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듀이의 프래그머티즘과 철학의 재구성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키워드>(민음사, 2010)와 같이 소개해놓고 역시나 손에 들지 못하고 있는 책은 존 듀이의 <철학의 재구성>(아카넷, 2010)이다. 이제보니 책장 1단에 나란히 꽂혀 있다. 교수신문에 역자 이유선 교수의 존 듀이 소개기사가 실렸기에 옮겨놓는다. 어지간한 '미국식'은 다 수입하고 또 숭배하면서 "철학은 우리가 당면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가 돼야 한다"는 듀이의 미국식 철학은 왜 방기하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교수신문(10. 10. 18) 존 듀이, 프래그머티즘을 미국 민주주의의 실천적 도구로 삼다  

“지나친 요구가 아니라면, 제 논문이 쓸모가 있는지에 대한 편집장님의 의견을 알고 싶습니다. 제 논문이 과연 이런 종류의 주제에 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여줄 만한 것인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퍼스와 제임스 등이 ‘형이상학 클럽’이라는 독서 모임에서 시작한 새로운 철학적 사고방식으로서의 프래그머티즘은 듀이라는 뛰어난 사상가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도 명실상부한 미국철학으로 자리 잡지 못했을 것이다. 퍼스와 제임스가 본질주의적인 형이상학을 비판하면서 ‘프래그머티즘의 격률’을 의미론적 기준이나 인식론적인 문제를 해결할 도구로 활용했다면 듀이는 그것을 사회·문화·정치 영역의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듀이는 프래그머티즘을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실천적 도구로 삼고자 했으며, 실제로 다양한 실천과 실험에 나서기도 했다.

듀이는 1894년 시카고대의 철학, 심리학, 교육학 과정을 합친 학부장으로 취임하면서 대학에 ‘실험학교’를 설립해서 자신의 교육철학을 실천했으며, 1904년에는 컬럼비아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활동하다가 1930년 71세의 나이로 교수직에서 은퇴했다. 듀이는 1919년부터 1921년까지 일본, 중국 등지를 돌며 강연을 하기도 했다.

또한 듀이는 미국의 ‘교원조합’과 ‘미국대학교수협의회’를 조직하기도 하고, 교육정책에 대한 자문을 위해 1928년 소련을 방문하고 사회주의에 대한 인상기를 쓰기도 했다. 특히 듀이는 스탈린 정권을 피해 망명한 트로츠키가 도피생활을 하다가 암살당한 후, 1937년 멕시코에서 열린 조사위원회의 의장을 맡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당시 듀이를 수행한 사람은 리처드 로티의 아버지였다. ‘네오프래그머티즘’이라는 이름으로 듀이의 철학을 복권시킨 리처드 로티는 듀이의 철학을 미국 민주주의 프로젝트의 완성을 위한 희망의 철학이라고 규정한다.  

 

듀이는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민주주의 사회라는 목표는 현재의 사회를 재단하는 고정된 기준이 아니라 우리의 실천을 조직하는 수단이라고 보았다. 우리의 실천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는 바뀌게 될 것이며, 무엇이 과연 바람직한 사회인가에 대한 전망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이렇게 우리의 목표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의 실천과 유기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더 나은 사회의 모습을 끊임없이 상상해야 할 것이다. 미국을 상상을 통해서 만들어가는 한 편의 시로서 보고자 한 듀이의 관점에서는 상상력이 풍부한 창조적 지성이 살아 숨 쉴 공간이 우선적으로 확보돼야 한다.

듀이에게 있어서 자연과 인간, 수단과 목표, 경험과 도덕적 삶은 서로 동떨어져 있거나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규율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론적이며 유기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 이런 그의 관점은 진리를 위한 진리를 부정하는 프래그머티즘의 관점, 인간적인 것을 초월하는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낭만주의적이며 세속주의적인 관점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고 정당화될 수 있다.

철학이 천상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어서는 안 되며 인간의 삶을 개선시키고, 인간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돼야 한다는 것이 듀이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철학이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창조적인 지성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내야 하고, 개성을 갖춘 개인들의 비판적 사고를 길러낼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는 동경제국대학의 강연을 묶어 『철학의 재구성』이라는 책을 펴내면서 철학은 우리가 당면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런 요구는 지성인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이유선 서울대 기초교양교육원·철학)  

10. 10. 21.  

P.S. 듀이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이번주 관심도서는 미국의 '생물철학자' 마이클 루스의 <진화의 탄생>(바다출판사, 2010)이다(진화론 관련서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아마도 작년에 기획된 책들인가 보다). 원제는 '다윈 혁명'. 루스의 책은 <다윈주의자가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청년정신, 2002) 등이 더 소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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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0-21 22:28   좋아요 0 | URL
프랑스 사태에 대하여: 저는 과격하고 파괴적인 것은 무서워서 못하는 사람인데요. '프랑스 혁명'이 생각날 정도입니다. 그 현상을 변증법(헤겔인가요?)의 기본법칙 중 '양질변화의 법칙'을 들어 설명하고 싶어요. 물(문제의 법안)이 끓게 만들려면 40도, 50도 가지고는 안되죠. 100도까지 가야 형질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보는 것 같은 '정년연장'에는 저도 반대하며, 저는 적절한 표현을 하지 못함이 답답합니다.

로쟈 2010-10-22 08:35   좋아요 0 | URL
프랑스는 시위도 자기들의 역사적, 문화적 전통이 있는 거니까 막바로 비교는 안되겠죠. 혁명이란 전통의 '힘'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드팀전 2010-10-22 09:35   좋아요 0 | URL
뭐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물이 100도에서 끓는 것은 1기압이라는 보편적이라고 알려진 그러면서도 특정한 조건하에서 입니다. 기압이 낮아지면 물의 비등점은 함께 낮아집니다. 80도 정도에서도 끓게 됩니다. 기압이 높아지면 100도가 되어도 안끓지요.

레닌이 러시아혁명에 앞서 부르주아 혁명이 없는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은 요원하다는 기계론적인 사적유물론에 단절을 선언하고 사건이라고 할만한 결단을 통해 돌파한 것은 이 개념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요...당시 러시아사회의 모순과 민중의 응축된 힘이라는 기압조건을 읽었기때문에..

지젝과 화학의 결합이겠군요.^^


비로그인 2010-10-22 12:03   좋아요 0 | URL
드팀전님! 지젝과 화학의 결합 좋습니다! 우리는 통섭하며 기압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역사유물론적 누군가가 필요할 것 같군요! ^^

빵가게재습격 2010-10-22 21:24   좋아요 0 | URL
'어지간한 '미국식'은 다 수입하고 또 숭배하면서 "철학은 우리가 당면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가 돼야 한다"는 듀이의 미국식 철학은 왜 방기하는지'에 추천 누르고 갑니다. 농담/진담/불만만 해서 말하자면 미국유학은 한국사회에서 상류층/하류층을 구별짓는 '필수코스'이어서가 아닐까요...

로쟈 2010-10-26 08:28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냥 그렇게들만 얘기하면 좋겠어요. 둘러대지 말고...

루쉰P 2010-10-23 10:59   좋아요 0 | URL
미국의 4대 정신적 보배라고 한다면 듀이의 교육 철학, 에머슨의 문학, 마틴 루터 킹의 인권 투쟁, 재즈라고 읽은 기억이 나는데요. 듀이의 철학을 잘 알고 싶은데 저런 책이 나오니 참으로 좋네요.^^ 여전히 로쟈님은 책을 많이 읽으시네요~~

로쟈 2010-10-26 08:27   좋아요 0 | URL
책에 대한 정보를 많이 읽지요.^^
 

공지사항이다.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창립 20주년에다 한러수교 20주년을 기념한 '루소홀릭 페스트'(러시아 예술품과 민예품 전시회)가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에서 27일(수)일까지 개최된다고. 관심이 있으신 분들(루소홀릭!)은 한번 왕림해보시길 바란다. 아래는 주최측의 행사 안내문이다.    

저희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가 창립 20주년과 한러수교 20주년을 기념한 루소홀릭 페스트(Russoholic Fest)의 일환으로 다음과 같은 행사를 개최합니다. 루소홀릭(Russoholic)은 러시아를 의미하는 "루스(Russ)"와 중독자를 의미하는 접미사 "홀릭(holic)"을 결합하여 만든 신조어로, 러시아의 매력에 흠뻑 빠진 "러시아 중독자"를 의미합니다. 

1. Russoholic 展

일시: 10월 14일(목) ~ 27일(수)
장소: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 전시실
100평의 공간에 500점 이상의 개인 소장 러시아 예술품과 민예품이 전시됩니다.

전시회장 한 편에 러시아 차와 보드카를 시음하는 공간과 러시아 민속 의상을 입어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으며, 전시장내 사진 촬영도 가능합니다.

2. 마트료슈카 교실 

일시: 10월 23일 (토) ~10월 24일(일) 오후 2시~4시
장소: 연세대학교 백주년 기념관 전시실
다산과 풍요의 상징인 러시아 전통 인형 마트료슈카를 DIY로 직접 만드실 수 있습니다.
참가비 15,000원이며, 선착순 마감됩니다. 

주최: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02-2123-2360)
후원: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 리더십 센터 ․ 아에로플롯 ․ 에어부산 ․ 뿌쉬킨 하우스  

10.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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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0 0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1 0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쿨리나 2010-10-20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쁘신데 이렇게 공지도 올려주시고 감사합니다^^
러시아차와 보드카도 무료시음하고 있어요. 로쟈님도 시간 되시면 들러주세요!

2010-10-21 0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즘 관심저자 중 한 사람은 20세기 러시아문학의 대표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1899-1951)이다. 1899년생 작가로는 나보코프와 함께 러시아문학을 양분하는 게 아닐까 싶은 정도의 거장이다(20세기 러시아 작가들 가운데 가장 '철학적인' 작가다). 러시아에서도 1980년대에 뒤늦게 '재발견'되어 '아! 플라토노프'란 경탄과 경외감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처음엔 따라가기가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잘 음미하면서 읽으면 그런 경탄에 동조할 수 있게 된다. 나부터도 그런 경우다. 국내에 중단편이 여럿 소개돼 있으며, 주저인 <체벤구르>는 번역중인 것으로 안다. 엊그제 영역본들도 손에 넣은 김에 플라토노프 읽기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참고로 소개된 작품 중에 <코틀로반>(문학동네)과 <구덩이>(민음사)는 같은 작품의 번역본이며(하지만 대본이 달라서 번역본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무도회가 끝난 뒤>(창비)에는 단편 <암소>가 수록돼 있다. 대표 단편들은 <귀향 외>(책세상)에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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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8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9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10-10-18 23:08   좋아요 0 | URL
저는 겨우 책세상의 '귀향' 한권을 읽었을 뿐인데 플라토노프의 작품이 이렇게 많군요.

로쟈 2010-10-19 10:31   좋아요 0 | URL
많은 건 아니고, 몇 권 되는 거지요.^^

호모사케르 2010-10-19 10:08   좋아요 0 | URL
본문중에 "'아! 플라노토프'란 경탄과 경외감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아! 플라노토프'가 무슨 뜻이예요? 플라톤을 의미하는 건지요..러시아인들은 서양철학을 대단치 않게 생각한다고 하셔서.. 아님 철자가 바뀐건지..

인문 숲의 20세기 러사아 문학 기획은 아주 뛰어나신건 같아요. 19세기 러시아 문학은 위대한 고전기로 보이고 20세기는 열렬한 낭만주의로 다가와요.. 지난겨울처럼 이 가을에도 러시아는 저를 흥분시키고 있습니다.

로쟈 2010-10-19 10:30   좋아요 0 | URL
오타지요.^^; 아, 강의를 듣고 계시나요?

비로그인 2010-10-19 20:15   좋아요 0 | URL
저는 학생은 아니고요... 어디선가 읽은 것인데, 러시아인들은 프랑스인보고 "랴구샤드니끼(개구리먹는놈들)"이라고 한다는데요! 문학작품에서는 러시아귀족들이 프랑스 문화를 은근히 흠모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대단치않게 생각하는 면도 있나봐요? ^^

로쟈 2010-10-20 00:22   좋아요 0 | URL
19세기 초반까지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 좀 달라진 것 같구요...

호모사케르 2010-10-19 10:37   좋아요 0 | URL
네~ 강의 듣고 있어요^^.. 아이디가 바뀌어서 몰라 보시는 군요. 히히^-^

로쟈 2010-10-20 00:22   좋아요 0 | URL
아, 호모 사케르 강의 듣는군요.^^

2010-10-19 12: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0 0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na35 2010-10-19 13:21   좋아요 0 | URL
어제 구덩이(민음사판) 읽기를 끝냈는데요.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쓰지 않는 한자어나 오래된 말로 번역된 낱말들이 꽤 많아서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되더라구요.

번역된 문장만 놓고 봐도 해석이 쉽지 않겠다 싶었는데 로쟈님은 어떠셨는지요?

로쟈 2010-10-20 00:24   좋아요 0 | URL
문학동네판이 가독성은 훨씬 좋습니다. 번역자들이 애를 먹는 작가이긴 해요...
 

자작시 한편을 올려놓는다. 여느 시들과 마찬가지로 오래 전에 쓴 것이다. 이미 올려놓은 줄 알았더니 그럴 계기가 없었던 모양이다. 생각난 김에 미루나무 길을 걸어도 좋겠다 싶은 날이다... 

 

미루나무 등걸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미루나무 등걸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물을 데운다
미루나무 언덕에 망가진 자전거를 끌고 가는 늙은 우편배달부의 모습이 보인다 물이 끓는다 너무 늦는 것은 아닐까 너무 자주

얼음장에 갇혀 하얗게 질린 나뭇잎들이
봄물에 떠밀려 오곤 했다 언제였던가

미루나무 등걸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물을 데운다
미루나무 언덕에 넘어질 듯 내려앉은 노을이 읽히지 않는 傳記처럼 걸려 있다 아무도 읽을 수 없는 생애가 있으리라 너는 말했다
우리 사는 날들이 전부가 아니야 정말 아니었으면

미루나무 등걸에 기대어 하루를 보낸다
오늘도 부치지 않은 편지가 마지막 한 잎처럼 구겨진다

미루나무 등걸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물을 데운다
습관은 가벼운 탄식처럼 아늑하다 이젠
미루나무 등걸 어디에도 손수건을 내걸 만한 자리는 없다 물이 끓는다
사랑했으리라 그대는 삶을 사랑했으리라 낮은 呪文처럼 물이 끓는다

미루나무 등걸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나는 잠이 든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헤적이는 마음처럼 한 자락 구름이 걸려 있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쭈그러진 입김처럼 어둠을 껴안고 있다    

 

10.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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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7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8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7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8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10-17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에는 원고와 강의의 쓰나미라고 하셨는데, 자작시도 올려주시고,,, 시에 나온 푸르른 나무(미루나무에요?)와 바탕화면의 낙엽사이에서,,, 시를 음미 합니다.

로쟈 2010-10-18 00:03   좋아요 0 | URL
아무것도 안 올리기가 뻘쭘해서요.^^;

2010-10-18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8 0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모사케르 2010-10-18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릴케를 떠올리게 하는 아련한 미루나무 시군요..
미루나무에서 그네를 탔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 미루나무에 관한 산문을 지어볼까 싶게 만드는 강력하고 아름다운 시 입니다.

로쟈 2010-10-18 09:04   좋아요 0 | URL
미루나무에 관한 산문도 읽고 싶네요.^^

비로그인 2010-10-18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모사케르님께서 릴케가 떠오른다고 하셨는데, 제가 마침 릴케의 말을 읽고 있었습니다. 옮기고 싶네요. 릴케의 말을 빌어 '시를 쓰는 분들' 또한 칭송하고 싶어요. // "일찍 시를 쓰면 별로 이루지 못한다.(이 말에 완전긍정은 아니지만) 시인은 벌이 꿀을 모으듯 한 평생 의미를 모으고 모으다가 끝에 가서 어쩌면 열 행쯤 되는 좋은 시를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란 사람들이 생각하듯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감정이라면 젊을 때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시는 체험이다. 한 행의 시를 위해 시인은 많은 도시, 사람, 물건들을 보아야 한다.....[하지만] 체험의 추억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추억이 많으면 그것들을 잊을 수 있어야 한다. 추억이 되살아 올 것을 기다리는 큰 인내가 있어야 한다.] 추억이 내 안에서 피가 되고, 시선과 몸짓이 되고, 나 자신과 구별되지 않을 만큼 이름 없는 것이 되어야, 그때어야 비로소, 아주 가끔 시 첫 행의 첫 단어가 그 가운데서 떠오를 수 있다." // ..... 알토란 같은 한 주 되세요!

로쟈 2010-10-18 17:13   좋아요 0 | URL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인가요? '가을날' 때문인지는 몰라도 왠지 릴케는 가을과 잘 어울리는 듯해요...

미지 2010-10-19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했으리라 그대는 삶을 사랑했으리라 낮은 주문처럼 물이 끓는다"

지워질 수 없는 어떤 감각의 낙인 같은 것이 느껴지는 강렬한 구절이군요

로쟈 2010-10-19 10:31   좋아요 0 | URL
가끔 저도 써놓고 맘에 든다 싶은 시들이 있습니다.^^;
 

인터뷰와 강의, 연재원고, 행사 등이 두 주간의 주요 일정이었는데, 그래도 페이퍼를 쓸 시간이 없었는데, 달력을 보니 내주부터는 원고와 강연의 쓰나미다. 지체되고 있는 일들을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따로 '서재지기'를 두어야 하지 않나란 생각마저 든다. 그런 와중에도 주말 북리뷰를 읽고 몇권을 메모지에 적어놓는다. 오늘 외출하는 김에 서점에 들르면 아마 손에 넣게 될 것이다. 그 중 하나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모두스 비벤디>(후마니타스, 2010). 어디서 들으니, 바우만 수용은 국가나 지역마다 좀 차이가 나는데, 아르헨티나에서는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고. 바우만의 책을 꼬박꼬박 챙길 때면 나도 아르헨티나인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풀란드와 아르헨티나라... 고명섭기자의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 이번 책은 분량이 짧아서 내주에 쓸 서평감으로도고려중이다.    

한겨레(10. 10. 16) 잉여인간이여, 사냥꾼에 맞서 싸워라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85·사진)은 ‘유동성’(액체성)이라는 개념의 소유권자다. 그는 이 유체역학적 용어를 자신의 서명이 들어간 개념으로 주조해 현대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 적용했다. 우리 시대 세계의 질서와 제도가 고체성을 잃어버리고 끊임없이 유동한다는 것이 그의 근본 통찰이다. <모두스 비벤디-유동하는 세계의 지옥과 유토피아>는 그 ‘유동성’ 개념으로 우리 시대를 진단한 2006년 저작이다. 



바우만이 국내에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의 주저 가운데 하나인 <지구화, 야누스의 두 얼굴>이 번역된 것이 2003년이었다. 2008년 이후에 그의 저작들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는데, 먼저 <쓰레기가 되는 삶들>이 나오고, 2009년 <유동하는 공포>와 <유동하는 근대>(한국어판 <액체 근대>)가 번역·출간됐다. 이제 막 우리 학문세계 안으로 진입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사정은 바우만의 본거지인 유럽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다. 



1925년에 폴란드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난 바우만은 사회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1954년부터 바르샤바대학에서 가르쳤다. 그의 폴란드 생활은 1968년으로 끝이 났다. 이 무렵에 폴란드 공산정권이 벌인 반유대주의 캠페인으로 대학에서 쫓겨나고 국적을 박탈당했다. 조국의 버림을 받고 정치적 망명자가 된 바우만은 1971년 영국에 정착해 리즈대학 교수가 됐다. 바우만이 학자로서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된 것은 1989년, 예순네 살 때 펴낸 <모더니티와 홀로코스트>였다. 이 책에서 그는 홀로코스트라는 야만이 근대성(모더니티)의 산물임을 입증했다. 그 뒤 바우만은 ‘유동성’이라는 개념으로 현대세계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저술 작업에 노년의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2000년 <유동하는 근대>를 펴낸 뒤, 2003년부터 <유동하는 사랑> <유동하는 삶> <유동하는 공포> <유동하는 시대>를 잇달아 출간했다. 이번에 우리말로 나온 <모두스 비벤디>는 이 마지막 저작 <유동하는 시대>의 번역판이며, 제목은 이탈리아어판에서 따왔다.

바우만은 근대를 ‘견고한 근대’와 ‘유동하는 근대’로 나누고 견고성(고체성)에 유동성(액체성)을 대비시킨다. 유동성이 바우만의 독창적 개념인 것은 분명하지만, 원천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우만은 <유동하는 근대>에서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언급한다. 마르크스는 1848년에 쓴 그 기념비적 팸플릿에서 부르주아 세계를 끝없는 유동성의 세계로 묘사한다. “부르주아 시대는 생산의 끊임없는 변혁, 모든 사회적 상황의 부단한 동요, 영원한 불안과 격동을 통해 다른 모든 시대와 구별된다. 견고하고 낡은 모든 관계들은 … 녹아버리고, 새롭게 형성된 것들도 모두 자리를 잡기도 전에 낡은 것이 되어 버린다.” 바우만은 마르크스 시대에 벌써 이렇게 간파된 근대 세계가 최근에 이르러 진정한 유동성의 시대로 전환됐다고 본다. 그가 보기에 이런 전환은 1970년대 10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그 시대는, 요즘 유행하는 용어로 말하자면, ‘신자유주의’가 지배적인 것이 된 시대다.

<모두스 비벤디>는 이 유동성의 시대가 만들어낸 악몽과도 같은 현실을 묘사하고 비판한다. 이 책의 요지는 라틴어 제목 ‘모두스 비벤디’(생활양식)보다는 부제 ‘유동하는 세계의 지옥과 유토피아’에서 더 빨리 포착할 수 있다. 유동성이 지배하는 우리 시대는 지구적 차원의 지배 엘리트들에게는 ‘유토피아’일지 모르지만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불안과 공포가 일상이 된 ‘지옥’의 시대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주자·난민이 돼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잉여인간으로 떠도는 시대다. 삶이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된다. 바우만은 이런 시대의 특성을 ‘열린 사회’의 역설로 설명한다. 카를 포퍼가 전체주의적인 ‘닫힌 사회’에 맞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로 제시했던 ‘열린 사회’는 오늘날 “운명의 횡포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회”로 귀착하고 말았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지구 전체를 휩쓸면서 빈곤과 불안과 범죄와 테러도 지구 전체로 퍼졌다. 그리하여 ‘열린 사회’는 두려움으로 오그라든, 공포에 휘둘리는 사회가 됐다.

바우만은 이 책에서 ‘사냥터지기’ ‘정원사’ ‘사냥꾼’이라는 비유를 들어 시대의 근본 특징을 묘사하기도 한다. 전근대 사회는 자연환경을 사냥터로, 인간 자신을 그 사냥터를 지키는 존재로 생각한 사회였다. ‘자연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인간의 사명인 시대였다. 반면에 근대는 ‘정원사’의 시대다. 세계는 일종의 정원이며, 사람들은 자신이 디자인한 모습으로 정원을 꾸민다. 바우만은 정원사의 시대를 ‘유토피아의 꿈’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던 시대라고 말한다. 그 시대가 끝나고 말았다. 지금은 사냥터야 어찌 되든 짐승만 많이 잡으면 된다는 사냥꾼의 시대다. 사람들은 사냥꾼이 되느냐, 사냥감이 되느냐 하는 가혹한 이분법의 처지에 놓였다. 사냥꾼에겐 유토피아지만 사냥감에겐 지옥이다. 바우만은 결론에서 지옥을 거부하고 저항하라고 말한다. “(이 지옥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온갖 종류의 압력에 맞서 용감하게 싸워야만 한다.”(고명섭기자) 

10.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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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6 1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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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7 16: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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