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지난주에 배송된 책들을 나르기 위해 '폭우'에도 불구하고 오전에 학교에 갔었다. 가방에 잔뜩 포개넣어 들고 온 책들 가운데 하나는 마누엘 데란다의 <강도의 과학과 잠재성의 철학>(그린비, 2009). 이미 입소문이 돌던 저자이고 책인데, '과학철학 이론으로 분석한 들뢰즈의 생성존재론!'이란 카피가 책의 성격을 잘 요약해줄 듯싶다(원서는 오래전에 구해두었지만 또 필요할 때라고 찾으니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젠장). 당장은 들춰보기 어렵지만 내달에는 시간을 내봐야겠다. 참고로, 데란다의 책은 '리좀총서'의 '시즌2' 첫권이다('시즌2'의 리스트를 보니 아홉 권 가운데 데란다의 책만 세 권이 들어가 있다. 가히 비중을 알 만하다). 작년 가을 한 대학원신문에 공역자 중 한 사람인 이정우 원장의 소개글이 실린 바 있어서 스크랩해놓도록 한다. 

 

중앙대 대학원신문(08. 09. 03) 마누엘 데란다, ‘들뢰즈 이후’의 철학자  

‘들뢰즈 이후’ 철학의 향방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 중 하나인 데란다(Manuel de Landa, 1952~)는 실험영화 제작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건축가 등 다채로운 이력을 지닌 독특한 인물로서, 군사(軍事)계통의 기관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영화, 컴퓨터, 건축 등을 단지 스쳐지나가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가 이 계통들에서 이룬 성과는 모두 수준 높고 영향력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한 인터뷰에서 당신이 정말 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데란다는 철학자라고 답하고 있다. 

데란다 철학의 출발점은 질 들뢰즈이다. 그러나 다양한 경력이 암시하듯이 데란다는 제도적 의미에서 철학수업을 철저히 받은 인물은 아니다. 그의 저작에는 깊이 있는 철학사적 논의가 그다지 나오지 않는다. 반면 일반적인 철학자들의 저작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독자적인 지식과 분석이 등장한다. 다시 말해 데란다의 주석은 일반적인 인문적 주석가들의 것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띤다. 그의 주석은 다른 주석서로는 해결되지 않는 많은 문제들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데란다가 행하고 있는 작업의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영미철학과 프랑스철학의 경계선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마누엘’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데란다가 스페인계 멕시코인이라는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그는 들뢰즈의 철학을 영미적 맥락에서 새롭게 전유함으로써 단순한 주석가가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담론형태를 창조해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데란다는 들뢰즈에 관해 상당수의 논문을 썼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풍부한 그의 논문은 들뢰즈 연구자라면 꼭 읽어봐야 할 글들이다. 특히 <강렬도의 과학과 잠재성의 철학>(2002)은 자신의 들뢰즈 관련 논문들을 전반적으로 정리해 들뢰즈의 존재론을 일관되게 해명하고 있는 주요 저작이다.  

이밖에도 데란다는 <비선형 역사 100년>(1997)이라는 흥미로운 저작을 펴냈다. 서기 1000년에서 2000년에 이르는 1천 년간의 역사를 독특한 방식으로 해명하고 있는 이 저작은 들뢰즈/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을 잇는 속편이라 할 수도 있을 듯하다. 또 <인공지능 시대의 전쟁>(1991)에는 컴퓨터, 군사, 건축 등에 대한 그의 지식이 잘 나타나 있으며 폴 비릴리오의 저작과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작년에는 <새로운 사회철학: 배치이론과 사회적 복잡성>이라는 흥미진진한 저작을 펴내 들뢰즈/가타리의 사회철학을 계승하고 있다.(이정우/ 연구공간 ‘소운서원’ 원장)   

※ 데란다의 글 전체는 www.cddc.vt.edu/host/delanda에 게시되어 있다. 

09. 0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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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09-07-15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 경력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 군요 ~ ^^

로쟈 2009-07-15 22:54   좋아요 0 | URL
철학자 대신에 작가를 해도 성공할 경력이에요.^^

목동 2009-07-15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란다(Manuel de Landa, 1952~)는 실험영화 제작자, 컴퓨터 프로그래머, 건축가 등 다채로운 이력을 지닌 독특한 인물로서, 군사(軍事)계통의 기관에서 일하기도 했다.", 운전이나 컴퓨터프로그랭은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더 잘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경계가 없는 응용력과 상상력이 부럽습니다.

로쟈 2009-07-15 22:55   좋아요 0 | URL
운전도 그런가요?^^

목동 2009-07-16 05:08   좋아요 0 | URL
춤,글,운전의 경우 마음의 흐름과 손발 동작이 일치되면 잘 풀리던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말은 아니고요.

로쟈 2009-07-16 08:49   좋아요 0 | URL
예술적 감각의 운전이라면 레이서 수준인데요.^^
 

지각 원고를 쓰느라 월요일 아침부터 긴장된 상태로 보내다 보니 세상 소식도 늦게 접했다. 좋은 소식이 있을 턱이 없다. 박노자 교수의 칼럼이 그나마 말문을 트이게 해주어 스크랩해놓는다.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의 칼럼도 같이 옮겨놓는다.  

레디앙(09. 07. 13) MB식 국가, 정의 없는 강도 조직  

제가 오늘 언론에서 쌍용차 사태에 대한 보도에서 '경찰이 출입문을 확보했다'는 식의 보도를 접하면서 그냥 경악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확보'라니, 마치 적군과 전쟁하는 아군에 대해서 보도를 하는 모양인 셈이지요. 파업하는 노동자들이 과연 거점 하나 하나씩 확보해서 결국 진압, 박멸해야 할 '범법자' 집단인가요? 잔인한 어법, 잔인한 사고이기도 하지만, 이 잔인성 이외에 커다란 문제는, 여기에서 거의 1천 명이 되는 노동자의 일자리뿐만 아니라 '정의' 그 자체가 짓밟힌다는 것입니다.

정의가 짓밟히는 현장
그리고 아무리 - 애당초의 이명박씨의 비과학적 소설 격인 공약대로 - 연간 7%씩 성장한다 해도 정의 없는 나라는 결코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부동산 버블이 터져 마이너스 7% 성장이나 안됐으면 좋겠지만, 성장이 되든 말든 인간들의 한 집단으로서는 정의는 먼저입니다.

정의의 개념에서 핵심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과실에 대한 책임'과 '약자에 대한 배려'입니다. 즉, 대표적인 약자 집단인 피고용자의 경우에는, 그들에게 비록 책임의 일부분이 있다손 치더라도 일단은 강자 (자본/국가)는 최대한 그들의 이해관계를 배려하는 것은 롤즈와 같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사회적 정의이지요.

그런데 이 쌍용차의 경우에는 해고라는 이름의 사회적 사형을 당하는 이들에게는 아예 이렇다 할만한 책임질 과실은 전혀 보이지도 않아요. 세계 자동차 업계의 위기부터 정부가 허용, 추진한 상하이차에의 매각까지, 노동자들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상황이거나 정부 직무유기의 과실입니다. 즉, 약자에 대한 배려의 의무를 지는데다 과실(불량 자본에의 졸속 매각 등)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하는 입장에 처한 정부로서는 공적 자금 투입을 통해 해고를 막는 길 이외에 정의롭게 행동할 도리란 따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도리를 행하는 대신에 공권력, 즉 합법의 탈을 쓰는 폭력을 행할 경우에는 과연 '국가'란 무엇이 될 것인가요? 성 아우구스티누스께서 일찌기 '정의 없는 국가'를 뭐라고 불렀나요? 맞아요, 강도 조직이라고 불렀지요. 강도 조직이 통치(점령?)하는 영토 안에서 태생적으로 살게 되신 여러 분, 탈주라도 꿈꾸지 않으시겠어요?

국민통합의 여러 모습
이건 정말로 큰일입니다. 쌍용차 노동자에게도 일생의 대불행, 잘못하면 인생의 파괴지만, 나라 전체로서도 도덕적 파탄으로의 길이지요. 사실 국가란 원래 그 국민을 통합시킬 만한 중심축 같은 게 필요해요. 예컨대 우리가 잘 아는 일본의 경우에는 근대 국가의 국민적 통합의 중심축은 천황이라는 신화이었는데, 인위적으로 조절하기 쉬운 신화인 만큼 이와 같은 형식의 통합은 큰 불행을 자초했어요. '중화 민족 웅비'를 중심축으로 하는 오늘날 중국의 인민 통합의 위험성이란 지금 회골(위구르)자치구에서의 피식민 민족에 대한 유혈 탄압을 보면 다들 아실 만도 하지요. 아니면 '조선민족제일주의'와 '육탄이 되어서 불구대천의 원수 미제를 파괴하겠다'는 걸 골수로 하는, 필연적으로 핵 프로젝트 등의 군사주의적 낭비를 필요로 하는 북한 식 인민 통합은 어떤가요? 역시 별로 바람직하지 않게 보이지요.

이와 대비해서 예컨대 북구 국가들의 국민 통합의 중심축은 '상호 양보, 타협, 그리고 인권 실현'쯤일 거에요. 이와 같은 세팅에서 노동계급이 진정한 사회주의를 포기한 게 문제지만, 어쨌든 적어도 국민 집단 안에서의 계급갈등 시 무력 사용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갈등이 있으면 협상과 타협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런 나라들의 국체라면 국체입니다. 미래 지향으로서의 공산 사회 건설을 포기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지만, 어쨌든 그 포기를 대가로 해서 얻은 이와 같은 기본 설정은 그나마 현존하는 사회적 체제로서는 가장 '덜 나쁜' 것이겠지요. 대한민국도 살만 한 곳이 되자면 이쪽으로 가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터인데, 지금은 우리가 아주 정반대 쪽으로 행진합니다.

남한식 국민통합의 위험성
1990년대까지는 남한의 국민 집단 통합 이데올로기란 반공주의와 개발주의(잘 살아보세!), 그리고 혈통주의적 민족주의(우리는 다 단군의 자손!)의 중첩이었어요. 일부 농촌지역에서 국제 결혼이 전체 결혼의 40%나 되는 이 시점에서는 단군 이야기는 일단 접게 되는 것이고, 부동산 경제의 몰락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는 '부자 되기' 이야기하는 것도 의미가 없어요.

전체 부동산의 65%를 소유하는 최고상류층 1%나 그 주변 집단을 제외하면 이 나라에서 이렇다 할만한 경제적 희망이 있는 사람이란 극히 예외적이지요. 그러면 후자의 두 개 요소를 빼면 남은 게 뭐에요? 맞아요, 반공주의, 즉 뉴라이트 식의 반북, 멸북, 북한 붕괴론 등에 기반을 두고 있는 군사주의적 국민주의에요.

그러니까 우리 국민 통합의 기초로 우리가 상생, 타협, 인권, 비폭력을 삼지 않는 이상, 여전히 이 국민 집단을 하나로 묶는 기초 구조란 '대한민국의 아들'이라면 누구나 가야 할, 북한이라는 '적'을 상대로 할 군대일 것입니다. 우리가 정부의 책임과 약자에 대한 배려, 사회적 정의를 골자로 하는 온건 좌파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유일하게 남은 게 이스라엘, 터키, 싱가포르 식의 군국형 국민 통합과 특히 이스라엘 식의 영속 전시 상태입니다.

물론 한국의 지배자들도 대북 전면전을 전혀 원하지도 않지만, 불장난하다가 또 무슨 사고가 일어날는지 전지전능하신 하늘만 아실 것이고요. 그러니까 쌍용차 노동자를 짓밟는 것은 결국 우리가 자멸적인 군사주의적 통합의 길을 걷는다는 징조지요. 차라리 망조라고나 할까요? 정의 없는, 강도 조직 수준의 나라는 필히 재앙을 맞게 돼 있고 그 궁극에 가서 망국을 맞게 돼 있습니다. 근대 일본의 예언자이자 함석헌의 스승 우찌무라 간조가 군국 일제보고 하던 소리인데, 지금 대한민국보고 해야 할 이야기인 듯합니다...(박노자/ 오슬로대)     

한겨레(09. 07. 13) [홍세화칼럼] 파시즘 경고와 언론법

지난 1일 인권연대 10돌 기념 강연에서 리영희 선생은 우리 사회가 파시즘 초기 단계에 들어섰다고 지적했다. <거대한 전환>의 저자 칼 폴라니는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 인간을 부정하는 게 파시즘이라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권을 파시즘 정권으로 볼 것이냐, 경찰 독재로 볼 것이냐의 논란은 학계의 몫으로 남겠지만, 우리로선 파시즘을 경계하는 목소리를 가볍게 넘겨선 안 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바라보는 세상은 영혼 없는 시장경제와 돈이 인간과 사회를 지배하는 사회인 게 분명해 보인다. 오는 20일이면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반년이다.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한 주검들은 차가운 영안실에서 인간 영혼이 실종된 사회를 증언하고 있다. 철거민들은 법 바깥에서 활개 친 용역 깡패들에게 쫓겨 망루에 올라 정권과 시민사회에 억울한 사정을 알리고자 했는데, 범법자인 양 경찰 진압작전의 대상이 되어야 했고 참화를 당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국민을 대상으로 진압작전을 벌이는 정권, 그것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를 짓밟은 행위였다. 정상 국가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이명박 대통령은 참사 현장을 찾아 원혼들과 유족들에게 사과하는 대신 재래시장의 어묵 파는 집을 찾아 떡볶이를 사먹으며 대형마트를 규제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진정성이 없는 만남이지만 이미지들은 신문 지면과 방송에서 요란스레 춤을 춘다.

3000쪽의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뻔뻔스러움은 그들에게서 사회적 약자들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 지향의 인간 영혼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공개한다. 이른바 ‘서민 행보’를 하고 민생과 중도를 말하지만 진정성이 없다는 점을 그들 스스로 알기 때문일까, 비판의 목소리를 공권력으로 억압하는 동시에 <한국방송>(KBS) 사장 해임 사태, <와이티엔>(YTN) 노조원 해고와 기소에서 보듯 언론 장악을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그들은 2만1000개의 일자리를 항출한다며 언론법을 민생법안이라고 주장했다. 비정규직법 시행과 관련하여 그들이 주장했던 ‘100만 해고설’처럼 순전한 거짓이었다. 그 수치가 국책연구기관인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발표한 잘못된 통계치에 근거한 거짓 보고서를 기준으로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막무가내로 이번 회기 통과를 꾀하고 있으며, 김형오 국회의장은 직권상정을 기정사실화한 발언을 하고 있다. 그들이 내심으로 바라는 바인 <문화방송>(MBC) 대신 ‘조중동+대기업’ 방송이 들어설 때 그들의 표상인 뻔뻔스러움과 거짓은 드러나는 대신 그럴듯한 이미지로 포장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민생 나들이처럼.

사람은 태어났을 때 비어 있던 의식세계를 사회화 과정을 통해 채워나간다. 그 과정에서 교육과 미디어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주입과 암기 위주 교육으로 제도교육을 장악한 데 이어 미디어를 완전히 장악한다면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줄 모르는 채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매트릭스 체제가 완성될 것이다.

오늘도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세계에는 사회정의나 연대의 가치보다 질서 이념이나 물신주의가 강력하게 주입돼 있다. 용산참사에 맞선 ‘거룩한 분노’가 다만 소수에게서만 발현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앞으로 언론법은 우리들을 거룩한 분노는커녕 분노 자체를 상실한 새로운 유형의 인간으로 만들지 모른다. 언론법을 기필코 막아야 한다. 우리의 인간 영혼을 지키기 위함이며, 파시즘 체제로 다가서는 것을 용인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홍세화 기획위원)  

09. 07. 13. 

P.S. KBS 노조의 성명도 옮겨놓는다.  

[성명] "권력의 개가 될 것인가? 개과천선할 것인가?"

또 다시 대통령 라디오 주례연설이 KBS의 전파를 타며 공영방송의 자존심을 손상시켰다. 게다가 이번엔 주례연설 제작진이 참여도 못한 채 해외에서 일방적으로 제작해 던진 내용을 여과 없이 방송했다. 이는 글자 그대로 KBS가 '정권의 홍보방송'으로써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것 외엔 다른 생각이 없음을 여실히 증명한 셈이다.

우리는 이병순 사장 부임 이후 근 1년간 이어온 공영방송 위상 갉아먹기 작업을 지켜봤기 때문에 더 이상 놀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선배이자 최초의 KBS 출신 사장이라는 자가 정권 눈치 보기를 역대 어느 사장보다 앞장서는 모습에 과연 공영방송 KBS의 미래가 있는지 심히 우려된다. 그리고 그 사장 밑에서 노사의 약속도, 언론인의 자존심도 팔아먹는 사측 간부들의 행태를 보면 우려감을 넘어 존재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른다.

우리는 분명 기억한다. 수개월전 공방위에서 잘못된 대통령 주례연설 도입을 노사가 공히 인정했고, 이를 극복하기위해 주례연설 방송형태의 변경을 노사가 합의했다. 이후 노조는 이를 위한 대안도 내고 성실히 협상에도 임했다. 하지만 사측은 그 어떤 대안이나 협의 노력도 보이지 않은 채 시간만 끌다가 결국 노사합의를 불이행하며 논의 테이블을 결렬 시켰다. 그 뒤로도 라디오PD를 중심으로 한 조합원들의 압박이 이어지자, 사측은 청와대와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있고 조만간 가시적인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애드벌룬만 띄울 뿐 협상의 내용과 진전 상황 그리고 전망에 대해선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라디오PD 조합원들은 지난 주 금번 가을개편부터는 '주례연설 폐지' 혹은 '노조가 제시한 방향으로 방송형태 변경' 둘 중 하나를 이행하겠다는 공식적 약속을 이달 말까지 해달라고 사측에 제안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상대가 청와대이므로 사측이 결정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다시 한 번 묻는다! 사측은 국민의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 KBS인인가? 아니면 정권의 눈치를 보며 기생하는 권력의 개인가?

우리는 이병순 사장에게 분명히 요구한다!

- KBS의 위상을 갉아먹으며 권력의 시녀노릇을 하는 사측 인사들의 인적 쇄신을 즉각 단행하라!
- 또한 공영방송의 이념을 훼손하는 대통령 주례연설을 즉각 폐지하라!
 

그렇지 않으면 최초의 KBS 출신 사장이라는 그 이름 석자는 공영방송 KBS를 망친 최악의 사장으로 기억될 것임을 분명히 명심하라! 그리고 공영방송을 되살리기 위해 KBS 노동조합은 어떤 투쟁도 불사할 것임을 선포한다!

2009년 7월 13일
KBS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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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3 22: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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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교수신문의 '출판 트렌드' 기사를 옮겨놓는다. '책으로 들여다 본 책들의 풍경'을 다루고 있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도 언급되고 있지만, 그보다는 근간에 나온 '책읽기 책'들을 구경해본다는 의미가 있다. (픽션들을 잘 챙기지 않은 탓에) 몇 권의 책은 나도 기사를 보고 처음 알게 되었다... 

 

교수신문(09. 07. 06) 우리는 모두 통한다… 책으로 들여다 본 책들의 풍경  

카를로 프라베티의 장편소설 『책을 처방해드립니다(Calvina)』(김민숙 옮김, 문학동네, 2009) 한국어판 제목이 가리키는 것은 소설의 일부분이다. 네 번째 꼭지 제목인 ‘남자애야, 여자애야?’로는 다소 미흡하다. 전체 내용은 ‘칼비노야, 칼비나야?’라는 식의 제목이 걸맞다. 이 소설은 양자택일로 일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일거양득한다. 둘 중에 굳이 어떤 것을 선택하지 않으면서도 둘 다 얻는다.

이러한 양자택일의 역설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성취한 바 있다. 거의 모든 격언이 그렇듯, ‘살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의 문제 또한 삶과 죽음의 극한 대비(혹은 그것의 들이밂)보다 앞뒤 맥락이 더 중요하다. “마음에 더 숭고한 태도는, 고통으로 난폭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견디는 것인가. 아니면 무기를 쳐들어 난관의 바다에 맞서는, 그리고, 거부하며 그것을 끝장내는 것인가.”(김정환 옮김)

아무튼 프라베티의 소설에 등장하는 노부인은 책을 처방한다. 노부인은 책장에서 책을 꺼내 창백한 남자에게 건네며 이렇게 말한다. “아침에 열 쪽, 정오에 또 열 쪽, 그리고 자기 전에 스무 쪽 읽으세요.” 독서가 정신건강을 돕는다는 게 그 이유다.

서평집을 두 권이나 펴낸 ‘회사원 철학자’는 회사원이 아니라 ‘철학자’다. 회사에 다닌다고 철학박사학위 소지자를 ‘일반’ 회사원이라 할 수는 없다. 인문학 서재의 주인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으로 여겼다. 맞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이현우 지음, 산책자, 2009), 바꿔 말해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을 운영하는 ‘곁다리 인문학자’는 세칭 명문대를 다녔다. 그는 문인자격증을 갖고 있다. 



나는 로쟈가 20대인 줄 알았다. <한겨레21> 칼럼 ‘로쟈의 인문학 서재’에 실린 필자 사진을 보고선 30대로 생각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그는 이제 40대에 들어섰다. 로쟈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아니고 『죄와 벌』의 로지온 라스콜리니코프다. 로쟈는 “로지온의 애칭이다. ”고전에 대해 약간 배타적인 나는 로쟈의 고전론에 반발한다. “우리가 고전을 읽으며 고전에서 배워야 하는 삶은 당당한 삶이고 기품 있는 삶이다.” 과연 그러하고, 정말 그래야 하나?

『Calvina』에도 살짝 등장하는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고전관이 외려 미덥다. 칼비노가 말하는 고전은 다시 읽는 것을 강조하는 책이다. 여기서 “‘다시’라는 말은 유명 저작을 아직 읽지 않았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의 궁색한 위선을 드러낸다.” 나는 『안나 카레니나』를 이제야 읽고 있지만 별로 안 부끄럽다. 로쟈가 우리말로 옮긴 러시아 영화감독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의 인터뷰는 매우 인상적이다. 그리고 사르트르는, 확실히, 깬다. 노벨상은 거부하지만 상금은 받겠다고 했다니



『번역가의 서재』(한길사, 2008)는 번역가 김석희의 ‘역자 후기’ 모음으로, 첫 10년간의 번역 작업을 정리한 『북마니아를 위한 에필로그 60』(1997)에 이은 두 번째 10년 동안의 매듭이다. 번역가는 세 번째 ‘역자 후기 모음집’을 펴내면서 은퇴하길 바란다. 



루이스 버즈비의 『노란 불빛의 서점』(정신아 옮김, 문학동네, 2009)은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다. 나도 한때는 거의 매일 서점을 드나들었다. 도서관에도 자주 갔다. “마음은 뜨겁게 불타오르는데 몸은 조용히 가라앉는 그 비밀스러운 곳”(뒤표지)은 서점일까, 도서관일까. 도서관일 것도 같지만 서점이 정답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서점 취업문을 두드린 버즈비는 서점에서 10년 일하고 출판사 외판원을 7년 했다. 지금은 현업에서 손을 뗀 상태지만 일주일에 다섯 번은 서점에 간다는 그가 부럽다. 디지털도서관이 도서관이 아닌 것처럼 인터넷서점은 서점이 아니다. 인터넷서점에선 뜨겁게 불타오르는 마음과 조용히 가라앉는 몸이 연출하는 ‘황홀한’ 형용모순을 체험하게 어려워서다. 



조지 오웰과 알베르토 망구엘은 서점에서 일한 적이 있는 작가다. 산문선집 『코끼리를 쏘다』(박경서 옮김, 실천문학사, 2003)에 실린 「서점의 추억」에 나타난 오웰의 헌책방 점원 경험담은 다분히 부정적이다. “내가 서점을 경영하고 싶지 않은 진짜 이유는, 책방에 있는 동안 책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피그말리온 서점의 16살짜리 알바였던 망구엘은 서점에 들른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주며 강한 문학적 영감을 얻는다. 



“출판인은 ‘책의 공화국’을 꿈꾼다. 책을 통해 지성과 이성의 유토피아를 추구한다.”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책의 공화국에서-내가 만난 시대의 현인들, 책만들기 희망만들기』(한길사, 2009) ‘책머리에 부치는 말’을 마무리하며 종로서적 폐업의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참으로 의미 있는 문화적 인프라를 우리 사회는 내팽개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고마움의 표현으로 ‘책머리에 부치는 말’을 맺는다. “고맙습니다./책 만드는 일을 하게 되어/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책 공화국’의 일개 시민인 것이, 책 동네 주민의 한사람인 것이 참말 감사하다.(최성일 출판평론가) 

09. 07. 12. 

 

P.S. 말이 나온 김에 '서평집' 혹은 '독서 에세이' 범주에 속하는 신간을 몇 권 더 꼽자면, 이권우의 <죽도록 책만 읽는>(연암서가, 2009)와 장석주의 <취서만필>(평단문화사, 2009), 그리고 구본준, 김미영의 <서른 살 직장인, 책읽기를 배우다>(위즈덤하우스, 2009). 앞의 두 저자는 각각 도서평론가와 문학평론가이니 '업자들'의 책이고, 뒤엣책은 기자인 두 사람이 '책읽기'에 대한 답을 찾아 취재여행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독서 에세이'라기보다는 '독서인 에세이'라고 해야 할까.    

 

'업자'가 아닌 순수 직장 독서인의 책으론 성수선의 <밑줄긋는 여자>(웅진윙스, 2009)도 신간이다. 굳이 더 소개가 필요하진 않겠지만, 제목은 카롤린 봉그랑의 <밑줄긋는 남자>에서 따온 것이다. 특이한 책으론 도서관 사서들의 이야기를 적은 스콧 더글라스의 <쉿, 조용히!>(부키, 2009). 이 또한 '독서 에세이'라기보다는 '사서 에세이'라고 해야 할 듯하니 새로운 하위장르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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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07-14 23:35   좋아요 0 | URL
최초로 책을 샀던 서점을 기억합니다. 그 서점은 작은 구멍가게 같았읍니다. 그때 구입한 소월 시집은 지금도 제 책장에 있읍니다. 걸어 갔다, 걸어 온 그 길이 제 최초의 사유의 길이었습니다.(중1)

로쟈 2009-07-13 23:03   좋아요 0 | URL
저는 기억을 못하겠는데요.^^;

푸른바다 2009-07-15 01:26   좋아요 0 | URL
요즈음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사르트르 평전>을 읽고 있는데, 거기는 사르트르가 노벨상 거부는 물론 돈도 받지 않은 걸로 되어 있던데요^^ 어느 것이 진실인지 모르겠네요^^

로쟈 2009-07-15 22:51   좋아요 0 | URL
몇 쪽인가요? 저도 내막이 궁금합니다.^^

푸른바다 2009-07-16 01:55   좋아요 0 | URL
454-458쪽을 보면 노벨 문학상과 관련된 절들이 있습니다. 레비의 글이 문제를 제기하는 식으로 되어 있어서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만, 레비는 왜 사르트르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그 상금을 멋지게 사용하지 않았는지, 예를 들어 그가 칭송해 마지 않던 남아메리카의 민주화 투사 중의 한명(체 게바라?)에게 주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만약 사르트르가 노벨상 수상을 '상징적'으로만 거부하고 상금을 받아서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했다면 그에 대한 기술도 있어야 할 맥락입니다^^ 처음에는 노벨상을 거부하다 입장을 바꿔 수상하고 상금 전액을 스웨덴 문학을 위해 자선 사업에 기부한 버나드 쇼와 노벨상 상금을 개인적 사치를 위해 사용한 모리악을 대비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된 사실은 사르트르가 레지옹 도뇌르 훈장도 거부했고, 학술원과도 거리를 두었으며, 심지어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자리도 거절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황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역시 '해석'의 여지를 남기기는 합니다만, 미셸 푸코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한 것을 생각해 보면 사르트르의 철저함이 숙연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거의 완벽한 비제도권 철학자였던 것 같습니다^^

2009-07-16 0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목동 2009-07-16 04:33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를 졸업한 비제도권 철학자, "맘대로 하데, 책임저라!", 남이 '예'라고 할때, 본인 '노'라고 한 격입니다. 음, 거창한 이유보다는 본인의 성격일 수도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로쟈 2009-07-16 08:44   좋아요 0 | URL
상을 거절하면 상금도 받지않는 게 당연한 일이어서, 저도 그때 기사를 읽으며 의외였습니다. 제가 잘못 읽지 않았다면 다른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가 싶어서요. 레비에 책에도 자세하게 나오진 않았는데요...

푸른바다 2009-07-16 11:39   좋아요 0 | URL
비밀글이 제게 보이는데요? 로쟈님에게도 보이는 지 모르겠네요. 러시아 어로 되어 있으니 로쟈님은 이해하실 수 있겠네요^^ 구글 번역기로 영역해보니 내용 파악은 가능하군요. 사르트르 인터뷰인데, 돈 문제로 고민했으나 결국은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이네요.
구글 번역기로 쥬판치치의 슬로베니아로 된 인터뷰를 영역해서 읽어 본적이 있는데, 내용 파악은 가능하더군요^^ 서구어들이 얼마나 서로 밀착되어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펠렉스님: 사르트르는 고졸자는 아니라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고등사범은 고등학교가 아니라 프랑스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최고의 대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자로서 사르트르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했다면 더 평가를 받을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사르트르 역시 최고 학력의 소유자였습니다...

로쟈 2009-07-16 12:16   좋아요 0 | URL
네, 그건 사르트르의 공식 거부 성명이구요. 문제는 이후에 그가 상금은 받겠다고 수정 제안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실현되지 않은 듯하지만). 저는 그 얘기를 좀 자세히 알고 싶었어요...

푸른바다 2009-07-16 13:47   좋아요 0 | URL
저도 궁금한 건 반드시 확인하는 성격이라, 점심시간에 인터넷을 뒤져서 아래와 같은 문장을 찾아냈습니다^^

"In 1964 he was awarded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but he declined it stating that "It is not the same thing if I sign Jean-Paul Sartre or if I sign Jean-Paul Sartre, Nobel Prize winner. A writer must refuse to allow himself to be transformed into an institution, even if it takes place in the most honorable form". However, he later wrote to the Swedish Academy asking for the monetary prize to be sent on to him in confidence; a request that was refused." (http://profiles.friendster.com/90800214).

말씀대로 상금을 받으려는 시도는 했던 것 같군요^^

위키피디아에 아래와 같은 내용도 있습니다^^
He was the first Nobel Laureate to voluntarily decline the Nobel Prize,[19] and he had previously refused the Légion d'honneur, in 1945. The prize was announced 1964 22 October; on 14 October, Sartre had written a letter to the Nobel Institute, asking to be removed from the list of nominees, and that he would not accept the prize if awarded, but the letter went unread;[20] on 23 October, Le Figaro published a statement by Sartre explaining his refusal.

However, Lars Gyllensten, long time member of the Nobel prize committee has claimed in his autobiography that Sartre later tried to access the prize money, but was subsequently turned down.[21] Allegedly, the French philosopher in 1975 wrote a letter to the Nobel Prize committee saying that he had changed his mind about the prize, at least when it came to the money. At which point the prize committee is said to have declined the request, stating that the funds had been reinvested in the Nobel institute.

노벨상 커미티 중의 한 사람이었던 Gyllensten, Lars이 밝힌 모양이고 그 출전은 다음과 같답니다^^ "Gyllensten, Lars (2000), Minnen, bara minnen, Stockholm: Albert Bonniers förlag, p. 282, ISBN 9100571407"

편지를 10년이나 지난 1975년에 쓴 것을 보니, 병으로 고생하던 시절이었고 돈이 궁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추측이 듭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상금을 요청하는 편지가 10년 후에 씌여졌다는 걸 알게 된게 새로운 것 같네요...

로쟈 2009-07-16 13:16   좋아요 0 | URL
네,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을 텐데, '평전'들에선 다루지 않아서요.^^;

지양 2009-07-15 01:08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도 <서재 결혼시키기>보다 재미있는 독서 에세이를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

목동 2009-07-16 05:3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도 읽어봐야 겠습니다.

사람들은 중독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던데요.
기부 중독이니 뭐니 하면서요. 책 중독이라는 말도 있겠죠?

기억에 남는 TV문학관이 있었는데요.
어떤 노인이(학자같았는데) 자신의 서재에 꽉 찼던 책들을 어느 날
한 권도 없이 텅비워 놓고, 매우 만족해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찾아봐야 겠습니다)

어떤 친구집에 갔었는데, 의외로 친구의 방에는 별 책이 없었습니다.
책이 차 있을 줄 알았는데, 많이 읽는 것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과는 다른듯 합니다.

저는 '서재'가 부럽지만, 별로 좋아한 말(서재)은 아닙니다.
스님 방을 본적이 있었는데, 그 방에는 책이 없었습니다.
학자의 방에 책이 없다면 죽음이죠.

좋아하는 것과 소유는 다른 듯합니다. 물론 수도자와 학자는
다르지만요. 독서 중독도 그 나름이라 생각했읍니다. 고수들은
선별을 잘 한듯 합니다.


 
계선림, 어느 지식인의 죽음

모처럼 장마다운 비가 내린 하루였다. 그래도 중년의 빗줄기였는지 오후로 접어들면서는 빗발이 약해졌고 끊기기도 했다. 잠시 끊긴 틈을 타서 동네도서관에 가 진화심리학 관련서 두 권과 함께(강의용이다) 계선림의 <우붕잡억>(미다스북스, 2004)를 대출했다. 딸기님의 '계선림, 어느 지식인의 죽음'이란 페이퍼를 읽은 탓이다. 계선림, 혹은 지셴린은 어제 세상을 떠난 중국의 석학이다. 저자에 대해 내가 과문했던 건 이 책이 2004년에 나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모스크바 체류시절 국내에서 나온 책들이 내겐 생소할 수밖에 없고, 어림잡아 내가 모르는 책의 8할이 2004년에 나온 책이다.  

 

그때 '모스크바 통신'을 이 서재에에 연재하면서 수년 전 일기를 올려놓기도 했는데, 다시 찾아보니 이젠 '10년 전 일기'가 돼버렸다. 낮에 올린 카프카에 관한 이야기가 포함된 대목도 있기에 한번 더 옮겨놓는다(어차피 한번 공개한 것이기도 하고). 잠시 10년 전 책 구경을 해보는 의미도 있고(하지만, 이런 내용을 갖고서 '자서전'을 쓴다?). 짐작엔 아직 알라디너로 활동하기 이전이었다...   

 

99. 9. 27
월요일. 아침 일찍 학교에 나와 일과처럼 메일을 확인하고 도서관을 찾아 자료복사와 도서대출을 한다. 신착 잡지에 도스토예프스키 특집이 있어서 복사했고, 스탈린에 관한 책 두 권을 대출했다. 젠장, 대학에 들어온 지 12년이 넘었건만, 레닌이나 스탈린의 전기 한 권 읽지 않았다! 그 무관심이 잠시 나를 놀라게 하고 또 부끄럽게 했다. 아무래도 전공이 ‘러시아’는 아닌 모양이다. 니키타 미할코프의 <위선의 태양>과 그의 형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의 <이너 써클>이 모두 스탈린 시대를 다루고 있어서 비교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정작 아는 바가 없어서 부랴부랴 아침 일찍 도서관을 찾은 것. 여기에도 뭔가 글감이 있어 보인다.  



카프카의 <변신>에 대한 연구서도 찾았지만 대출중인지 서가에는 꽂혀 있지 않았다. 카프카를 다시 얘기하는 건 그의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가 번역돼 나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침에 고골과 카프카에 관한 유리 만의 논문을 복사하면서 다시금 생각이 그에게 미쳤기 때문이다. 디스커버리 총서의 <카프카 - 변신의 고통>을 대신 손에 들었다. 그와 함께 송희복의 신작 영화평론집 <영화 - 뮤즈의 언어>를 골랐는데, 전작으로 미루어 볼 때 신뢰할 만한 책은 아니지만, 강의와 관련된 정보들이 있어서 얼마 안되는 이달치 도서구입비를 마저 사용했다.  



서점가에 새로 나온 책들이 있다. 린 마굴리스가 쓴 <섹스란 무엇인가>(지호). 이건 그녀의 전작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 책들을 마음껏 읽던 시절이 새삼 그립다! 그리고 이정우의 <삶-죽음-운명>은 <시뮬라크르의 시대>에 이어지는 것인데, ‘들뢰즈와 禪’을 다루고 있다(아침에 복사한 논문 한편이 <푸슈킨과 禪>이다). 고종석의 <국어의 풍경>은 한겨레에 연재된 것. 홍성욱의 과학기술론집도 언젠가는 읽고 싶고, 홍준기의 <라캉과 현대철학>은 프로이트와 맞물려서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한다. 이런 책들은 내가 이 모든 것을 전공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신간 소설들과 잡지들은 이제 더 이상 손댈 수 없다. 가장 마음이 편안하고 안정되어 있을 때는, 그리고 자극과 고무를 받을 때는 이런 책들과 함께 있을 때이다. 도서관과 서점들을 순례하면서, 생각건대 나는 가장 행복했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몇 자 적는다. 연휴 기간에, 정확히는 지난 토요일에 고대하던 영화를 봤다. 에밀 쿠스투리차의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 아침에 이 영화에 대한 주진숙의 비평문을 보고, 자동차를 꿀꿀대며 뜯어먹는 돼지의 이미지에 대해서 좀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그가 그려내는 마술적 리얼리즘이란, 곧 집시들의 삶이란 현대문명(=자동차)을 집요하게 꿀꿀대며 뜯어먹는 바로 그 돼지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전작들에 비해서 두드러진 예술적 성과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사실 이 영화는 자기-확인에 가깝다), 이 돼지의 이미지는 똥 묻은 자신의 몸을 거위로 닦는 건달 다단의 이미지와 함께 기억해 둘 만하다.

단, <언더그라운드> 이후(<아리조나 드림>은 보지 못했다) 그의 영화세계가 다소 자폐적인 성향을 띠어가는 점은 우려된다. <아빠는 출장중>이나 <집시의 시간>(그 자폐성의 단초를 이 영화에서부터 읽을 수 있지만)에서의 몽유병/판타지는 그것이 가혹한 현실과 대비되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더 큰 울림을 갖는다. ‘집시들’만의 축제가 그들만의 잔치로 끝난다면, 그건 민속학적 자료나 구경거리에서 멀지 않으리라. 그의 재능이 현실과 좀더 밀착되기를 기대해본다. 내가 감독론을 쓰고 싶은 작가들. 예컨대, 타르코프스키, 키에슬롭스키, 쿠스투리차, 알모도바르, 홍상수, 우디 알렌, 왕가위, 타란티노, 그리고? 더 많이 봐야겠다.  

카프카 영화관에 가다

<카프카 - 변신의 고통> 끄트머리에는 '당신의 책을 출간할 수 없어서 죄송합니다'란 에코의 글이 인용되어 있다. 박식하면서 재치있는 에코는 그 글에서 현대 편집자들의 기준에 근거해 볼 때 <심판>과 <오디세이>, <돈키호테>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원고 모두가 거절 당하리라고 추정한다. 이 또한 좋은 얘깃거리다. 카프카에 대해서, 그의 변신에 대해서, 그의 영화관람에 대해서 읽을 만한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99. 9. 28
당연한 말인 듯한데, 어제로부터 하루가 지났다. 달라진 건 없다. '인문학은 무엇으로 사는가'란 글을 두 시간 동안 작성해서 후배에게 건네준 것이 그나마 오늘 한 일인 듯싶다. 루소의 <고백록>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나의 공부가 참으로 미진하다는 생각을 했다.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가 출간됐지만, 살 돈도 읽을 시간도 지금 나에겐 없다. 체코 친구에게서 메일과 함께 편지가 왔다. 9월초에 찍은 사진이 동봉되어 있었다. 참선을 하기로 했다고.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자살자, ‘최초의 자살자’에 대한 공상으로 잠시 재미있어 했지만, 강의실에서의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한겨레신문사에서 나온 <세계영화감독사전>에서 타르코프스키는 타란티노 다음이다. 이 우연한 배열은 재미있으면서도 의미심장하다.  



99. 9. 29
언제나 머리를 짓누르는 건 내가 ‘읽어야 할 책들’과 ‘써야 할 책들’의 목록이다. 그건 시간과의 싸움이고, 돈과의 싸움이며 나 자신의 게으름과의 싸움이다. 또한 삶의 절대적 무의미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청소부가 된 성자들의 세상('청소부가 된 성자'란 글도 준비를 하자)을 꿈꾼다고? 나는 성자도, 청소부도 되지 못할까봐 두렵다. 이건 나 자신에 대한 연민에서 하는 말이다…  

09. 07. 12. 

P.S. 10년 전 일기여도 대부분은 기억이 나지만, '인문학은 무엇으로 사는가'란 글은 어떤 내용이었는지 전혀 기억에 없다. 어디선가 찾게 되면, 요즘의 생각과 비교해볼 수도 있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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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9-07-13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로쟈님의 모스크바 통신을 읽었던 몇 안되는 알라디너였다는...!^^


로쟈 2009-07-13 23:01   좋아요 0 | URL
이른바 '원조' 알라디너의 한 증표죠...^^;

비로그인 2009-07-13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붕잡억> 정말 사고 싶은 책이었는데 파는 곳이 없더군요.ㅜㅜ

로쟈 2009-07-13 23:01   좋아요 0 | URL
네, 절판되었기에 저는 도서관에서 대출했어요...

2009-07-14 2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3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4 2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14 0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유 2009-07-14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년전 일기인데요... 뭔가 풋풋함 같은것 느껴지네요^^, 진솔하기도 하고

로쟈 2009-07-14 22:42   좋아요 0 | URL
그때만 해도!..^^;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텍스트) 2차분이 출간됐다(http://www.aladin.co.kr/search/wsearchresult.aspx?PublisherSearch=%c5%d8%bd%ba%c6%ae@32997&BranchType=1). 이 시리즈의 필자로 일찌감치 낙점된 터여서 나도 비슷한 형식(분량)의 자서전을 조만간 쓰게 될지 모른다('젊은 만인보'의 유효기한이 내 경우는 올해까지라 한다). 사실 시집이라는 형식을 빌어서 과거에 자전적인 단장을 책으로 여러 차례 묶은 적이 있지만(이 서재에도 그 흔적이 일부 옮겨져 있다) 정색하고 '자서전'을 쓰는 건 내키지 않을 뿐더러 흥미로운 일도 아니어서(나는 '흥미로운 삶'을 살지 않았다, 혹은 살고 있지 않다!) 주로 내가 읽은 책, 내지는 나를 만든 책들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겠다고 했다. 적어도 그쪽으로는 나도 어떤 책을 쓰게 될지 궁금하다(얼추 윤곽은 잡고 있지만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는 얘기). 

 

원래 이 얘기를 꺼내려던 것은 아닌데, 오래전 파일들을 뒤적이다가 김용익의 <프란츠 카프카 연구>(삼영사, 1984)를 읽으면서 적은 메모가 눈에 띄기에 덩달아 적어보았다. 카프카에게서 내가 가장 흥미를 갖는 부분이 바로 '자서전으로서의 소설', 혹은 '자서전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곧 소설이고, 나의 이야기는 곧 나다.Der Roman bin ich, meine Geschichten sind ich”(<펠리체에게 보내는 편지>) 혹은 “나는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쓰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 적은 대로,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가 카프카를 읽는 '열쇠'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얼추 10년쯤 전에 읽은 <프란츠 카프카 연구>도 그런 관점에서 읽었고, 내게 보탬이 된다고 생각한 몇 대목을 옮겨적었는데, 여기에 다시 옮겨놓는다.



- 수수께끼같은 신비한 표현세계에 압도된 나머지, 카프카를 필요 이상으로 지고한 차원의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확대 해석하는 일은 오류이기 쉽다. 카프카는 제시의 작가이지 해결의 작가가 아니다. 해석이 해석을 낳는 일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그는 개인적으로 제한된 유태인적 사고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본 적이 없는 작가일 수도 있으며, 부친과의 갈등, 직업과 가정이라는 좁은 세계를 초탈하지 못한 채 폐결핵으로 쓰러진 가련한 인간일 수도 있다. 다만 그에게 문학이 있었을 뿐이다...  

-카프카의 평자들은 항상 작품 위주의 비평이냐 아니면 작품과 더불어 작가 자신의 생의 기록물(일기, 서간)을 비평의 증거로 제시하느냐의 기본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그러나 카프카만큼 문학과 삶을 만족할 만한 동시에 수용하여, 양자의 의미를 진지하게 구명하려던 작가도 드물다. 그는 약혼자에게 “소설은 곧 나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전기적 평자들은 카프카의 문학을 “자기분석과 자기판결로서의 예술”로 판정한다. 카프카를 자서전적 작가로 규정할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우리는 그의 일기문과 서간문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카프카는 작품활동 초기부터 그의 문학이 자기에게로 방향이 고정되어 있음을 천명한다. “매일같이 최소한 한줄의 글이 나에게로 향해 쓰여져야 한다. 마치 망원경이 혜성에로 향해지듯이”(1911) 확실히 카프카의 모든 기록은 “그로부터 나오고” “그 자신에게 말을 걸고” “그를 세계의 모든 방향으로 확장하고” “그를 위해 하소연하고” “그와 만나야만 하는” 그의 전체이다.  

-요컨대 저술은 카프카에게 있어 자기 반영과 자기성찰로서의 행위이며 자기(das Selbst)는 저술의 주체이자 객체이다. 이와 같이 자서전적이고 자기분석적인 저술은 카프카의 자기인식인 바, 이때 카프카의 삶은 그의 문학을 위한 인식의 수단이 되어 준다.(pp.17-19)    

-카프카의 작품은 다만 자서전이 아닌 자서전소설일 뿐이다. 자서전은 저술자 자신의 체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자서전소설에서는 예술지향적인 순수한 창조로서의 허구성에 작가의 실제 경험이 가미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카프카의 자서전소설은 자서전과 순수예술로부터 구분된다. 그의 자서전적인 기록은 그의 자기묘사와 자기성찰의 결과이다. 자기묘사와 자기성찰의 욕구는 어디까지나 자기인식을 목표로 한다...  

-카프카가 직업을 포기하고 창작에만 전념코자한 욕구도 실은 자기인식 내지 자기확인의 시간을 확보하려는 노력이다. 그가 펠리체 양에게 “나의 장단편 소설은 바로 나다”라고 작품과 자신을 동일시한 것도 자기인식을 위한 집념의 표현인 것이다.(p.27) 

09. 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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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동 2009-07-12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아 의식이나 업등이 의식은 성장과정에서 격게 되는 내면의 상처에 다름 아니다. 가족으로부터 받게 되는 절망과 좌절, 주변으로부터 받게 되는 상처와 고통이 결국 현실 바깥에 또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게 만드는 것이다. 절망이 없다면 어떻게 희망의 개념을 알고, 슬픔이 없다면 어떻게 기쁨의 개념을 알겠는가. 인간이기 때문에 대체상황을 꿈꿀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현실의 고통과 절망을 승화시켜 미적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상처 속에서 진주가 자라는 이치와 하등 다를 게 없다. - 작가(박상우,시작), 26쪽 -

이 세상에 완벽한 픽션, 완벽한 허구란 없다. 인간의 두뇌에서 일어나는 경험과 상상 사이의 미묘한 화학작용과 삼투작용이 모든 걸 결정한다. 그것을 분해했다는 학자를 나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 작가(박상우,시작), 111쪽 -

로쟈 2009-07-12 21:15   좋아요 0 | URL
요즘 나온 뇌과학서인 <세컨드 네이처>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stella.K 2009-07-12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들이 보통은 습작 시절이나 작가 초기 시절에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한 소설을 많이
쓰잖아요. 저도 경험삼아 시도를 해 보곤하는데 할 때마다 좌절을 많이하게 되더라구요.
너무 힘들어서...ㅠ
자기 속 얘기 소설로 쓴다는 건 확실히 힘든 일 같아요. 신내림이라도 받아야하는 건 아닌지.

목동 2009-07-12 19:28   좋아요 0 | URL
음~ 저는 풍경이나 사물을 사진처럼 글로 옮기려는 습관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독자의 상상력를 뺏는 경우가 있더군요.

로쟈 2009-07-12 21:15   좋아요 0 | URL
그게 이야기에 적합한 형식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한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