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11-2년쯤 전에 잠깐 써둔 걸 옮겨놓는다. 아침에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에 관한 기사(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183704.html)를 읽다가 예전에 만든 자작시집을 집어들게 됐는데, 거기서 다시 읽어본 것이다. 이번에 알게 된 거지만, 키에르케고르의 이 대표작도 국역본들이 대부분 품절/절판돼 있다. 작년에 나온 김용일 교수 번역의 <죽음에 이르는 병>(계명대출판부, 2006) 정도가 추천도서로 올라와 있다. 제목의 '형이상학적 질병'은 개인적인 관용구이기도 한데,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죽음에 이르는 병'(불안)과는 좀 다르지만 겹치는 부분도 없지는 않겠다.

 

 

 

 

아주 어렸을 때 일로, 나는 기억에 없지만 어머니가 증언하는 바에 따르면, 밖에 나가서 동생이 다른 아이와 싸움이 붙어도 나는 멀기니 옆에서 구경만 했다고 한다. 다 끝나고 나서야 둘이 손을 붙잡고 울면서 돌아왔다고. 이제와서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럴 만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이라고 해서 내가 달리 처신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다 그런 성격을 물려받은 것이겠지. 그런 걸 두고 의리가 없다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친구들이 별로 없다. 그리고 그걸 안타깝게 여기지도 않는다. 간섭을 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다는 것이 모종의 원칙처럼 돼 버렸다.

연극보다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이 때문일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가족중심주의와 종족(민족)중심주의를 내가 혐오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그런 건 박테리아나 말미잘도 다 하는 일이다. 자기 자신, 그리고 자기 새끼 잘 되라고, 자기 집안 잘 되라고 분투하는 일 말이다. 단지 인간이란 종은 조금 현학적으로 그런 일을 할 따름이다(현학적인 말미잘!).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이건 모든 생물학적 종들이 지닌 자연사적 소명에 대한 일조으이 연대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보기에 좋다. 그래서 감동적이기도 하고. 나쁜 쪽으로 생각하면, 고작 그게 전부일까, 하는 의혹이 생기면서 인상을 찡그리게 되고 속이 거북해진다. 이걸 나는 '형이상학적 질병'이라고 부른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점차 좋은 쪽으로는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가끔은 옛날의 병이 도지는 것이다.

시나 소설에서 그런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다루는 대목이 나오면 빙긋이 웃음이 나온다. 그리고는 '이거 아주 쓰레기는 아니군!'이란 생각을 한다. 두 개만 여기에 적어보겠다.

 

 

 

 

파니는 아이가 마음을 다칠까봐 신중학 처신을 해야했고, 그래서 고추를 넣어줄 때도 싱싱한 것으로만 골라주었다. 자기 아들이, 어느날 아침, 고추 네 개 중에서 쭈글쭈글하고 빛이 바랜 묵은 것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일로 아이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슬픔을 맛볼 수도 있고,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봉착할 수도 있다고 파니는 생각했다.(봉그랑, <밑줄 긋는 남자>)

 

 

 

 

절름발이 개미가 나서서 해명한다. 그의 이야기로는, 바위냄새 풍기는 병정개미들은 '악성 스트레스를 막는 병정개미들'이라는 것이다. 스트레스에는 유익한 스트레스와 악성 스트레스가 있는데, 유익한 스트레스는 겨레를 발전시키고 사기를 북돋아주지만, 악성 스트레스는 겨레를 자멸에 빠뜨린다. 정보들 중에는 겨레에 알리지 않는 편이 나은 것도 있다. 이런 정보들은 '형이상학적인' 고뇌를 불러일으키는데, 그런 고뇌에는 아직 해결책이 없다. 그래서 겨레는 고민만 하고 대응책을 찾지 못한 채 기력이 쇠잔해진다.(베르베르, <개미>)

07. 01. 12.

P.S. 키에르케고르는 '악성 스트레스를 막는 병정개미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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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놔키스트 2007-01-12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중심주의에는 저도 꽤나 뒷걸음질 치는 편인데요.. "내 새끼, 내 가족 잘되라"는 식은 그래도 나아요. "내 새끼만 잘되라"에 비하면 말이지요...그리고 '형이상학적 질병', 그거 아마 불치병일걸요..^^

로쟈 2007-01-12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불치인 건 특권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을 원숭이와 구별해주는 종차. 호모 사피엔스를 그래서 저는 '호모 사피엔자'라고 부릅니다(사유능력은 인플루엔자 같은 거라서)...

깽돌이 2007-01-13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어린시절 이야기 들으니...저도 남자애로서(!) 싸움을 잘 하고 싶은데(물론 어릴때^^)시도조차 안해본것이 한이 된듯합니다.

로쟈 2007-01-13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신에 제가 바둑은 쌈바둑입니다.^^
 

어제 주문한 책들 중의 하나는 사회학자 김동춘 교수의 신간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길, 2006)이다. 아마도 작년 연말에 나왔어야 하는 책이 약간 지체된 모양이다. 저자의 전작들 만큼이나 두툼하고 또 듬직하다. 거기다 제목! 그래서 읽어야 할 '의무감' 같은 걸 촉발시킨다(2월달의 '사회적 독서' 목록에 올려야겠다). 미리 리뷰기사 두 개를 참고삼아 읽어둔다. 개인적인 스크랩이지만 출간 소식을 반가워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일보(07. 01. 12) "한국, 10년만에 기업사회로 변했다"

외환 위기를 경험한 지 10년. 세련된 말로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국민 대다수는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몸으로 알고 있다. 김동춘(48)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최근 출간한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도서출판 길)에서 “한국이 ‘기업사회’가 됐다”는 말로 지난 10년간의 변화를 표현한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단순화하면 시장 혹은 기업이 사회를 지배하는 상태를 말한다. 사회가 시장의 일부가 되고, 기업이 가장 이상적인 조직으로 부각된 것이다.

김 교수가 말하는 한국의 기업사회화 양상은 이렇다. 초일류, 일등 등 경쟁을 부추기는 용어가 난무하고 CEO 대통령, CEO 총장, CEO 장관, CEO 시장이 유행이다. 경제부처 장관이 교육부 장관에 기용되고, 정부 관료가 대기업에 무더기로 들어간다. 대기업 혹은 그 대기업 총수의 잘못은, 돈을 벌어준다는 이유로 법적 면죄부를 받고, 엄정한 법 집행을 책임지고 있는 법무부 장관은 “기업이 신명 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만 달러 시대를 주창하면 정부가 이를 받아 반복한다. 정부는 운영의 법칙과 지향이 기업과 다른데도 여전히 기업 배우기에 열중이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우리 사회가 미국을 닮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미국은 돈이 지배하는 사회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기업가의 아들이고, 낸시 페레스 하원의장은 남편이 백만장자다. 기업에 대한 비판이 거의 없고, 그래서 기업이 정치 외교 군사 심지어 사람의 정신세계까지 지배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김 교수가 보기에 한국의 기업사회화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돼 있다. 시장도, 국토도 좁아 생존의 압박이 매우 크기 때문에 기업의 신호를 따라간다는 것이다. 교육 의료 복지 등 공공 영역의 임무를 개인이 부담하는 것도 돈에 대한 의존을 높이는 요인이다.

김 교수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기업사회가 반공사회와 닿아있다는 점이다. 과거 안보를 이유로 고문 등 비인도적인 행위가 용인됐듯이, 지금은 돈만 되면 무엇이든 괜찮다는 것이다. 군사형 사회가 총과 칼을 앞세웠다면 기업사회는 국민의 자발적 동의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김 교수는 이 대목에서 “히틀러는 경제 불황을 활용해 나치즘을 일으켰다”고 상기한 뒤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절망감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파시즘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기업사회화 정도가 미국에 달렸다고 말한다. 고삐 풀린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견제를 받을 때 우리의 기업사회화도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배층의 도덕성에 대한 유달리 강한 저항력도, 기업사회화를 억제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보고 있다.

김 교수는 “1970년 전태일이 제 몸을 불살랐을 때는 대학생들이 달려가 그를 끌어안았지만,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사회적 약자가 분신해도 그를 못난 놈이라며 더 소외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당장 먹고 살기 힘들더라도 과도한 기업사회화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박광희 기자)

한겨레(07. 01. 12) 한국사회는 기업의 식민지

시이오 시장, 시이오 총장, 시이오 목사, 시이오 대통령…. 한국에서 시이오(CEO,기업 최고경영자)는 모범이자 모델이고 표준이자 이념이다. 지방자치단체를 운영하는 일에서부터 국가와 정부를 통괄하는 일까지, 학문의 전당을 책임지는 일에서부터 사람의 영혼을 돌보는 일까지 모든 것이 ‘기업경영’을 이상형으로 삼고 있다. ‘전사회의 기업화’ 논리는 기업가 식으로 하는 것이 가장 창조적이고 가장 효율적이며 가장 진취적이라는 가정 위에서 맹렬한 힘으로 사람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반공’만이 살 길이라고 외쳤던 한국사회는 이제 혁신만이 살 길이고 변화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고 있다. 요컨대, 기업만이 구세주라고 통성기도하는 형국이다. 이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여기에 함정은 없는가. 혹시라도 기업가의 피리 소리를 따라 사람들이 벼랑 끝으로 내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가 최근 출간한 책 <1997년 이후 한국 사회의 성찰>(도서출판 길 펴냄)에서 한국사회에 불어닥친 기업화 광풍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나섰다.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 사회 변화를 성찰한 글을 모은 이 책은 서론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김 교수는 이 글에서 1997년 외환위기 이래 한국사회가 ‘기업사회’로 전환했다고 진단하면서, 그 변화의 파국적 본질을 직시할 것으로 촉구하고 있다.

그가 이 책에서 처음 제시한 ‘기업사회’라는 말은 한 마디로 줄이면, 기업이 중심이자 주인이 된 사회다. “기업이 단순히 사회의 일부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기업의 모델과 논리에 따라 재조직되는 사회”가 기업사회다. 경제학자 카를 폴라니의 논리를 빌리면, 기업사회는 “시장이 사회로부터 분리돼 나와 자율적인 것이 되는 데 머물지 않고, 사회를 식민화한 상태”를 말한다. 이 식민화의 가공할 성격은 사람들이 식민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데 있다. 과거의 식민화가 총과 칼을 앞세운 것이었다면, 새로운 식민화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앞세운다. 사회 전체를 기업의 힘 아래 굴복시킨 기업사회는 강력한 이데올로기 체제다.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동의와 헌신을 끌어내고 그것을 동력으로 삼아 작동하기 때문이다.

삼성공화국, 정책 입맛맞게 조성

자본주의 체제, 시장경제 체제라고 해서 모두 기업사회인 것은 아니다. 기업이 사회의 기준으로 서고 기업가 마인드가 사회적 마인드가 되고, 기업의 사회지배를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가 기업사회다. 기업은 단순이 이윤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고용을 창출한다는 것, 그래서 더 많은 이윤은 더 많은 고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기업사회의 바탕에 깔린 일반적 믿음이다. 기업의 이익이 곧 사회의 이익이 되는 것이다. 이 믿음 위에서 이제 기업 바깥의 모든 것이 의심의 대상이 된다. 기업가의 손이, 기업가 마인드가 뻗치지 않은 공공 영역은 비효율과 무능력의 온상으로 낙인찍힌다. 그런 인식이 진전되면 “효율성과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이 정부와 정치를 모두 직접 담당하는 게 좋지 않은가”라는 과격한 주장마저 불러들인다. 그리하여 대기업이 국가의 교육과 복지는 물론이고 국가의 최후 보루인 안보와 전쟁까지 담당하는 ‘기업가정부’, ‘기업가국가’가 나타날 가능성이 커진다. 김 교수는 지금 미국이 거기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의 지구적 확산으로 기업사회라는 미국적 모델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기업사회는 국경을 치고 들어가 점령군처럼 주둔하고서 연일 포고령을 내린다. 모든 것을 기업의 이익에 맞춰 바꾸라. 부패한 것은 참아도 이익을 내지 못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비효율이야말로 부도덕이다.

기업사회는 수천년 인류를 이끌어온 도덕의 기준마저 바꾸어 놓는다. 그러나 기업사회는 결코 대중의 이익에 복무하는 사회가 아니다. 기업사회는 기업주의 사회이며, 더 좁혀 말하면 대기업 소유주와 경영자의 사회다. 통제받지 않는 기업사회는 대기업의 절대권력화를 낳으며 그것은 기업사회 이데올로기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기업부패를 불러온다. 기업가의 이윤 추구와 공공의 이익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빚어진다. 기업의 생산성 향상의 결과는 사회의 특권층에게 집중된다. 공공성은 실종되고 기업의 사익이 공익으로 둔갑해 횡행한다.

약자 보호법 대항 공장이전 위협

김 교수는 지난 10년 사이 기업사회의 이데올로기가 한국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기업은 선과 정의와 올바름의 잣대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기업을 비판하는 것은 곧 공익을 비판하는 것이 됐고 기업가의 잘못을 추궁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산을 공격하는 것이 됐다. 김 교수는 여기서 삼성의 경우를 이야기한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기업사회 한국’의 한가운데에 삼성이 버티고 있다.

삼성은 국가경제를 책임지는 견인차와 같은 존재로 칭송받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나서서 자신이 아니라 삼성이 한국의 대표자라고까지 말한 바 있다. 삼성의 경쟁력 강화는 곧 국가 경쟁력 강화로 통한다. 급기야 정부의 주요 정보가 삼성의 정보망을 통해 사유화된다. 삼성의 힘은 관료사회를 움직여 정부의 정책마저 자신의 이익에 맞게 조정할 정도로까지 강력해지고 있다. 국가와 정부가 껍데기 또는 들러리가 되고 삼성이 나라의 핵심을 장악하는 말 그대로 ‘삼성공화국’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공화국 현상은 한국사회가 기업사회로 진입했음을 도드라지게 입증하는 사례다. 기업사회는 사회를 재편하려는 이데올로기 공세도 멈추지 않는다. 기업가 단체들이 ‘중고등학교 경제교과서 반시장·반기업 정서를 부추긴다’며 뜯어고칠 것을 요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 법안을 통과시키면 기업을 국외로 이전해버리겠다는 ‘기업 파업’ 위협도 마다하지 않는다. 국민이 기업을 키운 것이 아니라 기업이 국민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공격적으로 구사하는 모습이다.

정치기능 복원·주체적 대중이 해법

기업사회의 이 진군은 사회적 보호장치가 폐기되고 약자가 강자의 힘 앞에 무방비로 서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기업사회에서 처벌은 체포·구금·고문·학살이 아니라 명예퇴직 강요, 분사, 비정규직화, 해고, 비연고지 근무 요구”로 나타나며, 더 끔찍한 것은 그것이 “처벌이 아니라 기업 경영 합리화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포장돼 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약자들의 자살행렬이 ‘기업의 처벌’에서 비롯한다.

김 교수는 이렇게 사회 구성원을 식민화하고 지배하는 기업사회에서 벗어나려면 정치의 기능을 복원시켜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기업사회의 하수인이 된 정치를 본디 상태로 정상화해야 한다. 대중이 단순히 기업사회의 지배대상인 ‘소비자’가 아니라 시민으로, 주체로 일어서야 한다. “우리는 유권자이며 노동자이며 주민이며 학부모이며 자신의 귀중한 삶의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 존엄한 인간이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과 억울한 죽음에 공감해야 할 신성한 의무가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다.”(고명섭 기자)

07. 01. 12.

P.S. 한국사회의 단면을 꼬집는 기사 하나를 덧붙여둔다.

경향신문(07. 01. 12) 상상할수록 불쾌한 광고…양극화 부추기는 TV광고 눈총

TV 광고가 도를 넘는 소재와 설정으로 시청자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다. 소비자들의 마음은 물론 지갑까지 열어야 하는 광고의 속성상 허영을 부추기고 현실을 과장할 수도 있지만, 요즘 방영되는 광고는 지나치게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데다 사람 목숨을 아예 돈으로 환산하는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부럽거나 불쾌하거나

지난해 말 한 보험회사 광고가 논란을 일으켰다. ‘남편이 죽은 뒤 보험설계사의 도움으로 생명보험금 10억원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광고를 본 시청자들은 ‘실제로 10억원을 받으려면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다’는 지적부터 ‘생명을 돈으로 연결시켰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심지어 ‘보험설계사를 남자로 설정해 부적절한 상상까지 가능케 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광고회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 광고가 소비자들에게 불쾌감을 안겼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명품 아파트’ 이미지를 남용하고 있는 아파트 광고에서 소형 평수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헬스클럽에 골프장까지 갖춘 대형 아파트에 사는 여성들은 서로 같은 아파트 주민임을 한눈에 알아본다. 때로는 유럽이나 뉴욕의 이미지를 차용하며 집안에서 드레스를 입고 다닌다. 유부남, 유부녀가 아파트에서 첫사랑과 재회하는 분위기를 묘사하는 한 아파트 광고는 ‘불륜 아파트인가’ 하는 냉소까지 유발한다. 아파트 속 모델들은 신형 아파트의 특별한 시설을 통해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고 배우자, 아이와 함께 지나가다 어색하게 마주친다. 집값 폭등과 경제적 양극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등으로 괴로운 소비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광고는 끊임없이 ‘돈 들고 돈 되는’ 아파트만 보여준다.

자동차 광고에서는 자동차의 크기나 값을 사회적 ‘성공’과 ‘능력’의 증거로 연결시킨다. 광고 속에 외환위기 시절 절약의 이미지를 대변하기도 했던 소형차나 경차는 온데 간데 없고 대형 외제차를 경쟁 상대로 삼는 대형차들만이 넘쳐난다. 대형차를 타는 아버지를 둔 아이가 친구들에게 인형을 나눠주는 내용이 방영되기도 했다.

이런 광고에 대해 시청자들은 불쾌함을 넘어 화가 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학생 김민석씨(27·한국외대 불어과)는 “아는 분이 광고를 본 아이가 ‘우리는 집이랑 차가 왜 이렇게 작으냐. 언제 저런 데로 이사가느냐’고 물어 가슴이 아팠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트렌디 드라마에 외제차와 최신형 휴대전화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처럼, TV 광고도 비현실적 상황으로 허영을 조장한다”고 말했다.

#일그러진 현실 더욱 일그러지게

학습지나 학원 광고도 비뚤어진 우리의 교육현실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한 학습지 광고에서는 학부형이 치과에서 이빨을 잘못 뽑히고도 “괜찮다”며 웃는다. “당신은 상위권 엄마의 기쁨을 아느냐”고 묻는 이 엄마는 아이가 상위권이 된 배경에는 학습지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와 함께 학습지 교사에게 머리 숙여 인사한다. 심지어는 ‘학년을 앞서가는 힘’이라며 미리 학습지로 공부한 아이들이 학교 선생님을 떠난다는 내용의 광고도 있다. 광고 속에 등장하는 교사마저 ‘애들은 (학습지)를 좋아해. 자꾸 자꾸 앞서가면 나는 어떡해’라며 노래한다.공교육이 힘을 못 쓰고 사교육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현실이 광고 탓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교육효과를 강조하는 것을 넘어 공교육을 아예 무시하는 듯한 광고를 보는 시청자들은 씁쓸할 수밖에 없다.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김형진 팀장은 “광고가 부정적인 현실을 더욱 왜곡하며 사회적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팀장은 “소비층은 다양한데 비해 광고는 상류층 지향으로만 흐르고 있다”며 “잠재되어 있는 욕망을 끌어내기 위해 불쾌감까지 주면서까지 소비자들을 자극한다”고 지적했다.(장은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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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1-12 07:07   좋아요 0 | URL
우리사회는 어딜가나 미국에 대한 담론으로 넘쳐나지요.(미국유학파가 많기 때문인지) 반면 유럽과 우리를 비교해보면 분통터지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요. 미국과 비교하면 이 사회는 정말 잘 돌아가고 있는거지만 ㅋ

로쟈 2007-01-12 08:15   좋아요 0 | URL
기사내용만으로는 상식의 확인수준이지 '통찰'이란 건 없는데요. 강준만의 '삼성공화국'론에서 더 나아간 내용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아놔키스트 2007-01-12 09:03   좋아요 0 | URL
로쟈님이 낚은 책에 저는 썩 낚이지(^^) 않네요..근데 광고 기사를 보니 속이 부글거립니다. 무엇보다 저런 광고들 보기 싫어 전 TV를 끊었지요...

로쟈 2007-01-12 09:07   좋아요 0 | URL
다행이십니다. 두꺼운 데다 책값도 비싸거든요.^^ 저는 읽어볼 '필요'가 생겨서 부득불 구입을 했습니다...

드팀전 2007-01-12 09:17   좋아요 0 | URL
^^...제가 오늘 아침 본 기사 두 개가 공교롭게 페이퍼로 올라왔군요.한겨레 김동춘 교수 리뷰하고 경향신문 광고....
기사는 기업공화국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듯한데..알라딘에 실린 소제목들을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네요. IMF 이후 한국 사회 전반의 변화를 짚고 있는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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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 | '기업사회'로의 변화를 중심으로

제1부
탈분단 시대 지식인의 역할 | 리영희의 사상과 실천을 생각하며
한국 사회과학의 탈식민 과제
21세기에 돌아보는 1980년대 한국 사회성격 논쟁
한국의 지식인들은 왜 외환위기를 읽지 못했는가

제2부
한국의 우익, 한국의 '자유주의자' | 상처받은 자유주의
한국의 자유주의자
한국의 지식사회와 지식권력

제3부
'민주화'라는 환상? | 교체되는 권력과 교체되지 않는 권력
강요된 지구화와 한국의 국가, 자본, 노동 | IMF체제하의 한국
노동.복지체제를 통해 본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 | 냉전 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한국 노동자 내부 구성과 상태의 변화 | '계급' 없는 계급사회?
신자유주의와 한국 노동자의 인권 | 외환위기 직후를 중심으로
전환기의 한국사회, 새로운 출발점에 선 사회운동

제4부
한국 민주화의 주도세력
21세기에는 학벌주의가 사라져야 한다 | 대학 서열화 극복을 위한 대학개혁
유교와 한국의 가족주의 | 가족주의는 유교적 가치의 산물인가

제5부
한국인들의 자민족 중심주의
시민운동과 민족, 민족주의
21세기와 한국의 민족주의
일상적 파시즘론에 대한 생각
해방 60년, 한국의 민족주의와 민족문제의 위상

로쟈 2007-01-12 10:25   좋아요 0 | URL
기사는 아마 다들 서론만 읽고 썼나 보죠...
 

금요일엔 대개 한겨레를 사서 보기 때문에 한국일보를 지면에서 읽는 건 드문 편이다. 그래도 내일을 한 부 사서 읽어봐야겠다. '이대현의 영화로 보는 세상' 꼭지 때문이다. 최근 한중일 3국 합작으로 제작하고 안성기와 유덕화가 주연한 영화 <묵공>이 상영중인 걸로 안다. 관심을 갖던 차에 며칠전 한 사이트에서 영어자막으로 된 영화를 다운받아서 초반부만을 봤는데, 기사에서는 제목에도 들어가 있는 묵자/묵가의 사상에 대해서 유례없이 긴 분량으로 다루고 있다(설마 지면에 다 실리는 것일까?). 필자의 열기가 느껴지는 기사이다. 일독해 볼 만하다(묵독해야 하는 건가?).

한국일보(07. 01. 11) <묵공>이여, 당신의 꿈이 만든 집단자살극을 아는가

'묵자' 읽기에 빠진 적이 있었다. 3, 4년 전이니 공교롭게도 노무현정부가 들어선 것과 때를 같이한다. 물론 우연의 일치였다. 책을 정리하다 읽지 않고 두었던 <묵자>를 발견하고 펼쳐본 것이 계기였다. 첫 장부터 눈길을 사로 잡았다. 평등과 기득권타도, 분배를 외치며 집권한 노무현정부에 대한 기대와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낙원'을 꿈꾸었던 묵자. 2,500년 전 그는 꿈은 정말 멋지고 원대했다. 차별 없는 하늘같은 나라. 내남없이 서로 사랑하는 겸애(兼愛)는 500년 후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한 예수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고, 계급차이 없이 가진 것을 골고루 나누고 아껴쓰는 절검(節儉)은 마르크스의 사회ㆍ경제 사상과 다르지 않았다.

중국 천하가 갈갈이 찢기어 언제 오늘의 형제가 적이 돼 쳐들어 올지 모르는 상황에, 죽고 죽이는 약육강식의 전쟁으로 피냄새가 마를 날이 없는 춘추전국시대에 홀연히 '반전'구호를 과감히 들고나온 좌파의 시조. 그는 스스로를'북방의 천한 사람'이라고 했다. 봉건제도와 계급사회에서 고통 받는 백성에 눈을 돌려 기존의 신분사회를 기반으로 한 철학인 유학 대신 '겸애'를 주장하며 '머리에서 발꿈치까지 털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자신이 이로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면 끝까지 행하는 사람'이었다. 낡고 검은 옷에 맨발로 천하를 돌며 이웃 사랑을 외친 운동가이자 묵가의 교주였다. 전쟁에 지치고, 가난에 신물이 난 백성들은 열광했다. 그들을 향해 그는 외쳤다.

“하늘은 우리 모두를 똑 같이 사랑한다. 그 은혜를 저버린 자는 어김없이 천벌을 받으리라. 하늘을 숭배하는 자, 하늘의 두려워하는 자, 하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자, 하늘의 이치를 본받는 자는 성(盛)하리라. 그의 혼은 하늘에 있으리라. 하늘을 비웃는 자,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 하늘을 배반하는 자는 멸(滅)하리라. 몸뚱이와 영혼이 함께 땅에서 썩어 흔적조차 사라지리라.”

“하늘은 가름(差別)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곳, 모든 생명에게 비와 이슬을 내려주고, 빛과 바람을 맞게 한다. 이것이 하늘의 마음이다. 천하는 큰 나라 작은 나라 할 것 없이 '하늘'의 고을이다. 어리고 나이 많고 귀하고 천한 구별 없이 모두 '하늘'의 자식이다. 가는 터럭이라도 할지라도 하늘이 만들지 않은 게 없다. 그런데 어찌 하늘이 천하를 아울러 사랑하고 이롭게 하지 않겠는가.

“가름은 사람에게서 나왔다. 탐욕이 세상을 갈라놓고, 전쟁을 만들고, 빈부를 만들고, 계급을 만들었으며 귀함과 천함을 구분 지어 놓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바로 이 가름을 없애는 일이다. 가름을 없애기 위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힘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고, 바른 도(道)를 알고 있으면 서로 가르쳐주고, 재물이 있으면 서로 나눠주라.”

이 얼마나 멋진 주장인가. 인류가 꿈꾸는 지상낙원의 모델을 보는 듯했다. 정말 인류사에 감춰진, 불운하게도 덜 알려진 위대한 사상이 여기에 있었구나. 본격적으로 <묵자>를 만나보기로 작정했다. 묵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고, 묵자를 언급한 중국 고전들을 찾았다. 이런 위대한 사상가를 우리가 잘 모르고 있었다니. 노무현정부는 뭘 하나. 자신들의 통치철학이 될 수 있는 모델이 여기에 있는데…'

고전 읽기의 즐거움 중 하나는 그것을 현실과 끝없이 비교하는 일일 것이다. <묵자>도 그랬다. 기존 세력과 가치관(유학)에 대항하며 변혁을 꿈꾸는 묵자의 외침은 그 반역의 강도만큼이나 매력적이었다. 마치 노무현의 좌파정부가 처음 그랬듯이(*이 좌파정부에는 따옴표를 붙여야 하지 않을까?).

묵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외쳤다. “의로움이야말로 올바른 것이며 천하의 보배다. 의로움은 어리석고 천한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반드시 귀하고 지혜로운 것에게서 나온다. 그럼 무엇이 귀하고 지혜로운가. 하늘이 귀하고 하늘이 지혜로울 다름이니, 의로움은 하늘에서 나오는 것이다. 만약 의로움을 행하기가 불가능하더라도 절대 그 길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목수가 나무를 깎다가 잘 되지 않는다고 먹줄을 버릴 수는 절대 없다. 이를 따르는 것이 '천의'(天義)다.”

묵가는 확신주의자들이었다. “칭찬 받으려 의를 행한다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가는 것이 진실로 올바른 도라면 미친놈 소리를 듣는다 한들 무슨 상관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은 입으로만 그러지 않고 몸소 실천했다. 목수 출신인 묵자 스스로 몸에 따라 옷을 입고, 배나 채우려 음식을 먹으며 떠돌아다니는 천한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 음악을 부정하고, 전쟁이 있는 곳이면 열흘이 걸리더라도 달려가 그 부당성을 호소했다.

김학주 교수는 그의 저서 <묵자, 그 생애·사상과 묵가>(명문당 펴냄)에서 그런 이들을 이렇게 규정했다. "지배자의 비위를 건드리고 시대조류를 어기며 낮은 서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과격한 주장들을 내세우고, 또 자기 희생을 무릅쓰며 그러한 주장들을 실천하였다는 것은 종교적인 신념 없이는 모두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묵가는 묵자를 정점으로 받드는 조직적인 집단을 이루어, 그 집단의 주장과 조직을 위하여서는 자기 희생을 가벼이 여기며 일사분란하게 단결하였으니, 이것도 종교집단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믿어진다. 따라서 묵자는 단순한 사상가가 아니라 묵가라는 종교의 교주였고, 그의 사상은 종교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묵가는 단순한 학파가 아니라 당시 사회를 개혁하려고 노력했던 종교집단이기도 했다.

이를 증명하는 사건이 묵가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인류 최초로 기록될 끔찍한 종교적 집단자살극이. BC381년의 일이다. 이날의 사건을 소설식으로 꾸며보면 이렇다. 맹승은 '검은 무리'의 우두머리를 일컫는 거자(巨子)다. 그는 친한 친구이자 스승이기도 한 초나라 양성군의 부탁으로 제자 183명과 함께 그의 성을 지키는 일을 맡기로 했다. 성에 도착하던 날, 양성군은 옥을 반으로 깨뜨려 하나를 맹승에게 주며 말했다. “우리 이걸 부신(符信)으로 삼아 나눠 차세. 믿음의 맹서일세. 어떤 일이 있을 땐 이 부신을 서로 합치고 기꺼이 서로를 따르기로 하세.”

맹승은 훗날 언젠가는 이 옥 조각이 자신과 제자들의 피를 요구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제의 충신이 오늘 역적이 되고, 아침에 초의 땅이 저녁에 진의 땅이 되는 배반과 전쟁의 혼란시대가 아닌가. 그러나 맹승은 이 위험천만하고 어리석은 맹서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가 베풀어준 은혜를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맹승은 젊은 시절 양성군의 식객이었다. 양성군은 그를 따르는 제자들도 함께 거두어 주었다. 다른 식객이 주인을 도운답시고 빈둥대며 입만 나불거리는 것과 달리 맹승과 제자들은 잠시도 쉬지않고 집 안의 궂은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맹승을 양성군은 좋아했다. 기꺼이 대부로 대접했고, 친구가 돼 아침 저녁 겸상까지 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그 때 맹승은 다짐했다.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 어떻게 보든 이 친구와의 신뢰는 지키리라.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고자 하는 하늘의 의로움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초나라 왕이 승하했다. 한달 전이었다. 초나라도, 양성군에게도 비극의 전조였다. 양성군은 서둘러 맹승에게 성을 맡기고 왕궁으로 갔다. 도읍인 영(?)으로 떠나는 양성군의 얼굴에는 비장한 빛이 감돌았다. 그 이유를, 그리고 그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는 이유를 맹승은 이제야 알았다. 왕의 장례가 있기도 전에 재상 오기가 죽었다. 천하의 별이 또 하나 떨어졌다. 그가 누구인가. 불과 6년 만에 덩치만 컸지 허약하기 그지없는 이 나라를 200년 전 장왕시대의 영광으로 되돌려놓지 않았는가. 구차하게 이웃 나라와 손잡지 않고 위와 한의 남하를 막고, 날로 세력을 뻗치는 진(秦)의 깊숙한 곳까지 공격, 천하를 다투던 인물이 아닌가.

적들은 그의 이름만 듣고도 몸을 떨었다. 잔인함과 출세욕과 뛰어난 용병술로 숱한 일화를 남기지 않았던가. 그는 노(魯)의 장수가 되기 위해 적인 제(齊) 출신 아내의 목을 서슴없이 베었다. 병사들과 똑 같은 옷을 입고, 밥을 먹었다. 행군할 때도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병사들과 함께 걸었으며 자기 식량을 직접 들고 다니는 등 기꺼이 병사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 병사들은 그 모습에 감격했다. 오기는 알고 있었다. 승리는 무기도, 병사의 수도, 맛있는 음식에도 있지 않고 병사들의 사기에 있다는 것을.

장수에게 감격한 병사는 '목숨 아끼지 않은 전사'가 된다. 그것을 알고 있는 한 어머니는 종기가 난 아들의 고름을 그가 직접 빨아주었다는 소식에 통곡했다. 사람들이 연유를 물으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전에 남편이 종기가 났을 때, 그가 고름을 빨아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그에 감격해 물불 안 가리고 싸워 결국 죽었습니다. 이제 내 아들까지 그렇게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왕의 신임도 두터울 수 밖에 없었다. 오기는 군사 뿐 아니라, 정치와 경제개혁의 칼도 휘둘렀다. 그의 전략은 간단했다. 그냥 있는 것 잘 정리해 두 배로 만들기였다. 재물만 탐하면서 불평불만 해대는 귀족과 관리들을 쓸어내 버렸다. 그리고 불필요한 관직을 없앴다. 예외는 없었다. 빈둥거리는 왕실의 친척의 봉록을 없애고 그것으로 군사를 길렀다. 군대는 풍족해졌고, 병사들의 사기는 더욱 높았다. 그런 병사들을 이끌고 오기는 남쪽의 백월(百越)을 평정하고, 북쪽의 진(陣), 채(蔡)를 정벌했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권력과 부정하게 얻은 재물을 뺏긴 왕족과 귀족들이 가만 있을 리 없었다. 나라의 부강보다 자신의 이익이 중요한 그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다. 기회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강력한 그의 후원자인 왕이 죽은 것이다. 왕의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그 거사에 양성군도 가담했다.

쫓기다 막다른 길에 몰린 오기는 왕의 시신 아래 숨었다. 그들은 오기를 향해 화살을 퍼부었다. 화살은 오기는 몸에 무수히 꽂혔고 그들은 오기의 사지를 수레에 묶어 찢어 죽였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화살이 왕의 시신에도 무수히 가서 막힌 것이었다. 아차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역시 오기는 지략은 그들보다 한 수 위였다. 죽어가면서도 원수를 갚을 방법을 찾은 것이었다. 멍청한 그들은 오기가 왜 도왕의 시신 아래로 숨었는지 자신들의 목이 날아갈 위험에 처하고서야 알았다. 덜 떨어진 태자 역시 아버지의 절대 신임을 받고 있던 오기가 아니꼽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불효자로 남기는 싫었다. 그래서 그는 숙왕(肅王)에 오르자마자 장수 영윤(令尹)을 불러 명령했다. "아버지의 시신에 화살을 쏜 자들을 모조리 잡아 죽여라. 그 일족까지 죽이고, 그들의 성을 거둬들여라."

그 일로 이미 70여 집안이 도륙됐다. 이제 마지막 양성군 차례다. 더구나 순순히 목을 내놓지 않고 도망가버렸으니 왕의 분노는 더욱 크리라. 왕의 명령은 정당하다. 그 정당함에 맞서는 것은 반역이다. 맹승은 고개를 돌려 제자들을 보았다. '저들은 몸이 가루가 되도록 싸우다 죽을 것이다. 그래도 왕의 군대를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목숨을 위해 대신 지켜주기로 약속한 남의 성을 내줄 수도 없다. "내일이면 왕의 군대는 올 것이고, 우리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맹승은 바람을 피하려 고개를 잔뜩 숙인 채 누(樓)로 걸음을 옮겼다. 양상군의 만류를 뿌리치고 누구보다 앞장서 백성들과 함께 들판에서 일하느라 땀에 절어 여기저기 버캐가 핀 헐렁한, 정강이까지 올라온 검은 홑바지가 뼈만 남은 앙상한 다리를 깃대 삼아 사납게 펄럭였다. 금방이라도 바람에 날려갈 것이 불안해 보였다. 자루가 긴 창인 극(戟)을 지팡이 삼아 겨우 몸을 가누어 누에 오른 맹승은 바람에 꺾인 흰 수염을 손으로 한번 쓰다듬고는,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실눈으로 남쪽 벌판을 응시했다. 극의 끝에 달린 붉은 천이 그의 머리 위에서 펄럭였다. 왕의 군대 전령이 다녀간 지 반나절. 벌판에는 흙먼지만 자욱할 뿐이다.

흙바람에 30리 밖에 있는 왕의 군대도 전진을 멈추고 쉬고 있으리라. 이런 흙바람 속에서 굳이 군사를 몰아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이것은 적과의 전쟁이 아니다. 난동에 가담한 한 신하의 목숨과 재산을 거둬들이는 일이다. 순순히 항복하고 성을 내 준다면, 굳이 칼에 피를 적실 이유가 없다. 모두 왕의 백성이고, 땅이기 때문이다. 전령은 그 시한을 오늘 해지기 전까지라고 했다.

“우리 뿐이로구나.” 짧게 한숨을 섞어 이렇게 중얼거린 맹승은 고개를 돌려 누 아래 먼지를 뒤집어쓴 채, 깃발처럼 펄럭이며 서있는 185명의 제자를 내려다 보았다. '검은 무리'의 상징이 돼버린 누더기 칡 베옷, 땡볕에 그을린 새까만 얼굴, 바지 아래로 드러난 앙상한 종아리, 너덜해진 짚신이 그들의 고된 노동과 절약으로 살아온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콩국과 냉수로 끼니를 채워 온 그들의 생활을 숨김없이 드러내 주고 있었다.

'옛날 우(禹) 임금처럼 소나기에 목욕하고, 거센 바람에 머리 빚으면서 장딴지의 살과 정강이의 털이 없어질 만큼 밤낮으로 고생하면서도 거둔 것은 나눠주며 살아왔다. 그게 우리의 법이지 않는가. 단 한번, 단 한명 그것을 어긴 적은 없었다. 죽음 앞이라고 달라지지 않는다. 저들은 어떤 길이라도 따를 것이다. 모두 불에 뛰어들고, 칼날을 밟으라면 밟을 것이다.'

'길은 하나 밖에 없다.' 맹승은 눈을 감았다. 눈앞의 모든 것이 사라졌다. 자신의 존재마저 사라지는 듯했다. 그는 빛보다 어둠이 늘 더 편안했다. 스승은 빛이야말로 하늘이 주시는 평등의 선물이라고 했지만 그는 어둠이야말로 '하나'이고 '평등'이라고 생각했다. 삼라만상이 어둠에 복종할 때, 세상에는 평화가 찾아오지 않았던가. 누구도 어둠을 거스를 수는 없다. 어둠 속에서 어지러운 세상은 사라진다. 어둠 속에서 꾸는 세상에 대한 꿈은 또 얼마나 좋은가. 꿈을 배반하는 건 늘 어둠을 증발시켜 버리는 환한 태양이다.

마른기침을 해도 먼지 먹은 목이 터지지 않아 맹승은 허리에 찬 물통을 열어 남아있는 물을 모두 마셨다. 먼지 먹은 얼굴들의 시선이 버려지는 물통을 따라 일제히 움직였다 다시 그의 얼굴로 모였다. 그들 역시 결단의 순간이 왔음을 직감적으로 느끼는 듯했다. '검은 무리'의 맹서를 읊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맹승은 옥 조각을 쥔 왼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것이 무슨 신호라도 되듯 조용해졌다. 바람을 가르며 맹승이 입을 열었다.

“제자들이여, 검은 무리여! 나는 이 성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고, 약속으로 이 부신까지 받았다. 그런데 지금 서로 합쳐 뜻을 따르기로 한 다른 한쪽 부신은 볼 수 없고, 힘으로는 왕의 군대를 막을 수 없다…” 맹승은 잠시 말을 끊었다. 바람을 피하기 위해 눈을 감고 고개를 모로 돌렸다. 검은 구름 뒤에서 해가 떨어지고 있는지 사위는 더욱 검었다. '검은 하늘, 검은 땅, 검은 사람… 잠시 후면 이 모든 것을 지울 더욱 짙은 어둠이 우리를 찾아 오겠지.' 제자들은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지킬 수 없다면, 스스로 죽을 수 밖에 없다.”

놀란 눈동자들이 일제히 맹승을 향했다. 낮은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바람소리에 귀가 웅웅댔다. 맹승은 그들의 눈길을 피해 자신의 키보다 1자는 족히 더 긴 극의 끝을 바라보았다. 맨 위에서부터 날이 자루와 직각으로 한 뼘 간격으로 짧게 뻗어 있었다. 아주 짧은 순간, 맹승은 '이 극은 남을 죽이기는 좋은 무기지만, 자살하기에는 자루가 너무 길다'고 생각했다.

침묵을 깬 건 수제자 서약(徐弱)이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죽음이 두려워서도 아닙니다. 죽어서 양성군에게 도움이 된다면 죽는 것이 옳지만, 우리의 죽음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데, 단지 우리의 도(道)를 지키다 우리들만 세상에서 없어지게 되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서약의 말에 용기를 얻은 듯, 뒤쪽에서 젊고 낯선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우리는 양성군의 일족도, 그의 군사도 아닙니다. 우리의 죽음을 양성군도 바라지 않을지 모릅니다…”

모두 놀라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을 보며 맹승은 이름을 생각해내려 애썼다. '뭐더라. 완(緩)이지 아마. 늘 얼굴에 깊은 그늘을 갖고 있는….' 그가 떠듬거렸다. 자신의 말에 스스로 자신이 없는지 목소리가 점점 오그라들었다. “…어쩌면 우리의 죽음이야말로 친구의 신의와 뜻을 저버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맹승이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결코 그렇지 않다. 나와 양성군의 관계는 스승도 되고 벗도 되며, 벗도 되고 신하도 된다. 죽지 않는다면 이제부터 엄한 스승을 구할 때 사람들은 반드시 '검은 무리'에게서 찾지 않을 것이며, 현명한 벗을 구함에 있어서도 '검은 무리'에게서 찾지 않을 것이며, 훌륭한 신하를 구함에 있어서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죽는 까닭은 우리의 의(義)를 행하고, 우리의 업(業)을 계승케 하려는 것이다. 거자는 송(宋)에 머물고 있는 전양(田襄)에게 물려 줄 것이다. 전양은 현명한 사람이니 어찌 '검은 무리'의 존재가 세상에서 끊어질까 걱정하겠는가?”

그들의 죽음을 알기라도 한 듯 지붕 위의 까마귀가 날개를 퍼덕이며 요란하게 울었다. 맹승은 기도하듯 눈을 감고 있는데 갑자기 고함소리가 들렸다. 놀란 맹승이 눈을 번쩍 떴다. “스승님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청하옵건대 제가 먼저 죽어 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역시 서약이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그의 짧은 칼이 그의 목을 뚫고 있었다. 외마디 소리와 함께 분수처럼 검붉은 피가 솟구쳤다. 뿜어져 나온 피가 장작 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동시에 쿵 하고 서약이 쓰러졌다. 그의 죽음이 신호라도 되듯 제자들이 일제히 '검은 무리'의 맹약을 암송했다.

“우리는 모두 하늘의 자식이다. 남이란 없다. 남을 내 부모형제처럼 섬긴다. 재물은 남을 위해 쓰며, 빈궁하게 산다. 우리에게는 나라도 왕도 규범도 없다. 오직 하늘의 의로움만을 따른다. 전쟁을 단호히 반대한다.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키며, 지도자에 절대 복종하며 죽음도 기꺼이 바친다.”

맹승은 오른손에 잡은 과를 발 앞에 비스듬히 세워놓고는 힘차게 끌어 당겼다. 세번째 날이 그의 목을 찌르고 들어왔다. 귀에서 세찬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목에 뭔가 자꾸 걸렸다. 기침을 해보려 했지만 되질 않았다. 뭔가에 머리가 세차게 부딪쳤다. 눈에 하늘이 보였다. 어둠, 그것도 아주 진한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다. 사방에서 기침소리가 났다. 둘러보려 했지만 고개가 돌아가지 않았다. 아직도 누군가 맹약을 중얼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겨우 눈동자를 움직여 주변을 보았다. 검은 피가 메마른 땅 여기저기 흩어지고 있었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눈앞에 시꺼먼 물체가 달려드는 것 같았다. 저 놈의 까마귀. 맹승은 놈을 노려보기 위해 눈을 크게 뜬다고 떴지만 어두워 사위를 분간할 수 없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해가 질 무렵 왕의 군대가 도착했다. 대장 영윤은 검은 무리의 주검을 보고 경악했다. 어떻게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스승의 한마디에 한 사람의 도망자 없이 모두 스스로 목에 칼을 찔러 넣을 수 있단 말인가. 신념과 집단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가벼이 여기는 '검은 무리'라는 말은 들었지만 영윤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는 붓을 들어 보고서에 이렇게 썼다. '양성군의 성을 거두다. 광기의 무리 183명 모두 자살하다.'

 

 

 

 

정말 상상만해도 끔찍한 이 사건을 소설가 최인호는 <유림>(열림원)에서 '오늘날 맹신적 사교집단의 테러리즘'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자신의 도를 지키기 위해 가장 소중한 생명을 스스로 버리는 모습에서 고귀함을 느끼기 보다는 광신의 섬뜩함이 느껴진다. 그 테러리즘이 타인을 향했을 때를 상상하면 더욱 그렇다. 광신이야말로 자신과 다른 상대에게 무자비할 수 있지 않은가. 애써 묵자 시대에서 찾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사회가 그렇지 않은가. 그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묵자>는 잠시 엄청난 환상을 심어주고, 현실만 더욱 어지럽히는 한낱 꿈처럼 보였다.

안성기가 왕의 군대의 대장 항엄중 역을 맡아 눈길을 끄는 홍콩 장지량 감독의 한ㆍ중ㆍ일 합작 영화 <묵공>(墨功)은 그러나 이 집단자살극을 싹 감추고 홀로 찾아온 묵자의 거자인 혁리(류더화)의 영웅적인 방어전쟁을 그리고 있다. 일본 만화가 원작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차마 광신도의 자살극으로는 차마 묵자의 '반전' '평화' '겸애'사상을 이야기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묵자>에 나와있는 것처럼 방어라면 일가견이 있는 묵자의 전술을 보여주려면 자살항복으론 안되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영화는 액션 사극일 수 밖에 없고, 그 속에서 묵자의 사상을 논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는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성이 있어야 황궁도 있다. 저을 무찔러야 자유가 있다. 전쟁은 피하는 게 좋다. 전쟁에서 안 억울한 사람 있나. 비공(非攻)과 겸애만이 평화의 길. 전쟁에서는 산 자나 죽은 자나 불행하기는 마찬가지. 사람이 사람을 왜 죽여야 하지'란 대사를 간헐적으로 내뱉을 뿐이다.

그러나 용감히 전쟁을 치르면서 혁리가 한탄하는 이런 말조차도, 정반대로 싸우기를 포기하고 '도'를 지킨다며 집단 자살한 행동만큼이나 백성들에게 아무 것도 주지 못한다. 어쩌면 “모든 이를 사랑하라는 것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양성의 왕이 한 말이야말로 묵자에게는 날카로운 비수일 것이다. 결국 성을 지키고, 백성을 지킨 사람은 혁리가 아닌 바로 그 왕이었다.

꿈은 꿈일 뿐이다. 결코 현실일 수 없다. 현실과 거리가 먼 꿈일수록 달콤하다. 사람들은 쉽게 그 꿈에 열광하고, 희망을 품는다. 꿈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이며 꿈 꾸는 자가 행복한 이유다. 그래서 세상은 늘 꿈으로 가득하고, 그 꿈에 사람들은 취하고, 꿈에 취한 사람들의 더욱 고통스런 신음을 남긴다.(이대현 편집위원) 

07. 01. 12.

P.S. 오전에 한국일보를 사서 읽었지만 기사는 찾을 수 없었다. 짐작대로 지면기사는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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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sculp 2007-01-12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 안보셨으면 한번 보세요. 재미있습니다. 만화에서는 권력관계가 더 드러나게 그린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리고 그당시 최첨단 공격과 방어 기술이 나오긴 하는데 만화인지 실제인지 구분은 안되더라고요.

로쟈 2007-01-1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주변에서 추천하는 만화는 많은데, 만화세대가 책을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저는 만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hallonin 2007-01-12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묵공은 장예모의 영웅과 반대 지점에서 깃발을 세우고 있다고 한 씨네21의 김혜리 편집위원의 지적이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긴 글을 쓴 분에게는 체 게바라의 꿈과 현실에 대한 유명한 한마디가 적절한 대답이 될 수 있겠군요.

파란여우 2007-01-1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이 잼난 글을 왜 이제서야 읽게 된 걸까요.
읽다가 아주 잼나고 좋은 문장을 발견해서 퍼가요.

로쟈 2007-01-14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dafuck님/ 맞습니다...
파란여우님/ 그러게요.^^ 동양 고전이라면 저보다 여우님이 일가견이 있으실 텐데오...

Mephistopheles 2007-01-15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묵공"이라는 만화책은 요즘 구해보고 싶어도 구하기가 힘들더라구요..^^
 

잠깐 머리도 식힐 겸 신문기사들을 둘러보려는데 바로 눈에 띄는 기사가 있다. 이탈리아의 영화제작자 카를로 폰티(1912-2007)의 타계 기사이다. 그 유명한 배우 소피아 로렌(1934- )의 남편이었고 데이비드 린의 영화 <닥터 지바고>(1965)의 제작자였다(필모그라피를 보니 펠리니의 <길>도 그의 손을 거쳤다). 영화계의 '큰손'이었다고 할 만하다. 기사를 읽어보니 이 제작자-여배우 커플의 사랑이 '의외로' 파란만장한데, 사실 <닥터 지바고>에서 줄리 크리스티가 맡았던 라라 역으로 그가 점찍은 여배우도 원래는 아내인 소피아 로렌이었다고 한다. 나이가 많고 키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데이비드 린이 받아들이지 않았다지만.

한겨레(07. 01. 11) ‘소피아 로렌’의 남자라 행복했어요

영화배우 소피아 로렌(오른쪽)의 남편이자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영화 제작자인 카를로 폰티(94·왼쪽)가 9일 타계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1912년 밀라노에서 태어난 그는 1938년부터 50여년 동안 <닥터 지바고> <길>(La Strada) 등 모두 150편 이상의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대중에게 이탈리아의 육체파 여배우인 소피아 로렌의 유일한 남편으로 더 선명히 각인되어 있다. 폰티는 1952년 당시 불과 17살이던 소피아 라자로를 미인대회 심사위원석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나폴리 빈민가 출신인 이 선이 굵은 미녀에게 한 표를 던졌음은 물론이다. 이후 자신이 제작한 다큐멘터리성 영화에 라자로를 기용했다. 그리고 성도 로렌으로 바꿔 불렀다.

하지만 20살 어린 로렌과의 사랑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험난했다. 그는 유부남이었고 당시 그의 고국은 이혼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로렌과의 사랑을 철저히 비밀로 한 뒤, 1957년 멕시코에서 양쪽 변호사만을 내세운 채 신랑·신부 없는 결혼식을 올렸다. 이 사실이 이탈리아 언론에 알려진 뒤 콘티는 중혼 혐의로 기소당했다. 로렌은 당시를 “나는 끝없는 지옥불과 파문의 위협에 처해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공공의 죄인들로 손가락질했다”고 회상했다. 로렌은 이 결혼식에 대해 “몇시간 동안 울었던 기억 밖에 없다”고 밝혔다.(*아래 사진은 1961년의 두 사람) 

두 사람은 결혼식 이후 타국을 떠돌았고, 결국 멕시코 결혼을 무효화한 뒤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런 ‘사랑의 곡절’은 프랑스 시민권 획득으로 결말을 맺었다. 조르주 퐁피두 당시 프랑스 대통령의 배려로 시민권을 받은 뒤, 1966년 파리에서 두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호사가들은 폰티의 여배우 편력과 로렌 주위를 맴돌았던 많은 남자들을 떠올리며 결혼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예측은 어긋났다.

폰티는 로렌뿐 아니라 지나 롤로브리지다 등 걸출한 이탈리아 배우를 발굴하고 키웠다. 많은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렸다. 하지만 그는 폐렴 합병증으로 9일 저녁 스위스 제네바의 한 병원에서 사망할 때까지 아내와 함께했다. 로렌이 그가 숨을 거두는 순간을 지켜봤다고 친지들은 전했다.(강성만 기자)

07. 01. 11.  

P.S. 사랑은 세월을 버티는 힘이지만 세월은 사랑을 지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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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80 2007-01-1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녁밥 먹으면서 뉴스로 봤어요.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는 제 친구는 "외울 것 하나 늘었다"며 인상을 찌푸리더군요. 헐리우드 외부에서 공고한 힘을 보여준 몇 안되는 제작자였는데 여성 편력으로만 한 사람의 인생이 평가되는 것 같아 좀 착잡합니다.

로쟈 2007-01-1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에 따르면 '편력'이랄 게 없는데요.^^ 기사의 타이틀도 "‘소피아 로렌’의 남자라 행복했어요"이니까요...

딸기 2007-01-12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낫
닥터지바고도 데이비드린 감독의 작품이군요 +.+
'인도로 가는길' 밖에 몰랐는데... 대단한 감독이군요!!!
(딴소리 하다 가서 죄송)

로쟈 2007-01-12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도로 가는 길'은 거의 마지막 작품이구요,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닥터 지바고' 같은 영화들이 그의 전성기 걸작들입니다...
 

주디스 버틀러의 <안티고네의 주장>(동문선, 2005)을 예전에 읽다가 체크해놓은 대목들이 있어서 다시 대조해보기 위해 원서를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이런 일이 드물진 않다. 내일 학교에 가서 다시 복사해야 할까?). '안티고네'란 주제에 대해서라면 한 학기 강의가 가능할 정도로 많은 수의 관련서들이 있고 나는 그 중 몇몇 권을 갖고 있다. 이 참에 견적이라도 내볼까 했는데 며칠 미뤄야겠다.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버틀러의 책과 함께 임옥희의 <주디스 버틀러 읽기>(여이연, 2006)를 참조하실 수 있겠다. 버틀러의 주저 7권에 대한 해설을 겸하고 있는 이 책은 당연히 <안티고네의 주장>에 대해서도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내가 꺼내든 책은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도서출판b, 2005)이다. 전체 6개의 장에서 제5장이 '프로이트 독자로서의 주디스 버틀러'를 다루고 있는바, 지젝의 독자들뿐만 아니라 버틀러의 독자들도 필독해야 하는 장이다(두어 페이지만 읽어도 이토록 재미있는 책을 사람들이 왜 읽지 않는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guilty pleasure'라도 되는 걸까?). 그러고 보니 '안티고네'는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도 다루어지는군.  

미리 말하자면, 이달말쯤에는 지젝의 또다른 주저 <부정성과 함께 머물기>도 출간된다(예정대로 출간된다면 2월의 이론서로 꼽아둘 참이다). 참고로, 지젝 스스로가 꼽은 네 권의 대표작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부정성과 함께 머물기>, <까다로운 주체>, 그리고 아직 번역되지 않은 <시차적 관점>(2006)이다. 뒤의 두 권은 분량도 만만찮은데, 지젝의 이론적 매트릭스를 구성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 만큼 반복적으로 읽어두는 게 지젝을 이해하는 관건이다(*<부정성과 함께 머물기>는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란 제목으로 2월 중순에 출간됐다. 이제 <시차적 관점>만 소개되면 지젝의 '4대 주저'는 모두 번역된 셈이 된다).  

각설하고, 지젝의 버틀러론을 시간날 때마다 정리해둘 작정이다. 그 첫번째 꼭지는 '왜 도착은 전복이 아닌가?'이다. 이것만으로도 견적이 너무 많이 나와서 '도착적 주체와 히스테리적 주체'란 제목을 달고 도착증과 히스테리증을 비교하고 있는 대목 정도만을 따라가볼 생각이다(이 절은 명실상부한 '도착적 철학자' 미셀 푸코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건 다른 자리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먼저, 서두: "'칸트와 사드와 더불어'라는 주제에서 이끌어낼 핵심 결론들 가운데 하나는, 미셸 푸코처럼 도착의 전복적 잠재력을 옹호하는 자들이 조만간 프로이트적 무의식을 부정하기에 이른다는 것이다."(395쪽) 즉, 전복의 철학이나 정치적 기획은 프로이트적 무의식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것. 왜인가?

"이론적으로 이 부정은 프로이트 스스로가 강조한 바 있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정신분석에 있어서 히스테리와 정신증은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길을 제공한다, 즉 무의식은 도착증을 경유해서는 접근할 수 없다. 프로이트를 뒤따라서 라캉은, 도착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건설적인 태도인 반면에 히스테리는 훨씬 더 전복적이며 지배적 헤게모니를 위협한다는 점을 되풀이해서 강조했다."(396쪽)

그러니까 겉보기에는 훨씬 더 '쎄' 보이는 도착보다도 히스테리가 오히려 더 전복적이라는 것. 이것이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갖는 역설이다('프로이트로 돌아가자!'란 구호를 내건 라캉이 이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한 건 당연한 일이겠고). 물론 상식적으로 보자면 상황은 반대인 것처럼 보인다. "도착증자들은 히스테리증자들이 단지 은밀하게 꿈꾸는 것을 공공연하게 실현하고 실행하지 않는가?"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사실로 인해 우리는 프로이트적 무의식의 역설과 대면하게 된다. 무의식은 우리가 (히스테리증자로 머무는 한에서) 공상하기만 할 뿐 실현하는 것은 기피하는 은밀한 도착적 시나리오들로 구성되는 것인 아닌 반면에 도착증자들은 영웅적으로 '그것을 한다'는 역설과 말이다."

프로이트적 무의식의 역설이란 무엇인가? 그게 은밀한 도착적 시나리오들과 무관하다는 것. 그러니 그러한 시나리오를 실현/실행하는 건 비록 '영웅적'이라 하더라도 헛발질이다. "우리가 우리의 은밀한 도착적 환상들을 실현(acting out)할 때 모든 것이 폭로되지만 무의식은 여하간 빠뜨리고" 마는 것이다. 무의식은 거기에 없었다?

왜인가? "왜냐하면 프로이트적 무의식이란 은밀한 환상적 내용이 아니며, 오히려 사이에 끼여드는, 은밀한 환상적 내용을 꿈의 텍스트(혹은 히스테리적 증상)으로 번역/치환하는 과정에 끼어드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이 향유를 가져오는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도착증자는 무의식의 핵심인 그 틈새를, 그 '화급한 물음'을, 그 장애물을 흐려놓는다."(396쪽)

히스테리와 도착의 차이는 바로 거기에 있다. "다시 말해서 도착증자는 (무엇이 향유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타자에 대한) 답을 알기 때문에 무의식을 배제한다. 그는 그것에 대해 어떠한 의심도 품지 않는다. 그의 위치는 흔들릴 수 없다. 반면에 히스테리증자는 의심한다. 즉 그녀의 위치는 영원하고도 구성적인 (자기-)물음의 자리이다: 타자는 나에게서 무엇을 원하지? 타자에게 나는 무엇이지?..."(397쪽) 마치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처럼!

 

"도착과 히스테리의 이런 대립은 특별히 오늘날 적실하다. 주체성의 전형적 양태가, 상징적 거세를 통해 부성적 법칙에로 통합된 주체인 것이 더 이상 아니라, 즐기라는 초자아의 명령을 따르는 '다형적으로 도착적인' 주체인, 우리 '오이디푸스 몰락'의 시대에 말이다." 즉, 오늘날의 주체는 '다형 도착적' 주체이다. '오이디푸스 몰락'의 시대에 넘쳐나는 건 갖가지 도착증자들의 행태이다(그럼에도 여전히 안티-오이티푸스가 우리의 구호인가? 누가 오이디푸스에 시달리는가? 아래 사진은 최근에 뜨고 있다는 인형방).

따라서, 오늘날 정치적 무대에서 중요한 것은 "도착증의 닫힌 원환고리에 사로잡힌 주체를 어떻게 히스테리화할 것인가"이다. 지젝의 통찰은 여기서 빛을 발한다: "후기 자본주의 시장 관계의 주체는 도착적이며, 반면에 '민주적 주체'는 내속적으로 히스테리적이다. 다시 말해서, 시장 메커니즘에 사로잡힌 부르주아와 보편적인 정치적 영역에 연루된 시민의 관계는, 주체적 경제에서 볼 때, 도착증과 히스테리의 관계이다."(397-8쪽)

"따라서 랑시에르가 우리의 시대를 '후-정치적'(*탈정치적)이라고 부를 때 그는 정치적 담론이 히스테리에서 도착증으로 이처럼 이행했음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후정치'란 사회적 사태들을 관리하는 도착적 양태이며, '히스테리화된' 보편적/탈구적 차원이 박탈된 양태이다."(강조는 나의 것)

최근에 이러한 포스트-폴리틱스의 시대, 도착적 '탈정치 시대'를 징후적으로 드러내주는 유행어가 '참 나쁜 대통령' 아닐까? 아마도 곧 웃찾사나 개그야에서도 패러디될 만한 이 유행어를 듣거나 발언하면서 우리가 희희락락할 때 도착적 쾌락은 따로 먼 곳에 있지 않다('탈정치'의 노무현 버전이 '탈권위'이므로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희화화는 자초한 면도 없지 않다). 관련기사를 읽어보는 것으로 이 페이퍼는 일단락짓도록 한다.

한겨레(07. 01. 12) '참 나쁜~’ ‘참 좋은~’ 요즘 정치권 최고 유행어  

노무현 대통령이 새해 벽두에 꺼내든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 카드는 단숨에 정국을 개헌정국으로 몰아넣었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판을 뒤흔들 수 있는, 매우 엄중한 ‘개헌 국면’ 속에서, 아기자기한 유행어와 패러디가 탄생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입으로부터 시작된 ‘참 나쁜 대통령’ 시리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박근혜 전 대표가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단순명쾌하게 비판하자, 이튿날 노 대통령이 재반박하더니, 다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안에서 각각 이 말을 빗대 엄호와 반격을 펴면서 ‘참 나쁜 ~’, ‘참 좋은 ~’이 정치권에 유행어가 됐다.

#1. ‘참 나쁜 대통령’의 탄생/ 1월9일

지난 9일 노무현 대통령에 개헌 제안을 하자, 박근혜 전 대표 캠프는 박 전 대표의 말이라며 다음과 같은 반응을 기자들에게 이메일로 돌렸다.

<박근혜 전 대표, 노무현 대통령 회견 관련 반응>

“참 나쁜 대통령이다. 국민이 불행하다.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 보이느냐?”

#2. 노무현의 반격/ 1월10일

이튿날인 10일, 3부 요인 및 헌법기관장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다.

“나쁜 대통령은 자기를 위해 개헌하는 대통령이다. 이번 개헌은 나를 위한 개헌이 아니고, 차기 대통령을 위한 개헌이다.”

정권연장을 위해 3선 개헌을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이다. 전날 자신에게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말한, 박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전 대표를 공격한 것이다. 청와대는 청와대브리핑에 ‘나쁜 개헌, 나쁜 대통령’이라는 글을 올려 노 대통령을 엄호했다.

“우리 역사에 정말 ‘나쁜 개헌, 나쁜 대통령’이 있었다.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려는 개헌, 독재를 항구화하고자 한 개헌, 그것을 날치기나 폭력으로 추진하려 했던 대통령이 진짜 나쁜 개헌, 나쁜 대통령이다. 박근혜 전 대표에게 묻는다.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을 추진한 이승만 대통령, 3선 개헌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고 유신 헌법을 제정한 박정희 대통령, 단임제이지만 7년 임기를 누릴 수 있도록 개헌한 전두환 대통령은 어떤 대통령인가.”

#3. 박근혜, “참 좋은 대통령 만들자”/ 1월11일

11일 서울 여의도에 새로 마련된 한나라당 서울시당 사무소 개소식에서 ‘참 나쁜’ 시리즈가 업그레이드됐다. 이 행사는 강재섭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와, 박근혜 전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 원희룡 전 최고위원, 고진화 의원 등 대선 주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먼저, 강재섭 대표가 인사말에서 개헌론을 비판하며 외쳤다. “노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국가안보나 국민경제는 없고 오로지 선거와 정권연장 음모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제가 볼 때도 ‘참 나쁜 대통령’입니다!”

행사장에는 “명언이다”, “옳소”라는 추임새와 환호성이 터져나왔고, 박근혜 전 대표도 환하게 웃었다. 이어 단상에 오른 박 전 대표가 말했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서 민생 챙기기에 매진해도 모자라는 정권이 또다시 개헌을 들고 나오면서 온 나라를 흔들어 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정신을 차리고 한마음으로 뛰어서 ‘참 좋은 대통령’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역시 박수와 환호성이 터졌다.

#4. 김한길 “참 나쁜 발상”/ 1월12일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가 확대간부회의에서, ‘참 나쁜’ 패러디를 활용해 한나라당을 공격했다. “한나라당에 말씀드린다. 헌법이 규정한 헌법 발의권 행사하는 대통령에 무대응하고 함구령으로 일관하는 한나라당은 초헌법적 발상이고, 초헌법적 발상은 ‘참 나쁜 발상’이다.”

이날 여의도 국회 주변 식당가에서는 “참 좋은 생각이십니다”, “참 나쁜 사람이군요” 등 ‘참 좋고, 나쁜’ 시리즈가 밥상, 술상에 올랐다.(황준범 기자)

07. 01. 11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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