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성에 관한 책들은 출간된 것만 따져도 몇 다스는 된다. 최근에 나온 책들 위주로 리딩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주로 (사회)생물학과 철학쪽에서 본 '인간'이다. '문학적 인간'에 대한 책들이 소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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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들)- 인간의 본성을 만드는 것은 유전자인가, 문화인가?
폴 R. 에얼릭 지음, 전방욱 옮김 / 이마고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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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과 사회생물학
로저 트리그 지음, 김성한 옮김 / 궁리 / 2007년 2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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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회생물학,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2008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최재천 외 지음 / 산지니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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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
레슬리 스티븐슨.데이비드 L. 헤이버먼 지음, 박중서 옮김 / 갈라파고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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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 독자라면 알겠지만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는다>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제목이다. 국내에는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민음사, 1977/1982)로 번역됐지만 나는 읽어보지 않았다. 다만 멕시코의 거장 아르투로 립스테인이 영화화(1999) 하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소설보다 그 영화에 더 관심이 간다(립스테인의 영화 <짙은 선홍색>을 본 사람이라면 주저없이 '립스테인의 모든 영화!'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런 경우이다).

그러는 한편으로 러시아 영화 <형제2>(2000)도 떠올릴 수 있는데, 감독인 알렉세이 발라바노프보다 주연배우 세르게이 보드로프가 더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다(러시아의 젊은 '국민배우'였던 보드로프는 안타깝게도 2002년에 산악사고로 숨졌다).

이 영화의 주제가가 록그룹 비투(Bi-2)가 부른 '대령(Polkovnik)' 혹은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는다'이다(마르케스의 소설과도 관련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비투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세련된 러시안 록을 들려준다(http://www.youtube.com/watch?v=8elQqqGi11k). 아래 두 사람이 주 멤버들이다.

러시아 대중음악을 잘 아는 것도, 자주 듣는 것도 아니지만 몇몇 그룹의 음악은 가끔씩 유튜브 등을 통해서 들어보는데 비투의 음악 또한 그렇다. 그들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건 뮤직비디오도 인상적인 '자쥐가쯔(Zazhigat')'이다(http://www.youtube.com/watch?v=GkMBUsOvj0U). '불붙이다' '점화하다'란 뜻이다(다른 속뜻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바람에 날리는 쓰레기들의 이미지가 마음에 든다. 마음을 비울 일이 있을 때 들으면 좀 편안해진다.

지난달에 서재 방문자수가 40만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그와 함께 '정점'을 친 듯하다. 즐찾과 방문자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적어도 더 늘어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고비를 지난 것. 이젠 슬슬 '퇴역' 준비도 해야겠다(마르케스의 소설도 읽을 수 있겠다!). 어느 흐린날, 풍경 속으로 사라질 날을 꿈꾼다. 바람에 날리는 휴지처럼, 비닐봉지처럼...  

08. 04. 07.

P.S. 마르케스의 소설은 중편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읽어볼 수 있다. 이렇게 끝이 난다.

부인은 울화통이 터졌다.
  “그러면 그동안엔 무얼 먹는단 말이지요?” 하고 그녀는 물었다. 그리고 대령의 플란넬 파자마의 멱살을 잡았다. 그녀는 그를 세게 흔들었다.
  이 순간에 당도하기까지 대령에게는 75년간 -순간 순간 따져서 대령의 75년의 생애- 의 세월이 걸렸다. 그가 대답을 하는 순간 그는 순수하고 분명하고 또 무적임을 느꼈다.
  “제기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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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세곰 2008-04-07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부쩍 '퇴장'을 예고하시는 글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론 무척 아쉽지만 로쟈님의 '영달'을 위해선 이 곳에서의 작업시간을 '공식적' 글쓰기에 할애하시는 것이 맞다고 여겨집니다. 물론, 로쟈님은 '합리적 이기심'이 동인이 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사회의 '물량'공세를 이유로 하지만요.
지난 토요일은 얼핏 뵙고 인사도 못 나누었네요.

로쟈 2008-04-07 12:01   좋아요 0 | URL
네, '다른 일'들이 많은 탓에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게 가장 크구요, 어차피 '충실'하게 운영하지 못할 바에는 마무리를 잘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섬나무 2008-04-07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 협박성 메세지 입니까?ㅎㅎ 시간 할애를 줄이시는 걸로 협상 봅시다. 술 사 드릴게요.ㅎㅎ 요즘 영화란을 흝고 있습니다. 김기덕 '빈 집'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전 김기덕 응원잡니다. 난 그의 허술하고 넘치는 영화가 좋습니다. 그의 영화가 여성을 도구로 사용한다는 평가에도 개의치 않습니다. 그의 숨길 수 없는 트라우마가 가슴 아플 뿐입니다. '나쁜 피'에 대한 페이퍼는 요즘 내가 빠진 슬럼프에 대한 위로같아 감사했구요. 인문학은 전문적으로만 하시면 안 된다니까요~~~~ 중생들을 구도하는 심정으로 제발 오래오래 남으세요. 40만에서 슬슬 줄고 있다구요? 이제보니 욕심이 보통이 아닌 분이었군요.ㅎㅎ 암말 마시구 4만까지만 버티시죠. 앞으론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들를게요. 이젠 협박 안 하시깁니다.^^

로쟈 2008-04-07 14:58   좋아요 0 | URL
제가 협박당하는 것 같은데요.^^ 40만은 총방문자 수고요, 즐찾은 1640에서 뒷걸음질치고 있습니다. 그 정도가 한계치라고 생각되고요. 일단 예전만큼 '많이' 쓰지 못하기 때문에 '퇴역'을 꿈꾸는 것이죠. 반환점을 돌았다는 생각으로.^^;

섬나무 2008-04-07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소가 완전히 바닥나는 것과 희미하게라도 공급되는 것의 차이만 인정하시면 됩니다.^^

로쟈 2008-04-07 15:35   좋아요 0 | URL
언젠가 노르웨이 근해에서 가라앉은 러시아 잠수함이 생각나는데요.^^;

섬나무 2008-04-07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난 연인이 시들해지기 전에 이별을 고하는 여자가 생각납니다.

로쟈 2008-04-07 17:55   좋아요 0 | URL
그게 '자존심'이던가요?^^

2008-04-07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4-07 17:57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요즘 '쉬엄쉬엄' 하고 있습니다.^^;

섬나무 2008-04-07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에 새 옷 입히셨네요. 난 로쟈님이 이렇게 서재 옷 갈아입힐 때마다 로쟈님 외로움이 느껴지는데 이게 무슨 병인지 모르겠습니다.ㅎㅎ 노래 하나 소개할게요. 이종만/장돌뱅이 라네요. 제가 컴맹이라 노래꺼정 올리진 못합니다. 대신 올려주세요.ㅎㅎㅎ 근엄한 인문학서재랑 좀 동떨어지긴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쉬시지요 머. 그나마 없다는 시간을 지가 뺏고 있나요?^^

로쟈 2008-04-07 21:04   좋아요 0 | URL
러시아의 수즈달이란 곳입니다. 낮에 잠시 시간이 나길래 몇 가지 이미지를 테스트해보다가 고른 건데 시원스레 보여서 맘에 드네요. 제가 '장돌뱅이' 이미지는 전혀 아닌데 노래는 들어보도록 하지요.^^

wmck 2008-04-07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퇴역' 이야기에 놀라서 처음 글 남겨 봅니다. 언제나 많은 것을 얻고 있는 곳이니 운영이 뜸해지더라도 '퇴역'과 같은 무서운 이야기는 하지 마셨으면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로쟈 2008-04-07 21:06   좋아요 0 | URL
책 관련 정보들이야 요즘 얻을 수 있는 곳이 많습니다. 좀 특별한 공간을 만들려고는 하지만 여유가 잘 없네요.^^;

사량 2008-04-07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지만 로쟈 님의 재충전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붙잡지 못하겠습니다.ㅜㅜ 그동안 애써주신 것만으로도 무한히 감사 드립니다. 다만 새로운 글을 올리시진 않더라도 서재 자체를 폐쇄하진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곳에 축적된 귀한 정보들이 사장되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ㅜㅜ

로쟈 2008-04-07 21:39   좋아요 0 | URL
저 아직 '퇴장' 안 하는데요! '준비'를 좀 해야겠다고만 했는데, 흠...

사량 2008-04-07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별인사를 드린 건 아니었는데 그런 뉘앙스가 되어버렸네요.;;; 그런데 전에도 글들을 숨겨둔 채 잠시 서재를 닫으신 적이 있어서, 앞으로 정말 '퇴장'하신다면 글들만이라도 남겨달라는 뻔뻔한 부탁을 드린 거예요.;;; '준비'는 저희에게도 필요합니다. ^.^

로쟈 2008-04-08 16:56   좋아요 0 | URL
네, 준비운동을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paviana 2008-04-08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협박조로) 별장이라 생각하시고 그냥 남겨두시죠.
(속마음은) 준비라는 말씀만 들어도 철렁 내려앉습니다.흑흑

로쟈 2008-04-08 16:57   좋아요 0 | URL
제가 자주 말씀을 드려서 정말 '퇴장'할 때 전혀 놀라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yoonakim 2008-04-08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paviana님 말씀이랑 똑같습니다.^^

로쟈 2008-04-08 16:57   좋아요 0 | URL
^^
 

개인적인 관심사와 맞아떨어지기도 해서 스펠마이어의 <인문학의 즐거움>(휴먼&북스, 2008)을 들고 있다(책에 대한 소개는 http://blog.aladin.co.kr/mramor/2028696 참조).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롭게 읽고 있는데 기본적으론 잘 씌어졌기 때문이고, 덧붙여 우리말로 무리없이 옮겨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몇 가지 아쉬움을 지적하자면, 먼저 'Arts of Living'이란 원제를 '인문학의 즐거움'으로 옮긴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 물론 원저의 제목도 그것만 따로놓고 보자면 모호하긴 하다. 부제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어떤 내용이 다루어지고 있는 책인지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의 즐거움'이란 국역본의 제목은 그보다 더 애매하다. '인문학이 변해야 한다'는 요구를 담고 있는 나름 '긴박한' 제안서이기에 '즐거움'은 언뜻 한가해 보이는 것이다. 해서 이 책에 대해 더 잘 말해주는 것은 '21세기 인문학의 재창조를 위하여'란 부제와 '위기의 인문학을 위한 새로운 모색' 같은 문구이다. 거기에 준해서 책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책이 너무 무겁다. 하드카바의 '튼튼한' 책이 나온 건 아무래도 책에 대한 수요를 소장용이나 도서관 장서용으로 파악한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 책은 고전명저류가 아니라 '실용적인' 제안서이다. 방대한 자료 검토와 인문적 성찰, 탄탄한 자기주장을 담고 있긴 하나 기본적으론 '보고서'적인 성격의 책이다(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의 조건> 같은 책이 그렇듯이). 저자 자신도 스스로를 '실용주의자'라 칭하고 있고. 하지만 번역본은 너무 묵직하여 가방에 넣고 다니자니 '인문학의 즐거움'보다는 '인문학의 무거움'을 먼저 팔목에 느끼도록 해준다. 이 무게는 (미네르바의 올빼미이기는커녕) "인문학은 이제 밤에 소리 없이 나는 까마귀가 되"었다는 뒷표지의 문제의식과도 맞지 않는다. 정장을 입은 까마귀처럼. <희망의 인문학>(이매진, 2006)처럼 소프트카바로 처리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리고 또 이 책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유감스러운 건 색인이 누락됐다는 점. 60여쪽의 주석을 실으면서 색인을 누락시킨 건 좀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다(번거로웠을까?). 어쩌다 인문서 한권 낸 것이 아니라 '인문출판사'를 자임하고자 한다면 분명한 자기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출판사 휴먼&북스의 기간 리스트를 보니 <인문학의 즐거움>이 좀 이채롭긴 하다). 만든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뒷마무리를 못 지은 것 같은 찜찜함을 공유할 필요가 있을까?

거기에 더 바란다면 저자가 참고/인용하고 있는 책들의 국역본도 같이 기재해주면 좋았겠다는 것. 물론 이건 필수적인 것은 아니고 그저 독자에 대한 서비스 차원의 것이긴 하나 연계독서를 원하는 독자들에겐 유익한 정보가 된다. 가령 리처드 로티나 에머슨, 윌리엄 제임스, 막스 베버, 베블렌, 앨런 소칼 등 국내에 소개돼 있는 책들을 '링크'시켜주는 것. 

 

 

 

 

예컨대 나는 2장에서 "미국에서는 찰스 이스트먼 같은 사람이 최초의 진정한 현대적 세대 - 한 세상을 상실한 뒤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나서는 최초의 세대 - 에 속했다."(66쪽)란 문장을 전후로 하여 서너 쪽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 인디언/미국인의 책이 국내에도 소개돼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봤다. '오이예사'(인디언 이름)란 저자명으로 <인디언 숲으로 가다>(지식의풍경, 2000), <삶이란 바람소리일 뿐이다>(거송미디어, 2006)를, 그리고 '오히예사'란 저자명으로 <인디언의 영혼>(오래된미래, 2004)과 <교회로 간 인디언>(도솔, 2007) 등을 찾을 수 있었다. 모두가 엔솔로지여서 아쉽긴 한데, 그래도 나중에 혹여라도 이 책들을 들춰보게 된다면 어떤 맥락에서 읽을 수 있을지 '감'을 잡을 수 있다. 번역본에 대한 정보가 병기된다면 말이다.        

몇 가지 아쉬움을 적었지만 그럼에도 책은 재미있다(물론 이 '재미'가 대다수 독자에게 해당되지는 않겠지만). 저자가 "흥미없던 주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만드는 능력을 지닌 교수"란 평을 학생들로부터 듣는다는데, 충분히 그럴 만하다. 그리고 이미 적은 대로 번역 또한 무난하여 읽는 데 지장을 주지 않는다. 100여 쪽을 읽으면서 '오역'이라고 체크하고 원문을 확인해본 대목은 딱 한 군데이다. 그건 프랑스의 문학사가이자 <영문학의 역사>의 저자 이폴리트 텐느(1828-1893)에 관한 대목이다. 보통 <영문학사>라고 옮겨지는 4권 분량의 방대한 책이 유명한데, 미국에서도 이 책은 많이 읽힌 모양이다. 아래는 갈란드를 인용하고 있는 대목이다.

"나는 날마다 그 모든 위대한 프랑스인들이 '민족' '환경' 그리고 '추진력'에 대해 말한 것을 깊이 생각하면서 그 일에 온 힘을 기울였다." 당시 가장 광범한 영향력을 미친 작품들 중에는 텐느의 4권짜리 <영문학의 역사>가 있었는데, 이 책에는 각 나라의 문화는 그 고유의 물질적 환경에 의해 형성된 집단적 인격을 표상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76-77쪽)

“I bent to this task, pondering all the great Frenchman had to say of race, environment, and momentum.” Among the most widely influential works of the time, Taine’s four-volume History of English Literature purported to demonstrate that the culture of every nation expresses a collective personality shaped by the nation’s material circumstances.

역자가 잘못 옮긴 부분은 먼저 '위대한 프랑스인들'이 아니라 '위대한 프랑스인'이라는 것. 물론 '이폴리트 텐느'를 가리키겠다. 그리고 텐느가 문학사를 결정짓는 요소로 들고 있는 세 가지 중 '시대'가 '추진력'으로 잘못 옮겨졌다. 찾아보니 "race, environment, and momentum" 중 'momentum'을 그렇게 옮긴 것인데 여기선 'moment'와 같은 뜻이고 '시간변수'를 말한다. 불어의 'temps(시간)'을 옮긴 것이다. 설사 텐느의 문학사관에 대해 알고 있지 않았더라도 조금만 시간을 내 검색해보았다면 피할 수 있었던 오류이다. 물론 이 정도 오류라면 '옥에 티'라고 해야겠다...

08. 04.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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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4-06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이번에 회원 가입했어요.저에게 폴 부르제의 '백주의 악마' 번역본이 있는데(정음사) 텐느를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프랑스의 가톨릭 정신을 망치는 인사라며 그런 사상과 투쟁하기 위해 이 소설을 쓴다고 집필 목적을 밝혔더라구요.보수파들에게 텐느는 위험인물이었나 봐요.에밀졸라가 텐느의 영향을 받아서 그랬을까요.실제로 텐느의 사상이 그리 진보적이란 생각은 안들덴데...자연주의의 기계적 유물론이 위험하다고 받아들이니 그랬을까요?

로쟈 2008-04-06 22:59   좋아요 0 | URL
텐느에 대해서는 저도 <문학사회학>이나 <비교문학> 등에서 읽은 게 전부입니다. 세 요소에 '신의 섭리'는 빠져 있으니 가톨릭 정신에는 위배되는 게 아닌가도 싶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4-06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ll을 부사로 옮기고 그다음은 그 위대한 프랑스인(텐느를 가리키는 갈아쓰기 용법)으로 번역해야겠군요.음...좋은 영어공부가 되었습니다.

로쟈 2008-04-06 23:18   좋아요 0 | URL
제가 보기엔 all이 대명사이고 뒤에 관계사가 생략된 문장입니다...
 

월요일에 전철역에서 사든 '시사IN'에서 옮겨놓으리라고 찜해 놓은 기사는 '건강불평등'에 관한 특집기사이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08). 계기는 물론 최근에 출간된 리처드 윌킨슨의 <평등해야 건강하다>(후마니타스, 2008)이고 이 책에 대해서는 나도 소개 페이퍼를 올려놓은 바 있다(http://blog.aladin.co.kr/mramor/2013968). '복습'하는 의미로 기사도 읽어두기로 하자(책은 못 읽더라도).

시사인(08. 04. 01) 미국인 건강 순위 25위의 의미는?

미국을 따라하려는 그 어떤 보건 시스템도 반드시 미국과 같은 대재앙을 만나게 될 것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 보건대학원 이치로 가와치 교수의 말이다. 미국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세계 최부국이자, 각종 신약 개발이나 의학 신기술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나라이다. 미국 사회가 보건 의료에 지출하는 돈은 약 1700조원(2003년)으로 국민총생산의 15%에 해당한다. 그러나 평균 수명과 사망률을 기준으로 매년 각국의 순위를 매기는 ‘건강 올림픽’에서 미국은 20위 안에 진입하지 못했다. 2003년에는  29위까지 밀려나기도 했다. 그해 국민소득이 미국의 10%에 불과한 코스타리카는 25위, 국민의 영양 상태를 걱정해야 하는 쿠바는 30위였다.



미국 사회가 직면한 천문학적인 의료비 지출과 국민 건강 수준 사이의 끔찍한 불균형은, 많은 연구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의료보험 체계를 개편하자는 미국 사회의 고민과 맞물려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의료 현실을 풍자하는 역작 <식코>를 지난해 내놓았다. 마이클 무어는 손가락 하나 봉합하는 데 수천만원이 들어가고, 아이가 40도를 넘나드는 고열에 시달리는데도 자기들과 거래하는 보험 환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해 결국 아이가 죽음에 이른 사례 등을 들이대면서 미국 의료보험 체계의 비인간성을 까발린다. 그는 4500만명에 이르는 보험 미가입자뿐 아니라 많은 돈을 들여 보험을 유지하는 보통 사람도 재난을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무어는 사실상 무상 의료 체계를 갖춘 영국, 그와 유사한 캐나다와 쿠바의 의료 체계를 소개하면서 미국 보건 체계의 거시적 비효율성을 고발한다. 특히 영국은 병원에서 퇴원하는 극빈자에게는 귀가할 차비까지 챙겨주는, 한국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보건 체계를 갖췄다. 1948년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를 갖춘 후 그 시스템을 줄곧 유지해온 것이다. 

그렇다면 전 국민 무상 의료서비스 체계를 갖춘 영국 국민의 건강은 만족스러운 수준일까? 영국은 영국대로 고민이 깊다. 계층 간 건강불균형이 해소되지 않아서이다. 북유럽의 사민주의 사회 모델을 구현한 스웨덴 등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그들의 고민은 이렇게 집약된다. ‘누구나 병이 나면 부담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도 왜 저소득층의 건강은 상위 계층에 비해 여전히 열악한가?’



영국, 공짜 치료해도 건강 격차는 여전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답이 있다. ‘저소득층이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는 데다가 음주와 흡연, 운동 부족 등 좋지 않은 생활 습관을 가져서’일 것이다. 그러나 영국 사회는 그렇게 답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건강불평등을 사회 정의의 문제로 접근했다. 담배를 피우고 독한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개인의 선택은 사회적 영향 아래 놓여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합의에 도달한 것이다.

그런 실태를 반영하듯 한국에 번역된 관련 서적도 영국 연구자의 저작 일색이다. 마이클 마멋의 <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에코리브르 펴냄), <건강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리처드 윌킨슨 지음·당대 펴냄)에 이어 <평등해야 건강하다>(리처드 윌킨슨 지음·후마니타스 펴냄)가 최근 출간되었다. 한국 사회에 처음 건강불평등이라는 화두를 대중적으로 환기했던 한겨레의 기획 보도와 전문가의 글을 한데 묶은 <추적, 한국 건강불평등-사회 의제화를 위한 국민보고서>(이창곤 지음·도서출판 밈 펴냄)는 지난해 말 출간되어 건강불평등에 관한 국내외 논의를 집대성했다.



신간 리처드 윌킨슨의 <평등해야 건강하다>(원제 The Impact of Inequality)는 흥미로운 주장을 편다. ‘불평등한 사회는, 저소득층뿐 아니라 그 사회 전체의 건강 수준도 떨어뜨린다.’ 불평등한 사회는, 열악한 처지의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강을 좀먹는다는 것이다. 대표적 불평등 사회인 미국이 도마 위에 올랐다. 마이클 무어가 미국이 보건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이유로, 민간 보험사의 손아귀에 국민 보건을 내맡긴 의료보험 체계를 지목한 데 비해 영국 연구자는 유난스러운 미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 자체를 원인이라고 본 셈이다.

윌킨슨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주보다 가장 평등한 주에서 건강 수준이 더 높았다고 지적한다(53쪽 도표 참조). 소득 편차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는 데 활용되는 지표인 중위 계층 가구 소득이 높은 지역일수록, 즉 소득 편차가 적은 지역일수록 평균 사망률은 낮았다. 반대로 백인과 흑인의 사망률 격차가 큰 지역일수록 그 지역의 소득 격차는 어김없이 컸다. 2000년 초반 자료에 근거한 연구 결과는 미국의 부유한 지역에 사는 16세 백인 여성은 86세까지 살 것으로 예측되지만, 뉴욕과 시카고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에 거주하는 흑인 여성의 기대 수명은 70세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리처드 윌킨슨은 소득 분배와 건강이 관계가 있다면 그 변수를 연결하는 메커니즘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고리를 규명하는 데 골몰한다. <평등해야 건강하다>는, 저자의 다른 저서 <건강불평등, 사회는 어떻게 죽이는가>보다 더 진전된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스트레스를 중간 고리로 삼아 사회불평등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려 한 것이다. 영국 노팅엄 대학 의과대학에서 사회역학과 공중보건학을 연구하는 저자는, 마이클 마멋과 함께 사회 역학 분야에서 쌍벽을 이루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물론 건강형평성 학회 창립 멤버인 조홍준 교수(울산대 의대)처럼, 윌킨슨이 건강불평등의 발생 기전을 사회심리적인 것으로 과도하게 단순화하고 물질적·정치적 요인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하는 이도 있다. 조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불평등의 실상과 파괴적 영향에 관한 그의 문제 제기는 우리나라 독자의 건강불평등에 대한 낮은 인식을 끌어올리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평했다.



부유한 주보다 평등한 주가 사망률 더 낮아


왜 건강 격차가 벌어지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사고하는 영국 사회의 전통은 꽤 뿌리가 깊다. 저명한 건강불평등 연구자인 마이클 마멋 교수에 따르면 영국이 건강불평등 문제에 착목한 것은, 150년 전인 19세기 중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추적, 한국 건강불평등> 마이클 마멋 인터뷰). 현재 영국은 암 발생률과 흡연율을 언급할 때도, 전체 인구에서의 발생률과 취약 계층의 발생률을 각각 거론할 정도로 ‘건강불평등 인지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국에서 건강불평등이 정식 어젠다로 채택되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공중보건 분야의 기념비적인 보고서로 얘기되는 블랙 리포트는, 1970년대 노동당 정부가 블랙 위원회에 연구를 의뢰해 1980년 세상에 빛을 본 것이지만, 이후 집권한 보수당 정권은 이 보고서의 연구 결과를 부정하고 건강불평등을 논제로 삼지 않았다. 그 사이 보수당 집권 시기에 사회의 양극화가 심해졌고, 그에 따라 계층 간 건강 격차도 커졌다. 1997년 다시 노동당 정부가 집권한 후 건강불평등 실태와 정책 제안에 관한  보고서가 작성되었는데 그것이 애치슨 보고서이다(55쪽 참조).

보수당 집권기에 정부는 건강불평등(Health Inequality)이라는 용어를 채택하지 않았다. 대신 건강 차이(Variation)이라는 표현을 썼다. 영국 보건부 건강불평등팀 레이 어리커 박사는 “건강 불평등이라는 용어를 채택하는 일은, 곧 건강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외부 조건에 연결되어 있음을 국가가 인정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영국 관료의 증언에 따르면, 발병 후 처치를 맡는 국가보건의료서비스 체계(NHS) 유지에 들어가는 돈보다, 발병률을 낮추기 위한 일련의 건강불평등 정책이 오히려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설득이 주효해 건강불평등 완화 정책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정책은 기대 여명을 늘리고 영아사망률을 줄이는 것에 집중되었다. 

건강을 결정하는 사회 요인에 관한 연구는 최근 20년 동안 특히 선진국에서 더욱 활기를 띠었다. 계층 사이에 왜 건강불평등이 발생하는지 그 원인에 대한 연구는, 정책 수단을 결정하는 데 긴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건강을 위협하는 물질 요건이 충족된 부유한 나라의 경우, 그 관심은 더욱 첨예하다. 지금까지 지목된 사회 요인으로는 초기 아동기 경험, 현재 겪는 불안과 걱정의 강도, 사회 관계의 질, 삶에 대한 자기 통제력의 정도, 그리고 사회 지위 등이 있다.

특히 마이클 마멋은 사회적 지위와 사망률의 연관 관계를 밝힌 연구로 유명하다. 마멋은 영국의 공무원 사회 분석을 통해 직무에 대한 자기 통제권이 적을수록, 즉 조직의 말단으로 갈수록 수명 등 건강 지표가 나빠진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분석해낸 바 있다(<사회적 지위가 건강과 수명을 결정한다>).(노순동기자)

08. 04. 05.

P.S. 건강 형평성 연구에 관한 보충기사는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0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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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질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는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3-15 11:09 
    지난주에 서평도서로 내가 고려했던 책은 그 전주에 나온 <권력의 병리학>(후마니타스, 2009)과 <거꾸로 가는 나라들>(난장이, 2009)이었다. 지면 사정상 후자에 대해서 쓰게 됐고 <권력의 병리학>은 읽어보지 못했는데, 의외로 리뷰기사가 별로 올라오지 않았다. 다행히 메인으로 다룬 기사가 하나 있어서 옮겨놓는다.      서울신문(09. 03. 06) 질병은 왜 가난한

커트 스펠마이어의 <인문학의 즐거움>(Human & Books, 2008)에 대한 소개기사를 챙겨둔다. 다른 몇 개의 기사도 대동소이하다. 책은 'Arts of Living'이 원제이고 '21세기 인문학의 재창조를 위하여'(Reinventing the Humanities for the Twenty-First Century)가 부제다. 저자는 생소한데, 러트거스대학의 영문학 교수라고. 아래 기사에서 지적하듯이 "저자의 주장에 새로운 것은 없다"손 치더라도 방대한 자료와 유려한 논증을 통해서 인문학이 변화해야 하며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는 주장을 입증한다.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이매진, 2006) 이후에 인문학의 변화와 갱신을 촉구하는 가장 '자극적인' 책이 아닌가 한다.

문화일보(08. 04. 04) 인문학, 세상과 어울려라

국내에서도 논란이 많은 ‘인문학의 위기’를 분석하고 그 돌파구를 찾아보는 책이다. 미국 러트거스대 영문학 교수인 저자는, 우리로 치면 대학의 인문·이공계를 아우르는 교양과정에서 작문 프로그램을 통해 인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연구와 교육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저자가 인문학 위기의 대안 중 하나로 제시하는 방안도 이같은 인문학 전공자에만 국한되지 않는 작문 과정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저자가 미국인으로 영미권 철학의 대표격인 ‘실용주의’ 철학자라는 점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영미권과 프랑스 독일 등 소위 ‘대륙권’에서의 체감이 적지 않게 차이가 난다. 대륙에선 좌파적 지성이 여전히 강하고, 영미권에서는 ‘실용주의’로 대표되는 체제 내적 학풍이 주도해오고 있는 차이로 볼 수 있다. 한국은 물론 영미권의 영향 아래 있다.

예컨대 저자는 지난 20년 동안 인문학을 지배해온 프랑스 철학자들-데리다, 푸코, 라캉, 들뢰즈 등-에 대해 ‘세상에서 고립돼 있는 순수사상가’로 부르면서, 그들의 이론을 ‘판매용으로 포장된 분석체계’라고 폄훼한다. 그는 “실용주의자인 나는 이론이 순수성찰의 입장을 내세우는 것을 액면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론은 어쨌거나 실용적인 목적에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문학자들이 시장체계를 아무리 혐오한다 하더라도 시장체계의 승리가 있기 전의 상황을 누가 잊을 수 있겠는가?” “이론의 승리가 우리에게 뭔가 말해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대안의 고갈과 진정 새로운 것을 꿈꾸는 능력의 상실이다.”

저자는 19세기 미국을 사례로, 지역사회가 무너지고 거대한 행정정부가 등장하면서 지식을 많이, 빠르게 습득하는 자와 적게, 늦게 습득하는 자의 편 가르기가 시작된다고 본다. 지식과 무지의 간극이 커지면서 인문학은 의학과 법학, 과학을 모델로 더욱 전문화의 길을 걷게 됐다. 사회 또는 생활과 동떨어진 이론이 부상하면서 인문학은 텍스트에 더 몰두하게 되고, 이는 인문학과 그 종사자에게 특권을 부여해준 대신 인문학의 고립이라는 대가를 치른다. 인문학이 소외된 결정적 이유는 이처럼 ‘학자들만을 위한 학문’에 갇혀 스스로 대중들과 멀어지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문학의 본질은 텍스트의 비평이 아니라 일상 생활과 연결된 ‘경험으로서의 예술적 활동’이 돼야 하며, 그러기 위해 인문학자들은 다른 학문들과, 세상과 벽을 허물고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의학 인문학’, ‘법 인문학’,‘경제 인문학’,‘미디어 인문학’ 등이 등장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한마디로 세상과, 사람에게 ‘실용적인’ 인문학이 돼야 인문학이 소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 새로운 것은 없다. 이 정도는 ‘인문학의 위기’를 외쳐온 우리 대학의 인문학자들도 해온 얘기다. 그것은 저자가 ‘자본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의 외부, 곧 ‘체제 밖’은 상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서 나올 수 있는 결론이란 우리나 거기나 차이가 없다. 인문학의 위기는, 들뢰즈-가타리 식으로 말해 ‘배치’의 문제라는 것은 한국 학자들도 지금은 이의를 달 사람이 많지 않다.(엄주엽기자)

08. 04. 05.

P.S. 국내에서도 비슷한 주장들이 많이 나왔지만 이만한 규모의 보고서/제안서는 보지 못했다. 기사에서 언급되지 않은 건 이 책이 놓여있는 맥락인데, 그것은 90년대 이후 '지난 15년 동안' 벌어진 '문화전쟁'이다(소위 '과학전쟁'과 짝지을 만하다). 대학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진 강단 좌파와 우파의 '전쟁'을 말하는데, 이에 대한 스펠마이어의 평가는 냉정하다.

"지난 15년 동안 인문학은 보수주의자들과 급진주의자들의 충돌을 겪어왔으며, 이는 상당히 공론화된 문화전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문화형성에 있어서 폭넓은 민주적 참여를 끌어내는 데 전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전쟁'은 오히려 경쟁적인 두 엘리트 집단의 소규모 전쟁으로 볼 수도 있다. 매슈 아널드와 엘리엇, 혹은 마르크스의 제자들이건 추종자들이건 간에 대부분의 학계 인문학자들은 아직도 문화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며, 혹은 그래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다."(21쪽)

저자가 문제삼고 있는 건 이 '공통적인' 전제이다. 그에 비하면 '문화전쟁'을 낳은 보수/진보 인문학자들의 의견차이라는 건 오히려 사소하다는 것. 어떤 차이였던가?

"보수주의자들은 위대한 서적들을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으며, 급진주의자들 역시 위대한 서적들을 - 신성한 우상으로라기보다 가혹한 '심문'의 대상으로 - 필요로 하고 있다. 이 같은 문화전쟁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의 위기는 어떤 책은 가르치고 혹은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인문학이 어려움에 처한 것은 더 넓은 사회의 삶으로부터 점자 고립되어 왔기 때문이다. 사실 20세기 전반에 걸쳐 인문학은 또다시 고립의 길을 택해왔으며,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13쪽)

이것이 이 책의 진단이자 기본 전제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제사히는 것이 문화형성에의 개입 혹은 참여이다. "문화형성에의 직접적인 개입, 이것이야말로 과거의 인문학은 이루어내지 못했던 것이며 새로운 인문학이 미래를 기대하려면 반드시 책임지고 노력해야 할 일이다."(19쪽) 저자의 진단에 공감한다면 그가 제안하는 대안들에도 눈길을 줄 만하다.

한편 책의 뒷갈피에는 추천사들이 적혀 있는데, 일리노이대학의 한 교수의 코멘트는 이 책의 계보를 지적한 것이어서 유익하다. "이 책은 로버트 스콜스의 <영문학의 부상과 몰락(The Rise and Fall of English)>, 앨런 블룸의 <미국적 정신의 종말(The Closing of the American Mind)>, 제럴드 그래프의 <문학의 공언(Professing Literature)>에 이르는 다양한 지적 전통에 속한다."

스콜스의 <영문학의 부상과 몰락>(1999)은 부제가 한 분과학문으로서 영어의 재구축(Reconstructing English As a Discipline)'이다. 스펠마이어도 지적하는 것이지만 미국의 경우에 인문학이 대학에서 전문직 형태로 갖춰진 것은 채 100년도 되지 않는다. 19세기 종반까지만 해도 인문학의 핵심분야는 수사학과 고전학이었지 영문학이나 역사학이 아니었다. 스콜스의 거명한 책은 이러한 '학문사' 내지는 '학문제도사'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해주겠다. 참고로 '스콜스'는 국내에 '스콜즈' 혹은 '숄즈'로 소개됐으며 <서사의 본질>, <문학과 구조주의> 등이 대표적인 저작이다. 

레오 스트라우스의 제자로 미국 보수주의의 거물인 앨런 블룸의 <미국적 정신의 종말>(1987)은 <미국 정신의 종말>(범양사, 1989/1997)로 번역돼 있다. <셰익스피어의 정치철학>(집문당, 1982)도 그의 책인데, 근작을 보니 <셰익스피어의 사랑과 우정론>도 눈에 띈다. 

그리고 제럴드 그래프는 국내에 '제럴드 그라프'로 소개돼 있으며 <자신의 적이 되어가는 문학>(현대미학사, 1997), <시의 진술과 비평적 도그마>(현대미학사, 1999)가 그의 책들이다. 'Professing Literature'를 '문학을 공언하기'로 옮겼는데, 잘못 옮긴 것이고 <문학을 직업으로 가르치기> 정도의 뜻이어야 한다. 대학에서의 '문학 전공'의 역사를 더듬어보는 책이다.

저자인 스펠마이어는 한 각주에서 블룸의 <미국 정신의 종말>이 '문화전쟁'의 분수령이 된 책이었다고 언급하며 해럴드 블룸의 <서구의 정전>과 자크 바전의 <우리가 존중하는 문화(The Culture We Deserve)>(1989), 그리고 이들과 반대편에 섰던 로저 킴볼의 <정교수 급진주의자(Tenured Radicals: How Politics has Corrupted Higher Education)>(1990) 등도 주요한 책으로 거명한다. 그는 이 두 입장에 비판적이며 <문화전쟁을 넘어서(Beyond Culture Wars: How Teaching the Conflicts Can Revitalize American Education)>(1992)를 쓴 제럴드 그라프, <미국 정신의 개막(The Opening of the American Mind: Canons, Culture, and History)>(1996)을 쓴 로렌스 레바인 등의 입장에 공감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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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8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4-08 16:55   좋아요 0 | URL
네, 기대한 것보다 좋은 책입니다. 많은 걸 생각하게 해주는. 더불어 '충격'씩이나요?^^;

소경 2008-04-10 10:17   좋아요 0 | URL
맨날 안이한 생각 가지고 살고 있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