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린 원고를 끝마치지 못하고(어쩌면 테마를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강의차 나가려던 차에 모처럼 '시적인' 칼럼이 눈에 띄어 옮겨놓는다.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의 칼럼이다. 실제로 정현종 시인의 시가 인용돼 있기도 하다. 최근에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근대>(강, 2009)를 강의시간에 읽기도 했는데, 칼럼은 액체근대(가벼운 근대, 유동적 근대)의 한 사례로도 읽힌다(하지만 '한국적인' 유별남을 보태야겠다. 대비하자면, 박정희 시대가 우리에겐 '고체근대'다). 물론 이 사례는 페이소스를 머금게 하는 사례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처럼... 

경향신문(10. 05. 13) [이대근칼럼]우리는 모두 외국인이다  

얼마 전 상가(喪家)에서 만난 이가 의원인 줄은 소개한 사람의 설명을 듣고서 알았다. 그 전 한 모임에서 인사를 나눈 이가 전직 의원이라는 사실도 명함을 보고서야 알았다. 그러나 의원 얼굴도 모른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는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불평했다. ‘왜 이렇게 모르는 의원이 많은 거야.’ 18대 총선에서 현역 의원 재선율은 46%였다. 17대 총선에서는 30%, 16대 58%, 15대 44%. 

미국 하원은 2002년까지 10개 선거에서 재선율이 95%였고, 일본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높다. 이에 비하면 4년마다 의원 절반 이상이 바뀌는 한국은 매 선거가 혁명이다. 만일 당신이 ○ 의원은 △ 당 소속이라고 알고 있다면, 그걸 너무 믿지 않는 게 좋다. 당신이 모르는 사이 당을 옮겼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7대 국회에서 당적 변경 의원은 62%에 달했다.

술자리에서 시국을 논하다 장관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대화가 끊기는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 건망증이 생겼다거나, 기억력이 나빠졌다고 비관하면 절대 안된다. 1년 만에 바뀔 수 있는 장관을 기억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혹시 장관 이름을 안다 해도 지방선거 이후 개각을 지켜보면, 그게 얼마나 쓸모없는 정보였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관료조직만이 아니다. 기업도, 대학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은 1년마다 속으로부터 바뀐다. 이런 사회에 10년이라는 단위가 있을 수 없다. 1년이 열 번 반복되는 일은 있겠지만.

마술처럼 사라져버린 ‘종로 1가’
자주 이사하는 한국인은 살림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챙겨서 떠도는 유목민을 닮았다. 그래서 낯선 동네로 떠날 때마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해야 한다. 색 바랜 일기장, 젊은 날의 편지, 청춘의 방황과 사색을 부추기던 오래된 책들, 한때 열정을 갖고 몰두했지만 이제는 짐더미가 된 것들을 버려야 한다. 한꺼번에 버리면 가슴이 너무 아플까 봐 일부는 남겨 놓지만, 결국 이사 횟수에 비례해 버리는 것이 많아진다.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이렇게 삶의 기억과 흔적을 지워버리는 일이며, 지친 영혼이 잠시 머물 곳을 없애버리는 일이며, 처진 어깨를 떠미는 일이다. 오로지 진군이다. 전쟁 같은 삶을 위해.  



손낙구의 책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에 따르면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이, 셋방 사는 가구의 80%가 최소 5년에 한번 이사하며 5년이 지나면 동네 사람 3분의 2가 바뀐다. 우리에겐 자기가 사는 곳에 익숙해질 기회가 없다. 만일 익숙해지고 있다면, 그건 떠날 때, 바뀔 때가 됐다는 신호일 뿐이다.

서울 외곽 구파발 갈 때였다. 그 익숙했던 거리가 영화 장면 전환하듯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낯선 세계가 나타났다. 오랫동안 다녀본 길이지만, 기억을 되살릴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외국 여행자처럼 그 거리를 더듬어 가야 했다. 그곳은 은평뉴타운이라고 했다. 서울살이 37년이지만 아직도 어색하다. 얼마를 더 살아야 이 도시와 친해질까.  



요즘 종로 1가를 걸으면,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라고 노래한 시인 정현종처럼 견디기 힘들다. 종로 1가를 안다는 것은 지도상 위치를 안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 거리에 있었던 빈대떡 집, 선술집을 안다는 것이며, 그런 것들이 만들어 내는 종로 1가다운 분위기와 정서를 안다는 것이다. 그 종로 1가가 사라졌다. 종로 1가를 보자기에 싼 뒤 얏! 하고 벗겨내 바꿔치기 하는 마술이 아니라면 이렇게 바뀔 수가 없다.

추억도 아픈 상흔도 지워져
이제 종로 1가는 언젠가 스쳐 지나 본 적이 있는 뉴욕·도쿄의 거리와 다르지 않다. 종로 1가가 꼭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 곳이 종로 1가만은 아니다. 4대강도 언젠가는 우리가 알던 강은 아닐 것이다. 최근 여러 대학을 다녀 볼 기회가 있었는데 옛날 그 대학이 아니었다. 몇몇 대학은 공사 중이며 어떤 대학은 정문부터 찾을 수 없었다.

매일 죽고, 매일 새로 태어나는 한국. 추억할 것은 물론 아픈 상흔조차 남겨 놓지 않는 이곳에서 우리는 모두 외국인이다. 자기의 땅에서 낯선 자들이다

10. 05. 13. 

P.S. 우연찮은 일이지만 아침 내내 중얼거렸던 시구는 박정대의 '물질적 황홀' 가운데 일부다.  

월요일이 죽고, 화요일이 죽고 그리고
비가 내린 다음 수요일이 죽어갔다 나는 그리운
햇볕 한 조각 만나지 못하고 주말까지 계속해서 죽어갔다  
(...)
일주일간의 죽음 끝에 햇살은 輓章처럼 나부낀다

이번주도 햇살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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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5-13 14:37   좋아요 0 | URL
정말 아픕니다. 계속되는 암울한 기분보다 이러 날카로운 고통이 오히려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는 감정이겠지요. 들뢰즈의 노마디즘이 아마도 한국에서는 이런 계속되는 뿌리뽑힘의 트라우마를 봉합하는 이론적 환상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도 해봅니다... 저희 집에서 바라다보이는 앞산에 재개발 예정된 산동네가 있습니다. 아침마다 햇살이 떨어지는 그 동네를 바라보며 비애감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됩니다. 시인들의 노래대로, 이곳에서의 삶은 하루하루가 죽음이고 견딜 수 없습니다.

로쟈 2010-05-14 00:05   좋아요 0 | URL
눈뜨고 코베이는 세월이죠. 고단수에라도 당하면 덜 억울할 텐데요...

2010-05-14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4 0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4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4 0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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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4 10: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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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6 1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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