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좀 거창하지만 내용은 '문예지 휴간, 폐간 잇따라'란 부제에 그대로 들어 있다. 뜻밖인 건 지난 겨울 창간 5주년 기념호를 낸 <문학판>이 무기한 휴간을 결정했다는 소식인데, 그 기념호에 5주년을 기념하며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기대한다고 한 여러 편의 축사를 읽은 나로선 좀 황당하기까지 하다. 내부사정이 갑작스레 악화되었을 리는 없고 '기념호'란 게 마지막 불꽃놀이였나 보다. 물론 폐간은 아니지만 당분간도 아닌 '무기한' 휴간이라니. <비평과 전망>이 소식이 뜸한 지는 오래이고 <문학과 경계> 또한 인공적으로 수명을 연장하고 있는 게 문예지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문학잡지가 너무 많다. 더불어, 계속 창간된다. 그리고 폐간된다. 일설에는 작가/필자들을 확보하기 위한 방책으로 (적자를 감수하고) 잡지들을 발간한다고 하는데, 그러한 단행본 출판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문예지가 시장에서 생존/자립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노릇이다. 이러나저러나 여건이 그러하다. 변신하거나 전사하거나, 선택지는 많지 않은 듯하다.

 

컬처뉴스(07. 02. 06) 담론의 공간이 불안하다

도서출판 열림원에서 내고 있는 계간 문예지 『문학판』이 최근 재정적 어려움으로 무기한 휴간을 선언했다. 소장 평론가들이 주축이 돼 지난 1999년부터 의욕적으로 발행해왔던 반년간지 『비평과 전망』 역시 사실상 폐간 상황에 처해있으며, 계간 『문학과경계』는 재정난으로 ‘2006년 겨울호’를 내지 못하다가 뒤늦게 편집인과 문인들이 십시일반 재원을 마련해 최근 겨울호를 발행했다. 

지난 2001년 겨울호로 창간된 계간 문예지 『문학판』은 ‘문학의 상업화에 맞선다’는 기본 취지 아래 대중적 감각과 지성적 이해를 결합시키며 평단에서 소외된 신인작가의 전위적 작업을 부각시키겠다는 포부로 시작됐다. 지난해 겨울호까지 통권 21호를 출간했으나 어려운 경제적 여건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무기한 휴간을 결정한 것이다.

반년간지 『비평과 전망』은 2000년 이후 문단을 달군 ‘문학권력 논쟁’의 복판에 섰던 문예지로, 이명원, 고명철, 홍기돈, 엄경희, 최강민, 오창은 등 소장평론가들이 의욕적으로 현장비평의 장을 열었지만 역시 재정적 어려움으로 통권 9호(2005년)에서 멈춰있다.

통권 23호까지 나온 『문학과경계』는 ‘진보 담론의 새 공간을 제공하자’는 모토 아래 이진영 시인이 지난 2001년 가을 사재를 털어 창간한 잡지다. 지난해 가을 이진영 사장의 건강이 나빠지고 잡지사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부득이 폐간신고를 내기도 했지만 잡지를 이어가지는 데 뜻을 모은 편집인들과 문인들의 도움으로 뒤늦게 겨울호를 낸 것이다(*알라딘에는 21호까지만 올라와 있다).

과거 ‘문예지’는 신인작가 등단의 장이자 문학논쟁의 전초기지로 문단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또 87체제 이후에는 군부에 의해 폐간되거나 휴간됐던 문예지들이 복간되면서 폭발적으로 ‘문예지’가 활성화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90년대 들면서 ‘한국문학의 위기’가 공공연해지고 외국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예지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낮아졌다. 또 출판의 상업화와 물리면서 규모 있는 출판사에서 발간하고 있는 문예지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으나 독자층의 감소와 함께 재원 마련이 어려워진 독립적인 문예지들은 문예진흥기금에 의존하거나 자체조달 방식으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앞서 언급한 문예지들처럼 휴간하거나 폐간에 이르게 된다.

『비평과전망』 편집주간인 이명원 평론가는 “문학매체 안에서도 문학권력과 같은 카르텔구조가 성립되면서 자본을 동력으로 작가를 포섭하고, 작가들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결국 마이너 매체들도 출판시장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메이저 매체들의 방식을 따라가게 되고, 마이너 매체들이 메이저와 차별성을 갖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독자적 시각을 펼치는 독립매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재원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하지만 어디서?). 하지만 현재의 출판시장에서 작품출판과 분리된 독자적 매체가 재원을 마련할 길이 막막한 것도 사실이다(*그런 의미에서 문예지 또한 지극히 기생적이다. 고상한 발언과 주장들을 앞세움에도 불구하고). 또한 이러한 배경에는 문예지와 대형 출판사 간의 ‘공조’로 창작과 비평의 폐쇄적인 순환구조가 만들어지면서 독립 문예지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진 측면도 있다.

기존 문예지와 ‘차별성’을 내세우며 등장한 독립 문예지들이 이 같은 출판시장의 거대 자본에 휩쓸리면서 방향을 잃고, 소멸되어가는 모습들이 오늘 우리 문학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고 안타깝다(위지혜 기자).

겸사겸사 기사에서도 거명된 <비평과 전망>의 편집주간 이명원 평론가의 인터뷰 기사를 덧붙인다(며칠전 'TV, 책을 말하다' 이문열 편에 출연하기도 했다). 컬처뉴스의 신년인터뷰 연재 중 한 꼭지였는데, '담론의 공간'뿐만 아니라 직장(=밥통의 공간)마저 불안한 시대를 문학평론가는 어떻게 살아가는가 잠시 들여다 볼 수 있다.

지난해 서울디지털대 교수로 재직하다 학내 비리를 비판해 해직된 이명원 문학평론가

컬처뉴스(07. 01. 11) 집단적 '희망' 상실을 뛰어넘어야 한다

<컬처뉴스> 신년인터뷰 네 번째 손님은 이명원 전 서울디지털대 교수이면서 문학평론가다. 굳이 ‘전 디지털대 교수’의 직함을 사용한 것은 지난해 이 평론가가 재직했던 서울디지털대학교는 학내 비리를 비판해 온 이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킴으로 이 평론가에게 ‘해직교수’라는 영광의(?) 명찰을 달아줬기 때문이다.

대학 측은 이 평론가의 재임용 탈락 사유로 “이 교수가 학내 인터넷 게시판에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올렸고, 언론매체에 쓴 칼럼을 통해 학교의 명예를 훼손한 해교행위를 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불법행위를 한 학교가 그 시정을 요구한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킨 것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것은 물론 스스로 비판적 지성의 무덤임을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평론가는 현재 대학을 상대로 ‘소송’ 중에 있다. 그를 만나 이번 해직 문제에 대한 심경과 올 한해 계획들에 대해 들어봤다. 

<컬처뉴스> 독자들에게 신년 인사 한마디 부탁한다.
 
올 한 해에는 모든 사람들의 희망이 의미 있게 충전되는 날들이 지속되기를 기원한다.

지난해 서울디지털 교수 해직 문제로 힘들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사건이었는지 간단히 설명해 달라.

재직했던 대학에서 2006년 한 해 동안 대학 정상화와 민주화를 촉구하는 일련의 상황이 전개됐었다. 2005년 부총장에 의한 교비횡령 사태의 ‘후폭풍’이었던 셈이다. 대학운영의 투명성과 민주화를 요구한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의 총장 불신임 선언 이후, 대학에 대한 감사를 촉구했었고, 사이버대학의 근거법률을 일반대학과 마찬가지로 고등교육법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법률 개정 운동도 있었다. 대학당국은 이를 문제 삼아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에 대한 재계약거부와 중징계를 단행했고, 현재도 징계는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교수협의회 회원이었던 나는 다른 교수들과 함께 재임용에 탈락되는 기묘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그렇다면 지금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서울 서부지법에 교수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이와는 별도로 지위확인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가처분 소송 1심에서는 패소했는데, 패소의 근거가 현행 법률상으로는 사이버대학 교수의 경우는, 고등교육법에 규정된 교원의 권리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가처분 소송의 경우는 고등법원에 항고해서 계류 중이고, 현재는 서울서부지법에서 본안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1월 26일에 공판이 예정되어 있으니 3월 안에는 판결이 날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착잡한 상태다. 그러나 나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서는 많은 대학교수들이 학내분규 과정에서 징계와 해임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의 대학사회가 민주적 언로를 차단당하는 시대착오적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을 볼 때, 지성의 위기가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라는 체감을 하고 있는 중이다.

동감한다. 개인적으로 새신랑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일이 터져 걱정스러웠다. 혹 결혼생활에 지장은 없나?

신혼여행을 다녀오니, 재임용에 탈락했다는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그때는 잘못 도착한 속달우편처럼 느껴져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이런 상황 자체가 나의 일상에 치명적인 것이 되지는 않는다. 반대로 나는 이런 상황을 거치면서, 사유하는 일과 경험하는 일의 차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실직을 하고 보니까, 또 계약제 교수의 현실을 몸소 체험해 보니까, 노동유연성이라는 말이 얼마나 허구인지 또한 지성의 독립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과거에는 예를 들면 비정규직 문제라든가 관료제의 불합리성, 지식생산 구조의 허약성을 머리로 생각한 수준이었는데, 뭐랄까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체화된 고민을 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불행한 상황이긴 하지만, 나는 오히려 ‘문학에 대한 사유를 깊이 있게 하는 안식년이다’라고 낙천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역사적으로 좋은 지식인들은 다들 ‘파문’의 주역이 아니었던가. 이것이 나의 ‘스스로 힘내기’의 방식이다.

처음에 이 평론가의 ‘해직’ 소식을 듣고 ‘고난의 지식인’ 반열에 오른 것이 아닌가 하고 축하했던 것으로 떠오른다. 여전히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문학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지난 2006년도 ‘문학의 위기’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다. 현장에 몸담고 있는 평론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문인의 입장에서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문학의 위기라기보다는 더 넓게는 문화예술의 전면적인 위기인 듯하다. 크게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문화의 게토화 현상 때문이겠지만, 시민들이 이른바 삶에 대한 느린 성찰과 반성을 요구하는 문화예술을 향유할 만한 여유를 상실해가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희망이 없는 가난’도 참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되는데, 지금보다 절대적으로 가난했던 과거에 문학을 포함한 예술적 성찰에 시민들 자신이 치열하게 몰입했던 것을 보면, 현실에 대한 시민들의 집단적인 ‘희망’의 상실이야말로 문화예술 위기의 주요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를 포함한 문인과 예술가 자신의 이완된 작가의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쓴다는 행위, 창조한다는 행위에 대한 자기화된 예술론을 어쩌면 우리 스스로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닌가. 또 공적 소통 체계 안에서의 문화예술의 존재근거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이 약화된 것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의 자동화된 글쓰기와 예술행위에 나르시시즘적으로 몰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들이 들곤 하는 것이다.

문학의 위기를 넘어 문화예술 전면적인 위기를 말했는데, ‘위기’의 원천에 대해 ‘비평이 제 구실을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아웃사이더 비평계의 주자로서 ‘비평’의 현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비평 역시 방향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다양한 해석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데, 그것들이 독자들에게는 지식인들의 ‘은어체계’처럼 느껴지는 듯도 하다. 내 생각에는 한국 문학비평이 ‘육성의 언어’를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 위기의 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정제되고 발랄한 언어감각은 있는데, 그것이 비평가 개인의 삶과는 무관한 층위에서 개념어들의 홍수로 귀착되고 있는 듯한 감도 있다. 비평 역시 매력적인 읽기의 풍속이 가능해야 할 텐데, 그 점에서 읽히면서도 감동적인 비평적 형식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위기' 속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올 한 해 문학계에 바라는 점이 있는가?

작은 글쓰기도 좋지만 큰 의제를 생산해내는 젊은 작가들이 출현해 주었으면 좋겠다. 1970년대에는 황석영이나 조세희, 최인훈, 이청준 같은 청년 작가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문인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오늘의 젊은 문학은 과연 성숙한가. 나는 이 점에서 약간 회의적이다. 작가들이 나의 회의를 불식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올해 계획하는 일이나 준비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말해달라.

2007년은 중요한 해가 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을 좌우의 진영과 무관하게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담론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볼 생각을 하고 있다. 한 언론사에서 그런 기획을 비공식적으로 제안한 바 있는데, 생각해 보니 흥미로운 기획처럼 느껴졌다. 물론 아직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국문학자로서 본연의 연구도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다. 2006년 한해는 이런저런 복잡한 삶의 형국 속에서 공부다운 공부를 못했다는 생각인데, 2007년은 좀 달라져야겠다. 내가 속해 있는 민족문학연구소나 포럼X와 같은 연구모임을 중심으로 좀더 성실한 연구자와 비평가의 자세를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든다. <비평과전망>의 진로에 대해서도 사실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과감한 해체냐 아니면 후배세대로의 이월이냐 이런 고민이다. 또 한 가지는 과거에 몇 권의 책을 낸 바 있는데, 2007년에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책의 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방학 동안에 책을 한권 쓸 생각인데, 원고가 끝나봐야 알 것 같다.

2007년, 우리 사회에 대한 새해 희망이 있다면?

진보적 지식인 사회의 이완과 무력감이 커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나와 같은 세대인 30대 중후반의 젊은 지식인들이 한국사회의 진보적 대안을 만들기 위한 공동체를 구성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우리 세대들은 이전 세대들에 비하자면 연대의 경험이 미약하고, 사회적 실천에서 다소 소극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또 과거처럼 한 시대의 의미 있는 지적 담론을 생산해내는 데 다소는 방관적이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포스트 386 어쩌구 하는 표현을 들을 때면, 사실 이게 무슨 세대개념이냐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것이 문학이든 또 어떤 것이든 일단 장르나 실천의 장을 뛰어넘어, 한국사회의 현실을 고민해 보는 그런 장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정리 위지혜 기자) 

07. 02. 07.

P.S. 비슷한 연배인 탓에 생각하는 나로선 공감하는 바가 많다(칠공년 개띠면 동생뻘이긴 하지만). 차이라면 평론가가 훨씬 진지하다는 것 정도(나는 대개 반어적이다). 관심있으신 분은 문학평론가 이명원과 퍼슨웹과의 인터뷰 http://www.personweb.com/sub10/lee_mw/ymw1.html 도 읽어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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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2-07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사실 시장에 의존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은 사실이죠. 저 같은 전공자 또는 지망생도 계간지 2개 월간지 1개 겨우겨우 보는 것이 고작인데.. 나머지는 중요한 글 실리지 않으면 안 보고, 볼 수도 없는데. 도서관들이 많이 구입해주고 그러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많을 필요가 있나, 어떻게 각 문예지들은 구분되는지를 다시금 반성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나비80 2007-02-07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배 위지혜 기자가 선배 이명원 평론가를 인터뷰 했군요.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의 이야길 보니까 더 헛헛한 느낌입니다. 얼마 전 이명원 선배 담배 피우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긴 했습니다. 그래도 저렇게 씩씩하게 생각하시니 다행입니다.
계간지가 너무 많다고 하나 둘만 남기자면 쉽게 <창비>나 <문지>정도만 떠올릴텐데 그것도 문제가 되겠지요. 소장 평론가들이 의욕적으로 책을 묶어도 1000부 밑으로 마감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자본의 입장에서 그걸 연명시키는 것도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겁니다. 군소 계간지들이 기존의 담론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담론을 생산하는 전초기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게 근본적인 자구책이기도 할테고요. 기인 님이 말씀하신 구별짓기 전략도 염두에 두어야겠지요.

니브리티 2007-02-08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판의 내부사정은 3년전부터 안좋았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열림원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데까지 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좀 우울한 소식이네요. 등단 후 1년반만에 첫 청탁을 받은 곳도 문학.판이었고, 첫 소설집을 낸 곳도 문학.판이었고, 계절마다 뒷풀이할 때는 꼬박꼬박 참석했던 곳도(물론 불러줬기 때문이지만) 문학.판이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한국문학>처럼 휴간과 재출간을 거듭하면서도 꾸준히 나오는 곳도 있으니 조만간 재출간되리라 기대합니다. <문학과경계>에도 제 후배가 편집위원으로 있어서 사정은 잘 아는데, 어쨌든 겨울호는 서점에서는 구하기 힘들지 싶습니다.... 이 상태면 문예지가 문학생산을 담당하던 때에서 서서히 멀어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네요. 장기적으로는 일본처럼 <장편/단행본 시장>과 <동인지>체제로 구분되지 않을까요. 전자는 일단 팔리는 쪽에 무게를 실을 것이고, 후자는 문학성(?) 위주로 말입니다...

로쟈 2007-02-08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었군요. 대개 또 위기가 기회이기도 하니까 좀 다른 방식의 '생존'이 모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배를 뒤집는 건 중국어에서 '번신'이라고 하던데, 번신하거나 변신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