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커피, 곧 커피믹스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애연가들이 흡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듯이 커피(믹스) 애호가들 또한 이 '간편한'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요즘은 여름인지라 나는 하루 한 잔 정도의 냉커피를 마시고 두 잔 정도의 커피믹스를 습관처럼 마신다. 이렇듯 "습관적으로 마시게되는 ‘어른들의 불량식품’ 커피믹스를 바로보자"란 취지의 기사가 있어서 옮겨온다(몸으로 느끼게 되는 기사이다!). 이런 기사를 자주 읽어둬야 그래도 커피량을 줄일 수 있을지 모르겠기에(반대로 내성이 생길까?).

한겨레21(07. 07. 12) 커피믹스, 오늘 몇 잔째?

하루에 1100만 개, 한 해에 43억 개를 마신다?
논술 잡지 <월간 논>을 만드는 신관식(32)씨는 지난 7년간 하루 평균 7봉의 커피믹스를 위에 들이부었다. 군대 시절, 힘들 때마다 자판기에서 밀크커피를 뽑아 먹던 습관이 제대 뒤에도 계속됐다. 하루 활동 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로 보면 2시간에 한 봉씩 조제해 마신 셈이다. 사무실마다 신씨와 같은 이들이 많아서일까. 커피믹스 시장은 지난 5년 사이 3배 가까이 성장했다. 2001년만 해도 2128억원이었던 커피믹스 시장 규모는 매년 늘어 지난해에는 6047억원에 이르렀다. 커피믹스 한 봉당 가격을 140원(20개들이 2800원)으로 계산하면 연간 43억 개의 커피믹스가 팔려나갔다는 얘기다. 커피믹스가 ‘기호식품’을 넘어 대다수 직장인들의 ‘생필품’이 된 것이다.

“지방·화학첨가물을 위에 들이붓는 셈”
커피믹스 커피 제조 과정은 간단하다. ‘커피 스틱 포장 귀퉁이를 뜯는다 → 내용물을 컵에 확 붓는다 → 정수기 물을 받는다 → 휘휘 젓는다.’ 수십만 명의 대한민국 커피믹스 애호가들은 아침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회사원 배진옥(27)씨는 “아침에 졸릴 때 먹으면 잠이 깨는 느낌이라서, 아침마다 먹는다”고 말했다. “깜빡하고 안 먹은 날은 ‘오늘 안 먹었지’ 생각하고 일부러 타 먹는다”고 덧붙였다.

저마다 조제의 비법도 있다. 산업디자인 전문회사 디자이너 김남연(36)씨는 “스테인리스 스푼으로 휘저으면 열이 뺏겨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꼭 내용물을 비운 포장지로 저어야 한다”며 “휘젓는 재미로 믹스커피를 마신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한 봉지의 커피는 한 잔의 소화제다. 주부 김경례(42)씨는 “밥 먹고 나서 속이 더부룩할 때 마시면 느끼한 느낌이 가신다”고 말한다. 등산 가는 이들도 배낭에 한두 개씩 꼭 커피믹스를 꼽아 가고, 술 먹은 다음날은 입 안을 개운하게 하려고 또 한 잔 타 먹는다. 커피믹스는 이렇게 다양한 용처를 갖고 많은 이들을 중독자로 만들고 있다.

한국은 인스턴트 커피 공화국이다. 커피 소비량은 세계 11위지만, 인스턴트 커피 소비량은 세계 정상이다. 서유럽, 미국 등은 원두커피가 커피 시장의 80%를 차지한다. 일본도 60%가 원두커피 몫이다. 반면에 한국은 인스턴트 커피가 78%를 차지한다. 지난해 9512억원 커피시장에서 원두커피 판매액은 372억원으로 입지가 미미하다. 대신 인스턴트 커피는 7452억원, 그중에서도 커피믹스가 6047억원이다. 집이든 사무실이든 유리병에 담긴 커피, 설탕, 프림을 티스푼으로 떠서 저어 먹던 모습은 이제 ‘추억’이 됐다. 지금은 가로 2cm, 세로 15cm의 막대형 포장이 병커피와 티스푼을 대체해버렸다.

그렇다면 커피믹스에는 맛뿐만 아니라 건강도 ‘믹스’돼 있는 것일까. 날마다 마시는 커피믹스에는 과연 어떤 성분이 믹스돼 있을까.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의 저자 안병수씨는 “커피믹스를 컵에 붓는 것은 지방과 화학첨가물들을 위 속에 들이붓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안씨는 왜 이렇게 말하는 걸까.

문제는 ‘프리마’라고 불리는 커피 크리머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커피 크리머가 우유나 유제품으로 만들어졌다고 오해하고 있다. “주로 원두커피를 마시지만, 각성이 필요할 때는 꼭 커피믹스를 집어든다”는 회사원 윤민혜(28)씨도 커피 크리머 성분을 묻자 “우유로 만든 것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 짙은 갈색빛의 커피가 프림을 넣으면 ‘부드러운 밀크빛’으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맛도 부드러워져 왠지 우유 맛 같다.



별 생각 없이 꾸준히 먹어서 문제
하지만 짐작은 사실과 다르다. 커피 크리머에서 커피 색깔을 묽게 만들어주는 주성분은 우유가 아니라 기름이다. 식물성 유지(기름)를 물에 섞고, 물과 기름이 잘 섞이도록 식품첨가물 유화제를 넣으면 커피 크리머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물에 기름을 섞어 만든다고 해서 아베 쓰카사(<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 저자)는 커피 크리머를 ‘밀크맛 샐러드유’라고 부르기도 했다.

안병수씨는 이 기름덩어리에 각종 식품첨가물들이 추가된 것이 커피 크리머라고 설명한다. 맛과 향이 부드러운 커피 크리머를 만들기 위해 카제인나트륨, 인산이칼륨, 폴리인산칼륨 같은 각종 식품첨가물들이 추가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사용되는 첨가물들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공인한 것들이다. 안씨는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식품첨가물들을 자기도 모르는 채 하나씩 먹게 되면 하루에도 수십 가지 첨가물을 섭취하게 된다. 커피믹스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3~4잔씩 별 생각 없이 꾸준히 먹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다.”

커피 크리머에는 예상과 달리 트랜스지방은 없다. 대신 100% 포화지방산이다. 포화지방도 다량으로 섭취할 경우는 건강에 해롭다. 한진숙 동의과학대 식품과학과 교수는 “포화지방을 많이 섭취할 경우 심혈관계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해 오스트레일리아 아델레이드대 심장전문의 스티븐 니콜스 박사는 “포화지방인 코코넛 기름으로 만든 당근케이크와 밀크셰이크를 먹은 사람의 경우, 3시간 만에 동맥 내막 기능이 저하되고, 6시간 뒤에는 혈전으로 인한 염증을 억제하는 고밀도지단백질(HDL)이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포화지방이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높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커피믹스 뒤의 영양분석표에는 콜레스테롤 함량이 0mg이라고 쓰여 있다. 크리머의 포화지방이 콜레스테롤 함량을 높인다면야, 콜레스테롤 함량이 0mg이라는 건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하다.

김지영 식약청 전문위원은 “포화지방을 하루 섭취 열량의 10%까지 섭취하는 것은 괜찮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평소에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이 커피믹스 커피를 통해 추가로 포화지방을 섭취할 경우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커피믹스를 통해 섭취하게 되는 당분의 양도 적지 않다. 12g 커피믹스 한 봉에 담겨 있는 설탕은 5~6g이다. 하루에 커피믹스 다섯 봉을 먹는 사람은 설탕만 40g을 집어먹은 셈이다. 지난해 여성이 하루에 열량을 많이 섭취하는 식품 4위가 커피믹스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김초일 한국보건산업진흥연구원 박사는 “이렇게 커피믹스 섭취량이 늘다가는, 언젠가 한국인이 섭취하는 당분이 죄다 커피믹스에서 온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할지도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합성 착향료 추가하고서 ‘웰빙 커피’?
최근에는 이런 커피 프리머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과 ‘좋은 먹을거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감안해 ‘웰빙 커피’가 출시됐다. 하지만 이 웰빙도 미심쩍다. 특히 한국네슬레가 대니얼 헤니를 내세워 선전하고 있는 ‘웰빙 밀크커피’는 일반 커피에 없는 칼슘을 보강하기 위해 탈지분유를 첨가했다.

그러나 일반 믹스커피에는 들어가지 않는 합성 착향료가 0.2% 첨가됐다. 안병수씨는 “커피에 들어가는 첨가물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유화제와 향료, 색소 등인데 기존 커피믹스에도 안 들어가는 합성 착향료를 쓰고서는 ‘웰빙’이라 이름 붙이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의혹과 의심, 우려들에도 불구하고 커피믹스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안경호 동서식품 홍보실장은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커피 심부름을 하던 여직원들이 크게 줄면서 스스로 커피를 타서 마시는 문화가 정착된데다 냉·온수기 보급이 확대되면서 커피믹스 시장이 성장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 실장은 “커피믹스가 커피 시장에서 점점 확대되는 분위기가 마냥 반가운 건 아니다”고 말했다. 커피믹스 판매가 증가하는 것은 곧 ‘경기가 좋지 않음을 의미한다’는 것. 안 실장은 “사람들이 일하면서 빨리 털어 빨리 먹는 믹스 커피를 마시는 건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똑같은 커피를 먹는 데 대한 안타까움도 있다. 커피는 농도의 높낮이에 따른 무게감, 커피를 끓일 때 나는 향기, 얼얼한 맛에서부터 달콤한 맛까지를 결정하는 산도 등에 따라 수천 가지 맛을 가지고 있다. 브라질, 케냐, 예멘 등 커피가 나는 나라에 따라 맛도 다양하고 기후, 재배 조건, 볶는 방법 등에 따라서도 맛이 천차만별이다. 커피 로스팅 전문가 전광수씨는 “이렇게 다양한 맛을 모른 채 모두 똑같은 커피 맛을 즐기는 모습이 슬프기까지 하다”고 말한다.

<월간 논>의 신관식씨는 7년의 커피믹스 생활을 접고 지금은 원두커피로 바꿨다. 신씨의 주장으로 지난해부터 사무실에 원두커피 기계를 들여놓은 것이다. 덕분에 사무실 식구들도 주로 원두커피를 마시고 가끔 커피믹스를 애용한다. 신씨는 “7봉씩 7년간 지속된 커피믹스 생활 동안 계속해서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었다. 지금은 속이 깔끔하다”고 말했다.

커피믹스에 천인공노할 ‘나쁜’ 성분이 들어 있는 건 아니다. 가끔 한 잔씩 즐기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하다. 다만 아무 생각 없이 하루 몇 개씩 믹스 껍데기를 까다 보면, 배 언저리에 치유할 수 없는 포화지방을 두르고 다녀야 할 게 뻔하다. 어른들의 불량식품, 커피믹스. 무심코 뜯기 전에 ‘이 안에 뭐가 들었나’ ‘오늘 몇 잔 먹었나’ 의심을 찬양해보자.(박수진 기자)

07. 0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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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15 11:46   좋아요 0 | URL
뭐든지 스트레스 안받고 잘 먹고 잘 소화시키는게 건강의 지름길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하루에 커피 석잔 정도는 기본인데... 그것마저 끊으라면
이 답답한 인생 무슨 낙으로 사나요? ㅋ~
글 고맙습니다 로쟈님 :)

로쟈 2007-07-15 15:31   좋아요 0 | URL
습관이란 게 길들이기 나름이어서 이왕이면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게 더 낙이 되겠죠.^^

마노아 2007-07-15 20:29   좋아요 0 | URL
하루 한잔은 애교로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봅니다. 전 여름 겨울에만 마셔요(>_<)여름엔 더워서, 겨울엔 추워서..;;;;

로쟈 2007-07-15 21:13   좋아요 0 | URL
좀 문제가 되려면 매일 4-5잔 이상은 마셔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Mephistopheles 2007-07-15 21:53   좋아요 0 | URL
커피는 여간해선 한 잔도 안먹는데..그게...야근이 일상이다 보니 반사적으로 마셔주고 있는 현실이 조금은 두려워지는군요..^^

오월의시 2007-07-15 22:56   좋아요 0 | URL
칼로리 높다는 사실을 알아도 어쩔 수가 없네요^^;;

몽당연필 2007-07-16 11:03   좋아요 0 | URL
저도 하루에 1~잔은 마시는데...^^;;

로쟈 2007-07-16 15:50   좋아요 0 | URL
하루에 3잔까지는 괜찮은 걸로 중지를 모으도록 합시다!..
 

벌써 재작년 일이 돼 버렸는데, "2005년 10월 27일부터 11월 18일까지 프랑스 전역 274개 방리유(도시 외곽)에서 발생한 ‘방리유 사건’의 의미와 원인을 철학, 역사학, 정치학, 사회학 등 각 분야의 젊은 국내 연구자들이 다각도에서 추적한 책"이 출간됐다. '방리유, 프랑스 공화주의의 이면'이란 부제를 단 <공존의 기술>(그린비, 2007)이 그것이다(그 이면이야말로 공화주의의 구성소가 아닌지 궁금하다). 당장 손길이 가지는 않을 책이지만 공저자들과의 인터뷰 기사 정도는 챙겨두도록 한다.

한겨레(07. 07. 14) 우리 안의 이방인, ‘통치’ 아닌 ‘공존’ 필요

“방리유는 명목상으론 프랑스에 포함돼 있으나 실질적으론 각종 권리와 지위 등에서 배제되는, 더 정확하게는 배제를 조건으로 해서만 포함되는 사회적 장소를 지칭하는 유적(類的) 이름이다. 이 역설적 공간에 거주하는 주변인, 소수자, 이방인 등에 대한 포함·배제의 통치술이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첫번째 과제다.”

프랑스를 흔들고 세계를 놀라게 한 2005년 10월 말의 ‘68혁명 이후 최대 소요사태’가 일어난 지 2년 가까이 지난 지금 아주 특별한 ‘현장 보고서’가 한국에서 출간됐다. <공존의 기술- 방리유, 프랑스 공화주의의 이면>(그린비). “방리유자르(방리유 주민들)에 대한 표상, 치안불안과 그것을 활용하는 권력메커니즘, 여성학적 접근, 새로운 저항형태로서의 재조명, 정책 차원의 비판, 그리고 프랑스 이민역사와 노동시장 및 이민노동” 등 다각적으로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는 450쪽짜리의 방대한 보고서다. ‘진짜 전문가’들이 만든 21세기형 ‘대안언론’일 수 있다.

필자는 모두 9명. 그들은 1만대에 가까운 자동차들이 불타고 3천여명이 체포된,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 공화주의의 치부와 민주주의 위기 징후의 단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태 당시 현장에 있었고 지금도 거기에 있다. 8명은 한국의 프랑스 유학생, 한 명은 에티엔 발리바르 파리10대학,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캠퍼스 교수. 지난 11~12일 <공존의 기술> 출간작업을 이끈 이기라(35·파리4대학 정치학·유학 6년차·왼쪽)씨, 양창렬(29·파리1대학 철학·유학 5년차·오른쪽)씨와 통화하고 전자메일로 접속했다.

“우리의 작업은 소요 발생 전인 2005년 초에 이미 시작됐다. 그때 철학공부모임, 재불 사회과학회, 라빌레트 건축학교 한인학생회를 주축으로 재불 유학생단체협의회가 결성됐고, 가장 중요한 연간사업으로 연합학술회의를 기획했다. 이때 채택된 학술행사 주제가 바로 ‘공존의 기술: 포함/배제의 동학’이었다. 다양한 인종 및 국적자들이 모여 사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봉합을 직접 체험하면서 이른바 ‘시테’(게토, 방리유의 또다른 이름)의 문제를 이방인에 대한 표상과 공간적 배치 등과의 연관 속에서 고찰해 보려 했다.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던 10월 말에 전국적인 소요가 발생했고 이 주제는 현실적으로 더욱 중요성을 갖게 됐다.” “부유하는 이방인의 정체성”을 지닌 그들에게도 사태의 조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완연했던 모양이다.

책을 낸 의도는? “한국에서도 크게 보도됐지만, 저간의 사정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한국에 사건의 의미가 온전히 전달되진 못했다고 봤다. 그래서 작업을 더 발전시켜 한국에 좀더 풍부한 고민과 논쟁거리들을 던져주자는 생각으로 기획했다.” “때늦은 책일 수 있지만, 한국 상황에서 보면 ‘때이르게’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이주 노동자도 40만을 헤아리지 않는가. 배제당하고 싸우는 광범한 비정규직들을 보라.

방리유란? 사전적 의미는 “대도시를 둘러싼 (외곽의) 밀집지역 전체”를 가리키지만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배제를 조건으로 해서만 포함되는” 역설적 공간 방리유 주민 대다수는 2차대전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의 ‘제3기 이민물결’을 탄 프랑스의 옛 식민지 출신들.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마그리브 지역 무슬림과 서부 아프리카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말리 출신과 프랑스 국적의 2, 3세 자손들이다. 호경기로 노동력이 부족할 때 환영받았던 그들은 불경기 때마다 “너희 땅으로 돌아가라!” “프랑스를 프랑스인에게!” 따위의 구호들이 상징하는 극우담론 속에 실업 등 모든 불행의 원인 제공자로 낙인찍혔다.

“이민 1, 2세대는 경기침체 뒤 은퇴하거나 실직한 상태고, 3세는 청년실업에 처했으니 거의 유폐된 공간이다. 이들이 모여 살면서 박탈감은 더욱 확산된다. 이전의 아프리카 식민지 도시 하나를 그대로 옮겨 놓은 형국이라 할까?”

지난 20여년간 권력자들은 저항하는 그들을 범죄자로 몰았다. “사회적 갈등 해결에 대한 (자신들의) 정치적 무능력이 낳은 불안, 공포, 두려움 등을 역으로 반대자, 나아가 ‘내부의 적’을 제조해서 그런 정치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했다.” 공화국 보호를 내건 치안담론은 “빈곤, 실업, 불평등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불안요소들을 감추고, 그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들 개인 책임으로.


이민자들은 “이전에 프랑스 노동자와 식민지 대중이 담당했던 최하층 계급의 역할을 떠맡게 됐다. 결국 계급문제가 인종문제와 중첩되면서 문제의 본질이 전이되는 과정을 겪게 된 것이다.” 이민자 문제가 아니라 “내부의 이질적인 자들, 즉 내부의 이방인으로 바라봐야 문제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더 풍성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얘기와 상통한다. 중심부-주변부 관계 해체를 둘러싼 식민지 쟁점과도 겹친다.

그렇다면 ‘공존의 기술’은? “방리유 청년들이 보여준 반란의 형태, 자생적 사회운동, 히잡 착용을 통한 주체성의 정치화 등은 기존 통치방식의 틈새를 벌려 새로운 공존의 기술을 세우기 위한 단초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말로도 바꿔 놓을 수 있다. “궁극적인 사회 안전은 결코 치안강화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 자유·평등·박애가 조화를 이루는 진정한 혁명정신의 회복과 사회안전망의 재구축을 통한 온전한 사회통합 없이는 불가능하다.” 공존 아닌 통치 기술은 문제를 심화시킬 뿐이다.(한승동 선임기자)

07. 07. 15.

P.S.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재작년 소요사태 때 누구나 마티유 카소비츠의 영화 <증오>(1995)를 떠올렸을 것이다. '방리유'란 말을 아마도 처음으로, 그리고 대중적으로 우리에게 각인시켜준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왠지 현실이 실제 다큐처럼 찍은 그 영화를 뒤늦게 '모방'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이다. 조금 특이해 보이는 건 저자들이 '공존의 정치' 대신에 '공존의 기술'이란 화두를 고른 것. 하지만 "궁극적인 사회 안전은 결코 치안강화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 자유·평등·박애가 조화를 이루는 진정한 혁명정신의 회복과 사회안전망의 재구축을 통한 온전한 사회통합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공존의 기술'보다는 '공존의 정치'에 더 많이 해당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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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나온 책들 가운데 깜짝 눈길을 끈 책은 에드워드 윌슨과 베르트 횔도블러의 <개미 세계영여행>(범양사, 2007)이다. 나는 잠시 '긴장'했었는데, 혹 두 사람의 대작 <개미>가 번역된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확인해보니 <개미들>의 다이제스트판으로 지난 96년에 번역출간된 책 의 개정판이다(그러니까 나도 갖고 있는 책이다. 박스보관도서이긴 하나). 즉, "곤충학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평가받는 베르트 휠도블러와 에드워드 윌슨의 <개미들>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책"이며 "개미학 개론서이자 개미에 대한 자신들의 연구 과정을 보다 쉽게 이야기화해서 만든 책"이다. 약간의 아쉬움을 달래면서 문화일보의 리뷰를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7. 07. 13) '개미’ 통해 본 인간 세계의 성찰

이 책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책이 아니다. 1996년 같은 내용과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는 책이다. 절판됐던 책이 10여년 만에 그대로 재출간됐는데도, 이렇게 정색하고 지면을 할애하는 것에는 물론 이유가 있다. 개미학 개론서이자, 저자들의 연구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의 탁월함과 감동이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기 때문이다(*96년판은 원서의 표지를 그대로 쓰고 있다).



알려지다시피 저자들은 개미와 사회 생물학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적인 권위자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와 하버드대를 오가며 연구한 베르트 횔도블러나 하버드대 생물학교수인 에드워드 윌슨은, 현존하는 가장 걸출한 과학저술가다.



우선 이들의 공동저작인 ‘개미(The Ants)’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의해 ‘모든 곤충학 저서 중 가장 훌륭한 책’으로 선정됐을 뿐 아니라, 과학도서로서는 드물게 퓰리처상을 받았다(*지난 1990년에 출간됐고, 746쪽 분량이다). 이들이 체계를 세운 사회생물학은 20세기 생물학뿐 아니라, 인문·사회학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국내에서 학문간의 통섭을 주장하는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도 하버드대에서 에드워드 윌슨에게 배운 학자 중 한 사람이다(*이젠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재천 교수의 <개미제국의 발견>(사이언스북스, 1999)는 다이제스트의 다이제스트 버전이라 할 만하다).



이들의 기념비적인 저작인 ‘개미’가 전문 생물학자를 겨냥한 전문서적이면서, 개미의 백과사전이라면 ‘개미 세계 여행’은 일반인을 위한 책이다. 그렇다고 격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처음 대하는 이들에겐 경이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개미에 대한 모든 것이 풍부한 도판과 함께 매력적인 문장으로 펼쳐져 있다.

개미는 우리가 사람 다음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대수롭잖은 생명체다. 그러나 개미만큼 인간과 비슷한 사회 구조를 가진 생물은 어디에도 없다. 고도의 의사소통이 전제돼야 가능한 각종 합동 작전을 비롯해, 군체(群體) 구성원들의 조직화는 복잡하고 긴밀해서 경이에 가깝다. 일개미의 충성은 거의 완벽하다. 개미의 군체간 싸움도 인간의 전쟁보다 더 자주 일어난다. 종에 따라 개미들은 선전, 기만, 고도의 감시, 대규모 공격 따위를 단독이나 연합으로 수행한다.

개미 세계에서 조화와 충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난소를 가진 일개미들은 더러 여왕과 경쟁을 벌이기도 하고, 순위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군체에 대해 몸을 던져 충성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군체 안에서 다른 개체와 투쟁하는 모습이 인간에 다름 아니다.

저자들은 개미에 대한 이같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하는 사소한 관찰에서 시작해 개미라는 개체의 삶과 죽음, 사회 조직, 환경과 세세한 생활, 그리고 성공적인 진화에 이르기까지를 흥미진진한 드라마처럼 풀어나간다. 책을 따라 개미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독자는 사회의 기생자에서 아이를 기르는 양육자, 군대, 사냥꾼, 건축가들을 만난다.

인간 세계의 또 다른 모습이자, 축소판이다. 사회생물학이라는 학문이 세계를 통틀어 500명 밖에 안되는 개미 연구가 사이에서 체계화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비단 개미 세계를 돌아보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특이한 방법으로 인간 세계를 성찰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김종락기자)

07. 07. 14.

P.S. 저자인 에드워드 윌슨에 대해서는 구구한 설명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 개인적으론 '에드워드 윌슨과 나'(http://blog.aladin.co.kr/mramor/267854)란 제목의 리뷰도 쓴 적이 있는데, 최근 몇 년간 출간된 책들은 다 챙기질 못했다. <우리는 지금도 야생을 산다>(바다출판사, 2005)나 <생명의 미래>(사이언스북스, 2005) 같은 책들이 그렇다.

'에드워드 윌슨'과 '개미'라고 하니까 개인적으론 두 권의 책이 떠오른다. 하나는 '개미'와 관련된 것으로 데이비드 아텐보로의 <생명의 신비>(학원사, 1985)이다. BBC의 자연다큐로도 만들어진 듯한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주우, 1982; 사이언스북스, 2006)와 함께 고등학교 시절 내가 소장하고 있던 '가장 고급스런 교양서'였다. 특히 <생명의 신비>의 경우는 주로 개미에 관한 얘기를 독후감으로 써서 교육감상을 받은 기억이 있다(언젠가 재출간된 걸 본 듯한데 검색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에드워드 윌슨'과 관련해서는 <도덕적 동물>(사이언스북스, 2003)의 저자 로버트 라이트가 쓴 <3인의 과학자와 그들의 신>(정신세계사, 1991). 여기서 3인의 과학자는 에드워드 프레드킨, 에드워드 윌슨, 그리고 케네스 볼딩 세 사람인데, 에드워드 윌슨이란 독특한 과학자에 대해서 처음 접하게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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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7-07-14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개미하면 떠오르는게 중학교 때 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인적으로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게 봤던...)이네요/

로쟈 2007-07-14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베르의 <개미>는 저도 읽었었는데, 그래도 소설보다는 과학책이 더 재미있습니다...

가넷 2007-07-14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책'이라는데 가격은 그렇게 쉽게 접근할 만하지는 않군요...--;

로쟈 2007-07-15 10:4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이 책 같은 건 사정이 나은 편이죠. 화보도 없는 200여쪽짜리가 만원이 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마늘빵 2007-07-14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빈스키 님과 같이 개미는 중학교 때 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요즘엔 세 권짜리로 나오는거 같던데. 이쁘게 양장본으로. 전 이거 재밌었어요.

로쟈 2007-07-15 10:42   좋아요 0 | URL
베르베르야 그 자신이 놀랄 정도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읽혔으니까요...
 

알라디너라면 알겠지만 페이퍼를 다 마무리하고 등록을 누르자 로그인 화면이 뜨는 것만큼 황당한 일도 없다. '영어 광풍'에 관한 페이퍼와 함께 이 '시베리아'에 관한 페이퍼가 어제 연이어 그렇게 골탕을 먹게 했는데(마음 같아선 '시베리아 유형'을 보내고 싶다!), 홧김에 방치해둘까 하다가 간단히 마무리한다.

시베리아에 관한 책들이 종종 출간된다. 바이칼호 관광을 다녀온 분들이 주변에 드물지 않은 것처럼 시베리아나 시베리아 횡단열차 또한 아주 먼나라 얘기만은 아니게 됐다. 아, 올렉 멘쉬코프 주연의 <러브 오브 시베리아>(원제는 <시베리아의 이발사>) 같은 영화도 대번에 떠올려 볼 수 있겠다. 왠지 친근한 자작나무숲이 지평선을 가득 채우고 있는 동토의 땅. 유형지. 거기에 요즘엔 석유, 가스 매장지란 이미지가 들러붙은 땅 시베리아에 대한 책이 한권 더 출간됐는데, 이번엔 러시아 정치사 전공자의 저작이라 좀더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저자 인터뷰 기사를 읽어둔다.   

경향신문(07. 07. 14) [이사람]“문화·야생의 인프라 넘쳐납니다”

김창진 성공회대 교수는 2000년부터 매년 한번씩 시베리아에 다녀왔다. 총 7번이다. 올해에도 지인들과 곧 시베리아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매년 찾을 만큼 시베리아는 그에게 매력적이다. 그래서 책도 쓰게 됐다. ‘시베리아 예찬’(이룸). 하지만 단순한 여행서는 아니다. “시베리아를 소재로 근대 자본주의 문명을 비판적으로 보고자 했다. 시베리아는 자본주의 문명의 대안적 공간이자 상징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김교수가 러시아, 그 속의 시베리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어쩌면 88서울올림픽 때문이다. “냉전으로 80년, 84년 올림픽이 모두 반쪽으로 치러졌습니다. 88올림픽은 오랜만에 전 세계가 참여했죠. 북한과 함께 적대국가로 여겨졌던 (당시) 소련의 선수들이 서울에 와 경기를 하면서 소련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져 90년 한국과 소련은 수교했다.

일반인은 방문조차 할 수 없었던 소련 사회에도 틈이 생기면서 모스크바대학 유학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한국정치(현대사)로 국내에서 석사를 마치고 영국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던 그에게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사회주의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체제라고 자부한 소련이 왜 붕괴하고 있는지 구체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학문적 관심으로 소련을 택했고 91년 모스크바로 갔다. 하지만 그 곳에서 기대하지도 않았던 것에 매료당하게 됐다. 러시아문화였다. “80년대 초반 학생운동을 하면서 문화예술을 즐기는 건 용납이 안됐죠. 대학 때 세종문화회관 한번 가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스크바, 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 곳곳에서는 고급문화를 일상적으로 즐기고 있었어요.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레공연을 봤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을 우리 돈 단돈 몇 백 원으로 볼 수 있었어요.” 모든 인민이 예술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주의 이념 정책으로 예술은 생활 곳곳에 넘쳐났다. 그의 딸이 매일 보던 TV 만화영화도 “그렇게 서정적이고 자연친화적일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것이 96년. 시베리아에 처음 간 것은 한·소 수교 10주년을 기념해 간 2000년도의 연구여행 때였다. 유학 당시에는 돈과 시간이 없어서 가지 못했다고 한다. 유학 시절에는 러시아 문화에 매료당했다면, 시베리아 여행에서는 자연에 감탄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이어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면서 중간중간에 다섯 개 도시에서 내렸습니다. 공장, 농장 등에 들러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변해가는 모습을 현장조사했어요. 17박18일 동안 이어진 일정에서 바이칼호수 등 시베리아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됐습니다.”

그가 꼽는 장소는 알혼섬. “바이칼호수의 진면목을 보려면 호수 안에 있는 알혼섬에 가 봐야 합니다. 정답고 아름다운 풀밭, 바다 같은 호수, 원주민의 성소. 그 속에 있으면 도시생활의 각박함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돌아볼 수 있고, 우주에 대해 성찰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 부족한 문화 인프라, 자연친화적·영적인 환경 등을 갖고 있기에 러시아, 또 시베리아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김교수는 강조한다. 책의 부제가 ‘야생의 숲, 문명의 영혼’인 이유다. 그는 “러시아라고 하면 ‘마피아’나 ‘가난한 나라’를 떠올리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책은 시베리아의 자연·사람·문학·사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임영주 기자)

07. 07. 14.

P.S. 시베리아 하면 또 떠오로는 책은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에프의 <데르수 우잘라>(갈라파고스, 2005)이다(관련 페이퍼는 http://blog.aladin.co.kr/mramor/897491). 사둔 지는 꽤 됐지만 읽을 짬을 못내고 있는 책인데 당장 시베리아로 '피서'를 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닌 김에 관련서들과 함께 그냥 미친 척하고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시베리아가 좀더 실감나지 않을까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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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영어에 미친 나라'란 제목으로 몇몇 기사를 스크랩해놓은 적이 있는데, 이번주 한겨레21에 이 문제에 대한 강준만 교수의 유익한 분석칼럼이 실렸다. 영어 광풍은 개개인의 광기의 소산이 아니라 한국 근대사의 조건(시스템)이 낳은 자연스런(합리적인!) 결과라는 것. 문제를 보다 넓게/깊게 생각해보기 위해서 필독할 만하다.  

△ 영어 광풍의 시대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영어는 필수다. 치열한 경쟁이 지배하는 한국에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광풍에 휩쓸리는 건 ‘모순’된 현실에서 ‘합리적 적응’이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한겨레21(07. 07. 12) 영어 광풍은 합리적인 행위다

한국인은 왜 영어 공부를 하는가? 한국 최초의 영어 교육 기관인 동문학교가 서울 재동에 설립된 1883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12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한 가지 일관된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영어가 성공과 출세를 위한 필수 도구였다는 사실이다.

120여 년간 성공·출세의 도구

개화기 시절 미국 교육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지적했듯이, 조선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는 목적은 한결같이 ‘벼슬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런 의도가 있었건 없었건, 이 시기부터 영어의 위력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인물은 이승만이었다.


1886년 6월 정식 학교로 개교한 배재학당에 몰려든 학생들이 배재학당에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건 바로 영어 공부였다. 1894년 말 배재학당에 입학한 이승만도 훗날 “내가 배재학당에 가기로 한 것은 영어를 배우려는 큰 야심 때문이었고, 그래서 나는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다”고 회고했다.

개화기의 대표적인 영어 천재는 윤치호로 알려져 있지만, 이승만의 영어 능력도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영어를 공부한 지 6개월 만에 배재학당의 신입생반을 맡아 영어를 가르칠 정도로 급성장했다. 이승만은 입학한 지 2년 반 남짓한 때인 1897년 7월에 배재학당을 졸업했는데, 이승만은 각국 외교관들까지 참석한 졸업식 행사의 일환으로 ‘조선의 독립’이란 제목으로 영어 연설을 해 명성을 떨쳤다.

이후 이승만은 미국 유학을 떠나, 조지워싱턴대학 학사, 하버드대학 석사, 프린스턴대학 박사학위를 따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한데다 한반도 문제에 소련과 더불어 결정권을 가지면서 이승만의 영어 실력, 미국 학력, 미국 인맥은 그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이승만의 독보적인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해방과 함께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는 포고령 1호를 발표함으로써 영어 능력이 권력의 원천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해방 정국에서 가장 먼저 나온 신문은 국문 신문이 아닌 영어 신문이었으며, 좌익 계열 신문인 <조선인민보>의 창간호(9월8일)마저 1면에 영어로 ‘연합군 환영’이라는 톱기사를 실었다는 게 그걸 잘 말해주었다.

미군정 치하에선 영어를 할 수 있는 통역관들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통역 정치’가 판을 쳤다. 그런데 영어 통역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이는 거의 모두 일제 때 해외유학을 했거나 국내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대지주 집안 출신으로 해방 전엔 친일, 해방 뒤엔 친미 노선을 취한 사람들이었다. 해방 정국의 정치가 왜곡된 주요 이유 중 하나다.

미국 가려면 교회 먼저 가라

한국 군대 창설의 최대 문제 가운데 하나도 영어였다. 미군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했기에 미군정은 1945년 12월5일 군사영어학교를 만들었다. 이 군사영어학교 출신이 한국군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영어 능력은 개인적 벼락 출세를 가능케 한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일부 통역관들은 일본인이 남기고 간 적산가옥을 차지하고 온갖 특혜를 챙기거나 중개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일보> 1948년 8월12일자에 실린 ‘악질통역: 건국을 좀먹는 악(惡)의 군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밤이 되면 이 집 저 집으로 찝차를 몰고 돌아다니며 뚜쟁이 노릇하기에 분주하여 양쪽에서 몇 푼 안 되는 푼돈이나 얻어먹는 추잡한 통역으로부터 호가호세(狐假虎勢)하여 진주군의 권한을 최대한대로 악용하고 사복을 채우는 통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리 유형을 소개했다.

그렇게 영어 능력이 우대받는 해방 정국에서 최초의 베스트셀러는 영한사전이었다. 많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그 영어사전 속에 밝은 미래가 있는 것처럼 느끼면서 보물처럼 소중하게 간직하곤 했다”는 게 한결같은 증언이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우대했다. 이기붕은 미국 유학생 출신으로 미군정 통역을 하다가 이승만의 비서가 되어 그의 후계자 위치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영국 배를 타던 마도로스였던 신성모도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이승만의 사랑을 받아 국방장관에 올랐다.
6·25 전쟁을 겪으면서 한국인은 영어와 미국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전쟁 중인 1952년에 나온 <샌프란시스코>라는 가요는 “뷔너스 동상을 얼싸안고 소근대는 별 그림자/ 금문교 푸른 물에 찰랑대며 춤춘다/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 로맨스야/ 나는야 꿈을 꾸는 나는야 꿈을 꾸는 아메리칸 아가씨”라고 노래했다.

개신교 교회는 그런 이상향의 언어인 영어를 배우고 실제로 그 이상향에 유학을 갈 수 있는 주요 통로였다. 당시 YMCA는 “영어 수학 강습회를 하는 곳이다”라는 말이 널리 퍼질 정도로 영어 강습에 주력했는데, 1950년대 말까지 약 20만 명이 YMCA의 영어 강습회를 수강했다. 그렇게 영어를 익히면서 선교사나 미션계 학교를 배경으로 하면 미국 유학 가기도 쉽고 미국에 가서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근자에는 미국 가기 위하여 교회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승만만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우대한 건 아니었다. 세상이 그랬다. 야당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승만 시절은 물론 그 이후에도 장면, 조병옥, 윤보선, 장준하 등의 경우처럼 정치적 거물들은 모두 영어가 능통한 인물이었다. 5·16 쿠데타 당시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장도영도 비록 박정희와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했지만 한국군 장성 중에선 영어가 가장 능통한 인물이었다.

경제 개발기의 수출지상주의, 김영삼 정권 들어 외쳐진 세계화는 영어의 현실적 가치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1995년 2월23일 정부는 97학년도부터 초등학교 3~6학년생에게도 영어를 주당 2시간씩 정규 교과목으로 가르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어린이 영어학원이 급증하는 등 1996년 전국 방방곡곡에서 치열한 ‘영어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현실에 자극받은 작가 복거일은 1996년 11월 영어를 배우는 데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을 생각하면 그 투자의 효율을 높이는 첩경이 영어의 공용어화라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복거일이 1998년 6월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라는 책을 내면서 영어의 공용어화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지만, 2000년대 들어 한국 사회는 더욱 뜨거운 ‘영어 광풍’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는 모두 알고 있는 것이기에, 이제 곧장 오늘의 이야기로 들어가자.

“영어도 한마디 못해? 나가”

2007년 6월23일 밤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는 ‘영어 광풍’을 다뤘다. 이 프로그램의 메시지는 전 국민이 다 영어 광풍에 휩쓸릴 필요는 없으며, 영어가 필요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영어를 잘하면 된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겠다. 맞긴 맞는 말인데, 설득력이 떨어진다. 왜 그런가?

지난 4월 국내 영문학자들이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라는 책을 냈다. 영어 광풍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는 책으로 <그것이 알고 싶다>의 메시지와 통한다. 소중한 작업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아쉬움이 있다. 언론은 이 책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고, 잘 아는 사람들인 영문학자들이 한 이야기라 귀담아들을 가치가 있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바로 그 점이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무슨 말인가? 나도 ‘광풍’이라는 말을 쓰긴 했지만, 나는 그 광풍이 매우 합리적인 행위라고 본다. 광풍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아주 잘하는 사람들이거나 좋은 학벌을 갖춰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꼼꼼하게 살펴보자. 한국에선 애초부터 영어 공부의 주목적은 실용성이 아니다. 내부 경쟁용이다. 자녀를 영어권 국가에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보낸 부모들은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한국에서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영어를 공부시키는 것이다. 한국 영어 공부 120여 년의 역사가 웅변해주는 것도 그 점이다. 영어 공부는 일종의 권력투쟁이다. 자신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영어 광풍에 휩쓸려놓고선 이제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로 영어 광풍을 비판하는 건 말이 안 될 건 없지만 어째 좀 허전하다.

똑같은 대학, 똑같은 학과를 나와도 영어가 우열을 결정한다. 2006년 3월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서울대 경영학과 86학번 졸업생 51명을 조사한 결과, ‘영어 실력이 우수하다’고 응답한 그룹의 평균 연봉(1억600만원)은 ‘중간 혹은 그 이하’라고 답한 그룹(7천만원)보다 3천만원 이상 많았다. 이는 한국 사회 전반에 통용되는 일반적인 법칙이다.

그래서 계속 영어 광풍에 휩쓸리면서 그 광기를 키우자는 건가? 그게 아니다. 영어 광풍을 비판하는 것으로 그칠 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간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뜻이다. 한 네티즌의 반문처럼 <그것이 알고 싶다>의 “PD나 박상원씨도 자녀에게 그런 교육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물음을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또 다른 네티즌의 감상문을 보자.

“영어 무지하게 씹어대는 글 몇 개 썼지만, 사실 나도 영어 공부를 하는 넘 중에 하나로서 내 자신이 모순일세그려. 한국 사회가 날 이렇게 만들었지. 제발 대한민국, 나의 조국아. 힘 좀 키워서 미국넘들이 한국어 배울 수밖에 없도록 해다오. 나이 처먹고 영어 공부하려니까 머리가 안 따라간다. 요즘은 두통까지 생겼잖아.”

아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힘을 키워도 지금과 같은 방식의 내부 경쟁이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또 다른 광풍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게 돼 있다. 한 네티즌이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우리의 현주소는 “당신 영어 잘하니까 해외 쪽으로 일하는 곳에 특별 채용하겠소”가 아니라 “영어도 한마디 못해? 이거 저질이구만. 나가”라는 식이다.

즉, 문제의 핵심은 ‘내 마음의 식민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 마음의 식민주의’가 전혀 없다는 건 아니지만, 누구 못지않게 ‘식민주의’를 혐오하고 증오하는 사람일지라도 기존 시스템하에선 그런 식민주의의 선봉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더 주목해보자는 것이다.

영어 광풍은 우리 ‘대학입시 전쟁’의 정확한 반영이다. 한번 딴 간판이 평생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간판 쟁취를 위해 미쳐 돌아가는 건 매우 합리적이다. 영어 광풍은 그런 합리성의 부분일 뿐이다. 대학입시 문제를 끌고 들어가면 문제의 덩치를 더 키우는 게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하겠지만, 그게 진실인 걸 어이하랴.

사실 정작 흥미로운 현상은 우리의 대학입시 광풍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최소한의 국민적 합의조차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껏해야 본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내신 문제를 둘러싸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수준이다. 왜 그럴까? 당신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한국 사회와 관련해 ‘쏠림’ ‘소용돌이’ ‘1극 구조’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그 원리를 자신의 일상적 삶을 이해하는 데 적용할 정도로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지난 2002년 ‘월드컵 현상’과 현재의 ‘영어 광풍’은 정확히 같은 현상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좋건 나쁘건 우리는 1극으로 쏠려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사회문화적 구조와 습속을 갖고 있는 국민이라는 점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월드컵 현상과 정확히 같은 소용돌이
우리는 자주 그런 특성에 서구적 기준으로 비판을 퍼붓지만, 그게 바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이유이기도 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런 인정이 문제 해결의 올바른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동전의 양면 가운데 어느 한 면이 싫다고 그것만 없앨 수는 없는 일이다.

광풍은 한국적 삶의 본질이다. 이른바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좋은 의미로 쓰는 말이라면 바로 그것의 옆얼굴인 셈이다. 광풍을 사랑할 필요는 없지만, 혐오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혐오해야 할 건 ‘승자 독식주의’다. ‘쏠림’ ‘소용돌이’ ‘1극 구조’를 이용해 취하는 이득은 부당이득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승자 독식주의를 저지하기 위한 방안들을 차분하게 하나씩 실천해나가는 일이다. 특히 개혁이라는 미명을 앞세워 승자 독식주의를 정당화하는 걸 경계해야 한다. 이젠 ‘위에서 아래로’와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를 외쳐온 연역적 개혁의 한계를 인정하고 ‘아래에서 위로’와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를 실천하는 귀납적 개혁을 병행해야 할 때다. 각종 자발적 시민결사체들이 거대 담론과 정치에만 집중한 나머지 각 분야에서 얼마든지 통제할 수도 있었던 ‘영어 광풍’을 키우는 데 일조했던 건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07. 07. 14.

P.S. 본문에서 강준만 교수가 업급한 한국일보의 기사도 스크랩해놓는다. 나도 읽었던 기억이 있는 기사이다.

한국일보(06. 03. 06) [영어가 권력이다] 신분과 계급을 결정

#1. 2004년 외국계로 경영권이 넘어간 금융기관 A사의 L차장. 그는 지난해말 외국인 상사와의 면담에서 “일을 참 잘하는군요. 그런데 영어만 좀더 하면 훨씬 많은 기회가 주어질 텐데…”라는 말을 들었다. 입사 이후 14년간 열심히 일했고 과거 한국인 임원들에게서도 능력을 인정 받았던 터라 칭찬이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L차장은 지난달 부장 승진인사에서 탈락했다. 그는 “무능하다고 평가 받던 사람이 영어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승진하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다.

#2. B사립대의 일문과 교수 K씨. 일본에서 학위를 받았지만 5~6년마다 주어지는 1년간의 연구년(안식년)을 일본에서 보낸 적은 한 번도 없다. 자녀들의 영어교육을 위해 늘 미국 행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미국에서 3년간 생활한 경험이 있는 큰 딸은 특차(토플)로 들어간 외국어고를 졸업하고 곧장 미국 명문대에 입학했다. 2년 전 연구년을 활용해 미국에 데려간 작은 딸(중 3)은 아내와 함께 눌러 앉혔다. “경쟁력이 없는 국내 명문대에 가느니, 영어실력을 쌓을 수 있는 미국 대학을 나오는 게 한국 사회에서 성공하는데도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게 K씨 생각이다.

외국어인 영어를 중심으로 신분과 계급이 결정되는 영어권력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영어가 빈부격차, 도농격차를 확대 재생산하며 양극화를 재촉하는 핵심요인으로 떠오른 것이다. 영어가 진학과 취업, 승진 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지는 이미 오래됐다.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서울대 경영학과 86학번 졸업생 51명을 조사한 결과, ‘영어실력이 우수하다’고 응답한 그룹의 평균 연봉(1억600만원)은 ‘중간 혹은 그 이하’라고 답한 그룹(7,000만원)보다 3,000만원 이상 많았다.

C그룹 인사담당자는 “한국 사회의 개방화가 진전되면서 ‘글로벌 네트워크’로의 접속 가능성을 뜻하는 영어의 가치가 높아졌다”며 “신입사원 채용부터 연봉 책정, 승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사평가의 핵심 기준은 영어”라고 말했다.

영어는 우리 사회의 파워집단을 더욱 공고히 하는 ‘무기’로 작용하며 조기 영어교육을 받기 어려운 소외계층의 상실감을 부추기고 있다. 외교관과 고위 관료 등은 해외 근무나 연수기회를 자녀 영어교육에 적극 활용한다. 실제 중앙부처 국장급 간부 자녀들 중 해외유학 경험자는 절반 이상이며, 부모 귀국 후 현지에 남는 경우도 상당수다.

정부 관계자는 “고위 관료들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 근무에 목을 매는 이유도 자녀 영어교육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액 전문직과 대기업 임원들 역시 돈을 밑천으로 자녀들의 영어교육에 ‘올인’ 하고 있다.

전병만 한국영어교육학회장(전북대 교수)은 “한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촉진하는 영어권력 문제를 해결하려면 소외계층의 영어교육을 지원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06. 03. 06) [영어가 권력이다] 영어 잘하는 쪽이 연봉 40% 더 많아

공인회계사와 경영컨설턴트, 금융기관 직원 등 화이트칼라 근로자는 영어실력에 따라 몸값이 평균 30~40% 가량 차이 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서울대 경영학과 1986년 입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졸업 이후 유학이나 개인적 노력을 통해 동료보다 영어실력을 키운 집단의 평균 소득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40%나 많았다. 서울대 경영학과의 86학번 신입생은 276명이었으며, 이번 설문조사에는 총 51명이 응답했다. 직업은 국내외 금융기관ㆍ대기업 직원, 공인회계사ㆍ경영컨설턴트, 사무관 이상 공무원, 판사, 변호사 등으로 다양했다.

5점 척도로 평가한 영어실력(점수가 높을수록 우수)이 4점 이상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22명이었다. 이들의 작년 연간 수입은 전체 응답자 51명의 평균 수입(8,600만원)보다 2,000만원 가량 많은 평균 1억600만원으로 추정됐다. 반면 영어실력이 2~3점 수준이라고 답한 29명의 평균 연봉은 7,000만원 정도였다. 해외 근무나 연수경험이 있는 경우(27명ㆍ연봉 9,600만원)와 그렇지 않은 경우(24명ㆍ7,400만원)의 연봉격차도 2,200만원이나 됐다.

직업별 분석에서는 공인회계사와 경영컨설턴트, 대기업 직원 등 민간을 중심으로 영어실력이 몸값을 결정하는 현상이 뚜렷한 반면, 판사ㆍ공무원ㆍ교수 등의 경우 영어실력과 연봉과의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국내 대기업ㆍ금융기관에 근무하거나 공인회계사와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는 민간분야 종사자 28명(실적급을 받는 외국계 금융기관 직원 4명 제외)을 대상으로 영어실력과 연봉을 비교한 결과, 영어 능통자 12명의 연봉은 평균 1억250만원에 달했다. 나머지 16명의 평균 연봉은 그보다 3,200만원 가량 적은 6,815만원으로 나타났다.

사무관 이상 공무원, 판사, 교수 등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10명 중 ‘영어실력에 자신 있다’고 답한 사람은 3명이었다. 이들의 평균 연봉은 5,300만원 가량으로, 다른 8명의 평균 연봉(5,200만원)과 별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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