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서 거의 잊혀진 조각가 권진규의 회고전이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다. 작가의 사진을 보고서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기억을 떠올렸을 정도. 이번이 최대 규모의 전시회라고 하니까 모처럼 이 겨울에 걸맞은 한 철저한 예술혼과 대면할 좋은 기회가 될 듯싶다.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국일보(09. 12. 22) "인생은 공, 파멸"… 인물상에 깃든 영원한 삶 

한국 근대조각의 선구자로 꼽히는 권진규(1922~1973ㆍ사진) 회고전이 22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 개막했다. 얼굴상과 동물상 등 조각 100점, 드로잉 40점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 전체를 조명하는 이번 전시는 그간 국내에서 열린 권진규 전시 중 최대 규모다. 대학 졸업작품인 '나부'(1953) 등 처음 공개되는 작품도 16점 포함됐다. 



이번 전시는 일본에서 비롯됐다. 권진규의 모교인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이 개교 80주년을 맞아 이 대학 출신 대표 작가로 권진규를 꼽으면서, 지난 10월부터 이달 초까지 도쿄 국립근대미술관과 무사시노미대에서 동시에 전시를 열었다.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에서 한국 작가의 개인전이 열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일본의 두 전시를 합친 것이 덕수궁미술관의 권진규전이다. 전시는 대학 재학 시절 제작한 작품, 인물상, 자소상, 부조, 동물상으로 나뉘어진다. 인물상의 경우 머리와 목 아래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유난히 긴 목선과 무표정하지만 강렬한 눈빛으로 시선을 잡는 권진규 특유의 기법이 뚜렷하다. 



'애자' '명자' 등 각기 다른 이름이 붙어있지만, 그 얼굴들은 특정 인물의 것이 아니라 작가가 추구한 순수와 영원성의 반영이다. 자소상(自塑像)을 통해 만나는 권진규는 삭발한 종교적 구도자의 모습이다.

그는 비구니상에 자신의 얼굴을 중첩시켜 표현하는 등 불교에 심취했다. 1961년 숭례문 중수 때 제도사로 참여한 경험을 담은 부조 작업들은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전통 문양의 변형과 콜라주 등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볼 수 있다.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실린 '지원의 얼굴'로 익숙한 권진규는 한국적 리얼리즘을 정립한 조각가로 평가된다. 일본 유학 시절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다 1959년 귀국해 테라코타와 건칠(乾漆)이라는 특유의 기법으로 절제된 형상의 인물상을 빚어냈다. 

그러나 추상이 득세하던 당시 한국에서 그의 작품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됐고, 병고와 외로움에 시달리다 "인생은 공(空), 파멸"이라는 유언을 남긴 채 51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생전에 "인간의 아이는 언젠가 죽지만 내가 만든 아이들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테라코타를 선호한 것도 고대 무덤의 부장품들이 입증하듯 쉽게 썩지 않는 시간성을 지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전시는 내년 2월 28일까지.(김지원기자) 

09.12. 22.  

P.S. 작가에 관한 책은 어린이 그림책을 제외하면 <권진규>(삼성문화재단, 1997)가 유일한 듯하다. 이미 오래 전에 절판된 듯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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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12-22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물사진과 인물조각품이 좋습니다. 예술인의 일생은 순탄치 않군요. 프랑스 화가였던 '모딜리아니'도 처음엔 조각가 였지만요. 작품의 질감에서 풍기는 단호함이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해서 겨울에 감상하기에 좋겠습니다.

로쟈 2009-12-22 08:47   좋아요 0 | URL
'지원의 얼굴' 같은 작품은 굉장히 오랜만에 보게 되는데, 새삼 좋은 작품이란 생각이 듭니다...

목동 2009-12-23 12:14   좋아요 0 | URL
저마다 '지원의 얼굴'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반짝이 설원을 넘은 환상일까요! 북쪽 출신 애국자(김구,안중근 등)나 예술가들이 더 강인하게 느껴집니다.

로쟈 2009-12-23 23:44   좋아요 0 | URL
인상 자체는 좀 서구적인데요. 작가도 그렇고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그런지도...

Mephistopheles 2009-12-22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과서에 실렸던 조각품들 중에 권진규, 자코메티의 작품들은 아직도 잊지않고 기억하고 있어요.

로쟈 2009-12-23 23:42   좋아요 0 | URL
네, 요즘 교과서에도 실려 있나 모르겠네요...

무해한모리군 2009-12-22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보고 싶네요.
지원의 얼굴은 리움에서 본적이 있어요.
제자였던 지원님도 꽤나 어려운 삶을 보냈다고 하던데..

로쟈 2009-12-23 23:43   좋아요 0 | URL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나 보군요...

homania 2009-12-24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진규의 조각 "지원의 얼굴"
홍대 조소과 다니던 여성이 나와 비슷한 이미지라고 이 조각의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 내게 줬던 기억이..
사귐이 끝나면서 뭐 사진도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지만...-_-;;
어쨌든 권진규는 그때 이후 항상 내가 가장 친근함을 느낀 조각가였지요 ㅎㅎ

로쟈 2010-01-10 22:45   좋아요 0 | URL
전시회는 꼭 보려가셔야겠는데요.^^

josephine 2010-01-10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 선생님, 여기서 만나뵙게 되는군요. 전시보러 덕수궁 한번 오시죠. 오래 간만에 드릴 말씀도 많을 듯 하네요.

로쟈 2010-01-10 22:44   좋아요 0 | URL
저 지난주에 다녀왔는데요.^^;
 

이번주 시사IN의 별책부록 에 실은,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길, 2009)에 대한 서평을 옮겨놓는다. 폴라니의 기본사상은 이미 여러 차례, 여러 지면을 통해서 소개/조명됐고, 간명하게는 역자 홍기빈 박사의 해설이나 인터뷰를 참고할 수 있다. <인물과 사상>(12월호)에도 인터뷰가 실려 있다. <거대한 전환>은 출판 편집자가 꼽은 '올해의 번역서'이기도 한데, 인터뷰 기사를 보니 내년엔 또 다른 대표작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교역>과 논문집 <인간의 경제>도 출간될 예정이라 한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의 전망대로, '대안의 삶'이 내년 출판계의 키워드라면, 폴라니는 내년에도 가장 중요한 이론적 지주이자 전거가 될 듯하다.    

시사IN(09.12. 26) '거대한 고통'의 기원을 찾아서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의 부제는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이다. 그가 우선 염두에 둔 ‘우리 시대’는 책이 출간된 1940년대를 포함한 20세기 전반기일 터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으며 경제 대공황에 빠져들었고, 파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다가 급기야는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대체 이런 전대미문의 사건들이 어찌하여 일어난 것일까? 폴라니는 이 ‘거대한 고통’의 기원을 19세기 초 영국의 산업혁명과 그로 인해 나타난 자기조정 시장경제의 출현이라는 ‘거대한 전환’에서 찾는다.     

문제는 이 ‘거대한 전환’의 동력이자 이념인 ‘자기조정 시장’이란 것이 실상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적나라한 유토피아’, 곧 ‘완전한 망상’이라는 점이다. 가령, 노동을 상품화하여 필요에 따라 팔고 살 수 있으며, 이러한 매매가 오직 시장가격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이상적인’ 노동시장은 결코 자연적으로 형성되지 않았다. 폴라니는 산업혁명 초기의 백인 노동자와 함께 식민지 원주민을 노동자의 원형으로 들었다. 식민주의자들을 원주민을 노동자로 만들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식량부족 사태를 일으켰다. 굶주림에 빠뜨려야만 원주민들의 노동력을 끄집어낼 수 있었기에 그들은 빵열매 나무도 베어 넘어뜨렸다. 세금을 징수함으로써 원주민들이 화폐 벌이에 나서도록 강제했다. 그렇게 하여 앉아서 굶을 것인가 아니면 노동을 시장에 내놓을 것인가라는 선택지로 내몰았다.  

왜 굶주림이란 징벌적 수단만이 사용되었나? 임금이 높아질 경우에 원주민은 기를 쓰고 일할 이유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식민지 원주민이나 백인 노동자나 일정한 체벌로 위협을 당하지 않는 한 자발적으로 노동에 매달리지 않았다. 때문에 공장주들은 “노동자들을 과로 상태로 몰아넣고 완전히 밟아버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야지만 동료들과 작당하지 않고 고분고분한 몸종처럼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협박과 강압에 의해 형성되고 유지된다는 점에서 노동시장은 수용소를 떠올리게 한다. 가령 2차 세계대전시 독일군의 포로가 돼 채석장에서 강제노동을 해야 했던 한 러시아군 포로는 “저들에겐 4입방미터의 돌을 캐낼 필요가 있지만, 우리는 각자의 무덤을 위해 1입방미터의 돌만 캐내도 충분하다”고 불평을 토로했다. ‘1입방미터’로 충분하지만 ‘4입방미터’의 돌을 캐내야 했던 이유는 물론 총구를 들이대고 있는 독일군의 감시 때문이다. 이러한 강압에 누구도 굶주려서는 안 된다는 전통사회의 원칙 또한 파괴된다. 영국의 경우에도 1834년에 빈민구제법이 폐지됨에 따라 임금노동으로만 생계유지가 가능하게 되면서 노동시장이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시사적이다.  

폴라니는 이런 방식으로 노동이 다른 활동으로부터 분리되어 시장법칙에 종속되면 인간적 사이의 유기적 관계는 소멸되고 대신에 전혀 다른 형태의 조직, 원자적 개인주의의 사회조직이 들어서게 된다고 말한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 아닌가? 따라서 문제는 시장경제의 비인간성이나 비합리성이 아니다. 모든 것을 상품화할 수 있다는 불가능한 믿음이다. 그런 믿음이 가져온 파행적 현실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거대한 전환>은 2009년 또한 폴라니의 ‘우리 시대’임을 말해주면서 진정한 전환으로의 결단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09.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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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밤바 2009-12-2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물과 사상을 그제 다 읽었는데요. 올 해 나온 인물과 사상 중 최고 좋았던 듯~
제 주위에도 로쟈님 팬이 늘고 있습니다~ㅎ 좋은 밤 되세요^^

로쟈 2009-12-21 23:49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사두길 잘했네요.^^
 

오후에 약속이 있어서 나가는 길에 전철역에서 집어든 시사IN은 '올해의 책'을 아예 별책부록으로 만들었다. 독서 리더들이 꼽은 '올해의 책'과 함께 추천위원들이 꼽은 '올해의 책', 그리고 출판편집자가 꼽은 '올해의 책'이 나란히 제시돼 있다. 내가 참여한 건 추천위원이 꼽은 '올해의 책' 중 인문 분야였고, 추천한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 '올해의 책'으로 최종 선정돼 두 주 전에 간단한 소개글까지 썼더랬다(역자인 홍기빈 박사가 워낙에 잘 정리해주고 있어서 따로 서평을 쓴다는 게 군말처럼 여겨지는 책이긴 하다). 동화와 그림책을 뺀 10개 분야의 추천위원 선정 '올해의 책'을 리스트로 만들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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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제6회 채만식문학상, 제10회 무영문학상 수상작
전성태 지음 / 창비 / 2009년 4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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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송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5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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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전환-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적 기원
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 길(도서출판) / 2009년 7월
45,000원 → 40,500원(10%할인) / 마일리지 2,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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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역사
다윈 평전- 고뇌하는 진화론자의 초상
에이드리언 데스먼드 외 지음, 김명주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9년 11월
50,000원 → 45,000원(10%할인) / 마일리지 2,5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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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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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책 번역가 김명남씨의 칼럼을 읽다가 올해의 과학책 리스트를 꼽아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94249.html). 일단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에서 추천했다는 올해의 과학도서 10권의 목록. <최무영 교수의 물리학 강의>, <모든 사람을 위한 빅뱅 우주론 강의>, <종교 전쟁>, <야누스의 과학>,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기억을 찾아서>, <다윈 평전>,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만이 아니다>. 그리고, 김명남씨가 덧붙인 책 가운데, <자유의지, 그 환상의 진화>, <왜 인간인가>, <협력의 진화>와 대니얼 데닛의 <자유는 진화한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나온 도킨스의 <지상 최대의 쇼>까지 15권을 고른다. 절반은 나도 안 갖고 있는 책이지만, 나중에라도 책을 고를 때 참고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더 관심을 갖고 있는 진화론쪽 책들을 상위에 배열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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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대의 쇼- 진화가 펼쳐낸 경이롭고 찬란한 생명의 역사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9년 12월
29,000원 → 26,1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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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토콘드리아- 박테리아에서 인간으로, 진화의 숨은 지배자
닉 레인 지음, 김정은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9년 1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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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는 진화한다- 자유의지의 진화를 통해 본 인간 의식의 비밀
대니얼 C. 데닛 지음, 이한음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9년 10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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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간인가?- 인류가 밝혀낸 인간에 대한 모든 착각과 진실
마이클 S. 가자니가 지음, 박인균 옮김, 정재승 감수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1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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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 날 2009-12-21 10:4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
아태이론물리센터 올해의 과학도서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최나리라고 합니다.
포스트 잘 읽었습니다.
저희 센터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과학도서에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로쟈 2009-12-21 20:02   좋아요 0 | URL
네, 전문가들이 추천해주시면 책을 고르는 수고를 좀 덜 수 있지요.^^

L.SHIN 2009-12-21 12:07   좋아요 0 | URL
아, [왜 인간인가]라는 책은 읽을까..말까..생각했던 건데.

로쟈 2009-12-21 20:01   좋아요 0 | URL
저명한 뇌과학자의 인간론도 한번 읽어둘 만하다는 생각이에요...

딸기 2009-12-21 17:54   좋아요 0 | URL
우선 추천부터 누르고~~
올해는 다윈의 해이니 진화론에 대한 책을 좀 많이 읽지 않을까 싶었는데 책에는 손도 못 대고 지나갔네요. 저 중에 읽은 것은 단 하나, 프리먼 다이슨. 그 책은 저만의 '올해의 책'으로 꼽고 싶을 정도로 좋았답니다, 저는.

로쟈 2009-12-21 20:01   좋아요 0 | URL
다이슨의 책은 저도 예전에 읽었는데, 이번 건 아직 못 챙겼습니다. 과학자들의 자서전/평전들만 해도 너무 많이 나와서요.^^;
 

내일자 경향신문에 게재되는 대담기사를 옮겨놓는다. '2009년 문화계 결산' 대담 중 '출판계' 꼭지이다. 대담자로 섭외를 받아 지난주 목요일에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과 한 시간 반 가량 대담을 나누었고 기사는 그 내용을 간추리고 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12201725305&code=960100). 

경향신문(09. 12. 21) [2009 문화계 결산](7)대담 - 출판계 출판평론가 한기호와 블로거 이현우  

블로거들의 활약, 뛰어난 학술서의 부재, 추모와 소통 열풍, 자기계발서의 추락, 대안적 삶에 대한 희구. 2009년 출판계를 요약하는 말들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51)과 ‘로쟈’라는 필명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서평을 올려 100만여명의 고정 접속자를 갖고 있는 이현우 박사(42·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강사)가 지난 17일 경향신문 회의실에서 만나 올 한해 한국 출판계 등을 돌아봤다.  

# 블로거들의 활약 

한기호 = 먼저 <로쟈의 인문학 서재>로 한국출판문화상 등을 받은 것을 축하합니다.

이현우 = KBS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는데, 출판문화상까지 받아 가족들과 출판사가 좋아합니다.   

한기호 = <로쟈의…>는 우리 사회에서 정보가 생산·유통·소비되는 과정 속에 글쓰기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을 가장 앞서서 보여줬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일종의 ‘블룩’(blog+book)인데, 지금까지 여행·사진 같은 실용서 위주이던 블룩이 이젠 인문학에서도 등장한 겁니다. 블룩의 인문학 방식은 지식의 원천 생산이 아니라 이미 생산된 지식에 대해 논평하는 가운데 자신의 생각을 드러냅니다. 사람들이 자기 혼자서는 인문학적 지식을 만들지 못하니까 다른 사람들 것을 보려고 하죠. 그럴 때 인문학 블로그에 접속하는 겁니다. 대중은 이제 지식 생산의 주종을 이룬 이른바 ‘황혼의 글쓰기’를 기다릴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어떻게 볼 것인지 궁금해하는데, 그럴 때 이 선생 블로그 같은 곳을 찾는 것이죠.

이현우 =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들 저 같은 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학술잡담 비슷하게 정보도 공유하고, 책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책 지식도 올려놓을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저 같은 사람이 희소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짓을 하니까 조금 튀는 것 아닐까 합니다. 저는 문학 쪽을 주로 다루니까, 다른 분야에 정통한 10~20명 정도가 더 하신다면 인터넷 공간의 담론이 다양해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분들은 블로그 글쓰기를 낮춰봅니다. 뭔가 진지하고 수준 높은 것은 인터넷에서 기대할 수 없다거나, 멀쩡한 것도 인터넷에 올리면 질이 떨어져 보인다는 부정적 편견을 극복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합니다.

# 좋은 학술서가 나올 수 없는 ‘학진 체제’

이현우 = 올해도 그렇지만 좋은 학술서가 나오지 않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이는 대학의 학문, 학술 담론 생산구조의 위기와 관계있습니다. 특히 학술진흥재단(학진·현 한국연구재단) 체제로 가면서 능력있는 연구자들은 다들 프로젝트에만 매달립니다. 그래서 아무도 읽지 않는 보고서 형식의 지식이 대량 생산되는 거죠. 그것은 좁은 학계 내부와 관리감독 기관만 보는 것이지 일반 대중들과는 괴리돼 있습니다. 출판계는 필자 찾기의 어려움을 호소하는데 학진에서 프로젝트를 받아 공동연구를 하면 1년에 논문 1편을 써 3000만원 받지만, 저처럼 책을 써서 1만권이 나가도 1500만원도 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학진 지원에 익숙해질 경우 대중을 상대로 글쓰기를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박사 실업자들이 대학, 지원기관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연구한 콘텐츠로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교양서를 꾸준히 낸다면 자신도 살고, 한국사회의 지적 수준도 높아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학문지원 제도 자체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역효과를 출판계 독자들이 보고 있는 셈입니다.

한기호 =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박사급 ‘풍찬노숙자’들이 열의를 갖고 책을 통해 사회적 발언을 하곤 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책세상의 ‘우리시대 문고’였죠. 그런데 2006년 ‘인문학 위기’ 논란 이후 지원금이 쏟아지니 그분들이 교양서를 써 자기 역량을 발휘하기보다, 대학 내에서 눈치보고 살아남으려고 합니다. 출판의 관점에서 보면 논문형 글쓰기는 지식인들의 글쓰기가 완전히 붕괴됨을 뜻합니다. 물론 출판유통 체계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온라인서점 매출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올해는 단행본의 집중도가 50%를 넘었습니다. 이는 팔리는 책 위주로 서점이 재편된다는 의미입니다. 학자들이 책을 써봐야 1000부 나가기 어려운 구조가 심화되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번역서 비중이 높아집니다. 블로그를 통한 지식 생산이 이 문제의 돌파구로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 추모 열기와 소통의 추구

이현우 = 올해는 추모 관련 책이 많이 나왔습니다. 인문사회 쪽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른 책들 중 두 전직 대통령과 장영희 선생, 김수환 추기경 등을 추모하는 책들이 많았죠. 추모 열풍은 항시적인 건 아니어서 그런 것의 의미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기호 = 노무현 전 대통령 책이 인기를 얻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노무현의 진실’ 같은 걸 추구하지 않았나 합니다. 생전에는 논란이 있었지만 죽은 후 그분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우리 사회가 왜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돌아보는 것이죠. 진실과의 싸움은 달리 말하면 소통입니다. 출판계 전반으로 확장해보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같은 것은 가족 사이의 소통이고, 심리학 책이 인기를 얻는 것은 자신과의 소통이란 측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현우 = 소통 욕구는 항시적일 텐데, 여기에는 정치적 맥락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불통 정국’ 때문에 거기에 대한 반대급부로 소통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 자기계발서의 추락과 대안적 삶의 희구

한기호 = 자기계발서의 추락도 주목할 만합니다. 한국인들은 1997년 말 외환위기, 2003년 카드 대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거치며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사이 벤처열풍, 주식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자기계발서가 넘쳐났죠. 하지만 카드 대란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 같은 책이 그 즈음 나왔는데, 인생의 후반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들었죠. 열심히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말년에 대해 적극 고민하자는 뜻에서 10억원 모으기 열풍 같은 것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이 다 좌절로 끝났습니다.  

200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성공에 대한 큰 담론은 실질적으로 포기하기 시작했죠. 이제는 관심이 행복으로 이동했습니다. 세상이 뭐라든 나만은 나름대로 즐기고 행복하겠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도 잘 안되면서 고독을 느끼는 상황이 됐습니다. 2007년부터 ‘자기치유’를 강조하는 책이 나왔지만 한계가 드러났고, 결국 사람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안을 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그동안 꿈꿨던 게 뭔가 자성하면서 대안적 삶에 대한 책이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난해에는 자본주의의 대안이 없을까 고민하며 사회주의에 대한 책이 잠깐 사이 주목받았죠.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같은 책에 대한 관심도 어느 정도 대안을 생각하게 됐다는 뜻입니다. 정치·사회적 대안 외에도 궁극적으로 인간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굿바이 스바루>처럼 저널리스트가 도시 삶을 벗어나 농촌에 들어간다든지, 김용택·도법 스님의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는 농촌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얘기했죠. 내년에는 자기계발서와 자기치유서를 넘어서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것이 독서시장은 물론 우리 사회의 핵심어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현우 = 저는 그렇게 희망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독자들을 위로하거나 만족을 주는 책보다 성찰하게 하고, 지적인 자극을 주는 책이 좀 더 필요합니다. 자기계발서 대신 심리학 책을 찾는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책이 자기에게 뭔가 해주길 원하면서 읽는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나에게 돈을 더 갖다주는 책이나 나를 위로해주는 책, 혹은 나를 좀 더 과시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나 결국은 비슷합니다. 나르시시즘적이고 이기적인 독서에 빠져 있지 않나 합니다.   

올해 나온 슬라보예 지젝의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처럼 뭔가 대의에 파묻힐 수 있는 책이 더 읽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자기계발, 자기치유도 좋지만 <잃어버린…>처럼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책도 많이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당장 읽지는 않아도 꽂아둬야 한다는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보다 <거대한 전환>이 더 많이 팔리는 사회가 앞으로 전망 있는 사회, ‘싹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합니다. 대중의 독서취향이 빨리 변하지는 않겠지만, 저 같은 중간지식인들이 현상추수적으로 글을 쓰기보다 지향점을 갖고 중간에서 독자들을 자극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출판평론가 한기호
광주민주화운동 참여로 학교에서 제적된 후 창비 출판사에 입사했다. 1998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세워 출판 현장의 다양한 문제를 짚으면서 출판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구속과 책 압수를 감수한 출판인들이 없었으면 민주화가 불가능했다고 믿는다. 한국 사회의 미래가 학생들의 독서에 있다고 보고, 내년 3월 낼 ‘학교도서관저널’ 창간호에 힘쓰고 있다.

‘로쟈’ 블로거 이현우
독서 애호가들 사이에 ‘로쟈’라는 필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온라인서점 알라딘에 마련된 ‘로쟈의 저공비행’이라는 블로그에 인문서를 중심으로 한 폭넓은 서평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블로그 글 중 문학·영화·예술·철학에 관한 것만 모아 펴낸 <로쟈의 인문학 서재>로 KBS 올해의 책 ‘눈부신 역작’부문, 한국일보의 한국출판문화상 교양저술부문 상을 받았다.(김재중·손제민기자) 

09. 12. 20. 

P.S. 대담 소개에서 '100만여명의 고정 접속자'는 접속자가 '100만명'을 넘어섰다는 얘기가 와전된 것인 듯하다(짐작엔 이 서재의 '고정 접속자'는 수천 명 정도이다). 그리고 학술서 부진에 대한 얘기는 한기호 소장의 진단에 나대로 한 가지 원인을 덧붙인 것으로, 여기서의 '학술서'란 대중을 위한 '학술교양서'를 말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학진 체제' 하에서 학술논문은, 적어도 양적으로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풍부하게 생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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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12-20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중지성'에 속한 '중간지식인'의 역활과 대중 독자취향의 변화에 대한 조언이 참고가 됩니다.

로쟈 2009-12-20 21:32   좋아요 0 | URL
네, 제 역할에 대한 자리매김을 그렇게 하게 됩니다...

목동 2009-12-21 15:00   좋아요 0 | URL
경향신문 23면 이군요...신문으로 보는 느낌(거물급?)이 다른데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18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체육학교에서 열린 유도훈련 사진도 있더군요...

Arch 2009-12-20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출판문화상 받으신거 축하드려요. 경향신문에서 보고 반가웠는데^^ 올해는 로쟈님께 정말 좋은 일만 생기는 듯.

로쟈 2009-12-20 22:30   좋아요 0 | URL
국가적으론 흉사가 많은 한해로 기억되겠지만, 개인적으론 첫 책을 내고 좋은 반응을 얻은 해이기도 해서 기분이 좀 엇갈립니다...

2009-12-20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0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0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1 0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0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1 0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phie 2009-12-21 0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이상 공감할 수가 없네요. 모쪼록 로쟈님과 같은 생각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학계 풍토가 형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면 교수가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대학풍토가 형성되어야 할텐데 말이죠...

로쟈 2009-12-21 08:35   좋아요 0 | URL
기대할 수 있는 일인지는 의문이지만, 이상적으론 그렇죠. '연구교수'란 직함이 따로 있는 게 징후적인 듯해요...

GoNgo 2009-12-2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기사 읽으면서 '백만' 고정 접속자라는 말에 좀 까우뚱 했는데, 로쟈님께서 설명을 적어주셨네요. 기사처럼 로쟈님의 블로그에 '백만'의 고정 접속자가 있다면 우리 나라가 이 꼴은 아닐거라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죠. ^^

로쟈 2009-12-21 20:03   좋아요 0 | URL
그 정도면 '전업 블로거'를 해도 되겠죠.^^

알로하 2009-12-22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 읽어보고 싶던 책인데 생각보다 너무 두꺼워서 들었다 놨다만 하고 있어요. 한번 읽어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