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폭력'에 대한 한겨레의 사설과 댓글들을 읽다가 지난번에 쓴 페이퍼 '패리스 힐튼과 카트린 밀레'에 이어지는 고리가 될 듯싶어서 다시 페이퍼를 쓴다. 지젝의 <혁명이 다가온다>(길, 2006)의 제5장 '레닌은 자신의 이웃을 사랑했는가'의 106-8쪽까지 읽어보는 게 1차적인 목표이고 좀 무리하면 진도는 더 나아갈 수도 있겠다. 먼저, 관련기사와 사설부터 인용해놓는다(아래는 청와대의 문화일보 절독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연재소설 '강안남자'의 삽화).

한국일보(06. 12. 02) '포르노배우 영어강사' 얼굴공개 파장

캐나다 유학 시절 포르노물에 출연한 한 여성 영어강사의 신원이 인터넷에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서울의 한 영어학원 강사로 재직한 A(33·여)씨가 포르노 동영상을 찍은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일부 네티즌이 해당 여교사가 출연한 포르노를 편집해 인터넷 사이트 이곳저곳에 올리고 있는 것.

문제의 여강사는 캐나다 유학시절인 2005년 2월부터 9월까지 캐나다에 서버를 둔 한 포르노사이트에서 한 편당 200∼300 달러를 받고 모두 30여편의 포르노를 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다니는 영어학원의 여강사가 해외 포르노 사이트의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는 한 네티즌의 제보에 의해 포르노 배우 경력이 들통났다.

경찰은 최근 A씨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조사에서 A씨는 "포르노를 찍는 것이 한국에서는 불법인지 알았지만 캐나다에서는 합법이었다"며 "한국사람들이 캐나다 포르노 사이트까지 들어가서 볼 줄은 몰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속인주의 원칙에 따라 국내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A씨가 경찰에 입건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캐나다 영어강사가 누구냐", "캐나다 영어강사의 싸이월드 주소를 알려달라"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부 네티즌이 A씨의 얼굴이 그대로 등장하는 포르노 편집 동영상과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고 이로 인해 그의 얼굴은 만천하에 공개됐다. 일부 포털사이트가 A씨 관련 기사에 댓글을 달 수 없도록 조치를 취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수위에 오른 것은 물론 실명과 개인 블로그 주소도 함께 공개돼 파장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한편, 일부 네티즌들은 언론에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보도는 자제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한겨레(06. 12. 02) 인터넷 폭력, 더는 두고볼 수 없다

“마녀사냥이 또 시작됐다.” 이른바 ‘포르노 찍은 영어강사’에 대한 인터넷 이용자들의 댓글 폭력을 개탄하는 이들이 하는 말이다. 캐나다 유학 시절 포르노를 찍은 사실이 드러나 처벌을 받게 된 이 영어강사는 사회에서 매장될 처지에 놓였다. 얼굴 사진은 물론이고 본명과 일하는 학원, 출신 학교 따위가 속속들이 파헤쳐지고 있다. 공인도 아닌 개인의 사생활을 이렇게까지 침해하는 건 야만적인 폭력일 뿐이다.

일방적인 매도가 쏟아진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이른바 ‘개똥녀’ 사건을 연상시킨다. 이 여성은 단지 포르노를 찍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 쓰레기쯤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런 비난에는 여성 비하 심리도 개입되어 있는 듯하다. 인터넷을 통해 일본의 음란물을 공급하다가 적발된 이른바 ‘김본좌’가 인터넷에서 영웅처럼 취급되던 걸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여성이기에 더 쉽게 사생활을 까발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물론 책임을 온통 ‘몰지각한 네티즌’들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개인 정보가 유출될 여지를 철저히 봉쇄했어야 할 경찰과 언론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 경찰은 경찰청 제보 게시판에 올라온 글 때문에 수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따위의 세세한 내용까지 공개했고, 대부분의 언론은 이걸 그대로 보도했다. 이렇게 지나치리만큼 상세한 사건 공개는 그 자체로 문제다. 그런데 한 블로그 이용자가 정리해 놓은 사건 경위를 보면, 사소한 듯한 이 사실이 개인 정보 유출의 실마리였다고 한다.

내용인즉, 인터넷 이용자들이 제보 게시판을 샅샅이 뒤져 제보 내용을 확인했고, 제보에 언급된 영문 닉네임을 근거로 개인 정보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개인 정보 유출의 책임은 제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경찰에 있다고 할 것이다. 경찰은 제보 내용이 정말 유출됐는지 분명히 확인해서 사실이라면 책임자를 문책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인터넷 실명제를 정당화하는 사례로 활용하는 건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언어 폭력과 개인정보 유출의 주된 무대는, 회원 가입 때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실명을 확인하는 포털들이다. 실명제가 폭력적 댓글을 막는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인터넷 폭력은 이용자의 자발적 노력과 사회적 여론 형성, 인터넷 사이트들의 협력 따위를 통해서만 뿌리뽑을 수 있다.

 

 

 

 

"후기 자본주의의 조건에서 우리의 감성적 삶은 이처럼 완전히 분리되었다. 한편에는 사적 영역, 즉 감정적 진지함과 밀도 깊은 개입으로 이루어진 내밀한 섬이 존재하고, 이는 엄밀히 말해 우리를 더 큰 고통의 형식으로부터 눈멀게 하는 장애물로 기능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은유적이고 문학적인) 장막이 존재해, 이를 통해 더 큰 고통을 인지한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인종청소, 강간, 고문, 자연재해에 대한 TV보도는 우리에게 깊이 공감하고 가끔은 휴머니즘적인 행동에 참여하도록 감동을 준다."(106-7쪽)

'(은유적이고 문학적인) 장막'은 'the (metaphorical and literal) screen'의 번역인데, 'literal'은 '문학적인'이란 뜻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혹은 '축어적인'이란 뜻이다. 해서, "(은유적이면서 동시에 축어적인 의미에서의) 스크린"이 존재한다는 것. 축어적인 의미의 스크린이란 영화나 TV 등의 스크린을 말한다. '장막' 같은 거 말고 진짜 '스크린' 말이다. 거기서 우리가 매일같이 접하는 것들이 인종청소니 강간이니 고문이니 자연재해니 하는 것들 아닌가? 이번에 '포르노 영어강사에 대한 사이버폭력'이 추가됐을 뿐이다. 이러한 스크린상의 '더 방대한 고통(wider forms of suffering)'에 대해서 우리는 간혹 휴머니즘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사생활 침해를 자제하라!' '인터넷 폭력, 더는 두고볼 수 없다!'는 식의 참여.

"심지어 이같은 참여가 (우리가 정기적인 재정 지원을 통해 돕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온 사진과 편지 형식으로) 거의 '개인화'되었을 때도, 궁극적으로 이곳에 지출하는 것은 정신분석과 관련없는 근본적인 주체기능을 유지한다."

페이퍼가 너무 지체되고 있어서 여기부터는 다음에 따로 다루기로 한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12-03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에게 권총을 맡겨 놓은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요? 실제로 언론 기관도 아니고 언론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윤리의식도 결여한체로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네이버 같은 포털 싸이트를 보고 있노라면.

다크아이즈 2006-12-03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 없는 개인이 길들여진 전체에 보호받는 사회가 정녕 오기나 하는 것일까요? 개념없는 네티즌은 그렇다치더라도 언론이 앞장서니 그저 답답할 뿐. 여성에게 언제나 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자체도 인식하지 못하는...

질문 - 책을 안 읽어서 모르지만(하기야 번역서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인용문만 봤을 때, '개인(사적영역)'에 대한 고려가 다른 더 큰 사회적 고통 때문에 장애물로 간주된다는 안타까움 정도로 읽히는데 제가 잘못 읽은 건가요? 제게는 번역문을 독해하는 자체가 이렇게 어렵네요. 로쟈님 해설은 '개인'에 대한 부분 자체를 '더 큰 사회적 고통'의 범주로 넣으신 것 같아서요. 아무래도 책을 읽어봐야 확실한 흐름을 알겠지만 번역문 자체가 제겐 미로찾기네요.

로쟈 2006-12-03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이란 영화에서 지젝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게 "거부되는 것이 아니라 수용되는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데, 이후에 개진되는 지젝의 생각은 사실 '상식'적으로는 수용하기가 버거운 내용입니다. 내일밤까지는 완결될 수 있을 겁니다...

biosculp 2006-12-04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강사는 인터넷포르노에 정통한 분들에게는 유명하더군요.
오늘 댓글들 보니 캐나다 남편과 함께 지금도 업데이트 시키고 있으면 부업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캐나다인 남편도 어학과 유학관련해서 한국과 관현 사업도 하고요.
사생활 침해문제가 여전히 남지만 오히려 사이트홍보에 더 득이 된다는 애기도 있는데. 세상복잡해지네요.

로쟈 2006-12-05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요즘은 누가 '피해자'인지 점점 모호해지는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