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자(06. 02. 14) 한국일보 등에는 뉴욕타임즈(02. 12) 기사에 근거하여 러시아 영화계의 '뿌리찾기' 바람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내용을 따라가면서 몇 마디 보태기로 한다. 뉴욕타임즈 기사의 원제는 'Time to Come Home, Zhivago'(지바고, 집에 갈 시간이다)이며, 이걸 약간 변형하여 '닥터 지바고, 집에 돌아오다'란 제목을 붙인다. 주된 내용은 과거 헐리우드 영화로 만들어졌던 러시아 명작들이 일종의 붐처럼 러시아 영화로 다시 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래 왼쪽 사진이 데이비드 린 감독의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이고, 오른쪽이 올 5월중 TV방영예정이라는 러시아판 <닥터 지바고>의 한 장면이다.  

  

할리우드 영화의 소재로만 활용됐던 러시아 명작 소설들이 줄줄이 러시아 영화 감독에 의해 영화나 TV 시리즈로 제작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2일 이런 현상을 1930년대 ‘전함 포템킨’의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 감독 등이 활약했던 소련 영화 전성기에 견줄 수 있는 새로운 영화혁명이라고 평가했다.(*러시아 영화가 부흥을 맞고 있다는 전망은 몇 년전부터 나온 것인데, 2004년작 <나이트 워치> 등의 상업적 성공은 이를 뒷받침하는 한 가지 사례였다. 이러한 '성공'은 러시아의 문화적 전통과 정체성 회복의 계기로 삼으려는 노력이 현재 러시아에서 진행중인 것이다.)


 

 

 

가장 상징적인 영화는 <닥터 지바고>. 러시아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동명 소설을 1965년 할리우드의 데이비드 린 감독이 영화화한지 무려 41년 만에 러시아인의 손에 의해 TV 영화로 거듭난다. 구 소련 시절 금지소설로 분류됐던 이 작품이 영화로 제작되는 것도 처음이다. 러시아 NTV는 올 5월 8시간 분량의 이 영화를 내보낼 예정이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도 러시아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앞서 마하일 불가코프의 명작 <거장과 마르가리따>는 지난해 12월 TV 영화로 만들어져(왼쪽 이미지. 오른쪽은 감독 블라지미르 보르트코) 러시아 시청자의 절반 이상을 사로잡는 경이적인 기록을 낳았다(*<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러시아 연극의 고정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한편, 현재 절판중인 국역본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새 번역본이 내년까지는 나올 예정이다). 스탈린 치하 강제수용소의 군상을 풍자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소설 <제1원>도 TV 영화로 제작돼 지난달 말 러시아 TV에서 방영됐다.(*'The First Circle'을 옮긴 <제1원>은 <제1권>(분도출판사, 1974)로 번역돼 있는 솔제니친의 장편소설을 가리킨다.) 

닥터 지바고를 제작중인 알렉산드르 프로쉬킨 감독은 “데이비드 린 감독을 존경한다”며 “하지만 그의 영화는 미국 영화일 뿐”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인의 작품을 러시아안이 해석해 영화로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러시아 소설을 러시아인이 해석하지 않음으로써 기존 영화에 많은 오류가 숨어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린 감독은 슬라브인과 비슷한 금발의 배우 줄리 크리스티를 지바고의 연인 라라로 캐스팅했지만 원작은 라라가 벨기에인 아버지와 프랑스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비 슬라브적인 인물로 묘사한다”고 꼬집었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는 빨간 머리의 러시아 여배우 슐판 카마토바를 라라역으로 캐스팅했고 지바고 역에는 오마 샤리프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올레그 멘쉬코프를 기용했다. 멘쉬코프는 ‘러브 오브 시베리아’를 통해 한국 관객에도 익숙한 배우이다.(*'슐판 카마토바'는 '출판 하마토바'의 잘못된 음역이다. 외신기자들도 이제는 영어-러시아어 음역체계에 대해서 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올레그 멘쉬코프'는 그냥 '올렉 멘쉬코프'라고 읽어주고 싶다. 얼마전 TV에서 재방영된 <러브 오브 시베리아>의 주연배우가 올렉 멘쉬코프인데, 한국일보인가는 '올렌 멘쉬코프'라고 적었었다.)

뉴욕타임스는 “스페인 라다하라 평원에서 올 로케된 린의 영화 현실은 가공일 뿐 실제 러시아 평원을 배경으로 제작되는 이 작품이 러시아 문학과 영화의 진수를 느끼게 해 줄 것”이라는 러시아 영화계의 반응을 전했다. 러시아 영화계의 이 같은 동향은 구 소련 붕괴 후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온 러시아가 최근 정치안정과 유가급등에 따른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국가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여러 시도 중 하나로 봐야 할 것 같다.(*어찌되었거나, 러시아문학 전공자로서는 아주 반가운 일이다. 이걸 다 언제 구해 보나?) 

06. 02. 17.

P.S. 모스크바 통신에서 '올렉 멘쉬코프'에 대해 몇 자 적은 대목이 생각나 옮겨온다. 작년, 그러니까 2005년 새해 벽두에 쓴 것이었다.

어제보니까 러시아의 (2005년)새해맞이는 푸틴의 5분 연설로 시작된다. 그는 12월 31일 밤 11시 55분에 대부분의 TV채널에 등장해서 새해의 의미와 새해를 맞는 러시아의 각오/다짐을 되새겨주었다.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2005년이 전승 60주년이 되는 해라는 것이다(러시아/소련은 1945년 5월 독일로부터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2차 대전의 승전국이 된다. 러시아는 그 전쟁에서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입은 나라이다). 러시아인의 90%가 독일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하고 독일에서의 삶을 꿈꾸기도 하지만, 독일에 대한 승리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 ‘러시아’를 지탱하는 가장 큰 이념적 버팀목이다(그걸 보충하는 것이 ‘러시아 정교’이다). 방대한 영토의 다민족 국가인 러시아이기에 그런 버팀목은 불가불 요구된다. 사회주의 시절엔 아마도 ‘러시아혁명’이 그런 역할을 수행했을 테지만, 지금은 오직 ‘조국전쟁에서의 승리’뿐이다. 이 ‘국가 이데올로기’를 어떻게든 유지시켜보려는 노력은 옆에서 보기에 간혹 안쓰럽다.

푸틴의 연설에 이어서 채널 NTV(엔떼베)에서는 ‘올렉 멘쉬코프와의 첫밤’이라는 쇼프로그램을 방송했는데, 멘쉬코프는 <시베리아의 이발사>(<러브 오브 시베리아>로 출신>)와 <위선의 태양> 등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미남배우이자 러시아의 국민배우이다(*그는 러시아의 '중년의 꽃미남'이다). 듣기에, 아직 미혼이며 그의 전기까지 출간됐을 정도이고 중년이지만 배용준의 인기를 능가한다(러시아 연예계라는 게 우리처럼 떠들썩하진 않지만).

그래서 그날 챙기게 된 영화가 그의 1999년작인 레지스 바르니에 감독(<인도차이나>의 감독)의 영화 <동과 서>이다(왼쪽 사진은 <시베리아의 이발사>에서 줄리 오몬드와 멘쉬코프. 그리고 오른쪽은 <동과 서>에서 산드린 보네르와 멘쉬코프). 프랑스 등 4개국 합작 영화인데, 2차 대전 종전 후 1946년 의사인 러시아 남편을 따라서 남편의 조국 ‘소련’으로 간 프랑스인 아내의 ‘지옥에서의 10여년’을 다루고 있는 영화인데(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주연은 산드린 보네르이고 카트린 드네브도 조연으로 출연한다(푸틴이 러시아의 1945년을 기념하고 있다면, 멘쉬코프는 1946년 이후에 러시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고발한다).

러시아 생활에 절망하던 프랑스 아내는 간첩 혐의로 수용소에 끌려가기도 하지만 1956년(이 해 전당대회에서의 흐루시초프의 비밀연설에 대해서는 이전에 언급했다)에 복권되며, 이후 남편의 숨은 노력으로 비밀 망명에 성공한다(그녀는 아들과 함께 불가리아의 프랑스대사관으로 망명하며, 그리스를 거쳐서 프랑스로 돌아간다). 혼자 남겨진 남편이 프랑스에서 가족과 재회하게 되는 것은 그로부터 30년 후인 1987년에 와서이다(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이들의 재회를 가능하게 했다). 아래 사진은 각각 <시베리아의 이발사>와 <동과 서>의 DVD 타이틀.

‘동’과 ‘서’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아픔을 겪은 러시아/프랑스판 이산가족을 다룬 영화인 셈인데, 우리의 관객들이라면 보면서 눈물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이다. 이런 '반공'영화가 소개되지 않는 것도 참 신기한 노릇이다(러시아 영화를 소개하는 채널조차 안 갖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므로 이럴 때는 '주변 4강'이란 말이 무색하다. 고작 '시베리아 유전'에나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인가? 심히 척박한/천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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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02-17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러시아에는 저렇게 문학이 많을까요... ^^;;

로쟈 2006-02-17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땅넓이에 비하면야.^^

비로그인 2006-02-17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구 수는 그래도 땅 넓이 만큼 많지는 않은데^^

2006-02-17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2-1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꾸 때리다님/ '고뇌'하는 인구수는 우리보다 훨씬 많은 듯합니다...
**님/ 닥터 지바고의 국역본을 모두 갖고 있지만, 찬찬히 대조해보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 지바고의 시 같은 경우, 대개는 맘에 들지 않더군요. 파스테르나크는 좀더 섬세하게 번역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재로선 아무 번역본이나 붙잡아도 '무드' 정도는 전달받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톨스토이 관련 자료들을 검색하다가 그의 얼굴 사진들을 모아놓은 걸 발견했다. 나중에 자료로 쓰기 위해 여기에 옮겨놓는다. 톨스토이의 러시아명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928-1910), 흔히 '레프 톨스토이'이지만, 영어식으론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이다. 간혹 사전이나 번역서 등에 '레오 톨스토이'란 표기가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레프 톨스토이'라고 표기해주는 게 옳겠다. 사진이 찍힌 연대는 우측 하단에 씌어있다.

06. 02. 16.

P.S. 러시아어 표기와 관련하여 한마디. 푸슈킨의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1830)은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초연은 1879년)로도 만들어져 잘 알려진 작품인데 영어명은 'eugene onegin'이어서 종종 '유진 오네긴'이라고 옮겨지기도 한다. 지난 1999년엔 영국의 여성감독 마사 파인즈에 의해 <오네긴>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국내에 출시돼 있으며 주연은 감독의 오빠인 랄프 파인즈가 맡았다. 타치야나 역은 리브 타일러). 아래 사진은 각각 오페라와 영화의 한 장면.

그보다는 좀 나은 표기가 '예게니 오네긴'인데, 'Evgenii Onegin'의 음역으로 부정확함에도 불구하고 (대개 음악 분야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 것은 마땅찮다(지난주엔 <씨네21>에서도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을 소개하면서 <예프게니 오네긴>이라고 표기했다). 우리의 러시아어 표기는 보통 '무성음화'를 반영하기 때문에 어미에 오는 [v](즉, 무성음화되어 [f]로 발음되는 'Lev'에서 [v] 같은 경우)는 '브'가 아닌 '프'로 읽어준다. 하지만, 'Evgenii'의 경우 유성음인 [je]와 [g] 사이에 놓여 있기 때문에 굳이 '프'로 발음하려고 해도 그렇게 되질 않는다(오히려 이런 조건에서는 [f]가 와도 [v]로 유성음화된다). 그러니, 앞으로는 '예게니'라고 침튀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냥 부드럽게 '예브게니'라고 불러주는 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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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2-16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지휘자 중에서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

같은 경우는 동호회에서 예프게니냐 예브게니냐 때문에 논쟁도 많았었죠.


로즈마리 2006-02-18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예브게니 오네긴이 오페라, 영화로도 있었군요. 예브게니 오네긴을 읽었던 것 같은데도 내용이 잘 생각 안나네요. 당시, 아 이런 식의 서사시도 대단하군, 하는 인상을 받았던 그 느낌만 생각 나네요. 역시 정리를 안 해서 그런가? ㅠㅠ 핫 오페라는 왠지 보고싶네요..^^

로쟈 2006-02-17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게닌'이 아니라 '오네긴'입니다. 그리고 '서사시'가 아니라 '운문소설'입니다.^^

로즈마리 2006-02-17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러네요. 그나저나 전 서사시로 생각했는데...그 둘의 차이가 궁금하네요. ㅋㅋ

로쟈 2006-02-17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그렇게 적었거든요.^^
 

워크샵 참석차 2박 3일간 지방에 다녀왔다. KTX를 타고 대구에 내려가 팔공산에서 1박하고 경주 보문단지에서 2박을 한 후에 다시 KTX를 타고 올라왔다. 대구는 처음 내려가보는 것이었고, 경주는 11년만이었다. 그래봐야 별로 구경한 것이 없는지라 들러본 자취조차 벌써 지워졌겠다. 

 

직접 제 발로 걸어보지 않은 여정이란 별로 의미가 없다. 보문단지의 경우도 4월의 벚꽃이 진해만큼 아름답다고 하는데, (물론 아직 이르긴 하지만) 그 눈부신 벚나무길을 걸어보지 않았으니 경주에 다녀왔다는 말도 삼가해야겠다. 그러니, 경주에 다녀왔지만 '생활'은 발견하지 못했다(다음엔 새마을호를 타봐야할까?). 그나마 우산을 챙겨가서 쫄딱 비를 맞지 않은 게 다행인 것인지?(어제 대구에는 비가 좀 내렸다.)

  

텍스트를 읽는 것 또한 그러하다. 직접 텍스트의 가로수길을 제 발로 걸어보지 않는다면, 그저 KTX식 다이제스트로 대신한다면, 제대로 읽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니 '읽었지만 읽은 것 같지 않은 책들'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목록에 포함되어야 한다. 나는 가급적 그 '슬프게 하는 것들'의 목록을 좀 줄여보고 싶다. 이런저런 텍스트들을 자세히 읽고자 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이다('텍스트의 발견'이 없다면, 읽기는 얼마나 단조롭고 무의미한가!).

그런 생각과 맞물려서 마침 생각이 나서 여기에 옮겨오는 건 고진의 텍스트 '에크리튀르와 내셔널리즘'에 대한 자세히 읽기이다. 2003년 1월에 쓴 것이니까 그 또한 벚꽃과는 인연이 없던 계절에 작성된 것이다.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먼지를 털어서 창고에 넣어둔다(나중에 좀 때깔을 내서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읽기'에 부록으로 포함시킬 예정이다).

 

 

 

 

가라타니 고진의 '에크리튀르와 내셔널리즘'과 관련하여 내가 갖고 있는 텍스트는 세가지이다. 첫째는 우리말 번역서 <유머로서의 유물론>(문화과학사, 2002)에 실린 '에크리튀르와 내셔널리즘'(E1이라고 부르겠다)이고, 둘째는 박유하 교수의 번역으로 <세계의문학>(94년 겨울호?)에 실린 '언어와 정치'(E2라고 부르겠다)이며, 셋째는 박 교수의 글을 쿤데라(소조)님이 교정해서 올린 카페(비평고원) 자료실의 '내셔널리즘과 에끄리뛰르'(E3라고 부르겠다)이다.

<유머로서의 유물론>에 실린 비평문들 가운데 내가 가장 관심있게 읽은 글이 바로 <에크리튀르와 내셔널리즘>이다. 쿤데라님에 의하면, "이 글은 맨 처음 <비평공간> 92년 10월호에 발표되었다가, 93년 고진의 <유머로서의 유물론>이란 책에 실리게 된다. 그러다 이 논문을 수정 보완한 <내셔널리즘과 에크리뛰르>이란 논문으로 95년, <인문학 담론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재발표된다. 이때 이 논문에 대한 데리다의 서설이 유명하다."(데리다의 텍스트는 http://www.pum.umontreal.ca/revues/surfaces/vol5/derrida.html을 참조할 수 있다). 

고진이 데리다에게서 많은 시사를 얻었다는 이 글에서 고진은 거꾸로 데리다의 몇몇 논점을 비판하고 있고, 데리다 또한 그 비판이 부적절함에 대해서 반박하고 있기에 옆에서 지켜보기에 퍽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관전에 앞서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은 문제의 텍스트를 확정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어떤 자리에 앉아서 '게임'을 관람할 것인가를 확정하고, 자리 정리라도 해두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일이 필요한 것은 세 텍스트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며, 부분적으로 (내가 생각하기에) 오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에크리튀르'란 불어의 번역. 보통, 문자, 글말, 문어 등으로 번역되는데, E2에서 박교수는 '문장어'라는 말로도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적절한 번역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문장과 계열관계를 이루는 단어나 구, 문단 등을 떠올려 보라). 어쨌든 에크리튀르는 구어(입말)와 대비되어 쓰이고 있다. 고진의 첫 번째 논점은 음성중심주의가 서양의 경우에만 국한되지/한정되지 않는 문제라는 것이다(E1, 62쪽). 그런데, 이 논점은 좀 이상한 논점이다. 그것은 음성중심주의(phonocentrism)란 것이 서양 형이상학적 전통에 국한된다라는 전제에 대한 반박으로서 제기된 것일 텐데, 그러한 전제를 주장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데리다는 자신이 한번도 그러한 주장을 한 적이 없음을 자신의 반박문에서 분명히 하고 있다. 고진이 좀더 정확하게 말하려면, 데리다가 말하는 음성중심주의가 서양뿐만 아니라 (데리다가 미처 다루지 않은) 동양에서도 발견된다라고 해야 한다.

어쨌든 이 문제는 음성중심주의가 근대 내이션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는 고진의 두 번째 논점(사실 이것이 고진의 핵심적인 주장이자 우리가 음미해 볼 필요가 있는 주제이다)과 함께 다음에 '메인-이벤트'를 다룰 때 다시 확인하기로 하고, 이 자리에서는 '텍스트 비판'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하겠다. E1과 E2/E3는 같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 문단의 배열은 사뭇 다르다(비교하는 작업마저 어지러울 지경이다). 고진 자신이 원텍스트를 수정한 듯한데, E2/E3가 <비평공간>(1992년 10월)에 발표된 걸 번역한 것이라고 하니까 <유머로서의 유물론>(1993)에 실린 E1이 더 나중에 발표된 것이고, 따라서 수정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우리말 번역은 99년판을 옮긴 것이다(거기에 증보나 개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따라서 여기선 E1이 저자의 생각을 더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E1의 두 번째 대목(64쪽 이하)에서 고진은 데리다의 소쉬르 독해를 소개하고 그것의 불충분성 혹은 결함을 비판한다. E1의 역자는 differance(디페랑스)를 옮기지 않았고, E2에서는 그것을 '차연'이라, E3에서는 '차이'라 옮겼다. 물론 일반적인 역어는 '차연'이다. 고진의 논점은 데리다처럼 소쉬르를 형이상학 비판이라는 문맥에서만 읽을 필요는 없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소쉬르가 문자를 언어학의 대상에서 제외시킨 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 "소쉬르가 문자를 언어학에서 배제한 것은, 그것이 음성보다 이차적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다. 문자가, 배제될 수 없을 정도로 음성 언어에 침투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E1, 65쪽) "소쉬르가 문자를 언어학에서 배제시킨 것은, 문자가 음성에 비해 이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문자에, 배제할 수 없을 정도로 음성 언어가 침투되어 있기 때문이다."(E2, 108쪽/E3) 여기서 E1과 E2/E3의 내용이 상반되는데, 물론 E1이 논리적으로도, 그리고 문맥상으로도 맞는 말이다. E2의 경우 역자가 오역을 했거나, 아니면 그보다 가능성은 낮지만 고진 자신이 잘못 썼거나 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제의 소쉬르 인용(내가 '문제적'이라고 하는 것은 이 대목을 확인하기 위해서 반나절 이상을 소비했기 때문이다). 세 텍스트 모두 <언어학 서설>에서 인용한 걸로 돼 있는데, 이건 전부 오역이다. 왜냐하면 고진이 인용하고 있는 텍스트는 소쉬르 <일반언어학 강의>이기 때문이다. 그걸 일본에서는 <언어학 서설>로 부른다 하더라도 우리말로 <언어학 서설>로 번역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고진의 인용.

"언어와 문자. 이는 연대적인 듯이 생각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것들은 근본적으로 구별될 필요가 있다. 입말만이 언어학의 대상인 것이다. 언어학의 시간 속으로의 분류는 오직 언어가 받아 씌어지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문자의 중요성을 완전히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실제로 그것들은 문명의 어떤 단계와, 언어활동의 사용상 어떤 완성도의 단계를 각인하고 있다. 그러므로 글말과 문자는 입말에 반작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글말과 입말의 혼동은 초기에 셀 수 없을 정도의, 유치한 잘못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E1)

이 대목에서 E2/E3는 '입말'을 '구어'로 '글말'을 '문장어'로 번역한다.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문어(written language)/구어(spoken language)를 굳이 글말/입말로 번역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도 의문이고('음성'이나 '문자' 같은 한자어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말이다), '문어'를 '문장어'로 번역한 것은 이미 지적했듯이 타당하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다. 문제의 인용을 우리말 <일반언어학 강의>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 알다시피 <일반언어학 강의>는 소쉬르가 쓴 책이 아니라 그가 제네바 대학에서 세 차례 강의한 내용을 그의 제자들이 세 번째 강의를 중심으로 노트를 모아 편찬해낸 책이다. 그런데, E1에서 '<언어학 서설>1908-1909'라고 한 건, 1908-9년에 행해진 소쉬르의 두 번째 강의를 말한다. 따라서 우리말 <일반언어학 강의>(민음사, 1990)과 그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인용문의 핵심은 문어가 아닌 구어만이 언어학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우리말 번역은 "언어적 물체는 쓰여진 낱말과 발음된 낱말의 결합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후자 하나만으로써도 이 물체를 구성한다."(최승언 역, 35-6쪽)이다. 나는 밤중에 소쉬르 관련 책들을 쌓아놓고 뒤적이다가 이 대목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언어학의 대상'을 정말 황당하게도 '언어적 물체'라고 번역해놓고 있는 것이다! '숨어있는 오역찾기' 게임이 있다면 거의 골든벨 수준에 해당하는 오역이다.

90년 간행 이후에 여러 판을 찍은 책에서(요즘은 절판된 걸로 나오는데) 어떻게 이런 오역을 발견할 수 있을까? 처음엔 재미있었지만(!) 차츰 처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2006년판이 12월에 새로 나왔다. 오역들이 수정됐는지는 아직 확인해보지 못했다). 요컨대, (나도 그랬지만) 우리말 번역 <일반언어학 강의>를 아무도 읽지 않은/않는 것이다! 지난주(2003년) 한겨레 책세상에선 김재기 교수가 <일반언어학 강의>를 권유하는 리뷰를 실은 바도 있지만, 이런 번역이라면 핵생들에게 권하기 부끄러운 수준이다. 물론 딱 이 부분만 어처구니없는 오역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학 3학년만 돼도 이 정도의 오역은 하지 않는다.

어쨌든 흥분을 가라앉히고, <일반언어학 강의>의 옛날 번역판을 도서관에서 찾았다. 오원교 역(형설출판사, 1973)에서 이와 관련된 대목은 "언어와 문자법은 서로 다른 두 개의 기호 체계다. 후자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전자를 표기하는 일이다. 언어학의 대상은 쓰여진 낱말과 말해진 낱말의 결합인 것으로는 정의되지 않는다. 말해진 낱말만이 그것의 대상이다."(41쪽) 역시나 흡족한 번역은 아니지만, 최승언 역만큼의 오역은 아니다. 참고로 이 부분에 대한 바스킨(W. Baskin)의 영역은 이렇다: "Language and writing are two distinct systems of signs; the second exists for the sole purpose of representing the first. The linguistic object is not both the written and the spoken forms of words; the spoken forms alone constitute the object."

나는 이어서 혹시 두 번째 강의에 대한 번역은 없을까 하고 찾아봤는데, 다행히 도서관에서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두 번째 강의, 1908-1909'에 관한 책을 발견할 수 있었다. Eisuke Komatsu(예스케 고마츠?) 교토대 교수와 G. Wolf 교수가 편집한 불영 대역본이었다. 그리고 이 두 번째 강의의 발췌역이 작고한 김방한 교수의 <소쉬르>(민음사, 1998)에도 부록으로 실려 있다.

해당 부분에 대한 김교수의 번역은 이렇다: "언어의 위치를 정하고 분류할 수 있는 것이 따로 있을까? 시간 속에서 언어의 분류가 가능한 것은 언어가 쓰여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문자의 중요성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초기의 언어학이 범한 그 수많은 유치한 과오는 쓰여진 언어와 말하는 언어를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말하는 언어만이 언어학의 대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206-7쪽)

이 인용부분은 불영대역본과 일치한다. 즉 고진이 인용한 부분과 비슷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만, 의아하게도 똑같지는 않다. 차이가 나는 부분은, "언어와 문자. 이는 연대적인 듯이 생각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것들은 근본적으로 구별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그것들은 문명의 어떤 단계와, 언어활동의 사용상 어떤 완성도의 단계를 각인하고 있다. 그러므로 글말과 문자는 입말에 반작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 부분들은 내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다. 글말과 문자의 입말에 대한 반작용 운운하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리고 왜 불(영)어 원전에도 없는 내용이 일역본에는 들어가 있을까?

고진이 인용한 <일반언어학 강의>에 대해서 나로선 그 출처를 찾을 수 없었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 문제는 일단 미루어두기로 한다. 대신에 인용문을 쿤데라님이 다시 번역해 주셨는데, 조금 이해가 용이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명료하게 이해되는 건 아니다. 쿤데라님의 번역: "언어와 문자. 이것은 흔히 동일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때에 따라선 근본적으로 구별될 필요가 있다. 구어만이 언어학의 대상이다. 통시적인 언어학적 분류는 언어가 쓰여지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자의 중요성을 완전히 부정해선 안 된다. 실제로 문자에는 문명의 단계와, 언어활동에서 있어 사용상 완성도 단계가 각인되어 있으며, 문어와 문자는 구어에 대해 반작용한다. 하지만, 문어과 구어의 혼동은 초기에 수많은 유치한 잘못의 원인이 되었다."

여기서 처음에 언어라고 번역된 건 불어의 '랑그'(=언어)일 것이다. 알다시피 소쉬르는 언어활동으로서의 랑가주를 랑그와 파롤로 구분하고 랑그만을 언어학의 대상으로 설정한다(랑그가 언어란 뜻이니까 언어가 언어학의 대상이라는 말은 아주 상식적이지만). 그런데, 사람들이 보통 언어라고 할 때 그것을 '쓰여진 말'과 동일시하는 바, 소쉬르는 거기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참고로 E2/E3의 경우 인용문의 '문장어' 옆의 원어 병기가 모두 잘못됐다. 'langue ecrite'를 E2는 'langue ercite'로 잘못 표기했고, E3는 'langue ereite'로 잘못 타이핑했다. 다시 읽어본 결과 E3는 E2의 '내이션'을 전부 '국민'으로 통일한 것과 각주가 미주로 돌려진 것 말고는 눈에 띄는 차이가 없다. 따라서 이후엔 E1과 E2만을 비교하도록 하겠다.)

요컨대 랑그(언어)는 다시 문어와 구어로 나뉘는 바, 구어만이 언어학의 대상이라고 소쉬르는 확정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데리다는 소쉬르의 음성중심주의를 비판하며, 고진은 음성(중심)주의는 그런 식의 형이상학 비판이라는 문맥에서 벗어나 정치적인 문맥에서 이해할 때 보다 생산적이라고 주장한다.


 

 

 

 

 E1이나 E2 모두 영어로 'historical linguistics'에 해당하는 것을 '역사적 언어학'이라고 번역하는데, 내 생각엔 '역사언어학'이라고 옮겨야 한다('역사적 언어학'이란 말은 보지 못했다). 소쉬르가 공시언어학을 제창하면서 의식했던 것은 당시 언어학계를 풍미했던 '역사-비교 언어학'이고, 이러한 학풍(지금은 언어학의 한 분야가 됐지만)을 우리 언어학계에서는 관행적으로 '역사언어학'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와 같은 것을 일본(학계)에서는 '역사적 언어학(歷史的 言語學)'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말이 나온 김에 E1 번역에서 이런 관점에서 불만스런 부분 몇 곳을 지적하기로 한다.

"따라서 이런 데이터 없이는 왜 민족지학자가 결코 재정(裁定)을 내릴 수 없었을까가 질문되고 있습니다."(E1, 68쪽)에서 '재정'이란 말은 (내 감각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 일본식 한자어이거나 일본어이다. 그것을 E2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민족지학자는 왜 이러한 자료 없이는 결코, 판단을 내리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 의문시되고 있습니다."(120쪽)라고 하여 '재정'을 '판단'으로 옮겼는데, 우리말로는 훨씬 더 자연스럽다(E1에서는 '재정'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결정함'이라고 각주를 달았는데, 그렇게 거창하게/거추장스럽게 처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목에서 E1은 "언어학자가 **어라고 동정(同定)하면"이라고 옮겼는데(이건 사실 실사는 놔두고 토씨만 옮기는 격이다), 이때의 '동정'은 한국어가 아니라 거의 100% 일본어이다. 그것은 마치 "언어학자가 **어라고 디파인(define)하면"이라고 옮기는 것과 같다(이런 게 독자를 우롱하는 일이란 걸 역자들은 알 필요가 있다). 다행히 E2에서는 "언어학자가 **어라고 규정하면"이라고 옮기고 있다.

하나만 더 예를 들자. E1에서 "나치스의 '제3제국'(아리아 인종에 의한 근대국가의 양기(揚棄) 출현으로 적중했던 것이다"(70쪽)라고 옮긴 부분. 제대로 교정도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인데, 원래대로라면 "나치스의 '제3제국'(아리아 인종에 의한 근대국가의 양기(揚棄))의 출현으로 적중했던 것이다"일 것이다. 여기서도 문제는 '양기'라는 일본어이다. 떨칠 양(揚)에다 버릴 기(棄)자를 쓴 걸로 미루어 짐작할 도리밖에 없는데, E2의 역자는 그것을 지양(止揚)이라고 제대로 옮겼다: "나치의 '제3제국'(아리아 인종에 의한 근대국가의 지양)에서 적중한 것이다."(122쪽) 지양은 물론 헤겔의 개념인데, 그것을 일어로는 '양기'라고 옮기는 모양이다.

여하튼 이런 몇 가지 사례를 놓고 볼 때, E1의 역자의 일어실력이란 게 신뢰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덧붙여 불만스러운 것은 각주 문제. E1의 경우 각주가 원주인지 역주인지가 밝혀져 있지 않고(모두 역주인가?), E2에는 붙어 있는 원주가 빠져 있다(고진이 뺀 것인가?).

다시 원래의 문맥으로 돌아와서, 고진이 가장 많이 인용하고 있는 글은 소쉬르의 <제네바 대학 취임강연>이다. 이걸 E1의 역자는 '쥬네브 대학'이라고 옮겼다. 사실 국내의 소쉬르 학자들도 불어인 '쥬네브'(혹은 주네브)라고 옮기는 수가 많은데, (무)의식적으로 티내는 치레에 불과해 보인다. 프랑스 파리를 영어식으로 '패리스'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니까. E1에는 내용이 빠져 있지만(66쪽의 각주로 처리돼 있다), 이 강의는 E2에 의하면 마에다 히데키(前田秀樹)가 번역/주석한 것이다(마에다의 저작은 <침묵하는 소쉬르>이다).

 

 

 

 

일단 감탄스러운 건,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일본의 소쉬르학 수준이고(이 취임강연을 도서관 등지에서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궁금한 건 고진의 소쉬르론이 얼만큼 독창적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즉 그가 일본의 소쉬르학에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 내가 알기에, 그리고 내가 읽은 소쉬르 입문서 등에서 소쉬르 언어학에 관한 정치적 해석은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대개는 기호학의 창시자로서의 소쉬르 조명으로 채워져 있다). 여담이지만, 최근엔 동경대 시리즈 <지의 논리>(경당, 1996)에서 소쉬르와 동시대 화가 파울 클레를 비교하는 글을 읽었는데, 역시나 계발적이었다(덕분에 클레의 책들을 사고 있다!). 일본 지식인들이 구조주의, 포스트 구조주의에 강한 면모를 보이는 것은 다 그런 베이스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고진은 그 취임강연을 근거로 소쉬르의 음성주의를 마치 <라쇼몽>에서처럼 상식과는 다르게 재구성한다. 그 주요 내용을 발췌하면 이렇다. "역사언어학에서는 문화=문명과 음성언어가 동일시되고 있다. 다시 말해 거기에서는 외적인 것의 우연적인 소산(이것도 '산물'로 옮겨야 하지 않을까?)이 마치 '내적'인 연속성인 것처럼 상정된다. 언어학은 언어 외적인 것, 또는 '외적 언어학'의 결과를 언어의 법칙으로 취급해 왔다... 따라서 소쉬르가 '내적 언어학'에 구애되는(E2는 '천착하는'으로 옮겼다) 것은 '외적'인 것을 무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외적'인 것의 소산을 내면화하고 있는 언어학을 비판하기 위해서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소쉬르가 언어학의 대상을 어디까지든 음성언어에 한정하는 것은, 그가 음성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역사언어학이 지닌 음성중심주의의 기만을 폭로하기 위해서이다."(E1, 66-67쪽/ E2, 110-1쪽)



소쉬르가 보기에 문자화된 음성("역사언어학자가 말하는 음성은 이미 문자이다"), 즉 에크리튀르의 외부성으로서의 음성은 "넓은 의미의 정치적 제관계"를 의미하며, 소쉬르가 비판하고자 했던 것은 그러한 정치성을 내면화시킴으로써 (마치 없는 것처럼) 소거해버리는/소멸시켜버리는 언어학이다. 그렇다면, 소쉬르를 음성(중성)주의자로 몰아붙이는 데리다의 태도는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물론 데리다는 이에 대해 변호한다). 고진이 보기에 (흔히 내적 언어학이라 불리는) 소쉬르의 언어학이야말로 대단히 정치적이며("역사언어학에 대한 소쉬르의 비판에는, 분명히 역사언어학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에 대한 비판이 있다." 70쪽), 소쉬르야말로 음성(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자인 것이다...

06. 0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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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6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2-16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농담도.^^

paby 2006-02-16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말"과 "입말"은 (한자어를 배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어", "문어"가 좋지 않은 번역이라고 생각해서 선택한 번역어들이 아닐까 싶군요. "구어"와 "문어"는 대부분의 경우 표현상의 차이를 나타내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음성언어냐 문자언어냐를 구별해서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요. 그래서 구어로 쓰여진 소설이 있을 수 있고, 문어로 이야기하는 (좀 이상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요. 역자는 아마도, "글말"과 "입말"은 잘 사용되지 않는 말들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그러한 오해의 소지가 적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군요. (*그리고 "문장어"는 혹시 "문자어"의 오타가 아니었을까요?)

곰집 2006-02-16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일한 텍스트를 읽는 다양한 방법을 로쟈님을 통해 "실제로" 그 흐름을 확인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로쟈 2006-02-17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aby님/ '동정'이나 '양기' 같은 일어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역자가 '입말'/'글말'에 대해서 그렇게 고심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문장어'는 반복해서 쓰고 있는 걸로 보아 오타 같지는 않지만, 현재 텍스트를 갖고 있지 않아 확인이 어렵습니다...

earthmt 2020-02-16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isuke Komatsu(예스케 고마츠?), 는 小松英輔(현행 일본어 표기법에 따르면, 고마쓰 에이스케)인 듯합니다.
http://webcatplus.nii.ac.jp/webcatplus/details/creator/2532467.html
 

레비나스와 필립 네모와의 대담을 엮은 <윤리와 무한>(다산글방, 2000)은 리처드 커니와의 대담과 함께 레비나스 입문으로서 가장 평이하면서도 알찬 내용을 담고 있다(대담의 밀도를 기준으로 하자면 커니와 대담을 권하겠다. 대신에 네모와의 대담은 편안하다). 무엇보다도 레비나스 자신의 육성을 통해서 그의 삶과 철학에 관해 들어볼 수 있다는 것이 이 대담들의 최대 강점이다.

<윤리와 무한>은 분량도 150여쪽에 불과하기에(영역본의 경우엔 120여쪽) 조금 과장하자면 '30분에 읽는 레비나스'로 부족함이 없다. 역자 또한 레비나스와 마찬가지로 스트라스부르대학에서 학위를 받았으니 '동문'이라 할 수 있다. 몇 군데 생각이 다른 부분들이 있지만 번역의 가독성 또한 좋은 편이다. 

리투아니아 태생의 레비나스가 제대로 된 철학에 입문하게 되는 것은 스트라스부르대학에 입학하고서부터이다. 이전에 그가 읽은 것은 성경과 탈무드, 그리고 주로 러시아 문호들의 작품들이었다. "18세 때 거기서 네 분의 교수님을 만났다. 그분들 이름은 샤를르 블롱델, 모리스 알바하, 모리스 프라딘느, 그리고 앙리 카트롱이다. 그분들은 내 머리 속에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권위로 자리잡았다. 아, 나의 스승들!"(30쪽)  

그가 대학에 들어간 건 1923년이다(<존재에서 존재자로>에 실린 연보를 보니 스트라스부르로 건너간 게 1923년이고, 실제 대학에 들어간 건 1926년이다. 그리고 1930년에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는 스트라스부르대학에서 '이 네 분 선생님을 통해 위대한 지성의 맛을 보았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그리고 칸트 등을 배우기 시작한다. 당시에 프랑스에선 아직 헤겔이 진지하게 읽히지 않았으며(소위 '3H'의 시대는 30년대로 넘어가야 한다), 스트라스부르에서는 뒤르켐과 베르그송이 영웅이었다. 레비나스는 특히 베르그송의 철학은 높이 평가한다.

"베르그송의 사상이 없었더라면 하이데거가 '현존재(Dasein)'의 유한한 시간성을 생각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베르그송의 시간개념과 하이데거의 시간개념이 사뭇 다르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전까지만 해도 모두 과학에서 말하는 시간을 추종했는데, 철학을 거기서 해방시킨 것은 분명 베르그송의 공헌이다."(33쪽) 베르그송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커니와의 대담에서도 읽을 수 있다. 특히 레비나스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베르그송의 시간론이다.

하지만, 그가 '철학함'을 배우게 되는 것은 후설로부터이다. 그는 후설에게서 "적절하면서도 정당하게 물음을 묻고 건너뛰지 않고 치밀하게 철학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매력을 느낀다. 우연한 기회가 나중에 <데카르트의 성찰>(1931)을 공역하게 되는 동료 가브리엘 파이퍼로부터(파이퍼는 후설에 대한 학위논문을 준비중이었다) <논리연구>를 추천받아 읽으며 현상학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1928-9년에, 그러니까 그의 나이 23살에 후설이 있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로 유학을 떠난다. 그가 머문 것은 1년 남짓이지만, 그는 거기서 막 은퇴한 후설의 강의를 듣고, (후설의 제자이자 후임) 젊은 철학교수 하이데거와 조우하게 된다.

이 시기에 레비나스에게 결정적이었던 것은 막 출간된 세기의 저작 <존재와 시간>(1927)을 접하게 된 것이었다. "결국 <존재와 시간>을 발견했던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몇이서 그 책을 읽었다. 읽으면서 나는 일찌감치 이 책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철학사에 빛나는 몇 권의 책들 가운데 하나로 꼽히리라. 나는 몇 년후에 그런 평가를 내렸다. 아마 가장 훌륭한 책 네 권이나 다섯 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게다."(43쪽) 그 네댓 권이 어떤 책들이냐는 네모의 질문에 레비나스가 꼽아주는 철학사의 걸작들은 아래의 다섯 권이다: <파이돈>(플라톤), <순수이성비판>(칸트), <정신현상학>(헤겔),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베르그송), <존재와 시간>(하이데거).  

 

 

 

 

특히 레비나스에게서 하이데거의 성취는 결정적인데, 그것은 순전히 <존재와 시간> 때문이다: "내가 하이데거를 높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존재와 시간>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다. 나는 그 책을 읽을 때의 감격을 자꾸 되새기곤 한다. 당시는 아직 1933년의 사건을 생각할 수 없을 때였다."(44쪽) 1933년은 하이데거가 나치와 불미스런 연루관계를 맺게 되는 때이다.

사실, 레비나스의 철학 전체는 하이데거와의 철학적 대결이란 문맥에서 읽힌다. 레비나스는 '하이데거 이후'에 서양철학이 '하이데거 이전'으로 후퇴할 수 없다고 보았으며 동시에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그래도 수용할 수도 없었다. '존재자에서 존재로'라는 하이데거의 '존재사유' 혹은 '하이데거적 전회'가 없었다면, '존재에서 존재자로'라는 레비나스의 문제의식, 혹은 '레비나스적 전회' 또한 사유될 수 없었거나 적극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레비나스의 <존재에서 존재자로>는 그의 주저 <전체성과 무한>의 '서론'으로도 읽힌다. 한데, 국역본 <존재에서 존재자로>는 외양과는 다르게 충분히 신뢰할 만하지 않다. 기이한 일이다).

"<존재와 시간>은 존재론의 모범이 되었다. 유한, 현존재, 죽음에 대한 하이데거의 개념정리는 여전히 중요하다.(...) 내가 <존재와 시간>에 보내는 찬사가 하이데거 추종자들에게는 시시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나중 작품들은 <존재와 시간>을 통해서만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사실 후기 작품들을 볼 때 <존재와 시간>만큼 큰 인상을 받지 못했다. 잘 알겠지만 그것들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훨씬 설득력이 약하다."(48-9쪽)  

 

 

 

 

그러므로 레비나스를 읽으려면 <존재와 시간>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그런 게 또한 '철학수업' 아니겠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다행히도 우리에겐 두 권의 정역본 <존재와 시간> 외에도 가장 최근에 나온 이기상 교수의 해설서 <존재와 시간>(살림, 2006)에 이르기까지 몇 권의 입문서가 있다. <전체성과 무한> 같은 레비나스의 주저가 소개되기 전까지 우리는 이런 책들을 읽으며 시간을 때우고, 자리를 데우는 게 좋겠다. 서양철학사의 1/5을 읽는다는 기분으로 읽는다면 또 못 읽을 것도 없지 않겠는가?(그리고 경험상 하이데거는 칸트와 헤겔에 비하면 훨씬 재미있으며 읽기 편하다. 단, 반드시 칸트나 헤겔하고만 비교해야 한다!)

06. 02. 13.

P.S. '수업'이 끝났으므로 며칠 '바람'이나 쐬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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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2-13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진진...잘 읽었습니다.

로쟈 2006-02-19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이리스 2006-02-20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탐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만, 주제넘게 <존재와 시간>을 보관함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냥, 넣어두었다는 것만 기억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_-;;

로쟈 2006-02-22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에 넣는 것까지는 아직 '탐욕'이 아닌 듯한데요.^^
 

레비나스에 관한 글들을 띄우는 김에 러시아어본 레비나스도 잠깐 소개해둔다. 실상은 재작년 5월 모스크바 통신에 띄운 글에 포함돼 있는 내용인데, 당시 서점에서 새로 나온 <레비나스 선집>(2004)을 반가운 마음에 사들였던 추억을 담고 있다. 아래 사진의 왼쪽이 헌책방에서 구한 <레비나스 선집: 전체성과 무한>이고, 오른쪽이 신간이었던 <레비나스 선집: 어려운 자유>이다.

Э. Левинас Эмманюэль Левинас. Избранное.Тотальность и бесконечноеЛевинас Э. Избранное: Трудная свобода (сост. Левит С.Я.; пер. с фр. Вдовиной Г.В., Маньковской Н.Б., Ямпольской А.В.)

지난주(*2004년 5월)에 나온 신간 가운데, 가장 반가웠던 것은 <레비나스 선집>이었다. 역시 <크리스테바 선집>과 같은 ‘세상의 책’ 시리즈로 나온 최신간(이 시리즈에는 그밖에도 불트만, 아롱, 라크루아, 플레스너 등이 들어가 있다)인데, 로스펜출판사에서 내는 이 시리즈는 러시아와 부다페스트(헝가리)의 <열린사회연구소>에서 기획하는 ‘번역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간되고 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돈줄은 소로스 펀드이다.

 

 

 

 

아마도 전세계적으로 이름이 가장 널리 알려진 펀드 매니저인 소로스는 헝가리 태생이고, (‘열린사회’란 말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칼 포퍼의 제자로도 유명하다. 요컨대, 그는 ‘열린사회’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가끔 계란 세례를 받기도 하지만). 그 ‘실천’의 방식이 ‘세상의 책’들을 번역/출간하는 데 있다는 점은 음미해 볼 만하다. 덧붙여, 소로스의 바람대로, 이번 미 대선에서 부시가 (제발) 낙선해서, ‘군사 민주주의’(촘스키) 국가인 미국도 어서 빨리 ‘열린사회’의 대열에 동참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물론 소로스의 기대에 어긋나게도 부시는 재선에 성공했다).

어쨌든 소로스 펀드의 도움으로 나온 <레비나스 선집>의 제목은 ‘어려운 자유’이고, 전체 752쪽이다(1,500부 발행).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서점 <이데아>의 주인장 말에 따르면(사실 그는 몇 년 전에 뭐가 나온 게 있다고만 했다), 러시아에서 최초로 번역된 레비나스의 책은 2000년에 나온 <전체성과 무한>이다(*나중에 헌책방에서 구했다). 그리고 이번이 두번째인 듯한데, 모두 4권의 책이 한꺼번에 번역돼 나왔다(*<전체성과 무한>에는 5권이 번역돼 있다. 해서 내가 갖고 있는 '러시아어 레비나스'는 모두 아홉 작품이다).

그 4권이란, <후설 현상학에서 직관이론(Theorie de l’intuition dans la phenonelogie de Husserl)>(1963), <후설과 하이데거와 함께 존재를 발견하며(En decouvrant l’existence avec Husserl et Heidegger)>(1947/67), <어려운 자유(Difficile liberte)>(1963), 그리고, <타인의 휴머니즘(Humanisme de l’autre homme)>(1972)이다(번역서명은 강영안 교수의 표기를 따른다). 이 네 편의 번역 외에도 <글쓰기와 차이>에 실려 있는 데리다의 레비나스론 후반부가 번역돼 있고, 레비나스 철학의 핵심개념풀이가 부록으로 붙어 있다. 전체 번역은 두 사람이 했는데, 그 중 3편을 번역한 I. S. 보비나(Vovina) 여사가 레비나스 전문가로 보인다.

레비나스의 책으로 국내에 번역된 것은 <시간과 타자>, <존재에서 존재자로> 정도일 텐데(소로스의 ‘번역’ 펀드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이런 책들이 한꺼번에 번역되기는 아마도 힘들 것이다), 앞으로 사정이 얼마나 나아질지는 의문이다(*원전 번역에 관해서라면, 아직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앞의 책 4권 가운데, 내가 본 영역본은 <후설 현상학에서 직관이론> 한 권뿐이었는데, 그쪽도 사정이 달라졌는지 모르겠다(*지금은 거의 다 번역돼 있는 듯하다) . 물론 러시아에서의 인문서 번역 현황이 모두 레비나스 수준인 것은 아니다. 대형서점의 ‘철학’ 코너에 가보면, 클래식전집이라고 나온 걸 빼고, 외국철학자, 특히 현대철학자들의 책을 구경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너네도 거장이 나오긴 틀렸구나!”라는 게 혼자 생각이었다. 물론, 사유의 거장들이 없더라도 먹고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으므로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더 많은 번역서들이 나와야 한다는 당위의 가치는 유보될 수 없다. 적어도, 번역은 소통과 나눔에의 의지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번역이야말로 ‘프로메테우스의 일’이다. 그것이 유익할 뿐만 아니라, 간혹 아름답고 숭고한 것은 그 때문 아닌가?

어쨌든 부피만으로도 ‘숭고한’ <레비나스 선집>의 가격은 240루블이었다(9,600원). 얼마전 국내에서 새로 나온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가 35,000원이던데, 할인가격을 고려하더라도 1/3이 안되는 가격이다. 하지만, 가격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번역의 질이다. 내가 러시아아어본의 <그라마톨로지>를 아무런 주저없이 집어든 것처럼, 외국의 한국학 전공자가 우리말 <그라마톨로지>를 집어들 수 있을지는 극히 의심스럽다. 해서 (1)더 많이 번역되어야 한다는 원칙에다가 (2)믿을 만하게 번역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반드시 추가해야 한다. 유사-프로메테우스들에 대한 주의가 요망되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신이여, 이들의 간을 쪼아주소서!).

06. 02. 13.

Эммануэль Левинас Время и другой. Гуманизм другого человекаЭмманюэль Левинас: Путь к Другому

P.S. 러시아어본들에서 레비나스의 생년은 구력에 따라 (1906년이 아니라) 1905년으로 기재돼 있다.(*'러시아어 레비나스'는 몇 권 더 있다. 왼쪽이 <시간과 타자> 등을 묶은 선집이고, 오른쪽은 연구논문들까지 같이 묶은 <엠마누엘 레비나스: 타자로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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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6-02-14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로쟈님의 마지막 말씀 '신이여, 이들의 간을 쪼아주소서!'를 저도 되풀이하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