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2008)의 '탈정치에 반대하여' 장에서 이탈리아 총리 베를루스코니에 관한 대목을 읽다가 그의 행적이 너무나도 유사한 또 다른 사례를 떠올리게 하기에, 지난달에 읽은 기사를 다시 찾아 읽었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65#). 대략 지난번 총리 재임시절 베를루스코니의 '방송장악' 시도가 현 이명박 정부의 유사 행태를 앞질러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요컨대, 베를루스코니의 과거가 이명박의 미래라는 것. 그러니 좀 주의해서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네그리나 아감벤보다도 먼저 베를루스코니를!.. 

시사인(08. 06.21) 이탈리아 과거는 한국의 미래?

우리 세대 한국인에게 가장 인상 깊은 이탈리아 영화를 묻는다면 아마도 <인생은 아름다워>가 꼽힐 것이다. 유태인 학살이라는 비극 상황에서도 해학과 낙관의 가르침을 전해준 로베르토 베니니의 열연이 감동적이었다. 그 로베르토 베니니가 정치 운동에 열심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다. 2005년 10월15일 인터뷰차 이탈리아 공영방송 라이(RAI)TV를 방문한 베니니는 저녁 8시 뉴스가 시작되자 카메라가 비추는 앵커 뒤로 돌진해 깡총깡총 뛰면서 “총리가 방금 사임했대요”라고 외쳤다. 물론 총리는 사임하지 않았지만 국민은 그의 ‘깜짝 풍자’에 웃었다. 로베르토 베니니는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문화 예산을 35% 삭감하는 식의 정책을 펴자 이에 반대하며 시위를 주도해온 터였다. 그가 라이TV 뉴스를 ‘퍼포먼스’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정권의 입’이 된 공영방송을 비판하려는 뜻도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선대위 상임고문을 지낸 인사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된 데 이어 YTN 사장,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아리랑TV 사장, KBS 사장까지 대통령 측근이 임명되거나 하마평에 오르면서 정권의 방송 장악 우려를 낳고 있다. 이명박 시대의 방송 미디어를 미리 보려면 ‘이탈리아의 이명박’이라는 베를루스코니의 사례를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4월13일 이탈리아 총선에서 우파연합이 승리했다. 베를루스코니가 부활한 것이었다. 베를루스코니는 1994년 7개월 동안 총리를 지냈고, 2001년부터 2006년까지 5년간 총리를 역임한 거물이다. 그의 재임 시절 공과를 두고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에 평가가 엇갈리지만, 그가 이탈리아 미디어를 장악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베를루스코니의 귀환에 이탈리아 언론인이 잔뜩 긴장하는 이유다.

베를루스코니는 CEO 출신이라는 점이 이명박 대통령과 닮았다. 선거 슬로건이 ‘경제 살리기’라는 것도 이명박 대통령과 닮은 점이다. 베를루스코니는 피닌베스트, 미디어셋 등의 미디어 기업과 일간지 ‘일 지오르날레’, 방송 채널 ‘이탈리아 우노’ ‘레테 콰트로’ 등을 거느린 ‘이탈리아의 루퍼트 머독’이다. 이탈리아 방송 시장은 베를루스코니의 미디어셋 채널과 공영방송 라이 채널이 양분한다. 라이1 채널은 한국의 KBS와 같은 영향력이 있는데 그것도 이제 베를루스코니 것이 됐다. 파이낸셜 뉴스는 6월19일자 기사에서 이탈리아 미디어 노출의 90%가 베를루스코니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됐다고 썼다.

공영방송 수호 시위도 닮은꼴
전통적으로 이탈리아 공영방송 관리는 의회가 의석 수만큼 나눠 맡는 방식이었다. 대체로 라이1 채널은 기독교민주당, 라이2는 사회당, 라이3은 공산당이 관리한다고 알려졌지만 실제 정치 집단이 보도 내용에 관여하거나 압력을 넣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 언론사 운영 경험으로 방송을 잘 아는 베를루스코니는 2001년 집권하자마자 라이 길들이기에 나섰다. 그는 이사 5명 중 3명을 자신의 측근으로 채운 것도 모자라, 2003년 2월 이사회 운영에 자기가 직접 개입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삐딱한’ 시각을 가진 기자는 쫓겨났다. 엔조 비아지·미첼 산토르·다니엘레 루타치 등이 그랬다. 라이 뉴스는 이상해졌다. 2003년 7월2일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독일 출신 유럽의회 의원에게 “나치 강제수용소를 다룬 영화의 간수 역할에 완벽하게 어울린다”라고 농담을 했다가 외교적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라이TV는 “총리가 던진 농담에 유럽의회 의원들이 반발했다”라는 식으로 짤막하게 보도했다. 2003년 11월, 라이TV에 15년이나 출연해온 국민 여배우 사비나 구잔티는 정치 풍자 코미디 <RAIOT>를 시도했다. 1회 방송에서 구잔티는 베를루스코니로 분장해 총리를 풍자했으나 바로 출연 정지를 당했다. 미국의 보수 단체 프리덤하우스는 베를루스코니 집권 시기 이탈리아의 언론 자유는 세계 77위라고 발표했다.

물론 베를루스코니의 방송 장악이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베를루스코니는 라이 이사회를 장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라이 회장에 자기 심복을 심는 데는 몇 번이나 실패했다. 5년 동안 라이 회장이 여섯 번이나 바뀌었고 그 중에는 임명은 됐지만, 회장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일주일 만에 물러난 사람도 있었다(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 서동구씨가 8일 만에 KBS 사장에서 물러난 일과 비슷하다). 2005년에도 (베를루스코니가 임명한) 방송통신부 장관이 추천한 회장 후보가 번번이 여론과 야당의 퇴짜를 맞자 결국 좌파 성향의 언론인인 페트루치올리가 회장이 됐다. 국제적으로 악명이 높던 베를루스코니도 실제 공영방송 회장에 자기 사람을 앉힌 기간은 2년뿐이었다. 



국민의 저항도 심했다. 개악 방송법이 통과되고 라이 경영진이 전격 교체된 뒤인 2002년 3월 초, 전국에서 수만명이 시위를 벌였다. 로마 시민은 라이 방송국 건물을 둘러싸고 인간띠를 만들며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를 외쳤다. 마치 요즘 한국의 촛불시위대가 KBS 수호에 나선 풍경과 비슷했다. 2006년 5월 총선에서 베를루스코니는 중도좌파연합에 패배했다. 약속과 달리 베를루스코니 재임 기간에 이탈리아 경제성장률은 0.2%로 유럽에서 꼴찌 수준이었다. 새 총리가 된 로마노 프로디는 라이 회장 클라우디오 페르루치올리를 교체하지 않았다.

5월8일 베를루스코니가 취임한 이후 라이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아직 라이 회장은 페르루치올리 그대로다. 이탈리아 밀란에서 활동하는 독일 저널리스트 커스틴 하우센은 <DW-World>에 쓴 칼럼에서 “요즘 이탈리아 언론인 중에는 정치적 압력을 의식해 자기 검열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라며 “새로 정권을 잡은 베를루스코니는 어떤 식으로든 라이TV의 경영권을 교체하려 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신호철 기자)

08. 07. 28.

 

 

 

 

P.S.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지젝의 분석을 잠시 따라가본다. <지젝이 만난 레닌>의 545-549쪽, 그리고 <혁명이 다가온다>(길, 2006)의 206-207쪽을 참조한 것이다(영어판을 옮긴 <지젝이 만난 레닌>과 독어판을 옮긴 <혁명이 다가온다>는 예전에 지적한 대로 부분적으로 일치하지 않으며. 여기서도 <지젝이 만난 레닌>의 542쪽 두번째 문단부터 547쪽 첫문단까지는 <혁명이 다가온다>에 들어 있지 않다). 인용은 <지젝이 만난 레닌>을 따르며 읽기의 편의를 위해서 약간 수정하기도 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2001년 5월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것에서 배울 교훈이 있다면, 진짜 유토피아주의자들은 '제3의 길 좌파'라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베를루스코니의 승리에 관하여 피해할 될 주된 유혹은 그것을 보수-좌파 문화비평가의 전통(아도르노에서 비릴리오까지)에 따라 또 한번의 연습의 구실로 이용하는 것이다. 즉, 조작된 대중의 어리석음과 비판적 사유를 할 수 있는 자율적 개인의 소멸을 애도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승리의 의미를 과소평가하자는 뜻은 아니다. 헤겔은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두 번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폴레옹이 패배한 것도 그 한 예다. 따라서 베를루스코니도 두 번 선거에서 이겨야만 우리가 이 사건의 완전한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첫번째는 단순한 우연적 호기심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지만, 두번째는 우리가 더 깊은 필연성과 만나고 있음을 보여준다.(545-6쪽)

인용에서 "베를루스코니도 두번 선거에서 이겨야만 우리가 이 사건의 완전한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부정확하다. 이미, 1994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7개월간 총리를 역임한 바 있기에, 2001년의 승리는 그의 두번째 승리다. 원문도 "And it seems that Berlusconi also had to win the election twice for us to become aware of the full consequences of this event."이므로 "베를루스코니도 선거에서 두 번 이긴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이 사건의 완전한 의미를 알 수 있도록 말이다." 정도로 이해해야겠다. 여기서 '사건'이란 대중 영합적 우파의 승리를 말한다(한데, 그는 이번 봄에 세번째 승리를 거두고 또 다시 총리가 됐다! 이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이 정도면 '이탈리아 좌파'에 대해서도 과소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베를루스코니는 무엇을 성취했는가? 그의 승리는 정치에서 도덕성의 역할에 관한 우울한 교훈을 준다. 커다란 도덕적-정치적 카타르시스(전후 이탈리아 정치를 지배했던 집권 기민당과 공산당의 이데올로기적 양극 체제를 파멸로 몰아넣은 10년 전의 반부패 운동, '깨끗한 손'의 궁극적 결과가 권자에 앉은 베를루스코니다. 이것은 루퍼트 머독이 영국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것과 비슷하다. 머독은 기업 홍보 사업을 하듯이 정치 운동을 했다.(546쪽)

'10년 전의 반부패운동'이란 "1992년 부패 고위 공직자와 의원들을 추방한 ‘마니풀리테(깨끗한 손)'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 이후에 기독민주당과 공산당이라는 양대 정당이 수많은 군소 정당으로 분열됐고, 계파와 지역 중심 의회 구성 방식 때문에 여ㆍ야당 어느쪽도 압도적 과반확보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졌다고. 그런 정치적 상황의 최대 수혜자가 베를루스코니인 것이니 거의 '죽 쒀서 개 준 꼴'이다. 베를루스코니의 승리를 루퍼트 머독의 경우와 비교했는데, 머독이 토니 블레어를 지지한 것은 알지만 자신이 소유한 언론을 베를루스코니처럼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에 동원했는지는 모르겠다. "머독은 기업 홍보 사업을 하듯이 정치 운동을 했다"의 원문도 "a political movement run as a business-publicity enterprise."인데, 일반적인 경향을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무려나 베를루스코니 이후 이탈리아 정치는 아주 노골적인 '비즈니스의 장'이 되었다. 그가 이끄는 당이 '전진 이탈리아(Forza Italia)'당인데, '포르차 이탈리아!'란 말 자체가 축구의 응원 구호라고 한다(우리로 치면 '필승 코리아'당쯤 되겠다). 그러고 보니 베를루스코니 자신이 축구클럽 AC밀란의 구단주이다!

베를루스코니의 '전진 이탈리아(Forza Italia)'는 이제 정당이 아니라, 그 이름이 암시하듯이 스포츠 팬클럽에 가깝다. 과거의 사회주의 나라들에서 스포츠가 직접 정치화 되었다면(동독이 최고의 운동 선수들에게 엄청난 투자를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보라), 이제는 정치 자체가 스포츠 시합이 되어버렸다. 이런 비유를 더 밀고 나갈 수도 있다. 공산주의 체제가 산업을 국유화했다면, 베를루스코니는 어떤 면에서는 국가 자체를 사유화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베를루스코니의 승리 밑에 잠복한 네오 파시즘의 위험에 대한 좌파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자들의 우려는 대상을 잘못 고른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파시즘은 여전히 결연한 정치적 기획이지만, 베를루스코니의 경우는 밑에 잠복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감춰놓은 이데올로기 기획은 없다는 말이다. 그냥 모든 것이 제대로 굴러갈 것이며, 자신이 더 잘할 것이라는 뻔뻔스러운 확언만 있을 뿐이다. 간단히 말해서 베를루스코니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탈정치다. 모든 서방 국가에서 '탈정치'의 궁극적 증거는 정부를 경영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태도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 올바른 정치적 수준을 박탈당한 채 경영적 기능으로 재고안되고 있다.(546-7쪽)

"그냥 모든 것이 제대로 굴러갈 것이며, 자신이 더 잘할 것이라는 뻔뻔스러운 확언만 있을 뿐이다."란 대목에서는 자신이 당선되면 주가지수가 두달 안에 3천까지 오를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한 'CEO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명박은 베를루스코니와 마찬가지로 가장 순수한 형태의 탈정치다(이 '탈정치'의 한국식 표현이 '탈여의도 정치'이다). 이 '탈정치'는 '탈이념'이기도 해서, 베를루스코니와 마찬가지로 "감춰놓은 이데올로기 기획은 없다". 그걸 '실용'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주먹구구'에 가깝다. 거기에 적반하장격으로 사건이 터질 때마다 들리는 말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이다.  

베를루스코니식의 탈정치에 대해서 얼마나 인내해야 할까? 지젝의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가까운 미래는 장-마리 르펜이나 팻 뷰캐넌 같은 노골적인 우익 선동가들의 것이 아니라, 베를루스코니나 하이더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대중 영합적 민족주의라는 양가죽을 쓴 이런 세계 자본의 옹호자들의 것이다. 그들의 '제3의 길 좌파' 사이의 투쟁은 세계 자본주의의 과잉을 누가 더 효과적으로 저지할 것이냐를 둘러싼 투쟁이다. '제3의 길'의 다문화주의적 관용이냐 아니면 대중 영합적 동성애 혐오냐? 이런 따분한 양자 택일이 전 지구화에 대한 유럽의 대답일까?"(549쪽) 여기서 '제3의 길 좌파'의 한국식 표현은 '좌파 신자유주의'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놓인 양자 택일도 한심한 건 마찬가지다. 우리의 대답은 무엇이어야 할까? 이어지는 대목은 다시 <지젝이 만난 레닌>에만 포함돼 있다.

따라서 베를루스코니는 최악의 형태의 탈정치다. 반좌파 자유주의의 완고한 목소리를 내는 <이코노미스트>조차 어떻게 유죄 선고를 받은 범죄자가 총리가 될 수 있느냐고 신랄한 질문을 던지자, 베를루스코니는 이 잡지가 '공산주의 음모'에 가담했다고 비난했다! 이 말은 베를루스코니에게는 그의 탈정치에 반대하는 모든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음모'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가 옳다. 그외에는 그에게 진정으로 반대하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들이건 '제3의 길' 좌파건 나머지는 모두 기본적으로 베를루스코니와 똑같은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때깔이 다를 뿐이다. '제3의 길' 좌파가 과연 베를루스코니의 정치에 전 지구적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까? 따라서 베를루스코니의 편집적인 인식론 지도의 두 번째 측면 역시 옳은 것으로 드러나는 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즉 그의 승리가 더 급진적인 좌파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인식 말이다.(549쪽, 강조는 나의 것)  

'공산주의자들의 음모'의 한국식 표현은 알다시피 '빨갱이들의 음모' 혹은 '주사파들의 음모'이고 '배후'이다. 이제까지 쇠고기 재협상에서 이명박 퇴진을 외치는 촛불의 목소리에 배후는 없었다. 하지만, 자유주의나 제3의 길 좌파가 우리의 배후가 될 수 없다면, 중요한 건 이제라도 보다 급진적이고 강력한 '배후'를 조직하는 일이다(촛불의 지구전과 조직화에 대해서는 http://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8/07/021003000200807140719005.html 참조). 즉, 그들의 편집증적 망상에 사후적으로 실체를 부여해주는 것, 그것이 지젝이 말하는 레닌주의적 제스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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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재용 대통령, 꿈만은 아니다!
    from 일체유심조 2008-08-18 16:52 
    정주영씨가 이루지 못한 꿈을 유럽에서 완벽하게 성취한 사람이 있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당신들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라는 선거 구호로 세번 째 총리에 등극한 사람. 그는 1600 만 명 내외의 철벽 ...
 
 
노이에자이트 2008-07-29 22:25   좋아요 0 | URL
이태리는 공산당 및 좌파가 상당히 강한데 이런 인물을...하기야 공산당 및 좌파가 강한 프랑스도 사르코지 같은 인물이 당선되니까요.지젝이 이런 글도 썼군요.

로쟈 2008-07-30 01:14   좋아요 0 | URL
지젝이 주로 이런 글을 씁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30 12:34   좋아요 0 | URL
오호...그렇군요.

김상호 2008-08-04 21:41   좋아요 0 | URL
좋은 글이네요. 진짜 섬뜩한건 이명박에게도 '그에게 진정으로 반대하는 자가 없진 않지만 거의 드물것'일 지도 모른다는 거에요. 사실 참여정부가 '정말로' 명박과 반대되는지 전 모르겠읍니다. 오히려 참여정부의 옹호자들은 '진정한' 시장경제는 노무현 대통령의 작품이라고 하는 현실이거든요. 말로는 신자유주의를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실제로는 더욱 신자유주의에 천착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명박의 불평은 이해가 갑니다. '당신은 신자유주의를 하라고 해놓고 왜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것인가요?' 이런 식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