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레닌에 관한 페이퍼를 몇 시간 동안 붙잡고 있었더니 몸이 뻐근하다. 눈 내리는 겨울풍경이나 몇 장 옮겨놓으며 휴식을 취할까 했는데, 손은 어느새 토요일자 신문들의 북리뷰들을 클릭하고 있다(구제불능이다!). 최근에 나온 역사서들 가운데 두 권에 대한 리뷰기사를 경향신문에서 옮겨온다. 저명한 중국사학자 조너선 스펜스(1936- )의 <신의 아들: 홍수전과 태평천국>(이산, 2006)과 앙리 루소(1954- )의 <비시신드롬>(휴머니스트, 2006)이 그것인데, 전혀 다른 시대를 다루고 있지만 두 권 모두 일단 만만찮은 분량이 마음에 든다. 게다가 어찌보면 '태평천국'과 '비시정부' 사이에 비슷한 점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신의 아들>은 진작에 보관함에 들어가 있는 책이고 <비시신드롬>은 주초에 교보에서 실물을 본 책이지만 생소한 저자인 탓에 어떨까 싶었는데 김기봉 교수의 서평이 유익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경향신문(06. 12. 02) 中태평천국운동 주도했던 그

1836년 청조 말기. 중국 남부 광둥성 화현에 훙훠슈(洪火秀)라는 22세의 청년이 있다.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광저우에 갔던 그는 알 수 없는 외국인으로부터 한 권의 책을 받게 된다. 선교사 량아파가 성서를 번역해 만든 ‘권세양언’(勸世良言)이다. 과거에 낙방한 훙훠슈는 꿈을 꾼다. 그 꿈에서 세상의 유일한 구원자인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게 되고 세상 요괴들의 사악한 길에서 백성들을 각성시키고 계몽하겠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완전함’을 뜻하는 취안(全)을 새 이름으로 지어준다.

평범했던 청년 훙훠슈가 하느님의 아들이자 예수의 동생, 완전한 존재인 훙슈취안(洪秀全)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는 종교 조직 ‘배상제회’(拜上帝會)를 조직한다. 당시 타락하고 불안정한 사회에 불만을 가진 민중들은 그의 사상에 매료되고, 세력은 급격하게 불어나 군대를 조직하고 근거지를 확산한다. 그리고 1851년 공식적으로 태평천국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2천만명이라는 인명피해를 초래한 전란인 ‘태평천국운동’의 시작이었다.



‘현대 중국을 찾아서’ ‘강희제’ 등의 저서를 통해 중국사의 대표학자로 자리잡은 저자가 태평천국운동과 홍슈취안에 대해 쓴 책이다. 그동안 태평천국운동은 중국이 근대화로 들어서는 과정, 혹은 민중들이 아래로부터 국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으로써 그 역사적 의의를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보다 면밀하게 태평천국운동을 들여다본다. 훙슈취안은 자신의 세력을 견고하게 유지하기 위해 신도들에게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는 한편, 정치적으로 위협이 되는 세력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숙청을 행했다.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 구원자를 자처했지만 그 역시 욕망과 권력에 눈먼 인간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훙슈취안의 삶을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서술하는 형식을 통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역사를 한편의 이야기로 풀어냈다. 그의 삶을 통해 태평천국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물론, 개신교가 중국에 유입되는 과정, 당시의 시대상황 등을 그려볼 수 있다.(이윤주기자)

경향신문(06. 12. 02) 佛현대사의 그늘 ‘비시정부’

프랑스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자부심이 강한 민족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숨기고 싶은 어두운 과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나치 독일의 괴뢰정권으로 알려진 비시정부다. 1940년 6월13일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한 후 제3공화국 107번째 총리가 된 페탱(Petain) 장군은 22일 휴전조약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독일 점령지역과 자유지역으로 나뉘었다. 비시정부란 이 자유지역에 비시를 수도로 하고 페탱을 수반으로 해서 수립된 프랑스 정부를 지칭한다.

당시 독일군에게 패배한 프랑스인들에게는 2개의 정부, 페탱의 비시정부와 드골이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세운 임시정부가 있었다. 전자는 나치독일과 협력을 약속했다면, 후자는 프랑스인들에게 나치독일과의 항전을 계속할 것을 호소했다. 연합군에 의해 해방을 맞이한 프랑스인들에게 전자는 청산돼야 할 과거라면, 후자는 영광스럽게 기억해야 할 역사다.

하지만 비시정부는 1940년부터 1944년까지 4년 정도만 존립했지만, 그 기억은 ‘비시 신드롬’이라 불릴 만큼 프랑스인들에게는 치유하기 힘든 ‘정신적 상처(trauma)’로 남아 있다. 비시정부에 대한 복잡하고 모순적인 기억이 역사로 해소되지 않음으로써 ‘신드롬’을 낳았다. ‘신드롬’이란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공통성을 가진 일련의 병적 증상, 곧 증후군을 의미한다. 비시정부는 독일군의 강압으로 세워진 괴뢰정부가 아니라 독일군 점령에 대항해서 싸웠던 전직 각료들로 구성된 정부다. 영화 ‘금지된 장난’의 첫 장면처럼 파리가 점령 당하자 거리는 피란민으로 아비규환을 이뤘다.

1차 세계대전의 악몽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시민들은 집단탈출을 감행했고, 대다수 프랑스인들은 극도의 공포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1차 세계대전 베르뒹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 페탱은 한 포스터의 글귀처럼 “영광의 날에도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있었습니다. 어려운 때도 저는 여러분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휴전을 전제로 한 비시정부를 수립했다.

비시정부는 독일에 대한 협력체제였지만, 무너진 프랑스를 재건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수립됐다. 마르크 블로크가 ‘기이한 패배’라고 지칭했던 것처럼, 프랑스가 패배를 당한 근본 원인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 문제에서 비롯했다. 드레퓌스 사건으로 제3공화국의 부패와 무능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좌·우파의 끊임 없는 갈등과 대립은 공산주의와 파시즘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추구하는 ‘민족혁명’을 꿈꾸는 보수주의자들을 태동시켰다.

죽기 얼마 전 젊었을 때 비시정부에 참여했던 경력이 밝혀져 커다란 충격을 줬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자신의 행동을 “외적으로가 아니라 내적으로 프랑스를 일깨우고 싶었다”고 변명했다. 젊었을 때 열렬한 페탱주의자였다가 레지스탕스 진영으로 돌아선 미테랑이 ‘비시 신드롬’의 전형일 수 있다. 만약 미테랑이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재임 중 과거 행적이 드러났다면 그것으로 그의 정치생명은 끝났을 것이다. 레지스탕스 미테랑이 되기 위해서는 비시정부에서 활동했던 그의 과거는 억압돼야 했다. 하지만 억압된 과거는 망각되지 않고 트라우마가 된다.



비시 과거를 억압하기 위해 해방된 프랑스는 레지스탕스라는 민족 신화를 만들었다. 그 주역이 드골 대통령이다. 해군사관학교에서 서양사를 가르치는 이학수 교수가 번역한 앙리 루소의 ‘비시 신드롬’은 이런 프랑스의 민족 신화가 허구임을 냉철하게 밝혀냈다. 저자는 비시 신드롬이 ‘왜’ 생겨났는가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작동했는가’를 물음으로써 프랑스 과거청산의 허상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드골은 비시 체제의 진실을 은폐하고 프랑스 사회에 미친 영향력을 체계적으로 축소하는 한편, ‘레지스탕스주의’라는 지배신화를 날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권력을 강화했다. 그리고 마침내는 전 국민을 ‘레지스탕스’로 만드는 ‘기억의 장(場)’을 구축했다.

‘비시 신드롬’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행하는 과거 청산의 무의미함과 위험성을 깨칠 수 있다. 모든 역사는 정치적이다. 하지만 정치가 역사를 지배해서는 안된다. 과거사 정리는 ‘역사의 정치화’가 아니라 ‘정치의 역사화’를 위해 수행돼야 한다.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관철되는 과거 청산은 다양한 기억들을 억압하고 단순화해서 신화적 역사를 만든다.



앙리 루소는 기억은 복수이기 때문에 서로 갈등하며 투쟁을 벌이며, 그와 같은 방식으로 기억은 후세대에게 전이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기억이란 이미 죽어버린 과거라는 시체를 살아있는 역사로 부활시키는 생명의 숨이다. 나름대로 진지하게 한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의 삶은 우리 삶과 마찬가지로 소중하다. 과거가 돼버린 그들 삶을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함으로써 우리 삶과 연결시켜서 우리는 누구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역사다.

우리는 어제의 이성이 오늘의 이성이 아닌 우상이 되기 때문에 오늘의 이성 또한 내일의 우상이 될 수 있음을 안다. 그렇다면 역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 일제강점기의 친일파들뿐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 공산치하에서 부역했던 사람들의 기억을 말하게 함으로써 하나의 대문자 한국사가 아니라 소문자 한국사들을 쓰는 것이 과거사 정리의 최종 목표가 돼야 한다.(김기봉|경기대 교수·사학)

06 12. 02.

 

 

 

 

P.S. 조넌선 스펜스의 책들은 이전에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한번 다룬 듯한데 <신의 아들>은 재작년에 나온 <반역의 책: 옹정제와 사상통제>(이산, 2004)에 이어서 그래도 오랜만에 나온 책이다. 러시아사에 관해서도 이만한 '이야기꾼'이 있었으면 좋겠다(내가 과문한가?). 그리고, 프랑스의 비시정부와 관련된 책은 몇 권 되지 않아 보인다. 마르크 블로크의 <이상한 패배>(까치, 2002)에 대해서는 얼마전 <장정일의 공부>(랜덤하우스, 2006)에서 독후감을 읽어볼 수 있었다. 아마도 이 주제에 관해서는 박지현의 <누구를 위한 협력인가>(책세상, 2004)를 먼저 읽고 윤곽을 그려보는 것이 순서에 맞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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