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홈피에서 며칠 전 블로그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41050.html). 작성자는 '내 마음속의 굴렁쇠'님이고, 러시아 록음악의 전설 '빅토르 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기사에 이미지 몇 개를 추가했다). 빅토르 최의 노래는 나도 자주 유튜브에서 찾아듣는 편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어제 책 정리를 하다 보니까 빅토르 최에 대한 러시아어 평전도 눈에 띄었는데(러시아에는 여러 종이 출간돼 있다), 국내에도 그럴 듯한 규모의 책이 소개되면 좋겠다. 키노(빅토르 최)의 노래 링크는 '키노-슬픔-젬피라'(http://blog.aladin.co.kr/mramor/1735750) 참조.   

한겨레(09, 02, 26) [블로그] 빅토르 최, 그는 살아 있다

“오늘 나는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

자유와 저항을 노래했던 음유시인 빅토르 최(Виктор Цой, Victor choi)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말 그대로 불꽃 같이 살다간 청년이다. 그에게는 조선의 피가 흐른다. 1962년 그가 태어난 나라는 카자흐스탄공화국. 아버지는 고려인 2세며,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사람이다. 강제이주 70년 고려인의 삶을 더듬던 나에게 이 젊은 요절가수는 계단 끝 비상구와 같은 존재다.

Igla.jpg picture by vkovalch 

까레이스키 3세, 그는 옛소련의 전설적인 록가수다. 영화에도 출연했다.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그를 가리켜 ‘마지막 영웅’(Last Hero)이라 부른다. 이러한 믿음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언제나 그리워하고 지금도 빅토르 최가 남긴 흔적을 태양의 흑점으로 여기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바뀐 것이라면 빅토르 최는 죽었고 추모의 주인공이 됐다는 사실 뿐이다.

빅토르 최의 신화는 모스크바 예술의 거리 아르바트에 있는 추모의 벽(일명 ‘통곡의 벽’)과 제단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조국공연을 앞두고 의문의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영혼은 이 세상에 머물고 있다.     

» <추모의 벽>. 이 벽에는 "그는 살았고, 살고 있고, 살 것이다", "빅토르! 너는 영원히 우리의 심장에 함께 있다",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는 몰라도 빅토르 최는 우리를 바꿨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낡은 벽 앞에서 언제나 울려 퍼지는 노래 ‘끄루빠 끄로위’(혈액형), 그의 배지를 단 젊은이들이 어깨 걸고 부르는 생전의 그의 노래들, 그를 기리는 빽빽한 추모글들, 이곳 그의 제단과 페테르부르크 보코슬로 스코야 클라드비세 묘지를 지키는 마르지 않는 조화들, 그의 이름으로 러시아 곳곳에서 만들어지는 거리들.  

그랬다. 그는 1993년 모스크바 콘서트홀 앞 명예가수의 전당에 장군의 아들이면서 ‘민중의 양심’으로 불렸던 옛소련의 영원한 인민가수 블라디미르 브소츠키(1938~1980) 다음으로 헌액(獻額)되는 영광을 누렸다. 소련 역사를 움직인 13명 가운데 한 명으로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생전의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고난이 뒤따랐고, 가난을 벗지 못했다. 그 역시 세상의 슬픔과 희망을 안고 살아갔던 고려인이었다. 월급 50루블을 받는 청년노동자로 살며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에 내몰린 서러운 조선인의 후예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의 음악혈관에는 이렇듯 고려인의 애환과 꿈이 뒤엉켜 있었다. 낡은 아파트의 보일러실 화부로 일하며 노랫말을 짓고 곡을 만들며 노래를 불렀다. 지금 그 곳은 그를 추모하는 또 하나의 성지가 되고 있다.

음악은 빅토르 최를 이 세상에 발을 딛게 한 힘이었다. 그는 음악에 관한 그 어떠한 교육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천부적인 음악 재능에 더없이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는지도 모른다. 짧다면 짧은 음악활동 10년, 화구의 불꽃과 함께 그의 노래는 점화되기 시작했다. 옛소련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그룹 키노(KINO)는 그의 삶에 날개를 달아줬다. 1984년 핵무기가 없는 땅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한 '나는 선언한다'로 러시아 국제평화재단이 주는 반전가수상을 받기도 했다.  

빅토르 최의 음악은 러시아 펑크록의 대명사다. 그의 노래를 이끄는 선율은 저항과 자유의 음표로 가득 차 있다. 펑크록답게 노랫말도 살아있다. 목소리는 낮고 음울하지만 뿌리를 휘감는 힘이 있다. 대표곡으로 혈액형(группа крови), 변화를 원해(хочу перемен), 마지막 영웅(последний Герой), 전설(легенда), 별(звезда) 등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실패한 개혁’으로 보고 있지만, 옛소련의 해체를 가져왔던 페레스트로이카 전선에 그의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와 인민을 위해 빅토르 최에게 ‘당신의 힘’을 빌려달라고 했다. 위기에 직면한 소련 공산당이 그를 좋아할 리 없었다.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그의 죽음에 ‘암살설’이 뒤따르는 것도 이해가 된다. 페레스트로이카를 노래한 곡으로 <변화를 원해>가 유명하다. 이 노래가 상징하듯 그는 러시아인들이 열망하는 시대의 요구를 거부하지 않는 아이콘이 됐다.

“활활 타오르는 도시에 그늘이 내린다/ 우리의 가슴은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눈은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의 웃음에/ 우리의 눈물에/ 그리고 우리의 맥박에, 변화!/ 우리는 변화를 기다린다” (빅토르 최의 <변화를 원해>에서)  

1990년 8월 15일, 빅토르 최는 죽었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 아니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옛소련의 진보신문들이 그의 죽음을 알렸고, 명복을 빌었다.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5명의 소련 여성이 목숨을 끊어 그의 저승길에 동행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그가 가는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그의 주검 앞에 눈물을 뿌린 장미꽃을 헌화했다.

빅토르 최가 죽자 이 ‘영웅’을 차지하려는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사이에서 국적 논쟁이 벌어졌다. 국적은 러시아로 하되, 출생지는 카자흐스탄으로 ‘반드시 표기’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지만, 지금도 카자흐스탄인들에게 빅토르 최는 영원한 카자흐스탄인이다. 하지만 나라가 없는 슬픈 조선유랑민들에게는 그 역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운명을 살다가 간 고려인이었다.

그의 죽음과 함께 분신이었던 록그룹 키노는 해체됐다. 그러나 그의 노래는 여전히 영혼의 날개를 달고 세상을 향해 비상 중이다. 이 젊은 영혼이 갈망했던 꿈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일까. 여전히 궁금하다. 시대가 그에게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09. 02. 28. 

P.S. 기사에서 몇 가지 표기는 착오이다. 러시아 인민가수 '블라디미르 브소츠키'는 '비소츠키'가 맞다(비소츠키의 노래 링크는 http://blog.aladin.co.kr/mramor/1038835). 그리고 빅토르 최의 노래 '혈액형'은 러시아어는 '끄루빠 끄로위’가 아니라 '그룹빠 끄로비'이다(영화 <이글라>에 삽입된 버전으로는 http://www.youtube.com/watch?v=PuQ4Y_MnaFc 참조. 노래 가사에 맞는 버전으론 http://www.youtube.com/watch?v=kXRJkMsIwVg&feature=related) '이글라'는 '(주사)바늘'이란 뜻이다). '변화를 원해'(http://www.youtube.com/watch?v=f9dpPdbnTHA, 라이브는 http://www.youtube.com/watch?v=jyorQevSPI0&feature=related), '마지막 영웅'(http://www.youtube.com/watch?v=3m5peDpAFVs), '전설'(http://www.youtube.com/watch?v=ce3PBE9lUIk), '별'(http://www.youtube.com/watch?v=niTdmRhzyVM) 등도 한번 들어보시길(찾아보니 굉장히 다양한 버전들이다). 마지막은 러시아의 또 다른 젊은 영웅이었던(마찬가지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세르게이 보드로프' 주연의 영화 <형제2>에 삽입된 '마지막 영웅'(http://www.youtube.com/watch?v=m2HPWiqesks&feature=related) 1편에서 러시아 마피아를 상대하던 보드로프가 2편에서 상대하는 건 미국 마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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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2-2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로자 룩셈부르크 평전을 읽었는데 거기 "나는 있었다, 나는 있다, 나는 있으리라"라는 말이 나오던데, 추모의 벽에도 비슷한 문구가 나오네요.
인용인것같은데, 누구의 말인지 알수 있을까요.

로쟈 2009-03-01 13:10   좋아요 0 | URL
레닌에게도 그런 말을 쓰죠. 관용화된 표현 같아요...

비로그인 2009-02-2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빅토르최의 노래중에 <엄마, 우린 모두 중환자예요>라는 노래의 가사를 참 좋아했어요.
러시아에서는 키노의 가사를 시집으로 내기도 했다더라구요.
혈액형을 다시 부른 윤도현의 곡은 정말 별로였어요;

로쟈 2009-03-01 13:10   좋아요 0 | URL
네, 빅토르 최 책이 여러 권 나와 있었어요. 좀 허름한 장정들이었지만...

Kir 2009-02-28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때, 러시아 관련 강좌에서 혈액형이랑 마지막 히어로를 들은 적이 있어요. 가사를 알고 들으면서 더욱 그랬지만, 가사를 알기 전에도 -몇번 들려주고 난 뒤에 가사를 알려주셨거든요- 그 애조 띤 음울한 목소리와 그의 생애가 겹쳐져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에 참 우울했습니다.

로쟈 2009-03-01 13:11   좋아요 0 | URL
러시아 강좌도 들으시는군요.^^

파란여우 2009-03-01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쪽 롹 시작하는 젊은이들은 반드시 찾아봐야 할 장소로 빅토르 최의 무덤순례를 한다더군요. 교통사고라고 하지만 그것도 좀 미심쩍은 구석이 많고요, 아무래도 반정부 활동을 하다보니 정황이 묘하게 되었습니다만. 근데 아내와 무덤이 나란히 있는게 아니고 한 구역이긴한데 좀 떨어져 있어서 그렇더군요.

로쟈 2009-03-01 22:16   좋아요 0 | URL
빅토르 최의 무덤에도 가보셨나요?!..

파란여우 2009-03-02 14:33   좋아요 0 | URL
앞으로 갈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ㅎㅎㅎ
텔레비전에서 본겁니다.

로쟈 2009-03-03 00:04   좋아요 0 | URL
꿈이 이루어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