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의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씨가 김윤식 선생의 신간 <내가 살아온 한국 현대문학사>(문학과지성사, 2009)를 다루고 있다. 몇 주 전에 책을 사서 서문을 읽어두었는데, 마침 서평은 서문과 표제글에서 언급되고 있는 미국의 경제학자 'W. W. 로스토우'(로스토)의 근대화론,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경제성장 단계론'에 대해 몇 마디 덧붙이고 있다. 개인적으로 로스토우에 대해서는 몇 달 전에 알게 되어 몇 가지 자료조사를 한 적이 있다. 서평기사에 나도 몇 마디 덧붙여본다. 참고로, "논문과 대담을 모은 김윤식의 <내가 살아온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대담은 부경대 국문과 남송우 교수와의 대담 두 꼭지이다. 각각 <일제말기 한국인 학병세대의 체험적 글쓰기론>(서울대출판부, 2007)과 <백철 연구>(소명출판, 2008)가 대담의 화제다.  

시사IN(09. 02. 24) '숨은 신’의 이면 파헤쳐 식민사관 극복하기  

김윤식 교수는 스스로 자신을 ‘벤허선의 노예’로 표현한 적이 있다. 그는 ‘필사적으로’라는 표현에 걸맞게 한국 근대문학과 비평의 현장에서 글쓰기를 멈춘 적이 없다. 비유컨대 그에게 ‘근대’란 ‘숨은 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신에 대한 열망이 크고 높을수록, 그것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절망은 넓고 깊었을 것이다. 



논문과 대담을 모은 김윤식의 <내가 살아온 한국 현대문학사>는 일종의 자전적 고백의 성격도 띠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의 폐허와도 같은 현실 속에서, 그가 어떻게 제로 상태의 한국 근대문학 연구에 매진할 의지를 다질 수 있었는지, 또 그 학문적·비평적 실천의 야심은 무엇이었는지를 이 저작처럼 성실하게 보여주는 책은 없다.

이 책의 여러 논문에서 그는 근대문학 연구를 향한 집념의 뿌리에 ‘식민지 사관’의 극복이 있었음을 밝혔다. 그는 식민지화를 가능케 한 ‘근대’의 성격과 이념에 대한 지적 탐구 경로를 밝히는 한편, 오늘의 중진 자본주의 단계에 도달한 한국의 정치경제학적 현실 속에서 왜 ‘소설’에 대한 관심이 ‘글쓰기’로 전환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논의한다.

소설이야말로 역사적 근대에 조응하는 미학적 양식이었다는 것. 이는 그가 선용하는 게오르그 루카치의 이론이거니와, 오늘과 같은 말기 근대의 성격 변화와 인간적 위엄을 상실한 시민계층의 속물화는 그 미학적 결과로 소설 양식의 쇠락을 초래할 것이다. 1991년 이후의 현실에서 그는 이것을 ‘인간은 벌레다’라는 명제에서 찾았고, 이것이 소설 양식의 쇠락을 대체한 ‘글쓰기’에 대한 탐구로 그를 이끌어, 다시 일제 말기와 광복 공간의 ‘글쓰기’를 야심차게 조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물론 후학의 처지에서 보면, 김윤식의 ‘근대’에 대한 시각 역시 또 다른 비평의 대상이다. 가령 그의 ‘근대 공부’에 충격을 가한 로스토의 <경제성장의 제 단계> 등을 포함한 근대화 이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 한 예다. 로스토의 근대화론은 김윤식은 물론 1960년대 학계에서 ‘근대’를 조망하는 유력한 프리즘 구실을 한 것이 사실이고, 일정한 학문적 성과는 물론 경제개발계획의 이론적 원천으로서 실질 효과를 낳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로스토의 근대화론이란 실제로는 제3세계에 대해 미국의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정책 프로젝트의 하나로 기획한 기술합리적 통치담론(정일준)이었다. 따라서 그것을 가치중립적 보편담론으로 간주하는 것은 위험하다. 동시에 분단 이후 남북한 문학사를 기술하는 데 ‘원리적으로’ 통일문학사론은 불가능하다는 시각 역시 논쟁의 뇌관을 품고 있는 주장이다.(이명원_문학평론가) 

09. 0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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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사IN] '숨은 신’의 이면 파헤쳐 식민사관 극복하기 / 이명원 (문학평론가)
    from 자기치유 : 간혹 한가한 시간에는 울증이 오지 않습니까? 2009-02-27 19:03 
    김윤식 교수는 스스로 자신을 ‘벤허선의 노예’로 표현한 적이 있다. 그는 ‘필사적으로’라는 표현에 걸맞게 한국 근대문학과 비평의 현장에서 글쓰기를 멈춘 적이 없다. 비유컨대 그에게 ‘근대’란 ‘숨은 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신에 대한 열망이 크고 높을수록, 그것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절망은 넓고 깊었을 것이다. 논문과 대담을 모은 김윤식의 는 일종의 자전적 고백의 성격도 띠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의 폐허와도 같은 현실 속..
 
 
베토벤 2009-02-27 14:12   좋아요 0 | URL
어느새 10년에 가까운 일이 되어버렸지만, 김윤식 선생의 책에 대한 이명원씨의 서평. 묘한 기분이 드는군요. ^^

로쟈 2009-02-28 11:44   좋아요 0 | URL
흠을 잡을 순 있지만, 너무 업적이 많은 분이예요...

2009-02-27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8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2-28 00:20   좋아요 0 | URL
이명원과 김윤식...하하하...궁금하군요.
로스토우가 베트남전 때 경제성장의 단계론에 입각해 초강경 외교정책을 직접 입안했고 그때문에 그 인상을 절대 못지우더라구요.근대화론자도 여러명이 있지만 로스토우가 워낙 악명이 높은 탓에 근대화론 자체에 부정적 인상을 받은 사람도 많을 거예요.우리나라에서는 리영희<전환시대의 논리>에 나오는 베트남 전쟁 으로 알려졌지요.리영희는 그를 최악의 지식인으로 평가했습니다.그런데 베트남전 다룬 책들은 로스토우를 별로 좋게 안 보더라구요.한일 국교정상화 때도 막후 인물로도 활동했고 우리나라에도 종종 왔지요.

로쟈 2009-02-28 11:41   좋아요 0 | URL
네, 박태균 교수의 논문들을 읽어보니 그랬더군요. 단행본 분량의 책이 나오면 좋겠어요. 박태균 교수가 직접 인터뷰도 몇 차례 가졌는데,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아쉬워하더라구요...

노이에자이트 2009-02-28 17:12   좋아요 0 | URL
박태균 씨가 인터뷰할 때까지 그가 살았군요.저한테 로스토우가 1983년 가을에 방한했을 때 한국경제에 대한 신동아와의 인터뷰가 있는데 그때도 나이가 들었더라구요.
박태균 씨가 한 인터뷰에선 무슨 문답이 오고 갔을까요? 성향으로 볼 때 로스토우에 호의적이지는 않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