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지났으니 '오늘' 두 개의 강연/강의 준비를 하려면 언제 자야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게다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 또 있다) 간단한 페이퍼를 적어둔다. 그건 오랫동안 벼르던 책을 드디어 짝을 채워 구입했기 때문이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기획한 <세계의 비참>(동문선, 2002)이 그 책이다.  

  

알라딘에서는1권이 품절이어서 그제 홍익문고에서 구하고, 2권은 당일배송이 되기에 알라딘에 주문해서 받고 다시 3권은 어제 홍익문고에서 수중에 넣었다. 권당 26,000원이라는 만만찮은 가격이어서 오랫동안 미뤄두다가 엊그제에서야 '결단'을 내렸다. 내친 김에 영역본까지 주문하고. 

  

대학도서관에 있는 영역본을 복사할 수도 있지만 워낙 두께가 있는 책이라 그냥 구입하기로 했다. 그리고 덩달아 <코카서스의 부르디외 숭배자>도 주문했다(이 책은 아직 국내 도서관에 들어와 있지 않다). 지젝이 <레닌 재장전>(마티, 2010) 등에서 언급한 책이다. <세계의 비참>은 언젠가 부르디외가 귄터 그라스와 나눈 대담에서 <나의 세기>(민음사, 1999)와 함께 거론될 때 처음 본격적으로 '욕심'을 냈었다(그라스의 <나의 세기>는 왜 다시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며칠 전 <유동하는 공포>(산책자, 2009)의 말미에서 바우만이 다시금 "부르디외의 마지막 '대작'인 <세계의 비참>"을 한번 더 언급해주시는 바람에 '때'가 됐구나 싶었다.  

책은 부르디외의 사회학 팀이 3년간 작업한 결과인데, "그들은 대규모 공영주택 단지, 학교, 사회복지회 직원, 노동자, 하층 무산계급, 사무직원, 농부, 그리고 가정이라는 세계 속에 비참한 사회적 산물이 어떠한 현대적인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지 이해하고자 했다." 그래서 얻은 결과가 이 세 권의 책을 대부분 채우고 있는 인터뷰들이다. 부르디외는 서문에서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한다.  

"통탄해서는 안 되고, 비웃어도 안 되며, 혐오해서도 안 된다. 오직 이해하는 것만이 필요하다." 

어떻게? 부르디외로선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들을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들로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제공하고, 그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과 이유를 그들에게 결부시켜 보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여기,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존재와 삶의 어려움에 관해 우리들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들을 내놓는다."  

평소 동문선에서 나온 많은 책들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지만 나는 <세계의 비참>만큼은 역자와 출판사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더불어, 우리에게도 이 정도 두께의 '보고서'는 나올 만하며, 또 나와야 하지 않을까란 바람을 적는다.   

<세계의 비참>을 구하러 갔다가 어떨결에 같이 손에 넣은 책은 아룬다티 로이의 <생존의 비용>(문학과지성사, 2003)이다. 전에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다 읽진 못하고 반납했던 책.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책은 인도의 나르마다 강 유역의 대규모 댐 건설사업과 개발 지상주의에 대한 신랄한 고발과 풍자를 담고 있다. 책이 출간됐을 때는 '남의 나라' 얘기였는지 모르겠지만, 알다시피 이젠 '우리' 얘기다. 그래서 선뜻 손이 갔다. 이 정도 비용은 책값으로 치러도 좋겠다는 생각이었고.  

<세계의 비참>이나 <생존의 비용>이나 나온 지 7, 8년이 됐지만 아직 초판이었다. 많이 잡아도 그동안 2-3,000부도 안 나갔다는 얘기다. 생각하면 그 또한 '비참한' 일이다. 뒤늦게 이 두 책을 손에 넣고서 생색도 내고 겸사겸사 '광고'도 하는 이유다. 우리의 '비참'을 조금 더는 일에 각자가 조금만 더 비용을 들이면 좋겠다. 아룬다티 로이의 책도 그래야 더 나올 게 아닌가... 

10. 0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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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그레이효과 2010-05-14 01:27   좋아요 0 | URL
"여기,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존재와 삶의 어려움에 관해 우리들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들을 내놓는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구성하고 소개하는 데 있어서 나름대로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는 과학적 방법을 사용할 때 반드시 필요하고, 또한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포괄적인 시선으로 우리가 그들을 바라보았던 것처럼, 독자들 역시 그런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아 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중략)..통탄해서도 안 되고, 비웃어도 안 되며, 혐오해서도 안 된다. 오직 이해하는 것만이 필요하다. 이는 스피노자의 말이다. 하지만 이 스피노자식의 규칙을 따를 수 있는 방법도 함께 제시해 주지 못한다면, 우리들 사회학자가 아무리 이 규율을 준수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준 사람들, 그들을 이해하는 방법, 즉 그들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도대체 어떻게 제시할 수 있단 말인가? 방법이 있다면 단 하나, 그들을 이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들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제공하고, 그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과 이유를 그들에게 결부시켜 보는 것, 그것뿐이다." -> 갑자기 로쟈님이 이 책 소개해주시고 제가 좋아하는 구절 옮겨주셔서, 발제 때 인용한 본 책의 제가 좋아하는 구절 하나를 옮겨봤습니다.^^; 그나저나, 알라딘에서 나중에 돈 모으면 3권 다 살려고 했는데, 1권이 품절이군요.ㅜ.ㅜ

로쟈 2010-05-16 10:00   좋아요 0 | URL
네, 아쉬울 땐 품절이죠...

kumun 2010-05-15 17:32   좋아요 0 | URL
로쟈님 페이퍼에서 개화기 지식인이 복지의 본질은 거지근성이다 뭐 이런 말을 했다는 내용을 본것 같은데 찾을 수가 없네요 혹시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로쟈 2010-05-16 09:59   좋아요 0 | URL
정확하진 않지만, 윤치호에 관한 페이퍼를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매달린 원고를 끝마치지 못하고(어쩌면 테마를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강의차 나가려던 차에 모처럼 '시적인' 칼럼이 눈에 띄어 옮겨놓는다.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의 칼럼이다. 실제로 정현종 시인의 시가 인용돼 있기도 하다. 최근에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근대>(강, 2009)를 강의시간에 읽기도 했는데, 칼럼은 액체근대(가벼운 근대, 유동적 근대)의 한 사례로도 읽힌다(하지만 '한국적인' 유별남을 보태야겠다. 대비하자면, 박정희 시대가 우리에겐 '고체근대'다). 물론 이 사례는 페이소스를 머금게 하는 사례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처럼... 

경향신문(10. 05. 13) [이대근칼럼]우리는 모두 외국인이다  

얼마 전 상가(喪家)에서 만난 이가 의원인 줄은 소개한 사람의 설명을 듣고서 알았다. 그 전 한 모임에서 인사를 나눈 이가 전직 의원이라는 사실도 명함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러나 의원 얼굴도 모른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불평했다. ‘왜 이렇게 모르는 의원이 많은 거야.’ 18대 총선에서 현역 의원 재선율은 46%였다. 17대 총선에서는 30%, 16대 58%, 15대 44%. 

미국 하원은 2002년까지 10개 선거에서 재선율이 95%였고, 일본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높다. 이에 비하면 4년마다 의원 절반 이상이 바뀌는 한국은 매 선거가 혁명이다. 만일 당신이 ○ 의원은 △ 당 소속이라고 알고 있다면, 그걸 너무 믿지 않는 게 좋다. 당신이 모르는 사이 당을 옮겼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7대 국회에서 당적 변경 의원은 62%에 달했다.

술자리에서 시국을 논하다 장관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대화가 끊기는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건망증이 생겼다거나, 기억력이 나빠졌다고 비관하면 절대 안된다. 1년 만에 바뀔 수 있는 장관을 기억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혹시 장관 이름을 안다 해도 지방선거 이후 개각을 지켜보면, 그게 얼마나 쓸모없는 정보였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관료조직만이 아니다. 기업도, 대학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은 1년마다 속으로부터 바뀐다. 이런 사회에 10년이라는 단위가 있을 수 없다. 1년이 열 번 반복되는 일은 있겠지만.

마술처럼 사라져버린 ‘종로 1가’
자주 이사하는 한국인은 살림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챙겨서 떠도는 유목민을 닮았다. 그래서 낯선 동네로 떠날 때마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해야 한다. 색 바랜 일기장, 젊은 날의 편지, 청춘의 방황과 사색을 부추기던 오래된 책들, 한때 열정을 갖고 몰두했지만 이제는 짐더미가 된 것들을 버려야 한다. 한꺼번에 버리면 가슴이 너무 아플까 봐 일부는 남겨 놓지만, 결국 이사 횟수에 비례해 버리는 것이 많아진다.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이렇게 삶의 기억과 흔적을 지워버리는 일이며, 지친 영혼이 잠시 머물 곳을 없애버리는 일이며, 처진 어깨를 떠미는 일이다. 오로지 진군이다. 전쟁 같은 삶을 위해.  



손낙구의 책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에 따르면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이, 셋방 사는 가구의 80%가 최소 5년에 한번 이사하며 5년이 지나면 동네 사람 3분의 2가 바뀐다. 우리에겐 자기가 사는 곳에 익숙해질 기회가 없다. 만일 익숙해지고 있다면, 그건 떠날 때, 바뀔 때가 됐다는 신호일 뿐이다.

서울 외곽 구파발 갈 때였다. 그 익숙했던 거리가 영화 장면 전환하듯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낯선 세계가 나타났다. 오랫동안 다녀본 길이지만, 기억을 되살릴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외국 여행자처럼 그 거리를 더듬어 가야 했다. 그곳은 은평뉴타운이라고 했다. 서울살이 37년이지만 아직도 어색하다. 얼마를 더 살아야 이 도시와 친해질까.  



요즘 종로 1가를 걸으면,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라고 노래한 시인 정현종처럼 견디기 힘들다. 종로 1가를 안다는 것은 지도상 위치를 안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 거리에 있었던 빈대떡 집, 선술집을 안다는 것이며, 그런 것들이 만들어 내는 종로 1가다운 분위기와 정서를 안다는 것이다. 그 종로 1가가 사라졌다. 종로 1가를 보자기에 싼 뒤 얏! 하고 벗겨내 바꿔치기 하는 마술이 아니라면 이렇게 바뀔 수가 없다.

추억도 아픈 상흔도 지워져
이제 종로 1가는 언젠가 스쳐 지나 본 적이 있는 뉴욕·도쿄의 거리와 다르지 않다. 종로 1가가 꼭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 곳이 종로 1가만은 아니다. 4대강도 언젠가는 우리가 알던 강은 아닐 것이다. 최근 여러 대학을 다녀 볼 기회가 있었는데 옛날 그 대학이 아니었다. 몇몇 대학은 공사 중이며 어떤 대학은 정문부터 찾을 수 없었다.

매일 죽고, 매일 새로 태어나는 한국. 추억할 것은 물론 아픈 상흔조차 남겨 놓지 않는 이곳에서 우리는 모두 외국인이다. 자기의 땅에서 낯선 자들이다

10. 05. 13. 

P.S. 우연찮은 일이지만 아침 내내 중얼거렸던 시구는 박정대의 '물질적 황홀' 가운데 일부다.  

월요일이 죽고, 화요일이 죽고 그리고
비가 내린 다음 수요일이 죽어갔다 나는 그리운
햇볕 한 조각 만나지 못하고 주말까지 계속해서 죽어갔다  
(...)
일주일간의 죽음 끝에 햇살은 輓章처럼 나부낀다

이번주도 햇살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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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5-13 14:37   좋아요 0 | URL
정말 아픕니다. 계속되는 암울한 기분보다 이러 날카로운 고통이 오히려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감정이겠지요. 들뢰즈의 노마디즘이 아마도 한국에서는 이런 계속되는 뿌리뽑힘의 트라우마를 봉합하는 이론적 환상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도 해봅니다... 저희 집에서 바라다보이는 앞산에 재개발 예정된 산동네가 있습니다. 아침마다 햇살이 떨어지는 그 동네를 바라보며 비애감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됩니다. 시인들의 노래대로, 이곳에서의 삶은 하루하루가 죽음이고 견딜 수 없습니다.

로쟈 2010-05-14 00:05   좋아요 0 | URL
눈뜨고 코베이는 세월이죠. 고단수에라도 당하면 덜 억울할 텐데요...

2010-05-14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4 0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4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4 0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4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6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의차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를 읽는다. 강의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와 <구토>에 한정되지만, 보부아르의 자서전이 의외로 눈길을 끈다. 사르트르 평전과 함께 참고한 몇 권의 책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따로 페이퍼를 쓸까도 생각했지만, 여건상 리스트로 입막음한다.  


8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사르트르 평전
베르나르 앙리 레비 지음, 변광배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4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2010년 05월 12일에 저장
절판
카페의 아나키스트, 사르트르- 자유를 위해 반항하라
박홍규 지음 / 열린시선 / 2008년 11월
18,000원 → 18,000원(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10년 05월 12일에 저장
품절
HOW TO READ 사르트르
로버트 베르나스코니 지음, 변광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2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10년 05월 12일에 저장
절판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천국에서 지옥까지
헤이젤 로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해냄 / 2006년 9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2010년 05월 12일에 저장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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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3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빵가게재습격 2010-05-13 01:25   좋아요 0 | URL
로쟈님, (how to read)시리즈를 종종 소개하시네요. 제가 형편없어서 그렇겠지만, 몇 권 들춰보았어도 별로 재미(?)를 못 봤습니다.--; 추천하시는 장점이 있나요?

로쟈 2010-05-13 11:29   좋아요 0 | URL
권마다 편차가 있습니다. 사르트르는 전공자의 번역이고 '유대인 문제에 관한 성찰' 등을 알게 해주어 저에겐 유익하네요.^^
 
푸코와 캉길렘에 관한 메모

국내에는 미셸 푸코의 스승으로 처음 알려진 프랑스의 과학철학자(혹은 의학철학자) 조르주 깡귀엠의 <생명과학의 역사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합리성>(아카넷, 2010)이 출간됐다. 타이틀은 책 제목이라기보다는 논문 제목에 더 어울릴 만한데('학술서'의 티를 팍팍낸다) 마침 교수신문에 책의 내용과 의의를 소개하는 역자의 글이 실렸기에 스크랩해놓는다. 필자의 동의하에 옮긴이의 글을 재수록했다고 하니까 '프랑스 의학철학의 계보와 조르주 깡귀엠'이란 역자 해제를 따온 것인 듯하다. Canguilhem이란 저자명이 이번엔 '깡귀엠'이라고 표기됐지만, 주저인 <정상과 병리>(한길사, 1996) 혹은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인간사랑, 1996)이 나란히 출간됐을 때는 '캉길렘'과 '깡길렘'으로 각각 표기됐었다(역자 자신이 '깡길렘'이라고 옮겼다가 이번엔 '깡귀엠'으로 바꿨다). 같은 저자의 책 세 권이 모두 저자명을 다르게 표기하고 있으니(당연히 검색은 다 따로따로다)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는지(각자의 표기 '원칙'을 고집하는 것이 이런 소모적인 혼동을 무릅쓸 만한 일인지는 의문이다). 여하튼 거물급 학자의 책이 소개되었기에 최소한의 관심을 표해둔다(푸코와 깡귀엠, 혹은 캉길렘에 대해서는 먼댓글을 참조).     

 

교수신문(10. 05. 06) 프랑스 의학철학의 전통 속에서 생명체의 내적 규범 성찰  

이 책은 깡귀엠(Georges Canguilhem, 1904~1995)의 다른 책들이 그러하듯 그가 이전에 발표한 비슷한 주제의 글들을 하나의 책으로 묶어 발간한 것이다. 그가 처음부터 한 권의 책을 염두에 두고 저술한 것은 의학박사 학위논문인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과 철학박사 학위논문인 「17·18세기 반사개념의 형성」의 두 권이다. 여기에 번역한 이 책은 시기적으로 보자면 깡귀엠의 생전에 출판된 마지막 책이다(최근 의학에 관한 그의 글들을 묶어 Ecrits sur la Me´decine로 출판한 바 있다).  

이 책의 구성을 보면 과학사와 인식론의 역할을 다룬 서론과 과학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1장이 이론적 문제를 다루고 있고, 뒤에 실린 글들은 앞에 실린 이론적 글들에 대한 예증의 성격이 강한 글들이다. 여기서는 그가 다룬 이론적 문제들에 대해서만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깡귀엠이 과학사에서 가장 경계하고 비판하는 것은 용어의 연속성을 개념의 연속성으로 혼동하지 말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선구자의 신화를 비판한다. 즉 이는 개념적 차원의 단절을 인식하지 못하고 용어의 동일성이나 외관상의 유사성만으로 연속의 과학사를 쓰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다음으로 그가 제기하는 것은 과학적 이데올로기의 문제이다. 과학과 이데올로기라는, 외견상 대립되는 두 개념을 하나로 연결시킨 이 말은 깡귀엠 자신이 인정하듯 멀게는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론으로부터 가깝게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과학적 이데올로기론은 어찌 보면 과학의 담론을 손쉽게 이데올로기로 환원시키려는 “부유한 사회의 약화되거나 빈곤한 마르크스주의”인 사회구성주의로부터 과학적 담론을 지키기 위한 시도로 읽히기도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깡귀엠이 과학에 대한 실증주의적 견해를 가진 것은 아니다. 그는 과학과 이데올로기를 엄밀히 분리시켜 ‘순수한’ 과학을 확보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또 과학을 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하는 입장에 대해서도 거리를 둔다. 그는 과학사가는 과학과 이데올로기라는 두 차원에서 동시에 작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과학의 담론 안에 이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그는 과학적 이데올로기란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상대 개념으로 깡귀엠이 제시하는 것은 합리성이다. 그는 이 책에서 과학적 이데올로기의 형성과 아울러 합리성의 형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생명과학에서의 합리성은 달리 말하면 그가 시종일관 강조하고 있는 생명체의 내적인 규범으로 볼 수 있다. 다소 도식적으로 표현한다면 생명과학에서의 과학적 이데올로기는 생명체의 외부에서 부과되는 외적 규범이고, 그 합리성은 생명체 자체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내적인 규범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의 문제의식은 그의 마지막 저서에까지 지속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구성주의와 과학적 담론
그런데 생명과학의 합리성과 의학적 합리성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의학은 생명과학에 포함될 수 있지만 의학은 궁극적으로 개체가 앓는 질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생명과학의 다른 분야들과는 구별된다. ‘치료’란 의학의 고유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치료의 근거를 어디에서,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다. 치료의 근거를 이론에서 찾는 경우도 있지만 의학에서 사용되는 치료법들 중에는 어떠한 이론의 매개도 없이 “써보니까 듣더라”는 경험에 근거한 경우도 많다. 이처럼 치료가 개인적 경험과 그에 따른 신념에 근거한 경우 그 치료가 합리성에 근거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치료에서의 합리성이란 치료의 근거가 설득력 있는 합리적 이론에 있는 경우를 말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말하자면 치료의 전략이 유기체에 대한 보편적 지식, 즉 해부학이나 생리학에 근거해 짜인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연결 관계를 깡귀엠은 의학적 합리성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의학적 합리성은 근대 서양 의학의 가장 큰 특징을 이룬다. 르네상스 이후 새롭게 발달한 해부학 지식을 임상적 지식과 결합시킨 파리 임상의학파, 병리학을 생리학에서 연역하려 한 클로드 베르나르의 기획, 그리고 병원성 세균의 발견과 이를 죽이는 항생제 개발로 완결되는 병인설과 치료의 패러다임은 근대 이후 서양에서 확립된 의학적 합리성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근대 의학의 합리성은 그 내부에 한계도 함께 들어 있다. 생리학에서 병리학을 연역하려 한 베르나르의 기획은 ‘객관적 병리학은 존재할 수 있지만 객관적 병리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깡귀엠 자신의 언명에 의해 부정당한다. 그리고 세균에 대한 화학요법의 발전은 그러한 발전이 화학요법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저항균주의 출현을 유발함으로써 스스로 한계에 처하게 된다. 이처럼 한계에 직면한 근대의 의학적 합리성은 그 돌파구를 어떻게 찾고 있는가.

깡귀엠은 최근 의학의 발달 양상에서 새로운 의학적 합리성이 형성되는 전조를 본다. 그는 의학적 합리성의 장애물로 보아온 생물학적 개체성을 원인론과 대립시키지 않고 새로운 의학적 합리성에 통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분자생물학과 면역학의 발전에서 본다. 아쉽게도 이러한 학문의 발전과 그 가능성에 대한 인식은 깡귀엠의 생애 말년에 이루어졌으므로 그는 이 주제를 더 이상 발전시키지 못했다.  

末年에도 분자생물학·면역학에 주목
깡귀엠의 책을 처음으로 번역한 지 14년이 지나 그의 또 다른 책 『이데올로기와 합리성』의 번역본을 세상에 내보내게 됐다. 사실 이 책의 번역 작업은 깡귀엠의 대표작인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이 출판되고 난 이후 이내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간 이런저런 개인적인 사정이 겹쳐 적은 분량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시간이 흘러서야 번역을 마칠 수 있었다. 시간상으로만 본다면 번역에 거의 10년쯤 걸린 것 같다.  



사실 깡귀엠의 이 책을 두 번째 번역 대상으로 택한 이유는 이 책이 출판된 그의 책 중 가장 얇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의 대표작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을 번역하며 만만찮은 그의 문체로 상당히 고생한 기억이 있어 다소 분량이 있는 그의 다른 책들은 부담스러웠다. 그렇지만 내용이나 문장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문장 구조를 찬찬히 뜯어보고 몇 번이고 반복해 읽으며 다시 생각해보아야 의미가 파악되는 문장이 많았다. 간신히 의미가 파악되더라도 표현 방식이 한국어와 워낙 달라 가능한 덜 어색하면서도 이해 가능한 우리말로 옮기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간 적지 않은 학술서들을 번역했지만 역시 깡귀엠 글의 번역이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제 다시 그 고통의 기억이 희미해져가면 해산의 고통을 망각하고 또 덜컥 임신한 여자처럼 깡귀엠의 또 다른 책을 들고 만지작거리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여인석 연세대 의과대학·의사학과) 

10. 05. 12.  

P.S. 찾아보니 캉길렘의 책은 두어 권 더 영역돼 있다. 인식론이나 과학철학 쪽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챙겨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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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10-05-12 21:44   좋아요 0 | URL
어 저 본과 1학년 때 의학사 가르치신 강사 분이네요.ㅋㅋㅋ 수업은 재미없었지만.ㅋㅋㅋ 다른 과목이 바닥을 길 때 유일하게 A 학점 받아서 간신히 유급을 모면하게 만들어준 과목...ㅋㅋㅋㅋ

로쟈 2010-05-12 23:16   좋아요 0 | URL
의학사에 소질이 있으신 건 아닐까요?^^

헛헛헛헛 2010-05-12 23:19   좋아요 0 | URL
ㅎㅎ 의학사, 의철학 분야에서 '깡귀엠'을 간과하고 지나갈 수 없죠.

참, 이름에 대해서는,..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을 번역할 때는 깡길렘으로 번역을 했지만

이후, 그가 살았던 동네 사람들이 그를 '깡귀엠'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깡귀엠'으로 바꿨다고 하네요. '-'

로쟈 2010-05-12 23:43   좋아요 0 | URL
그래도 그게 왜 '깡기엠'이 아니라 '깡귀엠'이 되는 건지는 좀 의문인데요...

헛헛헛헛 2010-05-13 15:21   좋아요 0 | URL
아~ 그러네요.. 기회가 있을 때 한번 여쭤봐야겠습니다.
(불어 잘하시는 분들, 코멘트 좀 부탁...)

그나저나,

기사 내용 중에 오타가 있네요.
베르나르의 기획을 부정하는 깡귀엠의 언명을 언급하는 부분..

'객관적 병리학은 존재할 수 있지만 객관적 병리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 '객관적 생리학은 존재할 수 있지만 객관적 병리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요렇게 바꿔야 맞는 말~ '-'

로쟈 2010-05-14 00:08   좋아요 0 | URL
교수신문은 보통 원고를 안 건드리는데, 아마 원고의 오타 같습니다. 책에선 교정이 됐나 모르겠네요...

헛헛헛헛 2010-05-16 16:03   좋아요 0 | URL
지나가던 '길손' 님께서 남겨주신 댓글을 옮겨옵니다. '-'
로자님 서재에 외부인이 글을 남길 수 없어서 제게 글을 옮겨달라고 부탁을 하셔서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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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사람들이 철자에 상관없이 그렇게 '깡귀엠'으로 불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이름의 철자가 'Canguilhem'이니 '깡길(귈)렘'으로 발음하는 게 맞다고 보여집니다. 이름의 발음기호는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어서 옆집 프랑스 사람에게 여쭤보니 '깡길(귈)렘'이라고 분명히 'L'을 발음 하는군요. 만약에 철자가 'canguillem'이라면 '깡귀옘'으로 발음이 되겠는데(마치 'gentille(착한)'의 발음이 '장틸러'가 아니라 '쟝띠여'인 것처럼), 혹시 촌사람들이 철자 중의 묵음 'H'를 'L'로 잘못 본 것은 아닐까 싶군요.

그리고 위의 로쟈의 의견에 대해서: '~guil~'에 숨은 'U'는 발음을 '질(gil)'이 아닌 '길(guil)'로 하기 위한 도구적 기호에 불과하므로, 로쟈의 지적처럼 '귈'이 아니라 '길(깡길렘)'로 발음하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맞겠지만, 눈에 보이는 'U'에 속아서(?) '귈(깡귈렘)'로 흔히 발음하는 듯 합니다 .

로쟈 2010-05-16 16:2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궁금증이 해소됐습니다. 고유명사는 발음 규칙의 예외도 간혹 있는 듯해서요. 저는 하던 대로 '캉길렘'이라고 표기해야겠습니다...

헛헛헛헛 2010-05-17 14:55   좋아요 0 | URL
최근에 한국의철학회 학술대회 때 마침 이와 관련된 문제가 언급되어서, 간략히 그 내용을 정리해봅니다. 한희진 선생님의 토론 내용을 허락없이 정리한 것입니다. ㅎ

(자꾸 댓글이 길어지네요. 요게 마지막 댓글입니다.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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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깡귀엠(Georges Canguilhem)의 이름은 여전히 통일된 한글 표기법이 없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표기법과 이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가능한 표기법은 아래와 같다.

1. 캉귈렘(깡귈렘), 캉길렘(깡길렘)
2. 캉귀엠(깡귀엠), 캉기엠(깡기엠)

1은 파리를 기준으로 한 프랑스어 표준어 발음이고,
2는 그의 출생지인 프랑스 남중부의 소도시 카르셑노다리Castelnaudary의 현지 발음이다.

한글의 외래어 표기의 기본 원칙을 따르자면, 된소리를 인정하지 않는 한글의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깡' 보다는 '캉'으로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결국, 프랑스어와 한글의 원칙을 모두 준수하면,

캉귈렘 또는 캉길렘으로 표기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참고로, 여인석 선생님의 답변 : 아직 이름 표기에 대한 정리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추후 이 부분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겠다.)

-끝-
 

엊그제 <눈먼 시계공>이란 타이틀만 보고 클릭했다가 '소설'이어서 조금 '실망'한 책이 있다. 김탁환, 정재승의 합동소설 <눈먼 시계공>(민음사, 2010).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을 오래 전에 재미있게 읽어서 그 '속편'이나 관련서를 기대했던 탓이다. 어제 출간기념회가 있었던 모양인데, 인터뷰기사를 보니 굳이 실망한 일은 아니다. "과학적 상상력과 예술적 상상력이 결합하는 한 가지 실험"이란 건 또 다른 존재의의를 갖는 것이니까. 국내 저자들의 새로운 SF 시도로 눈여겨봄직하다.  

한겨레(10. 05. 11) 문학과 과학이 만나면? 

소설가 김탁환(42·사진 오른쪽)씨와 신경물리학자 정재승(38·사진 왼쪽)씨가 합동 소설 <눈먼 시계공>(전2권, 민음사)을 내놓고 10일 낮 기자들과 만났다. 미국의 저명한 과학 저술가 리처드 도킨스의 책에서 제목을 가져온 <눈먼 시계공>은 2049년 서울을 배경으로 연쇄 살인범과 그를 쫓는 수사팀의 대결을 그리고 있다. 



“2006년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로 부임한 뒤 그곳 과학자 및 공학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장 놀라웠던 건 그들이 미래를 꿈꾸며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종사하는 소설과 역사는 과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번 책 때문에 과학자와는 처음 공동 작업을 했는데, 의외로 팀워크가 좋아서 즐겁게 일했습니다.”(김탁환)

“저 역시 소설 쓰기는 첫 경험이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과학적 지식과 정보에 매몰되지 않고 과학적 상상력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이번 작업을 통해 과학적 상상력과 예술적 상상력이 결합하는 한 가지 실험을 해 본 셈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셨으면 합니다.”(정재승)

<눈먼 시계공>은 서울 뒷골목에서 뇌를 탈취당한 시체들이 발견되고 특별수사대 검사 은석범이 범인을 쫓기 시작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한편에서는 지상 최강의 로봇을 가리는 로봇 격투기 대회의 열기가 치솟고, 서로 무관하게 보였던 이 두 이야기가 결국은 교묘하게 얽혀 있음이 드러난다….

“동물원에서 사자에게 물려 죽은 남자의 입 안에서 사자 털이 잔뜩 나왔다는 기사를 읽은 뒤 ‘생존 본능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제게는 인생의 화두처럼 다가왔습니다. 2004년 서울에서 대전으로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줄거리를 생각해 냈고, 같은 학교에서 실험실을 함께 운영하던 김탁환 선생과 의기투합해 이번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정재승)

“단순히 소설가와 과학자가 이름만 함께 내걸고 형식적인 협업을 하는 방식으로는 하지 말자고 처음부터 약속했습니다. 과학적 지식과 인문학적 교양이 살아 숨쉬는 질 높은 작품, 문학과 과학의 제대로 된 융합의 증거가 되고 싶었어요. 구상하고 준비하는 데에 1년이 걸렸고, 신문에 연재하는 데 9개월, 다시 고치고 보완하는 데에 7, 8개월이 걸렸습니다.”(김탁환)

<눈먼 시계공>을 끝으로 카이스트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나선 김탁환씨는 “졸업 작품을 낸 기분”이라며 “앞으로도 도전하고 싶은 과학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정재승 교수도 “아직 구체화한 것은 없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다면 김탁환 선생과 협동 작업을 하고 싶다”고 화답했다. 400쪽 안팎 분량의 신국변형판 두 권으로 나온 단행본 <눈먼 시계공>에는 삽화가 김한민씨의 컬러 삽화가 곁들여졌다.(최재봉기자) 

10. 05. 11.  

P.S. 날이 무더워지면 장르소설에 대한 수요도 늘어날 듯싶은데, SF 독자라면 기반이 되는 교양과학서도 많이 읽어둠직하다.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미치오 가쿠의 <불가능은 없다>(김영사, 2010) 같은 경우가 1순위에 들 만하다. 개인적으론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민음사, 1997)이나 미치오 가쿠의 <초공간>(김영사, 1997) 모두 단숨에 읽은 책인데, 돌이켜보니 '옛날'에 읽은 책들이다. 이후에는 그만큼 여유가 없었다는 것인지. 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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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5-12 01:15   좋아요 0 | URL
음 국내에서도 차츰 SF소설들이 나오는군요.그나저나 카이스트 교수님이 작가라니 놀랍네요.혹 로쟈님도 SF소설을 읽어보시겠다면(일전에 장르 소설은 너무 쉽다고 하신거으로 기억해서),행복한 책읽기에서 나온 쿼런틴을 추천해 드립니다.양자 역학이 나오는 내용인데 과학적 지식이 없으며 잘 이해가 안가는 하드한 SF더군요^^

로쟈 2010-05-12 18:57   좋아요 0 | URL
장르 소설이 너무 쉽다고 한 적은 없는 듯하고, 너무 많다고 한 적은 있습니다. 그걸 챙겨읽을 시간과 돈이 부족해서요.^^; 나중에 좋은 평론집이나 가이드북이 나오면(프레드릭 제임슨의 책도 있고요) 구경은 해볼 참입니다...

카스피 2010-05-12 23:25   좋아요 0 | URL
근데 SF의 경우 워낙 소설도 잘 안팔려서 평론집이나 가이드북은 국내 현실상 도저히 나올것 같지 않네요 ㅜ.ㅜ

로쟈 2010-05-12 23:42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 평론가가 한 권 낸다고 하더군요.^^

2010-05-13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3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