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그를 지지하는 국민들의 구호 같지만 거꾸로 MB의 구호다. 아침에 읽은 기사 중에 이명박 리더십을 염려하는 칼럼들이 눈에 띄어서 옮겨놓는다(오히려 화두는 'MB 트라우마'다).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란 구호는 실패와 그 가능성에 대해서 자각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그것을 부정/부인하려는 제스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데 비교적 온건한 아래 칼럼들에서도 기본 정조는 '두려움'이다.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란 '자신감'에서 처칠과 오바마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파국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불운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시국인 듯싶다.

한국일보 [임철순 칼럼/7월 25일] 이 대통령의 첫 휴가

이명박 대통령의 휴가는 참 옹색하다. 26일부터 30일까지 4박5일간 쉰다는데, 행선지는 군대 내의 휴양시설이다. 미국이나 일본에 갈 수 없고 금강산도 갈 수 없고, 휴가를 갈 만한 곳이 별로 없다. 그나마 취소하려다가 참모들의 건의에 따라 휴가를 하되 통상 1주일인 기간을 5일로 줄였다니 옹색하기 그지없다. 그런 이 대통령이 휴가에 앞서 청와대 직원 300여 명에게 선물한 책이 눈길을 끈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외손녀 실리아 샌디스가 쓴 <돌파의 CEO 윈스턴 처칠: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이다. 이 대통령은 원래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 등 리더십에 관한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알려진 분이다.

처칠평전 일독을 권한 대통령
책의 원제는 <We shall not fail>이며, 부제가 ‘the inspiring leadership of Winston Churchill’이라고 돼 있다. 이 제목은 제2차 세계대전 초기였던 1940년 6월에 행한 하원연설에서 따온 것으로, 그야말로 힘이 있고 국민에게 용기를 심어준 웅변이었다. 제목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단어는 ‘inspiring’이다. ‘고무하는, 분발케 하는, 감격시키는’이라는 단어가 리더십이라는 말과 어울림으로써 ‘우리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다짐에 힘을 넣고 있다.

취임 초기부터 실수 실착으로 낭패를 본 이 대통령은 무엇으로 힘을 스스로 회복하고 국민을 고무ㆍ분발ㆍ감격케 할 수 있을까. 이 대통령은 언어적 감성이나 재치 논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만 못하고, 연설의 힘이나 카리스마에서 김영삼ㆍ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라잡기 어렵다. 목소리, 특히 말끝이 퍼지지 않아 알아 듣기 힘든 경우가 있고 전달력이 약하다. 말은 못하는 편이라고 하기 어렵지만, 잘한다고 할 수도 없다. 게다가 여러 곳에 남긴 방명록의 휘호는 어법이 안 맞거나 맞춤법 띄어쓰기가 틀려 웃음을 사고 있다.

그러니 개인의 노력과 시스템의 도움으로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을 고무ㆍ분발ㆍ감격케 하는 리더십을 창출할 수밖에 없다. 특히 대통령의 일거수 일투족은 전적으로 연출돼야 한다. 그것은 조작과 다르다. 방명록의 휘호도 혼자 알아서 하면 안 된다. 왜 각종 연설문은 미리 작성해 여러 사람이 검토하면서 방명록은 대통령 혼자 쓰게 하는지, 그래서 맞춤법과 어법이 틀리게 내버려 두는지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말을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국민과 부하가 매력에 반하게 하는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부하는 반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처칠의 경우 불독처럼 생긴 얼굴에 굵은 시가를 입에 문 모습이 국민에게 자신감을 불러 넣었고, 연설은 국민을 안심시키는 효과를 거두었다. 총리가 된 뒤 첫 의회연설에서 처칠은 저 유명한 ‘피와 수고와 땀과 눈물’의 연설로 마음을 사로잡았다.

여유있게 승리의 V자 사인을 하거나 실크 해트를 지팡이에 걸고 뱅뱅 돌려 청중에 답례하던 개구쟁이 같은 표정도 귀여웠다. 처음 의원선거를 치를 때 만날 늦게 일어나는 게으름뱅이라고 상대가 비난하자 “나처럼 아내가 예뻐 봐. 일찍 일어날 수 있나”하고 응수했던 처칠은 유머감각도 뛰어났다. 이 대통령은 과연 매력적인가, 재치가 있나, 유머가 있나, 멋진가, 귀여운가. 그리고 이 대통령을 보면 즐겁고 안심을 하게 되는가 이런 것을 생각해 볼 일이다.

국민을 고무하는 리더십 절실
1주일 전,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이 90회 생일을 맞았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만델라를 표지인물로 싣고 그의 리더십 8가지 교훈을 소개했다. 맨 처음이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고무하는 것”이다. 여기에도 inspiring이 나온다. 각국 지도자들이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얼마나 세심한 연출을 하는지, 국민들의 마음을 읽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살펴야 한다. 모처럼의 휴가에 이 대통령이 이런 것들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한국일보 [이유식 칼럼/7월 29일] MB 정권의 트라우마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위원의 매력과 마법에 유럽이 흠뻑 빠지고, 독일 프랑스 영국 정상들이 앞 다퉈 그를 영접하는 데 열을 올렸다는 뉴스가 지난 주 외신의 머리를 장식했다. 특히 독일 베를린 중심부 공원의 승전탑 앞에서 가진 행사에는 20만명의 인파가 운집해, 40여년 전의 존 F 케네디를 연상시키는 그의 면모와 연설에 열광했다. 하이라이트는 ‘미국 시민이자 세계 시민’ 자격으로 연단에 오른 오바마가 국가ㆍ인종ㆍ종교 등의 장벽을 뛰어넘는 화합과 테러ㆍ기후변화ㆍ빈곤 등의 지구적 도전에 맞서는 용기를 강조하며, 바로 지금이 지구시민 모두가 책임감을 발휘할 때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고 한다.

메시지 실패로 정국 반전 못해

아직은 대통령 후보일 뿐인 오바마의 순방에 대해 유럽이 록 콘서트 같은 축제분위기를 연출한 것은 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 외교에 대한 염증과 새로운 세계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 함께 빚어낸 결과일 게다. 오바마는 이 점을 정확히 짚었고, 유럽인들이 그리는 지도자상에 부합하는 이미지를 창출해냈다. 비판론자들은 그의 분명하지 않은 정책과 저급한 포퓰리즘으로 한 판의 정치쇼를 벌였다고 공격하나, 세계를 향해 던진 화합ㆍ희생ㆍ용기ㆍ책임의 메시지는 이미 ‘케네디 향수’를 뛰어넘고 있다.

오바마가 세기적 도전에 대한 지구적 차원의 공동 대응을 강조하며 영국에서 유럽방문 일정을 끝냈을 즈음에, 이명박 대통령은 휴가지에서 윈스턴 처칠 전 영국총리의 리더십을 다시 떠올렸을 듯 싶다. 휴가 직전 청와대 직원들에게 ‘피와 땀과 눈물’의 연설로 유명한 처칠의 일대기를 그린 책을 선물하며, “다들 어렵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면 실수는 해도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함께 전했다고 해서다. 이런 각오를 다지는 듯, 최근 대통령의 말수가 줄어드는 것과 반비례해 경제 살리기에 초점을 맞춘 각종 개혁과제를 차질 없이 이뤄내겠다는 의지는 더욱 굳건해졌다고 측근들은 전한다.

하지만 메시지의 힘과 효과에서 이 대통령은 실수가 아니라 실패하고 있다. 머리의 메시지와 입의 메시지가 다르고, 혼란스런 메시지를 실천할 손과 발마저 따로 놀기 때문이다. 결과는 ‘쇠고기 트라우마(trauma)’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공직사회의 무기력과 눈치보기이고, 당정 사이에 일상화한 정책의 혼선과 갈등이다. 관료들은 국민보다 괴담이 무서워 몸을 사리고, 기업은 널뛰듯 하는 정책방향을 가늠하지 못해 움츠리며, 가계는 내일의 삶을 기약할 수 없어 바닥을 긴다.

무엇보다 딱한 것은 이 대통령이 정책의 일관성과 계속성을 내세워 경제팀을 유임시키는 무리수를 뒀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오히려 커지고 있는 점이다. 버려야 할 때 버리지 못하고 던져야 할 때 던지지 못한 바둑의 짜증스런 행마처럼, 경제사령탑이 권위와 신뢰를 잃고 모멸에 가까운 추궁을 받는 국정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리 없다. 4대 원칙 운운하며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결국 야수의 무리에게 던져진 먹이처럼 된 공공기관 개혁방안은 단적인 예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메시지는 여전히 모호하고 이중적이다. 엊그제 그는 공무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지난 몇 달간 우리의 신뢰자산이 얼마나 취약한지 충분히 경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타개할 비전과 전략을 담은 메시지를 내놓지 못한다. 경제든 외교든 안보든 일만 터지면 헛발질이고 안팎의 망신을 산다. 이 대통령과 주변의 인적 진용의 한계와 부실을 자인한 셈이다.

국민 두려움 해소할 전략 화급
<…저는 이 소중한 땅에 기회가 넘치게 하고 싶습니다. 가난해도 희망이 있는 나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라, 땀 흘려 노력한 국민이면 누구에게나 성공의 기회가 보장되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고자 합니다. 국민의 마음속에 있는 대한민국의 지도를 세계로 넓히겠습니다.…선대의 기원이고 당대의 희망이며 후대와의 약속입니다.…> 이 대통령의 취임사 한 대목이다. 그를 선택한 사람들의 염원을 담아낸 말일 것이다. “두려워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자체”라고 했다. 대통령의 언약을 못 믿는 지금, 국민은 정말 두렵다.

08. 0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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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7-29 22:26   좋아요 0 | URL
혹시 아실지도 모르겠는데 바다하리를 검색해 보세요.누구와 얼굴이 상당히 닮았어요.

로쟈 2008-07-30 01:14   좋아요 0 | URL
권투선수 말인가요? 오바마랑 닮은 건가요??

김상호 2008-07-30 01:50   좋아요 0 | URL
오바마랑 닮았다는 말씀이시죠? 제가 좋아하는 바다하리가 MB랑 닮았다고 하시는거면 슬프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7-30 12:33   좋아요 0 | URL
킥복서인데요.태권도 유단자이기도 합니다.단 WTO소속이 아니고 ITF소속입니다.격투기 선수들이 익힌 태권도는 모두 이 단체의 것입니다.일명 북한 식인데 주먹으로 안면 공격이 허용되니까 격투기에 적응이 쉽죠.ITF간부 한 명이 바다하리가 자기 단체 유단자라고 자랑이 대단하더군요.이번 8월호 신동아를 보면 자세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로쟈 2008-07-30 18:02   좋아요 0 | URL
신동아도 읽으시는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7-30 12:41   좋아요 0 | URL
인문학자로서 요즘 많이 나오는 리더십 관련 서적에 대한 느낌은 어떠신지요? 저는 왠지 미덥지가 않아요.엘리트의 심리에 모든 걸 돌리는 일종의 심리학적 환원주의가 아닌가 해서요.

로쟈 2008-07-30 18:04   좋아요 0 | URL
<부시의 정신분석> 같은 책도 마찬가진데, 한편으론 주체로서의 '개인'의 역할을 무시할 수만도 없지요. '히딩크 리더십'을 봐도 그렇고.^^

노이에자이트 2008-07-30 22:02   좋아요 0 | URL
예전에 정기구독했는데 동아일보 끊으면서 안 보구요,지금은 도서관에 가서 읽죠.월간조선,시대정신,한국논단 등 강경매파 매체 들도 자세히 봅니다.

로쟈 2008-07-30 22:06   좋아요 0 | URL
북한 관련으로는 읽을 거리들이 오히려 더 많을 것도 같군요. 색만 좀 빼면...

노이에자이트 2008-07-30 22:28   좋아요 0 | URL
시대정신이 가장 수준이 높고 한국논단은 좀 민망한 글도 많이 올라와요.발행인인 이도형 씨가 좀 민망한 말을 마구 내뱉는 사람이라서.하하하...근데 북한 관련 글은 이런 우익지보단 역사비평에 더 많아요.아...이번 신동아에 탈북자들이 북한의 교육제도에 대해 털어 놓은 기사가 있는데 북한 찬양 죄에 걸리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칭찬 일변도예요.한 번 읽어보세요.
송두율 씨가 썼다면 당장 조선일보에서 난리를 쳤을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