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연대 대학원신문에 게재했던 글을 옮겨놓는다. 러시아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1932-1986)의 영화론 <봉인된 시간>에 대한 기획서평으로 씌어진 것이다. 오는 12월 29일은 그의 서거 20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때까지는 타르코프스키와 관련된 페이퍼들이 (진행중인 걸 포함해서) 몇 개 더 마무리되기를 희망한다.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한 그의 영화 <거울>에는 노모인 마리아 이바노브나 비쉬냐코바(타르코프스카야)가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연세대 대학원신문(06. 10. 31) 시로 빚어낸 순간들, 기적에 이르는 침묵
얼마 전 스웨덴의 전설적인 촬영감독 스벤 닉비스트(1922~2006)가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세계 3대 촬영감독의 한 사람으로 꼽히던 이 ‘빛의 사제’는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둘도 없는 파트너로서 두 차례나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부린 빛의 마술을 내가 처음 접한 것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1932~1986)의 유작 <희생>(1986)을 통해서였다.
이탈리아에서 <노스텔지아>를 찍고서 망명의 길을 택한 타르코프스키가 결과적으론 자신의 마지막 영화가 될 <희생>을 스웨덴에서 찍게 된 배경에는 제작을 맡은 스웨덴영화연구소의 안나-레나 위봄과의 오랜 우정이 놓여 있다. 위봄의 제안을 받은 타르코프스키는 얼란드 요셉슨(1923~ )을 염두에 두고 씌어진 <희생>을 스웨덴에서 찍기로 결정한다. 베리만 영화의 단골 배우 얼란드 요셉슨은 <노스텔지아>에서 세상의 사람들의 각성을 호소하면서 로마의 광장에서 분신자살하는 도메니코역을 열연한 바 있었다.
거기에 같은 ‘베리만 패밀리’로서 요셉슨과 절친한 친구였던 닉비스트는 시드니 폴락의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촬영을 제안받은 상태였지만 타르코프스키와의 공동작업을 선택한다. 닉비스트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러시아 중세의 성상화가를 다룬 <안드레이 루블료프>(1966)를 본 이래로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왔다고 한다. 자신의 회고록에서 닉비스트는 베리만과는 또 다른 타르코프스키의 연출방식에 대해서 기술하면서 빛(조명)과 배우들에게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갖는 대신에 타르코프스키의 주요한 관심사는 장면의 구성과 카메라의 움직임, 말 그대로 운동 이미지에 두어졌다고 털어놓는다.
두 사람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서로의 영화를 많이 보면서 작업의 윤곽을 그리고 의견을 조율해나갔다고 하는데, 영화에 대한 타르코프스키의 생각을 집약해놓은 책 <봉인된 시간>(독어본 1986)을 닉비스트가 접할 수 있었더라면 아마도 공동작업은 훨씬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건 이젠 더 이상 타르코프스키와 대화를 가질 수 없는 시점에서 그를 이해하고자 하는 우리에게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영화 예술의 미학과 시학’이란 국역본의 부제가 지시해주듯이 <봉인된 시간>(분도출판사, 2005)은 부분적으로 타르코프스키의 연출노트이면서 영화와 예술 전반에 대한 그의 독자적인 사고와 통찰을 보여주는 유례없는 책이다. 사실 대개의 감독들이라면 자신의 ‘영화미학’을 글로써 말하기보다는 영화의 이미지로써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건 타르코프스키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에서의 작업환경은 순조롭지 못했다.
장편 데뷔작인 <이반의 어린시절>(1962)에서부터 주관적이고 난해하다는 평을 들은 타르코프스키는 내내 당국과의 마찰을 경험해야 했고, 실제로 작품과 작품 사이에 ‘고통스럽고 긴 휴식’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 ‘강요된 휴식’ 속에서 그는 자신이 영화의 창작과정 속에서 추구하는 목적에 대해 숙고할 수가 있었고 <봉인된 시간>은 그 산물이다.
시적 연결의 윤리학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영화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간을 빚어내는 것”이다. “마치 조각가가 자신의 마음의 눈으로 자신이 만들어낼 조각품의 윤곽을 보고 이에 걸맞게 대리석 덩어리의 모든 필요 없는 부분을 쪼아버리는 것과 흡사하게 영화예술가 역시 삶의 사실들로 이루어진 거대하고 정리되지 않은 혼합물들 속에서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고 (...)예술적인 전체 형상의 없어서는 안 될 모든 순간들만을 남겨두는 것이다.”그것이 ‘봉인된 시간’(영역본의 제목은 ‘Sculpting in Time’이다)이란 말의 뜻이다.
그리고 그러한 영화적 순간들을 창조하고 구성하는 데 있어서 타르코프스키가 유난히 강조하는 것은 윤리적 이상이다. 실상 이 책의 결론은 마치 <노스텔지아>에서 도메니코가 분신하기에 앞서서 사람들에게 던지는 절박한 윤리적 호소를 연상케 하는데, 어쩌면 <봉인된 시간>자체가 영화 <희생>과 마찬가지로 암으로 투병 중이던 타르코프스키가 인류에게 건네는 마지막 호소이자 유언인지도 모른다. 영화미학을 타이틀로 내걸고는 있지만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와 마찬가지로 타르코프스키에게도 미학은 곧 윤리학이라는 걸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윤리학이 미적 실천을 위해서 타르코프스키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시적, 혹은 정서적 연결이다. 그러한 ‘시적 연결’은 같은 러시아인으로서 영화사의 걸출한 족적을 남긴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1898~1948)의 몽타주론이 지향하는 ‘논리적 연결’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기도 하다. 에이젠슈테인식의 논리적 연결은 미리 계산된 미학적 효과와 의미를 창출해내고자 하는데, 타르코프스키가 보기에 그렇게 인위적으로 짜맞추어진 결과는 삶의 진실을 배제하며 관객을 감동으로부터 격리시킨다. 그가 보기에 삶의 양상 중에는 오직 주관적으로만 이해되고 시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적절하게 묘사될 수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미장센:삶의 순간들과 영혼의 상태들
딥포커스와 롱테이크를 자주 사용하기에 흔히 몽타주론과 대비되는 미장센론자로 분류하게 하지만 타르코프스키의 미장센이 테크닉적인 고려가 아니라 윤리적인 관심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삶의 순간순간들에 대한 관찰을 강조하는 타르코프스키가 실제의 일화로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가령 이런 것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사형 집행 명령 위반으로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 그들은 어느 병원의 담벼락 앞 더러운 물구덩이 한가운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때는 마침 가을이었다. 사형수들에게 외투와 구두를 벗으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무리 중의 한 명이 무리에서 벗어나 구멍투성이의 양말을 신은 채 한참을 물구덩이 속을 걸어나가고 있었다. 그는 일분이 지나면 전혀 필요가 없게 될 자기 외투와 장화를 내려놓을 마른 땅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삶의 장면을 어떻게 몽타주로 분할하고 또 나눠찍을 수 있겠는가? 타르코프스키가 관심을 갖는 장면은 그러한 어떤 ‘불일치’를 담고 있는 미장센들이다. 그가 자주 예로 들고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 가운데 가령 <악령>에서 스타브로긴과 광신도 샤토프와의 대화장면은 어떠한가? “나는 당신이 진정으로 신을 믿고 있는지 알고 싶다”고 스타브로긴이 말하자 샤토프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러시아와 러시아 정교를 믿습니다... 나는 예수의 성체를 믿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러시아에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샤토프는 정신이 나간 채로 더듬거리며 말하는데, “신을 믿느냐구요, 신을?”이라고 스타브로긴이 재차 질문하자 “저... 저... 믿어 보겠습니다.”라고 (미래시제로) 말한다. 타르코프스키가 이 장면에서 지적하는 것은 “어찌할 바 모르는 당황한 영혼의 상태”를 포착하고 있는 천재적인 수법이다.
그러한 삶의 순간들과 영혼의 상태들을 드러내고자 하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들은 사실 정적이지 않으며 대단히 격렬하다. 예컨대 <노스텔지아>의 분신 장면과 <희생>의 방화 장면 같은 걸 떠올려보라. 카메라는 인물들의 행동을 숨죽인 관찰자처럼 따라가며 단지 보여주기만 하지만 그 조용한 화면에 비춰지는 것은 격렬한 감정의 폭발이기도 하다.
죽은 나무 한 그루가 가져온 기적
한없이 느리게만 전개되는 것 같은 <희생>에서도 주인공 알렉산더의 내면을 뒤흔드는 건 3차대전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갖게 되는, 자신의 가족과 세상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다(그러니까 <희생>은 타르코프스키 버전의 <그날 이후>이다. 이것은 남의 일일까?). 그는 세상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신에게 기도한다. 그런데, 그 구원이란 것은 다른 게 아니다. 단지 내일도 오늘과 같은 일상적인 하루가 지속되는 것. 그 단순한 소망을 위해서 알렉산더는 묵언을 결심하고 다음날 자신의 집을 모두 불태운다.
“아주 먼 옛날에 한 수도원에 늙은 수도승이 살고 있었단다. 그는 산에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심었단다. 그리고 제자에게 말했지. 나무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 매일같이 물을 주도록 하라고. 제자는 매일 아침 산으로 올라가서 물을 주고는 저녁녘이 되어서야 수도원으로 돌아왔지. 이 일을 3년 동안 되풀이한 그 제자는 끝내 죽은 나무에 꽃이 만발했음을 보았어. 끝없이 노력하면 결실을 얻게 되는 거야. 만약 매일같이 정확히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늘 꾸준하게 의식과도 같이 말이다. 그러면 세상은 변하게 될 거다. 암, 변하지. 변할 수밖에 없어.”
영화의 도입부에서 바닷가에 나무를 한 그루 심으며 알렉산더가 아들 고센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인데(나는 이야기를 축약하지 않았다), 세상의 궁극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매일같이 정확히 같은 시간에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다. 비록 매일같이 변기에 물을 붓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언젠가 세상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면 그 얼마나 스펙터클하며 기적적인 일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스벤 닉비스트는 치매로 인한 실어증으로 치료받던 한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의 죽음은 <희생>에서 침묵 서언을 한 알렉산더(요셉슨)를 떠올리게 하고 또 바로 20년 전에 세상을 떠난 타르코프스키를 기억하게 한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건 그의 영화들과 한권의 미학, 그리고 한권의 일기(<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 두레, 1997)뿐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를 보고 편지를 보낸 러시아의 한 여성 노동자의 흥분을 우리의 것으로 하는 데에는 충분한 것일 수도 있다.
“일주일 동안 나는 당신의 영화를 네 번이나 보았습니다. 단순히 영화만을 보려고 극장에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게 중요했던 것은, 적어도 몇 시간 동안은 진정한 삶을 산다는 것, 진정한 예술가 그리고 인간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06. 12.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