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작가 다닐 하름스(1905-1942)에 대한 글을 예전에 모스크바통신에 올린 적이 있는데, 반절은 '부조리극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란 제목의 페이퍼로 정리해둔 바 있다. 최근에 작가의 대표작인 <엘리자베타 밤>이 번역/소개된 바 있기에 나머지 내용도 옮겨두도록 한다. 초고는 지난 1999년 겨울쯤에 작성된 것이고 재작년 겨울에 잠깐 손을 본 바 있다.

 

 

 

 

하름스의 작품으론 지난 2004년에 <집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청어람미디어)란 단편집이 출간됐고, 드라마 <엘리자베타 밤>은 <작가세계>(2006 겨울호)에 게재돼 있다. 자세한 해설이 결들여 있어서 독자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작품에 붙은 장면번호가 빠져 있어서 아마도 내용 자체는 상당히 난삽하게 여겨질 법하다(아래의 글은 이 번역본을 참조하지 않았다). 부조리극이란 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혹 단행본으로 묶여서 출간된다면 보다 자세한 안내가 필요할 듯하다. 아래의 글은 그러한 '안내'를 위한 '로드맵'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제목의 ‘리자, 리자베타, 엘리자베타 밤’은 언젠가 내가 쓰고자 하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하름스’론의 제목이다. ‘리자베타’의 영어식 이름이 ‘엘리자베스’이며, ‘엘리자베스’의 러시아식 이름이 ‘엘리자베타’이다. 해서 리자베타와 엘리자베타는 같은 이름이며, 리자는 리자베타/엘리자베타의 애칭이다.

‘다닐 하름스 읽기’를 제안한 ‘책임’도 있고 해서 그의 문학세계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말해보기로 한다. 그의 대표적인 드라마 ‘<엘리자베타 밤> 읽기’인데, 이전에 하름스에 대한 글을 옮겨올 때는 아직 <집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청어람미디어)란 작품집이 나오기 이전이어서, 본론의 내용은 생략했었다(너무 자세하게 들어가는 듯해서). 하지만, (국역본 표지에 따르면) “빛나는 러시아 부조리문학의 기수, 다닐 하름스 작품선”도 지난 가을에 나온 김에 조금 자세히 들어가는 것도 하름스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참고는 될 듯하다. 해서 옮겨오는 것이다.

그 글을 쓰던 때쯤부터(6년전 겨울이다) 나는 부조리문학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견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의미의 논리’의 짝패로서) ‘무의미의 논리’라는 것을 구성해보기 위해서이다(사실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바쳐지고 있는,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의 절반은 ‘무의미의 논리’이기도 하다). 이 ‘무의미의 논리’는 정신분석학의 관심대상인 ‘무의식의 논리’와도 친연성을 갖고 있지만, 둘이 동일하지는 않다. ‘무의미의 논리’는 러시아의 자움(zaum)(영어로 옮기면 ‘trans-reason’쯤 된다) 시들에서 보듯이 ‘초강력 의식’의 산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를 ‘초강력 합리주의’(super-rationalism)라고 불렀다).

 

 

 



무의미의 논리, 즉 ‘로직 오브 넌센스(Logic of nonsense)’를 한 단어로 하면 ‘파랄로직(Paralogic)’이 된다. ‘Paralogic’이란 단어는 영어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지만(사전에 등재돼 있는 건 ‘오류’ ‘배리(背理)’란 뜻의 ‘paralogism’이다), 그걸 구성하고 있는 두 단어 ‘Para’와 ‘logic’의 뜻을 통해서 유추해볼 수는 있는 단어이다. 그런 단어를 (러시아문학에서는) ‘자움(zaum)’어라고 하며(흘레브니코프는 ‘새의 언어’라고도 부른다), 그런 자움어들로 이루어진 시를 자움 시라고 한다. 그러니까 그런 자움의 논리를 뜻하는 단어로 내가 또 다른 자움인 ‘파랄로직’을 갖고 오는 것이 억지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파랄로지스트’로서 내가 꿈꾸는 것은 언젠가 <무의미의 논리>란 책을 쓰는 것이다(그때 ‘이상한 나라’ 러시아의 시와 문학은 유익한 자료이자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사실, 영어의 ‘파라(para)’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접두어이다(접두어로서 ‘para’가 갖는 기본적인 의미는 ‘beside’와 ‘against’이다). 6년전 여름에 나는 이렇게 썼었다: “PARA, 내가 좋아하는 접두어. 바로 우리 곁에 있으면서(beside) 우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어깃장을 놓는(against) 우리들의 삶, PARA! 패러프레이즈(paraphrase)로서의 삶은 본때나는,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로서의 삶과 얼마나 다른가! 우리는 우리 가까이 있었고 우리가 잡을 수 있었던 것을 모두 놓쳐 버렸다. 그리고는 뒤늦게 뒤쫓아가는(catch up) 것이다. 오 CATCHUP, 이 죽도 밥도 아닌 삶!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는 언제나 우화(parable)이고 우리의 이즘은 평행주의(parallelism)이며, 우리는 고작 정부(paramour)의 사랑이나 꿈꾸며 편집증(paranoia)을 앓는다. 오 PARA, 이 죽도 밥도 아닌 삶! 그러니 제대로 된 서문(Preface)을 쓴다는 건 말이 안되는 것(paradox)이지.”(이건 그 책의 ‘Paraface’였다.)

부조리문학이 재현/생산해내는 삶은 주로 ‘캐치프레이즈로서의 삶’(=잘나가는 삶)이 아니라 ‘패러프레이즈로서의 삶’(=구겨진 삶)이며(패러프레이즈들로 가득 차 있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려보라), 대개 캐치프레이즈와는 인연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나로선 그런 점에서 부조리문학이 마음에 든다(나의 ‘직업’은 다른 삶/텍스트들을 끊임없이 ‘패러프레이즈’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파랄로지에 대한 책을 쓰겠다는 건 나름대로의 의무이면서 예의인 것이다. 이 파랄로지의 이론적 구상에 있어서 나보다 앞서 가고 있는 이들이 들뢰즈와 크리스테바 등이며(나는 뒤쫓아갈 것이다, 케첩이 될 때까지), 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언어학이 초언어학(paralinguistics)이고, (러시아어에서) ‘파라그람’을 연구하는 ‘빠라그라마찌까(paragrammatika)’이다(‘파라-그라마톨로지’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러니까 하름스에 대한 나의 관심은 부조리극의 시학, 더 나아가 무의미의 논리를 구성하고자 하는 보다 거시적인 관심에서 비롯된다(나는 어제도 알프레드 자리와 장 주네의 러시아어 작품집을 구입했다). 물론 그런 거시적인 관심 자체는 하름스를 읽으면서(그리고 베케트를 읽으면서) 사후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하름스를 읽지 않았다면, 그런 관심을 갖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관심 때문에 하름스를 다시 읽는다(‘읽기’는 그런 식으로 변증법적이다). 그리고, 내게 하름스는 일차적으로 드라마 <엘리자베타 밤>의 작가이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이 그 작품을 통해서이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도 <엘리자베타 밤>이다(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노파>이다). 이하는 이 작품에 대한 ‘몇 마디’이다.



먼저, 하름스에 대한 몇 마디. 다닐 하름스(1905-1942)는 알렉산드르 베젠스키(1904-1941)와 함께 아동문학가로서만 알려지다가 1960년대 후반에 와서야 재발견/재평가되고 있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마지막 작가이다(혹은 러시아의 마지막 아방가르드의 작가이다. ‘아방가르드’란 건 쉽게 말해서, 삶이 예술을 모방해야 한다고 공언하는 패거리이다. 물론 일반적인 예술은 삶을 모방한다). 하름스의 본명은 ‘다닐 이바노비치 유바초프’로, 국역본에는 ‘유바체프’로 돼 있는데, 착오이다. 영어 표기는 ‘Iuvachev’쯤이 될 텐데, 강세가 뒤에 오기 때문에 ‘유바체프’가 아닌 ‘유바초프’로 읽어야 한다(<엘리자베타 밤>의 번역에서도 '유바체프'라고 오기하고 있다). ‘흐루시초프’나 ‘고르바초프’에서처럼. 그의 절친한 동료 베젠스키(A. Vvedensky)의 이름도 국역본의 하름스 연보에는 ‘알렉산더 브베젠스끼’라고 돼 있는데, “러시아 원음 발음에 가깝게 표기”한 것과는 좀 거리가 있다. ‘알렉산더’는 ‘러시아어 표기’가 아니라 ‘영어표기’이기 때문이다.

짐작에 역자는 영역본을 같이 참조한 것으로 보이는데(2-3종의 영역본이 나와 있으며, 단편들뿐만 아니라 드라마 <엘리자베타 밤>도 번역돼 있다), 참조 자체가 문제될 건 전혀 없지만 표기 자체를 영어식으로 대체한 것은 유감스럽다(77쪽에서 “알렉산더 1세, 2세, 3세”도 물론 “알렉산드르 1세, 2세, 3세”로 표기돼야 한다). ‘알렉산드르’를 ‘알렉산더’로 표기하는 식이라면, ‘표트르 대제’는 ‘피터 대제’가, ‘뻬쩨르부르그’는 ‘피터스버그’가 돼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역자의 ‘작품해설’에서 거명된 작가 ‘칼슨 맥큘러(Carson McCullers)’의 우리말 표기는 ‘카슨 맥컬러즈’이다(내 기억에 그렇게 소개됐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쓴 여성작가가 맞다면.



하름스와 베젠스키 두 사람은 1927년부터 1930년까지 레닌그라드(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했던 문학그룹 ‘오베리우’의 리더들로서(화가 말레비치도 그들과 가까웠다), 이들이 활동한 1920년대 후반은 NEP(신경제정책)기를 통해 생산력을 회복한 소련이 스탈린의 주도하에 1928년부터 계획경제안을 수립하여 본격적인 중공업화를 추진하던 시기였다. 일국사회주의를 주창하여 반대파들을 제거하고 본격적으로 국가사회주의 건설에 나선 스탈린은 이 시기를 ‘대전환의 해’(1929년)라고 불렀다. 1917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이미 10년이 지난 때였고, 혁명의 이상은 차츰 당면한 현실적 요구에 의해 대체되었다. 이에 발맞추어 시인-작가들은 ‘작가동맹’으로 조직화되었고, 이들은 건설적 ‘비판’ 대신에 사회건설에의 적극적 ‘동참’을 요구받았다. 소비에트 문학의 이념적 지도원리와 창작방법론으로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공식 선포되는 것은 1934년의 일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리얼한 예술’ 운운하며 현실과는 또 다른 예술적 ‘현실’을 제시하고자 했던 이 ‘블랙-유머’ 작가들에게 전혀 이롭지 않은 것이었고(국역본의 작품해설에서는 ‘오베리우’를 ‘현실주의 예술의 동맹’이라고 풀어주는데, ‘실재예술연합’ 정도가 어떨지 싶다. 이때 ‘실재(=리얼)’란 말은 라캉적 의미에서의 ‘실재’에 아주 가깝다. 이들의 주장은 예술 그 자체가 현실보다도 더 ‘리얼한 현실’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들은 1930년대에 계속적으로 공개적인 비판과 정치적인 탄압을 받아오다가 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에 체포되어 숙청되었다. 베젠스키가 41년, 하름스가 42년, 이들이 주로 발표했던 (아동)문학잡지 <취슈(Chish)>와 <요슈(Esh)>의 편집장 N. 올레이니코프(1898-1937)는 37년에 각각 숙청되었다(최근에 작품집들이 나오고 있는 올레이니코프는 ‘소프트 하름스’로 불린다).

이후 문학사에서 지워졌던 이 두 사람의 작품들은 1960년대에 들어서 폴란드, 체코 등지의 문학잡지에 게재되었다. 1967년에는 에스토니아의 타르투대학에서 이들에 대한 발굴/연구가 진행되었고 1971년에는 <러시아의 잃어버린 부조리 문학>(코넬대출판부)란 제명으로 서방에 처음 알려졌다(G. 기비언(Gibian)이 편집했고, 원제는



오베리우 작가로서 베젠스키와 함께 재발견된 이후 하름스의 문학세계는 몇 갈래의 관점에서 조명되어 왔다(박사학위논문을 포함해, 현재 영어권에서는 4-5종의 단행본 연구서가 출간돼 있으며, 러시아어로도 3-4종의 연구서가 나와 있다. 2001년에는 아내 마리나 두브노보의 <나의 남편, 다닐 하름스>란 회고록도 출간됐으며, 하름스의 삶과 작품세계를 소재로 한 연극 레퍼토리도 두어 종이 공연되고 있다. 그 중 하나를 봤었는데, ‘광대극 + 아동극’ 유형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엘리자베타 밤>은 공연되지 않고 있다).

먼저 첫번째로, 20세기 서구의 부조리문학과 관련하여 이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관점이 있다(신세대 하름스 연구의 선두주자인 토카료프가 하름스와 베케트를 비교하는 단행본 연구서를 갖고 있다). 이에 따르면, 비록 하름스가 처해 있었던 러시아적 맥락은 카프카나 베케트 같은 서구 부조리 작가들의 경우와 분명한 차이를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유럽의 부조리 문학사에 포함된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너무 넓은 시야에서 파악한 것인 만큼 일반론에 머무는 것이어서 하름스 문학의 러시아적인 특징을 제대로 지적해내지 못하는 단점을 갖는다.

두번째로, 러시아 문학의 전통과의 패러디적인 상호텍스트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이해하고자 하는 관점이 있다. 이에 따르면, 하름스는 기존의 문학적 정전들에 대한 체계적인 ‘파괴’ ‘다시-쓰기’ 혹은 ‘탈정전화’를 통해 새로운 아방가르드 문학의 바탕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즉 새로운 뭔가를 만들어내기 전에 먼저 기존의 것을 파괴해야만 했고, 이를 위해 그들이 사용한 무기가 문학적 패러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하름스의 보다 많은 관심이 낡은 문학적 전통의 파괴보다는 새로운 ‘문학적 현실’의 제시에 두어졌다는 사실을 놓치게 된다.

세번째로, 하름스의 부조리문학적 성격을 선/악의 본질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 말하자면,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경우 하름스에게서 두드러지는 웃음과 공포의 동시적인 제시를 러시아 문학에서 특징적인 도덕적 풍자의 전통(특히, 고골적인 전통) 속에 자리잡게 해주고, 이들의 부조리성이 가지는 본질적으로 윤리적인 관심을 강조함으로써 1930년대 레닌그라드의 정치적, 문학적 현실과 문학텍스트와의 교직 관계를 짚어볼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네번째로, 1930년대 소비에트의 도시적 속물주의 세계관과 삶, 언어에 대한 패러디에 국한되지 않는, 보다 복잡한 예술적 기획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이에 따르면, 특히 하름스의 블랙-유머는 “모든 것이 허용되는” 도스토예프스키적 세계를 그려보고자 한 것이 된다. 그럴 경우 선과 악, 미와 추, 일상과 기적, 삶과 죽음 사이의 구분이 무화되고, 인과율은 우연으로 대체되며 모든 감정과 의미는 증발해버리는, 말 그대로 부조리한 세계가 연출된다. 그리고 이것은 시대적 문맥에서 볼 때, 새로운 소비에트 현실과 ‘새로운 소비에트 인간’ 창조에 대한 환멸을 표시하는 것이 된다. 여기서도 하름스적인 부조리의 윤리성이 강조된다.

마지막으로는 바흐친의 카니발적 세계관이나 리하초프의 반( 反)세계적(=뒤집힌 세계) 세계관의 표현으로 하름스를 이해해 보고자 하는 관점이 있다. 이에 따르면, 중세 러시아의 바보-성자적 전통과 오베리우 부조리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표면적인 희극성이나 부조리성 밑에 깔려 있는 윤리적 차원이다. 이러한 윤리적 차원을 읽어내지 못할 때 관객이나 독자는 그 표면적 부조리성과 무의미에 그냥 웃고 말겠지만, 만약에 그것을 읽게 되다면 눈물을 지을 것이다(부조리문학은 ‘말장난’의 문학이 아니다. 거기서 윤리적 차원을 놓치게 되면, 부조리문학을 ‘비윤리적으로’ 읽는 것이 된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만 하더라도 데리다가 말하는 ‘종교 없는 종교’ 혹은 ‘종교 없는 메시아주의’의 탁월한 사례를 제시하지 않는가?).



이상에서 요약한 몇 가지 관점은 하름스 문학세계의 부조리적 성격을 공통적으로 지적하면서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맥락으로 각각 서구 부조리 문학, 문학적 패러디, 종교적/윤리적 성격, 소비에트 현실, 카니발적/반-세계적 세계관 등을 내세우고 있다. 이 자리에서 내가 거기에 더 보태고 싶은 것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적인 관점이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보여주는 세계상은 우리의 일상적인 유클리드 기하학적 세계상에 비추어볼 때, 그것이 일그러진 거울, 깨진 거울에 반영/굴절된 ‘이상한’ 세계상이다. 그런데 바로 이 ‘이상한’ 세계상이 흔히 넌센스의 세계로 지목되는 하름스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우리의 판단인 것이다.

이 경우 우리가 따르게 될 논리는 타문화 사람들의 풍속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인류학자들의 작업과도 유사해 보인다. 가령 인도의 힌두교 신자들은 송아지를 신성시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미소의 젖이 부족할 경우, 밭을 가는 일이 없기 때문에 수송아지는 굶어 죽게 하는 것으로 통계가 나와 있지만, 정작 자신들은 그러한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다(당사자/내부자 관점만을 고려하는 연구의 한계가 거기에 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당사자의 관점(=emic적 방법)과 관찰자적 관점(=etic적 방법)을 잘 병행하는 것이다. 힌두교의 <성스러운 암소>의 경우는 조작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4개의 객관적 영역이 있을 수 있다(마빈 해리스의 <문화유물론> 참조).

1. 에믹적/행위적: 굶어 죽는 송아지는 없다
2. 에틱적/행위적: 수송아지는 굶어 죽는다.
3. 에믹적/정신적: 모든 송아지는 살 권리가 있다.
4. 에틱적/정신적: 젖이 부족할 때는 수송아지를 굶어 죽게 한다.

문학텍스트에서 우리에게 보고되거나 드러나는 것은 1과 2뿐이다. 3과 4에 대한 지식과 통찰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굶어 죽는 송아지는 없다”와 “수송아지는 굶어 죽는다”처럼 서로 모순되는 데이터만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며 이것은 우리에게 부조리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부조리극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표면적인 불일치와 모순 뒤에 가려진 숨겨진 진실에 접근할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부조리극을 ‘조리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여건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러한 여건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비유클리드 기하학적 통찰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게 나의 판단이다.

그럼 이제, 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이교적 세계관’으로서의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갖고 있는 몇 가지 특징이 부조리극 일반, 특히 이 러시아 오베리우의 대표주자인 하름스의 작품세계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엘리자베타 밤>을 다시 읽으면서 탐색해 보기로 하자(비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전의 글 '부조리극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참조).

 

 

 



흔히 부조리극의 세계는 넌센스(=비상식)의 세계라고 말해진다. 부조리극을 구성/장식하고 있는 것은 여러 층위에서 넌센스적 불일치이고 부조화이다. 이때 넌센스란 말이 상식적인 의미 이전/이후란 뜻이다. 그것은 상식적인 의미에 못 미치거나 그것을 넘어선다(이것은 비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보다 크거나 작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이해되지 않는다. 아니 이해를 초월한다. “기하학을 초월하는 것은 모두 우리들의 이해를 초월한다”고 파스칼이 말할 때, 그가 생각하는 기하학은 유클리드 기하학이다. 이때의 기하학은 모든 학문의 모델로서의 기하학이다. 하지만 이제 주장하게 될 비유클리드적 공간으로서의 부조리극은 바로 그러한 학문적/개념적 이해-지배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이며 탈주이다. 그것은 데리다의 어법을 빌려 말하자면, ‘불가능성의 경험’(the experience of the impossibility)이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의미에 대한 저항이다. 기호나 담론의 의미라는 것은 그것을 구성하는 기표와 기의가 어떤 언어체계나 규칙에 근거하여 등을 맞대고 결합할 때 생성된다. 해서 움베르토 에코는 그래서 기호란 말 보다는 기호-기능이란 말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주장한다(Properly speaking there are not signs, but only ‘sign-functions’). 이때 이들의 결합을 주선하는 언어체계나 규칙이란 것은 자연언어의 그것이면서 동시에 문화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다. 부조리극의 작가는 거기에 대항하여 자신만의 언어체계나 규칙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사람이다(물론 여기에 먼저 전제되는 것은 세계의 부조리에 대한 ‘감수성’이다). 즉 그는 개인적 방언의 창조자이면서 자신의 상상적 세계의 유일한 입법자이다.

그런데, 오베리우 작가인 하름스는 그러한 개인적 창조와 자율적 입법에 대한 권리가, 점차 강화되어 가던 소비에트의 국가사회주의의 단일한 이데올로기(스탈린이즘)에 의해 차단되고 압류되던 불운한 시기에 작품활동을 해야 했다. 기하학적 은유를 끌어오자면, 그것은 “직선 L과 L 위에 있지 않은 점 P에 대해서, P를 지나고 L과 평행한 직선은 단 하나 존재한다.”로 표현될 수 있는 세계이다. 이것은 흔히 상식의 세계라고도 한다. 때문에 상식에 대한, 자연언어와 일상세계에 대한 이들의 저항은 상징적으로 反-이데올로기적인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그들이 소비에트 사회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먼저 그들이 예술적 강령으로 내세운 <오베리우 선언서>(1928)의 한 구절을 읽어보기로 하자.

우리 공연에 오면서, 다른 극장들에서 보고 익숙해진 모든 것들은 잊어버리십시오. 여러분에게는 혹 많은 것들이 어리석은 넌센스로 느껴질지 모릅니다. 우리도 드라마적인 플롯을 가지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처음에 평범하게 진행되다가, 전혀 무관한 듯 보이면서 분명 넌센스적인 계기들에 의해 방해를 받습니다. 여러분은 놀라실 겁니다. 곧 일상적인 삶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논리적 합법칙성을 여러분은 찾고자 할 테지요. 하지만 여기엔 그런 것이 없다구요? 왜입니까? 왜냐하면, 삶에서 일단 무대로 옮겨진 사물(오브제)과 현상(현실)은 자신의 일상적인 ‘삶’의 법칙성을 잃고서 그것과는 전혀 다른 법칙성, 즉 극장(무대)의 법칙성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우리로선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런 종류의 무대 공연의 법칙성을 이해하려면, 다른 수가 없습니다, 직접 와서 보아야만 합니다.

이 구절은 연극 공연에 대한 오베리우 선언의 핵심에 속하는데, 여기서 대립되고 있는 것은 일상적 삶의 논리/법칙과 극장의 논리/법칙이다(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새로운 ‘규칙’이고 ‘법’이다. 나는 요즘 데리다의 <법의 힘>을 읽고 있는데, ‘법’에 대한 글은 조만간 따로 쓸 계획이다). 일상생활에서 친숙한 사물이나 현상은 무대로 옮겨지면서 변화되고 새로운 극장적/무대적 질서로 편입된다. 그리하여 새로운 (무)의미를 창출하며, 전혀 다른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오베리우 선언서에서 이에 대한 예시로 들고 있는 것은, 무대에서 배우가 갑자기 네 발로 기면서 늑대처럼 울부짖는다든가, 러시아 농민이 갑자기 라틴어로 일장연설을 한다든가 등이다. 이런 돌발적인 불일치/부조화와 넌센스가 오베리우트들이 보기에 ‘극장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대적 무질서나 혼란이 권장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도 분명 어떤 법칙성과 논리성이 주어진다. 그러나 그것을 (로고스적인) 말로써는 표현할 수 없다. 그렇게 때문에 직접 와서 보아야만 한다. 이것이 오베리우트들의 주장이다. 여기서 일상적 삶의 논리와 극장의 논리 사이의 관계, 상식/비상식의 관계를 유클리드 기하학와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관계로 대치시켜 보면, 이해는 보다 용이해진다. 우리가 일상적인 삶에서 익숙하게 찾을 수 있는 논리적 합법칙성이란 것은 바로 유클리드 기하학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은 곱슬머리를 다리미로 펴는 것처럼 모든 굴곡을 지우고 평면화하여 사고하는 것인데, 그것이 우리에겐 편리하고 익숙하다. 일상적으로 우리는 어떤 일은 하는가? 사물들의 형태들에서 표면들을 고르면서, 예컨대 선들 가운데 직선을, 그리고 표면들 가운데 평평한 표면을 특별히 우선적으로 취급한다. 반면에 전체적으로 혹은 부분적인 곳에서 굽은 표면들은 여러 가지 실천적 관심에서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평면들을 만들어내고 이 평면들을 완성하는 것, 매끄럽게 마무리짓는 것이 항상 우리의 역할이다(후설, <기하학의 기원> 참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클리드 기하학이 세계를 자신의 대상으로 전유하기 위해서 세계를 평면화, 평탄화하면서 모든 굴곡을 배제한다는 점이다(나는 주름/굴곡에 대한 들뢰즈의 관심이 이런 문제의식에 닿아있는 걸로 이해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에서 유클리드 기하학이 제시하는 세계상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며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다. 그것은 세계를 제작하는 적어도 세 가지의 논리적이고 정합적인 방식 가운데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조리극을 ‘이성중심주의’에 대한 대항/비판으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것이 대항/비판하는 것은 자신만을 유일한 이성이라고 고집하는 ‘특정한/특이한 이성’이기 때문이다. 부조리극은 자신의 또 다른 논리/이성으로 그러한 대항/비판을 실천한다(무의미는 비논리가 아니라 ‘다른 논리’에 의해서 구축된다).

따라서 자신의 이러한 문화적 성격,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숨기고 자신을 자연적인 것으로 내보이면서 유일한 세계-버전으로 주장할 때 그것은 일종의 ‘신화’가 되어버린다(이것이 신화에 대한 바르트의 정의이다). 그것은 “직선 L과 L 위에 있지 않은 점 P에 대해서, P를 지나고 L과 평행한 직선은 단 하나 존재한다.”는 평행공준에 기초한 유일신(일신론)의 신화이며, 이 세계와 작품에 대한 유일하게 올바른 한 가지 해석/이해가 존재한다는 단의성(單義性)의 신화이다(이 단의성의 신화에 대한 비판으로는 페터 지마의 <문학텍스트의 사회학을 위하여> 참조).

우리가 일상적인 생활에서 비록 유클리드 기하학에 많은 것을 의존한다고 해서 오직 그것만을 세계상의 유일한 준거로 믿는다면, 우리는 파시즘으로부터, 스탈린이즘으로부터 그리 먼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물론 지젝은 ‘더 나쁜’ 파시즘과 ‘덜 나쁜’ 스탈린이즘을 구별하는데, 내 생각에 그러한 구별은 ‘윤리적인 판단’이 아닌 ‘정치적 판단’에 근거한다). 참고로, 20세기의 대표적인 맑시스트 문예이론가인 루카치는 하우저와의 대담(1969년)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서구에서는 요사이 제 견해로는 공허하기 이를 데 없는 구호인 <다원론주의>라는 것이 대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동일한 문제를 두고 여러 개의 진리가 있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라는 것은 언제나 오로지 단수 속에만 있습니다.” 이것을 유클리드적 이성만을 고집하는 이론가의 아주 ‘정직한’ 고백으로 읽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 하우저는 이렇게 응수했다: “적어도 단일한 이데올로기 내에서는 그렇지요.”(반성완 편역, <변증법적 미학에 이르는 길> 참조)

오베리우 작가들이 그들의 선언서에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구분해내고자 하는 일상의 논리/극장의 논리는 바로 그러한 정치적 입장까지 함축하는 것으로 우리는 읽고 싶다. 부조리 작가는 정치적으로 ‘다원주의자’이다. N. 굿맨은 그 다원주의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다원주의자란 反과학적인 태도와는 거리가 멀며, 과학을 온전하게 수용한다. 그가 반대하는 것은 전횡적인 유물론자 혹은 물리주의자이다. 물리주의자는 한 가지 시스템, 가령 물리학이 가장 탁월하며 모든 걸 포괄하기에 여타의 버전들(=세계제작의 방식들)은 그 물리학으로 환원되거나, 혹은 무의미한/틀린 것으로 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The pluralist, far from being anti-scientific, accepts the sciences at full value. His typical adversary is the monopolistic materialist or physicalist who maintains that one system, physics, is preeminent and all-inclusive, such that every other version must eventually be reduced to it or rejected as false or meaningless.)('Ways of Worldmaking' 참조)



오베리우 작가들을 좇아서 분류하자면, 연극에서 우리는 세 종류의 버전을 가질 수 있다. 첫째로 연극이 그리거나 굴절시키고자 하는 바깥 현실세계, 즉 일상적인 세계가 있다. 그것을 Wo라고 하자. 둘째로 연극 공연의 드라마적 플롯의 세계가 있다. 그것을 Wd라고 하자. 마지막으로 오베리우 극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연극의 무대적인 플롯의 세계가 있다. 그것을 Wt라고 하자. 기존 연극에서는 Wt가 Wd에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은 다만 Wo와 Wd의 관계, 즉 현실에 대한 모방(=미메시스)의 관계였다. 그러나 오베리우 부조리극에서 Wd는 Wt의 굴곡 안에 포개넣어져 있다. 즉 그것은 직접적으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선언서의 한 구절을 더 읽어보자.

드라마적 플롯은 무관한 듯 보이는 테마들에 의해 분산됩니다. 이 테마들은 극의 각 대상들을 다른 나머지들로부터 분리시켜서 전혀 동떨어진 어떤 덩어리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드라마적 플롯은 관객의 눈앞에 어떤 명백한 플롯적 형상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다만 행위의 등뒤에 숨어 희미하게 반짝거릴 따름입니다. 그것을 대신하여 등장하는 것이 무대적 플롯인 바, 그것은 우리 공연의 모든 볼거리적 요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된 관심은 바로 여기에 있지요.

사정이 이렇다면, 오베리우 부조리극에서 Wo와 관계하는 것,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은 Wd가 아니라 Wt이다. Wd는 극장/무대라는 공간에 투사/반영되는 Wo를 말한다. 따라서 그것은 어느 정도 Wo의 논리에 잡아당겨지며 환원된다. 이 둘의 관계가 사실적이냐 상징적이냐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Wt는 다르다. 그것은 현실의 공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무대적 공간이고 상상적 공간이다. 여기에서는 Wo의 논리가 그다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즉 그것은 비유컨대 자체의 고유한 곡률을 가진 또 다른 세계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Wo의 세계를 뒷받침하는 유클리드 기하학(곡률=0)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이 유클리드적 입장에서 보자면 비유클리드적인 Wt의 세계는 현실을 더 이상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굴절시켜버린 왜곡된 세계이다. 그래서 반-세계이고, 비-세계이다. 그것을 반듯하게 펴놓고자 하는, 평평하게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그 ‘이상한’ 세계의 굴곡과 만나게 되는 경험이 바로 불일치, 부조리의 경험이다.

반면에 Wt의 비유클리드적 입장에서 오히려 더 왜곡돼 보이는 세계는 Wo의 세계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보이던 Wo의 세계가 갑자기 이상해지고 낯설어진다. 대낮에 팬티도 안 걸친 기괴한 세계로 보이는 것이다(하름스의 친구였던 드루스킨에 따르면, 하름스는 안데르센의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어린이를 닮았었다). 이러한 사실이 전제된다면, 이제 오베리우트들이 자신들의 선언적 강령을 직접 뒷받침하기 위해 내세웠던 하름스의 <엘리자베타 밤>를 읽어보기로 한다. 이 작품에서 Wo로 쉽게 환원되지 않는 Wt를 따라가면서, 그 속에 포개져 있는 Wd를 어느 정도 재구성해 보기로 하자. 이 ‘고도로 복잡한 텍스트’에 대한 ‘한 가지 읽기’에 동원되는 것은 모든 공간의 곡률=0의 세계로 규정하고 오직 평면만을 따라가는, 일상적인 유클리드적 이성이 아니라, 뒤집어진, 전도된 세계상 속에서 넌센스적인 논리를 찾아내는 비유클리드적인 이성이다. 그것이 은유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P.S.  이후로도 거의 20쪽 분량이 더 남아있는바 분량상 여기서 끊는다(문득 이건 너무 ‘장황한’ 소개가 아닌가란 회의도 들고). 다만, 보다 ‘총체적인’ 하름스의 모습을 그려보는데 도움이 될까 하여 그의 대표적인 드라마 <엘리자베타 밤>의 얘기를 꺼낸 것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얘기는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그 ‘다음’이 언제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름스의 <노파>를 비틀어서 말하자면) 물론 나는 모든 걸 써놓았으며 지금 당장에 그걸 다 옮겨올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04. 12. 13./ 06. 12. 03.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12-04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12-04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최수철씨의 소설 중에 <분신들>이라고 있지 않나요? 원래는 오토 랑크라는 사람의 고전적인 연구서가 있는데, 찾으시는 게 번역작품들쪽이신가 보네요. 도스토예프스키의 대부분의 작품들과 영화로 <도플갱어> 종류들을 찾아보시길. 저도 딱히 도움이 될 만한 작품은 떠오르지 않네요.^^;

2006-12-05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터넷 폭력'에 대한 한겨레의 사설과 댓글들을 읽다가 지난번에 쓴 페이퍼 '패리스 힐튼과 카트린 밀레'에 이어지는 고리가 될 듯싶어서 다시 페이퍼를 쓴다. 지젝의 <혁명이 다가온다>(길, 2006)의 제5장 '레닌은 자신의 이웃을 사랑했는가'의 106-8쪽까지 읽어보는 게 1차적인 목표이고 좀 무리하면 진도는 더 나아갈 수도 있겠다. 먼저, 관련기사와 사설부터 인용해놓는다(아래는 청와대의 문화일보 절독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연재소설 '강안남자'의 삽화).

한국일보(06. 12. 02) '포르노배우 영어강사' 얼굴공개 파장

캐나다 유학 시절 포르노물에 출연한 한 여성 영어강사의 신원이 인터넷에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서울의 한 영어학원 강사로 재직한 A(33·여)씨가 포르노 동영상을 찍은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일부 네티즌이 해당 여교사가 출연한 포르노를 편집해 인터넷 사이트 이곳저곳에 올리고 있는 것.

문제의 여강사는 캐나다 유학시절인 2005년 2월부터 9월까지 캐나다에 서버를 둔 한 포르노사이트에서 한 편당 200∼300 달러를 받고 모두 30여편의 포르노를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다니는 영어학원의 여강사가 해외 포르노 사이트의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는 한 네티즌의 제보에 의해 포르노 배우 경력이 들통났다.

경찰은 최근 A씨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조사에서 A씨는 "포르노를 찍는 것이 한국에서는 불법인지 알았지만 캐나다에서는 합법이었다"며 "한국사람들이 캐나다 포르노 사이트까지 들어가서 볼 줄은 몰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속인주의 원칙에 따라 국내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A씨가 경찰에 입건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캐나다 영어강사가 누구냐", "캐나다 영어강사의 싸이월드 주소를 알려달라"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부 네티즌이 A씨의 얼굴이 그대로 등장하는 포르노 편집 동영상과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고 이로 인해 그의 얼굴은 만천하에 공개됐다. 일부 포털사이트가 A씨 관련 기사에 댓글을 달 수 없도록 조치를 취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수위에 오른 것은 물론 실명과 개인 블로그 주소도 함께 공개돼 파장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한편, 일부 네티즌들은 언론에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보도는 자제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한겨레(06. 12. 02) 인터넷 폭력, 더는 두고볼 수 없다

“마녀사냥이 또 시작됐다.” 이른바 ‘포르노 찍은 영어강사’에 대한 인터넷 이용자들의 댓글 폭력을 개탄하는 이들이 하는 말이다. 캐나다 유학 시절 포르노를 찍은 사실이 드러나 처벌을 받게 된 이 영어강사는 사회에서 매장될 처지에 놓였다. 얼굴 사진은 물론이고 본명과 일하는 학원, 출신 학교 따위가 속속들이 파헤쳐지고 있다. 공인도 아닌 개인의 사생활을 이렇게까지 침해하는 건 야만적인 폭력일 뿐이다.

일방적인 매도가 쏟아진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이른바 ‘개똥녀’ 사건을 연상시킨다. 이 여성은 단지 포르노를 찍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 쓰레기쯤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런 비난에는 여성 비하 심리도 개입되어 있는 듯하다. 인터넷을 통해 일본의 음란물을 공급하다가 적발된 이른바 ‘김본좌’가 인터넷에서 영웅처럼 취급되던 걸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여성이기에 더 쉽게 사생활을 까발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물론 책임을 온통 ‘몰지각한 네티즌’들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개인 정보가 유출될 여지를 철저히 봉쇄했어야 할 경찰과 언론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 경찰은 경찰청 제보 게시판에 올라온 글 때문에 수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따위의 세세한 내용까지 공개했고, 대부분의 언론은 이걸 그대로 보도했다. 이렇게 지나치리만큼 상세한 사건 공개는 그 자체로 문제다. 그런데 한 블로그 이용자가 정리해 놓은 사건 경위를 보면, 사소한 듯한 이 사실이 개인 정보 유출의 실마리였다고 한다.

내용인즉, 인터넷 이용자들이 제보 게시판을 샅샅이 뒤져 제보 내용을 확인했고, 제보에 언급된 영문 닉네임을 근거로 개인 정보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개인 정보 유출의 책임은 제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경찰에 있다고 할 것이다. 경찰은 제보 내용이 정말 유출됐는지 분명히 확인해서 사실이라면 책임자를 문책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인터넷 실명제를 정당화하는 사례로 활용하는 건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언어 폭력과 개인정보 유출의 주된 무대는, 회원 가입 때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실명을 확인하는 포털들이다. 실명제가 폭력적 댓글을 막는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인터넷 폭력은 이용자의 자발적 노력과 사회적 여론 형성, 인터넷 사이트들의 협력 따위를 통해서만 뿌리뽑을 수 있다.

 

 

 

 

"후기 자본주의의 조건에서 우리의 감성적 삶은 이처럼 완전히 분리되었다. 한편에는 사적 영역, 즉 감정적 진지함과 밀도 깊은 개입으로 이루어진 내밀한 섬이 존재하고, 이는 엄밀히 말해 우리를 더 큰 고통의 형식으로부터 눈멀게 하는 장애물로 기능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은유적이고 문학적인) 장막이 존재해, 이를 통해 더 큰 고통을 인지한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인종청소, 강간, 고문, 자연재해에 대한 TV보도는 우리에게 깊이 공감하고 가끔은 휴머니즘적인 행동에 참여하도록 감동을 준다."(106-7쪽)

'(은유적이고 문학적인) 장막'은 'the (metaphorical and literal) screen'의 번역인데, 'literal'은 '문학적인'이란 뜻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혹은 '축어적인'이란 뜻이다. 해서, "(은유적이면서 동시에 축어적인 의미에서의) 스크린"이 존재한다는 것. 축어적인 의미의 스크린이란 영화나 TV 등의 스크린을 말한다. '장막' 같은 거 말고 진짜 '스크린' 말이다. 거기서 우리가 매일같이 접하는 것들이 인종청소니 강간이니 고문이니 자연재해니 하는 것들 아닌가? 이번에 '포르노 영어강사에 대한 사이버폭력'이 추가됐을 뿐이다. 이러한 스크린상의 '더 방대한 고통(wider forms of suffering)'에 대해서 우리는 간혹 휴머니즘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사생활 침해를 자제하라!' '인터넷 폭력, 더는 두고볼 수 없다!'는 식의 참여.

"심지어 이같은 참여가 (우리가 정기적인 재정 지원을 통해 돕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온 사진과 편지 형식으로) 거의 '개인화'되었을 때도, 궁극적으로 이곳에 지출하는 것은 정신분석과 관련없는 근본적인 주체기능을 유지한다."

페이퍼가 너무 지체되고 있어서 여기부터는 다음에 따로 다루기로 한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12-03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에게 권총을 맡겨 놓은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요? 실제로 언론 기관도 아니고 언론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윤리의식도 결여한체로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네이버 같은 포털 싸이트를 보고 있노라면.

다크아이즈 2006-12-03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 없는 개인이 길들여진 전체에 보호받는 사회가 정녕 오기나 하는 것일까요? 개념없는 네티즌은 그렇다치더라도 언론이 앞장서니 그저 답답할 뿐. 여성에게 언제나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자체도 인식하지 못하는...

질문 - 책을 안 읽어서 모르지만(하기야 번역서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인용문만 봤을 때, '개인(사적영역)'에 대한 고려가 다른 더 큰 사회적 고통 때문에 장애물로 간주된다는 안타까움 정도로 읽히는데 제가 잘못 읽은 건가요? 제게는 번역문을 독해하는 자체가 이렇게 어렵네요. 로쟈님 해설은 '개인'에 대한 부분 자체를 '더 큰 사회적 고통'의 범주로 넣으신 것 같아서요. 아무래도 책을 읽어봐야 확실한 흐름을 알겠지만 번역문 자체가 제겐 미로찾기네요.

로쟈 2006-12-03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이란 영화에서 지젝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게 "거부되는 것이 아니라 수용되는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데, 이후에 개진되는 지젝의 생각은 사실 '상식'적으로는 수용하기가 버거운 내용입니다. 내일밤까지는 완결될 수 있을 겁니다...

biosculp 2006-12-04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강사는 인터넷포르노에 정통한 분들에게는 유명하더군요.
오늘 댓글들 보니 캐나다 남편과 함께 지금도 업데이트 시키고 있으면 부업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캐나다인 남편도 어학과 유학관련해서 한국과 관현 사업도 하고요.
사생활 침해문제가 여전히 남지만 오히려 사이트홍보에 더 득이 된다는 애기도 있는데. 세상복잡해지네요.

로쟈 2006-12-05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요즘은 누가 '피해자'인지 점점 모호해지는 세상입니다...
 

지난달 연대 대학원신문에 게재했던 글을 옮겨놓는다. 러시아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1932-1986)의 영화론 <봉인된 시간>에 대한 기획서평으로 씌어진 것이다. 오는 12월 29일은 그의 서거 20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때까지는 타르코프스키와 관련된 페이퍼들이 (진행중인 걸 포함해서) 몇 개 더 마무리되기를 희망한다.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그의 영화 <거울>에는 노모인 마리아 이바노브나 비쉬냐코바(타르코프스카야)가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연세대 대학원신문(06. 10. 31) 시로 빚어낸 순간들, 기적에 이르는 침묵

얼마 전 스웨덴의 전설적인 촬영감독 스벤 닉비스트(1922~2006)가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세계 3대 촬영감독의 한 사람으로 꼽히던 이 ‘빛의 사제’는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둘도 없는 파트너로서 두 차례나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부린 빛의 마술을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1932~1986)의 유작 <희생>(1986)을 통해서였다.

이탈리아에서 <노스텔지아>를 찍고서 망명의 길을 택한 타르코프스키가 결과적으론 자신의 마지막 영화가 될 <희생>을 스웨덴에서 찍게 된 배경에는 제작을 맡은 스웨덴영화연구소의 안나-레나 위봄과의 오랜 우정이 놓여 있다. 위봄의 제안을 받은 타르코프스키는 얼란드 요셉슨(1923~ )을 염두에 두고 씌어진 <희생>을 스웨덴에서 찍기로 결정한다. 베리만 영화의 단골 배우 얼란드 요셉슨은 <노스텔지아>에서 세상의 사람들의 각성을 호소하면서 로마의 광장에서 분신자살하는 도메니코역을 열연한 바 있었다.

거기에 같은 ‘베리만 패밀리’로서 요셉슨과 절친한 친구였던 닉비스트는 시드니 폴락의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촬영을 제안받은 상태였지만 타르코프스키와의 공동작업을 선택한다. 닉비스트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러시아 중세의 성상화가를 다룬 <안드레이 루블료프>(1966)를 본 이래로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왔다고 한다. 자신의 회고록에서 닉비스트는 베리만과는 또 다른 타르코프스키의 연출방식에 대해서 기술하면서 빛(조명)과 배우들에게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갖는 대신에 타르코프스키의 주요한 관심사는 장면의 구성과 카메라의 움직임, 말 그대로 운동 이미지에 두어졌다고 털어놓는다.

두 사람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서로의 영화를 많이 보면서 작업의 윤곽을 그리고 의견을 조율해나갔다고 하는데, 영화에 대한 타르코프스키의 생각을 집약해놓은 책 <봉인된 시간>(독어본 1986)을 닉비스트가 접할 수 있었더라면 아마도 공동작업은 훨씬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건 이젠 더 이상 타르코프스키와 대화를 가질 수 없는 시점에서 그를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에게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영화 예술의 미학과 시학’이란 국역본의 부제가 지시해주듯이 <봉인된 시간>(분도출판사, 2005)은 부분적으로 타르코프스키의 연출노트이면서 영화와 예술 전반에 대한 그의 독자적인 사고와 통찰을 보여주는 유례없는 책이다. 사실 대개의 감독들이라면 자신의 ‘영화미학’을 글로써 말하기보다는 영화의 이미지로써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건 타르코프스키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의 작업환경은 순조롭지 못했다.

장편 데뷔작인 <이반의 어린시절>(1962)에서부터 주관적이고 난해하다는 평을 들은 타르코프스키는 내내 당국과의 마찰을 경험해야 했고, 실제로 작품과 작품 사이에 ‘고통스럽고 긴 휴식’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 ‘강요된 휴식’ 속에서 그는 자신이 영화의 창작과정 속에서 추구하는 목적에 대해 숙고할 수가 있었고 <봉인된 시간>은 그 산물이다.
 
시적 연결의 윤리학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영화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간을 빚어내는 것”이다. “마치 조각가가 자신의 마음의 눈으로 자신이 만들어낼 조각품의 윤곽을 보고 이에 걸맞게 대리석 덩어리의 모든 필요 없는 부분을 쪼아버리는 것과 흡사하게 영화예술가 역시 삶의 사실들로 이루어진 거대하고 정리되지 않은 혼합물들 속에서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고 (...)예술적인 전체 형상의 없어서는 안 될 모든 순간들만을 남겨두는 것이다.”그것이 ‘봉인된 시간’(영역본의 제목은 ‘Sculpting in Time’이다)이란 말의 뜻이다.

그리고 그러한 영화적 순간들을 창조하고 구성하는 데 있어서 타르코프스키가 유난히 강조하는 것은 윤리적 이상이다. 실상 이 책의 결론은 마치 <노스텔지아>에서 도메니코가 분신하기에 앞서서 사람들에게 던지는 절박한 윤리적 호소를 연상케 하는데, 어쩌면 <봉인된 시간>자체가 영화 <희생>과 마찬가지로 암으로 투병 중이던 타르코프스키가 인류에게 건네는  마지막 호소이자 유언인지도 모른다. 영화미학을 타이틀로 내걸고는 있지만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와 마찬가지로 타르코프스키에게도 미학은 곧 윤리학이라는 걸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윤리학이 미적 실천을 위해서 타르코프스키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시적, 혹은 정서적 연결이다. 그러한 ‘시적 연결’은 같은 러시아인으로서 영화사의 걸출한 족적을 남긴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1898~1948)의 몽타주론이 지향하는 ‘논리적 연결’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기도 하다. 에이젠슈테인식의 논리적 연결은 미리 계산된 미학적 효과와 의미를 창출해내고자 하는데, 타르코프스키가 보기에 그렇게 인위적으로 짜맞추어진 결과는 삶의 진실을 배제하며 관객을 감동으로부터 격리시킨다. 그가 보기에 삶의 양상 중에는 오직 주관적으로만 이해되고 시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적절하게 묘사될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미장센:삶의 순간들과 영혼의 상태들  

딥포커스와 롱테이크를 자주 사용하기에 흔히 몽타주론과 대비되는 미장센론자로 분류하게 하지만 타르코프스키의 미장센이 테크닉적인 고려가 아니라 윤리적인 관심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삶의 순간순간들에 대한 관찰을 강조하는 타르코프스키가 실제의 일화로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가령 이런 것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사형 집행 명령 위반으로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 그들은 어느 병원의 담벼락 앞 더러운 물구덩이 한가운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때는 마침 가을이었다. 사형수들에게 외투와 구두를 벗으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무리 중의 한 명이 무리에서 벗어나 구멍투성이의 양말을 신은 채 한참을 물구덩이 속을 걸어나가고 있었다. 그는 일분이 지나면 전혀 필요가 없게 될 자기 외투와 장화를 내려놓을 마른 땅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삶의 장면을 어떻게 몽타주로 분할하고 또 나눠찍을 수 있겠는가? 타르코프스키가 관심을 갖는 장면은 그러한 어떤 ‘불일치’를 담고 있는 미장센들이다. 그가 자주 예로 들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 가운데 가령 <악령>에서 스타브로긴과 광신도 샤토프와의 대화장면은 어떠한가? “나는 당신이 진정으로 신을 믿고 있는지 알고 싶다”고 스타브로긴이 말하자 샤토프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러시아와 러시아 정교를 믿습니다... 나는 예수의 성체를 믿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러시아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샤토프는 정신이 나간 채로 더듬거리며 말하는데, “신을 믿느냐구요, 신을?”이라고 스타브로긴이 재차 질문하자 “저... 저... 믿어 보겠습니다.”라고 (미래시제로) 말한다. 타르코프스키가 이 장면에서 지적하는 것은 “어찌할 바 모르는 당황한 영혼의 상태”를 포착하고 있는 천재적인 수법이다.

그러한 삶의 순간들과 영혼의 상태들을 드러내고자 하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은 사실 정적이지 않으며 대단히 격렬하다. 예컨대 <노스텔지아>의 분신 장면과 <희생>의 방화 장면 같은 걸 떠올려보라. 카메라는 인물들의 행동을 숨죽인 관찰자처럼 따라가며 단지 보여주기만 하지만 그 조용한 화면에 비춰지는 것은 격렬한 감정의 폭발이기도 하다.

죽은 나무 한 그루가 가져온 기적

한없이 느리게만 전개되는 것 같은 <희생>에서도 주인공 알렉산더의 내면을 뒤흔드는 건 3차대전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갖게 되는, 자신의 가족과 세상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다(그러니까 <희생>은 타르코프스키 버전의 <그날 이후>이다. 이것은 남의 일일까?). 그는 세상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신에게 기도한다. 그런데, 그 구원이란 것은 다른 게 아니다. 단지 내일도 오늘과 같은 일상적인 하루가 지속되는 것. 그 단순한 소망을 위해서 알렉산더는 묵언을 결심하고 다음날 자신의 집을 모두 불태운다.

“아주 먼 옛날에 한 수도원에 늙은 수도승이 살고 있었단다. 그는 산에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단다. 그리고 제자에게 말했지. 나무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 매일같이 물을 주도록 하라고. 제자는 매일 아침 산으로 올라가서 물을 주고는 저녁녘이 되어서야 수도원으로 돌아왔지. 이 일을 3년 동안 되풀이한 그 제자는 끝내 죽은 나무에 꽃이 만발했음을 보았어. 끝없이 노력하면 결실을 얻게 되는 거야. 만약 매일같이 정확히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늘 꾸준하게 의식과도 같이 말이다. 그러면 세상은 변하게 될 거다. 암, 변하지. 변할 수밖에 없어.”

영화의 도입부에서 바닷가에 나무를 한 그루 심으며 알렉산더가 아들 고센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인데(나는 이야기를 축약하지 않았다), 세상의 궁극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매일같이 정확히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비록 매일같이 변기에 물을 붓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언젠가 세상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그 얼마나 스펙터클하며 기적적인 일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스벤 닉비스트는 치매로 인한 실어증으로 치료받던 한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의 죽음은 <희생>에서 침묵 서언을 한 알렉산더(요셉슨)를 떠올리게 하고 또 바로 20년 전에 세상을 떠난 타르코프스키를 기억하게 한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건 그의 영화들과 한권의 미학, 그리고 한권의 일기(<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 두레, 1997)뿐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를 보고 편지를 보낸 러시아의 한 여성 노동자의 흥분을 우리의 것으로 하는 데에는 충분한 것일 수도 있다.

“일주일 동안 나는 당신의 영화를 네 번이나 보았습니다. 단순히 영화만을 보려고 극장에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게 중요했던 것은, 적어도 몇 시간 동안은 진정한 삶을 산다는 것, 진정한 예술가 그리고 인간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06. 12. 0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수유 2006-12-06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기말 셤 기간이라 시간이 남네요~~ 이 글 옮겨갑니다. 인세 청구하세요.

초록별 2019-12-03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안녕하세요 ~~^^ 20c 러시아문학 강의 감사합니다...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전업작가' 대열에 들어선 이인성씨의 첫 작품이 발표되었다. 불문과 교수직에서 명예퇴직하고 한동안 창작을 위해 칩거중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창작이란 게 욕심을 낼수록 잘 안되기도 하니까) 해를 넘기지 않고 새소설을 탈고한 것. 이 '중견작가'의 재기의 신호탄이 될지는 더 두고봐야겠지만 '문학에 대한 순교자적 태도'를 강조하는 초발심만큼은 기억해둠 직하다. 문학-수도사들이 갈수록 드물어지는 세태이기에...  

한국일보(06. 12. 02) 교수직 버리고 전업작가로 8개월 보낸 이인성씨

"강의와 논문 부담에서 벗어나니 마음은 편하고 자유로운데, 거꾸로 더 큰 부담이 하나 생겼어요. 이러다 제대로 된 소설을 못 쓰면 어쩌나 하는…”

소설 쓰기에만 전념하겠다며 지난 2월 서울대 불문과 교수직에서 명예퇴직한 소설가 이인성(53)씨가 전업소설가로서 첫 번째 소설을 내놓았다. 계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실린 80여쪽짜리 중편 <돌부림>. 돌연한 퇴직으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학교를 떠난 후 꼬박 8개월을 매달려 쓴, <악몽> 연작 3호로 3년 만에 세상에 내놓는 작품이다.

“학교를 그만둔 후 첫 소설 쓰는 게 특히 부담이 됐어요. 어찌 됐거나 이젠 마무리가 돼서 편하긴 한데 다시 읽어보니 마음에 들질 않네요.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지 글이 많이 느슨해진 것 같습니다.”

섬세한 언어의 조탁,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미로 속을 헤매게 하는 치밀한 통사 구조, 이야기 자체를 휘발시켜버리는 난해하고 해체주의적인 글쓰기로 독자를 매료시키기도, 더럭 겁먹게도 하는 그는 1980년 계간 <문학과지성>으로 등단해 26년간 학생과 학자라는 생업을 갖고 글쓰기에 봉직해왔다.

소설집 <낯선 시간 속으로>(1983), <한없이 낮은 숨결>(1989), <강 어귀에 섬 하나>(1999), 장편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1995), 산문집 <식물성의 저항>. 26년간의 비블리오그래피를 이 5권의 책만으로 채우고 있는 것은 문학에 대한 그의 엄격한 태도로 미루어 볼 때 자발적 과작(寡作)임에 틀림없다.

“<악몽> 연작을 마무리해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는 게 가장 급한 일이에요. 서너편만 더 쓰면 되는데, 내 스타일상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고, 다만 이 작업이 끝날 때까지 다른 일은 벌이지 않으려 합니다.”

그의 소설을 줄거리로 요약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짓도 없지만, <돌부림>은 마애불이 새겨진 거대한 돌덩어리를 마주한 현실의 ‘나’와 돌 속에 갇혀 망상과의 사투를 벌이는 의식 속의 ‘나’가 번갈아 화자 노릇을 하며 악몽과도 같은 의식의 흐름을 전개해가는 작품이다. ‘이인성 소설’의 키워드 중 하나라 할 의식의 분열이 역시 소설의 주축을 이룬다.

병이죠. 분열이라는 주제는 제 병이라 못 벗어나요. 억압돼있던 온갖 욕망들이 터져나오던 90년대 이후 나를 사로잡았던 건 과연 욕망이라는 게 뭐냐 하는 문제였어요. 욕망에 대한 탐구랄까요. 한편으로는 욕망을 터뜨리고 싶고, 다른 한편으로는 억제하고도 싶은 마음. 그러다 보니 분열이라는 문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됐죠. 그 물음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과연 욕망의 끝자리가 뭘까, 욕망에 시달려가면 결국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하는 물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악몽 아닐까요, 욕망의 최후 종착지는.”

소설만으로는 삶의 곤궁을 피할 길 없어 이런저런 생업을 찾아 헤매야 하는 게 오늘날 소설가들의 현실이고, 그 중 대학교수는 가장 각광받는 직업이지만, 그는 “걸핏하면 책 몇 권 내고 문예창작과 교수 하려고 하는 모습들이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정작 나는 학교라는 안정된 직장에 있으면서 그런 얘기를 할 수도 없고, 나부터 해방을 좀 시켜야겠다 생각했죠. 제가 자유롭게 살라고 선동해서 거리로 뛰쳐나간 친구들이 꽤 많거든요. 노래판, 영화판, 연극판으로 나가있는 그 친구들을 보면서 이젠 내가 저들 쪽에 가서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데요. 또 실제 나와 보니까 그냥 살겠더라구요. 수입은 학교에 있을 때에 비해 형편없이 줄었지만 불편한 건 없어요. 나는 연금이 나오니까 조건도 좋고.”

Madame Bovary-4

그는 불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도 불필요한 단어는 단 한 마디도 작품 속에 들여놓지 않으며 일생을 걸고 작품을 썼던 <마담 보바리>의 플로베르를 가슴 깊이 품고 있다(*사진은 클로드 샤브롤의 <마담 보바리>에서 보바리역의 이자벨 위페르. 불필요한 구석이라곤 한 군데도 없는 외모와 표정 아닌가?).

“요새는 그런 말하면 웃기는 소리 한다고들 할 테지만 문학에 대한 순교자 같은 태도가 저한테는 암시하는 바가 커요. 문학에 순교하는 그런 태도, 저도 끝까지 그런 태도로 문학을 하고 싶습니다.”(박선영 기자)

06. 12. 02

 

 

 

 

P.S. 내가 좋아하는 이인성의 책은 산문집 <식물성의 저항>(열림원, 2000)이다. 더디 읽히는 소설들과 다르게 그의 산문들은 잘 읽힌다. 그리고 재미있다. '문학에 대한 순교자적 태도'를 집약해주는 말이 또한 '식물성'이기도 하므로 '이인성 입문'을 겸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좀 이외일 수 있지만,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은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문학과지성사, 1995)이다. 장르를 '코미디'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이런 류의 소설들이 나는 은근히 좋다. 뭐 읽는 거야 독자의 자유 아니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스도와 레닌에 관한 페이퍼를 몇 시간 동안 붙잡고 있었더니 몸이 뻐근하다. 눈 내리는 겨울풍경이나 몇 장 옮겨놓으며 휴식을 취할까 했는데, 손은 어느새 토요일자 신문들의 북리뷰들을 클릭하고 있다(구제불능이다!). 최근에 나온 역사서들 가운데 두 권에 대한 리뷰기사를 경향신문에서 옮겨온다. 저명한 중국사학자 조너선 스펜스(1936- )의 <신의 아들: 홍수전과 태평천국>(이산, 2006)과 앙리 루소(1954- )의 <비시신드롬>(휴머니스트, 2006)이 그것인데, 전혀 다른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두 권 모두 일단 만만찮은 분량이 마음에 든다. 게다가 어찌보면 '태평천국'과 '비시정부' 사이에 비슷한 점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신의 아들>은 진작에 보관함에 들어가 있는 책이고 <비시신드롬>은 주초에 교보에서 실물을 본 책이지만 생소한 저자인 탓에 어떨까 싶었는데 김기봉 교수의 서평이 유익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경향신문(06. 12. 02) 中태평천국운동 주도했던 그

1836년 청조 말기. 중국 남부 광둥성 화현에 훙훠슈(洪火秀)라는 22세의 청년이 있다.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광저우에 갔던 그는 알 수 없는 외국인으로부터 한 권의 책을 받게 된다. 선교사 량아파가 성서를 번역해 만든 ‘권세양언’(勸世良言)이다. 과거에 낙방한 훙훠슈는 꿈을 꾼다. 그 꿈에서 세상의 유일한 구원자인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세상 요괴들의 사악한 길에서 백성들을 각성시키고 계몽하겠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완전함’을 뜻하는 취안(全)을 새 이름으로 지어준다.

평범했던 청년 훙훠슈가 하느님의 아들이자 예수의 동생, 완전한 존재인 훙슈취안(洪秀全)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는 종교 조직 ‘배상제회’(拜上帝會)를 조직한다. 당시 타락하고 불안정한 사회에 불만을 가진 민중들은 그의 사상에 매료되고, 세력은 급격하게 불어나 군대를 조직하고 근거지를 확산한다. 그리고 1851년 공식적으로 태평천국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2천만명이라는 인명피해를 초래한 전란인 ‘태평천국운동’의 시작이었다.



‘현대 중국을 찾아서’ ‘강희제’ 등의 저서를 통해 중국사의 대표학자로 자리잡은 저자가 태평천국운동과 홍슈취안에 대해 쓴 책이다. 그동안 태평천국운동은 중국이 근대화로 들어서는 과정, 혹은 민중들이 아래로부터 국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으로써 그 역사적 의의를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보다 면밀하게 태평천국운동을 들여다본다. 훙슈취안은 자신의 세력을 견고하게 유지하기 위해 신도들에게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는 한편, 정치적으로 위협이 되는 세력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숙청을 행했다.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를 자처했지만 그 역시 욕망과 권력에 눈먼 인간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훙슈취안의 삶을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서술하는 형식을 통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역사를 한편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그의 삶을 통해 태평천국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물론, 개신교가 중국에 유입되는 과정, 당시의 시대상황 등을 그려볼 수 있다.(이윤주기자)

경향신문(06. 12. 02) 佛현대사의 그늘 ‘비시정부’

프랑스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자부심이 강한 민족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숨기고 싶은 어두운 과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치 독일의 괴뢰정권으로 알려진 비시정부다. 1940년 6월13일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한 후 제3공화국 107번째 총리가 된 페탱(Petain) 장군은 22일 휴전조약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독일 점령지역과 자유지역으로 나뉘었다. 비시정부란 이 자유지역에 비시를 수도로 하고 페탱을 수반으로 해서 수립된 프랑스 정부를 지칭한다.

당시 독일군에게 패배한 프랑스인들에게는 2개의 정부, 페탱의 비시정부와 드골이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세운 임시정부가 있었다. 전자는 나치독일과 협력을 약속했다면, 후자는 프랑스인들에게 나치독일과의 항전을 계속할 것을 호소했다. 연합군에 의해 해방을 맞이한 프랑스인들에게 전자는 청산돼야 할 과거라면, 후자는 영광스럽게 기억해야 할 역사다.

하지만 비시정부는 1940년부터 1944년까지 4년 정도만 존립했지만, 그 기억은 ‘비시 신드롬’이라 불릴 만큼 프랑스인들에게는 치유하기 힘든 ‘정신적 상처(trauma)’로 남아 있다. 비시정부에 대한 복잡하고 모순적인 기억이 역사로 해소되지 않음으로써 ‘신드롬’을 낳았다. ‘신드롬’이란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공통성을 가진 일련의 병적 증상, 곧 증후군을 의미한다. 비시정부는 독일군의 강압으로 세워진 괴뢰정부가 아니라 독일군 점령에 대항해서 싸웠던 전직 각료들로 구성된 정부다. 영화 ‘금지된 장난’의 첫 장면처럼 파리가 점령 당하자 거리는 피란민으로 아비규환을 이뤘다.

1차 세계대전의 악몽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시민들은 집단탈출을 감행했고, 대다수 프랑스인들은 극도의 공포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1차 세계대전 베르뒹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 페탱은 한 포스터의 글귀처럼 “영광의 날에도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있었습니다. 어려운 때도 저는 여러분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휴전을 전제로 한 비시정부를 수립했다.

비시정부는 독일에 대한 협력체제였지만, 무너진 프랑스를 재건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수립됐다. 마르크 블로크가 ‘기이한 패배’라고 지칭했던 것처럼, 프랑스가 패배를 당한 근본 원인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 문제에서 비롯했다. 드레퓌스 사건으로 제3공화국의 부패와 무능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좌·우파의 끊임 없는 갈등과 대립은 공산주의와 파시즘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추구하는 ‘민족혁명’을 꿈꾸는 보수주의자들을 태동시켰다.

죽기 얼마 전 젊었을 때 비시정부에 참여했던 경력이 밝혀져 커다란 충격을 줬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자신의 행동을 “외적으로가 아니라 내적으로 프랑스를 일깨우고 싶었다”고 변명했다. 젊었을 때 열렬한 페탱주의자였다가 레지스탕스 진영으로 돌아선 미테랑이 ‘비시 신드롬’의 전형일 수 있다. 만약 미테랑이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재임 중 과거 행적이 드러났다면 그것으로 그의 정치생명은 끝났을 것이다. 레지스탕스 미테랑이 되기 위해서는 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그의 과거는 억압돼야 했다. 하지만 억압된 과거는 망각되지 않고 트라우마가 된다.



비시 과거를 억압하기 위해 해방된 프랑스는 레지스탕스라는 민족 신화를 만들었다. 그 주역이 드골 대통령이다. 해군사관학교에서 서양사를 가르치는 이학수 교수가 번역한 앙리 루소의 ‘비시 신드롬’은 이런 프랑스의 민족 신화가 허구임을 냉철하게 밝혀냈다. 저자는 비시 신드롬이 ‘왜’ 생겨났는가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작동했는가’를 물음으로써 프랑스 과거청산의 허상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드골은 비시 체제의 진실을 은폐하고 프랑스 사회에 미친 영향력을 체계적으로 축소하는 한편, ‘레지스탕스주의’라는 지배신화를 날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권력을 강화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전 국민을 ‘레지스탕스’로 만드는 ‘기억의 장(場)’을 구축했다.

‘비시 신드롬’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행하는 과거 청산의 무의미함과 위험성을 깨칠 수 있다. 모든 역사는 정치적이다. 하지만 정치가 역사를 지배해서는 안된다. 과거사 정리는 ‘역사의 정치화’가 아니라 ‘정치의 역사화’를 위해 수행돼야 한다.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관철되는 과거 청산은 다양한 기억들을 억압하고 단순화해서 신화적 역사를 만든다.



앙리 루소는 기억은 복수이기 때문에 서로 갈등하며 투쟁을 벌이며, 그와 같은 방식으로 기억은 후세대에게 전이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기억이란 이미 죽어버린 과거라는 시체를 살아있는 역사로 부활시키는 생명의 숨이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한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의 삶은 우리 삶과 마찬가지로 소중하다. 과거가 돼버린 그들 삶을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함으로써 우리 삶과 연결시켜서 우리는 누구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역사다.

우리는 어제의 이성이 오늘의 이성이 아닌 우상이 되기 때문에 오늘의 이성 또한 내일의 우상이 될 수 있음을 안다. 그렇다면 역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 일제강점기의 친일파들뿐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공산치하에서 부역했던 사람들의 기억을 말하게 함으로써 하나의 대문자 한국사가 아니라 소문자 한국사들을 쓰는 것이 과거사 정리의 최종 목표가 돼야 한다.(김기봉|경기대 교수·사학)

06 12. 02.

 

 

 

 

P.S. 조넌선 스펜스의 책들은 이전에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한번 다룬 듯한데 <신의 아들>은 재작년에 나온 <반역의 책: 옹정제와 사상통제>(이산, 2004)에 이어서 그래도 오랜만에 나온 책이다. 러시아사에 관해서도 이만한 '이야기꾼'이 있었으면 좋겠다(내가 과문한가?). 그리고, 프랑스의 비시정부와 관련된 책은 몇 권 되지 않아 보인다. 마르크 블로크의 <이상한 패배>(까치, 2002)에 대해서는 얼마전 <장정일의 공부>(랜덤하우스, 2006)에서 독후감을 읽어볼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주제에 관해서는 박지현의 <누구를 위한 협력인가>(책세상, 2004)를 먼저 읽고 윤곽을 그려보는 것이 순서에 맞을 듯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