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전해들은 것이지만 한국문학의 '전복적 상상력' 혹은 '수상한 활력'에 대한 심포지엄이 개최된다고한다. 문단의 동향에 관심을 가져온 이라면 대략 어떤 내용일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시에 국한하여 말하자면 최근에 문제되고 있는 것은 이른바 '미래파 논쟁'이다. 발표문들은 아마도 겨울호 계간지에 실릴 듯도 한데, 개인적인 의견은 그때 붙이도록 하겠다. 

경향신문(06. 10. 26) '전복적 상상력’ 심포지엄, 한국문학 전위 ‘수상한 활력’ 찾기

사진 위부터 황병승, 강영숙, 강정씨.

2000년대 한국 문학을 향해 흔히 던지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의 자리가 마련된다. 계간 ‘실천문학’이 27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관에서 개최하는 심포지엄 ‘한국 문학과 전복적 상상력’이 그것이다.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은 물론 문학판 안에서조차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변화한 한국 문학의 전위에 대해 평가해보는 자리다. ‘문학’이라는 아성, 특히 리얼리즘·모더니즘 등 외부 세계에 어떤 현실·진리가 존재하고 문학은 그것을 재현한다는 식의 근대문학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21세기 문학을 규정하려는 평론가들의 분투라고 할 수 있다.

심포지엄의 총론 발제를 맡은 평론가 손정수씨(계명대 교수)는 “예술로서의 문학과 상품으로서의 문학이라는 구분이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서는 희미해진 반면, 제도적 차원에서만 뚜렷하다”며 “특히 예술로서의 문학은 소규모 취미공동체 내에서만 유통되는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손씨는 여기에 ‘교육으로서의 문학’이라는 범주를 하나 더 보태는데 이는 근대문학 초창기에 계몽 또는 교양의 역할을 하다가 오늘날에는 홈쇼핑 방송에서 논술교재용으로 판매하는 동서양 고전처럼 상품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손씨에 따르면 공공적 성격이 강한 상품·교육으로서의 문학은 자본주의체제에서 자립하는 반면, 사적 활동인 예술로서의 문학은 정부지원에 의해 지탱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 게 오늘날 현실이다.

그렇다면 예술로서의 문학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손씨는 “문학의 정치성이라는 근대문학의 전제는 사라졌다”면서 그 대신 “2000년대 이후 문학의 종말을 둘러싼 음산한 풍문들 속에서도 수상한 활력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지칭하는 작품은 편혜영·김애란·김숨·백가흠·김유진 등의 소설, 황병승·강정·장석원·김행숙·이장욱 등의 시이다. 이 작품들은 ‘분석자의 시선이 사라지고 피분석자의 언어만이 드러나 있는 것’, 즉 관찰·묘사·해석·대안 등 기존 문학적 관습에서 벗어난 것이다. 손씨는 여기서 미래 문학의 모습을 본다. 그것은 “인터넷 블로그와 같은 자발적 글쓰기, 공동체의 구성원이 하고 싶은 말을 작가가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범위 내에서 스스로 말하는 방향”이라는 전망이다.

한편 ‘젊은 시인의 전복적 언어’를 분석한 평론가 신형철씨(서울대 강사)는 2000년대 ‘뉴웨이브’라 명명된 시의 핵심이 ‘자아에 대한 발본적 반성’이라고 말한다. 이는 서정시와 생태시를 가능하게 했던 전인적 ‘자아’ 대신, 분열되고 해체된 ‘주체’가 시에 등장했다는 뜻이다. ‘죽을 때까지 어떤 이름으로도 불려지지 않으리’(황병승의 ‘시코쿠’), ‘토끼는 달리면서 자꾸만 토끼 아닌 것이 된다’(강정의 ‘들판을 토끼’) 등의 시구가 이런 경향을 반영한다. 신씨는 “‘정상’의 시선에서는 변태와 괴물, 환상과 엽기일지 모르지만 ‘금지에의 저항’이 아니라 ‘유혹에의 거절’만이 가능한 시대에 탈고백, 반계몽, 무질서가 갖는 전복적 미학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젊은 소설가의 전복적 서사’에서 평론가 심진경씨(서강대 강사)는 민족과 국경이 사라진 전지구화 시대의 새로운 문학적 현실을 그려낸 소설로 강영숙의 장편 ‘리나’(랜덤하우스)와 한유주의 작품집 ‘달로’(문학과지성사)를 든다. 이데올로기 대립이 사라진 1990년대의 작가들이 인도·티베트·몽골·중국 등 해외체류경험을 통해 전(前)자본주의 사회의 정서를 그렸다면 강영숙과 한유주는 더이상 자본주의 아닌 곳이 없는 현실에서 새로운 ‘문학적 현실’을 만들어낸다. 심씨는 “강영숙의 주인공 ‘리나’는 단순한 탈북자가 아니라 세계의 여러 국경을 떠도는 이주자이며 한유주의 화자는 미디어를 통한 간접 경험, 기억에 대한 기억만이 가능한 신세대의 표상”이라고 밝혔다.(한윤정 기자)

06. 10. 26.

P.S. 컬쳐뉴스에서 실제 진행된 심포지엄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지난 27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관에서 개최된 계간 『실천문학』 심포지엄에서 손정수 문학평론가가 총론을 발표하고 있다

컬쳐뉴스(06. 10. 30) 한국문학의 '내파력'은 어디서 오는가?

편혜영, 김애란, 김숨, 강영숙, 백가흠, 황병승, 강정, 장석원 등 소위 요즘 잘나가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이들의 작품은 리얼리즘이나 모더니즘과 같은 전통적 문학 범주로 설명되지 않을 뿐더러 동시대 작가로서 공통된 경향성을 보이고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문학에 따라다니는 공통된 수사가 있다. 바로 ‘전복적 상상력’이 그것인데, 기존의 문학적 형식이나 내용의 틀을 깨트리는 이 ‘전복적 상상력’은 2000년대 문학이 가진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계간 『실천문학』은 이번 겨울호 발간에 앞서 2000년대 한국문학이 지닌 이 같은 ‘전복적 상상력’을 보다 냉철히 성찰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10월 27일(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관에서 개최된 문학 심포지엄 ‘한국문학과 전복적 상상력’은 2000년대 문단에 제출되고 있는 시와 소설에서 발견되는 ‘전복적 상상력’이 한국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인가를 구체적으로 논하는 격론의 장이었다. 

이날 심포지엄은 총론 ‘한국문학의 전복적 상상력’과 소주제 ‘젊은 시인의 전복적 언어 읽기’, ‘젊은 소설가의 전복적 서사 읽기’로 진행됐다. 심포지엄 총론을 맡은 손정수 문학평론가는 「‘전복적 상상력’을 전복하는 상상력」이라는 발제에서 “2000년대 이후 문학의 종말을 둘러싼 음산한 풍문들 속에서도 시나 소설의 영역에서는 수상한 활력을 발견할 수 있다”면서 “이 새로운 경향은 귀족적이라고 비판되곤 하는 모더니즘 내러티브의 순수한 추상화를 향한 초월의 의지와는 다른 방향의 길을 걷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최근의 문학 작품에서는 증상에 대한 처방이 아니라 증상만 드러나는 경우가 빈번하다”면서 때문에 “누구나 문학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인터넷 블로그와 같은 자발적 글쓰기의 형식은 미래적 글쓰기의 존재방식의 한 측면을 암시”한다고 밝혔다. 결국 “기존의 문학 관념을 벗어난 곳에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이 놓여 있”으며, “문학의 현재적 존재방식 자체를 전복 혹은 변화시키는 상상력, 즉, 텍스트 차원의 ‘전복적 상상력’을 전복하는 상상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고봉준 문학평론가는 토론에서 “문학의 전복성은 주변성이 아니라 중심의 가운데에서 그것을 해체하거나, 중심의 중심성, 척도의 정당성 자체를 뒤흔드는 혁명성에 있다”면서 “문학이, 문단이 제도화된 상황에서 인터넷을 통한 자발적 글쓰기가 아마추어리즘 이상의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서영인 문학평론가는 “근래에 들어 문학의 새로움을 증명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이전의 원리들에 의거해 설정되고 있다”면서 “지금의 문학이 이전의 것과 다르다면 그리고 그 이전의 문학 역시 새로운 것으로 명명된 바 있다면, 지금의 새로움을 말하기 위해서는 좀 다른 방식의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젊은 시인의 전복적 언어읽기’를 분석한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2000년대 한국시의 뉴웨이브’에 대해 “새로워서 좋다”가 아니라 “좋은데 새롭다”고 전제하면서, “뉴웨이브의 핵심은 ‘나’에 대한 발본적 반성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뉴웨이브”들을 “‘상투적인’ 서정시”들과 구분하면서 “그들은 ‘나’의 단독성을 보증해주지 못하는 세계에서 ‘자아’라는 헛된 정체성(동일성)과 작별”하고 “세계 여기저기에서 ‘나’를 재확인하는 서정적 여행을 그만”두고, “‘나’의 진실을 찾아 비서정적, 탈서정적 여행을 떠난다”고 분석했다.

신 평론가는 “많은 사람들이 뉴웨이브의 시가 내용 없고 질서 없는 장광설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이 시 독자의 이반을 초래하고 있다고 걱정”하지만 “이 세상의 깨달음과 지혜라는 것들이 대개 엇비슷하게 닮아있다는 사실에 피로를 느끼는 독자들은 이들의 시에서 어떤 역설적인 가능성을 읽어내기도 한다”면서 “탈-고백, 반-계몽, 무-질서가 궁극의 미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당분간 이 미학들의 전복성은 소진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파’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한국 시단에 반향을 일으킨 권혁웅 문학평론가는 토론에 앞서 “미래파라는 말은 텅 빈 명명이자 일종의 여백”이라며 “이 여백을 통해 실재하는 것들의 자리가 조금이나마 드러난다면 그것으로 이 용어의 쓸모는 다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황병승에게 이성복이 없었다면, 장석원에게 김수영과 황지우가 없었다면, 강정에게 함성호와 진이정이 없었다면 (중략) 이들의 출현은 훨씬 더 늦어졌을 것”이라면서 “이들의 시가 전복적인 것은 그 전대의 영향을 미묘하게 변형하고 비켜가고 극단화해서 마침내 새로운 차원을 열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성혁 문학평론가는 신형철 평론가가 ‘좋은데 새롭다’는 것을 마케팅 미학인 ‘새롭기 때문에 좋다’와 구분지어 명명한 것과 관련해 “좋음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서 “사용가치가 없다면 교환가치도 가질 수 없다”며 “발표자는 교환가치의 불모지인 문학마저 ‘새롭기 때문에 좋다’라는 마케팅 미학에 흡수된 양상을 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젊은 소설가의 전복적 서사 읽기’에서 심진경 문학평론가는 민족과 국경의 경계가 사라진 전지구화 시대, 미디어 네트워크 시대의 새로운 문학적 현실을 그리고 있는 강영숙의 장편소설 『리나』와 한유주의 단편집 『달로』를 통해 ‘허공에서 글쓰기’라는 문학적 경향을 읽어낸다.

심 평론가는 “이들 소설의 인물들은 단일한 기원이나 정체성을 주장하기 보다는 세계를 스쳐지나가듯 여행하면서 유령처럼 희미하게만 존재한다”며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견인해왔던 현실적 중력으로부터 벗어나 공중부양하는 이들 소설에서 ‘허공’은 새롭게 발견한 문학적 공간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허공에서 글쓰기는 다국적 기업의 논리가 지배하고 미디어를 통해서만 세계를 경험하게 된 후기자본주의적 현실과 그리 멀지 않”으며, “바로 그 때문에 허공은 무중력의 탈현실적 공간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명철 문학평론가는 “『리나』는 근대적 경계로부터 발산되는 문제들에 맞서는 ‘포월의 서사’가 아니라 악무한의 현실로 빚어진 관념의 공간-국경을 넘는 ‘이월의 서사’에 자족할 뿐이며, 『달로』 역시 주체와 그 주위에 존재하는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시간의 물질성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들이 “현실의 중력으로부터 벗어났다면, 벗어난 이유들에 대해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강민 문학평론가는 “모든 것은 매개된 기억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한유주의 소설은 과연 2000년대 소설의 새로운 희망일까?”라고 물으며, “2000년대 작가의 진정한 새로움이란 탈주체, 탈근대를 표방한 1990년대 미시서사의 패러다임에 대한 반성 속에 새롭게 태어난 것일 수박에 없는데, 한유주의 경우 1990년대 문학의 연장선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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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6-10-26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정 시인 사진은 처음 보네요.
예전에 한번 본 '비행선'이라는 밴드의 보컬하고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검색해보니 같은 사람이군요..;;
성기완 시인도 그렇고 참 다재다능한 사람들이네요

로쟈 2006-10-27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로만 버티기도 힘들다는 게 다재다능의 이면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