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비나스와 필립 네모와의 대담을 엮은 <윤리와 무한>(다산글방, 2000)은 리처드 커니와의 대담과 함께 레비나스 입문으로서 가장 평이하면서도 알찬 내용을 담고 있다(대담의 밀도를 기준으로 하자면 커니와 대담을 권하겠다. 대신에 네모와의 대담은 편안하다). 무엇보다도 레비나스 자신의 육성을 통해서 그의 삶과 철학에 관해 들어볼 수 있다는 것이 이 대담들의 최대 강점이다.
<윤리와 무한>은 분량도 150여쪽에 불과하기에(영역본의 경우엔 120여쪽) 조금 과장하자면 '30분에 읽는 레비나스'로 부족함이 없다. 역자 또한 레비나스와 마찬가지로 스트라스부르대학에서 학위를 받았으니 '동문'이라 할 수 있다. 몇 군데 생각이 다른 부분들이 있지만 번역의 가독성 또한 좋은 편이다.

리투아니아 태생의 레비나스가 제대로 된 철학에 입문하게 되는 것은 스트라스부르대학에 입학하고서부터이다. 이전에 그가 읽은 것은 성경과 탈무드, 그리고 주로 러시아 문호들의 작품들이었다. "18세 때 거기서 네 분의 교수님을 만났다. 그분들 이름은 샤를르 블롱델, 모리스 알바하, 모리스 프라딘느, 그리고 앙리 카트롱이다. 그분들은 내 머리 속에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권위로 자리잡았다. 아, 나의 스승들!"(30쪽)
그가 대학에 들어간 건 1923년이다(<존재에서 존재자로>에 실린 연보를 보니 스트라스부르로 건너간 게 1923년이고, 실제 대학에 들어간 건 1926년이다. 그리고 1930년에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는 스트라스부르대학에서 '이 네 분 선생님을 통해 위대한 지성의 맛을 보았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그리고 칸트 등을 배우기 시작한다. 당시에 프랑스에선 아직 헤겔이 진지하게 읽히지 않았으며(소위 '3H'의 시대는 30년대로 넘어가야 한다), 스트라스부르에서는 뒤르켐과 베르그송이 영웅이었다. 레비나스는 특히 베르그송의 철학은 높이 평가한다.
"베르그송의 사상이 없었더라면 하이데거가 '현존재(Dasein)'의 유한한 시간성을 생각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베르그송의 시간개념과 하이데거의 시간개념이 사뭇 다르지만 말이다. 여하튼 그전까지만 해도 모두 과학에서 말하는 시간을 추종했는데, 철학을 거기서 해방시킨 것은 분명 베르그송의 공헌이다."(33쪽) 베르그송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커니와의 대담에서도 읽을 수 있다. 특히 레비나스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베르그송의 시간론이다.


하지만, 그가 '철학함'을 배우게 되는 것은 후설로부터이다. 그는 후설에게서 "적절하면서도 정당하게 물음을 묻고 건너뛰지 않고 치밀하게 철학한다는 느낌"을 받으며 매력을 느낀다. 우연한 기회가 나중에 <데카르트의 성찰>(1931)을 공역하게 되는 동료 가브리엘 파이퍼로부터(파이퍼는 후설에 대한 학위논문을 준비중이었다) <논리연구>를 추천받아 읽으며 현상학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1928-9년에, 그러니까 그의 나이 23살에 후설이 있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로 유학을 떠난다. 그가 머문 것은 1년 남짓이지만, 그는 거기서 막 은퇴한 후설의 강의를 듣고, (후설의 제자이자 후임) 젊은 철학교수 하이데거와 조우하게 된다.
이 시기에 레비나스에게 결정적이었던 것은 막 출간된 세기의 저작 <존재와 시간>(1927)을 접하게 된 것이었다. "결국 <존재와 시간>을 발견했던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몇이서 그 책을 읽었다. 읽으면서 나는 일찌감치 이 책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철학사에 빛나는 몇 권의 책들 가운데 하나로 꼽히리라. 나는 몇 년후에 그런 평가를 내렸다. 아마 가장 훌륭한 책 네 권이나 다섯 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게다."(43쪽) 그 네댓 권이 어떤 책들이냐는 네모의 질문에 레비나스가 꼽아주는 철학사의 걸작들은 아래의 다섯 권이다: <파이돈>(플라톤), <순수이성비판>(칸트), <정신현상학>(헤겔),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베르그송), <존재와 시간>(하이데거).






특히 레비나스에게서 하이데거의 성취는 결정적인데, 그것은 순전히 <존재와 시간> 때문이다: "내가 하이데거를 높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존재와 시간>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다. 나는 그 책을 읽을 때의 감격을 자꾸 되새기곤 한다. 당시는 아직 1933년의 사건을 생각할 수 없을 때였다."(44쪽) 1933년은 하이데거가 나치와 불미스런 연루관계를 맺게 되는 때이다.
사실, 레비나스의 철학 전체는 하이데거와의 철학적 대결이란 문맥에서 읽힌다. 레비나스는 '하이데거 이후'에 서양철학이 '하이데거 이전'으로 후퇴할 수 없다고 보았으며 동시에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그래도 수용할 수도 없었다. '존재자에서 존재로'라는 하이데거의 '존재사유' 혹은 '하이데거적 전회'가 없었다면, '존재에서 존재자로'라는 레비나스의 문제의식, 혹은 '레비나스적 전회' 또한 사유될 수 없었거나 적극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레비나스의 <존재에서 존재자로>는 그의 주저 <전체성과 무한>의 '서론'으로도 읽힌다. 한데, 국역본 <존재에서 존재자로>는 외양과는 다르게 충분히 신뢰할 만하지 않다. 기이한 일이다).
"<존재와 시간>은 존재론의 모범이 되었다. 유한, 현존재, 죽음에 대한 하이데거의 개념정리는 여전히 중요하다.(...) 내가 <존재와 시간>에 보내는 찬사가 하이데거 추종자들에게는 시시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나중 작품들은 <존재와 시간>을 통해서만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사실 후기 작품들을 볼 때 <존재와 시간>만큼 큰 인상을 받지 못했다. 잘 알겠지만 그것들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훨씬 설득력이 약하다."(48-9쪽)




그러므로 레비나스를 읽으려면 <존재와 시간>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 그런 게 또한 '철학수업' 아니겠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다행히도 우리에겐 두 권의 정역본 <존재와 시간> 외에도 가장 최근에 나온 이기상 교수의 해설서 <존재와 시간>(살림, 2006)에 이르기까지 몇 권의 입문서가 있다. <전체성과 무한> 같은 레비나스의 주저가 소개되기 전까지 우리는 이런 책들을 읽으며 시간을 때우고, 자리를 데우는 게 좋겠다. 서양철학사의 1/5을 읽는다는 기분으로 읽는다면 또 못 읽을 것도 없지 않겠는가?(그리고 경험상 하이데거는 칸트와 헤겔에 비하면 훨씬 재미있으며 읽기 편하다. 단, 반드시 칸트나 헤겔하고만 비교해야 한다!)
06. 02. 13.
P.S. '수업'이 끝났으므로 며칠 '바람'이나 쐬러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