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드리면 덧나는 문제이긴 한데, 성매매 문제와 관려하여 스크랩해놓은 기명 칼럼 몇 개를 옮겨놓는다. 며칠전 한겨레에 김기원 교수의 칼럼 '성매매 여성의 인권'이 게재되었는데, 그가 이전에 쓴 칼럼 '성매매 처벌법의 허와 실'을 나는 읽은 바 있고 많은 대목에서 공감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송경숙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전국연대 대표의 반론이 제기됐었던 모양이다. 생각할 자료서의 가치가 있는 듯하여 모두 옮겨놓는다. 

한겨레(06. 07. 28) 성매매 처벌법의 허와 실

-성매매 처벌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되어간다. 성매매처벌법으로 성병검진 대성 여성이 준 게 질병관리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최근 발표도 물의를 빚었지만, 이 법을 둘러싸고는 지금까지 뜨거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시장논리에 어긋난 법률이라고 비난한 학자가 있는가 하면, 재계총수는 사회의 하수구가 있어야 한다고까지 이야기했다. 중산층여성을 위해 한계층여성을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한 여성운동가도 있다. 반대로 여성단체는 엄격한 법집행을 요구한다. 도대체 어느 쪽이 옳을까.

 

 

 

 

-인간의 서비스는 대부분 훌륭한 상품인데 유독 문제가 되는 것은 성적 서비스다. 세계적으로 성매매는 옛날엔 합법적이었으나 현대에 와서 여권신장과 더불어 사정이 달라졌다. 우리나라도 광복 이후 비로소 공창제도를 폐지하고 1960년대에 성매매를 불법화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불법은 기껏 교통신호 위반 정도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성매매처벌법은 그런 관행을 바꾸어 징벌을 강화하는 조처였다.

-그러면 이 법률의 효과는 어떠한가. 먼저 다른 나라의 예를 보자. 미국은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네바다 주만 성매매를 합법화하고 있다. 거기선 성매매를 단속하는 다른 주에 비해 성매매의 거래량은 많다. 하지만 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공개장소에서 영업을 하며 정기적 검진을 실시하므로 성병 등 거래행위에 따른 위험은 현저하게 낮다. ‘어느 업소는 어떻더라’는 소문을 들을 수 있고, 서비스에 문제가 있을 때는 업주에게 항의할 수 있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부당한 착취도 줄어든다.

-성매매가 불법화한 주에서는 성병 걸린 성매매 여성들이 거리를 배회한다. 음성적 매춘행위에 대해선 서비스의 질을 보장받기가 어렵다. 그리고 여기선 폭력이나 부패와 같은 범죄가 자라나기 쉽다. 폭력배가 불법 매춘업에 기생하며 관련 업주들이 단속공무원에게 뇌물을 상납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집창촌 지역을 담당했던 김강자 서장이 공창제도를 주창한 것도 이런 폐해들 때문이다.

-스웨덴이나 네덜란드는 둘 다 선망의 복지국가다. 그런데 성매매에 대한 시각은 판이하다. 스웨덴은 성매매를 불법화했고, 네덜란드는 성매매를 양성화했다. 그 결과는 미국의 예에서와 마찬가지다. 성매매여성 비율은 네덜란드가 훨씬 높은 반면, 스웨덴에선 성매매여성이 뚜쟁이에게 종속된 정도가 크고 위험에 노출되는 확률이 높다.

 

 


 


-요컨대 성매매의 양적 축소를 중시하느냐, 아니면 성매매와 관련된 성병과 범죄의 축소를 중시하느냐 하는 가치판단에 따라 성매매 단속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양쪽 입장 다 일리가 있다. 이런 게 모의 국민투표의 대상이 아닐까. 물론 어떤 방향으로 가든 성매매 여성에게 다른 생계수단을 제공해야 하고 건강한 노동의식도 함양시켜야 한다. 또 사회의 투명화로 술자리 접대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장애인과 같은 성소외자에 대한 배려도 빠져선 안 된다.

-성매매처벌법 시행 이후 우리 집창촌 종사자 숫자는 줄었다. 하지만 성매매가 더욱 음성화한 것도 분명하다.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런데 법 제정 때 여론수렴이 충분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이 역시 졸속정책의 사례가 아닌지 모르겠다. 또한 엄중단속의 방향을 선택하더라도 시행시기를 잘 잡았어야 했는데, 하필 경기가 나쁠 때였으니 부작용이 크고 저항도 거셌다. 조폭관련 업소부터 단속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집행단계도 신중히 밟아 나갔어야 했다. 이런 부분들을 경시해 정부는 결국 법도 흐지부지되게 만들었고 관련 하층서민의 지지도 잃었다. 지금이라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지 않을까.(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

한겨레(06. 08. 12) '성매매 처벌법 논란'의 남성주의

-7월28일치에 실린 김기원 방송대 교수의 ‘성매매 처벌법의 허와 실’이라는 칼럼을 보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는 이에 앞서 ‘셩매매 특별법과 남신숭배’(6월23일치)라는 제목의 외부필자 칼럼에서도 성매매 방지법 관련 내용을 다루면서 법의 문제를 제기하는 차원을 넘어 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내용을 실었다.

 

 


 


-김 교수의 칼럼은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성매매 방지법) 중 처벌법에 대한 문제를 주로 짚고 있다. 물론 법이 만능은 아니고 현행법 또한 한계가 있는데, 법 취지에 맞게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에 대한 인권보호와 자활지원이 확실히 보장되고 있는가에 대한 법 집행력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근거가 불분명한 내용과 추측에 기반하여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김 교수는 마치 성매매가 합법화한 나라에서 여성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잘 관리가 되어 범죄 발생이 줄어든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성매매를 합법화해서 여성들을 관리하는 것이 범죄 축소에 효과적인 양 선전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문제의 본질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다. 성매매 합법화가 여성들의 인권을 보장해주는 대안이 아니라는 점과 오히려 합법화한 나라에서 불법 영역이 확대되고 국제적 인신매매 범죄의 온상지가 되고 있는 사실에 눈감으면서 다른 한쪽의 입장만을 옹호하는 것은 옳지 않다(*어느 주장이 팩트인가?).

-어느 성매매 여성도 대안이 제시된다면 성매매를 지속하지 않겠다고 한다(*미용사가 대안인가?). 성적 서비스를 직업으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또한 대안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전세계적인 ‘빈곤의 여성화’로 수많은 여성들이 성매매와 인신매매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이들을 노리는 알선업자들은 돈벌이를 위해 여성들을 모으고 이동시키면서 착취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오히려 합법화가 대안인 양 선전하는 것은 또다시 모든 이에게 거짓된 환상을 심어주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칼럼은 또한 성매매의 주요 원인이기도 한 성차별적인 남성 중심의 성 의식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성 구매자인 남성들의 안전을 위한 성병 검진의 필요성과 장애인(남성)의 성적 욕구 해결에 대한 요구가 그것이다. 남성의 성적 욕구를 해결해주는 성적 서비스로서의 성매매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쓰인 이 글은, 성매매와 성 구매자로 인해 오히려 심각한 각종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성매매 여성의 건강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장애인 남성의 성을 살 권리(?)를 논하기 전에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먼저 살펴보길 바란다.

-성매매가 합법화하지 않아서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것이 아니라 ‘성매매는 필요악’이라고 허용하면서도 동시에 여성들에 대해서는 도덕적 낙인을 가하는 이중적인 남성 중심적 성 의식과 문화가 성매매 구조를 만들어내고, 그 구조에 유입된 순간부터 여성들은 인권침해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송경숙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전국연대 대표)

한겨레(06. 08. 18) 성매매 여성의 인권

-성매매처벌법을 다룬 필자의 7월28일치 칼럼을 두고 송경숙씨가 8월12일치 신문에서 반론을 제기했다. 반가운 일이다. 이런 식으로 토론이 활발해져야 성문제를 제대로 처리하는 사회가 앞당겨진다. 다만 송씨의 글에는 필자의 뜻을 오해하고 사실을 왜곡한 부분이 있어 이를 해명하면서 논의를 진전시켜 보자.

-성매매에 관한 필자의 글이 남성주의라고 몰아세우면 남성이라는 원죄(?) 때문에 대응하기 난처하다. 하지만 필자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성매매처벌법이 중산층 여성을 위해 한계층 여성을 희생시킨다는 어떤 여성운동가의 지적과, 주류 여성계의 냉대 속에 성매매 여성들이 50일 동안 단행한 천막농성이었다. 여성 전체가 남성에 의해 차별받지만 동시에 여성 사이에도 차별이 존재한다. 이는 자본에 의해 차별받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를 차별하는 것을 연상시킨다(*여성 내부의 차별은 남성중심사회의 필연적인 결과인가? 때문에 나중에 처리되어야 하는? 혹은 남성중심적 사회구조를 혁파하면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성매매 불법화는 송씨의 주장과 달리 해당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보다 침해할 가능성이 더 크다. 미국 성매매 여성 중 에이즈 감염자는 성매매가 합법인 네바다주엔 거의 없는데, 불법인 워싱턴과 뉴저지주엔 절반가량이다. 또 합법인 네덜란드에선 투명한 거래 덕분에 인신매매 등 관련범죄가 잘 드러나는 반면, 불법인 미국에선 은폐되기 쉽다. 불법인 경우에 화대 갈취나 단속 공무원 부패도 더 심하다.

-성매매는 술이나 마약처럼 사람들이 효용을 과대평가하고 폐해를 과소평가하는 비가치재(demerit goods)다. 비가치재에는 국가가 여러 규제를 가한다. 성매매의 폐해는 성병 감염, 결혼제도에 대한 위협, 인간관계의 황금만능화다. 그런데 술은 극소수 국가만 금지하고 마약은 극소수 국가만 허용한다. 성매매는 그 중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서른 나라 중 네 나라에서만 불법이다. 근래 유엔도 모든 성매매를 범죄시하던 과거의 태도를 바꿨다. 다수파가 항상 옳지는 않지만 다수 선진국이 성인의 자발적 성매매를 인정한다면 우리도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사랑 없이 재벌가문에 시집가는 것과 성매매를 하는 것은 어떤 점이 다를까. 결혼여성은 전속 매춘부고 성매매 여성은 프리랜서 매춘부라고 말한 과격한 여성운동가도 있지만, 성매매 여성보다 더 열악한 처지의 주부도 없지 않다. 중요한 문제는 성적 거래를 포함한 남녀관계의 실제상태다. 군산 매춘여성이 숨졌을 때 정부는 거래상태를 개선하는 대신 업종을 폐쇄하는 성매매처벌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 법은 성매매를 더욱 음성화하고 관련 하층서민의 생활을 악화시켰다.

-한국의 성매매 여성 비율은 네덜란드의 네 배, 미국의 두 배가 넘는다. 불법인 미국이 합법인 네덜란드보다 비율이 높고, 또 한국은 그들보다 더 높다. 성적 서비스에 자원배분이 과다한 현실을 시정하는 데 처벌이 능사가 아닌 셈이다. 북한처럼 인민의 삶을 철저히 통제할 수도 없다. 사회보장 제도의 충실화, 사회의 투명화가 관건이다. 그를 향한 과정에서 대안도 없으면서 성매매 여성을 내몰아선 안 된다. 또 송씨는 장애인 남녀의 성욕을 하찮게 여기는데, 그래도 되는 걸까. 성욕은 억압대상이 아니라 관리대상이다. 성매매가 합법인 네덜란드에서 장애인에 대한 성적 자원봉사도 활발하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양대 노총과 민주노동당은 성매매 여성을 외면했다. 이처럼 지지기반조차 챙기지 못하니 헤매는 게 당연하다. 성매매처벌법 재검토를 용기있게 제기할 다음 대선 후보가 있을까. 정치인은 민감한 문제를 피해 간다. 하지만 양극화에 신음하는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란 성매매 여성 같은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인물이 아닐까.(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

06. 08. 21.

P.S. 송경숙 대표의 이어지는 반론을 기대한다. 해법은 당위와 현실의 이분법을 넘어서 현실적합성을 갖는 당위를 찾아가는 데 있지 않나 싶다. 혹 이 문제에 해법이 있다면... 

P.S.2. 마이페이퍼 작성시 저작권 침해 예방에 동참해달라는 알라딘의 요구에 따라 앞으로 다른 사이트의 글을 페이퍼에 옮겨오는 일은 중단할 예정이다(따라서 이 페이퍼가 마지막 '인용'이다). 그리고 이제까지 옮겨왔거나 인용한 글들은 상황을 봐서 비공개로 전환시키도록 하겠다(단, 얼마간의 유예기간을 갖도록 하겠다). 책에 관한 리뷰들을 알라딘에서 참조할 수 없는 건 유감스럽지만 덕분에 책 읽을 시간이 좀 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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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8-21 19:10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저도 송경숙 대표의 반론이 기대됩니다. 성매매에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까닭은 역시, 성노동이 다른 노동과는 다른 성격을 갖는다는 전제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이는 '질적'인 문제이고, 이 '질적' 문제는 '양적'인 차이들의 누적 때문에 생기는 것은 맞지만, 김교수의 '사랑 없이 재벌가문에 시집가는 것과 성매매를 하는 것은 어떤 점이 다를까'라는 말은 폭력적인 것 같습니다.

로쟈 2006-08-21 19:30   좋아요 0 | URL
제 생각은 좀 다른데, '사랑 없이'란 전제를 단 것 자체가 오류이죠. 일반화된 성매매(성의 계약)는 그러한 주관적 감정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것 아닌가요?..

yoonta 2006-08-21 19:50   좋아요 0 | URL
제 개인적으로는 송경숙씨의 의견보다는 김기원교수의 의견에 동조하는 편입니다. 송씨는 기본적으로 성매매에 대한 터부시를 바탕으로 깔고 이야기하는 건데 전 왜 성매매가 다른 매매행위와는 다르게 유독 터부시되고 금기시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심지어는 노동력도 상품화되는 자본주의적 현실이 <불가피한> 지금의 현실이라면 성매매라는 매매행위도 <불가피한> 매매행위의 하나로 보지 말아야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봅니다. 성매매는 오히려 자본주의보다 더욱 역사가 오래된 매매행위중 하나죠.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들의 성노동을 터부시하고 죄악시하는 것은 그와 같은 성차별적 시각을 처음에 만든 남성주의적 시각을 재전유하는 것에 다름아니라고 봅니다.

성매매을 터부시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논거로 제시하는 것이 인신매매와 같은 범죄와의 관련성 때문입니다. 이것도 위에서 김교수가 이야기한 것처럼 공창제를 운영했을때 오히려 감소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술이나 마약 그리고 매매춘등은 금지하고 터부시하면 할수록 더욱 법의 사각지대로 숨어버리게 될 뿐입니다. 결코 없어지지 않죠. 그것은 쉽사리 제어되지 않는 인간의 욕망이 그와같은 상품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욕망에 대한 절제라는 문제를 "당위"라고는 할수있지만 그것이 결코 "범죄행위"는 아니라는 거죠. 이처럼 각 개인의 윤리 내지는 도덕에 의해 판단되어져야 할 문제를 (성매매금지)법으로 규율하려고 한다는 것은 어떤점에서 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일수도 있다고 봅니다...

로쟈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로쟈 2006-08-21 20:08   좋아요 0 | URL
본문에 살짝 적어놓지 않았나요?^^ 성매매를 합법화하고 있는 나라와 불법화하고 있는 나라가 공존하고 있는 것처럼 문제가 일방적이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성매매를 불법화하는 것이 진보라고 믿는 것은 착각이죠). "요컨대 성매매의 양적 축소를 중시하느냐, 아니면 성매매와 관련된 성병과 범죄의 축소를 중시하느냐 하는 가치판단에 따라 성매매 단속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양쪽 입장 다 일리가 있다." 적어도 그런 전제하에 토론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로쟈 2006-08-21 21:45   좋아요 0 | URL
이 글을 포함한 인용 페이퍼들은 일주일 후에 모두 비공개로 전환하겠습니다. 그동안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의 깊은 양해를 바랍니다...

로쟈 2006-08-22 15:13   좋아요 0 | URL
**님/ 본문에 덧말로 적었는데, 알라딘의 지침이 펌글을 자제해 달라는 것입니다. 해서, 제가 군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은 페이퍼들은 전부 비공개로 돌리려고 하고 있습니다(이 페이퍼는 방주에 남겨놓을까 생각중입니다)...

로쟈 2006-08-22 16:11   좋아요 0 | URL
**님/ 예, 앞으로는 별문제이지만 이미 상품넣기를 한 페이퍼들이 처치 곤란이어서요(더불어 알라딘쪽 주문은 퍼오는 것 자체를 자제해달라는 것입니다). 집주인이 나가주었으면 좋겠다는데, 버팅기기도 그렇고... 해서, 쇠뿔도 단 김에 빼버렸습니다...

로쟈 2006-08-22 18:02   좋아요 0 | URL
**님/ 알라딘은 카피라이트를 확실하게 챙기기로 방침을 정한 거 같습니다. 집주인의 방침이 그러하다면 따라줘야지요. 다소 불만스럽지만, 장기적으로 순기능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3794 2006-08-25 11:58   좋아요 0 | URL
<전세계적인 ‘빈곤의 여성화’로 수많은 여성들이 성매매와 인신매매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전세계적 빈곤의 여성화가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 일까요? 3업종이라 불리는 업종은 많이 있습니다. (사람이 없어 외국에서 노동력을 수입하고 있죠) 그러한 업종에 종사하는 최저 빈곤층이 우리사회에 존재하구요. 가난을 벗어날 큰돈을 받는 댓가로 베트남의 빈곤한 가정에서 20살난 여자아이를 한국의 3,40대의 노총각에게 시집보냅니다. 하지만 명품빽을 사기위해 매춘하는 여고생처럼 우리나라의 매춘을 빈곤과 연계시킬수 있는걸까요?


로쟈 2006-08-25 14:21   좋아요 0 | URL
정말로 빈곤한 여성들(하위주체들)은 그걸 사회적 의제로 만들거나 이론화할 수 있는 능력 자체가 결여돼 있죠. 페미니즘 담론의 딜레마 중 하나는 그러한 '대변'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 얘기가 아닌 것이죠...
 

지난주에 출간되 교양과학서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책은 데이비드 베인브리지의 (고즈윈, 2006)이었다. 남성(XY)과 여성(XX) 모두에 들어있는, 그러니까 실상은 모든 인간이 갖고 있는 성염색체가 바로 X인 것이니 남의 관심사로 미뤄둘 수 없는 거 아닌가? 아직 아무런 리뷰도 링크돼 있지 않은 듯하여, 두어 개의 리뷰 기사를 옮겨온다.

한국일보(06. 08. 19) 남과 여, 염색체 하나 다를 뿐인데… X염색체의 비밀

-1890년, 독일의 헤르만 헨킹은 현미경을 유심히 들여다보다 특이한 것을 발견한다. 별박이노린재라는 곤충의 정소에서 추출한 염색체였다. 정소는 다음 세대를 창조할 정자를 만들기 위해 세포분열이 일어나는 장소. 세포는 두 번의 연속 과정을 거친 분열을 통해 정자를 만드는데, 이때 정확한 지침대로 움직이고 과정 내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당시 헨킹은 그 과정에 참가하지 않은 채 한쪽에 조용히 비켜서 있는 염색체를 발견한다. 훗날 그가 X염색체라 이름 붙인 것이다.

-그는 이 염색체를 ‘여분의’(extra) 염색체라는 뜻에서 X염색체라 불렀는데 나중에 생명공학이 발달하면서 이것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바탕임이 밝혀졌다. ‘X염색체의 비밀’은 제목대로 여러 유전적 형질을 전달하는 X염색체의 비밀을 규명하는 책이다. 저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임상해부학자이자 강사(*한 서평자 왈: "베인브리지는 스티븐 제이 굴드, 리처드 도킨스, 매트 리들리에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다. 그는 놀라운 속도로 독자들을 X염색체의 영광으로 초대한다." A급이란 얘기이다).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우리는 부모로부터 X염색체와 Y염색체를 물려받아 XX여성 혹은 XY남성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렇다면 X염색체가 하나인 남성과 둘 인 여성은 어떤 차이를 보이게 될까. 무엇보다도 남성은 유전적 질병에 잘 걸린다. X염색체는 응고인자 8번 또는 9번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갖고 있는데 남성은 만약 그것이 손상되면, 과다출혈로 죽음에 이르는 혈우병에 걸리게 된다. 힘없이 주저앉는 근이영양증이나 색맹도 마찬가지다. 반면 여성은 X염색체가 둘 이어서 하나만 정상이어도 끔찍한 유전적 질병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은 자가면역성 질환에 훨씬 잘 걸린다. 다발성 경화증은 남성의 두 배, 남창은 열 배나 되는 등 자가면역성 질환 환자의 80%가 여성이다. 그 배경에 두 개의 X염색체가 연관돼 있다. 저자는 이런 과학적 사실을 사회적 가치 부여에 이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남성과 여성은 상반되지도, 대항적이지도 않다. 단지 여러 면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 다를 뿐이다.”(박광희 기자)

중앙일보(06. 08. 19) 볼셰비키 혁명 속에도 X염색체가 숨어 있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문명이란 관점에서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다른 종과 별 차이가 없는 하나의 포유동물일 뿐이다. 특히 수정란 상태에서 남녀의 성(性)을 결정하는 아주 성(聖)스러운 과정에서 인간은 다른 포유류와 똑같이 X와 Y의 두 염색체를 이용한다. 즉, X염색체끼리 한 쌍을 이룬 XX의 수정란은 여성이 되고 X염색체와 Y염색체가 쌍을 이룬 XY는 남성이 된다.

-그런데 이질적인 조합인 XY 염색체를 가진 남성은 단 한 종류뿐인 X 염색체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달리 이를 대체하거나 수리할 '부품'이 없어 유전병을 고스란히 앓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XX 염색체를 가진 여성은 또 다른 X염색체가 있어 그런 병을 비켜갈 수 있다. 혈액응고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과다출혈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혈우병이나 색맹 등이 남성에게만 생기는 이유다. 이 때문에 인류사에는 갖은 굴곡이 나타났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자손들이 앓던 혈우병이 러시아.독일.스페인의 왕가로 퍼진 이야기가 좋은 예다. 빅토리아의 딸인 알렉산드리나는 할아버지의 손상된 X 유전자를 물려받아 아들인 러시아 황태자 알렉시스에게 혈우병을 안겨준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비극은 로마노프 황가의 통치 태만과 무기력으로 이어지며 결국 볼셰비키 혁명을 부른다. 스페인 왕가도 혈우병으로 타격을 입어 국가가 내전으로 가는 상황에서 통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성캐서린 대학의 임상해부학자인 지은이는 X염색체를 주인공으로 과학과 역사, 그리고 남녀의 문제라는 거대한 드라마를 그려 나간다. 헤르만 헨킹이 1890년 X염색체를 발견한 뒤 이를 남아도는 염색체로 보고 여분(extra)을 뜻하는 X라는 이름을 붙였다든가, 태평양의 작은 섬 핀지랩의 주민 대부분이 색맹이 된 까닭,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류머티즘성 관절염에 잘 걸리는 이유, 일란성 쌍둥이는 왜 여자가 더 많은지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우리 삶의 비밀을 들여다 본 지은이의 결론은 간단하다. 남녀의 서로 다른 염색체 배열은 다른 생물학적 기능의 차이와 마찬가지로 아이를 보다 더 잘 낳고 자신들의 유전적 특질을 계속 물려주기 위해 진화, 발달해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Y염색체는 우리의 성별(性別)을 결정하고 성 정체성을 부여하지만 X염색체는 수천 가지의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조절한다고 한다.

-즉 생물학적으로 남녀의 유전자는 서로 다를 뿐 우열은 없으며, 남녀는 서로 상반되지도 대항적이지도 않은 동반자 관계라는 게 지은이의 강조점이다. 재미와 정보가 잘 버무려진, 그러면서 생각거리가 있는 교양서를 찾는 이들에게 권한다.(채인택 기자)

동아일보(06. 08. 19) 인간생존의 비결 X파일…‘X염색체의 비밀’

-남자들은 혈우병-근이양증-색맹과 같은 유전병이 많다는데 왜? 여성보다 생존능력이 떨어진다는데 왜? 그것은 X염색체를 하나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염색체는 희한한 구조의 한 쌍이다. Y염색체는 성별을 결정하는 한 가지 사명에 매달리지만 X염색체는 수천 가지 방식으로 우리 삶을 조절한다(*아래는 서간체 서평이다. 요즘은 서평도 좀 튀어야 하니까).

-나의 전남편 ‘Y’에게.

-안녕, 땅딸보. 저예요, ‘X’. 당신의 전 부인(ex-wife).

요즘도 그렇게 숨어서 은둔의 세월을 보내고 있나요. 당신은 내게 진저리를 치겠지만 우리가 3억 년 전 이미 이혼했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공포되기에 이르렀음을 알려 주기 위해 펜을 들었어요. 1890년 독일의 생물학자인 헤르만 헨킹이 나를 최초로 발견했을 때 내 이름을 X로 지어준 것이 내가 당신의 전 부인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서가 아니라는 것은 당신도 잘 알겠죠. 헨킹은 별박이노린재라는 곤충의 정소에서 정자가 만들어지는 과정 중 다른 염색체들은 모두 둘로 분리되는 춤을 추는 동안, 묵묵히 한쪽에 서 있는 나를 보고 남아도는 ‘여분의(extra)’ 염색체라는 의미에서 X라고 이름을 지었잖아요. 무도회장에서 남자들에게 춤 신청도 못 받는 여성을 뜻하는 ‘벽의 꽃(wall-flower)’이라는 모욕적 별명까지 내게 붙은 것을 알고 당신이 폭소를 터뜨렸다지요.

-하지만 그건 내 책임이 아니에요.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가 생겼다는 성경 말씀이나, 남근이 없는 여자 아이가 좌절감 때문에 남근을 선망하게 된다는 프로이트의 남성 우월적 주장과 맞아떨어져 생긴 오해니까요. 거기에는 당신의 책임도 있잖아요. 1905년 미국의 생물학자 네티 스티븐스가 쌀벌레의 정자에 숨어 있던 당신을 발견한 뒤 당신의 몸에 새겨진 ‘SRY’(태아의 생식샘을 고환으로 전환시키는 유전자)라는 문신이 남녀의 성별을 결정하는 유전자로 밝혀지면서 다소곳하고 수동적인 X염색체, 활발하고 능동적인 Y염색체의 신화가 생겨났으니까요.

-물론 아들을 낳지 못하는 책임은, 세포마다 X가 두 개씩 있는 여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X와 Y를 짝으로 지닌 남자에게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남아선호 문화를 지닌 국가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하던 여성들을 구제해 주기는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관계는 기존에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어요. 성과 관련된 일부 유전정보를 제외하면 당신은 손상된 유전자 조각으로 가득한 쓰레기장이고, 나야말로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 정보가 가득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으니까요.

-남성들이 혈우병, 근이양증, 색맹과 같은 유전병에 취약하고 여성보다 생존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내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란 것도 이미 알려졌지요. 인간의 유전자 중 가장 덩치가 큰 디스트로핀이라는 슈퍼 유전자를 운반하는 것도 저라는 것이 밝혀졌고요. 반면 당신은 다른 염색체들보다 작고 못생겼을 뿐 아니라 의사소통 능력도 떨어지는 ‘염색체계의 왕따’라는 점이 들통 났지요. 심지어 두더지 들쥐와 같은 동물들은 아예 당신을 자신의 세포에서 제거해 버렸다는 비참한 사실까지 밝혀졌어요. 그들에게 당신의 존재는 그만큼 부담스러웠던 거지요.

-사람들은 당신의 능력은 성별을 결정짓는 한 가지밖에 없지만 나의 능력은 생존을 결정짓는 수천 가지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문제는 우리의 이런 역할 분담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우리가 실은 오래전에 이혼한 사이라는 비밀까지 파고들고 있다는 점이에요. 다른 염색체들처럼 평범한 커플로 시작한 우리가 오래전 파경에 이르렀음이 밝혀진 거죠. 우리는 다른 염색체 커플과 달리 이미 오래전부터 의사소통도 어려운 남남이 됐잖아요.

 

 

 



-몇 년 전 맷 리들리라는 사람은 <게놈-23장에 담긴 인간의 자서전>이란 책을 통해 당신이 나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거나 속임수를 써 당신의 유전정보를 발현시키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고 폭로했지요. 이제 우리 관계가 그 말 많고 멍청한 할리우드까지 퍼졌나 봐요. 슈퍼 여성을 사귀다 배반한 평범한 남자의 처절한 봉변을 그린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My Super Ex-Girlfriend)>이라는 영화까지 만들어졌다니까요.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 내 눈치를 보고 있을 당신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지만 그 알량한 자존심에 큰 상처 입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가기를 옛정을 생각해 기원합니다.

-지금도 세속적 평가보다는 진실한 사랑을 믿는 당신의 전 부인 ‘X’로부터.(권재현 기자)

06. 08. 21.

P.S. 이 페이퍼를 포함하여 언론 리뷰를 옮겨온 '프리뷰' 카테고리의 페이퍼들은 일주일 후에 모두 비공개로 전환할 예정이다. 저자권 침해 예방에 동참해 달라는 알라딘측의 권고에 따른 것이며, 그간에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의 양해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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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장모님이 아침 일찍 친구분 문병을 가신 터라 오전시간에 잠시 처갓집을 지키고 있다. 처조카 혼자 집에 남게 되었기 때문인데 농구하러 나가고 나니까 집에 남은 건 결국 나 혼자이다. 문병이라고는 하지만, 한 달전쯤 말기암을 통보받고 오늘내일 하신다고 하는지라 이승에서의 마지막 인연을 확인하러 가신 걸음이겠다.  

 

 

 

 

'책벌레'인 나는 그러한 인연마저도 책을 통해서 떠올리게 되는데, 알다시피 제목으로 단 '죽음 앞의 인간'은 필립 아리에스의 방대한 저서명이기도 하다(아직은 서가에 죽음을 들여놓을 자리가 없어서 구입을 미뤄두고 있는 책이다). 아리에스의 <죽음 앞의 인간>(새물결, 2004)은 <죽음의 역사>(동문선, 1998)와 짝을 이룬다. 국내에서는 몇 년 전 원로 국문학자 김열규 교수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궁리, 2001)가 한때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었다. '죽음학'에 대한 본격적인 (학적)연구는 '근사체험'을 다룬 최준식 교수의 <죽음, 또 하나의 세계>(동아시아, 2006)부터가 아닌가 싶다. 가벼운(?) 책으로는 '죽음의 철학적 의미'란 부제를 단 유호종 박사의 <떠남 혹은 없어짐>(책세상, 2001)과 종교학자 정진홍 교수의 <만남, 죽음과의 만남>(궁리, 2003) 등을 꼽아볼 수 있겠다.   

 

 

 

 

얼마전에 출간된 책으로는 시인 원재훈씨의 에세이집(유언모음집) <네가 헛되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문학동네, 2006)와 미셸 슈나이더의 <죽음을 그리다 - 세계 지성들의 빛나는 삶과 죽음>(아고라, 2006)은 각각 삶의 마지막 말과 순간들을 담고 있다. 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세종서적, 2003)이나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궁리, 2002) 등이 있다(<죽음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룬 책들이 이 방면으로 트렌드를 이룬다). '미학적인' 죽음에 대해선 두루 아시다시피, 진중권의 <춤추는 죽음>(세종서적, 2005)을 참조할 수 있다. 그래봐야 여기서 거명한 책들은 일부분일 뿐이다. 이 중에서 가장 최근에 나온 책 <네가 헛되이...>에 대해선 스크랩해놓은 리뷰 기사를 읽어보도록 한다.

세계일보(06. 08. 19) "본래 나고 죽음도 오고감도 없는 것"

-시와 소설의 장르를 넘나들며 활발한 전업문인으로 살아온 원재훈(45)씨가 자신의 삶을 완전히 불태운 사람들이 지상에 남기고 간 마지막 한마디를 모은 에세이집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문학동네)를 펴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같이 살다간 50여명의 삶과 마지막 한마디를 채록한 이 책은 권태와 짜증으로 귀한 ‘오늘’을 소모하는 이들에게 청량한 자극을 주기에 충분하다.

-지은이가 찾아낸 이들은 죽음 앞에서 애통해하거나 아등바등 삶을 구걸하지는 않았다. 당당하고 헛헛하다. 헝가리 출신 작가로 89세의 나이에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권총으로 자살한 산도르 마라이는 “지나치게 오래 사는 것은 분별없는 짓”이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 테오의 품에서 죽어가며 힘겹게 “이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어”라고 힘겹게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고흐는 죽음을 별까지 걸어가는 환상적인 여행으로 생각했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거야.”

-악성 베토벤도 죽음 앞에서 당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의 마지막 한마디는 “박수를 치게, 친구들, 희극은 끝났네”였다. 그가 평소에 죽음을 향해 던졌던 도발적인 대사. “죽음이 언제 오든 기쁘게 맞으리라. 내가 가진 예술적 재능을 모두 발휘하기 전에는, 설령 운명이 아무리 나를 괴롭히더라도 죽고 싶지 않다. 그러니 죽음이여, 용감히 너를 맞으리니 언제든지 오라.” 소크라테스는 “이제 삶이라는 족쇄에서 풀려나니 즐겁다”고 마지막 말을 던졌다.

-이들이 죽음 앞에서 이처럼 담담하고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생을 누구보다도 충실하게 미련 없이 살았기 때문일 터이다.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함대와 맞서 대승을 거두었지만 그 싸움의 와중에 죽어갔던 영국 넬슨 제독의 말이 그 증거다. “신이여. 고맙습니다. 저는 소명을 다했습니다.” 당나라 승려 혜능도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행여 말하지 말라, 내가 왔다 갔다고. 본래 나고 죽음도, 오고 감도 없는 것이다.”

-물론 죽음 앞에서 비감이 없을 수 없다. 성삼문은 죽음을 앞둔 절명시에서 “북소리 목숨을 재촉하는데/ 돌아보니 날은 저물었구나/ 황천에 주막이 없다 하니/ 오늘밤 뉘 집에 묵어갈꼬”라며 서러워했다. 하지만 이렇게 가든 저렇게 죽든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다만 죽음을 미리 걱정하기에 앞서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지혜가 더 절실할 따름이다. 지은이 원재훈은 “여기에 소개한 사람들은 죽기 전에 스스로 죽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다간 사람들”이라며 “죽기 전에 죽는 날, 그날이 바로 다시 태어나는 날이며 또 하나의 생일”이라고 적었다.(조용호 기자)

책에 덧붙인 '자전거 레이서' 김훈의 말: "원재훈이 모아놓은 '임종 자리의 말'들을 읽어보니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말을 해야만 죽어지는 모양이다. 원재훈의 글은 옛 고승대덕의 죽음에서부터 대구 지하철 참사의 희생자에 이르기까지 죽는 순간의 말들을 두루 챙겨서 장관을 이루었다. 그 마지막 말들은 대부분 죽음을 사절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을 데리고 죽음으로 건너갈 수는 없었고 말은 끝내 살아 있는 자들의 편이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좀더 빛을" 또는 "초록색으로 해줘" 또는 "매화 화분에 물을 주어라"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한들 그 빛과 초록과 매화는 산 자들의 것이다. 죽음은 인문화될 수 없는 자연현상이고, 공유할 수 없는 사생활인 것이다. 그래서 말은 산 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그 마지막 말들이 살아가는 날들의 고난을 공정하게 해주고, 이제는 잃어버린 삶에 대한 경건성을 일깨운다. 죽는 자리의 마지막 말이 시작하는 날의 말이다."

그러니 좀더 사는 수밖에...

06. 0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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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21 11:51   좋아요 0 | URL
오옷 역시 김훈의 필력은...

가끔 죽음에 대해 떠올립니다. 결혼하기 전에 가졌던 죽음에 대한 이미지와 상당히 다르지요. 이젠 두려움이 되었어요. 내 아이들이 성장하기까지라도 열심히 울타리가 되어 주고 싶은 소망과 두려움...

하이드 2006-08-21 12:14   좋아요 0 | URL
얼마전에 뉴요커에 실린 존 업다이크가 쓴 ' edward Said의 “On Late Style: Music and Literature Against the Grain” 에 관한 리뷰가 생각나네요.http://www.newyorker.com/critics/content/articles/060807crat_atlarge
예술가들의 말년 작품들에 대한 책이래요. 사이드가 죽기직전까지 콜롬비아에서 강의하던 내용이라고 하는데, 업다이크.의 리뷰만으로도 다 읽은 기분.이라지요. 책찾아볼 생각은 안나지만요. 관심있으면 읽어보시길. ^^

로쟈 2006-08-21 12:22   좋아요 0 | URL
비자림님/ <강산무진>이 전부 '죽음'에 관한 책인데요, 뭐.^^
하이드님/ 저도 리뷰만 읽겠습니다. '다 읽은 기분'이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침신문들이 100만 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던 수학의 난제를 풀고 홀연히 사라졌던 러시아의 한 천재 수학자의 행방을 전하고 있다. 현재 실직상태로 월 5만원 가량의 연금을 받으며 노모와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고. 노모를 위해서도 상금을 받아서 호강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계산법에 맞는 것이지만, 이 러시아 수학자는 그런 셈에는 둔감한 모양이다(더구나 그는 유태계이다!). 이래저래 러시아는 이해하기 난감하다...

 

중앙일보(06. 08. 21) 러시아 수학 천재는 실직 상태

-100만 달러(약 10억원)의 상금이 걸린 수학 난제 '푸앵카레의 추측'을 풀고도 홀연히 자취를 감췄던 러시아의 천재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40.사진)이 실직 상태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의 선데이 텔레그래프는 20일 그가 현재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어머니의 아파트에 얹혀 살고 있다고 전했다. 모자의 한 달 수입은 어머니가 받는 약 5만4000원의 연금이 전부. 인류가 한 세기 동안 씨름해 온 수학 문제를 풀었지만 정작 자신의 빈곤 문제는 풀지 못한 것이다.

-페렐만의 은둔 생활은 2003년 러시아 수학연구소인 스테클로프에서 해고된 뒤 시작됐다. 한 지인은 "해고된 이후 그는 자신의 재능에 대해 자신감을 잃었고, 수학은 물론 세상과도 단절한 채 지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부터는 아무런 수입원이 없는 상태다. 그는 이번 주 발표될 '수학의 노벨상'인 필즈상의 유력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수상식장에 가는 것도 어려워 보인다. 국제수학연합 총회가 열리는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갈 여비가 없기 때문이다(*필즈상은 40세 이하의 수학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안다. 그에게는 마지막 기회이다).

-그의 친구들은 "남에게 신세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누구에게 도와달라는 말도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가난하지만 그는 미국 클레이 수학연구소가 '푸앵카레의 추측'을 푸는 사람에게 내건 100만 달러의 상금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는 선데이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나서지 않은 것은 단지 내가 주목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세상의 관심도 달갑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자기 홍보는 요즘 흔한 일이지만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며 "언론에서 나에 대해 뭐라고 쓰든 관심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이런 성격은 2002년 '푸앵카레의 추측' 풀이를 공개한 방식에서도 드러났다. 10여 년간의 노력 끝에 얻은 결정적 단서를 유명 학회지에 발표하는 대신 인터넷에 올렸던 것이다. 그는 "내 풀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조민근 기자)

한겨레(06. 08. 21) 종적 감춘 러시아 천재수학자, "노모와 월 5만원..." 

-3년 전 수학계에서 100여년 동안 풀리지 않던 푸앵카레 가설을 증명하는 짧은 논문을 인터넷에 올린 뒤 종적을 감춘 러시아 수학자 그리고리 페렐만(40) 박사의 행방이 확인됐다. 푸앵카레 가설은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클레이 수학연구소가 선정한 ‘21세기 수학의 7대 난제’ 중 하나로,연구소는 이를 해결하는 연구자에게 100만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페렐만 박사는 지난해 12월 실직한 뒤 매월 30파운드(약 5만원)의 연금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초라한 아파트에서 노모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0일 보도했다. 그는 러시아의 수학 연구기관인 슈테크로프 연구소와 사이가 나빠져 연구원으로 재임용되지 못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페렐만은 22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국제수학연맹 총회에서 수학판 노벨상인 ‘필즈 메달’의 유력한 수상후보자이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대회 참석이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페렐만 박사는 지난주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주목을 받을 만한 대상이 아니며 (100만달러를 주겠다는) 횡재에도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고 <텔레그래프>는 보도했다. 그는 자신의 실종에 대해 “숨기 위해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며 “그저 대중이 나에게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페렐만 박사의 친구들은 “그가 10년 넘게 노력한 끝에 푸앵카레 가설을 증명했지만 저명한 학술지에 그 결론을 싣지 않고 인터넷에 올렸다”며 “이는 그가 타고난 겸손한 사람이라는 증거”라고 말했다. 페렐만 박사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16살 때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만점을 받았다. 박사 학위 취득 뒤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때엔 미국 유수 대학으로부터 교수직을 제의받고도 모두 뿌리치고 1996년 러시아로 돌아갔다.(박현정 기자)

 

 

 

 

06. 0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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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21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침에 기사 읽고 참 놀랐어요...

이네파벨 2006-08-21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수학이라는 과목이랑 수학자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어마무지한 애정과 경외를 느끼는데요...

수학자들은 뭐랄까...어떤 의미에서 가장 종교적인 사람들인거 같아요.
궁극의 어떤 것, 절실한 어떤 것 하나만 바라보고 나머지 시야를 어지럽히는 삶의 자질구레한 장신구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구도자와 같은 면이...있는거 같아요.

저 위에 올려주신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겁니다." 저 책...
제가 꼽는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책 가운데 하나랍니다.

우연히 손에 들어와 읽게 되었는데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마음을 깨끗하고 맑게해주고...미소짓게 해주었던 책으로 기억해요...
그 주인공 (폴 에어디쉬?) 역시 평생 독신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았죠...

제한된 용량의 인생...시간...관심..사랑..열정..등을....세상사람들이 이리저리 쫓아다니는 뜬구름을 다 잡아보려고 아둥바둥하면서 사는게 아니라 그야말로 "선택과 집중"해서 쏟아부은 삶의 감동....부럽고 멋지네요...

로쟈 2006-08-21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간 미친 겁니다>는 저도 헌책방에서 반값에 샀던 책인데, 100여쪽쯤 읽다가 어디 두었는지 모르겠네요(^^;)...

도레미쏭 2006-08-21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자버젼이네요.

로쟈 2006-08-21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이라면 페렐만은 스스로 때려치운 게 아니라 '해고'당했고, 막대한 재산가가 아니라 가난한 연금생활자란 것이죠...

도레미쏭 2006-08-21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린스턴 대학이랑 스탠포드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했지만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젊은 수학자 상이니, 10억에 가까운 상금도 거부하고 있고요.

로쟈 2006-08-21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공통점이겠지요.^^

헤르베르트 2006-08-21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면 생활이 어렵다고 투덜댈수도 없겠네요 일자리도 마다하고^^ 푸앙카레의 추측이랑 페렐만의 풀이를 간략하게 설명한 것도 보도 되면 좋겠다... 퍼감니다;;

푸른괭이 2006-08-21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어제 밤새도록 <얀덱스> 뒤져봤는데, 역시나 쥬체프 말대로 "러시아는 머리(=이성)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나라인 듯. 러시아신문 어디 보니까 페렐만이 "페테르부르크에서 이렇게 많은 돈을 들고 있는 건 위험하다"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는데, 이거야말로 도스토예프스키식 희극 아닌가요? ^^ ... <수학>이란 학문도 독특하고, 러시아도 독특하고, 저 인간도 참 독특(=위대)합니다...

푸른괭이 2006-08-21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곁들여, 페렐만의 외모는 아무래도, 키예프 역이나 리가 역에서 노숙생활하는 '봄쥐'를 닮았어요.. -_- 젊었을 때 사진은 처음 보는데, 정말 모범생처럼 생겼네 그려. 겸사겸사,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대가 로바쳬프스키가 러시아 사람이었다는 것도 상기할 만합니다. 그도 당대, 국내에선 별로 인정을 못받은 모양인데, 가우스가 그나마 그의 이론(?)을 높이 샀다네요. 리만이 나온 건 로바쳬프스키 이후죠, 아마? 겸사겸사, 수학 공부를 다시 하고 싶어지네요... -_-

로쟈 2006-08-21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들 먼저 쓰시고.^^
 

'에로영화의 거장(꼬장)' 혹은 '에로영화계의 왕가위'로 불리던 봉만대 감독의 (예기치 않은) 공포영화 <신데렐라>가 얼마전 개봉했다. 극장용 장편 데뷔작이었던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에 이은 두번째 영화인데, 에로영화 전문감독의 공포영화라는 점이 먼저 특이하고 (그의 전력에 견주어) '15세이상 관람가'라는 게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사실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이 기대에 못 미쳤던 건 비디오용 에로영화들에서 보여주던 '주변부적 정서'(그의 표현으론 '쓸쓸함' 혹은 '슬픔')를 빼먹은 채 '그림'으로만 승부하려고 했던 탓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나로선 그의 '공포영화'가 기대를 뛰어넘을 거 같지는 않다(그게 편견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비디오로 출시되면 확인해보도록 하겠다). 언론의 리뷰들을 옮겨놓는다.

서울신문(06. 08. 16) 봉만대감독 공포영화 데뷔작 ‘신데렐라’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에서 감칠맛나는 영상을 만들고, 케이블채널 OCN에서 독특한 감성의 <동상이몽>을 보여준 봉만대 감독. 그가 자신의 ‘전공분야’인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에서 벗어나 공포영화를 내놓았다. 봉 감독이 “쓸쓸한 영화”라고 설명한 ‘신데렐라’(제작 미니필름·17일 개봉)는 맹목적이고 어긋난 모성애를 다룬 공포물. 미리 귀띔하자면, 포스터와 예고편 전면에 내세운 영화의 섬뜩한 컨셉트 ‘성형수술’은 사회적 메시지보다는 모성애를 드러내기 위한 강렬한 소재로 차용됐을 뿐이다.

 

 

 



-친구처럼 다정한 모녀인 성형외과 전문의 윤희(도지원)와 고등학생 딸 현수(신세경). 외모에 관심이 많은 현수의 친구들은 윤희를 찾아가 수술을 받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만, 곧 알 수 없는 환영에 시달리고 급기야 죽음으로 치닫는다. 이상한 일이 계속되자 현수는 윤희가 출입을 금지한 지하실로 찾아가고, 사진을 한 장 발견하면서 모녀 사이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는 특별한 반전없이 술술 전개된다. 최근 몇년간 한국 공포영화들이 보였던 ‘알고 보니 이런 거였어. 몰랐지?’식의 반전 강박증이 적어도 이 영화엔 없다. 덕분에 관객이 머리를 굴려야 하는 피곤함은 덜었다. 하지만 지나친 친절은 드라마의 재미를 누리려는 관객에겐 ‘독’이다. 매사를 또박또박 설명해주려는 영화는 시종 요철없이 밋밋한 느낌으로만 일관한다. 모처럼 스크린 나들이한 도지원의 연기와 신세경의 성숙미가 돋보이지만, 그것만으로 공포영화의 재미를 보전하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시청각의 지나친 자극을 부담스러워한다면 이 영화는 나름의 미덕이 있다. 초반 스크린에 피가 흥건하긴 하지만, 잔혹한 수준은 아니다. 소름돋는 쇳소리 음향효과, 괴상하게 몸을 꺾으며 일어서는 귀신의 모양새 등 공포영화의 유행코드에 연연해 하지 않은 대목에서 차별점을 찍는다.

-그러나 봉 감독에게 기대했던 세련된 연출장면을 찾지 못해 끝내 안타깝다. 현재와 과거를 절묘하게 들락거리는 장면에서나 그의 스타일리시함이 느껴진다고 할까. 엄마 잃은 쓸쓸한 아이, 죄책감에서 아이를 살리려 희생하는 모성 등의 주요설정이 일본 공포 <검은 물 밑에서>와 묘하게 오버랩되기도 한다.15세 이상 관람가.(최여경 기자)

한겨레(06. 08. 16) “난 에로의 꼬장…이번엔 슬픈 공포”

-“신음 소리만 낸다고 에로 영화가 아니듯 비명 소리만 지른다고 공포 영화는 아니다.” 성인 비디오 영화계를 주름잡다 극장용 성인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과 국내 최초의 텔레비전용 에이치디(HD) 영화 <동상이몽>을 선보인 뒤 농담 반 진담 반 ‘에로 영화의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봉만대(36·사진) 감독이, 이번에는 공포 영화 <신데렐라>를 들고 관객들을 찾았다.

-<신데렐라>는 성형수술과 극단적인 모성애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끌어들였음에도 애써 자극적인 비주얼과 효과음을 피해간 흔적이 역력하다. 에로 영화를 연출하면서도 ‘뿅점’(결정적으로 야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무리하지 않았던 그의 취향과 신념이 그대로 반영된 듯도 하다.

-봉 감독은 <신데렐라>를 ‘봉만대식 공포 영화’라고 정의했다. “나는 에로 영화를 만들면서도 에로보다 멜로를 중시했는데, 공포 영화에서도 공포보다 멜로쪽에 무게를 뒀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공포 대신 슬픔을 느끼고 극장문을 나선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봉 감독이 ‘슬픔’을 유난히 강조하는 탓에, <신데렐라>의 주요 축을 이루는 것도 ‘성형이 불러온 참사’보다 ‘성형외과 의사인 엄마(도지원)가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깊은 슬픔’이다. 공포 영화를 만들어 놓고 공포보다 슬픔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가 생뚱맞기도 하지만, 이는 봉 감독 나름의 공포에 대한 정의가 반영된 결과다. 봉 감독은 “귀신이 무서운 건 머리카락이 길어서도, 피를 흘려서도 아니다. 슬픔을 간직하고 죽어서 한을 품은 게 무서운 거고, 그 한을 풀 때 공포스러운 거다. 슬픔을 뺀 공포는 ‘처키’이고, <신데렐라>는 처키 식 공포 영화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데렐라> 시사회 뒤엔 ‘덜 공포스러움’을 아쉬워하는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봉 감독은 “내가 그 정도 (비판에) 상처받을 사람이 아니다(웃음)”라며 단호했다. “사실 난 ‘에로 영화의 거장’보다 ‘에로 영화의 꼬장’이라는 별명으로 훨씬 더 유명했다. 공포 영화를 만들면서도 남들이 다 하는 뻔한 방식으로 무섭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잔혹한 비주얼을 되도록 피해 가고, 세지 않은 효과음으로도 공포감을 줬다는 점 등 새롭다고 평가해 줄 부분도 많지 않은가.”

-<신데렐라>는 17일 전국 200여개 스크린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에로 비디오에서 에로 영화로, 다시 공포 영화로 보폭을 넓혀온 봉 감독이기에 차기작에 대한 궁금증이 많다. 하지만 그는 “나는 비디오 찍을 때도 한 작품 끝낸 뒤 바로 다음 작품을 찍지 않았다. 할 이야기가 생길 때 다시 영화를 찍을 예정이고, 에로가 될지 공포가 될지, 다른 어떤 장르가 될지 나도 모른다”며 끝내 궁금증을 풀어주지 않았다.

세계일보(06. 08. 17) 봉만대감독 "공포도 에로와 다를게 없죠"

-에로 영화로 연출에 입문했지만 개봉을 앞둔 것은 공포 영화다. 만나보니 사람은 영화 장르로 치자면 코미디다. 종잡을 수 없고 도대체 정리가 안 된다. 신작 <신데렐라>(오늘 개봉)로 돌아온 봉만대(36) 감독은 여러 이미지가 상충하고 조합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이질적인 요소가 한데 뭉쳐 묘한 화음을 만들어내는 인물이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더 궁금증이 커졌다.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서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능력, 그것이 감독 봉만대가 변방에서 주류를 향한 길을 헤쳐 나올 수 있었던 힘이 아니었을까.

◆상충하는 이미지의 기묘한 조합
-이름과 실물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이 첫 번째다. 봉 감독 자신이 말하는 것처럼, 봉만대(奉萬大)라는 이름은 초등학교만 나오면 누구나 쓸 수 있는 한자로 된 쉬운 이름이다. 그는 “이름만 들으면 스타일이 아주 촌스럽거나 늙수그레한 아저씨로 상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부연했다. 실제로 만나 본 그는 배우 해도 되겠다 싶을 만큼 호남형이었다. “배우 한번 해보지 그랬느냐?”라는 질문에 “부정확한 발음 때문에 그만뒀다”라고 농담한다. 전라도 출신인 그는 대사에서 ‘나의 생각은’을 자꾸 ‘나으 생각은’으로 발음해서 연기를 접었다는 사연이다.

-두 번째 인식의 전복은 그의 사생활이다. 느끼하거나 바람둥이일 것 같은 선입견이 있었는데 보기 좋게 깨졌다. 6년간 같이 살다 결혼한 부인과 크랭크인 직전에 태어난 딸을 둔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 아닌가. 봉 감독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부인을 만난 후에는 바람을 피우지 않았단다. 홀어머니와의 관계도 돈독하다. 게다가 종교까지 있단다. 상상 초월이다. 봉 감독은 고교 시절 연극학원에 다니는 것을 반대하며 비용을 주지 않으려는 어머니와 30살에 감독 못하면 그만두기로 약속했다. 35세까지는 돈 잘 버는 상업감독이 되겠다고 손가락을 걸었다. 아마 봉 감독이 궤도를 이탈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데는 어머니라는 굳건한 중력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사막에서 자라는 선인장
-봉 감독은 자신을 ‘선인장’에 비유했다. 다른 식물과는 달리 물이 풍족한 안락한 상황에선 죽어버리는(*그래서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극장용 영화보다 저예산 비디오 영화들이 그에게 더 어울린다. 여기서 '영화 대 비디오'는 사회적 계급을 반영한다. 그는 주류영화를 찍을수록 자신의 세계에서 멀어질 것이다). 에로 영화를 15편 연출한 것을 시작으로, 극장용 장편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HD로 찍은 케이블 TV용 연작 영화 <동상이몽>, 이번엔 공포 영화 <신데렐라>로 변신했다. 광고계에서 촬영 부분에서 일한 경력도 있다. 혼자만의 의지로 물길을 거슬러가며 경력을 쌓아왔다는 얘기다.



-봉 감독은 배우 김서형이 자신의 출연작 <어느 날 갑자기> 시사회에 초대했지만 공포 영화가 싫어 보러 가지 않았다. 그런 그가 공포 영화를 연출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한 것은 순전히 시나리오의 서사에 매혹됐기 때문이다. 에로도 좋아서 했듯이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공포도 에로와 다를 게 없다. 그는 “에로 영화도 보는 사람이 집중하게 하는 게 얼마나 힘드냐”면서 “공포 영화도 설득력 있게 오싹하게 만드는 과정과 심리적 템포 조절에서 에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익숙한 공포 영화의 공식에서 하나만 바꿔 색다른 느낌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신데렐라’는 여학생들의 예뻐지고자 하는 욕구, 성형수술, 모녀 관계 속에서 “왜, 누군가 죽는가”에 관한 담백하지만 개연성 있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40세에는 세계로 나가는 작품을 연출하고 45세에는 세계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봉만대 감독. 그가 변방에서 주류로, 주류 중에서도 중심으로 향하는 여정에 신작 <신데렐라>는 추진력을 배가해줄 것 같다.(신혜선 기자)

06. 0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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