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21에 상반기 베스트를 꼽는 특집기사가 실린 걸 보고 나대로의 주관적 베스트도 꼽아보기로 했다. 사실 작년 8월에 '상반기 베스트'를 선정해본 적이 있는데, 하반기는 흐지부지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그리고는 다시 '상반기'다. 좋은 책들이 많이 쏟아져나왔지만, 일단 내가 정한 기준은 내가 읽은 책(완독하지 않았더라도), 그리고 내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 책, 더불어 사회적으로도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책이다. 이번에는 번역서들만을 대상으로 했다. 국내서의 경우엔 여름에 생각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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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이 만난 레닌- 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슬라보예 지젝.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레닌 외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 2008년 5월
32,000원 → 28,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600원(5% 적립)
2008년 05월 25일에 저장
절판
사실 예기치 않은 번역서다. 지금이 바로 읽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지젝을 위해서도 레닌을 위해서도 필독의 가치가 있다. '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묻는 지젝에게서 또한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 생각해볼 때다.
인문학의 즐거움- 21세기 인문학의 재창조를 위하여
커트 스펠마이어 지음, 정연희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8년 3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08년 05월 25일에 저장
절판

책은 '즐거움'과는 전혀 거리가 멀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통찰과 생각거리들을 던져준다. 조금 '전문적'이어서 생각만큼의 반향을 얻지는 못한 책이지만,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 이상으로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인문학 강사들에겐 필독서.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
피에르 아도 지음, 이세진 옮김 / 이레 / 2008년 4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원(5% 적립)
2008년 05월 25일에 저장
구판절판
저자인 피에르 아도는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을 프랑스에 처음 소개한 장본인이며, 고대 그리스 철학의 개념을 분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에 따르면, 철학은 하나의 이론이기 이전에 실천이 우선시된다는 것이다." 철학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지금의 강단철학이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한다. 아도가 제안하는 건 '삶의 양식'으로서의 철학이다.
단테 신곡 강의- 서양 고전 읽기의 典範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 안티쿠스 / 2008년 1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2008년 05월 25일에 저장
구판절판
단테의 <신곡>을 읽기 위해서 읽은 최적의 길잡이. 말하자면 <신곡> 읽기의 베르길리우스요, 베아트리체이다. 강연자도 청중도 모두 부러움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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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5-26 15:38   좋아요 0 | URL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실천적인 삶이 필연적으로 타인들을 향하는 것은 아니다. 행동으로써 발생하는 결과들을 노리는 생각들만이 ‘실천적인’ 것은 아니다. 정신적 활동과 자기 내에 목적을 지니며 그 자체의 관점으로 개진되는 성찰들이 그보다 훨씬 더 실천적이기 때문이다.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 p.111 / 책소개 중)

매력적인 언명입니다.


로쟈 2008-05-26 22:54   좋아요 0 | URL
저는 아도의 다른 책들도 덩달아 입수했습니다.^^

드팀전 2008-10-27 16:46   좋아요 0 | URL
이 리스트는 못봤는데...지금에야 봤습니다. <지젝이 본 레닌>은 주신 것을 그냥 가지고 있고- 그 전에<혁명이 다가온다>를 바로 전에 읽었으니- 어쨋거나 <지젝이 본 레닌>을 포함해서 이 중에서 세 권은 제 올해의 리스트에도 들어갈 듯 합니다.

로쟈 2008-10-27 23:18   좋아요 0 | URL
<단테>와 <고대철학>인가요?^^

2008-10-27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27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한겨레에 실린 지젝 관련기사에서 "아예 그의 이론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학술잡지가 나올 정도"라는 언급을 했는데, 온라인 잡지인 International Journal of Žižek Studies(http://zizekstudies.org/index.php/ijzs/index)을 염두에 둔 것이다. 사실 알게 된 건 별로 오래 되지 않았다. 문득 생각이 나서 사이트를 찾아가 '발간사'를 읽어봤다. 두 번 놀랐는데, 일단 한국어 번역까지 제공되고 있다는 점(영국의 리즈대학이 이 잡지의 아지트인 듯하고, 그곳 박사과정생들이 세계 각국어 번역의 품앗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번역 또한 오역이 많다는 점('슬라보 지젝'이라고 옮기는 것부터가 징후적이다. 게다가 왜 한국어 문장이 안되는 것인지?). 여하튼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둘러보시길. 아래가 그 발간사이며 한국어 번역에서 두드러진 오역에는 표시를 해둔다(지젝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사실 아래의 영문보다도 읽기 편하다).   

Launched in January 2007, IJŽS is a peer-reviewed, open access academic journal. As its title unambiguously proclaims, it is devoted to the work of Slavoj Žižek, a Slovenian philosopher/cultural theorist. Despite such predictably caricatured media portrayals as "the Elvis of cultural theory" and "the Marx brother", Žižek has attracted enormous international interest through his application of otherwise esoteric scholarship to contemporary mass culture and politics.

IJZS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007년 1월 출범하는 IJZS는 Online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토론하고 상호 검토 보완 할 수 있는 학문적 저널입니다. 저널 타이틀에서 볼 수 있듯이 본 저널을 슬로베니아 철학자이자 문화 이론가인 슬라보 지젝(Slavoj Zizek)의 업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문화 이론의 엘비스”(“The Elvis of cultural theory”), “막스 형제”(“the Marx brother”)에서 예상할 수 있는 그런 풍자적인 모습에도 불구 하고 동시대의 대중 문화와 정치에 대한 난해하지 않은 접근 방법으로 지젝은 막대한 국제적인 관심을 끌어 왔습니다.

With a desire to avoid "how many Žižeks can dance on the head of a pin?" types of debate, and mere hagiography, IJŽS aims to provide a valuable resource for those interested in his inimitable brand of critical thought. Just one small indication of Žižek's wide appeal is apparent from the diverse nature of IJŽS’s Editorial Board and the Journal will be devoted to engaging with the substantive and provocative implications Žižek’s work has for a range of academic disciplines.

IJZS는 단순히 위인전과 같은 접근이나 “얼마나 많은 지젝이 핀의 머리 위에서 춤을 출 수 있을까”와 같은 논쟁을 피하고 그의 독특하고 비평적인 사상에 대한 관심이 있는 가치 있는 자료들을 제공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지젝의 폭 넓은 주장에 대한 작은 암시는 IJZS의 편집 위원회의 다양한 구성으로 볼 수 있듯 다양성을 지향하는 것이 명백 하며 본 저널은 다양한 학문 분야에 걸쳐 중요하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지젝의 업적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For some, the notion of a journal devoted to the work of a theorist very much alive and intellectually kicking is discombobulating. That death should be a prerequisite for sustained scholarly interrogation of a patently substantial body of work, however, is perhaps stranger still. In an interview with one of the many journalists interested in packaging Žižek for mass consumption, Tony Brown of the Editorial Board has pointed out that:

일부 저널의 견해는 이론가 작품을 생동감 있게 나타내기도 하지만 일부 지적으로 중요한 작품은 혼란스럽기도 할 것 입니다. 이는 한 이론가의 중요한 업적에 대한 학문적 의문을 지탱하기에 필수 적인 이론가의 죽음이 아직 이루어 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 입니다. 대중 소비에 대한 관점에서 지젝을 평가하는데 관심 있는 많은 저널리스트들 중의 한 사람의 인터뷰에서 편집 위원회의 토니 브라운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습니다.

Žižek is alive, which allows him to answer back. Derrida once claimed that people treated him as though he were dead before he actually died, since they were too ready to sum up the import of his work. Žižek always resists such encapsulations of his work and forces us to carry on thinking. He readily challenges people trying to sum him up. Hence his presence on the Board of the journal is unsettling rather than anything else - unsettling in a positive way. Anyone who tried to pin him down would be beating him up, intellectually speaking. Since Žižek is very alive he is able to kick back, interrupt encapsulations, celebrations, as well as criticisms.

“지젝은 살아 있고 그로부터 대답을 들을 수 있다. 데리다는 사람들이 그를 마치 그가 실제 죽기 전에 죽은 것처럼 다뤄지면 그 준비가 지나쳐 제대로 평가 할 수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지젝은 항상 그런 그의 일에 대한 평가 받는 것에 저항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계속 생각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그를 평가하려는 시도를 쉽게 용납한다. 그래서 그의 존재가 다른 어떤 것과 달리 긍정적인 방향으로 심한 논쟁거리가 되도록 하고 있다. 그를 평가하려는 사람은 아마도 그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살아 있고 심하게 반박할 수도 평가 중간에 반박할 수도 찬사를 할 수도 그리고 비판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Žižek thus defies easy categorisation but the importance of his contribution to contemporary cultural theory is clear. The fact that his success is largely built upon a consistent examination of ideology forcefully belies claims that we now live in post-ideological times. Moreover, his seemingly irrepressible urge and inexhaustible ability to articulate theory at length, in depth, and with manifold entertaining examples, offers significant hope for those seeking respite from the cultural tinnitus of pervasive soundbites.

그래서 지젝은 그런 범주화에 강한 반박이 가능지만 동시대의 문화 이론에 대한 그의 중요한 기여는 명백합니다. 그의 성공이 일치화된 이데올로기의 시험 위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은 우리가 현재 포스트 이데올로기 시대에 살고 있다는 주장에 모순이 되며 또한 깊이 있고 폭 넓은 각지각색의 오락적인 예로 분명히 표현하는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능력과 견딜 수 없는 그의 충동은 널리 퍼지는 연설문의 문화적 귀 울림으로부터의 단절에 대한 중요한 희망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08. 0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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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파문을 계기로 우리의 먹을거리에 대한 염려도 커지고 있다. 대개의 한국인들은 '잘먹고 잘사는' 일을 입버릇처럼 열망해온 터라 '잘먹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한데, 주변상황이 만만치가 않다. 그걸 또 보여주는 책이 최근 출간된 <독소 - 죽음을 부르는 만찬>(랜덤하우스, 2008)이다. 저자와의 인터뷰기사를 소개를 대신하여 옮겨놓는다.

한겨레(08. 05. 24) "미국인들이 쇠고기 안심하고 먹는다는 주장은 거짓”

미국에서도 자국산 쇠고기의 안전도를 의심해 풀로만 키운 소의 고기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으며, 인간광우병(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vCJD)의 심각성이 증세가 유사한 알츠하이머에 가려져 과소평가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미국에서 활동 중인 시사다큐멘터리 작가이자 식품 전문가인 윌리엄 레이몽이 밝혔다.

레이몽은 코카콜라의 신화 속에 은폐된 진실을 추적한 <코카콜라게이트>로 명성을 얻은 프랑스인으로, 미국 식품의 안전성 문제를 다룬 <독소-죽음을 부르는 만찬>(랜덤하우스 펴냄)을 최근 국내에서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23일 <한겨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과 관련해 “미국에서는 돼지나 닭 사료와 소 사료 작업이 같은 공장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뒤섞일 수 있다”며 이런 교차오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소에게 소를 먹이는 사료 정책을 폐지했다고 해도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최근 광우병 논란은 미국산 쇠고기를 국제수역사무국(OIE) 등이 정한 뇌·머리뼈·척주 등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만 제거하고 먹으면 위험성이 없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광우병 특정위험물질만 제거하면 미국산 쇠고기는 과연 안전한가?

먼저 이 점을 말해 두자. 위험요소 제로는 있을 수 없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선 이런 점을 주의해야 한다. 우선, 미국 농무부와 쇠고기 생산업자들이 규제와 새로운 발견에 관한 정보를 모두 공유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산 소의 뼈와 고기로 만든 사료를 다른 가축들, 예컨대 돼지나 닭 같은 동물들 사료에 섞어 먹이는 게 여전히 허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서로 다른 사료 작업들이 같은 공장에서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돼지나 닭 사료가 소 사료와 뒤섞일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금지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다. (돼지나 닭의 사료가 소 사료와 섞여 일어나는) 교차오염의 위험성이 낮다고 주장하는 쪽은 사료 생산업자들과 공장식 축산업자들, 그리고 미국 정부 관리들뿐이다. 우리는 미국 사료공장의 약 5%가 관련 규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미국 정부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 것 아닌가?

“미국 상황을 좀더 잘 이해하려면 광우병 대책의 문제점이 드러나는 미국 회계감사원(GAO)의 2002년 보고서를 꼭 읽어 봐야 한다. 지금까지 많은 내용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다. 이 보고서는 “공공보건 측면에서, 소비자들이 자신들이 이용하는 식품과 다른 제품들에 언제 중추신경 조직이 포함될 수 있는지 항상 알 순 없는 노릇이다. … 쇠고기와 쇠고기 추출물, 쇠고기 조미료와 같은 많은 식품들은 흔히 (척추를 포함한) 소 사체의 뼈 잔류물들을 삶아서 만들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핫도그와 햄버거, 피자 토핑(위에 얹는 크림이나 치즈)은 소 척수에 오염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티본 스테이크에 관해서인데, 티본 스테이크는 동물 척추가 붙어 있고 거기에 실제로 척수 부분이 포함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인들도 안심하고 먹는 미국산 쇠고기를 의심하는 것은 정치적 반사이익을 노린 반대세력의 선동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인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아무런 의심 없이 먹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풀로만 키운 쇠고기를 먹는 경향이 추세화하고 있다. 2주일 전 <뉴스위크>가 그에 관한 몇 가지 뉴스를 전했다. 설사 미국 소비자 다수가 자신들이 먹는 쇠고기의 안전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매일 의심하는 사람이 점점 더 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소 사육자들은 왜 동물사료에 집착하나?

“한마디로 돈 때문이다. 내 책(<독소-죽음을 부르는 만찬>)에 동물사료를 섞은 혼합곡물사료가 얼마나 비용을 절약하고 더 큰 소를 만들어 주는지에 대해 말하는 농부 얘기를 썼다. 이윤, 이윤, 이윤. 대부분의 문제는 결국 거의 돈 때문에 발생한다.”

-광우병 대책과 관련해 유럽연합의 조처는 광우병 위험을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수준인가?

“다시 한번 얘기하는데, 위험요소 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이든 미국이든. 지금 유럽 상황은 광우병 소동으로 시장이 큰 타격을 입은 뒤에야 좋아졌다. 오직 강력한 대책만이 소비자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성장호르몬을 투여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거부한 유럽연합(EU)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고 세계무역기구는 미국 편을 들었다.

“미국 쇠고기가 광우병 문제만 안고 있는 건 아니다. 성장호르몬도 문제다. 에스트라디올(난소호르몬의 일종), 프로게스테론(황체호르몬),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의 일종), 트렌볼론 아세테이트, 그리고 제라놀과 같은 호르몬제도 문제다. 이들 중 일부는 사춘기를 앞당기고 호르몬 난조 등의 부작용을 유발한다. 일부는 장기적으로 암을 유발할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의 결정은 정치적인 것이다.”

-미국과 유럽 노인들이 흔히 걸리는 알츠하이머 증세도 광우병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들이 있다.

2006년 이후 몇 가지 의학연구 결과 그런 연관성을 주장하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들은 그것을 ‘BSE 암모니아 마그네슘설’이라고 부른다. 기본적으로 이 이론은 광우병 발병 원인이 장기간의 단백질 다량 흡입 및 마그네슘 결핍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것은 알츠하이머 발병 원인과도 매우 유사하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인간광우병에 걸린 사람 수가 왜 적은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또다른 유력한 이론이 있다는 거다. 그것은 두 병의 증상이 거의 같기 때문에 인간광우병 환자 수가 지금 만연하고 있는 알츠하이머 환자 수에 가려 은폐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항생제와 살균·살충·제초용 농약, 포장용 가스, 유전자 조작 작물(GMO), 방사선 살균, 액상과당 등도 심각하다. 도대체 안전한 먹을거리는 없다는 얘긴가?

정말 큰 문제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싸워서 우리의 음식을 되찾아야 한다. 될 수 있는 한 가공식품을 피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요리를 해야 한다. 자연식품의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깨달아야 하며, ‘적게 천천히’(small and slow)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비만 문제나 광우병 문제는 결국 최근 30여년간 미국 주도하에 진행돼온 민영화와 규제 철폐, 시장을 우선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핵심이 아닌가?

“명백히 그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나는 자유시장을 신봉하지만, 좋은 것만 취하고 위험한 것은 피해야 한다. 미국은 엄청난 상품들을 제공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들 중 일부 제품들에 대해서는 “안 돼”라고 말할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한승동 선임기자)

08. 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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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5-24 19:40   좋아요 0 | URL
아 오늘 한겨레신문에서 봤어요. 크게 실었더라고요. 첨엔 책 광고인줄 알았어요. 큭큭.

로쟈 2008-05-24 20:04   좋아요 0 | URL
저는 아이 때문에 들른 치과에서 지면기사를 읽었습니다. 동네엔 한겨레를 파는 곳이 없더군요.^^;

마늘빵 2008-05-25 09:53   좋아요 0 | URL
저도 동네서 한겨레 사려면 부지런떨어야합니다. 한 두세부 정도밖에 안갖다놔요. -_- 아침 일찍 가야한다는. 이거사러 나가야돼요.

순오기 2008-05-25 07:57   좋아요 0 | URL
늘 올려주시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꾸벅!

로쟈 2008-05-25 11:23   좋아요 0 | URL
옮겨오는 거야 뭐 식은 죽 먹기죠.^^;

노이에자이트 2008-05-25 22:51   좋아요 0 | URL
광주 광역시는 어딜 가나 한겨레 신문 쉽게 구하는데...창간 초창기에 호남지역 아니었으면 한겨레 신문은 견뎌내지 못했을 거라고 하는 말도 있었어요.

로쟈 2008-05-26 22:55   좋아요 0 | URL
광주가 부천보다는 낫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5-27 00:31   좋아요 0 | URL
오...소사...요즘도 복숭아 과수원이 많은가요? 최무룡 씨의 노래 <외나무다리>에서 복사꽃 능금꽃이 피는 내고향 만나면 정다웠던...하는 가사가 소사를 배경으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최무룡 씨가 노래도 잘했거든요.저 빼놓곤 우리 또래들은 이런 거 몰라요.헤헤헤...

로쟈 2008-05-28 21:56   좋아요 0 | URL
소사쪽은 아니구요, 신도시쪽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28 23:43   좋아요 0 | URL
신도시는 모르겠네요...

로쟈 2008-05-29 00:18   좋아요 0 | URL
중동, 상동이 신도시라고 불립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29 23:22   좋아요 0 | URL
오호...그렇군요.
 

이번주 북리뷰들에서 크게 다루어진 책은 에이미 추아의 <제국의 미래>(바이북, 2008)다. 어제 지젝의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2008)을 먼저 손에 들었기 때문에 나로선 여력이 없었는데, 550여쪽에 이르는 국역본의 부피가 미리부터 의욕을 꺾는 면도 있다(지젝의 책은 587쪽에 이르지만 개인적으로 절반은 한번 읽었던 터라 부담이 덜하다). 그럼에도 관심도서로 올려놓고 리뷰를 챙겨둔다. 더불어 한겨레21에 연재되고 있는 '김창진의 제국의 그늘'도 연상이 되기에 이번주 꼭지도 같이 옮겨놓는다(http://h21.hani.co.kr/section-021165000/2008/05/021165000200805220711050.html).

경향신문(08. 05. 24) 힘의 오만, 미국이 흔들린다

고대 페르시아와 로마, 동양의 당(唐)과 몽골, 서양의 네덜란드와 대영제국, 그리고 현대의 미국까지. 이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군사·경제적으로 세계적인 패권을 휘두른 극소수 국가들이라는 것. ‘제국의 미래’(원제 Day of Empire)는 바로 이들 초강대국(제국)을 다룬 책이다. 미국식 세계화의 위험성을 고발한 전작 ‘불타는 세계’(2002년)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저자(예일대 법학과 교수)는 이 책에서 제국의 흥망성쇠를 추적하면서 한 사회가 어떤 경로를 거쳐서 초강대국이 되고 또 쇠퇴하는지를 탐구했다.

책의 논지는 간단명료하다. 성공한 제국들은 하나같이 다원적이고 관용적이었다. 역으로 제국의 쇠퇴는 불관용과 외국인 혐오, 인종·종교·민족적 순수성에 대한 촉구와 함께 시작됐다. 저자는 “한 사회가 세계적 차원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치기 위해선 인종·종교·배경을 따지지 않고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관용’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마을이란 마을은 죄다 쑥대밭을 만든 몽골이나 적들을 말뚝에 꿰어 죽인 페르시아가 관용적이라고? 저자가 말하는 관용은 ‘인권’과 관련된 현대적인 의미가 아니다. 인종·종교·민족 등에서 이질적인 사람들이 공존·번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자유를 뜻한다. 경쟁자들과 비교해서 더 관용적이냐, 아니냐 하는 ‘상대적’ 관용이다.

제국의 지배자들은 인종·종교·민족을 뛰어넘어 정치·문화적으로 피지배자들을 동등하게 대우했다. 최초의 패권국가 페르시아는 새로운 왕국을 정복하면 해당 지역의 법률과 전통을 포용하고 언어·종교·예식을 용인했다. 또 인종이나 종교에 개의치 않고 최고의 실력을 가진 장인·사상가·노동자·전사들을 동원했다. 이 같은 전략은 이후 등장한 제국들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시민권’을 통해 피정복민을 공동체의 충실한 구성원으로 바꾼 로마는 “피지배민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공통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가장 성공했던 제국”으로 평가된다.

물론 저자는 관용이 초강대국의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말한다. 지리·인구·천연자원·지도력 등의 요소들이 합쳐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관용은 초강대국의 ‘필수 조건’이다. 역사상 인종주의와 종교적 광신을 토대로 한 사회가 세계적인 패권국가가 된 사례는 없다. 20세기 독일과 일본이 대표적이다. 또 ‘이단 심문소’로 대표되는 16세기 스페인의 불관용 정책은 비기독교도 주민들을 억압하고 추방해 인적 자본과 금융·사회자본을 잃고 세계 재패의 기회를 날려버렸다. 반면 유럽 전역이 종교적 광신에 휩싸여 있던 1579년 종교의 자유를 건국헌장에 포함시킨 네덜란드는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전역으로부터 종교적 난민을 유인하는 ‘자석’이 되면서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저자가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지만 그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미국이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로는 처음으로 초강대국의 지위에 올랐다. 재능있고 진취적인 개인들을 배경에 관계없이 흡수해 그들에게 합당한 보수를 제공한 게 성공 요인이었다. 1990년대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끌어올린 IT혁명도 이민자들의 능력과 진취성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 덕분이었다.

저자는 그러나 “2001년 9월11일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단언한다. “미국 군사력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하고 “선제 행동”을 할 권리를 표명하는 등 강력한 개입주의·일방주의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 미국의 이민정책이 불관용으로 돌아선 데 우려를 나타낸다. 역사상 초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진정한’ 혹은 ‘순수한’ 정체성을 거듭 단언하면서 동화가 불가능한 집단들에 대해 배타적인 정책을 채택하는 순간 무너졌다. 저자는 “이민자들을 모든 문제의 원흉으로 몰거나 미국의 성공을 앵글로색슨과 개신교의 가치관에서 찾으려는 시도들은 그릇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미국의 그늘 아래 살고 있는 수십억 사람들과 미국을 단단히 묶어줄 정치적인 ‘접착체’가 없다는 것도 제국으로서 미국이 직면한 문제다. 오히려 최근 미국은 자유시장과 민주주의를 포함한 서구적인 관용정책을 수출하려고 하면서 거센 ‘반미주의’의 저항에 직면해있다. 이 때문에 저자는 “미국이 다른 나라의 정권을 변화시키고 미국식 제도를 강제하는 일에 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쓰”거나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세계의 패권을 지키겠다는 의도를 떠벌리고 다니는 것”에 우려를 표시한다. 나아가 미국이 전 세계를 자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개조하려는 무의미한 일을 자청하기보다는 ‘세계를 위한 본보기’가 되려고 노력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조언한다. “미국이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중단하는 것뿐”이라고도 꼬집는다.

책은 초강대국 후보라 할 만한 중국, 유럽연합, 인도의 가능성도 탐색한다. 그런데 중국은 뿌리깊은 외국인 혐오와 자민족중심주의에, 유럽연합은 이슬람교도에 대한 두려움과 큰 장벽이 존재하는 이민 정책에 발목이 잡힐 것으로 전망한다. 오히려 수십개의 언어와 수천개의 종교가 공존하는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 인도에서 더 큰 가능성을 두는 느낌이다.

이 책은 중국계 미국인 2세인 저자가 자신의 부모와 가족을 이끌어온 “미국의 관용에 바치는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이 “미국이 성공할 수 있었던 진정한 비결은 언제나 예외 없이 관용이었다는 것과 지금 그 비결을 잃어버릴지도 모를,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경고하는 경고문”이라고 밝혔다.(김진우기자)

한겨레21(08. 05. 22) '이민자의 나라’에 울리는 조종

이국 땅 시애틀에서 마흔한 살 생일을 맞던 날 이른 아침,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관리들의 기습 체포로 애나 레예스(41)의 아메리칸드림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와 함께 두 딸과 두 아들도 즉각 멕시코로 추방됐다. 만약 그의 수중에 밀수업자에게 건네줄 약간의 돈푼이라도 남아 있었더라면, 같은 처지에 놓인 다른 추방자들처럼 국경도시 티후아나에서 버텨보다가 미국으로 다시 들어갈 기회를 노려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7년간 농장 일꾼과 호텔 청소부로 일하며 근근이 네 자식을 건사하다 졸지에 내쫓긴 그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애나는,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고자 고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하고 탈출했던 시골 마을로 죽기보다 싫은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안 됐다. 지난 한 해 87만 명이 넘는 ‘동포들’의 행렬에 끼여 추방되는 것으로 그의 ‘불법 체류자’ 생활은 끝이 났다.

아스피린만 처방했어도…
용선 하빌(52)씨는 조국이 아직 가난에 허덕이던 지난 1975년 주한미군과 결혼해 ‘꿈의 나라, 풍요의 땅’ 미국의 플로리다에 합법적으로 정착했다. 하지만 33년이 흐른 지금, 그는 한국으로 추방될 신세로 전락해 애리조나의 감옥에서 세상과 거의 절연돼 있다. 암투병 경력이 있는 용선씨는 처음 감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다리가 퉁퉁 붓는 심한 육종에 C형 간염, 조울증, 고혈압, 공황장애 등을 앓고 있었고 복통 증세에다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지난 1년 동안 직계가족의 면회도, 변호사의 접견도, 심지어 의사의 진료마저도 봉쇄되고 있다. 미국 영주권자인 그는 바로 미국 땅 한켠에서 ‘우리에 갇힌 동물’ 대접을 받으며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승용차 안에서 마리화나가 발견돼 마약 소지 혐의로 13개월을 복역하고 지난해 3월 출소 예정이던 용선씨에게 닥친 불행은 어이없게도 ‘장물 취득’ 혐의였다. 이미 10년 전 일로서, 장물인지 모르고 귀금속을 구입했다는 진술이 참작돼 집행유예로 마무리 된 사건이었다. 그런데 뒤늦게 당국은 이 사소한 지난 일을 들추어 그를 추방대기자로 분류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제 다른 수많은 구금자들처럼 다시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감옥 안에 방치된 채 비극적인 생을 마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가나 출신 미국 이민자였던 유시프 오스만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5년간 합법적인 신분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생활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ICE에 체포돼 샌디에이고 외곽에 위치한 추방자용 구금자 감옥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동료가 위조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다가 체포된 뒤에 당국은 그에게 밀수 혐의를 씌웠으나 그는 부인했다. 그럼에도 힘없는 한 아프리카계 이민자가 ‘국가안보’라는 무시무시한 명분으로 ‘제국의 법’을 집행하는 관리들에 맞서 철창행을 피할 수는 없었다.

감옥에 도착한 직후 시간제 간호사가 평소 의례적인 업무대로 유시프의 건강 상태를 컴퓨터에 입력했다. 하지만 그녀는 유시프의 상태에 관한 검사기록이 없는데도 실수로 ‘완료’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그리고 석 달 뒤, 유시프는 심한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같은 방 동료가 간수를 소리쳐 불렀으나 그는 건성으로 들여다보고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는 환자의 병력 기록이 없는 것을 보고 위급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유시프에게 진료 요구서를 작성하라고만 말했다. 아무런 조처도 취해지지 않았다. 상황이 심각한 것을 알아차린 유시프의 감방 동료가 다시 소리를 지르자 다른 간수가 왔고, 다시 간호사를 불렀다. 이번에는 그녀가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자고 했다. 그로부터 40분이 지나 간수가 휠체어를 가지고 왔으나, 너무 늦었다. 그때까지 간신히 헐떡거리던 유시프의 심장은 곧 멎어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검시 결과를 확인한 두 의사는 환자가 즉각 처치를 받았더라면, “아마도 아스피린 같은 기본 처방만 받았더라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합법 체류자까지
유시프의 어이없는 죽음도, 용선씨의 기막힌 불운도, 애나의 속수무책 추방도 오늘의 미국에서는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현재 미국 전역의 수용소와 감옥에 약 3만3천 명의 구금자들이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도 받지 못하면서, 마치 아무 예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축사로 옮겨질 짐승처럼, 추방될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와중에 지난 5년간 83명의 억류자가 야만적인 시설에서 귀중한 생명을 잃었다. 그중 대다수는 40살 미만의 젊은이였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앞으로 점점 더 악화될 조짐을 보인다는 데 있다. 9·11 이후 신설된 국토안보부 산하 ICE가 최근 멕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캘리포니아 같은 남부 주들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불법 체류자’ 단속 작전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공장, 학원, 가정집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합법 체류자들까지 마구잡이로 잡아들이고 있다. 지난 5월12일에도 ICE는 중부의 아이오와주에서 경찰과 함께 헬기까지 동원해 육류포장 공장을 급습했다. 그 결과 단번에 300명 이상을 체포하는 ‘전과’를 올렸다. 대부분 멕시코와 과테말라 출신인 그들은 곧바로 지역 감옥에 넘겨졌고 조만간 추방될 것이다. 조지 부시 정권이 추진하는 ‘테러와의 전쟁’이 완전히 빗나가, 실상은 미국의 제조업과 농업, 서비스업의 밑바닥을 받쳐주는 가난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전면전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아메리칸드림의 파탄을 여실히 증거해주는 이들 수용소의 실태는,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공습 이후 12만 명의 일본계 미국인들이 황량한 억류시설에 강제 격리됐던 상황을 떠오르게 할 정도다. 일단 구금자 수용소에 갇히게 되면 심지어 확정된 살인범보다 변호사 접견이 더 어려울 정도며, 일부는 테러범으로 지목된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감금된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보다도 열악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법치국가’ 미국에서 법률·의료적 보호의 완전한 사각지대로 떨어지게 된다.

미국의 비참한 추방자 수용소 실태를 폭로한 <워싱턴포스트>는 이런 상황이 9·11 이후 부시 정권이 아무런 준비도, 결과에 대한 예측도 없이 갑작스럽게 밀어붙인 정책 집행의 결과로 보고 있다. 수용소 안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간수와 의료진의 업무태만, 행정관리의 미숙, 구금자 기록 관리의 어처구니없는 부실함, 의사·간호사·기술자의 태부족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인 것이다. 그럼에도 연방 관리는 “수용자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한다.

살인범보다 변호사 접견이 더 어려워
이렇듯 아메리카 제국의 안보를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되는 ‘테러와의 전쟁’은 ‘이민자의 나라’라는 미국의 오랜 정체성에 종말을 고하는 조종처럼 보인다. 그것은 1950년대 매카시즘 광풍 이후 반세기 만에 다시 나타난, ‘내부의 적’을 색출하는 데 골몰하다가 자기 자신이 파멸에 이르는, 국가기관의 발작 증세라고 할 수 있다. 발작이 지속되면 국가기관은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하게 되고, 그 결과 국가안보는 더욱더 취약하게 될 것이다.(김창진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

08. 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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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5-24 22:51   좋아요 0 | URL
텍사스,아리조나,뉴 멕시코...다 예전 멕시코 땅인데 이웃 잘 못 만나서 다 뺏기고 이제는 국경 넘으려고 목숨 거는 처지...정말 안됐어요.20년 전엔가 한참 유행한 Don De Voy의 가사 번역한 것을 몇 년 전 알게 되었는데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는 느낌이었어요.

로쟈 2008-05-24 23:23   좋아요 0 | URL
Don De Voy가 그런 가사였군요. 덕분에 알게 됐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5-25 00:11   좋아요 0 | URL
그 노래 부른 티시 히노히사 누나가 정말 이뻤어요.로쟈 님도 본 적 있죠? 이제 40대 아줌마가 되었겠네요.

로쟈 2008-05-25 11:23   좋아요 0 | URL
얼굴은 본 적이 없는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05-25 22:49   좋아요 0 | URL
Don De Voy검색하시면 얼굴과 스페인어 원문 국역문 나옵니다.근데 50이 넘었다는 설도 있네요.

로쟈 2008-05-26 22:56   좋아요 0 | URL
네, 나이는 들어보이는데요.^^
 

에릭 홉스봄의 <혁명가 - 역사의 전복자들>(길, 2008) 출간 소식은 이미 다룬 바 있는데, 간단한 리뷰기사가 있기에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8. 05. 24) 혁명의 빈자리 채울 저항의 세계화 주창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세계적인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은 1917년에 태어났다. 공교롭게도 그가 태어난 해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했다. 공산주의 국가의 탄생과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본 이 노학자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저술활동을 하는, 지적으로 왕성한 정력을 지닌 인물이다.



자본주의가 태동한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역사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제시한 역사3부작,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를 저술한 홉스봄은 2002년 ‘미완의 시대(원제 ‘흥미로운 시간’)’라는 자서전을 내놓는다. 그리고 자서전을 출간하기 한 해 앞서 홉스봄은 ‘혁명가, 역사의 전복자들’을 재출간한다.

‘혁명가, 역사의 전복자들’은 1961년부터 73년까지 홉스봄이 마르크스주의와 관련해 각종 매체에 기고한 평론과 논문, 강연을 모은 책이다. 자서전 출간에 앞서 스스로의 지적 작업을 성찰하고 20세기를 되돌아 보는 과정을 담았다. 마르크스주의가 마치 사형선고라도 받은 양 치부되는 요즘, 이 책은 ‘구닥다리’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와 세계화가 진행되고 빈부격차가 한층 심화되면서 그의 통찰력이 다시 빛을 발하고 있다.

이 책은 유럽 각국 공산주의 정당의 성공과 실패 사례, 마르스크주의가 노동운동에 끼친 영향, 게릴라 활동과 군부의 정치개입, 1968년 유럽의 혁명운동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혁명과 관계하는 대부분의 주제를 망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광범위한 지적 활동이 가능한 이유는 그가 20세기를 온전히 관통했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집권을 경험하고 아바나에서 체 게바라를 통역하고, 소련에서 스탈린의 시체를 직접 목격했던 ‘역사의 참여관찰자’가 전해주는 통찰이다.

그의 성찰에 울림이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소련과 스탈린의 교조적 공산주의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하며 역사를 끊임없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했다는 데 있다. 이 책의 11장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대화는 마르스크주의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런 탓에 홉스봄의 책은 소련에서 금서로 지정됐다.

전 세계 국경을 넘나들며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자본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책은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홉스봄은 더 이상 혁명이 가능하지 않은 시대를 맞아, 모든 피억압 계층이 연합해 자본에 대항하는 ‘인민전선’에서 해법을 찾아온다. 빈민과 중산층, 노동자와 농민과 샐러리맨, 좌파와 중도파를 아우르는 ‘저항의 세계화’가 필요한 시대라는 얘기다. 오늘 이 땅에서도 그가 말한 ‘저항의 연대’가 불가능한 것으로만 보이진 않는다.(김준일기자)

08. 05. 23.

P.S. 기사에서 눈길을 끈 언급은 홉스봄의 책이 소련에서 금서로 지정됐었다는 사실. 지금은 어떤가 궁금해서 검색해봤다. 그의 3부작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는 러시아어로는 지난 1999년에 출간됐고, 20세기사인 '극단의 시대'는 2004년에 번역되었다.

Эрик Хобсбаум Век революции. 1789 - 1848Эрик Хобсбаум Век капитала. 1848 - 1875

Эрик Хобсбаум Век империи. 1875 - 1914Эрик Хобсбаум Эпоха крайностей. Короткий двадцатый век 1914 - 1991 Age of Extremes. The short Twentieth Century. 1914 -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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