낸 줄은 모르고 있었다. 이번에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고마움>(채륜, 2009)이란 책이 나왔길래 검색해보다가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사무침>(푸른사상, 2008)이 작년에 먼저 나온 걸 알게 됐다.

  

별로 주의를 끌지 못한 친목 '학회지'인 것처럼도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는 주제여서 목차라도 읽어본다.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사무침

출판에 부치는 글 - 우리말로 학문하기 글쓰기의 잣대

첫째 벼리 우학모의 뜻 밝히기

우리 말글로 문학글 쓰기 - 정현기
이성과 언어의 소통 - 이기상
인문학의 빈곤과 어정쩡한 말의 혁명 - 최봉영
자기 말로 학문한 사례 소개 - 유재원

둘째 벼리 우리말글이 처한 현실 살피기

내가 우리말과 함께 살아온 이야기 - 백기완
언어 제국주의를 넘어서 - 이상규
『배달말꽃』으로 본 토박이말 살리기 - 김수업
국어사전을 통해 본 학술용어 - 조재수
월 안의 아라비아 숫자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 김영환

셋째 벼리 우리말글과 번역의 문제

번역, 옮김인가 뒤침인가 - 구연상
우리내부에서의 영어의 위상과 그 문제점에 대한 비판적 검토 - 김유중
번역 문화의 전통과 우리말로 학문하기 - 김영환
일본 근대 번역한자어의 성립과 한국 수용 - 최경옥

넷빼 벼리 우리말글로 법령 만들기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의 성과와 전망 - 김희진
판결문과 우리말 - 김한성
세계화, 지역화의 물결과 법령의 한글표기 - 심희기

다섯째 벼리 우리말글 가르치기

'한말글(국어)' 배움책의 갈말 바로 잡기 - 김두루한
도덕과 교과서 쓰임말에 대한 연구 - 박영하
교육무늬결(과정) 말글살이 생명힘 북돋우기 - 염시열

여섯째 벼리 우리말글로 학문하기의 한 본보기를 찾아서

권태의 철학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고마움 

우리말로 배워 글 쓰는 일의 어려움과 즐거움

01 첫째 벼리 외침
새 정부의 언어 정책을 꾸짖는 외침
모두 잠깨어 일어날 때, 눈을 반짝 뜨고 바라볼 때
왕명에 의해 만들어진 훈민정음이 공용문서로 쓰이지 못한 이유
직업, 학문, 문학, 교육
우리말로 학문하기
우리말로 철학하기의 밑그림
우리말로 문화 읽기가 필요한 몇 가지 이유
영국 종교개혁에서 토착어(영어)의 역할
메이지기 individual이 個人으로 번역되기까지

02 둘째 벼리 불림
글쓰기와 사무침
한국인에게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예 철학하기의 방법에 대한 한 애벌그림 그리기

03 셋째 벼리 원전찾기
세종 때 두 노래가 우리말글 살이에 끼친 은덕
석보상절로 본 우리말 줄글 표현
노래의 샘, 말의 길
오규원의 날이미지시와 상징어의 기능  

자칫 우리말로 학문하기가 '토박이말 살려쓰기' 차원에서 이해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게 하지만, 학문과 말(언어)이라는 문제 자체, 내지는 학문(특히 인문학)의 언어의존성 문제는 깊이 숙고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몇몇 주제의 글을 조만간 읽어보고 싶다(<번역어 성립사정>과 <감염된 언어>, <번역의 탄생> 등이 같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적어도 내 관심의 계보는 그렇다)... 

09. 0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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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9-02-26 19:51   좋아요 0 | URL
우리내부에서의 영어의 위상과 그 문제점에 대한 비판적 검토...
우리말에 대한 책에도 저런 제목이 나오는군요
뭐뭐의 문제점, 하면 벌써 그게 검토하는 것인데 '~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왜들 그렇게 좋아하는 것인지.

로쟈 2009-02-27 00:10   좋아요 0 | URL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례네요.^^;
 

생소한 이름의 프랑스 작가 외젠 다비(1898-1936)의 소설 <북호텔>(강, 2009)이 번역돼 나왔다. 마르셀 카르네 감독의 영화 <북호텔>(1938)의 원작소설이라고 하는데, 작가 다비는 프랑스에서도 잊혀진 작가였다가 지난 80년대말부터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한다.   

빈민의 아들로 태어나 육체노동에 종사했으며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노동자 출신의 민중주의 소설가'라고 하니 얼핏 막심 고리키를 연상케도 한다. 1936년 앙드레 지드 등과 소련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원인 모를 병에 걸려서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데, 1936년은 고리키도 운명을 달리한 해이다. 그가 죽은 뒤 장 게에노, 앙드레 지드, 장 지오노, 앙드레 모루아, 모리스 바레스 등이 그에 대한 추모의 글을 썼다고 하니까 나름 당대의 명사였다. 루이 페르디낭 셀린은 <북호텔>을 읽고서 <밤의 끝으로의 여행>을 끝낼 수 있었다고 하니까 나란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다비는 1929년에 발표한 <북호텔>로 1931년 '민중주의 소설상'을 최초로 수상했다고 한다. 비록 '공산주의자'나 '민중주의자'란 꼬리표를 그 스스로는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의 어떤 '경향'만큼 민중주의란 이름에 값하는 게 아닌가 싶다. 고리키에다 덕분에 생각난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공선>까지 넣어서 리스트로 묶어놓는다(*찾아보니 <북호텔>은 1950년대에 출간된 적이 있다. 원윤수 역, <북호텔>(신양사, 1958)이 그것인데, 70년대엔 삼중당문고본으로도 출간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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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다비 지음, 유기환 옮김 / 강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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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페르디낭 셀린 지음, 이형식 옮김 / 동문선 / 2004년 10월
19,000원 → 17,100원(10%할인) / 마일리지 950원(5% 적립)
2009년 02월 26일에 저장
구판절판
어머니
막심 고리키 지음, 최윤락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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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범우비평세계문학선 55-1
막심 고리키 지음, 김현택 옮김 / 범우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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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이] 2009-02-26 10:56   좋아요 0 | URL
고리키의 "어머니"는 꼭 읽어보고싶은 작품이에요. 어떤 번역본이 가장 괜찮을까요?

로쟈 2009-02-26 11:41   좋아요 0 | URL
열린책들판이 저렴한데요.^^ 범우사판도 저는 갖고 있지만 읽어보진 않았습니다...

2009-02-26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7 0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6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7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2-26 23:51   좋아요 0 | URL
고전 영화 소개집 같은 데에 반드시 나오는 <북호텔>.지드와 함께 소련여행을 갔군요.셀린느에게 영향을 주었고...이런 정보를 얻는 것도 인터넷하는 즐거움이지요.

로쟈 2009-02-27 00:09   좋아요 0 | URL
네, 지드랑. 지드의 <소련여행기>도 다시 나왔으면 싶은데요...

노이에자이트 2009-02-27 23:38   좋아요 0 | URL
광주엔 시내 도서관에 소련여행이 있더라구요.

로쟈 2009-02-28 14:46   좋아요 0 | URL
네, 대학도서관에도 책은 있지만, 번듯하게 다시 나왔으면 좋겠어요...

2009-02-27 0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2-27 10:21   좋아요 0 | URL
북호텔이 번역되어 나왔군요. 생투 드리고 싶은데 안되네요 ^^;;
추천하신대로 밤끝으로의여행과 나란히 읽어보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로쟈 2009-02-28 11:45   좋아요 0 | URL
네, 셀린 책은 저도 아직 못 읽었는데, 제가 러시아어본도 갖고 있답니다.^^;
 

'권력에 대한 복종'(http://blog.aladin.co.kr/mramor/2622498)이 일반적인 현상이라면 '강부자 정권'에 대한 저소득층의 지지는 '한국적인' 현상이다. 둘다 우울한 사실이긴 하나 부정할 수도 없기에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계급 배반적' 유권자들이 좋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는 없을 것이니까(피학적일 만큼 권력에 순응했던 러시아 민중들을 한 문화사가가 '노예의 영혼'이라고 부른 게 생각난다)...  

» <한겨레21> 여론조사 결과 저소득층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가장 높았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지지를 보내는 현상을 흔히 ‘계급배반’이라고 한다. 서울 상계4동 양지마을 전경

한겨레21(09. 02. 20) MB의 든든한 지지층, 저소득층  

이명박 정권을 비판할 때 흔히 ‘강부자 정권’이라는 표현을 쓴다. 서울 강남의 땅부자 정권이라는 뜻이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정책을 보면 ‘강부자 정권’의 면모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완화와 부동산 규제 완화를 통해 강남 부유층의 숨통을 트이게 해줬다. 금산분리 완화와 공공부문 민영화도 거대 기업과 일부 부유층에게만 혜택이 집중되는 정책이다. 비정규직법 완화와 최저임금제 개악 시도, 교육 자율화 등은 반대로 저소득층의 경제적 부담을 더욱 증폭시킬 전망이다. 

못했다, 저소득층 49%-고소득층 59.4%

서민 생활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복지예산은 어떻게 됐을까? 대부분 크게 후퇴했다. 올해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7조1427억원으로, 7조2716억원(추가경정예산 포함)이던 지난해 예산보다 1289억원이 줄었다. 장애인 수당도 지난해보다 413억원이 감소했다. 고령자를 위한 노인 돌봄 서비스 예산도 크게 깎였다.

‘강부자 정권’과 서민 사이의 거리는 이렇게 멀었다. 하지만 <한겨레21>이 2월6~7일 서울 시민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지난 1년간의 경험을 배반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평가를 묻는 질문에서 이 대통령에게 가장 후한 점수를 준 계층은 저소득층이었다(도표 참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가구당 월소득 25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 가운데 42.9%는 이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했다고 평가했다. 못했다고 본 사람은 49%였다. 반면 월소득 251만~400만원 구간에서는 33.3%의 응답자가 잘했다고 대답했고, 62.7%가 못했다고 지적했다. 401만원 이상의 고소득자들도 ‘잘했다’가 33.5%, ‘못했다’가 59.4%였다.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서민이 강부자 정권의 가장 든든한 지지층’으로 나타난 것이다.

저소득층은 이명박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현 정부의 교육정책과 종부세 완화, 미네르바 구속 등 거의 모든 평가 항목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적 견해를 보였다. 양대웅 나우리서치 이사는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양극화 심화 이후 저소득층이 정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보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현 정부가 종부세를 완화하고 복지 지출을 축소해 저소득층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지적이 있지만, 한번 형성된 여론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민이 이명박 대통령을 ‘더 많이’ 지지하는 흐름은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한겨레>가 1월31일 전국의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정기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월소득 200만원 미만의 저소득층(42.3%)에서 평균(34.8%)보다 높았다. 200만~400만원(33.3%)과 400만원 이상(31.4%) 계층에서는 잘한다고 대답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정치인이나 정당에 표를 주는 행위를 흔히 ‘계급배반’ 투표라고 한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제 개악을 시도하는 이명박 정부에 지지를 보내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계급배반 투표는 지난해 4월 18대 총선에서도 나타났다. 대표적인 지역구가 서울 노원병이었다. 총선 직전인 3월24일 한국방송 여론조사에서 당시 노회찬 진보신당 후보(32.6%)는 홍정욱 한나라당 후보(25.6%)보다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월소득 100만원 이하 저소득층에서는 홍 후보(34.7%)가 노 후보(13.3%)보다 높았다.   

과거 보수 정권은 민생고를 해결했다  

지난 수년간 진보개혁 진영을 가장 당혹스럽게 만든 부분도 바로 ‘계급배반의 역설’이었다. 한성욱 진보신당 부집행위원장은 “저소득층이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펴는 서민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펴는 한나라당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며 “매우 역설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에서는 매우 일반적 현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성장 위주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럼에도 ‘계급배반’의 역설이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역사적 경험에 원인을 돌렸다. “서민의 시각으로 볼 때 보수 정권은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즉 민생고를 해결해줬다. 박정희 정권은 어쨌든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줬고, 전두환 정권은 물가를 잡아 생계 부담을 줄여줬다. 진보개혁 세력은 민주화를 실현해줬을지 몰라도 정권을 잡은 10년간 양극화가 심해졌다. 서민들은 아직 그들을 ‘나라 말아먹은 세력’으로 보고 있다.”

택시 운전을 하는 강아무개(50대 중반)씨도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2월11일 만난 강씨는 중소기업에 근무하다 5년 전부터 개인택시를 운전하고 있다. 이틀에 한 번꼴로 하루 12시간씩 운전대를 잡는 그의 한 달 수입은 200만원 안팎이다. 강씨는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에게 많은 기대를 했는데 그들이 집권한 기간에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다”며 “일자리도 갈수록 줄어 아파트 경비 자리라도 얻으려면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강씨는 “우리 같은 서민이 살기에는 요즘 너무 어렵다”면서도 세계적인 불황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기대만큼 경제를 살리지 못하고 있지만 올 하반기가 지나면 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적 능력과 학력·연령의 상관관계도 중요하다. 여론조사 업계에서는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연령은 높고 학력이 낮은 경우가 많다고 본다. 이번 <한겨레21> 여론조사에서도 50살 이상에서는 250만원 이하 저소득층(47.1%)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연령별 국정운영 지지도에서 50살 이상(55.8%)은 19~29살(18.8%)이나 30~40대(26.1%)와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학력별로도 중졸 이하(57.4%)와 고졸(32.2%) 및 대재 이상(30.2%)이 확연히 나뉘었다. 홍형식 소장은 “저소득층은 대개 연령이 높고 학력이 낮기 때문에 인권·민주화·평등·분배 등 진보적 가치를 제대로 ‘학습’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며 “반면 보수 정당이 강조하는 선진화와 법질서, 경제성장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저소득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주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보 수준이 낮은 유권자’(LIV·Low Information Voter)이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LIV는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구체적 정보가 부족하면서도 강한 정치혐오증을 지니고 있고, 반면 투표장에는 꼬박꼬박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주로 교육 수준이 낮은 저소득층이 LIV로 분류된다. 미국 여론조사 업계에서는 전체 유권자의 5분의 3인 7500만 명을 LIV로 보고 있다.

미국에서 정치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김윤재 변호사는 “미국 민주당이 서민을 위한 정책을 더 많이 갖고 있는데 남부의 백인 노동자가 공화당을 더 많이 찍는 이유도 LIV와 일정 부분 관계가 있다”며 “정책적 측면만 주목한다면 계급배반 현상을 LIV로 설명할 수 있지만, 아울러 정치인과 정당이 자신들의 정책을 충분히 홍보하지 못한 책임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 2008년 10월 원혜영 원내대표(왼쪽에서 두 번째)를 비롯한 민주당 당직자들이 종부세 폐지 반대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오히려 저소득층이 종부세 완화에 가장 높은 지지(56.3%)를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장 이데올로기의 환상

서민이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를 전적으로 그들의 ‘오해’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중산층과 서민을 대변한다고 자처하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이 저소득층을 위해 제대로 역할을 해본 경험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주간(정치학 박사)은 서민의 이 대통령 지지를 ‘계급배반’으로 이해하는 견해에 반대했다. 여론조사는 언제나 정치적 조건을 고려해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박 주간의 주장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 결과나 여론조사 결과를 시민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정당이 형편없으면 유권자의 선택도 형편없을 수밖에 없다. 진보 정당이 대안이라고 생각됐다면 서민이 보수 정권을 더 많이 지지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저소득층과 노동자가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경험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정치의 중심은 대개 중산층이었다. 게다가 정당 분포 자체가 보수 편향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소득층의 정치 성향이 보수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지적이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전문위원은 서민층의 보수화를 사회 안전망의 축소와 연관지었다. 한 위원은 “정부 차원에서 마련해놓은 사회 안전망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보니 서민들은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보수적 선택을 하는 역설적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게다가 과거 박정희 정권을 통해 성장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되면서 서민층이 사회 안전망 확대를 통한 탈출보다 성장주의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서민이 진보개혁 진영을 대안세력으로 여기지 않고, 진보개혁 정당은 서민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악순환’이라고 표현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 등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정당의 경우 시의원이나 구의원 활동을 통해 구체적 성과를 보여줬어야 하는데 그런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는 것이 우 대변인의 말이다.

“서민이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정권에 대한 지지라기보다 ‘먹고살기 힘드니 경제를 살려달라’는 표현으로 보고 싶다. 우리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노동자와 서민에게 주장하고 싶어도 당장은 힘든 게 사실이다. 현재의 정치 구도만 탓할 게 아니라, 진보 정당 스스로 끊임없이 실력을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최성진기자) 

09. 0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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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2-26 00:06   좋아요 0 | URL
님은 나를 버렸지만 나는 님을 버리지 않겠나이다...하는 시가 생각나는군요.

로쟈 2009-02-26 11:45   좋아요 0 | URL
유권자들만의 책임은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실망스러운 건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