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으로 하면 '재야 철학자' 이정우씨의 새로운 책이 출간됐다. 좀 뜸하다 싶었는데, 작년에 나온 <세계의 모든 얼굴>(한길사, 2007)에 이어지는 것이니 격조했다고 할 수는 없겠다. 어째 표지는 그럴 듯해 보이지 않지만 흥미로운 철학사 이야기가 될 듯싶다. 관련리뷰를 챙겨놓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91979.html).
한겨레(08. 06. 07) 서양철학사는 플라톤과 니체의 전쟁사
대학 제도 바깥에서 사유의 길을 닦고 있는 이정우 철학아카데미 원장이 새 저서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을 펴냈다. 제목만 보면 <반지의 제왕> 부류의 판타지 소설을 연상하기 쉽지만, 이 책은 서양철학사 전체를 철학의 근본문제인 존재론 차원에서 조망한 책이다. ‘이데아와 시뮬라크르’라는 부제가 이 책이 겨냥하는 바를 제대로 보여준다. 여기서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은 존재와 비존재, 실재와 가상, 진짜와 가짜, 이데아와 시뮐라크르라는 이원적 대립항들의 철학적 투쟁에 대한 은유다.
이 은유는 플라톤의 후기 저작 <소피스테스>에 등장한다. “실재를 둘러싼 논쟁이 너무나도 격렬해서 사실 우리는 그들 사이에 마치 (신족과) 거인족의 전투라도 벌어지는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되는구려.” 이 싸움을 플라톤은 자기 앞세대 그리스 철학사를 명료하게 정리하는 차원에서 불러들이는데, 지은이는 이 플라톤의 싸움을 서양 철학사 전체의 근본적인 싸움으로 확장한다. 플라톤을 필두로 한 신족에 대항해 거인족들이 벌인 싸움으로 철학사를 보는 것이다. 그 거인족의 선두에 프리드리히 니체가 서 있고, 앙리 베르그송이 니체의 계보를 잇는다.
이 책의 출발점은 ‘신족과 거인족’ 비유가 등장하는 플라톤의 <소피스테스>다. 이 책은 “존재 물음을 체계적으로 다룬 최초의 텍스트다.” 지은이는 이 텍스트를 꼼꼼히 분석해 존재의 문제가 어떻게 철학의 근본문제로 탄생하고 확정되는지를 보여준다. <소피스테스>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 텍스트는 흔히 궤변론자로 번역되는 소피스트(그리스어로 소피스테스)가 누구인가라는 현실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텍스트다.
이 텍스트는 플라톤의 모든 저작이 그렇듯이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지은이는 이 ‘대화’라는 텍스트 성격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철학은 대화에서 태어났다는 것인데, 좀더 강하게 표현하면, 대화 형식의 투쟁에서 철학이 생겨났다는 것이 지은이의 설명이다. 무기를 들고 벌이는 전쟁이 아니라 말로, 로고스(말·논리·이성)로 하는 전쟁, 아고라(광장)에서 입으로 벌이는 정치적 전쟁이야말로 철학의 발생지점이었다. 그러니까 철학은 단순한 관조나 사유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싸움, 정치적 공방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정치적 주도권을 둘러싼 ‘담론투쟁’이 철학의 자궁이었던 셈이다. 그 자궁의 풍경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텍스트 가운데 하나가 이 <소피스테스>다.
그런데 왜 소피스트라는 문제에서 존재론적 문제인 ‘이데아’가 도출되는 것일까. 플라톤에게 소피스트는 ‘가짜 지식인’ ‘가짜 철학자’였다. 문제는 그들이 대단한 지식과 논변으로 진짜처럼 보이는 외관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스 후기의 혼탁한 시대에 가짜들이 진짜 행세를 하고 다녔던 것이다. 어떻게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인가. 거기서 플라톤은 가짜와 구별되는 ‘영원한 진짜’를 상정하게 된다. 이 ‘영원한 진짜’, 참된 실재가 이데아다.
정치가를 들어 설명하면 더 이해하기 쉽다. 수없이 많은 가짜 정치가들 사이에서 진짜 정치가를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 것인가. 플라톤은 정치가의 이데아, 곧 참된 정치가의 형상이 따로 있으며, 현실의 정치가는 그 이데아를 나누어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데아를 적게 나눠 가질수록 저급한 정치가이며, 많이 가질수록 훌륭한 정치가가 된다.
그 이데아의 관점에서 보면 현실은 이데아의 모방·모사인데, 그것이 바로 시뮐라크르다. 시뮐라크르는 실재인 듯 보이지만 진정한 실재가 아닌 일종의 환영, 외관, 거짓 이미지일 뿐이다. 소피스트들은 철학자의 외관만 갖춘 가짜가 된다. 플라톤은 여기서 시뮐라크르를 기각하고 이데아를 참된 존재, 곧 실재로 삼는다. 그 플라톤주의 이분법이 2천년 서양 철학사를 규정했다.
이 장대한 역사에 반기를 들고 단기필마로 전쟁을 벌인 사람이 바로 니체였다. 거인족의 반격이 시작된 셈이다. “니체 이후 철학은 하나의 모토를 반복해 왔다. ‘플라톤주의를 전복하라!’” 플라톤주의의 전복이란, 이데아를 내치고 시뮐라크르를 복권시키는 일이다. 플라톤에게 시뮐라크르는 이데아의 모사일 뿐만 아니라 변화무쌍한 것, 끝없이 바뀌고 운동하고 흩어지고 사라지는 어떤 것이었다. 니체의 전복은 바로 이 변화와 생성과 운동이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실재인 존재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을 뜻한다. 지은이는 니체의 ‘영원회귀’가 말하는 생성, 그리고 베르그송의 ‘생명과 지속’이 가리키는 생성이 그 새로운 존재론, 다시 말해 ‘생성존재론’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니체도 베르그송도 그 생성존재론을 구체적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따라서 지금 중요한 것은 생성존재론의 구체적 양상을 해명하고, 거기에 입각해 윤리학과 실천철학을 구성해 내는 일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고명섭 기자)
08. 06. 06.
P.S. 사실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은 저자의 근간으로 이미 작년부터 예고된 책이다(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96726.html). 아니 작년에 나온다고 했던 책이니까 다소 늦어진 책이다. '예고'는 이랬으니까.
“지금까지 쓴 책들은 대체로 대중 교육용 책이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철학서를 쓰겠다.” 그가 계획한 책 가운데 일부는 올해부터 출간될 예정이다. 그 중 가장 먼저 나올 책이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이데아와 시뮐라크르>다. 이 책은 서양 철학을 신족과 거인족의 싸움으로 규정한다. 플라톤이라는 신족이 펼친 ‘존재의 철학’에 대항한 것이 니체·베르그송·들뢰즈라는 거인족의 ‘생성의 철학’이라고 그는 말한다.
올해 나올 또하나의 책은 <천하나의 고원-소수자 윤리학을 위하여>이다. 들뢰즈가 <천 개의 고원>에서 보여준 사유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새로운 윤리학을 정립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서구에서 68혁명이 새로운 실천철학을 낳은 계기였다면 우리의 경우엔 1987년 6월항쟁이 그런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그는 평가한다. 그의 관심은 지배적 다수의 윤리학이 아닌 소수자의 윤리학, 소수자들의 연대를 통한 보편적 윤리의 정립에 있다. 세 권짜리 <세계철학사> 시리즈도 올해부터 나올 예정이다. 첫쨋권 <지중해 세계의 철학>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서양 철학의 흐름을 살피는 책이며, 둘쨋권 <아시아 세계의 철학>은 동북아를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 지역 철학사의 맥을 짚는다. 셋쨋권 <근현대 세계의 철학>은 앞의 두 권으로 철학사의 흐름을 잡은 뒤 그 위에서 오늘날에 직접 영향을 주고 있는 철학 사조들을 검토하는 책이 될 예정이다.
그의 철학사가 순조롭게 완결되기를 기대한다. '재야'에서의 이러한 노력에 견줄 만한 강단철학의 성과들도 덩달아 나온다면 더욱 좋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