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의 힘 3 - 지리는 어떻게 우주까지도 쟁탈의 대상으로 만드는가 지리의 힘 3
팀 마샬 지음, 윤영호 옮김 / 사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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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우주라는 새로운 지정학적 격전장이 등장했다


▣ 1장: 인간, 하늘을 올려다보다


▣ 2장: 냉전이 우리를 우주로 끌어올렸다


현대 로켓에 관한 경우라면 우주비행 역사가들은 대체로 콘스탄틴 치올콥스키(1857-1935년), 로버트 고더드(1882-1945년), 헤르만 오베르트(1894-1989년), 이 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한다. 미국인인 고더드는 9세기에 중국에서 발명된 이래로 줄곧 사용되던 압축된 가루 고체연료인 화약 대신 액체연료를 사용해 지상에서 로켓을 발사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오베르트는 독일 과학자로 나치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명성이 실추되었는데, 나치는 로켓에 관한 그의 연구를 활용해 베르겔퉁스바페 2(Vergeltungswaffe 2, 보복무기 2호) 혹은 V-2로 불리는 로켓을 개발했다. 1903년 동력을 갖춘 최초의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오르기 6개월 전, 독학으로 깨우친 한 무명의 러시아 과학자가 우주비행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증명한 최초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해 말 라이트 형제는 비행에 성공하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만 치올콥스키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견지명을 갖춘 과학자 중 한 명이었음에도 사실상 알려지지 않았다. 28)


그의 초기 저서에는 태양에너지로 가동되는 우주정거장 건설하는 방법, 우주선의 방향을 제어하는 자이로스코프(바퀴의 축을 삼중의 고리에 연결해 어느 방향이든 회전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 스케치, 우주선이 서로 도킹할 수 있도록 하는 에어로크, 우주비행사가 우주선 밖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해주는 기밀(공기가 밖으로 누출되지 않도록 밀폐하는 것) 구조의 우주복 같은 발상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1895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그는 우주 엘리베이터라는 개념도 이론화하고 있었다. 「반작용 장치를 이용한 우주공간 탐험」에서는 로켓이 대기권을 돌파해 지구의 궤도를 돌 수 있다는 것을 최초로 이론적으로 증명했다. 치올콥스키는 지구 궤도에 진입하는 데 필요한 수평속도를 계산해 냈는데 그 속도는 연료로 액체수소와 액체산소를 혼합하여 사용하는 로켓을 이용해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다. 〈치올콥스키 로켓 방정식〉으로 알려진 그의 공식은 바로 우주여행의 기반이 된다. 28-9)


스푸트니크 1호는 1957년 10월 4일 카자흐스탄에서 발사되었다. 크기는 비치볼보다 조금 더 컸고 무게는 고작 85킬로그램에 불과했다. 스푸트니크 1호는 외피가 매우 눈부시게 빛나는 고광택의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지구의 대기권에 재진입해 불타버릴 때까지 미국인들은 3개월 동안 매일 90분마다 그것이 머리 위로 지나갈 때면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푸트니크 1호는 그럴 때마다 소련이 미국의 기술을 능가했다는 것을 재차 상기시켰다. 여기서 미국의 걱정은 인공위성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것을 싣고 우주로 올라간 거대한 로켓에 관한 것이었다. 러시아인들이 〈지구의 인공위성〉이라고 불렀던 것은 그야말로 게임 체인저였다. 스푸트니크가 등장하기 전에 미국은 소련의 핵무장 항공기를 요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푸트니크는 사실상 탄도미사일과 다름없는 물체의 최상단에 실려 우주로 발사되었고 그 같은 로켓은 이제 미국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32-3)


1961년 4월 12일, 소련의 유리 알렉세예비치 가가린은 보스토크Vostok 1호 우주선에 다가가면서 자신을 발사대까지 데려다준 차량의 오른쪽 뒷바퀴에 소변을 보기 위해 잠시 멈추었다. 오늘날까지도 러시아의 우주비행사들은 그에게 경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이와 똑같은 행동을 한다. (여성 우주비행사들은 병에 담아와 바퀴에 뿌린다.) 이윽고 가가린은 캡슐에 올라 탑승한 후 대기했다. 카운트다운은 없었고(세르게이 코롤료프는 그것을 미국인들의 허세라고 생각했다) 모스크바 시각으로 오전 9시 7분에 발사 버튼이 눌러졌다. 가가린은 “포예칼리Poyekhali!”(가자!)라고 소리쳤고, 그는 이륙하면서 지구의 강력한 속박에서 벗어나 미국의 시인이자 전투기 조종사 출신인 존 길레스피 매기가 “저 높이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우주의 성역”이라고 지칭한 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비행은 가가린이 지구 궤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린 108분 동안 이어졌다. 그는 인류 최초로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35)


코롤료프 사후에 소련이 직면한 문제의 실상을 알지 못했던 미국은 소련이 1968년 12월에 우주선 발사를 위한 최적의 발사가능시간대launch window를 이용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그 기회의 문은 열렸다 닫혀버렸다. 소련 측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오히려 같은 달에 세 명의 미국인이 달의 궤도에 오른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아폴로 8호는 프랭크 보먼, 짐 로벨, 빌 앤더스를 태우고 달 주위를 열 바퀴 돌았다. 이때 앤더스는 그 유명한 〈지구돋이Earthrise〉 사진을 찍었고 훗날 자신들은 달에 갔지만 지구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옅은 대기층의 보호를 받으며 허공에 불안정하게 떠 있는 “창백한 푸른 점”과도 같은 사진 속 지구의 이미지는 그것을 본 사람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영향을 미쳤고 새로이 부상하던 환경운동에 크게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지구의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세 사람은 가져간 카메라를 통해 아폴로 8호에서 생방송에 참여했다. 38)


# 발사가능시간대launch window : 로켓이나 우주선이 발사되어야 하는 특정 시간대를 의미한다. 이 시간대는 궤도 역학, 행성의 위치, 지구의 자전, 날씨 조건 등 여러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 성공적인 발사를 위해서는 모든 조건이 적절해야 하며, 이 때문에 발사 기회를 놓치게 되면 다음 가능한 시간대를 기다려야 한다.


1969년 7월 20일, 마침내 닐 암스트롱이 고요의 바다 표면에 작은 발자국을 남기면서 인류 역사에 거대한 도약을 이루었다. 그는 자신이 가가린, 치올콥스키, 고더드, 오베르트, 코롤료프, 폰 브라운 같은 위인들, 그리고 그들보다 앞선 여러 시대 위대한 과학자들의 노고에 힘입어 역사적인 위업을 달성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는 냉전시대 상황에서 그 순간이 지니는 의미를 잘 이해했는데 훗날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이것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30만 혹은 4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기울인 노력의 결실이고, 이 나라의 희망과 위엄은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는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할 수 있도록 정확한 궤도를 계산해낸 뛰어난 수학자 캐서린 존슨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이라는 말을 만들어냈고 달 착륙선을 제어하는 프로그램을 만든 마거릿 해밀턴 같은 드러나지 않은 영웅들도 있었다. 40)


▣ 3장: 우주는 21세기의 새로운 부동산이다


우리는 사실상 로켓을 발사하기에 최적의 장소를 갖춘 육지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로켓을 발사하는 데 가장 최적의 장소는 연료를 덜 사용하면서 우주에 가능한 한 빨리 진입할 수 있도록 지구의 자전 속도를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는 곧 지구의 자전 속도가 가장 빠른(시속 약 1,669킬로미터) 적도에 인접한 곳을 의미한다. 그래서 미국은 자국 국경 안에서 적도에 가장 근접한 플로리다의 케네디 우주센터를 이용하고 있는데 그곳의 자전 속도는 시속 1,440킬로미터다. 유럽연합 같은 경우는 남미의 프랑스령 기아나를 이용하며 러시아는 카자흐스탄을 이용하고 있다. 지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자전하기 때문에 로켓을 동쪽으로 발사하면 지구의 자전 속도에서 추가로 추진력을 얻어 그만큼 연료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또한 로켓 추진장치의 낙하 지점이 거의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지역이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런 이유에서 많은 발사대 부지가 동쪽 해안지대에 위치해 있다. 48)


지구 표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구름을 뚫고 올라가 빠른 속도로 상업용 비행기의 최대 순항고도(안전한 비행을 위해 유지해야 하는 적절한 해발고도)인 약 12킬로미터 상공을 넘어서까지 상승할 수 있다. 여기서 다시 60킬로미터를 더 올라가면 우주에 근접하게 되는데, NASA의 정의에 따르면 해발 80킬로미터 상공부터 우주가 시작되며 그 아래에 있는 것은 전부 지구다. 하지만 각종 우주비행 기록을 승인하는 국제항공연맹(FAI)은 우주가 100킬로미터 상공부터 시작된다고 정의한다. 그곳이 바로 카르만 라인Karman line─미국의 물리학자인 시어도어 폰 카르만이 정의한 지구 대기권과 우주의 경계선을 뜻한다─이며 우주선이 지구의 중력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이제 우리는 지구와 38만 5,000킬로미터 떨어진 달 사이의 시스루나 공간cislunar space에 진입하고 있다. 〈시스루나〉라는 단어는 라틴어가 어원으로 〈달 가까이〉라는 뜻이다. 48)


더 위로 올라가 약 160킬로미터에서 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상공인 저궤도에 진입하면 평균 400킬로미터 상공에서 궤도를 순환하는 국제우주정거장(International Space Station, 일명 ISS라고 많이 함)이 시야에 들어올 것이다. 이곳은 스푸트니크가 발사된 이후로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 특히 정치적인 측면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1993년에 미국, 러시아, 유럽, 일본, 캐나다의 우주 관련 기관들은 정치적, 문화적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우주정거장을 건설하는 협약에 합의했다. 이에 1998년에 러시아가 첫 번째 모듈을 쏘아올렸고 2년 후에는 탑승자들이 입주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었다. 이 우주정거장은 인류가 우주에서 협력을 통해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국제우주정거장은 거의 수명이 끝나가고 있고 2031년에는 퇴역할 예정이다. 소위 포인트 니모Point Nemo7라고 알려진 태평양의 외딴 지점에 추락해 그곳에서 물고기들과 함께 영원히 잠들게 될 것이다. 49)


# 포인트 니모Point Nemo : 임무를 끝낸 인공위성이 회수되는 지점으로, 인적이 없고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인공위성이 추락해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흔히 〈인공위성의 공동묘지〉라고도 한다.


전략적으로 저궤도는 유력한 〈요충지〉이자 〈관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지상에서 수에즈 운하와 호르무즈 해협 같은 요충지들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다. 그 두 지역은 지형상 바닷길이 협소해 쉽게 봉쇄할 수 있는 곳들이다. 우주의 저궤도를 지상의 수에즈 운하나 호르무즈 해협에 비유하는 것은 정확한 비유는 아닐 수 있지만 효과적인 비유는 된다. 왜냐하면 우주로 탐험을 떠나기 위해서는 로켓 발사장을 지켜내야 하는 것처럼, 광활한 우주의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저궤도에 있는 인공위성들이 제공하는 통신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저궤도를 통과해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약 2,000킬로미터 상공에 이르면 이제 중궤도에 진입하는데 이 궤도는 약 35,786킬로미터 상공까지 이어진다. 이곳에 위치한 인공위성들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대략 12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들 중 다수는 지구에 위치 확인 및 길 찾기 등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보통은 그렇다. 51)


계속 위로 올라가 35,786킬로미터 상공을 넘으면 지구 동기궤도와 지구 정지궤도가 시작되는 고궤도에 도달한다. 이 둘의 유일한 차이라면 동기궤도에 있는 인공위성은 어떤 경사각에서도 지구를 돌 수 있는 반면, 정지궤도에 있는 인공위성은 항상 적도를 따라 돈다는 것이다. 저궤도는 통신용 인공위성을 운용하기에는 어려운 곳이다. 고도가 낮아 위성의 이동속도가 워낙 빠른 탓에 지상의 기지국에서 위성의 위치를 계속 추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지궤도에서는 인공위성의 속도가 지구의 자전 속도와 일치하기 때문에 인공위성은 항상 같은 장소 위에 위치한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지상에서 그런 인공위성을 본다면 마치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고궤도(35,876킬로미터 이상)는 나름 분주하지만, 그저 자리만 많을 뿐이지 신호 간섭 때문에 기기로 통신할 수 있는 주파수는 제한적이다. 그래서 유엔 국제전기통신연합은 자리와 주파수를 지정해서 이곳을 함부로 진입하거나 점유하지 못하도록 했다. 52)


▣ 4장: 지금 우주는 (사실상) 무법지대다


더 많은 인공위성은 필연적으로 더 많은 우주쓰레기를 발생시킬 것이다. 쓰레기가 증가할수록 케슬러 증후군Kessler Syndrome이 실현될 위험성도 더 커진다. 그 시나리오에 따르면 궤도를 떠도는 우주쓰레기가 잦은 충돌을 유발하는 지점에 도달하게 되고, 그러면 재앙과도 같은 연쇄충돌이 일어나면서 우주쓰레기 구름이 허블 우주망원경을 박살내고, 거기서 생겨나는 파편은 지나가는 우주왕복선을 파괴시킨 후 국제우주정거장을 향해 이동한다. 영화 「그래비티Gravity」의 줄거리는 1978년 논문에서 이러한 견해를 제시한 전직 NASA의 과학자 도널드 케슬러의 이론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인공위성이 파괴되고 그로 인해 저궤도에 떠도는 우주쓰레기들로 형성된 고리 때문에 우주선이 아예 지구에서 발사되지도 못할 때까지 연쇄충돌이 일어난다. 케슬러 증후군은 하나의 예측일 뿐이지만 현재 우주쓰레기로 인한 위협은 그저 가설에만 불과한 것이 아니다. 73)


자연은 우리를 대신해 일부 우주쓰레기 문제를 해결해 주고 있다. 지구의 중력은 우주쓰레기를 저궤도로 끌어내리고 있는데, 만약 그 우주쓰레기가 600킬로미터보다 낮은 고도에서 궤도 순환을 한다면 보통 그것은 몇 년 안에 대기권으로 추락한다. 해마다 수백 개의 우주쓰레기 파편들이 이런 경로를 따르고 있으며 대부분의 작은 파편들은 도중에 연소되어 사라질 것이다. 일부 인공위성은 소멸설계Design for Demise15라는 공정을 통해 대기권 재진입 과정에서 쉽게 해체되도록 설계된다. 대부분 지상 70-80킬로미터 상공에서 분해되고 부서진 조각들은 소멸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쓰레기를 하늘에서 쏴서 날려버릴 수는 없을까? 한 가지 난관이라면 우주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개발된 모든 장치는 다른 목적(이를테면 우주선이나 인공위성을 공격하는 무기)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인공위성과 관련된 모든 계획과 규정은 군사 및 국가안보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76-7)


▣ 5장: 중국, 승자보단 리더가 되고자 한다


중국 최초의 인공위성은 1970년 4월 24일에 궤도에 진입해서 28일 동안 지구 주위를 돌았다. 이로써 중국은 소련, 미국, 프랑스, 일본에 이어 인공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킨 다섯 번째 국가가 되었다. 인공위성에 탑재된 다섯 개의 배터리를 사용해 중국은 「동방홍The East Is Red」이라는 유명한 노래를 지구로 송출했다. “동녘이 붉어지며 태양이 떠오른다. 중국에 마오쩌둥이 나타났다!” 현재 중국에서 최초의 인공위성이 발사된 4월 24일은 〈우주의 날〉이다. 그때부터 중국의 우주 프로그램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인공위성을 정기적으로 발사했고 다른 국가들에 자국의 시설을 제공하기도 했다. 중국의 우주 프로그램은 처음 몇십 년 동안에는 주로 군사적 야망을 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중국공산당은 자국이 군사, 기술, 경제 분야에서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국가라는 점을 모든 사람에게 선전하는 용도로 인공위성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86)


현재 중국은 2011년에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울프 개정안Wolf Amendment 탓에 아르테미스 협정에서 배제되었는데, 이 법안은 우주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NASA 등 미 정부 기관과 중국 간의 협력을 일절 금지한 법안이다. 당시 이 법안을 발의한 공화당 하원의원 프랭크 울프는 우주탐사 및 기술적 진보와 중국 군대와의 관계가 미국이 “성장하는 경쟁국과의 협력”이라는 위험을 감수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논리를 펼쳤다. 중국은 자국을 배제하는 행태에 대해 국제우주정거장의 대항마를 건설하고, 여러 국가와 과학을 통한 전략적 관계를 형성하고, 적어도 미국 우주산업 못지않게 최첨단으로 자국 우주산업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것은 미국의 조언이나 지원 없이 이루어냈다. 그리고 2003년에 38세의 조종사 양리웨이 중령이 중국인 최초로 우주에 진출한 것을 고려하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과를 내고 있다. 《차이나 데일리》는 이것을 “하늘을 향한 위대한 도약”이라고 지칭했다. 88)


최근에 중국은 공산주의의 우월성에 대한 찬양의 수위는 낮추는 대신 오랜 역사적 집단기억에서 민족주의 요소와 신화를 강조하고 있다. 2007년에 달 궤도를 순환한 무인 우주선은 창어 1호로 불렸는데 그것은 중국의 민간설화에서 남편으로부터 불사의 영약을 훔쳐 마시고 달로 날아가 천체의 여신이 된 아름다운 선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창어는 위투(Yutu, 옥토끼)라고 불리는 애완용 토끼와 함께 지내는데 이제 그 토끼는 달 주위를 뛰어다니며 창어가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절구에 불사의 영약을 넣어 찧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2013년에 창어 3호를 달 표면에 착륙시켰을 때 그곳을 덜컹대며 이동하던 로버를 위투라고 부른 것이 전혀 놀랍지 않다. 한편 선저우(〈신의 배〉라는 뜻) 우주선을 타고 자국의 우주정거장에 탑승한 중국인 우주비행사들은 자신들이 중국 신화에서 최고의 권위로 우주를 다스리던 천상계 통치자의 궁궐 이름에서 따온 〈하늘의 궁전〉, 즉 톈궁에 들어왔다는 행운에 감격했을 것이다. 89-90)


하지만 가장 정치적 의미가 큰 프로젝트는 아마도 중국의 임박한 달 착륙일 것이다. 2021년에 중국과 러시아는 달에 공동으로 기지를 건설한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양국은 “달 기지를 위한 기초 구조물을 조성하기 위해 달의 남극에 대한 탐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 달의 남극이 부지로 선정된 이유는 그곳의 얼어붙은 크레이터들이 잠재적인 물 공급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 여름에 중국은 달 기지 건설에 대한 일정을 제시했는데 그 기지의 이름은 미국 주도의 아르테미스 임무만이 유일한 합동 프로젝트가 아님을 천명하기 위해 〈국제달과학연구기지〉로 결정했다. 또한 2028년에 자국의 창어 8호 로켓이 3D 프린팅으로 달의 토양을 벽돌로 만들도록 설계된 로봇을 싣고 달에 착륙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것은 이후의 임무들을 위한 시험운영이 될 것이며, 일부 유인 임무도 포함될 그 과정들은 영구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기지를 위한 기반시설 건설이 목적이다. 93)


우주의 지리에 대한 소유권 주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이 제기될 것이다. 중국은 이미 자체 우주정거장인 톈궁 3호를 운영하는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이것은 달 기지만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는 못하겠지만, 우주정치학적 관점에서 유일하게 자국 주권의 우주정거장을 보유한다는 것은 우주에 대한 상당한 의지의 표현이다. 더 잘 알려진 국제우주정거장은 유럽 국가들과 일본, 러시아, 미국, 캐나다 등이 참여한 〈협력 프로그램〉으로 그동안 19개국 250명의 우주비행사들을 수용했다. 하지만 톈궁은 오직 중국이 단독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며 최대 2037년까지 가동될 것으로 예상된다. 허블 우주망원경과 크기는 비슷하지만 직경 2미터의 거울이 장착된 순톈 우주망원경은 300배 넓은 시야와 25억 픽셀을 표현할 수 있는 카메라를 갖추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톈궁에 탑승한 중국 우주비행사들은 우주의학, 생명공학, 극미중력 상태에서의 연소, 3D 프린팅, 로봇공학, 광선빔, 인공지능 등을 연구하고 있다. 94-5)


▣ 6장: 미국, 우리가 소유하지 못하면 다른 쪽에게 기회가 간다


2019년에 미국 정부는 우주군을 창설했는데 이는 미군의 6개 정규군(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해안경비대, 우주군) 중 가장 최근에 조직된 군이다. 우주군은 다른 군의 수장과 마찬가지로 미군의 수뇌부인 합동참모본부에 소속된 4성 장군이 지휘한다. 우주군의 임무는 다른 나라의 미사일 발사를 감지할 수 있는 GPS 위성을 운용하고 적대국 인공위성의 전파를 차단하는 지상의 전파교란기를 가동하는 것 등이다. 또한 우주쓰레기도 추적한다. 연간 약 260억 달러에 달하는 우주군의 예산은 현대전에서 우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더욱 증가할 것이다. 우주군이 창설되었을 때 일부 평론가들은 그들이 우주를 〈군사화〉했다고 말했지만 그 말은 인류가 처음 대기권을 돌파한 순간부터 이미 우주는 군사화되었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이다. 우주군은 이미 미 공군에서 유사한 임무를 수행하던 부대에서 파생되어 편성되었는데, 소련과 미국은 냉전시대에 인공위성을 활용해 서로를 정찰했다. 102-3)


언젠가 우주에서 사용될 레이저 무기 개발에도 자금이 투입되고 있다. 미 해군은 2014년부터 여러 형태의 레이저 무기 시스템을 운용해 왔지만, 2022년에 전기만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고출력 레이저 무기로 고속 크루즈 미사일을 격추하는 데 성공하면서 한층 발전된 역량을 과시했다. 당시에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빔이 미사일을 향해 발사되었는데 불과 몇 초 만에 미사일 일부가 오렌지빛으로 불타기 시작하더니 엔진에서 연기가 나면서 아래로 추락했다. 일단 이 시스템이 구축되면 실제 이 킬 샷kill shot에 드는 비용은 고작 전기료 몇 달러에 불과할 것이다. 반면 유도미사일(목표물을 정확하게 타격하기 위해 레이더, GPS, 적외선 등의 유도에 따라 목표물을 폭발시키는 미사일)은 한 발에 수만 달러에서 수십만 달러의 비용이 든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레이저 무기는 오직 지상에만 배치될 수 있는데, 만약 어떤 우주비행 국가가 인공위성에 레이저 무기를 장착한다면 다른 국가들도 당연히 따라 할 것이다. 104-5) 


루나 게이트웨이는 달로 복귀하려는 계획의 핵심으로, 달 주위 타원형 궤도에 위치하게 된다. 이따금 루나 게이트웨이가 달 표면에 더 가까워지면서 착륙이 수월해지기도 하겠지만, 궤도의 특정한 지점에 이르면 지구에 더 가까워지면서 고향 행성에서 오는 우주비행사들과 보급품을 더 쉽게 픽업할 수 있게 된다. 이 방식이 성공을 거두면 인간을 화성으로 이동시키는 계획에도 적용될 것이다. 또한 루나 게이트웨이는 거주및물류거점모듈(Habitation and Logistics Outpost, HALO)을 갖추게 될 예정인데, HALO에 탑승해서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실험은 방사능 수치 측정일 것이다. 우주비행사들은 지구 자기장을 벗어나면 암 발병률을 높이고 중추신경계를 손상시킬 수 있는 고에너지 입자에 노출된다. 게이트웨이는 당연히 내부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겠지만 그럼에도 장기간에 걸친 방사능 수치를 정확히 측정하고 그것이 인체에 미칠 잠재적인 영향력을 반드시 파악해야 한다. 107)


▣ 7장: 러시아, 땅에서도 우주에서도 전성기는 지났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는 이미 로켓 엔진 판매, 인공위성 발사 서비스, 국제우주정거장으로의 우주비행사 수송 같은 경쟁에서 시장 점유율을 잃고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발전해온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우주산업이 확장되고 있음에도 러시아는 대부분의 협력관계, 투자, 전문기술 등에서 소외되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 100만 명이 넘는 러시아인들이 조국을 떠났는데 그중에는 수천 명의 엔지니어, 컴퓨터 전문가, 과학자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이 러시아의 우주 프로그램에 얼마나 심각한 타격을 입힐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게든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전쟁이 발발한 후 몇 주 동안 작성된 몇몇 확인되지 않은 보고서들에 의하면, 러시아 연방우주공사는 자칫 귀국하지 않을 경우를 우려해 직원들이 해외로 나가는 것을 금지했고 국경 경비대에는 특정 부류의 과학자들이 조국을 떠나지 못하도록 막으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고 한다. 117)


러시아는 현재 러시아판 GPS에 해당하는 글로나스GLONASS라는 위성항법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24개의 인공위성으로 구성된 글로나스 군집위성은 GPS보다 2년 늦은 1995년에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다. 지구 전체를 감당하는 완전한 기능을 유지하려면 수시로 새 인공위성을 발사해 수명이 끝나가는 인공위성들을 대체해야 한다. 하지만 1990년대의 경제적 혼란 속에서 러시아는 우주 프로그램 관련 예산을 80퍼센트나 삭감했다. 2000년에 자신이 정권을 장악한 후에 경제가 호전되기 시작하자 푸틴은 글로나스 시스템 복구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해당 예산을 두 배 이상 늘렸다. 2011년에는 다시 24개의 인공위성을 갖추었고 10년 만에 처음으로 지구 전체를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는 적의 인공위성 시스템을 공격하는 데에도 투자했다. 그중 일부는 군사적 의도를 그럴듯한 핑계로 가릴 수 있는 이중 목적의 시설들이고, 다른 일부는 전쟁을 막기 위한 억지력의 일환이라고 정당화할 수 있는 것들이다. 119-20)


러시아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열세인데 어떤 경우에도 중국에 뒤처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하지만 중국은 자금과 인프라를 갖추고 있고 더 이상 누군가를 뒤쫓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 관계에서 더 절실한 쪽은 러시아다. 이런 현실은 러시아를 돕는 문제에 중국이 보다 신중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관계는 러시아에 이익이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철수하고 나면 러시아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에서 장기간 머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중국의 톈궁 우주정거장뿐이다. 중국이 없으면 러시아는 달에 자체 기지를 건설할 여유조차 없는 것이 사실이다.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통해 러시아는 주요 우주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고, 중국은 러시아와의 우정에 대한 대가로 적정한 가격으로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를 사들일 수 있다. 한편 이 거래의 이면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느슨한 민주주의 연대에 맞서는 반대 세력권을 구축해 다른 국가들을 이에 합류하도록 설득하려는 두 나라의 공동 전략이 숨어 있다. 187-8) 


▣ 8장: 유럽,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의 우주 진출


중국, 미국, 러시아 외에 다른 국가들 중에서 유럽우주국은 한 걸음 앞서 있다. 유럽우주국은 1975년에 10개국이 참여해 설립했고 현재는 22개 회원국을 보유하고 있다. 유럽우주국은 “한층 더 가까워진 연합”이라는 목표의 일환으로 유럽연합 국가들이 주도하고 있지만 유럽연합과는 전혀 별개의 기관이며 유럽연합의 우주 프로그램과도 무관하다. 유럽우주국의 예산은 유럽연합이 약 25퍼센트를 지원하고 나머지는 개별 회원국들이 부담한다. 조직으로서 유럽우주국은 갈릴레오 위성항법 시스템(유럽판 GPS), 코페르니쿠스 지구 관측 프로그램, 국제우주정거장에서의 역할 등을 포함해 나름대로 독자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달 기지 건설과 같은 야심찬 프로젝트의 경우 유럽은 서로 간의 협력뿐만 아니라 우주강국과의(이 경우에는 미국) 협력도 이끌어내야 한다. 유럽우주국은 미국과 공고한 동맹을 맺고 있으며 아르테미스 협정의 달 탐사 로켓 발사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다. 130) 


유럽연합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비군사적 우주강국이지만 동아시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군사용 우주 장비에 대한 투자를 더 이상 거부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망설이는 듯한 행보는 군사용 인공위성 정보를 계속해서 미국에 의존하는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비군사적 차원에서 일본은 인상적인 우주비행 역사를 지니고 있고 거창한 달 탐사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자체적인 발사 역량을 갖춘 극소수의 국가 중 하나다. 1970년에 첫 번째 인공위성을 우주로 발사했고 1990년에는 무인 우주선을 달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다. 국영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목표 지점의 90미터 이내에 착륙할 수 있도록 설계된 달 탐사용 착륙선인 슬림SLIM을 개발해 2023년에 발사했다. 아르테미스 협정 서명국으로서 일본은 루나 게이트웨이 건설에도 협력할 것이고 2028년, 2029년, 혹은 2030년에 일본인 우주비행사를 달에 보낼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137)


인도의 우주 관련 역량은 추진력을 얻고는 있지만 2040년 이전에 주요 우주강국이 되기에는 발전 속도가 너무 더디다. 인도는 군사위성 시스템과 민간위성이 있지만 독자적인 글로벌 위성항법 시스템을 개발하려는 중국의 자금력에는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인도는 우주와 관련된 민간 부문에서는 훨씬 더 잘 대처하고 있다. 그들은 인공위성 운송 산업을 성공적으로 발전시켰고 화성 궤도에 탐사선을 보내면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행성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켰다. 2008년에는 찬드라얀 1호Chandrayaan-1 탐사를 통해 달의 극지방에서 거대한 얼음 퇴적물을 발견하는 등 달에 물이 존재할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현재 달 기지 건설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을 촉발했던 여러 요인 중 하나였다. 인도는 자체적인 달 기지나 우주정거장을 건설할 여유는 없지만 2023년 6월에 아르테미스 협정에 가입하면서 미국 주도의 달 기지 건설 프로젝트에서 나름의 역할을 맡을 것이다. 140-1)


오스트레일리아는 인도와는 쿼드 동맹국이며 주요 군사적 고려 대상이 중국이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하지만 인도와 달리 오스트레일리아는 몇 안 되는 자국 인공위성을 혹시 모를 중국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낼 수단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 남반구에 위치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지리적 입지는 정보 수집과 우주추적(인공위성과 우주선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모니터링하는 것)을 실행할 만한 안전한 기지를 물색하던 우방국 미국을 매료시켰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외딴 지역에 기지를 건설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보안도 보장되고 무선 주파수 방해도 거의 받지 않는다. 또한 북반구에서는 볼 수 없는 우주 영역을 관측할 수 있으며 중국 우주발사체의 궤적과 정지궤도를 감시하기에도 적합하다. 1961년에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과 협정을 체결해 자국 내 전역에 걸쳐 그와 같은 기지 여러 개를 건설했다. 일부 기지는 1969년의 달 착륙을 포함한 미국의 우주탐사 로켓을 추적하는 데 사용되었다. 142)


2023년 초에 지부티는 중국의 홍콩항천과기그룹과 자국에 우주기지를 건설한다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뿔에 위치한 작은 국가인 지부티는 최소 10제곱킬로미터의 토지를 35년 동안 중국에 임대하고 그 기간이 끝나면 중국은 그곳의 기반시설을 지부티 정부에 반환할 예정이다. 10억 달러 규모의 이 프로젝트에는 항만시설과 도로 건설도 포함되는데 중국은 이를 통해 자국의 항공우주 장비를 일곱 개의 인공위성 발사대와 세 개의 로켓 실험용 발사대가 세워질 부지까지 운송할 수 있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실행된다면 중국은 아프리카의 핵심 요지에 우주기지를 보유하게 된다. 지부티는 적도에 가까워 발사 비용이 절감된다. 더불어 그곳은 아덴만에 이르기 전까지 바다가 좁아지는 홍해의 병목지점에 자리하고 있어 중국 해군기지의 거점도 될 것이다. 이런 전략적 요충지에 우주 관련 시설을 건설하면 중국은 그 지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148-9)


▣ 9장: 2038년, 결국 우주전쟁이 일어나다


우리는 우주에서 평화적인 활동을 수행하도록 이끌 수 있는 유의미한 체제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만약 우리가 우주를 두고 대립을 향해 치닫는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으로 표출될까? 개념상으로 일부 우주정치학 학자들은 우주전쟁을 〈하늘 위의 교통로〉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지구에서 각국이 해상 항로와 그에 따른 교통과 교역을 두고 경쟁을 벌여왔던 것처럼, 전 세계 국가들은 이제 우주에서도 궤도 항로를 두고 경쟁을 벌이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우주전쟁 전문가 블레딘 보웬 같은 사람들은 지상의 강대국들이 해안선 주위의 바다를 장악하는 것처럼 그 위력을 우주에도 투사해 상공의 영역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 이런 궤도 항로를 “우주 해안선Cosmic Coastline”이라고 부른다. 일반인들에게는 우주를 그 아래에 있는 영토나 전장을 지배하기 위해 점령해야 할 장소인 〈고지대high ground〉라고 생각하는 편이 이해하기 쉬울 수도 있다. 154)


1962년에 미국은 스타피시 프라임Starfish Prime이라는 코드명의 군사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들은 단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기 위해 태평양 상공 400킬로미터에서 수소폭탄을 터뜨렸다. 그것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보다 100배나 더 강력했다. 단 몇 초 만에 전자기 펄스(핵무기로부터 발생하는 진폭이 작은 감마선)가 하와이에 정전을 일으켰고 하와이부터 뉴질랜드까지의 밤하늘은 인간이 만든 오로라로 인해 빛의 향연이 펼쳐졌다. 이로 인해 지구 주위에는 인공 방사능대가 형성되어 10년 동안 유지되다가 사라졌다. 또한 바로 전날 발사되었던 텔스타 통신위성을 포함해 적어도 일곱 대의 인공위성이 손상되거나 파괴되었다. 만약 불량국가가 저궤도에서 훨씬 더 강력한 핵폭탄을 터뜨리면 수년 동안 인공위성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그 테스트가 입증했다는 것은 불행한 사실이었다. 핵폭풍에 휩쓸린 전자장비는 모두 파괴될 것이고 뒤이은 방사능에 모든 대체장비도 망가질 것이다. 162)


상호확증파괴에 따르면, 핵공격은 보복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되면 결국 우리 모두가 파멸하리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돌먼이 설명하는 것처럼 “상호확증파괴는 상호(모두), 확증(변명이나 예외는 없다), 파괴(완전한 손실)의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만약 위협이 믿을 만하지 않다면…… 억제가 실패한 것이다.” 하지만 억지력이 있다고 해도 전통적인 형태의 전쟁까지 막지는 못한다. 우주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최후의 수단에는 손을 대지 않지만 우주활동 역량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사용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이 있다. 인공위성에 대한 전파교란, 해킹 등은 어떤 우주쓰레기도 남기지 않는다. 따라서 상호확증파괴의 억지력은 누군가 이런 유형의 기술을 개발하거나 소규모 전투를 벌이는 것까지는 막지 못하는데 그런 행위는 자칫 확전의 양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 대안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확대되는 군비경쟁이다. 따라서 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일련의 포괄적인 군비감축 협정을 제도화해야 한다. 163)


▣ 10장: 달, 화성, 그리고 인간의 마음


거주지를 찾을 때는 오로지 입지, 입지, 입지만을 생각해야 한다. 달의 적도 인근은 2주일 동안 자연채광이 지속적으로 비치지만 다음 2주일 동안은 계속해서 밤이 이어진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달의 자전이 지구 시간으로 약 한 달 정도 걸리기 때문인데, 따라서 달의 낮과 밤은 각각 지구 시간으로 대략 14일 동안 지속된다. 또한 달의 적도에서는 기온이 낮에는 영상 132도까지 올라가고 밤에는 영하 179도까지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달의 남극에 위치한 남극-에이킨 분지에서 소위 〈정착지 사냥〉을 하고 있다. 그곳은 태양이 지평선 위로 거의 떠오르지 않아 크레이터 깊숙한 곳까지 태양빛이 닿지 못한다. 따라서 크레이터 대부분이 수십억 년 동안 그늘 속에 있었고 아마도 그 내부에는 산소, 수소, 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얼음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 원소들로 로켓 추진제를 제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달 기지는 화성으로 향하는 전초기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169-70)


NASA의 과학자들은 첫 번째 달 기지 후보지로 기대되는 몇몇 지역을 찾아냈는데 모두 남극의 위도 6도 이내에 자리하고 있다. 각 지역은 15제곱킬로미터 정도의 규모에 다수의 유력한 착륙장 부지도 포함하고 있다. 태양은 하늘에서 아주 낮게 떠 있지만 최초의 거주자들은 태양광 패널로 충분한 에너지를 집적해 그들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서 살든지 숨을 쉴 수 있는 산소가 최우선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다행히 레골리스regolith라고 불리는 달의 표토에서 산소를 공급받을 수 있을 듯하다.  달의 표면 전체를 덮고 있는 레골리스를 용기에 담아 고온으로 가열하다가 수소와 약간의 과학지식을 첨가해 보라. 그러면 산소와 수소로 분리할 수 있는 수증기가 생성된다. 자, 그럼 이제…… 숨을 쉬세요. 그런 다음에는 숨을 내쉬어라. 이유는 우주비행사들의 날숨은 산소를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인데 실제로 그들의 땀과 소변은 이미 재활용되고 있다. 170) 


이처럼 빛, 물, 산소, 에너지가 있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거주 공간이다. 처음에는 지구에서 가져간 조립식이나 팽창식 구조물들로 만들어질 것이다. 달에 끊임없이 내리쬐는 엄청난 양의 방사선으로부터 거주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 구조물들은 레골리스로 덮어두어야 할 것이다. 중국의 달 탐사 임무 중 독일이 수행한 실험 데이터에 따르면, 희박한 대기로 인해 달 표면의 방사능 수치는 지구 표면보다 200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행히도 레골리스는 태양 복사에 대한 강한 내성과 낮은 열전도율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달에 기지를 건설할 때 마감재로 사용할 수 있다. 달에는 동굴로 이어지는 구덩이가 알려진 것만 해도 약 200개가 있는데 그들 대다수는 상시 온도가 영상 17도로 과학자들은 이를 〈스웨터 날씨〉(스웨터를 입기 적당한 날씨)라고 표현한다. 돌출된 바위들이 낮에는 구덩이가 뜨거워지지 않도록, 밤에는 열기가 소실되지 않도록 막는다고 추정된다. 170-1) 


최초의 화성 정착민들이 직면할 문제 중 하나는 화성의 기온이 다소 쌀쌀하다는 것인데 밤에는 영하 63도까지 떨어진다. 또 다른 문제는 희박한 산소 탓에 숨을 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달에서 계획하고 있는 것처럼 산소를 만들어낼 방법은 있지만 그렇게 되면 거주지가 소규모로 제한되고 행성에 제대로 정착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니 테라포밍(terraforming, 다른 행성을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드는 작업)을 시도해 보자. 2019년에 일론 머스크는 “화성에 핵폭탄을 터뜨리자!”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화성의 토양과 극관(polar caps, 화성의 극에서 얼음으로 덮여 하얗게 빛나 보이는 부분)에 저장된 이산화탄소와 다른 가스들을 배출시켜 온실효과를 일으켜 행성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핵폭탄을 터뜨리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기후변화는 좋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모든 과학자들이 화성의 표면에 대기를 따뜻하게 할 만큼 충분한 이산화탄소가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173)


체액은 우리 체중의 약 60퍼센트를 차지하며 중력으로 인해 우리 몸의 하반신에 모이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지난 수십만 년 동안 직립보행을 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직립한 상태에서 심장과 뇌에 충분한 혈액이 공급되도록 인체 조직을 진화시켜 왔다. 따라서 우주에 있다고 해서 몇 개월 만에 진화가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며 우리의 인체 조직은 무중력 상태에서도 기능을 수행할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우리 몸의 상반신에 체액이 증가하는데 이것이 바로 우주비행사들의 얼굴이 붓는 이유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중력이 없으면 심장이 그렇게 강하게 박동할 필요가 없고 그로 인해 심장 기능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체의 모든 근육도 마찬가지다. 심장이 약해진다는 것은 혈압이 낮아진다는 의미이며 그에 따라 뇌에 공급되는 산소의 양 또한 감소할 수 있다. 하중이 실리지 않으면 우리의 뼈도 약해지고 부러지기 쉬운데, 특히 척추와 엉덩이처럼 하중을 지지하는 부위의 뼈들이 약해진다. 174)


맺음말: 우주가 우리 호모 사피엔스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항상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유전적 구성에 기인하는 듯하다. 우리는 산 정상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어 했다. 또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고 싶은 충동도 느꼈다. 이제 지구라는 영역을 완전히 파악하자 더 먼 곳으로 나아가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했고 우리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비록 시간은 걸리겠지만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변화를 이끌어낼 기술적인 혁신들 또한 이루어낼 것이다. 공상과학 소설가인 아서 C. 클라크는 이렇게 말했다. “불이나 전기가 물고기의 상상력을 초월한 것처럼 그런 기술적인 혁신들도 현재 우리의 비전을 훨씬 초월한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우리의 발전을 저해하도록 놔두어선 안 된다.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 완성되는 모습을 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문명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위대한 금자탑을 쌓아왔다. 문명이라는 유산에는 이런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것은 우리가 여기 있을 때 한 일이다. 이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며, 또한 여러분을 위한 것이다.” 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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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7년, 근대의 탄생 -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이혜원 옮김 / 까치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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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르네상스의 탄생과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형성해온 힘의 해방을 단 하나의 원인을 들어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르네상스를 특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한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바로 포조 브라촐리니라는 인물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재발견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 재발견을 둘러싼 이야기는 우리가 근대적 삶과 사상의 근원에 대한 문화적 전환을 가리키기 위해서 흔히 사용하는 용어인 '르네상스(renaissance)', 즉 고대의 재생(再生, rebirth)'과 진실로 잘 들어맞는다. 물론, 한 편의 시가 그 자체로서 모든 지적, 도덕적, 사회적 전환을 가져왔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떤 작품도 그럴 수는 없다. 하물며 수세기 동안이나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는 공공연히 자유롭게 입에 올릴 수도 없던 책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 특정한 한 권의 고대 서적이 갑자기 사람들의 품으로 돌아옴으로써 분명히 어떤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19)


1 책 사냥꾼 


"가족과 친족관계, 길드와 조합. 이것들이 1417년 당시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 짓는 구성요소였다. 당시 사회는 독자성과 자립심을 거의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한 인간의 정체성은 누구에게나 자명하고 널리 받아들여지는 명령과 복종의 연결 고리 안에서 결정되었다. 이 연결 고리를 끊고 나오려는 시도는 한마디로 어리석은 짓이었다." "농사꾼은 오직 쟁기질 하는 법만 알면 족했고 방직공은 베 짜는 법, 수도사는 기도하는 법만 알면 그만이었다. 물론 이런 타고난 운명보다 형편이 다소 호전되거나 악화되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포조가 살던 사회는 드문 기술을 가진 자는 사회적으로 인정하고 상당한 범위로 그 능력에 대한 보상도 해주었다. 그러나 딱히 뭐라고 규정하기 힘든 개성이나 다재다능함, 또는 남다른 호기심을 가졌다는 이유로 귀하게 대접받는 일은 결코 없었다. 심지어 교회는 호기심을 치명적인 악으로 단죄했다. 호기심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영원한 지옥살이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25-6)


"이 낯선 이방인(포조)의 최종 목적지는 수도원이었지만, 그는 사제도 신학자도 종교재판관도 아니었고, 기도서를 찾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포조의 목표물은 수도원이 보관하고 있는 오래된 필사본이었다. 이런 필사본의 상당수는 곰팡내가 풀풀 나고 벌레가 갉아먹은 상태였으며,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독자도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만약 필사본의 양피지가 여전히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 자체가 현물로서 일정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표면의 글씨를 칼로 긁어내고 활석 가루로 문질러 광택을 내면, 다시 글자를 쓸 수 있었다. 그러나 포조는 양피지 판매업자가 아니었고 오히려 그렇게 오래된 필사본의 글자를 긁어내는 자들을 혐오했다. 그는 그 오래된 양피지 위에 쓰여 있는 내용을 보고 싶어했고, 설령 글씨가 알아보기 힘들고 내용이 어렵더라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특히 그는 10세기, 혹은 그 이전에 작성한 족히 400~500년은 된 필사본에 관심이 많았다."(27-8)


2 발견의 순간 


"포조는 수도사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도덕적으로 진실하며 학식이 높은 훌륭한 수도사들을 몇 명 알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포조가 보기에 대부분의 수도사들은 미신에 사로잡혀 있고 무지할 뿐만 아니라 대책없이 게으른 쓸모없는 인간들이었다. 수도원은 세상에 뿌리내리고 살아가기 힘든 자들을 모아놓은 쓰레기장이나 다름없었다. 귀족은 약골, 사회 부적응자, 혹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 같은 자식을 수도원에 보내버렸다. 상인은 아둔하거나 무기력한 자식을 그곳에 내다버렸고, 농부는 자기 힘으로 먹일 수 없는 남아도는 입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곳을 이용했다." "영적 수련을 위해서 세워진 수도원 회칙에 따른 힘겨운 생활 역시 밭에서 이루어지는 진짜 힘든 노동과 비교하면 대수롭지 않게 보였다. 찬송가 영창을 위해서 일어나 앉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얼마나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의 여지없는 증거이다. 포조에게는 수도사가 하는 수련이라는 것이 몽땅 위선으로만 생각되었다."(49-51)


"사실 중세에 가장 명성이 높은 수도원 도서관도 고대 로마 제국의 도서관이나 당시 바그다드나 카이로에 존재했던 도서관에 비하면 형편 없는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을 영원히 바꾸어놓은 활자 인쇄기술이 발명되기 전의 오랜 세월 동안 얼마 되지 않는 수의 책이나마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스크립토리움(scriptorium)이라고 불린 궁극의 시설 덕분이었다. 스크립토리움은 수도사들이 오랜 시간 앉아서 필사를 하던 작업 공간이었다. 아마도 처음에는 수도원에 자리가 생기는 대로 작업 공간을 만들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필사 목적에 맞게 특별히 설계하고 건축한 공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귀중한 책을 수집하려는 욕구가 점점 더 강해지면서 훌륭한 수도원마다 깨끗한 유리창이 갖춰진 방을 준비하고 많게는 30명의 수도사가 한꺼번에 같이 앉아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책 사냥꾼들이 그들의 빼어난 유혹기술을 가장 집중적으로 발휘해야 할 사람은 스크립토리움의 책임자인 수도원 도서관 사서였다."(53)


"포조는 루크레티우스라는 이름을 틀림없이 알아보았을 것이다. 포조나 그의 동료들 중 누구도 실제로 루크레티우스의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기껏해야 다른 사람의 작품에 인용된 한두 줄의 토막글이 전부였다. 그래서 그때까지 루크레티우스의 작품은 영원히 사라진 것으로 여겨졌다. 점점 어두어져가는 수도원 도서관에서 수도원장과 사서의 경계심 어린 눈초리를 받으며, 포조는 책의 서두를 읽는 것 이상의 여유는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포조는 루크레티우스의 라틴어 문장이 기가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는 것만큼은 곧장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는 데리고 온 보조 필사가에게 시를 베끼도록 지시하면서 이 어두운 도서관으로부터 그것을 해방시키기 위한 움직임을 서둘렀다. 다만 분명하지 않은 것은 포조가 그 책을 풀어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스스로 알고 있었는지의 여부이다. 그것은 머지않아 그가 살고 있는 세계 전체를 해체하는 데에 기여하게 될 운명의 책이었다."(66)


3 루크레티우스를 찾아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이미 수세기 전부터 발생한 사상을 널리 퍼트리려고 한 추종자의 작품이다. 루크레티우스의 철학적 구세주인 에피쿠로스는 에게 해에 있는 사모스 섬에서 기원전 342년 말미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테네 출신의 가난한 선생으로 식민지 개척자로 그곳에 오게 되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를 포함한 많은 그리스 철학자들은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자신의 유수한 조상을 자랑스러워했으나, 출신이 한미한 에피쿠로스는 분명 그들과 같은 주장을 펼칠 수는 없었다." "에피쿠로스 사상의 핵심은 하나의 눈부신 아이디어로 거슬러올라갈 수 있다. 지금껏 존재해온 모든 것과 앞으로 존재할 모든 것은 파괴할 수 없는 입자로 만들어진 것이며, 그것은 더 이상 작아질 수 없을 만큼 작으며 그 수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것이었다. 그리스인은 이 보이지 않는 입자들을 가리켜 더 이상 나누어 구분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로 '원자(atom)'라고 불렀다."(93-4)


"에피쿠로스의 설명에 따르면, 원자들은 부단히 움직이며 서로 충돌하고 특정한 상황에서는 서로 결합하여 더 큰 물체를 이루기도 한다. 관찰할 수 있는 가장 큰 물체는 해와 달인데, 인간이나 물가의 날벌레, 모래알과 마찬가지로 모두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물질에는 상위 범주도 없으며 원자 간의 위계질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천체(天體)도 우리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신성한 존재가 아니며 진공(void)을 가로지르는 그들의 움직임도 신의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니다. 천체는 단순히 자연질서의 한 부분이며, 원자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조물로서, 천체를 구성하는 원자 역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창조와 파괴의 원리를 따른다. 설령 자연의 질서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 복잡하다고 하더라도 그 기본적인 구성요소와 보편적인 법칙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실제로 그런 이해야말로 인간의 삶에서 추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쾌락의 하나이다."(95-6)


4 시간의 이빨 


"팔레스타인에서 온 구세주[예수]에 대해서 에피쿠로스 학파가 던진 조롱과 그에 대한 특정한 이의 내용은 결과적으로 초기 기독교인이 에피쿠로스 사상 전체를 완전히 사장시키게 만드는 배경을 제공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비록 이교도였지만 영혼의 불멸을 믿었으며, 그들의 사상은 승리한 기독교에 궁극적으로 영합될 수 있었다. 에피쿠로스 사상은 그렇지 않았다. 에피쿠로스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성(神性)이라는 개념이 매우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했다. 다만 에피쿠로스는 신이 이 우주의 창조자도 파괴자도 아니며 아마 자신의 쾌락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은 자신 외의 다른 존재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아무런 관심이 없으며 우리의 기도나 제의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이 보기에 기독교인은 우물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개구리 떼 같았다. 그들은 소리 높여 개골개골 울어댄다. 〈세계는 우리를 위해서 창조되었다!〉"(124-5)


"우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교도(pagan)'라는 단어를 오래된 다신교 전통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유피테르, 미네르바, 마르스를 믿었던 사람들은 자신을 이교도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이교도'라는 단어는 4세기 후반에 나온 것으로 어원적으로는 '농민(peasant)'과 관계가 있다. 이는 모욕적인 표현으로, 촌스러운 무지에 대한 조롱이었으나 그 방향이 결정적으로 뒤집혔음을 보여준다." "기독교의 논객들은 에피쿠로스와 그 신봉자들에 대항하여 조롱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이 경우에 이교 신들의 희화화는 쓸모가 없었다. 그들은 신에게 희생 제의를 바치는 신앙을 철저하게 배척하고 모든 고대 신화를 부정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상의 창시자인 에피쿠로스에 대한 이야기를 재정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에피쿠로스는 멍청이에 먹보, 미치광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로마인 수제자 루크레티우스의 운명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127, 129)


"락탄티우스는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아들을 가르치는 가정교사였다. 그는 단지 기독교인이 인간적 쾌락을 추구하려는 유혹에 끌려가는 것을 막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신에 대한 에피쿠로스 학파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데에까지 나아갔다. 그러니까 신은 에피쿠로스 학파의 설명처럼 신성한 쾌락의 굴레 안에만 머물며 인간의 운명에는 무관심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락탄티우스는 313년에 쓴 유명한 글을 통해서 신이 인간을 사랑하시며 그 사랑은 마치 탕아를 사랑하는 아버지의 사랑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을 보여주는 표시는 바로 신의 분노였다. 그리고 신께서는 인간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니─그리고 그것은 그의 사랑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징표이기도 했다─지엄하고 가차 없는 폭력으로 부단히 인간을 벌하기를 원하셨다. 쾌락의 추구에 대한 혐오와 신의 정당한 분노의 현현. 이로써 에피쿠로스 사상에 대한 조종이 울렸다."(130)


"5~6세기의 기독교인은 여러 가지로 울 일이 많았다. 도시들은 붕괴했고, 벌판은 죽어가는 군인들의 피로 물들었으며, 강도질과 강간이 횡행했다. 마치 이전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처럼 인간이 몇 세대 동안이나 이렇게 끔찍한 행동으로 세상을 파국으로 몰아가는지에 대한 어떤 설명이 필요했다. 기독교 신학은 이런 사태의 기저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깊고 근본적인 답을 제시했다. 이 모든 재앙은 한 개인이나 기관의 이런저런 흠 때문이 아니었다. 이 모두는 인간이 원래 태어날 때부터 부패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인간은 아담과 이브의 원죄를 물려받은 후손으로서 그들에게 가해지는 모든 끔찍한 재앙을 받아 마땅했다. 엄청난 양의 끝없는 고통은 그들이 치러야 할 당연한 몫이었다. 그들은 모든 인류가 고통을 적극적으로 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이 정의롭고 확고하게 요구하는 진노의 대가를 제대로 지불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133-4)


5 탄생과 재생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고대 문헌을 찾는 일을 페트라르카가 처음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것을 다른 어떤 보물찾기보다 우위에 두면서 거의 관능적인 절박함과 쾌락을 동반한 일로까지 새롭게 탄생시킨 사람은 바로 그였다." "페트라르카는 자신이 살아야만 하는 현재라는 시대를 한없이 혐오했다. 그는 자신이 거칠고 무지하며 인간의 기억에서 곧 사라지고 말 하찮고 추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탄식했다. 그러나 그가 내뱉은 모욕적인 언사는 오히려 그의 카리스마와 명성을 드높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명성은 꾸준히 높아졌고 더불어 과거에 대한 그의 집착이 가진 문화적인 중요성도 점점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페트라르카의 집착은 후대에 부분적으로 관습화 과정을 거치면서 강력한 새로운 교육 커리큘럼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른바 '인문학(studia humanitatis)', 즉 그리스어와 라틴어와 이들 언어로 된 문헌의 습득을 강조하고 수사학에 초점을 맞춘 학문이 탄생한 것이다."(150-1)


"초기의 인문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신기원을 이루는 운동에 관여하고 있음을 느꼈고, 여기에 자부심과 함께 경이로움, 그리고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 운동의 일정 부분은 지금껏 살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는 틀린 것을 맞는 척 가장하지 말고 고대와 현재 사이에 연속성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첫 걸음이었다. 사라진 것이 무엇인지를 인정하고 그 비극적인 손실을 애도하고 나자, 죽음의 저편에 누워 있는 것들로 가기 위한 길을 모색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즉 부활을 꿈꾸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부활'은 모든 선량한 기독교인─성직자였으며 진실로 독실한 기독교인인 페트라르카를 포함한─에게 매우 친숙한 개념이었다. 다만 이 경우에 부활은 내세가 아니라 이 세계에서 이루어졌으며, 부활의 대상 역시 근본적으로 문화적이며 세속적인 것이었다."(151-2)


"요새화된 탑과 벽으로 둘러싸인 수도원 등이 세워진 비좁은 피렌체 도심에는 공화국의 정치적 심장인 팔라초 델라 시뇨리아(시뇨리아 광장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일명, 베키오 궁)가 있었다. 살루타티에게 그곳은 도시국가 피렌체의 영광이 머무는 장소였다. 피렌체가 다른 국가의 영향력 아래 있지 않고, 교황령에도 속하지 않으며, 왕이나 독재자, 혹은 고위 성직자가 아니라 시민인 그들 자신으로 구성된 집단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독립적인 도시국가라는 사실이야말로 살루타티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 그가 피렌체의 지배자인 시민을 대신해서 쓴 편지나 공문, 의정서, 성명서 등은 모두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것으로서 실로 이탈리아 전역에서 널리 읽히고 배포되었다. 살루타티는 과거의 부활이 골동품 애호 그 이상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페트라르카와 공유했다. 살루타티의 글은 고대 수사학이 아직 살아 있으며 그것이 효과적으로 정치적인 감정과 오래된 꿈을 다시 일깨웠음을 보여주었다."(156-7)


"포조가 처음 니콜리를 만난 1390년대 후반만 해도 두 사람의 고대 도서 수집욕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었을 것이다. 이 둘은 처음부터 신앙에 관한 문제를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후대의 것보다 고대의 것이 더 우수하다는 데에 뜻을 같이했다. 그러나 이들에게서는 페트라르카와 같은 놀라운 문학적 야심이나 독창성은 좀처럼 발견하기 힘들었다. 살루타티의 인문주의에 불을 지폈던 열렬한 애국심과 자유에 대한 열망도 시들해졌다. 대신에 그들의 마음을 차지한 것은 정신적으로는 앞에서 언급한 가치들에 훨씬 더 못 미치는 것이면서 동시에 조금 더 이루기 힘들고 고된 것이었다. 그들을 지배한 것은 고대의 모방에 대한 맹목적 추종과 그 모방의 정확성에 대한 강한 집착이었다. 살루타티가 키운 두 젊은이는 새로운 것을 경멸했으며 오래된 것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일만을 꿈꿨다. 정신적으로 편협하고 황폐한 이런 꿈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꿈은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165)


6 거짓말 공작소에서 


"15세기 초에 포조가 로마에서 일할 당시, 해결을 구하며 교황청으로 날아드는 편지는 매주 거의 2,000통에 달했다. 이는 당시 유럽의 어느 법정의 사무량보다도 훨씬 더 많은 양이었고, 이와 같은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숙련된 인재가 필요했다. 신학자, 변호사, 공증인, 서기, 비서 등의 특화된 인물들이 로마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청원서는 적합한 서식에 따라서 작성되고 제출되어야 했으며, 의사록도 세심하게 작성, 보관되어야 했다. 모든 결정과 판결도 기록된 뒤 필사되어 보관되었다. 칙령, 특허장, 인가증 등 교황청에서 내리는 일련의 교서들은 모두 필사한 뒤 봉인하여 보관했으며 이들을 축약한 문서를 따로 준비하여 배포했다. 로마 주교는 그 지위에 어울리는 거대한 규모의 내무조직을 갖추고, 로마 주교직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와 예법상 법도에 맞게 궁정인, 고문, 서기, 하인들로 이루어진 대규모 수행단을 거느렸다. 포조가 입문하여 발돋움하고자 하는 세상은 바로 이런 곳이었다."(172-3)


"교황청은 그 자신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지식인 계급을 탄생시켰다. 이 지식인들은 사회적 기반이 약했으며 모순적인 구석이 있었다. 이들은 고용주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헌신했고, 고용주의 후원에 전적으로 의존했으나, 한편으로는 그런 형편에 냉소적이었고 자신들의 처지를 불행하게 생각했다. 냉소주의와 탐욕, 위선이 판을 치고, 전 인류에게 도덕적으로 살라고 설교하지만 정작 본인은 비뚤어진 웃전의 비위를 맞추면서 절대군주가 지배하는 궁에서 유리한 지위를 얻고자 경쟁을 해야 했다. 이런 곳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건전한 희망과 품위를 갖춘 인간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포조에 따르면, 교황청 사무국에 있는 모든 사제와 수도사들은 전부 위선자였다. 그곳에서는 종교가 이루고자 하는 숭고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만약 교황청 사무국에서 혹시라도 특별히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를 마주친다면 주의할지어다. 그자는 가장 악질에 속하는 위선자이다."(184, 187)


7 여우 잡는 함정 


"콘스탄츠 공의회(1414)의 가장 중요한 안건은 교회의 균열을 끝내는 것이었지만, 다른 두 개의 주요한 안건도 있었다. 하나는 교황의 통치를 개혁하는 문제로서 이 또한 요한네스 23세에게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다른 하나는 이단 탄압 문제였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궁지에 몰린 여우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실상 이단 문제는 코사(요한네스 23세)가 손에 쥔 거의 유일한 전략적 무기였다." "체코 출신 성직자이자 종교개혁가인 얀 후스는 몇 년간 교회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보헤미아 지방의 강력한 귀족들의 비호를 받으며 후스는 위험한 사상을 계속 유포시켰으며, 그 위험한 사상은 널리 퍼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교회조직 전체로부터 두려움과 증오의 대상이 된 이 위험한 보헤미아인은 한편으로는 교회 내부에 있는 코사의 적들이 코사를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주요 원칙을 누구보다도 명확한 어조로 밝히고 있었다. 부패로 지탄받는 교황에게 불복종하고 그를 폐위시켜라."(208-9)


"코사가 정말 후스에 대한 종교재판이 공의회의 주의를 분산시켜서 교회 분열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저지하거나 정적들을 잠재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었다." "공식적으로 코사에게 통보된 고발장에는 총 70개의 혐의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대중에게 미칠 악영향을 우려한 공의회는 고발장의 내용을 그중에서 가장 가증스러운 16개 항목으로 압축했다. 성직 매매, 남색, 강간, 근친상간, 고문, 그리고 살인. 또한 그는 자신의 전임자인 선대 교황을 독살했다는 죄로, 그의 주치의를 포함한 다른 몇몇 사람들과 함께 고발당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최악이라고 할 만한 것은, 그가 고대부터 죄악시된 에피쿠로스 사상을 추종한다는 것이었다. 그를 고발한 자들에 따르면, 교황은 믿을 만한 인사들 앞에서 줄곧 내세니 부활이니 하는 것은 다 거짓이며, 인간은 짐승과 마찬가지로 몸이 죽을 때 영혼도 함께 사멸한다고 완고히 주장했다는 것이었다. 1415년 5월 29일, 교황은 공식적으로 퇴위되었다."(212, 214-5)


"포조는 콘스탄츠에 일정 기간 더 머물렀지만, 후스가 공의회가 열리는 회의장 앞으로 불려나왔을 때에도 여전히 콘스탄츠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토록 염원했고 그 자신의 생명을 걸고 나타난 회의장에서 이 종교개혁가는 조롱만 당했다. 그가 입을 열어 뭔가를 말하려고 할 때마다 고함소리와 함께 저지당하고 말았다. 1415년 7월 6일, 콘스탄츠 대성당에서 열린 엄숙한 의식에서 후스는 이단으로 유죄선고를 받고 공식적으로 성직을 박탈당했다. 이단으로 판명된 후스의 머리에는 높이가 약 45센티미터에 달하는 원형 종이 왕관이 씌워졌다. 왕관 위에는 영혼을 잡은 채 갈가리 찢고 있는 세 마리의 악마가 그려져 있었다. 후스는 머리에 이 왕관을 쓰고 몸에는 쇠사슬을 찬 채로 대성당에서 끌려나와 자신이 쓴 책이 화염에 뒤덮여 있는 장작더미 앞을 지나쳐 마찬가지로 화형대 위에서 불태워졌다. 유물이 남지 않도록 형을 집행한 담당자들은 불에 시커멓게 변한 후스의 뼈까지 산산조각 낸 뒤에 라인 강에 뿌렸다."(216)


"포조처럼 빈틈없고 매우 숙련된 관료로서 이제 나이도 거의 마흔에 달한 자라면 뭔가 안정을 취할 수 있을 든든한 수단을 강구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포조는 그런 종류의 행보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성 갈렌 수도원에서 돌아온 지 몇 달 만에 이번에는 동행인 하나 없이 콘스탄츠를 떠났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숭고한 작품을 찾아내서 그 끔찍한 감옥에서 꺼내 다시 세상 빛을 보게 해주어야겠다는 포조의 열망은 이런 주변 상황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더 강렬해지기만 한 것 같았다." "포조가 치유사로서의 마법 같은 능력을 다시금 발휘한 것은 1417년 1월, 이번에는 아마도 풀다 수도원에서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선반 위에 놓인 한 권의 장편시를 꺼내 들었다. 포조는 예전에 본 퀸틸리아누스의 글이나 성 히에로니무스가 집대성한 연대기에서 그 시의 저자의 이름을 읽은 적이 있음을 기억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바로 그 시의 제목이었다."(226-8)


8 사물의 길 


"루크레티우스가 생각하기에는 신들이 정말로 인간의 운명에 신경을 쓰거나 혹은 그들이 바치는 여러 종교 제의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상상하는 것은 정말이지 천박한 신성모독이었다. 신이라는 존재의 행복이 우리가 웅얼거리는 몇 마디 말이나 반듯한 행동거지에 달려 있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사실 이런 신성모독도 따지고 보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신들은 인간이 던지는 모욕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혹은 할 수 없는) 그 무엇도 신들의 흥미를 끌 수 없다." "이교도 문헌에서 마주치게 된 이런 위험한 생각들은 그 자체가 막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은 많지 않았다. 후대에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에 공감한 일부 독자들처럼 포조 자신도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 빼어난 고대의 시인은 그저 이교도 신앙이 얼마나 공허하며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신들에 대한 희생 제의라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를 직관적으로 깨달았음을 보여줄 뿐이라고."(231-2)


"그러나 무신론─보다 엄밀하게는 신의 무관심─은 루크레티우스의 시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문제점이 아니었다. 정작 가장 주요한 쟁점이자 대단히 불온한 논쟁의 시발점이 된 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살고 있는 이 물질계였다. 이 논쟁의 가공할 만한 위력은 수많은 이들─마키아벨리, 브루노, 갈릴레오 등─을 매료시켜서 기묘한 일련의 사상적 조류를 형성했다. 일찍이 이것은 포조의 발견의 결과로서 그 사상이 되살아난 바로 그 지역에서 열정적으로 탐구된 바 있었다." "그 주장들 중 일부는 여전히 생경하고, 다른 일부는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 덕분에 가능해진 과학적 발전의 결과를 향유하는 자들에 의해서 엄청난 항의를 받기도 한다는 사실은 기억해둘 만하다. 포조의 동시대인들도 극히 소수를 제외하면, 그 시 자체는 깜짝 놀랄 만큼 매혹적이고 아름답지만, 루크레티우스가 시에서 주장한 내용의 대부분은 도통 내용을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으며 불경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232-3)


"우주가 원자와 진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 이 세상은 창조주가 우리를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 우리의 정신적 삶과 육체적 삶도 다른 모든 생명체들과 비교했을 때 별다를 것이 없다는 것, 영혼도 육신만큼이나 물질적이며 소멸하는 것이라는 것. 이 모두를 깨닫게 된다고 해도 절망에 빠질 이유는 없다. 오히려 사물의 실제 본성을 이해하게 된 것이야말로 행복을 가능하게 하는 길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발걸음이다." "인간은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행복은 인간이 자신을 우주의 중심이라고 착각하거나 신을 두려워하거나 필멸의 존재를 초월한다고 주장하는 어떤 가치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고결하게 희생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달랠 수 없는 욕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행복한 인생의 주요 장애물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성의 수련을 통해서 이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248-9)


"이성의 수련은 전문가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성직자를 시작으로 하여 거짓 환상을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내뱉는 거짓말을 뿌리치고 사물의 본질을 똑바로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모든 관조의 노력들─모든 과학, 도덕적 고찰, 삶을 가치 있게 만들려는 시도들─은 사물을 이루고 있는 보이지 않는 씨앗인 원자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 시작해서 거기에서 끝나야 한다. 이 세상에는 원자와 진공,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 말이다(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차가운 공허함만 느껴질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는 흔히 철학의 기원은 경이롭게 생각하는 마음이자,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뭔가를 알고자 하는 욕구로 바뀌어, 지식에 의해서 경이로워했던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루크레티우스의 설명에서는 이 과정이 뭔가 역전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을 이해함으로써 세상의 가장 깊은 경이로움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249)


9 귀환 


"포조는 새로 선출된 교황 니콜라우스 5세에 대한 봉사에 여러모로 매우 만족했다. 니콜라우스 5세의 속명은 톰마소 다 사르차나로서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부터 교양 있는 인문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는 페트라르카, 살루타티 등 여러 인문주의자들이 열정적으로 몰두했던 고전에 대한 학식과 심미안에 기초한 교육으로 탄생한 결정체라고 할 만한 인물이었다." "결과적으로 니콜라우스 5세의 재위기간(1447~1455)은 매우 만족스러운 시기였다. 그러나 교황의 비서로서 포조가 처음에 꿈꿨던 것만큼 그렇게 완벽하게 목가적인 평온한 시기는 아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시기 동안, 포조는 트라브존 출신의 조르조와 터무니없는 실랑이 끝에 비명과 주먹질로까지 이어진 소동을 겪었다. 또한 포조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자들의 보호자가 되어달라는 자신의 청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라도 한 것처럼 교황이 자신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적 로렌초 발라를 교황의 비서로 지명했을 때 틀림없이 당황했을 것이다."(268-9)


"1453년 4월, 피렌체의 총리 카를로 마르수피니가 죽었다. 마르수피니는 뛰어난 인문주의자였으며 임종 시에도 『일리아드』를 라틴어로 번역하던 중이었다. 당시 총리직은 더 이상 피렌체 권력의 중심이 아니었다. 메디치 가문의 권력이 실질적으로 도시를 장악함으로써 총리의 정치적 중요성은 줄어들었다. 고전 수사학에 대한 통달이 공화국의 생존에 결정적인 것처럼 보였던 살루타티의 시대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포조의 옛 동료이자 뛰어난 재능의 역사가 레오나르도 브루니가 맡았던 두 차례의 임기를 포함한 지난 세월 동안, 피렌체의 총리직은 여전히 그런 뛰어난 인문주의자들을 위한 자리로 남아 있었다." "포조는 피렌체의 총리로 5년간 봉직했다. 아마도 포조는 총리가 해야 할 소소한 업무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신에 그는 보다 상징적인 업무라고 할 수 있는 역할에 충실했다. 약속대로 그는 저술활동에 헌신하여 여러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워 이를 추진했다."(269-70)


10 일탈 


"시적 힘과 더불어 명료하게 기술된 루크레티우스의 시는 무신론을 정의하는 일련의 단죄목록이 담긴 실질적인 교과서라고 할 수 있었다. 보다 정확히는 종교재판관의 심문 교본 역할을 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지식인 사회에 이 사상이 일으킨 파장은 그 시가 가진 시적 힘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이들로부터 초조한 반응을 끌어냈다. 그런 반응의 하나를 대표하는 인물로 15세기 중반의 위대한 피렌체인 마르실리오 피치노가 있다. 일찍이 20대 시절, 피치노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접하고 크게 감명을 받아 시의 저자를 〈우리의 위대한 루크레티우스〉라고 부르며 그에 대한 학술적인 논평까지 썼다. 그러나 훗날, 다시 이성을 찾은─말하자면 기독교인으로 돌아온─피치노는 자신이 쓴 논평을 태워 없애버렸다. 자신이 〈루크레티아니〉라고 부른 루크레티우스 추종자들을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공격했고, 삶의 대부분을 플라톤 철학을 응용하여 기독교를 위한 독창적인 철학적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에 바쳤다."(277)


"사실 루크레티우스를 금지한 교회 당국 내에도 인문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이 다수 있었으며, 결국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1549년,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금서목록에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올라왔다. 그러나 몇 년 후에 교황으로 선출되는 추기경 마르첼로 체르비니의 요청으로 금서목록에 오르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가톨릭 지식인은 루크레티우스의 작품에 담긴 생각을 우화라는 매개를 통해서 받아들일 수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에라스무스 역시 『에피쿠로스주의자』라는 제목의 대화체 형식의 글에서 등장인물 중의 한 명인 히도니우스의 입을 통해서 〈경건한 기독교인보다 더 에피쿠로스주의적인 사람은 없다〉라고 언급했다. 금식하고 죄를 회개하며 죄지은 육신을 벌주며 사는 기독교인이야말로 쾌락주의자로 보지 않을 수 없으니 그들이야말로 옳은 삶을 추구하고 있으며 〈옳게 사는 자보다 더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자는 없다〉는 것이다."(284-5)


"에라스무스의 이런 역설이 교묘한 속임수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에라스무스의 친구인 토머스 모어의 대표작 『유토피아』(1516)에는 에피쿠로스주의와의 연결점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유토피아의 거주민들은 〈인간이 누리는 행복의 전부 또는 그 대부분〉이 쾌락의 추구에 달려 있다고 확신한다. 좋은 유토피아 사회와 부패하고 사악한 영국 사회(게으른 귀족들이 소작농의 고혈을 짜내고 있는)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의 핵심에는 바로 에피쿠로스주의의 중심 원칙이 있음을 이 작품은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러니까 모어는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던 셈이다. 루크레티우스의 시에 등장하는 베누스에 대한 멋진 찬가를 통해서 가장 강력하게 표현된 이 쾌락의 원칙은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생명의 재생산을 수사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 쾌락의 추구라는 이 원칙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게 되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매우 급진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모어는 잘 알고 있었다."(285-7)


"그러나 유토피아는 영혼이 육체와 마찬가지로 없어질 것이라고 믿거나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자, 설령 신이 존재한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무관심하며 오직 신 자신에게만 신경을 쓸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을 위협적인 존재로 여겼다." "소수의 계몽된 엘리트만 모인 철학자의 정원에서라면 〈두려워할 것이 없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두려워할 것이 없다면〉 곤란할 것이다. 설령 유토피아를 구성하는 모든 사회적 조건의 힘이 존재한다고 해도 모어는 인간의 본성은 그런 두려움 없이는 결국 무력과 거짓이라는 잘못된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야 만다고 믿었다. 이와 같은 모어의 믿음은 두말할 것 없이 그의 열렬한 가톨릭 신앙의 영향이었다. 동시대를 살았던 마키아벨리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군주론』의 저자 역시, 법과 관습은 두려움이 동반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290-1)


"그런데 딴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작은 몸집의 도미니쿠스회 소속 수도사 조르다노 브루노가 그 주인공이었다. 1580년대 중반, 브루노는 서른여섯 살의 나이로 나폴리에 있던 수도원에서 도망쳐나와 이탈리아와 프랑스 각지를 계속 떠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런던에 정착했다." "브루노에게 루크레티우스의 우주는 음울한 각성의 장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우주에 시공간의 한계가 없다는 것, 규모가 아무리 크든 작든 모든 것은 원자로 구성된다는 것, 그리고 원자야말로 모든 존재의 기본 구성요소이며 바로 그 원자를 통해서 개체와 무한이 연결된다는 것을 깨닫고 전율을 느꼈다. 멍들고 두들겨 맞은 성자 예수의 몸에 신성을 부여하려고 애쓰는 것이나 머나먼 천국에 있는 성부 여호와를 찾으려는 노력은 모두 무의미한 짓이었다." "브루노가 귀하게 생각한 것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의견을 내는 목소리를 언제든지 틀어막을 준비가 되어 있는 호전적인 바보들에 대항하여 박차고 일어서는 용기였다."(292, 297-8)


"브루노가 지구가 우주의 고정된 중심이 아니라 태양 주변을 도는 행성이라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지지했을 때,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여전히 교회나 학계 모두로부터 극렬한 반대를 받으며 파문까지 당할 수 있는 충격적인 주장이었다. 그러나 브루노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이 불러일으킨 충격을 더 멀리 끌고 나갔다. 브루노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닌 것처럼 태양도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고, 한마디로 말해서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고 주장했다." "1600년 2월 17일, 캄포 데이 피오리 광장에 세워진 화형대 앞에 성직을 박탈당한 전 도미니쿠스회 수도사가 머리를 밀고 당나귀 등에 올라탄 채 모습을 드러냈다." "곧 불이 붙었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수행했다. 브루노는 산 채로 불탔고, 채 타지 않고 남은 뼛조각도 긁어모아 산산이 가루로 만들었다. 화형의 흔적인 뼛가루와 재는 그렇게 흩어졌다. 이제 그 작은 입자들은 브루노가 믿었던 것처럼 즐겁고 위대한 영원한 물질의 순환 속으로 돌아갈 것이었다."(298, 302)


11 사후세계


"브루노가 영국에서 보낸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가도 루크레티우스의 유물론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셰익스피어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책의 하나인 몽테뉴의 『수상록』을 통해서 루크레티우스의 시를 마주친 적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1580년에 프랑스어로 처음 출판된 『수상록』은 1603년에 영어로 번역되었는데, 100여 행에 달하는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의 내용을 직접 인용했다." "몽테뉴는 루크레티우스와 마찬가지로 사후세계에 대한 악몽을 통해서 도덕성을 강제하려는 태도를 경멸했다. 몽테뉴 역시 자기 자신의 감상의 중요성과 물질계의 증거에 매달렸다. 또한 금욕적인 자학과 육신에 가해지는 폭력을 혐오했으며, 내적 자유와 만족감을 귀하게 여겼다. 몽테뉴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맞서면서 루크레티우스의 유물론과 함께 스토아 사상의 영향도 받았다. 그러나 몽테뉴에게 더 지배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육체적 쾌락을 찬양하도록 이끈 루크레티우스의 유물론이었다."(304-5)


"몽테뉴는 에피쿠로스적 세계에서 생각하고 쓰면서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표현했다. 그 과정에서 몽테뉴는 루크레티우스가 가장 소중하게 여긴 꿈 중 하나를 통째로 버릴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몽테뉴는 루크레티우스의 말처럼 고요하고 안전한 땅에 서서 다른 이들에게 닥치는 난파의 운명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말하자면 서 있을 수 있는 안락한 언덕 따위는 없는 것이다. 그는 이미 배에 올라탄 상태였다. 몽테뉴도 루크레티우스와 마찬가지로 명예와 권력, 부를 향한 끝없는 분투에 대한 에피쿠로스의 냉소주의에 완전히 공감했다. 또한 그 역시 자신만의 상아탑으로 물러나 책으로 둘러싸인 개인 서재에서 스스로의 세계에 침잠해 있는 생활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은둔 생활은 끝없는 동요, 형태의 불안정성, 세상의 다원성, 그리고 그 자신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휩쓸려들게 되는 무작위적인 일탈에 대한 깨달음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307)


"영국에서도 매우 어렵기는 했지만 신을 최초에 원자를 창조한 자로 설정함으로써 원자론과 신앙의 병존이 가능해졌다. 아이작 뉴턴은 과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의 하나로 여겨지는 자신의 책에서 루크레티우스의 시 제목을 직접적으로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원자론자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입자들이 전체로서 계속 존재하는 한 그들은 모든 시대에 존재하는 똑같은 본성과 성질을 가진 여러 형체를 구성할 것이다. 그러나 입자들이 닳아서 없어지거나 조각나 부서지게 되면, 사물의 본성은 바로 이 입자들에 달려 있으니 그 또한 변할 것이다.〉 그러면서 뉴턴은 조심스럽게 신성한 창조주 이야기를 꺼내든다. 〈그 어떤 일상적인 힘도 신이 최초에 창조한 원자를 쪼갤 수는 없다.〉" "루크레티우스의 유물론은 드라이든이나 볼테르의 회의주의, 디드로나 흄을 비롯한 많은 계몽시대 인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실용주의적이며 대단히 파괴적인 불신론을 낳는 데에도 기여했다."(326-7)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토머스 제퍼슨이 가장 좋아하는 책들 중 한 권이었다. 제퍼슨은 루크레티우스의 시를 통해서, 특히 무지와 공포가 인간 존재의 필수불가결한 구성요소가 아니라는 확신을 품는 데에 도움을 받았다. 사실 제퍼슨은 시의 저자인 루크레티우스가 기대했을 법한 방식이 아니라 16세기 초의 토머스 모어가 꿈꿨을 만한 방식으로 이 고대 유산을 받아들였다. 알다시피 제퍼슨은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가 주장했던 것과는 달리 공적 생활로 인한 격렬한 경쟁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새로운 공화국의 초석이 되는 중대한 정치적 문서를 작성하는 데에 참여했다. 그런데 그 문서의 내용은 루크레티우스의 시가 만든 또 하나의 뜻밖의 전환이었다. 이 문서로 탄생하는 정부의 사명은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복 추구〉에 봉사하는 것이었다. 루크레티우스를 이루던 원자들은 이렇게 미국 독립선언서에도 그 자취를 남겼다."(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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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오늘의 이스라엘 - 7가지 키워드로 읽는
최용환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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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익숙하지만 낯선 나라, 이스라엘


1장 시오니즘과 분쟁


1917년 영국군이 오스만제국의 군대를 격파한 이후부터 30여 년 동안 국제연맹의 결의에 따라 영국이 이 지역을 위임통치하였고,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국제연맹을 이은 유엔은 1947년 11월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과 아랍인이 각각 그들의 개별국가를 건설토록 하는 이른바 ‘팔레스타인 영토 분할안1947 Partition Plan’을 채택했다. 이 분할안에서 주목할 것은 ‘예루살렘’에 대해 내린 결정이었다. 팔레스타인 영토 분할안은 예루살렘을 직접 관할할 수 있는 ‘코르푸스 세파라툼Corpus Separatum’이라는 지위를 유엔에 부여하고 있다. 예루살렘은 앞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건설될 유대 국가나 아랍 국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별도로 분리된 지역이라는 뜻이다. 1947년 유엔 ‘영토 분할안’에서 예루살렘은 UN이 직접 관할하는 특별지역으로 규정되었지만, 1949년 휴전협정에서는 예루살렘의 동쪽 부분은 요르단이, 서쪽 부분은 이스라엘이 각각 나누어 관할하는 것으로 양측 간 합의가 이루어졌다. 19)


# 코르푸스 세파라툼Corpus Separatum. ‘따로 분리된 독립체(separated body)’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이다.


예루살렘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구시가지(올드시티) 구역은 당시 이스라엘이 장악하지 못한 채 요르단의 관할구역으로 남았다. 그 이후 거의 20년 동안은 그린라인(제1차 중동전쟁 때 그어진 1949 휴전선1949 Armistice Line)이 양측 간에 실질적인 국경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일명 ‘6일 전쟁’)에서 마침내 요르단이 장악하고 있던 올드시티 등 동예루살렘 지역마저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 이로써 예루살렘 전역에 대한 실질적 통치권을 행사하게 되었으며, 이 같은 상태는 오늘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동예루살렘과 서예루살렘을 나누고 있던 그린라인은 1949년에 그어졌지만, 국제정치적 관점에서는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중요하다. 현재 이스라엘은 그린라인을 인정하지 않는다. 예루살렘은 동과 서로 나눌 수 없는 하나의 도시이며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는 주장이다. 이미 예루살렘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만큼 동예루살렘을 포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20)


 ‘욤 하지카론Yom HaZikaron’이라고 부르는 이스라엘의 현충일은 독립기념일 바로 하루 전날이다. 유대력으로 ‘이야르Iyar’달 4일이다. ‘욤 하츠마우트Yom Haatzmaut’라고 부르는 이스라엘의 건국기념일(독립선언일)은 양력 기준으로 1948년 5월 14일이다. 유대력으로는 ‘이야르달’ 5일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유대력에 따라 각종 기념일을 경축하기 때문에 독립기념일 역시 양력으로는 매년 날짜가 달라진다. 반대로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독립기념일 다음 날인 5월 15일을 ‘알 나크바Al Nakba’, 즉 ‘나크바(재앙)의 날’이라고 부른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의 건국 선언 다음 날인 5월 15일 제1차 중동전쟁이 일어나 수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자신들의 고향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에레츠 이스라엘로 돌아와 나라를 세운 것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사명이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건국이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대재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43-4)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은 상시적이고 현재 진행형이다. 언제 어디서 크고 작은 충돌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에는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공항이나 항만이 없다. 두 개로 나누어진 영토 역시 이스라엘 군에 의해 철저히 봉쇄되어 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 지역 출입 문제에서부터 국제기구가 관장하는 팔레스타인 지역 내에서의 각종 인도적 지원사업에 이르기까지, 팔레스타인과 외부세계를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데 있어 이스라엘 당국의 협조를 얻는 것이 가장 우선적이면서 또한 필수적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팔레스타인과 관련된 각종 비군사적・행정적 업무를 조정・통제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 이러한 필요에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 ‘코가트COGAT’라는 조직이다. 국방부 산하 조직으로 ‘Coordinator of Government Activities in the Territories’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점령지 민정조정관실’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코가트의 책임자는 현역 육군 소장이 맡고 있다.  45-6)


2장 디아스포라와 이민


# 유대교 공동체 구분

1. 하레디 : 유대율법에 가장 충실한 초정통파 그룹

2. 다티 : 근대화된 성향의 종교적 시오니스트 그룹

3. 마소르티 : 전통적 가치를 따르면서도 현대적 생활방식을 추구하는 그룹

4. 힐로니 : 종교적 가르침을 지키지 않는 세속적 성향의 그룹


# 출신 지역별 구분

1. 아시케나지 : 독일 지역

2. 세파르디 : 스페인 지역

3. 미즈라히 : 북아프리카, 중동 지역


오늘날 이스라엘의 가장 대표적인 출신 지역 그룹은 ‘아시케나지Ashkenazi’ 그룹이다. 아시케나지는 과거 독일 지역을 가리키는데 9~10세기경 라인강 유역의 유럽에 거주하고 있었던 유대인 그룹을 지칭한다. 현재 지도에서 보자면 주로 독일 서부와 프랑스 북부 일부 지역이 그들의 주요 거주지였다. 이들은 수세기에 걸쳐 동부 유럽 지역인 오늘의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우크라이나, 러시아 등지로 이주했다. 이들은 동유럽과 러시아 등에서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본격적으로 가해지던 시기에는 서유럽과 미국 등지로 다시 옮겨가기도 했다. 이들은 독일어를 바탕으로 히브리어 문자가 결합된 ‘이디시Yiddish’라는 언어를 독자적으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집단이 바로 아시케나지 그룹이다. 하레디 종교정당인 UTJ를 구성하는 ‘아구닷 이스라엘Agudath Israel’과 ‘데겔 하토라Degel HaTorah’도 모두 아시케나지 유대인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64)


또 하나의 대표적 그룹은 ‘세파르디Sephardi’ 그룹이다. 세파르디는 히브리어로 스페인을 뜻하는 ‘세파라드’에서 나온 말이다. 이들은 로마 시대부터 오늘날의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등 이베리아반도 지역에 주로 거주해 오던 유대인 집단이다. 이들은 중세를 거쳐 15세기까지 무슬림이 지배하던 시기에 자신들이 거주하던 곳에서 상당한 지위와 영향력을 누리면서 활동했다. 그러나 15세기 말 기독교를 믿는 정치세력이 맹위를 떨치면서 위기를 맞는다. 이베리아반도가 기독교인들의 치하에 들어가자 무슬림은 세력을 잃고 유대인들도 기독교로의 개종을 강요당하며 시련을 겪었다. 세파르디 그룹 유대인들이 주로 이주한 북아프리카나 중동 지역에는 이미 상당수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미즈라히Mizrahi’ 그룹이라고 부른다. 유럽 중심의 아시케나지와 구분하는 차원에서 지중해 주변 지역 중심의 유대인들을 통칭하여 모두 세파르디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레디 종교 정당 중 '샤스'당은 이들 세파르디가 중심이다. 65)


종교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는 최고랍비공의회는 아시케나지와 세파르디 두 그룹을 각각 대표하는 최고 랍비가 모인 2인 협의체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건국 이후에 이스라엘 현지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은 유대인인 ‘사브라’들은 자신들의 부모 세대에 비해 조상의 출신 지역이나 인종적 배경에 따른 구분 의식이 별로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사브라들이 해외에서 태어나 이스라엘로 이주해 온 올림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들 사브라들이 이제 이스라엘을 이끌어 가는 주도세력으로 성장한 만큼 그동안 존재해 왔던 아시케나지와 세파르디 집단 간의 갈등은 이미 상당히 해소되었다는 것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자유분방한 세속적 힐로니 그룹 내에서는 실제로 아시케나지 출신과 세파르디 출신 간의 결혼도 흔한 편이다. 하지만 초정통파 그룹 내에서는 아시케나지 출신과 세파르디 출신 간 결혼은 여전히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66)


이스라엘 유대인들 가운데서 가장 외모가 두드러져 보이는 이들은 피부색이 어두운 유대인들이다. 이들을 ‘이스라엘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베타 이스라엘’ 또는 그들의 출신 지역을 따서 ‘에티오피아 유대인’이라고도 한다. 이들 에티오피아 유대인은 오랜 기간 유럽 중심의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한 채 거의 잊힌 존재로 남아 있었다. 대다수는 교육이나 소득 수준이 높지 않고, 그만큼 사회적으로도 낮은 계층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이스라엘의 슈퍼마켓에 가면 계산대에서 일하고 있는 에티오피아 유대인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의 소득 수준은 이스라엘 전체 직장인의 월평균 소득보다 20~40% 정도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성보다 여성의 급여가 더 낮다. 이들도 똑같은 유대인이지만 아랍계 국민과 비슷한 소득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 등을 중심으로 피부 색깔에 따른 차별적 대우 때문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66-7)


아이러니하게도 아랍 국가들과의 끊임없는 분쟁을 치른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에는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아랍인이 많이 있다. 이들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당시 이미 이스라엘의 영토로 선언된 지역에서 오랫동안 거주해 온 아랍인들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건국과 동시에 치러진 독립전쟁 중에도 살던 지역을 떠나지 않고 계속 버텨왔던 아랍인들이다. 이들을 ‘48 아랍인’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의 건국 연도인 1948년 당시에 이미 그곳에 살던 아랍인들이라는 뜻이다. 이들 48 아랍인들에게는 1952년 제정된 국적법에 따라 모두 이스라엘 국적이 주어졌다. 이들과 그 자녀들은 오늘날 이스라엘 인구의 약 20%에 해당하는 아랍계 이스라엘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종교적으로 보면 이들 대부분은 무슬림이다. 물론 일부 크리스천도 있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은 자신들의 조국(이스라엘)과 민족(팔레스타인)의 갈등인 셈이다. 그런 까닭에 이들의 정체성은 이중적이다. 69)


드루즈Druze는 아랍어를 말할 수 있고, 그들의 종교가 이슬람과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에 이슬람의 한 분파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계 아랍인과는 다른 특유의 종교와 생활방식으로 인해 그들은 통상적으로 별도 민족으로 분류된다. 이스라엘의 드루즈는 약 15만 명 정도로 전체 이스라엘 인구의 2%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미미한 수준이다. 이들은 비록 아랍어를 구사하고 이슬람에서 파생된 신앙을 갖고 있으나 이슬람과는 다른 독자적 신앙체계를 갖고 있다. 드루즈가 유대인 중심의 이스라엘 사회에서 관심을 끄는 이유는 유대인이 아닌 드루즈 남성에게 이스라엘 군대에 복무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동안 아랍세력으로부터 박해를 경험해 온 드루즈는 이스라엘 독립전쟁이 시작되자 적지 않은 남성들이 이스라엘의 편에 서서 아랍권을 상대로 싸웠다. 드루즈의 미래를 위해서는 아랍 민족주의보다는 유대 시오니즘에 동조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74)


드루즈가 주로 팔레스타인 북부에 거주해 온 반면 베두인Bedouin은 수천 년 전부터 남쪽 시나이 반도와 네게브 사막 지역을 중심으로 유목 생활을 해 오던 아랍 민족이다. 언어도 주로 아랍어를 사용하고 종교도 수니파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스라엘 내 베두인의 인구는 약 25만 명 정도로 전체 인구의 약 3%에 육박한다. 1970년대부터 이스라엘 정부는 네게브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던 베두인들을 지정된 마을들로 이주해 살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강제 이주 문제로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으나, 베두인의 상당수는 정부가 지정한 마을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다. 베두인의 일부는 아직도 이스라엘 정부의 공식적 행정체계에 포함되지 않는 무허가 마을에서 살고 있다. 일반인들은 캠핑조차 하기 어려운 네게브 광야 지역에 흩어져 있는 그들만의 마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전체 국민을 사회계층으로 나눌 때 네게브 지역 무허가 주택에 거주하는 베두인이 최하층민이라고 할 수 있다. 75-6)


3장 유대 국가와 유대 정체성


귀환법이나 시민권법에서는 법률적인 의미에서 누가 유대인인가에 대해 정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대인이라고 하면 전통적으로 유대 종교법 ‘할라카’에 따라 어머니 쪽 혈통을 따른다. 즉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사람만을 유대인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20년 만인 1970년에 귀환법을 개정하면서 이스라엘로 이주할 수 있는 유대인의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개정된 법에서는 유대인의 손자녀(친가든 외가든 조부모중 한 사람만이라도 유대인인 경우), 유대인의 배우자, 유대인의 자녀의 배우자까지 범위를 확대해 이들에게도 이스라엘 이주와 자동적인 국적취득을 허용한 것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어머니가 유대인이지만 신앙으로서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유대교를 믿지 않더라도 다른 종교로 개종만 하지 않았다면 귀환법의 적용대상이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와는 반대의 경우였다. 어머니가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다른 종교로 개종했다면 이주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87-8)


유대인이 아닌 사람에 대해 유대교로 개종을 허가하는 것은 전적으로 랍비가 재판관을 맡는 종교법원의 배타적 권한에 속한다. 이 종교법원은 초정통파 ‘하레디’ 그룹의 랍비들이 장악하고 있다. 2021년 3월 이스라엘 대법원은 이방인의 유대교 개종과 관련하여 역사적인 판결을 했다. 초정통파 소속이 아닌 개혁파 랍비의 주관으로 개종한 이방인도 귀환법의 적용대상이 된다고 만장일치로 판결한 것이다. 이 같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초정통파 측에서는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그들은 기존 방식대로 초정통파가 규정하는 절차를 거친 개종자에게만 귀환법을 적용하도록 대못을 박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대법원의 획기적 판결에 따라 이들의 이스라엘 이주와 국적취득은 허용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유대 종교법상의 유대인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귀환법에 따라 귀환 이주해 국민의 자격을 얻는 것과 종교법상의 유대인으로 인정받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90)


유대인 중에서 유대교의 일반적인 교리와는 다르게 예수(히브리어로 ‘예수아’)가 곧 메시아(구세주)이며 그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메시아닉 유대인Messianic Jews’이라고 부른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크리스천이 아니라 역시 유대인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들 스스로의 생각과는 달리 초정통파 유대인 그룹은 이들을 유대인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들은 유대교에서 이탈한 이교도인 크리스천일 뿐이라는 것이다. 해외에 거주하는 메시아닉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모계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자동적으로 알리야의 권리를 주지 않는다. “유대인이었다가 자발적으로 다른 종교로 개종한 사람은 예외로 한다”는 귀환법의 예외 규정에 따르면,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타종교로 개종한 사람(크리스천)일 뿐이다. 이스라엘 대법원도 1989년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자동적으로 시민권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90-1)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세트에서 하레딤이 장악한 의석은 2022년말 현재 18석에 이른다. 하레딤을 배경으로 하는 이스라엘의 종교정당들은 크게 11석을 가진 ‘샤스SHAS당’과 7석을 갖고 있는 UTJ 즉, ‘토라 유대교 연합’United Torah Judaism이라는 정당으로 크게 대별된다. 이들 초정통파 종교인들로 구성된 종교정당들은 의회총선에서 매번 15석 안팎의 의석을 확보한다. 정부 구성을 위해서는 정당 간 연합이 불가피한 이스라엘 정치체제의 특성상 이들 종교정당들은 지난 수십 년간 우파 연립내각에 빈번하게 참여해 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각료직을 배분받아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정부의 역할에 대해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율법을 실천하고 유대인으로서의 진정한 가치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정부의 기능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유대민족의 정체성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여타 집단들과의 갈등과 충돌은 오늘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93)


종교로서의 유대교와 현실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시오니즘을 결합한 것이 종교적 시오니즘이다. 종교적 시오니스트들은 유대인들이 에레츠 이스라엘로 돌아와 유대인의 나라를 건국하려는 시오니즘을 적극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유대교의 정체성을 지키며 토라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토라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세속적 시오니즘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또한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유대교의 근본주의적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강경하다. 예루살렘의 유대교 성지聖地는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정치적으로 극우의 입장에 서 있다. 극우성향을 가진 종교적 시오니스트 그룹은 2022년 가을 총선에서 14석이나 차지할 정도로 약진했다. 하레디 종교정당과 종교적 시오니스트 그룹의 의원들을 합치면 32석이나 된다. 2022년을 기준으로 이스라엘의 연합 정부는 역사상 가장 강경한 우파 정권으로 간주되고 있다. 93-4)


초정통파 하레디 그룹은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약 12~13%에 달한다. 그런데 이들 하레딤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하레디 공동체를 떠나 독자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이렇게 공동체를 떠난 이들을 ‘요침’이라 부른다. 히브리어로 ‘떠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어쩌면 이들은 대단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요침의 상당수는 자신이 살던 집이나 공동체와 거리를 두고,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배척을 당하면서 관계의 상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배신자나 배교자로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미혼인 경우는 상대적으로 비난이 덜하겠지만 결혼한 남성이 공동체를 벗어나면 그야말로 가족을 저버린 ‘나쁜 가장’으로 최악의 비난을 받게 된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하레디 공동체에서 생활할 때보다 궁핍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같이 하레디 공동체를 떠나는 것이 모험에 가까울 정도로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요침의 규모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99-100)


4장 작은 나라 강한 군대의 비밀


건국 직후부터 최근까지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전쟁국가' 이스라엘에서 국방력을 담당하는 군을 히브리어로 ‘짜할Zahal’이라고 부른다. 영문 약칭으로는 IDF 즉 ‘이스라엘 방위군Israel Defense Force’이다. ‘짜할’은 이스라엘이 독립선언을 한 직후 정식으로 창설되었지만 그 뿌리는 건국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짜할은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위임통치하던 시절 아랍인으로부터 유대인을 보호하기 위해 활동했던 최대 규모의 유대인 무장조직 ‘하가나’를 모체로 하고, 다른 유대인 시오니스트 무장단체인 ‘이르군’ 등을 흡수하여 만들어졌다. 이스라엘 군의 병력 규모는 17~18만 명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현역 병력 못지않게 중요한 병력이 약 46~47만 명 정도에 달하는 예비군이다. 예비군은 40세(장교는 45세)가 될 때까지 연간 약 한 달 정도 훈련에 소집된다. 전쟁이 일어나면 당연히 부대별로 예비군 동원령이 내려진다. 그간 이스라엘이 치렀던 수차례의 전쟁에서 예비군은 상당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14)


이스라엘의 강력한 국방역량 배경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것이 독특한 군 간부양성 프로그램이다. 그중에서도 ‘탈피오트Talpiot 프로그램’은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엘리트 양성 방식이다. 탈피오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표현으로 ‘난공불락의 망대(파수대)’라는 뜻이다. 이들 탈피온은 중위로 임관해 주로 첨단장비 연구개발 부대, 컴퓨터 통신부대, 사이버 부대, 정보기관 등에 배속되어 6년간 복무하면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이스라엘이 자랑할 만한 최고 수준의 첨단무기를 새롭게 개발하거나 작전에 배치되어 활용 중인 기존 무기의 성능을 개선하는 작업도 이들의 몫이다.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하게 되면 이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최고 엘리트로 대접받는다. 이들이 군 복무 기간 중 습득한 지식이나 경험 그리고 선후배 간에 맺은 인연은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한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취업으로 연결된다. 탈피오트 프로그램은 군과 학교 및 기업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115-6)


다양한 형태의 전문 특수부대들도 이스라엘의 국방안보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먼저 탈피오트 프로그램보다 훨씬 앞서 통신 분야의 우수한 인재를 활용해 온 특수부대 ‘쉬모네 마타임’이 있다. ‘쉬모네’는 히브리어로 숫자 ‘8’을 뜻하고 ‘마타임’은 숫자 ‘200’을 뜻한다. 그래서 ‘8200(8-200)’ 부대로도 알려져 있다. 8200부대는 독립전쟁이 끝난 직후에 통신정보수집과 비밀암호 해독 등을 위해 공식 창설된 특수부대이다. 인터넷이나 사이버 분야의 정보수집과 그에 대한 대응 활동도 같이 수행하고 있다. 미국의 국가안보국NSA이나 영국의 정보통신본부GCHQ등과 비슷한 기능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8200부대 출신들은 전역 이후에도 그들만의 모임을 만들어 창업이나 취업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8200부대는 IT 분야의 엘리트 양성조직이면서 전역 이후에도 사회적인 인정과 적절한 보상이 거의 보장되기 때문에 군 복무를 앞둔 고교생들 간에 엄청난 선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116-7)


8200부대와 더불어 유명한 군 정보부대 중의 하나로 9900부대가 있다. 9900부대는 위성이나 드론 등을 이용하여 수집한 영상을 판독・분석하여 지리정보를 제작해 정책결정권자나 지상 작전을 수행하는 부대에 배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특수부대이다. 미국 국가지형정보국NGA의 기능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2013년부터는 이 부대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청년들을 특별 채용하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적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 부대는 특정 사물을 집중적으로 탐색하거나 시각적인 관찰을 반복적으로 즐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독특한 능력을 영상정보 분석이라는 업무에 활용한다. 그 외에도 팔레스타인 주민과 유대인 정착촌이 공존하는 동부의 서안지역, 무장정파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는 남부의 가자지역, 구릉과 산악이 많은 북부의 레바논 인접 지역 등에는 각 지역별로 특화된 부대들이 있다. 또한 지리적 특성에 따라 전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다양한 형태의 특수전 부대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117)


이스라엘에는 국가 차원에서 크게 세 종류의 정보・보안기관이 있다. 해외에서의 정보수집과 비밀공작을 담당하는 ‘모사드Mossad’, 국내에서의 보안방첩 업무를 담당하는 ‘신베트Shinbeit(일명 샤박)’, 국방부 산하에서 군사정보를 취급하는 ‘아만Arman’이 그들이다. 그중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정보기관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모사드는 ‘기관’, ‘연구소’, ‘협회’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어 공식 명칭은 ‘이스라엘 비밀정보부Israel Secret Intelligence Service’이며, 약칭으로 ‘ISIS’라고 부른다. 모사드는 이스라엘이 건국하기 전부터 있었던 ‘하가나Haganah’ 산하의 비밀조직들을 그 모태로 한다. 모사드의 모토는 《성경》 구절로 “지략이 없으면 백성이 망하여도, 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리라Where no wise direction is, the people fall, but in the multitude of counselors there is safety, 잠언 11:14”가 그것이다. 모토에서 보듯이 모사드는 국민의 안전과 국가의 안보는 정보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128)


5장 창업 정신과 후츠파


이스라엘 국민의 특성을 보여주는 표현 중에 ‘후츠파Chutzpah’라는 단어가 있다. 히브리어 ‘후츠파’는 ‘무례함’, ‘당돌함’, ‘건방짐’, ‘뻔뻔함’, ‘독선적임’, ‘남을 배려할 줄 모름’, ‘후안무치함’ 등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다. 이같이 부정적 의미로 가득 차 있던 후츠파가 오늘날에는 이스라엘의 성공 비결이자 발전의 원동력으로 변모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소멸되지 않고 주변의 안보 위협 속에서도 살아남아 계속 성장 발전하는 것은 후츠파 덕분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데 강한 유대인의 특성이 원래 부정적이던 단어의 의미조차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그대로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만나는 유대인에게 후츠파라는 단어를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후츠파 정신이라는 찬사에 멋쩍어하거나 어색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칭찬의 뜻으로 사용한 말 한마디가 오히려 심기를 상하게 할 수도 있으니 현지에서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141-3)


이스라엘은 물이 만성적으로 부족한 사막 지역이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척박하다. 아직 인구 규모가 1천만 명이 안 되고 다른 환경도 상당히 열악한 편이다. 당연히 경제발전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취약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농업이나 제조업보다 부가가치가 큰 다이아몬드 가공이나 기술집약적 또는 지식기반형 산업의 비중이 훨씬 높은 편이다. 많은 국가에서 T&T를 배우기 위해 이스라엘로 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자주 사용하던 표현인데 ‘Terror(테러) 대응 경험’과 ‘Technology(기술)’가 바로 그것이다. 그만큼 기술은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국가경제 성장의 가장 큰 원동력이다. 사실 이스라엘 영토에는 석유가 거의 나지 않는다. 당연히 필요한 석유의 전량을 외국에서 수입하던 나라였다. 하지만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리바이어던’, ‘타마르’ 등 대규모 가스전이 개발되고 2013년부터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이제는 요르단과 이집트로 가스를 수출하는 에너지 수출국으로 변모했다. 143-4)


유대인이 이스라엘 땅을 떠나는 것을 ‘예리다yerida’라고 하며, 이를 감행한 유대인들을 ‘요르딤yoredim’이라고 부른다. 이 ‘요르딤’ 중에는 특히 의사, 과학자, 이공계 교수, 하이테크 분야 엔지니어 등이 상당히 많은 분포를 차지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고학력 요르딤은 이스라엘에서의 삶의 질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불만이다. 요르딤들은 특히 자신들이 감당해야 하는 세금이 계속 증가하는 것에도 불만이 크다.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경제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에도 초정통파 하레딤이나 빈곤층 아랍계 등 국가 경제에 별로 기여를 못하는 집단을 위해 너무 많은 세금을 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 중 다수는 종교적으로 세속적 그룹인 세큘라들이 많다. 이에 더해 끝이 보이지 않는 하마스와의 무력 분쟁 등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안보 상황 역시 이스라엘에서의 행복을 해치는 큰 요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148-50)


6장 조약 없는 영혼의 동맹 미국


이스라엘 임시정부는 1948년 5월 14일을 자정을 기해 독립을 선언하고 건국을 선포했다. 이 독립국가 건설의 선언에 가장 먼저 반응한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다. 선언이 있던 날 자정이 지나고 겨우 11분 만에 미국은 이를 전격 승인했다. 물론 당시 미국의 승인은 ‘사실상의 승인De facto recognition’이었다. 이처럼 미국과 이스라엘은 수십 년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양국은 서로를 ‘동맹alliance’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양국 간에는 그 흔한 ‘동맹조약’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와 미국 간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어 있다. 미국과 일본 간에도 ‘미일안전보장조약’이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미국은 그 같은 조약을 체결한 적이 없다. 이처럼 양국 간에 공식적인 동맹조약이 없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양국의 관계를 일반적인 동맹관계와는 다른 ‘특별한 동맹special alliance’, ‘문서 없는 동맹unwritten alliance’ 또는 ‘인지적 동맹cognitive alliance’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154, 156)


이스라엘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가진 유대인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하나는 신앙적 관점에서 현대 이스라엘을 하느님의 나라가 아닌 시오니즘에 입각한 세속국가로 비판하는 일부 초정통파 그룹이며, 다른 하나는 국제사회로부터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인권 탄압 문제를 지탄받는 이스라엘 정부를 비판하는 그룹이다. 하레디 그룹 중에는 시오니즘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을 건국한 것은 불경스러운 선택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죄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시오니스트들은 2천 년간 지속된 디아스포라의 고통에서 벗어나 유대인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유대인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어 왔다. 이와 달리 시오니즘에 반대하는 초정통파 하레딤은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반드시 하느님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시오니즘이 민족적인 차원에서 유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세속적인 정치운동인 데 반해 이들은 종교적 차원에서 하느님이 다스리는 진정한 유대 국가 건설을 염원하는 것이다. 158-9)


미국 내 유대인 중에서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군사적 점령과 반인권적 분리 정책을 펴는 이스라엘 정부에 비판적인 그룹이 존재한다. 이들은 주로 상대적으로 젊은 연령대의 유대인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미국에서 배운 대로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소수자 보호 등 사회적 정의를 지향하는 진보적 색채가 강한 편이다. 이들은 그간 정신적 조국으로 지지해 온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군사적 강경 조치로 일관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일종의 정체성 혼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이들 미국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아직도 남녀가 함께 기도하지 못하도록 한다든가 전 세계 유대공동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랍계 국민을 배려하지 않는 ‘유대민족국가기본법’ 제정을 강행한다든가 하는 이스라엘 정부의 정치적, 종교적 차별조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일부 강경한 진보성향의 유대인은 시나고그(유대교 회당)에서 더 이상 이스라엘을 위해 모금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159-60)


이 부분에서 오랜 기간 미국에 살면서 누구보다 미국을 잘 알았던 이스라엘 고위 외교관의 주장은 대단히 흥미롭게 들린다. 그는 미국 전체 인구 중에서 유대계 미국인은 겨우 2%에 불과한데, 그들 중 대부분은 이스라엘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인정한다. 그는 따라서 이스라엘로서는 이들 미국 유대인보다 오히려 훨씬 숫자가 많은 미국 내 복음주의 기독교인에 초점을 맞추고 이들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음주의 기독교인은 전체 미국인의 25%를 웃돌 정도로 숫자가 많지만 이스라엘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은 별로 없을 뿐 아니라 종교적 열정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를 넘어서는 이스라엘의 현실 인식은 아랍권과의 관계 변화 속에서 미묘한 부분을 드러내고 있다. 이스라엘이 앞으로 이슬람 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계속 확대해 나간다면 이슬람에 적대적인 미국 내 일부 강성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시각에 과연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162-3)


아랍권 국가들 가운데 이스라엘과 수교한 나라는 현재 모두 6개국이다. 이스라엘은 제4차 중동전쟁이 끝난 후 1979년 이집트와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지난 30여 년간의 적대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아랍 국가 중에서는 최초로 이집트와 수교한 것이었다. 이어 1994년에는 요르단과 두 번째로 수교했다. 두 나라 모두 이스라엘과 남쪽 및 동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이며, 상호 대사관을 설치해 운영 중이다. 2020년에 와서는 걸프만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 진전이 보이면서 이른바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은 아랍에미리트 및 바레인과 수교한 데 이어 수단 및 모로코 등과도 연이어 국교를 수립하기로 합의했다. 이들 나라 중에서 가장 먼저 아랍 에미리트UAE가 2021년 7월 마침내 이스라엘에 대사관을 개설했다. UAE 대사관이 개설된 지역은 대다수 국가의 대사관이 있는 텔아비브 지역이다. 이는 아랍권 국가로서는 세 번째로 이스라엘 영토 안에 대사관을 개설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171)


7장 젊은 나라 속의 오랜 율법


이스라엘에는 결혼과 관련한 법률적인 문제를 다루는 두 개의 법원이 있다. 하나는 랍비청이 주관하는 종교법원이고 다른 하나는 세속법원(가정법원)이다. 히브리어로 ‘베이트 딘Beit din’이라고 부르는 유대교 종교법원은 유대 종교법에 정통한 초정통파 랍비가 재판관을 맡는다. 그런데 유대인의 결혼이나 이혼의 허가 여부는 전적으로 종교법원의 독점적 권한에 속한다. 가정법원은 유대인의 결혼이나 이혼에 대한 법률적 판단 권한을 갖지 못한다. 결혼문제와 관해서 이스라엘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지 않은 일종의 정교일치 국가라고 할 수도 있다. 결혼에 앞서 유대인은 랍비청에 자신이 유대인임을 입증하는 서류, 예컨대 유대인인 모친에게서 출생한 증명서나 종교법원으로부터 발급받은 유대교 개종 증명서 등을 제출하고 결혼허가 신청을 한다. 그런 다음 제출서류에 문제가 없으면 종교법상 권한을 갖춘 랍비의 주관하에 결혼 절차를 밟게 된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친 경우에만 합법적 결혼으로 인정을 받는다. 180-1)


하레디 가정의 초정통파 여성들은 결혼식 전날 밤 몸을 정결하기 위해 ‘미크베’에 들어간다. 미크베는 일종의 욕탕이다. 그러나 씻고 휴식을 취하려는 실용적인 목적보다 몸을 정결한 상태로 되돌린다는 의식적인 목적이 강하다. 육체적인 정결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정결함을 되찾기 위한 것이다. 미크베는 시나고그(유대교 회당)처럼 유대공동체에 반드시 있어야 할 시설의 하나로 간주된다. 결혼에 있어서 또 하나의 이슈는 랍비와 관련된 문제이다. 결혼문제에 대한 최종 권한은 랍비청이 가진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초정통파 랍비가 아닌 개혁파 랍비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종교적 신념이 개혁적이라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모계 유대인 신분을 입증하지 못해 초정통파 랍비청으로부터 결혼을 거부당할 때 비정통파 랍비들에게 주례를 부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81)


히브리어 ‘아구나Agunah’는 결혼한 여성이 여러 가지 이유로 혼인관계를 끝내고 싶어 하지만 혼인이라는 굴레에 속박당한 채 살아가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유대 종교법상 결혼한 여성은 남편이 이혼에 동의하거나 남편이 사망한 경우에 한해서 혼인관계가 종료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재혼도 할 수 있다. 남편이 이혼에 동의한다면 “이제 다른 남자가 당신을 만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게트’(일종의 이혼선언서)를 작성해 아내에게 전달하게 되는데 부인이 이를 받음으로써 비로소 이혼이 성립하고 혼인관계도 끝나는 것이다. 성경에는 “남편이 아내에게 이혼증서(게트)를 주고 집에서 내보내면 그 여자는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다. 두 번째 남편도 그 여자에게 이혼증서를 주거나 또는 사망한다면, 그 여자를 내보냈던 첫 번째 남편은 그 여자를 다시 맞이해서는 안 된다”(구약 신명기 24장)는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을 두고 유대 종교법에서는 이혼증서를 줄 수 있는 권한은 오직 남편에게만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183-4)


‘샤밧Shabbat’은 유대인의 안식일이다. 샤밧은 양력 토요일로, 금요일 저녁 해가 질 때부터 토요일 저녁 해가 질 때까지이다. 대부분의 관공서와 직장은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간 휴무한다. 일요일은 새로운 일주일이 시작되는 날로 평일이며 일하는 날이다. 물론 오늘날 세속적 성향의 세큘라 유대인은 샤밧을 잘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초정통파 하레딤은 여전히 이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 이들은 샤밧에 일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TV 시청이나 자동차 운전 등도 금기시한다. 이들은 꼭 필요한 경우 이방인에게 샤밧 동안 율법상 금지된 행동을 대신 해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한다. 샤밧 기간 동안 유대인의 부탁을 들어주는 이러한 비유대인을 ‘샤밧 고이’라고 부른다. ‘고이’는 ‘이방인’이라는 뜻이다. 예루살렘에서 체류했던 한 유학생은 자신이 세 들어 살던 집 주인인 초정통파 유대인으로부터 샤밧에 집 안의 전등 스위치를 대신 눌러 달라든지 냉장고를 대신 열어 달라는 등의 부탁을 받았다는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190)


유대인들이 기리는 명절에는 봄철의 유월절逾越節, 초여름철의 칠칠절七七節, 가을철의 초막절草幕節 등이 있다. 히브리어로 ‘페사흐’라고 부르는 유월절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가던 유대민족이 모세의 인도로 안전하게 탈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다. 칠칠절은 히브리어로 ‘샤부오트’라고 부르는데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 동시에 첫 수확의 기쁨을 감사하는 날이다. ‘수코트’라고 부르는 초막절은 유대민족이 40년간 광야에서 초막을 지어놓고 생활할 때 하느님께서 지켜주신 것을 감사하는 축제의 날이다. 일주일간 진행되는 유월절 기간에는 누룩이 들어있는 발효식품인 ‘하메츠’를 갖고 있거나 먹어서는 안 된다. 유대인은 대신에 누룩이 들어 있지 않아 맛이 없고 딱딱한 ‘마짜’를 먹게 된다. 《성경》에 ‘무교병無酵餠’이라고 나오는 것으로, 누룩을 넣지 않고 구운 빵이나 과자를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유월절을 ‘무교절’이라고도 부른다. 198)


에필로그 닮은꼴의 나라, 이스라엘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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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리로 세상을 읽는다 - 소소한 일상에서 우주의 원리가 보이는 난생처음 물리책 나는 세상을 읽는다
크리스 우드포드 지음, 이재경 옮김 / 반니 / 2021년 5월
평점 :
품절


1. 고층빌딩이 안전한 이유 - #중력 #운동법칙


우리 삶을 진정으로 지배하는 힘, 우리 중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힘이 바로 중력이다. 지구(질량이 무려 6×10의 24승kg)와 질량이 있는 모든 것 사이의 끌어당기는 힘이 증력이다. 도시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마천루를 생각해보자. 빌딩이 꼼짝도 하지 않으므로 뉴턴의 운동 제1법칙과 제2법칙에 따라, 빌딩에 아무 힘도 작용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제1법칙에 따르면 움직이지 않는 것은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계속 멈춰 있고, 제2법칙에 따르면 운동은 힘에 의해 시작된다. 종합하면 일반적으로 건물은 외견상 힘을 받지 않고, 따라서 정지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건물에 매순간 중력이 작용한다는 걸 안다. 간단히 말해서 뉴턴의 말이 맞는다면 건물은 가루가 돼 지구 내부로 쓸려 들어가서 영원히 또는 지구 핵의 용광로에서 녹아 없어질 때까지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중력이 건물을 땅속으로 잡아당길 때 땅이 정확히 같은 힘으로 건물을 위로 밀어올리기 때문이다. 11, 14)


# 뉴턴의 제3법칙 : 힘이 물체에 작용하면 정확히 같은 크기의 다른 힘(반동)이 반대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작용・반작용의 법칙


건물 기반이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막고, 힘들의 균형이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막는다면, 그 힘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우리를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은 약 100가지 유형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 생명의 ‘레고블록들’을 화학원소라고 부른다. 원자가 여럿 뭉쳐서 분자라는 더 큰 구조를 만든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대부분의 힘은 원자 내부와 원자 사이, 분자 내부와 분자 사이에서 비롯된다. 원자 내부는 대부분 빈 공간이다. 원자의 가장자리에는 (배터리의 음극처럼) 음전하를 띤 전자들이 일종의 성긴 ‘전자구름’을 형성한다. 한편 원자의 중심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뭉쳐서 원자핵이라고 하는 단단한 내핵을 형성한다. 원자핵은 (배터리 양극처럼) 양전하를 띤다. 원자의 음전하 부분과 양전하 부분은 원자끼리 너무 들러붙는 것을 막는다. 철근은 쥐어짜도 눌리지 않는다. 철 원자 각각을 둘러싼 음전하 전자구름들이 서로를 밀어내기 때문이다. 두 자석의 같은 극처럼 음전하끼리는 서로 배척한다. 14-5)


미술관과 도서관 같은 공공건물의 명칭은 흔히 그 기관에 기부한 부자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다. 미터법의 측정단위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해당 단위 뒤의 과학을 발견한 사람의 이름이 붙는다. 힘의 과학에 대한 뉴턴의 지대한 공헌도 거기 딱 맞는 방식으로 인정받았다. 현대 물리학에서 힘의 단위는 바로 N(뉴턴)이다. 1N에 얻어맞는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세평에 의하면 뉴턴은 사과나무 아래에 있다가 떨어지는 사과에 머리를 맞고 만유인력의 법칙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사실이 아닌 건 누구나 안다). 무게가 약 100g인 사과에 작용하는 중력의 크기는 약 1N이다. 이제 앞서 말한 힘의 균형을 떠올려보자. 사과가 떨어지지는 것을 막으려면 1N의 힘으로 사과를 떠받쳐야 한다. 여기에 10을 곱해보자. 1kg의 물체에 작용하는 중력의 크기는 약 10N이다. 즉 지구 중력은 1kg당 10N의 힘으로 물체를 잡아당긴다. 내 몸무게가 왜 75kg인지 궁금한가? 지구가 나를 750N의 힘으로 잡아당기기 때문이다. 18)


2. 살이 찔수록 왜 계단이 싫어질까? - #에너지 #전력


과학자들이 쓰는 에너지의 단위는 ‘줄joule’이다. 최초로 에너지 측정 실험을 행한 19세기 영국 물리학자 제임스 프레스콧 줄James Prescott Joule, 1818~89의 이름을 땄다. 커피 한 잔 분량의 물을 끓이는 데 약 120kJ(12만 J)이 든다. 물 한 잔을 끓이는 일(12만 J)은 오렌지 12만 개(12톤)를 1m 들어올리거나 오렌지 하나를 120km 상공(에베레스트산 높이의 14배)으로 던져 올리는 일과 같다. 일상의 각종 일을 수행하는 데 몇 줄의 에너지가 드는지 이론적으로 추산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이는 회계장부로 치면 ‘차변debit’, 즉 에너지의 수요(소비) 측면에 해당한다. 마찬가지로 초콜릿칩 쿠키, 자동차 배터리, 석탄 한 덩어리에 얼마만큼의 에너지가 숨어 있는지, 그걸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도 꽤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이는 차변에 대한 ‘대변credit’, 즉 에너지의 공급 측면이다. 줄의 업적 덕분에 우리는 이 에너지 장부가 항상 균형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에너지 ‘대변’과 ‘차변’은 정확히 일치한다. 25)


그런데 에너지양만 알아서는 크게 의미가 없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가는 데는 상당한 에너지가 든다. 하지만 관건은 그 일을 얼마의 시간 내에 해내느냐다. 예를 들어 틈틈이 쉬면서 전망을 감상해가며 8시간에 걸쳐 슬렁슬렁 한가롭게 올라간다 치자. 그렇게 분당 네 계단씩 올라간다면 지루하긴 하겠지만 딱히 몸이 힘들지는 않다. 이번에는 꼭대기까지 30분 만에 주파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세워보자. 목표를 달성하려면 1초에 한 계단씩 헉헉대며 올라야 하고, 이건 비교할 수 없이 힘들다. 이렇게 에너지에 시간을 더한 개념이 일률power이다. 일률은 에너지 소비율이나 생산율(에너지양을 그것을 사용하거나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나눈 값)이다. 에너지처럼 일률도 측정 방법을 알면 개념이 잡힌다. 일률을 측정하는 단위를 와트watt, W라고 한다. 1초에 1J의 일을 할 때의 일률이 1W다. 100W 전등은 1초에 100J의 에너지를 쓰는 전등이다. 26-7)


무슨 일이든 거기 드는 에너지양은 항상 같지만, 더 높은 전력을 사용하면 더 쉽고 빠르게 작업을 마칠 수 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까지 어떤 방법으로 올라가든 내 체질량body mass을 같은 거리만큼 끌어올려야 하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항상 같은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전기모터가 내가 내 몸을 옮기는 것보다 훨씬 빨리 내 몸을 위로 옮겨준다. 전기포트, 가스레인지, 모닥불, 또는 숟가락으로 열심히 젓기(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이것들 모두 결국에는 물을 끓게 하겠지만, 각기 다른 일률로 에너지를 공급하고 각기 다른 전력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걸리는 시간은 각기 다르다. 3kW급 고성능 전기포트를 쓰면 1kW급 여행용 포트를 쓸 때보다 세 배 빠르게 물을 끓일 수 있다. 정확히 같은 양의 에너지를 세 배 빠르게, 즉 세 배의 전력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느 전력의 전기포트를 쓰든 에너지 소비량, 즉 킬로와트시는 같다. 29-30)


돈은 뜬금없이 내 은행계좌에 나타나거나 이유 없이 내 지갑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남들과 끝없이 거래하면서 돈을 벌고 또 소비한다. 에너지도 같은 방식으로 작용한다. 에너지를 원하면 (음식을 먹거나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식으로) 어디선가 에너지를 ‘벌어야’ 한다. 뭔가 원하는 걸 하려면 가진 에너지를 어느 정도 ‘소비해야’ 한다. 돈을 찍어내거나 위조하는 등 없던 돈을 난데없이 만들어내 금융시스템을 교란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별짓을 다해도 에너지에는 이 수법이 통하지 않는다.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정해져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으로 제로섬 방식의 거래를 하는 것뿐이다. 즉 어딘가의 에너지 획득은 다른 어딘가의 에너지 손실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것이 절대적이고 근본적인 물리법칙이다. 이것을 에너지 보존의 법칙Law of Conservation of Energy이라고 한다. 흔히 에너지 절약의 의미로 쓰이는 에너지 보존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30)


3. 슈퍼히어로 되는 법 - #지레 #빗면


지레는 모든 기계의 아버지다. 도구 대부분이 지레의 원리에 기반한다. 지레는 막대의 한 지점을 받치고 그 받침점에 작용하는 회전력torque을 이용해 물체를 움직이는 도구다. 지레가 길수록 거기에 가하는 힘을 더 많이 늘려준다. 이 원리를 터무니없이 극단화한 것이 아르키메데스의 지구 행성 들어올리기 비유다. 렌치, 스패너, 크로바가 지레의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손잡이, 스위치, 심지어 두루마리 화장지를 포함한 다양한 물건 또한 지레의 원리에 기반한다. 지레는 두 가지 상반된 방식으로 내가 가하는 힘이나 속도를 증강한다. 지레의 끝을 돌리는 것은 뻑뻑한 너트를 스패너로 돌리는 것과 같다. 지레의 끝을 밀어서 원을 그리며 돌리면 원 중심부에는 더 느리지만 더 강한 회전력이 발생한다. 반대로 지레의 반대쪽 끝(원 중심부)을 돌릴 수도 있다. 그런 경우가 도끼를 휘두를 때다. 원의 중심에서 어깨가 회전할 때 원의 끝에서 도끼자루가 길게 회전하면서 속도가 붙고, 무거운 도끼머리가 나무를 반으로 쪼갠다. 38)


바퀴의 두 가지 작동 원리 중 간단한 것부터 짚어보자. 일단 바퀴는 지레처럼 작동한다. 바퀴가 커질수록 지레 효과도 커진다. 바퀴 림을 일정량의 힘으로 돌리면, 바퀴 허브(지레의 중심점)는 더 느리지만 더 강한 힘으로 돌게 된다. 이것이 파워핸들이 대중화되기 전 트럭과 버스의 핸들이 그토록 거대했던 이유다. 바퀴의 작동 원리가 한 가지 더 있다. 수레가 있으면 무거운 짐을 옮길 때 편리하다. 바퀴는 어떤 원리로 짐 운반을 쉽게 만들까? 모든 것은 힘의 작용, 다시 말해 바퀴들이 차축이라는 가느다란 쇠막대기를 중심으로 회전하는 방식과 관계있다. 바퀴는 마찰을 차축으로 전달해 마찰을 줄인다. 아직 약간의 마찰은 극복해야 하기 때문에 수레를 옮기는 데 여전히 힘이 좀 들어가지만 이제는 걱정이 대폭 줄었다. 여기에 바퀴의 레버리지까지 거든다. 수레를 뒤에서 밀면 바퀴들이 지레 역할을 해서 미는 힘을 배가시키고, 결과적으로 바퀴가 더욱 원활하게 차축을 돌면서 남은 작은 마찰을 극복한다. 39-41)


에너지를 생각하면 빗면의 원리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0kg의 자갈을 들어서 땅에서 1m 높이의 트럭에 싣는다 치자. 자갈을 트럭에 어떻게 싣든지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라) 거기 드는 에너지의 양은 같다. 이때 필요한 최소 에너지양은 2,000J이다. 자갈을 자루에 채워 똑바로 들어올리는 경우 2,000W의 일률로 에너지를 쓰는 것이다. 전기포트나 전기토스터만큼 빡세게 일하는 셈이다. 하지만 자갈을 수레에 담아서 완만한 경사로로 약 4초에 걸쳐 밀어올리는 경우는 똑같은 2,000J의 에너지를 네 배 느리게, 즉 500W의 일률로 쓰게 된다. 단점이 있다면 수직으로 들어올릴 때보다 긴 거리를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힘을 긴 거리에 걸쳐 분배한다고 할까. 빗면의 경사가 완만할수록 힘이 적게 들지만 거리는 더 길어진다. 이는 어떤 방법을 쓰든 결국 같은 양의 에너지를 써야 함을 의미한다. 힘은 4분의 1만 들지만 대신 네 배 오래 일해야 한다. 41-2)


4. 자전거와 빵 반죽의 공통점 - #바퀴 #마찰


자전거 바큇살은 구부리기 쉽다.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잡아 늘릴 수는 없다. 이것이 자전거 바퀴의 작동 비결이다. 하중의 압박을 받는 수레바퀴와 달리, 자전거 바큇살들은 오히려 팽팽히 당겨진다. 즉 인장력을 받는다. 바이올린의 현처럼. 거미집의 줄처럼. 허술해 보이는 바큇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바큇살이 허브를 중심으로 퍼져 있는 양상이다. 수레바퀴와 달리 자전거 바큇살은 림에서 허브까지 똑바로 이어져 있지 않다. 대신 각각의 바큇살이 허브 옆으로 조금씩 비껴서 뻗어 있는데, 이것을 탄젠트 연결tangential connection이라고 한다. 바퀴 허브가 꽤 넓다보니 바큇살의 일부는 한쪽으로, 나머지는 다른 쪽으로 치우쳐서 연결된다. 탄젠트 바큇살은 자전거의 전체 하중이 고르게 분산되는 일종의 팽팽한 철망을 형성해 바퀴가 자전거와 탑승자의 무게를 견디게 해줄 뿐 아니라, 고속으로 방향을 틀거나 커브길에서 기울어질 때 받는 전단력shearing force과 비틀림을 견디게 해준다. 51-2)


간단히 말해 기어(톱니바퀴)란 가장자리에 돌기가 있어서 서로 맞물리며 도는 바퀴를 말한다. 한 쌍의 기어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기계의 속도를 높이는 대신 기계의 힘을 줄이거나, 또는 그 반대로 한다. 즉 기어는 속도 또는 힘을 높일 뿐 두 가지를 동시에 높이지는 못한다.  뒷바퀴와 페달바퀴는 신축성 있는 체인으로 연결돼 있고, 양쪽에는 필요에 따라 골라 쓸 다양한 크기의 톱니바퀴가 장착돼 있어서, 변속 레버를 이용해 체인에 걸리는 톱니바퀴 쌍을 바꿀 수 있다. 다시 말해 맞물리는 톱니바퀴들의 상대적 크기를 변경하는 것이다. 이 교묘한 기계적 변속장치를 디레일러dérailleur라고 한다. 디레일러 덕분에 자전거 주행 중에, 심지어 톱니바퀴들과 체인이 고속으로 회전하는 중에도 변속이 가능하다. 고속 기어에서는 뒷바퀴가 페달바퀴보다 빠르게 회전해서(빠르고 약함) 평지를 질주하기 좋다. 저속 기어는 이와 반대다. 뒷바퀴가 더 느리게 회전하는 대신 페달의 힘을 증대해서 언덕을 수월하게 오르게 해준다. 54-6)


우리가 자전거를 탈 때 에너지를 소비하는(잃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다. 비비고, 바람을 가르고, 치대느라 잃는다. 이를 전문 용어로 각각 마찰friction, 항력drag, 구름저항rolling resistance이라고 한다. 마찰로 잃은 에너지는 그냥 손실이다. 브레이크와 바퀴로 빠진 열은 다시 주워서 쓸 방법이 없다. 자전거 타기의 즐거움 중 하나는 얼굴에 바람을 느끼며 달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즐거움이 에너지를 잃는 또 하나의 경로다. 이렇게 물체가 유체fluids 내에서 운동할 때 받는 저항을 항력이라고 한다. 빨리 달릴수록 공기저항(항력)이 커지고, 공기저항이 셀수록 사람의 에너지 낭비도 커진다. 구름저항은 타이어가 노면을 구르며 받는 저항을 말한다. 자전거 타기는 타이어를 변형시키지 않고 다만 (타이거 안의 공기를) 끝없이 당겼다 풀었다 하며 에너지를 열과 약간의 소음으로 전환한다. 두툼하고 넓은 산악자전거 타이어는 얇고 좁은 경주용 자전거 타이어보다 구름저항을 많이 받는다. 57-9)


5. 볼 수 있는 전부이자 결코 볼 수 없는 것 - #빛 #전자


빛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특별하다. 우선, 우리 대부분에게 빛은 주요한 정보원이다. 대뇌피질의 1/3에서 1/2이 우리 눈이 세상에서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인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할애된다. 한편 물리학에서는 빛이 이와는 매우 다른 이유로 중요하다. 아인슈타인 이후 학계는 세상에서, 아니 우주에서 가장 빠른 속도인 광속에 뭔가 특별한 게 있음을 눈치챘다. 그렇다. 흥미롭게도 광속은 시각과 하등 관계없는 물리방정식 여기저기에 등장한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E=mc2이다. 이 방정식은 에너지와 질량은 결국 같은 것이며 빛에 의해 연결돼 있다고 말한다. 이 개념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당혹감을 준다. 그렇다 해도 빛을 우리의 편의를 위해 우주와 세계의 어둠을 밝혀주는 거대 우주 손전등의 출력물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무식과 안이함의 소치다. 빛은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이유로 존재하며, 동물의 시각이란 진화 과정에서 거기 편승해 우연찮게 얻은 능력일 뿐이다. 65)


빛에 대해 알수록 인간이 보는 세계가 다가 아님을 느끼게 된다. 적외선은 우리 눈이 감지하기에 너무 빨갛고 자외선은 너무 파랗다. 그런데 만약 빛의 파동(light waves, 광파)을 계속 잡아 늘리면 어떻게 될까? 적외선을 더 붉게 만들면? 파장이 550nm(나노미터, 대략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인 광파를 수십만 배 늘려보자. 마이크로파(극초단파)가 된다. 음식을 조리하고 휴대폰 통화를 이어주는 바로 그거다. 마이크로파를 다시 수십만 배 잡아 늘리면,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을 우리 집으로 전송해주는 라디오파(전파)가 된다. 이번엔 스펙트럼의 반대편으로 가서, 자외선을 더 파랗게 만들어보자. 자외선을 미세 죔쇠로 최대한 세게 압착하자. 그렇게 원래 파장의 1,000분의 1로 찌그러뜨리면 그게 엑스선이다. 그걸 더 압축하면 감마선gamma rays이 된다. 따라서 감마선은 사실상 초고에너지 엑스선이다. 이들의 차이는 단지 정도의 차이다. 즉 파동의 크기와 거기 실린 에너지의 크기가 다를 뿐이다. 66)


빛은 1초에 30만 km(지구를 일곱 번 도는 거리)를 주파한다. 따라서 빛이 태양에서 지구에 도달하는 데는 몇 분밖에 안 걸린다. 이것이 우리가 빛의 파동을 바다의 파도를 보듯이 볼 수 없는 한 가지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빛이 몹시 작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시광선의 경우 각각의 파장이 수백 나노미터(원자 크기의 수천 배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가 빛 파동을 볼 가능성은 그야말로 제로에 가깝다. 그렇다면 빛을 파동으로 보지 않고 입자로 볼 때는? 빛을 파동으로 볼 때는 빛은 전자기파라고 말하고, 빛을 입자로 볼 때는 빛이 광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광자는 왜 볼 수 없는 걸까? 여기서 우리는 초현실적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세계, 양자이론quantum theory의 세계로 들어간다. 양자이론은 물질이 원자 규모에서 어떻게 거동하는지 이해하는 데 필요한 괴이한 개념들의 묶음이다. 광자도 미치게 작아서 질량조차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광자는 순수한 에너지다. 67-8)


6. 봉화에서 스마트폰까지 - #전자기파 #광속


스코틀랜드 출신의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79은 전기와 자기를 네 개의 간단한 수학 방정식으로 멋지게 엮어서 1873년 최초로 전자기이론을 확립했다. 전자기이론의 기본 개념은 전기와 자기가 완전히 분리된 두 가지라기보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이다. 전기가 앞뒤로 진동하면 자기가 발생한다. 나침반을 전선 근처에 놓으면 나침반 바늘이 움직이는 마법을 다들 한번쯤은 봤을 거다. 사실 바늘을 움직이는 것은 마법이 아니라 전선을 타고 앞뒤로 쇄도하는 전류다. 전류가 주변에 생성한 자기장이 바늘을 돌아가게 한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요동할 때도 전기가 발생한다. 다이너모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 바퀴를 돌릴 때 우리가 실제로 하는 일은 전선 코일을 자석 안에서 회전시키는 것이다. 전선의 자기장이 끝없이 요동하면서 전기를 만들어 자전거 램프에 불이 들어온다. 태양에너지를 제외하고 우리가 생산하는 전기는 모두 이런 방식으로 전자기 발전기에서 나온다. 81-2)


광파처럼 라디오파도 직선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면 라디오 송신기는 등대 수준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직진만 가능했다면 라디오파 신호가 그냥 우주로 날아가버려 메시지를 15~30km 이상 전송하는 데는 무용지물이었을 거다. 다행히 라디오파는 둥근 지구를 따라 쉽게 휘어지고, 덕분에 편리한 통신수단이 될 수 있었다. 그 이면에는 두 가지 흥미로운 비법이 있다. 첫째, 높다란 라디오 안테나를 땅에 세우면(지구와 연결하면) 지구 자체가 안테나의 하반부처럼 작동한다. 물이 완전히 정지해 있는 호수 위에 안테나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옆에서 보면 안테나가 물에 비쳐서 두 배로 길어 보인다. 호수에 비친 자기 이미지 위에 서 있는 안테나. 같은 현상이 땅에 접한 라디오 안테나에도 일어난다. 즉 지구가 전기를 전도해서 안테나에 이어진 거울 이미지로 작용한다. 그래서 라디오파가 안테나에서 퍼져나갈 때 지구의 윤곽을 따라 자연스럽게 휘어진다. 이것을 지상파ground wave라고 한다. 83)


두 번째 비법은 더욱더 신통하다. 많이들 알다시피 밤에 AM(중파) 라디오를 켜면, 낮에는 감지할 수 없었던 온갖 외국 라디오 방송국들의 치직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지구 대기의 전리권ionosphere이 부리는 조화다. 전리권은 지표로부터 60~500km 떨어진 구간을 말한다. (제트기 비행 고도보다 여섯 배 이상 높다.) 여기서는 분자들이 태양에너지로 인해 이온화된다. 즉 전자를 잃고 양전하를 띠는 원자들과 자유 전자들로 분리돼 있다. 그 때문에 전리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즉 전리권은 전기가 잘 통한다. 전리권은 태양복사(태양에서 방출되는 전자기파)의 영향을 극적으로 받기 때문에 낮과 밤의 거동이 급격하게 변한다. 낮 동안은 전리권의 최하층이 지상에서 발사한 라디오파를 흡수해서 라디오파가 아주 멀리까지 이동하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밤이 되면 이 현상이 줄어든다. 밤에는 전리권의 상층이 라디오파를 거울처럼 반사해서, 다른 때라면 우주로 빠져나갈 신호를 다시 지표로 내리쏜다. 84)


# 통신을 안정적으로 지원하는 거울이 하늘에 실제로 있다면? 이것이 통신위성communications satellite을 낳은 기본 발상이다.


전자기복사(electromagnetic radiation, 파장이 짧은 감마선부터 파장이 긴 라디오파까지를 포함하는 에너지)가 형태만 여럿일 뿐 모두 같은 것이라면, 어째서 우리는 통신에 예를 들어 엑스선이나 감마선이 아니라 굳이 라디오파를 이용하는 걸까?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전자기복사의 파장은 주파수와 반대다. 수학적 표현으로는 반비례관계다. 즉 파동이 길수록 주파수(와 에너지)는 작아진다. 감마선과 엑스선의 경우 파동은 작고(파장이 원자 수준으로 극소하다) 주파수는 끝내주게 높다. 여기에 다량으로 노출되면 건강에 해롭다. 치명적 원자방사선이 자기 집에 비처럼 퍼붓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통신에 라디오파를 쓰는 두 번째 이유는 라디오파가 더 멀리 가기 때문이다. 라디오파의 파장은 하늘을 껑충껑충 가로지르는 거인의 걸음처럼 크기 때문에 신호 손실이 거의 없이 빌딩과 집, 나무와 자동차를 피해 날아갈 수 있다. 또한 건물 안이나 차 안에서도 아무 문제없이 라디오 방송국의 신호를 포착할 수 있다. 86-7)


7. 난방은 쉬워도 냉방은 어렵다 - #열역학 #엔트로피


열은 물체 내부에서 (운동에너지를 가지고) 요동하는 원자나 분자로 인해 발생하는 에너지의 한 종류다. 뜨거운 것일수록 내부 요동이 더 심하다. 수증기가 물보다 뜨거운 것은 내부에 운동에너지가 더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얼음보다는 물이 운동에너지가 더 크고 따라서 더 온도가 높다. 기체를 가열하면 그 안에 있는 원자나 분자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요동이 심해져서 서로 더 많이 더 심하게 충돌한다. 이렇게 물체 속 열을 원자들의 범퍼카 게임처럼 묘사하는 이론을 분자운동이론kinetic theory이라고 한다. 뜨거운 커피 한 잔과 타이타닉호를 침몰시킨 거대 빙산을 비교해보자. 커피는 그래봤자 물 한 컵에 불과하다. 아무리 많은 분자를 함유하고 또 그 분자들의 평균 에너지가 높다 해도(얼음보다는 물이 뜨거우니까), 커피의 열에너지 총량은 대단치 않다. 이에 비해 빙산은 온도는 훨씬 낮지만 동시에 훨씬 크다. 여기서 관건은 크기다. 커피가 더 뜨겁지만, 열에너지는 빙산이 평균적으로 약 2억 배 더 많다. 92-3)


에너지는 마법과 거리가 멀다. 뭔가가 에너지를 잃으면 다른 뭔가가 반드시 에너지를 얻는다. 에너지 교환은 늘 제로섬 게임이다. 이처럼 누가 잃고 누가 얻든 에너지 총량은 결국 변함없이 보존된다는 법칙이 바로 에너지 보존의 법칙(열역학 제1법칙First Law of Thermodynamics)이다. 열 이동에 대한 다른 법칙도 있다. 이번 것은 훨씬 미묘하다. 커피를 빙산에 탁 내려놓으면 커피는 식고 얼음은 따뜻해지지만 절대 그 반대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열역학 제2법칙Second Law of Thermodynamics이 있어서 그런 경우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제2법칙의 내용은 간단히 말해 열은 항상 뜨거운 것에서 차가운 것으로 흐를 뿐 (외부의 힘이 개입하지 않는 한) 결코 그 반대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열역학 제2법칙은 자연현상의 비가역적 방향성을 말한다. 이렇게 열에너지가 흩어지는 현상을 ‘엔트로피entropy 극대화 경향’이라고 표현한다. 쉽게 말해 우주는 자연적으로 질서에서 혼돈으로 움직인다는 뜻이다. 93-4)


열에너지가 뜨거운 것에서 차가운 것으로 이동하는 방법에는 전도conduction, 대류convection, 복사radiation라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전도는 뜨거운 것에 차가운 것이 접촉해서 열이 분자 간의 직접 충돌로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뜨거운 물체의 활발한 분자들이 자기 에너지의 일부를 차가운 이웃 분자들에게 직접 전달한다. 대류는 기체나 액체처럼 유동성 물체에서 일어나는 열전달 방법이다. 기체나 액체의 소용돌이나 상승과 하강을 통해 열이 전달된다. 예를 들어 냄비 안의 수프를 가열할 때, 불에 가까운 냄비 바닥의 수프가 먼저 따뜻해져 밀도가 낮아지고, 따라서 슬슬 위로 올라가며 위쪽의 차가운 수프를 있던 자리에서 밀어내 아래로 보낸다. 위로 올라간 수프는 식어서 다시 내려오고 내려갔던 수프가 다시 올라간다. 이런 상승과 하강 패턴이 냄비 안의 열에너지를 천천히 순환시킨다. 세 가지 중 마지막 방법인 복사는 열에 들뜬 원자들이 비가시적 광선의 형태로 공기나 허공으로 열을 방출하는 것을 말한다. 97)


무언가를 가열하고 냉각하는 것이 등가일 수는 있지만 결코 반대는 아니다. 에어컨은 방에서 열기를 ‘빨아들여’ 밖으로 배출한다. 냉각수(끓는점이 낮은 휘발성 액체)로 채운 파이프를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냉장고와 비슷하고, 공기를 흡입했다가 토해내는 점에서는 선풍기와 비슷하다. 에어컨의 기본 작동 원리는 이렇다. 냉각수가 실내의 열을 흡수해서 가열되고, 파이프를 통해 밖으로 나가고, 밖에서 열을 방출해서 다시 냉각돼 돌아오는 순환 과정이 이어진다. 에어컨이나 냉장고는 열을 차가운 것에서 뜨거운 것으로 (물리법칙에 반하는 방향으로) 이동시킨다. 그래서 에어컨과 냉장고가 열역학 제2법칙을 거스른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거기다 전기를 주입해서 억지로 그 역행을 만든 것뿐이다. 전기에너지가 뜨거운 것을 더 뜨겁게, 차가운 것을 더 차갑게 하는 비정상적 사이클을 가동해서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마땅히 없어져야 할 집 안팎의 온도차를 억지로 유지하는 것이다. 98-9)


8. 다이어트의 과학 - #칼로리 #연소


우리가 먹은 음식은 복잡한 소화 과정을 통해 포도당(화학에너지)으로 바뀐다. 위와 간이 몸에 들어온 음식을 즉시 사용 가능한 당분으로 저장했다가 느긋하게 사용할 지방으로 변환한다. 우리는 호흡이라는 단어를 숨쉬기의 동의어로 사용하지만, 사실 호흡은 체내에 저장된 연료를 공기에서 들어온 산소를 이용해 다시 가용에너지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호흡은 오히려 광합성(식물이 빛에너지를 이용해 이산화탄소와 물로 스스로 양분을 만드는 과정)의 역방향 버전과 비슷하고 자동차에서 일어나는 연소와 유사하다. 먹은 칼로리를 저장해두는 인체의 능력 때문에 입에 들어가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즉각 연결되지는 않는다. 우리 몸은 기름이 바닥난 자동차나 배터리가 다 된 시계처럼 그렇게 갑작스런 양분 고갈을 겪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물리법칙에 따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생존 가능 기간에는 절대적인 한계가 있으며, 이 한계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먹는 음식의 에너지 함량으로 결정된다. 108)


인체도 음식으로 얻은 화학에너지를 실현하는 능력이 형편없다. 일반적으로 우리 몸은 20~25%의 기계적 효율을 낸다. 다시 말해 호흡을 통해 100kJ의 에너지가 풀려도 그중에서 근육이 몸을 움직이는 데 사용하는 분량은 그중 겨우 20~25kJ에 불과하다. 그럼 나머지는 어디로 갈까? 무려 60~70%는 우리 몸이 하는 일 없이 공회전하는 데 들어가고 남은 10%는 ‘간접관리비’, 즉 우리가 먹은 음식을 처리하는 데 들어간다. 왜 우리는 단백질도 탄수화물도 아닌 지방을 저장할까? 같은 무게일 때 체지방의 에너지 함유율이 두 배이기 때문이다. 즉 체내에 지방 0.5kg을 저장하는 것이 동량의 단백질을 저장하는 것보다 가용 잠재에너지를 두 배 더 확보하게 된다. 세상은 여전히 10억 대의 화석연료 자동차로 굴러간다.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석유 같은 화석연료가 가진 놀라운 에너지 함유율 때문이다. 체지방은 에너지 밀도가 휘발유와 비슷하고, 다른 일상의 에너지원들(석탄, 목재, 천연가스, 배터리)보다 높다. 110, 113) 


하버드대학교 인류학자 리처드 랭엄의 이론은 매우 독창적이지만 결론은 간단하다. 즉 인간의 진화적 성공은 결국 요리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인류가 식료를 익혀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에너지를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확보하게 됐고, 두뇌로 더 많은 에너지를 보내게 됐으며, 덕분에 수렵채집 생활에서 벗어나 더 흥미롭고 생산적인 일들을 많이 하게 됐다. 조리가 식료에게 하는 일은 두 가지다. 식료의 에너지 밀도를 즉각적으로 높이고(간단한 예로 뜨거운 음료는 차가운 음료보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체온 유지의 부담을 덜어준다), 식료를 소화하기 쉽게 만들어 신진대사를 돕는다. 랭엄이 말했듯 단백질을 조리하면 단백질 분자의 변성이 일어나 소화하기 쉬워지고 같은 양을 먹어도 더 많은 에너지를 얻는다. 우리가 음식을 꼭꼭 씹도록 진화한 것도 같은 이유다. 물론 씹는 데 에너지가 좀 들어가지만 음식을 더 잘게, 더 소화하기 쉬운 입자들로 부수면 음식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회수할 수 있다. 114-5) 


9. 달리는 페라리에 왜 먼지가 쌓일까? - #기류 #유체역학


먼지를 입으로 불어도 상당 부분 그대로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먼지 입자는 놀랄 만큼 미세하다. 이렇게 해로운 미세먼지 입자들을 PM10으로 지칭한다. 입자의 지름이 10μm(마이크로미터, 100만분의 1m, 인간의 머리카락 굵기의 약 10분의 1)이하인 대기오염물질을 뜻한다. 작고 가벼운 물질일수록 정전기의 접착력에 의해 물체 표면에 붙들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 먼지가 들러붙는 건 작고 가볍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가 실감하지 못하는 것은 지면의 풍속이 0이라는 것이다. 이때 지면이라 함은 말 그대로 지표에서 원자 몇 개 높이 이내를 말한다. 풀잎은 미풍에도 흔들린다. 하지만,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지표에는 어떠한 공기 움직임도 없다. 선풍기 날개는 분당 수백 번씩 공기를 가르는데 왜 그렇게 먼지 더께가 앉는 걸까? 날개 바로 옆의 공기는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공기 움직임이 없을 뿐 아니라 공기와 플라스틱 사이의 끝없는 마찰로 정전기가 발생해 먼지가 더욱 달라붙는다. 121-3) 


페라리를 몰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면 미끈하게 빠진 차체의 표면을 타고 공기가 미끄러지듯 흐른다. 이처럼 공기가 물체 표면의 저항을 받지 않고 쉽게 흐르도록 간소화한 형상을 유선형streamline이라고 한다. 공기역학적으로 이상적인 자동차는 전진할 때 공기흐름을 방해하지 않아서 차량 후방에 발생하는 공기흐름이 차량 전방의 공기와 많이 다르지 않다. 즉 공기가 방해를 적게 받아 흐트러짐 없이 평행선들처럼 미끄러진다. 이것을 층흐름laminar flow이라고 한다. 전방이 절벽처럼 솟아오른 트럭은 트럭 앞면이 공기와 정면으로 충돌해서 평행하게 흐르던 공기층들의 일부를 막거나 늦춘다. 반대로 트럭 영향권 밖의 공기층들은 곧장 쌩 지나간다. 그 결과 공기층들이 마구 뒤섞여 소용돌이 공기가 생긴다. 이것을 난기류turbulence라고 한다. 난기류는 무질서하게 엉켜 있어서 그걸 뚫고 통과하려는 물체에 엄청난 저항을 만들어낸다. 난기류는 트럭에서 에너지를 얻고 이 때문에 트럭의 속도가 느려진다. 123-5)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을 자세히 본 적이 있는가? 꼭지를 돌리면 물이 쏟아진다. 꼭지를 서서히 잠그면 물줄기가 줄어든다. 이때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위쪽이 아래쪽보다 넓다. 왜 그럴까? 물을 더 작은 공간에 욱여넣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1초 동안 수도꼭지를 떠난 물의 양과 싱크대 바닥에 도달하는 물의 양은 정확히 같다. 그런데 중력 때문에 떨어지는 물에 가속도가 붙는다. 다시 말해 물줄기의 끝 지점이 시작 지점보다 유속이 높고, 따라서 계산이 맞으려면 물줄기의 끝 부분이 시작 부분보다 얇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도꼭지를 떠난 물보다 싱크대 바닥에 도달하는 물이 많다는 건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를 연속 방정식equation of continuity이라고 한다. 유체역학 버전의 질량 보존의 법칙이다. 주어진 시간에 흐르는 물의 양은 어느 지점에서나 동일하다는 뜻이다. 같은 이치로 액체나 기체가 갑자기 좁은 공간(주사기나 고압세척기 같은)을 통과하려면 속도를 높여야 한다.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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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팔레스타인 실험실 - 이스라엘은 어떻게 점령 기술을 세계 곳곳에 수출하고 있는가
앤터니 로엔스틴 지음, 유강은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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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종족민족주의 국가ethnonationalist state라는 이스라엘의 지위는 1948년 탄생 때부터 존재했지만, 21세기에 접어들어 그 지위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이 정책을 가장 성공적으로 추구한 이스라엘 지도자는 베냐민 네타냐후인데, 그는 팔레스타인 땅을 영원히 점령해야 한다고 열렬히 믿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장기 총리였지만, 12년이 넘도록 정부를 이끈 끝에 2021년에 마침내 물러났다. 하지만 2022년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우파 연합을 이끌고 다시 당선되었다. 그의 비전 자체가 승리를 거두었다. 네타냐후주의는 그 자신보다 오래 살아남을 이데올로기다. 이스라엘은 점령당한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장비를 편하게 사용해보고 ‘전장에서 시험한’ 무기라고 홍보하면서 세계 최고의 무기 산업을 발전시키고 있다. 이스라엘 방위군 브랜드를 활용한 덕에 이스라엘의 보안 기업들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기업 대열에 합류했다. 팔레스타인 실험실Palestine laboratory은 이스라엘의 독보적인 홍보 포인트다. 13)


1 필요하다면 기꺼이 팔게요!


1948년 5월 14일, 유대인기구 의장 다비드 벤-구리온은 2,000년 만에 처음으로 이스라엘 유대 국가의 수립을 선포했다. 같은 날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의 정당성을 승인했다. 독자적으로 생존 가능한 국방력을 발전시킨 이스라엘은 1950년대 중반부터 국경 너머로 살상 도구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에 정부 소유의 방산 기업들이 발전했고 1960년대에는 민간이 소유한 기업들이 성장했다. 현재 이스라엘 최대의 민간 무기 제조업체인 엘빗도 그때 성장한 기업이다. 1966년에 설립된 엘빗은 순식간에 이스라엘 탱크와 항공기에 쓰이는 필수적인 장비 공급업체로 올라섰다. 몇 년 뒤 엘빗은 민주 국가와 독재 국가 양쪽 모두에 무기를 수출하는 주요 업자로 올라서서 미군을 비롯한 많은 나라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드론부터 야간투시경과 지상 감시 시스템, 최첨단 살상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장비를 개발했다. 엘빗은 지금도 이스라엘 군경과 긴밀하게 제휴하며, 심지어 출판 산업으로까지 확장했다. 28-9)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평판이 좋지 않은 정권에 방위 장비를 판매했다. 1950년대에 공산주의 반군과 전쟁을 벌이던 미얀마도 그중 하나다. 이스라엘이 초기에 가장 성공시킨 무기는 건국 직후인 1940년대 말에 처음 설계한 우지 기관단총이다. 이스라엘은 90여 개국에 우지를 판매했는데 스리랑카, 로디지아(지금의 짐바브웨), 벨기에, 독일 등의 군대에서 주력 총기로 사용한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건 벤-구리온이 건국 초기에 총기 생산 산업을 구축하는 게 유대 국가에 유리할 것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1952년 이스라엘이 서독으로부터 받은 거액의 배상금은 무기 부문에 필요한 투자 자원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배상금의 상당 부분을 무기 개발과 실용화 가능한 핵무기 개발 연구에 비밀리에 이전했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들어오는 막대한 원조가 독일의 배상금과 결합해서 방위 산업이 이스라엘의 주요한 수출 사업이 되었다. 군국주의는 이스라엘의 지도 원리가 되었고, 그 후 줄곧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31)


이스라엘의 역사는 1967년 전과 후라는 두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6일 전쟁 이전에 이스라엘의 정책은 고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적어도 (이따금) 억압에 반대한다는 수사적 인상은 풍겼다. 이스라엘은 탈식민 자유를 누리는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들과 손을 잡았고, 아프리카 나라들은 유엔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했다. 언론인 사샤 폴라코-수란스키Sasha Polakow-Suransky는 이스라엘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의 은밀한 관계를 다룬 저서 『무언의 동맹The Unspoken Alliance』에서 1967년이 이스라엘 방위 정책의 분수령이었다고 말한다. 소련과 아랍의 선전에 도움을 받아 ‘이스라엘이 보호를 필요로 하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나라라는 이미지는 점차 서구의 제국주의적 앞잡이라는 이미지로 퇴색되었다’. 그 후 많은 제3세계 국가가 이스라엘에 등을 돌렸고, ‘이스라엘 정부는 강경한 현실 정치realpolitik를 위해 도덕적 대외 정책의 마지막 흔적조차 내팽개쳤다’. 34)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관계를 맺은 독재 정권의 숫자를 보면 아찔할 정도다. 1965년과 1966년 무슬림이 다수인 인도네시아에서 공산주의자들이 대규모로 숙청되어 최소한 50만 명이 사망한 뒤, 이스라엘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대다수의 서구 강대국과 나란히) 1967년에 완전히 권력을 잡은 수하르토 장군의 정권과 유대를 돈독히 하는 데 열중했다. 1965년부터 1989년까지 루마니아를 통치한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시절을 생각해보라. 기밀 해제된 당시의 문서에서 드러난 것처럼, 이스라엘은 차우셰스쿠가 반유대주의자임을 알았지만 수십 년간 그와 친선 관계를 유지했다. 차우셰스쿠의 루마니아는 1967년 6일 전쟁 이후에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유엔에서 이스라엘 반대표가 점점 많아지는 가운데서도 찬성표를 던진 동유럽의 유일한 나라였다. 이스라엘은 차우셰스쿠가 루마니아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출국하는 것을 오랫동안 막았음에도 공개적으로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세계무대에서 이스라엘이 벌이는 행동을 외교적으로 지지하는 루마니아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36)


1983년 〈뉴욕 포스트〉는 모사드와 미국 중앙정보국이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중앙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지에서 합동 작전을 진행한다는 협약에 서명했다고 보도했다. 핵심 목표는 소련의 영향력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그 보상으로 이스라엘은 미국의 거대한 감시 기구로부터 중동의 군대 이동에 관해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얻었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과테말라의 제노사이드 정권을 군사적·외교적·이데올로기적으로 엄호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이런 현실 정치가 전면에 드러났다. 이스라엘이 과테말라 정권을 지원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 하나는 이스라엘의 민간 기업 타디란 이스라엘 전자산업Tadiran Israel Electronics Industries이 컴퓨터 감청 센터를 설립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정교했던 이 기기는 개인 가정에서 전기나 물 사용량의 변화를 탐지함으로써 인쇄기를 사용하는 경우에 반정부 활동에 주목할 수 있었다. 2008년 타디란은 이스라엘 최대의 방산 기업인 엘빗시스템스에 합병되었다. 40)


2 더없이 좋은 사업 기회


이스라엘은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 42기에 포위된 상태임을 깨달은 뒤 1990년대부터 줄곧 워싱턴으로부터 군사적 자율권을 확대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이 공격 당시 미국은 이스라엘을 도와주지 않았고, 많은 이스라엘인은 조지 H. W. 부시 행정부가 중동에서 가장 가까운 동맹국을 노골적으로 내팽개쳤다는 사실에 격분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정부는 점차 민영화를 받아들이면서 사회주의적 뿌리를 대부분 포기했다. 이스라엘은 이제 미국의 원조에 과거만큼 의존하지 않지만 미국의 지원은 여전히 이스라엘의 상대적 힘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1981년 미국의 원조는 이스라엘 경제의 약 10퍼센트에 해당했지만, 2020년에 이르면 연간 40억 달러에 가까운 미국 원조의 비중이 1퍼센트 정도로 떨어졌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은 요르단 강 서안의 불법 유대인 거주지나 가자에 대한 공격, 동예루살렘의 주택 파괴 등을 축소하라는 미국의 온건한 압력조차 거의 아랑곳하지 않는다. 45)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경제 붕괴를 딛고 일어선 이스라엘의 회복력은 독특한 자결권의 서사로 구성되었다. 외교위원회Council on Foreign Affairs가 출간한 『스타트업 국가 : 이스라엘 경제 기적 이야기Start-Up Nation: The Story of Israel’s Economic Miracle』라는 책은 이런 서사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에서 내세우는 명제는 이스라엘이 번성한 것은 주로 강력한 징병제 덕분이라는 것이었다. 두 저자는 이스라엘 방위군은 세계의 본보기라고 주장했다. 추정컨대 유대인이 다수인 국가를 지켜야 한다는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집단적 믿음은 세계 최고 수준의 무기와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필수적이었다. 이런 사고방식에 힘입어 네타냐후는 10여 년간 이스라엘을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 개발국의 반열에 올려놓으면서 무기와 감시, 사이버 장비의 전문성을 쌓았다. 이스라엘 정부와 민간 기업 양쪽 모두 자신들의 제품을 팔레스타인인을 대상으로 실전에서 효과적으로 시험한 것이라고 홍보했다. 48-9)


점령을 현금화하는 능력은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 이후 폭발적으로 고조되었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적극적으로 나선 나라들에 전달된 메시지는 단순히 테러에 맞서 싸우고 테러 기지를 파괴한다는 것 이상이었다. 스코틀랜드 사회학자이자 감시 연구 전문가인 데이비드 라이언David Lyon에 따르면 그것은 21세기에 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완전히 다시 상상하는 것이었다. 런던 퀸메리 대학교에서 국제법과 인권을 가르치는 이스라엘 학자 니브 고든Neve Gordon은 이스라엘이 매력을 발휘하는 이유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제시한 바 있다. 고든은 이스라엘을 (유대인을 위한) 자유의 요새를 자임하는 자칭 민주주의의 맥락 속에서 분석했다. ‘테러와 싸우는 이스라엘의 경험이 매력적인 것은 이스라엘인들이 테러리스트를 죽일 뿐만 아니라(군사주의적 세계관) 테러리스트를 죽이는 것이 반드시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적 목표에 어긋나지 않고 오히려 그런 목표를 진전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53-4)


테러리즘의 공포로 이스라엘 군사주의를 정당화하지 못한다면 성적 매혹을 활용하면 된다. 알파건걸스Alpha Gun Girls, AGA는 2018년 이스라엘 방위군 재향군인 오린 줄리Orin Julie가 창설한 단체다. 노출이 심한 위장복 차림으로 이스라엘 무기를 어루만지는 여자들은 미국의 유사한 총기 문화를 고스란히 보여주면서도 시온주의 의제를 강하게 풍긴다. 줄리의 소셜 미디어 게시물에는 총기를 찬양하는 미사여구와 함께 이런 문구들이 도배되어 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우리는 조국을 지킬 것이다!’ 듀크 대학교 문화인류학 박사과정의 소피아 굿프렌드Sophia Goodfriend는 ‘소셜 미디어와 초국적 민간 방위 산업은 전쟁의 강건한 미학을 민주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알파건걸스는 전쟁을 미학화함으로써 폭력을 부정하고 점령을 정상화하는 이스라엘의 능력을 수출한다. (……) 하이힐과 착탈식 천사 날개를 차려입은 이스라엘의 혼란스러운 에로티시즘은 오늘날 초국적인 상품이 되었다.’ 55)


수많은 이스라엘 기업이 점령을 둘러싼 기반 시설을 유지하는 데 관여하는 가운데 이들 기업은 국가에 서비스를 판매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을 대상으로 최신 기술을 시험하고, 더 나아가 전 세계에 기술을 홍보하기 위한 혁신적 방법을 발견했다. 많은 팔레스타인인이 점령이 어떻게 민영화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을 괴롭히고 모욕하는 상대가 국가 공무원이든 사적 개인이든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민영화 모델은 이스라엘의 광범위한 집단에 이익을 제공하는 동시에 이스라엘 본토와 점령지가 전혀 구분되지 않도록 하는 데 효과적이다. 이스라엘 관리들은 여전히 일시적으로 점령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유대 국가 내에서는 서서히 진행되는 점령의 민영화에 관한 활발한 논의가 전혀 없다. 이스라엘 언론에서는 요르단 강 서안과 가자의 식민화를 거의 보도하지 않는다. 정책 결정권자들은 아웃소싱을 ‘검문소의 민간화’나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율권’ 등으로 묘사하고 있다. 56-7)


3 평화를 가로막다


팔레스타인인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것은 피자를 주문하는 일만큼 쉬워야 한다. 2020년 이스라엘군이 설계한 앱의 배후에 놓인 논리는 바로 이것이었다. 전장의 지휘관이 전자 장치에 표시된 표적에 관한 세부 정보를 부대에 보내면 병사들이 그 팔레스타인인을 신속하게 무력화할 수 있는 앱이었다. 이 프로젝트를 담당한 오렌 마츨리아흐Oren Matzliach 대령은 ‘이스라엘 디펜스’ 웹사이트에 이 공격은 ‘스마트폰으로 아마존에서 책을 주문하거나 피자집에서 피자를 주문하는 일과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점점 많은 정권이 이스라엘이 정치적 학살politicide을 자행하면서도 무사한 비결을 배우는 데 매력을 느끼고 있다. ‘정치적 학살이란 하나의 정당한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실체로서 팔레스타인인의 존재를 해체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과정은 또한 필연적이지는 않더라도 이른바 이스라엘 땅에서 팔레스타인인을 부분적으로, 또는 완전히 종족 청소하는 것을 포함할 수도 있다.’ 64)


분리주의는 이스라엘 주류에서 점점 부상하는 이데올로기다. 이스라엘의 저명한 역사학자 베니 모리스Benny Morris는 2020년 로이터 통신에 팔레스타인인들을 시야에서 없애버리는 것이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이상적 해법이라고 말했다. 모리스는 그 원인을 2000년부터 2005년 사이에 제2차 인티파다 당시 팔레스타인인들이 벌인 자살 폭탄 공격 탓으로 돌렸다. 분리주의의 가장 효과적인 사례는 가자를 포위해 팔레스타인인 200만여 명을 거대한 장벽 안에 가둬둔 채 드론으로 끊임없이 감시하고, 이따금 미사일로 공격하며,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철저하게 국경을 폐쇄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2021년 말 이스라엘이 11억 1,000만 달러의 비용을 들여 가자와 맞닿은 경계선 전체에 65킬로미터 길이의 최첨단 장벽을 완공했을 때, 이스라엘 남부에서는 축하 행사가 열렸다.〈하레츠〉는 이 장벽을 ‘공학과 기술의 복잡한 시스템’이라고 묘사했다. 유럽으로부터 건설 지원을 받아야 했던 ‘세계 유일의 최첨단 장벽 시스템’이었다. 66)


오늘날 가자는 이스라엘의 독창적 지배 기술을 테스트하기 위한 완벽한 실험실이다. 가자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무한정 가둬둔다는 종족민족주의의 궁극적인 꿈이다. 2012년 11월 이스라엘이 방어 기둥 작전Operation Pillar of Defense이라는 이름으로 벌인 가자 포격은 팔레스타인인 174명과 이스라엘인 6명을 죽이고 1,000여 명에게 부상을 입힌 7일 전쟁이었다. 2008년과 2009년 초에 이스라엘이 벌인 주물납 작전Operation Cast Lead에서는 가자 주민 1,400명이 사망했다. 이 충돌을 계기로 이스라엘 방위군이 다양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전쟁을 묘사하는 방식이 혁명적으로 바뀌었다. 일부 서구 국가의 여론이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에 반발하는 것을 우려한 가운데 벌어진 이른바 인스타 전쟁instawar은 하마스 대원을 살해하거나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체포한 것을 자랑스럽게 발표하기 위해 만든 인포그래픽과 군사작전을 트위터로 생중계하기 위한 일사불란한 기획이었다. 67)


오늘날 이스라엘 방위군의 인스타그램 페이지에는 강경한 군사주의적 상징들과 나란히 동성애와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메시지가 정기적으로 부각된다. 2021년 10월 1일, 이스라엘 방위군은 여러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분홍색 조명에 감싸인 본부 사진과 함께 이런 메시지를 올렸다. ‘지금 싸우고 있는 이들을 위해, 죽어간 이들을 위해, 살아남은 이들을 위해 이스라엘 방위군 본부는 분홍색 불을 밝혔습니다. #유방암인식제고를위한달.’ 미군도 이스라엘 방위군이 이런 식으로 벌이는 정보전 전략을 똑같이 따라 한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2021년 ‘휴먼스 오브 CIAHumans of CIA’라는 이름으로 소셜 미디어 캠페인을 개시했다. 좀 더 다양한 공동체에서 인력을 충원하기 위한 캠페인이다. 이스라엘의 소셜 미디어 전략은 유대 국가가 벌이는 작전을 서구의 가치와, 또는 적어도 테러리즘(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는 ‘저항’)에 대한 군사적인 대응을 지지하는 정책과 연결함으로써 전 세계에서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정교한 시도다. 68)


디지털 혁명이 탄생하던 시기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벌이는 악행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어 퍼뜨리면 팔레스타인의 대의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점령에 대한 전 세계적 인식이 급격히 높아졌다는 점, 그리고 이는 정착민이나 이스라엘 군대와 팔레스타인인의 대결 장면을 편집 없이 그대로 보여준 덕분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스라엘 국가가 팔레스타인인들이 겪고 있다고 말하는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명백한 시각적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선별한다는 증거도 많다. 이스라엘인들은 우리가 직접 목격하는데도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을 상대로 잔학 행위를 벌이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더라도 팔레스타인인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팔레스타인인은 응징하고 죽여야 마땅한 인종 집단일 뿐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도덕적 불편도 드문 현상이 되었다. 69)


4 이스라엘 점령을 세계에 판매하다


 2018년 크레타 섬에서 테스트를 거친 뒤 2021년 5월을 시작으로 에어버스가 운영하는 IAI의 헤론Heron 드론은 유럽연합 국경관리기구인 프론텍스Frontex의 장비가 되었다. 난민들이 대륙 본토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싸움의 일환이었다. 한때 해군 경비정이 곤경에 빠진 이주민들을 구조하기도 한 반면, 무인 드론은 접촉이 없는 새로운 감시 형태다. 경제학자 시르 헤베르는 이스라엘제를 포함한 드론 사용 증대에는 뚜렷한 정치적 목표가 있다고 말한다. “드론은 누구도 구조할 수 없고 사진만 찍을 수 있죠.” 그가 내게 한 말이다. “실제로 무장한 보트나 의심스러운 선박이 접근하면 드론 조종사가 경비정에 알려서 현장에 출동하게 할 테지만, 물이 새는 난민 보트처럼 보이면 드론 조종사는 항상 시간을 끌고 경비정은 일부러 구조할 사람이 없어질 때까지 늑장 출동합니다. 이게 핵심적 차이이자 드론이 해안 경비를 위한 혁신적 기술인 진짜 이유죠. 난민들이 익사하게 방치하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거죠.” 87-8)


프론텍스가 난민을 찾기 위해 드론을 활용한 여파로 많은 이들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고 있다. 2021년 10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우르술라 폰 데어 레이엔은 이주민을 차단하기 위해 ‘철조망과 장벽’에 돈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유럽연합은 그리스와 리비아를 비롯해 수많은 나라에서 바로 그런 일을 했다. 지중해 지역은 위험한 해역으로, 국제이주기구IOM ‘실종이민자’ 프로젝트에 따르면 2014년 이래로 최소한 어린이 848명을 포함해 2만 2,748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이 끔찍한 수치를 받아든 유럽연합은 이민자를 계속 차단하고 그들의 여정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기로 결심했다. 유럽의 무기 회사들은 시리아와 리비아, 예멘, 튀르키예의 분쟁을 악화시키는 무기를 판매함으로써 대규모 피란민을 발생시키는 데 기여했다. 유럽연합이 점점 잔인한 전술을 구사하며 이민자를 차단하기로 결심하지만 유럽에 들어오려는 많은 사람이 유럽의 방위 장비 때문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악순환의 고리인 셈이다. 90-1)


이스라엘의 감시 기업 셀레브라이트는 지금까지 디지털 데이터 추출 장비를 최소한 150개국에 판매했다. 그중에는 러시아,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같은 독재 국가도 포함되었다. 셀레브라이트는 유럽연합에서 망명 신청자를 감시하는 업무도 일부 맡고 있다. 휴대전화는 이민자가 가진 물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셀레브라이트의 한 영업사원에 따르면 2019년 난민의 77퍼센트가 이민 서류 없이 유럽연합 국가에 왔고, 43퍼센트가 여정 중에 스마트폰을 휴대했다. 이 회사는 따라서 이민자의 여정과 최근의 지리적 위치와 연락 이력을 알아내는 데 자사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문이 열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화를 과학 수사 기법으로 분석하는 것은 해당 이민자의 동의가 없으면 국제법 위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프론텍스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특별 조치’ 사용을 포함해서 난민의 휴대전화에 있는 암호화된 메시지 앱에 불법 침투해서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 가이드북을 개발했다. 93)


팔레스타인 실험실이 번성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많은 나라가 그 밑바탕이 되는 전제를 신봉하기 때문이다. 억압적 정권들이 이스라엘의 억압을 모방하고자 하면서 이스라엘의 기술을 사용해서 달갑지 않거나 반항적인 집단을 억압하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은 외교적·군사적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하기 위해 서구의 승인을 열망한다. 미국을 제외하면 분명 독일이 가장 탐나는 대상일 것이다. 이스라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산산조각 난 이미지를 복구하는 것을 도운 한편 베를린은 팔레스타인인을 잔인하게 점령하는 나라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독일이 이스라엘 방위 장비를 점점 많이 구매하는 것은 자국의 역사적 범죄를 용서하는 한 가지 방도에 불과하다. 국제방송 도이체벨레는 2022년 행동 규범을 갱신하면서 모든 직원은 조직을 대변하거나 심지어 개인 자격으로 말할 때에도 ‘이스라엘이 존재할 권리를 지지’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최대 해고까지 징계를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98)


유럽 전역의 여론은 꾸준히 이스라엘에 등을 돌리고 있으며, 2021년 이스라엘과 가자의 전쟁은 이런 추세를 가속화했을 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럽연합의 네이버사우스Neighbours South 프로젝트가 2020년에 수행한 여론조사에서는 이스라엘인의 과반수가 자신들이 유럽연합과 가치관을 공유하며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믿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불일치는 실제로 뚜렷해서 이스라엘인들은 대체로 유럽연합 지지에 찬성하는 반면, 유럽연합의 많은 사람은 점차 유대 국가가 팔레스타인인들을 상대로 벌이는 행동을 우려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럽 우파의 일부는 이스라엘의 종족민족주의와, 이슬람과 난민에 대한 비타협적 태도를 옹호한다. 그리고 유대인이 다수인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와 기법을 사들이고 거기서 영감을 얻으려고 열심이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이런 식으로 헝가리, 슬로바키아, 폴란드, 체코공화국에서 친이스라엘 강경파 민족주의자들과 동맹을 이루었다. 100)


5 변함없이 사랑받는 이스라엘의 지배


이스라엘과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비슷한 성향의 나라끼리의 사례에서 가장 두드러진 정치, 군사, 외교, 이데올로기적 동맹을 맺었다. 프리토리아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1948년 권력을 잡자마자 백인 외의 인구에 나치식 제한 조치를 발동해서 인종 간 결혼을 금지하고 여러 직종에서 흑인이 일하는 것을 막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유대인 공동체는 아파르트헤이트를 통해 이득을 얻었고 그 정권의 지속을 지지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이스라엘 정부가 종종 이스라엘군이 개발하고 시험한 무기를 중심으로 정치, 이데올로기, 군사 관계를 공고히 굳히는 1970년대에 이르면 이스라엘을 집권하는 리쿠드당의 다수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세계관에 친밀감을 느꼈다. 언론인이자 『무언의 동맹』의 저자인 사샤 폴라코-수란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두 나라를 문 앞의 야만인들에 맞서 자기 존재를 방어하는, 유럽 문명의 위협받는 전초기지로 규정한 것은 소수자 생존주의 이데올로기였다.’ 103)


상호 이득이 되는 관계는 국방 부문에서 돈을 버는 능력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원치 않는 인구 집단을 어떻게 다룰지에 관한 이데올로기적 친연성의 문제이기도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반투스탄Bantustan, 즉 흑인 주민들이 자치권 없이 거주하는 지역은 이스라엘의 많은 엘리트에게 팔레스타인에서 실행할 수 있는 모델로 영감을 주었다. 자기 나라의 나머지 지역에서 차단된 반투스탄처럼, 곳곳에 분산된 고립 지역에 ‘바람직하지 않은’ 팔레스타인인들을 고립시키려는 욕망이었다. 오늘날의 요르단 강 서안에 존재하는 165개 팔레스타인 ‘고립 지역’이 이스라엘 식민 정착촌, 이스라엘 방위군, 폭력적 정착민들에 둘러싸여 질식당하는 기원이 여기에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언어를 사용해 이스라엘의 점령을 옹호하는 행태는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최초의 민주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이스라엘은 이 소수 백인 정권과 관계를 유지하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였다. 105-6)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총리와 그의 힌두민족주의 정당인 인도인민당BJP이 지배하는 인도에서 카슈미르는 인도 정체성의 새로운 비전을 그릴 수 있는 백지나 마찬가지다. 2019년 모디 정부는 인도 헌법 370조와 35A조를 대부분 무효화하고 잠무카슈미르 헌법을 정지시켜 70년간 제한된 자치권을 누린 분쟁 지역을 거의 완전히 통제하게 되었다. 카슈미르 작가 아리프 아야즈 파레이Arif Ayaz Parrey가 내게 한 말이다. “팔레스타인에서는 땅의 상실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결국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질 겁니다) 카슈미르에서는 정체성의 상실이라는 형태로 나타나죠(언젠가 땅의 상실로 전환될 겁니다). 이런 현실에 비추어보면 두 나라의 강압적 체제는 동일한 것입니다.” 카슈미르와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정착촌은 분명 비슷한 점이 많다. 1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2019년부터 그 지역 주민이 아닌 사람도 카슈미르에서 자산과 토지를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지역의 인구 구성을 바꾸려는 시도였다. 107, 111)


인도의 엘리트들은 이스라엘의 ‘거리낌 없는 행동’을 부러워했는데, ‘이는 지난 20년간 파키스탄이 테러 집단들을 도구로 활용하는데도 인도는 핵무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처럼 마음대로 보복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좌절에서 기인한 결과’라는 말이었다. 힌두민족주의 분위기가 압도하는 것과 나란히 상호 존중도 증대했다. 힌두민족주의 준군사 조직인 민족의용단Rashtriya Swayamsevak Sangh, RSS을 창건한 지도자 마다브 사다시브 골왈카르는 나치즘 찬양자였다. 힌두근본주의와 무슬림 혐오는 인도인민당 사상의 핵심에 자리한다. 이 이데올로기의 선구자인 비르 사바르카르Veer Savarkar는 ‘무슬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가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은 나치가 ‘유대인 문제’를 해결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힌두민족주의자들은 오래전부터 종족국가ethnostate 이스라엘이라는 개념을 찬양했다(다만 그들은 유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늘날 전 세계의 극우파 사이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고가 존재한다). 108-9)


미국-멕시코 국경은 이스라엘 보안·감시 기업들의 주요 현장이 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에서 한 작업이 선발 도구로 활용된다. 이런 무자비한 입찰 과정은 매우 효과적이고, 백악관 주인이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아무 차이가 없다. 3,000킬로미터 길이의 국경을 지키는 데는 초당적인 지지가 존재한다. 이스라엘의 기술은 국경의 군사화에서 핵심적인 요소다. 감시 기술, 국경 기반 시설, 전술부대, 통합 고정탑Integrated Fixed Towers, IFT 시스템을 결합해서 이민자들이 죽음의 사막을 건너는 것을 방지하고 저지한다는 구상이다. 아메리카 원주민 활동가들은 자신들에 대한 억압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어떤 식으로 점차 연결되는지 알고 있다. 9·11 이후 미국-멕시코 국경의 환경은 국가가 군대식 통제 방식의 속도를 높이면서 이민자와 아메리카 원주민을, 관리하고 괴롭혀야 하는 위협으로 규정했다. 2021년과 2022년에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사망한 이민자 수는 최소한 750명으로, 기록적인 수치였다. 116-8)


6 휴대전화에 심어진 대중 감시


이스라엘의 감시 기구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도청망인 워싱턴 국가안보국의 경쟁자이자 동맹자다. 인력 규모로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이스라엘은 가장 가까운 동맹국을 정탐한 오랜 역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가안보국은 이스라엘과 제휴하며 데이터 채굴과 분석 소프트웨어를 그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전 미국 국가안보국의 정보 관리 빌 비니Bill Binney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다시 이 기술을 자국의 민간 기업에 넘겨준다.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이버 감시 기업인 NSO 그룹을 비롯한 이스라엘 하이테크 기업의 역할도 이런 관점에서 파악된다. 〈하레츠〉의 전 IT 담당 기자 아미타이 지브Amitai Ziv는 NSO의 정체를 밝히는 통찰력 있는 작업을 한 언론인인데, NSO의 힘은 많은 돈을 번다는 사실이 아니라 외교에 있다고 내게 말해주었다. “이스라엘이 몇몇 아프리카 나라에 사이버 감시를 판매할 때 유엔에서 그 나라들의 표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점령이 시작된 이래로 우리는 그 표가 필요하거든요.” 121) 


NSO가 오랫동안 수익성이 가장 좋은 사업을 벌여온 멕시코에서는 스캔들이 속속 터졌다. 마약 카르텔이 부패한 공무원들과 공모해서 페가수스 스파이웨어를 손에 넣어 공통의 적을 제거하는 데 사용했다. 범죄 네트워크는 부패한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어 그들이 제거하거나 감시하기를 원하는 개인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사이버 감시는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는 산업이며, NSO가 장담하기는 하지만 일단 설치된 페가수스가 법률 위반에 대해 모니터되고 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국가 부패에 비판적인 언론인들이 NSO 스파이웨어에 의해 휴대전화를 해킹당해 결국 목숨을 잃었다. 2017년에 사망한 프리랜서 기자 세실리오 피네다 비르토Cecilio Pineda Birto도 그중 한 명이다. 그가 살해되기 몇 주 전, 그의 휴대전화 번호가 멕시코 국가에 의해 페가수스 감시 대상으로 선별된 상태였다. 이 사건은 NSO의 잠재적 희생자들 중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126)


독재 정권이라면 어느 나라든 페가수스를 구매해서 배치했다. 이스라엘과 공식적 관계를 맺은 나라든 이스라엘 스파이웨어를 절실하게 원하는 나라든 모두 달려들었다. 바레인과 오만의 활동가들은 NSO 기술의 표적이 되고 있다. 르완다는 페가수스를 이용해 반정부 인사 폴 루세사바기나를 감시했다. 모로코는 페가수스를 이용해 에마뉘엘 마크롱을 비롯한 프랑스의 고위 정치인들을 염탐했다. 네타냐후의 긴밀한 동맹자인 헝가리 총리 오르반 빅토르는 페가수스를 구입해 야당 정치인들과 비판적 언론인들을 염탐했다. 아마 사우디아라비아가 NSO가 쌓은 공적의 핵심일 텐데, 아랍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국이자 미국의 긴밀한 동맹자인 이 나라는 이스라엘과 공식적 관계가 전혀 없다. 오바마와 바이든 행정부에서 백악관 고위 관리를 지낸 로브 맬리Rob Malley에 따르면 빈 살만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성가시고 짜증나는 일, 즉 공정하게 해결해야 하는 분쟁이라기보다는 극복해야 하는 문제’라고 보았다. 128-9)


사이버 무기 때문에 이스라엘 국민이 우려를 느끼지만 그에 대해 할 수 있는 실질적인 행동이 많지 않다는 모순적인 징후가 존재한다.  ‘대중은 국방부가 수출 허가를 내주는 한 이스라엘 국가에 좋은 일임이 분명하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2022년 페가수스가 이스라엘 국내의 일부 시민에게 사용된 사실이 폭로되고서야 많은 대중이 갑자기 NSO와 그 기술이 남용될 가능성에 분노를 터뜨렸다. 이스라엘의 많은 유대인이 볼 때, NSO를 비롯한 사이버 무기 제조업체는 자부심의 원천이었다. 이스라엘이 세계무대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고 테러리스트나 소아성애자들에 맞서 싸운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에 담긴 함의는 분명하다. 이스라엘이 진짜 피해자라는 것이다. 인기 웹사이트 ‘와이넷Ynet’의 한 칼럼니스트는 문제는 NSO의 기술이 아니라 정부가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있다고 주장했다. 총이 아니라 사람이 살인을 하는 것이라는 전미총기협회의 주문呪文을 떠올리게 하는 주장이었다. 139)


음침한 사이버 산업에서 일할 기회는 비슷한 군 경력의 이스라엘인들에게 막대한 부를 가져다주고 있다. 2019년 아랍에미리트에서 채팅 앱 투톡ToTok이 출시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수백만 명이 앱을 다운받았다. 하지만 이 앱은 사실 스파이웨어였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민간 기업을 활용해 자국 시민을 모니터하기 위한 감시 시스템을 고안해온 페르시아 만의 수많은 억압적 국가에서 나온 최신 툴이었다. 그 배후에 있는 다크매터는 아랍에미리트 기업으로, 전 이스라엘 정보 관리와 미국 국가안보국 직원을 여럿 거느리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대통령 선거운동에서 활용한 영국의 컨설팅 기업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mbridge Analytica의 최고경영자 알렉산더 닉스Alexander Nix는 이스라엘인들을 활용해 정치적 적수를 함정에 빠뜨린 사실을 인정했다. 지금은 없어진 사이그룹Psy-Group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 회사와 비슷한 다른 회사들은 ‘민간 모사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143-4)


7 왜 팔레스타인인을 좋아하지 않을까?


〈워싱턴 포스트〉는 2021년 5월에 놀랍도록 솔직한 기사를 헤드라인으로 내보냈다. ‘페이스북의 AI는 미국의 흑인 활동가를 대하듯이 팔레스타인 활동가를 다룬다. 그냥 차단해버린다.’ 이중 기준이 적용되는 게 분명했다. 소셜 미디어 개선을 위한 아랍 센터인 함레7amleh에 따르면 2021년 5월 소셜 미디어에서 히브리어로 이뤄진 공개 대화 109만 건 중 18만 3,000건이 아랍인에 대한 선동과 이스라엘 유대인의 인종주의로 채워졌지만, 이 콘텐츠는 삭제되지 않았다. 아마 가장 노골적인 검열은 페이스북이 소유한 인스타그램이 이슬람의 3대 성지인 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에 관한 많은 게시물을 삭제한 사건일 것이다(나중에 일부분만 복구되었다). 2021년 5월 팔레스타인인 수백 명이 사원에서 기도하는 순간에 이스라엘군이 사원을 습격했을 때 벌어진 일이다. 이 장소가 ‘미국 정부의 제재를 받는 조직의 이름’이었기 때문에 페이스북이 ‘폭력이나 테러 단체’와 연관된 곳으로 잘못 지정한 것이었다. 151-2)


2021년 중반에 세계 곳곳의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갑자기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예루살렘 기도단Jerusalem Prayer Team’이라는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르거나 팔로우를 시작한 것을 발견했다. 7,500만 팔로어를 거느린 이 페이지는 세계 최대 규모의 친이스라엘 페이스북 페이지였다. 기독교 시온주의자이자 친트럼프 활동가인 마이크 에번스Mike Evans가 운영하는 이 페이지가 추구하는 목표는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드높이는 것이었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메타는 ‘의도하지 않은 편향’ 때문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히브리어 게시물보다 아랍어 내용을 훨씬 많이 삭제했다. 아랍어 구사자의 부족, 조직 자체의 편향, 결함 있는 머신러닝이 그 원인이었다. 소수집단의 우려에 립서비스를 해주는 것은 기껏해야 불편한 일이었다. 다국적 억압의 시대에 현대 하이테크 산업의 지배자들로서는 이스라엘과 협력하는 것이 손쉬운 선택이었다. 정치적 반발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153-5)


요르단 강 서안에 있는 비르자이트 대학교 경영경제학부 부교수인 팔레스타인 학자 아말 나잘Amal Nazzal은 보고서에서 유튜브가 팔레스타인 콘텐츠에 대해 어떤 식으로 지역과 언어 차별을 두루 활용하는지 보여주었다. 아랍어 영상은 내용이 어떻든 신고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특히 ‘하마스’, ‘이슬람 성전聖戰’, ‘헤즈볼라’ 같은 단어가 포함되어 있으면 여지없이 신고를 당했다. 요르단 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이용자인 하메드는 유튜브 채널 ‘팔레스타인 27k’를 만든 사람인데, 자신이 올린 영상 하나가 삭제된 것을 발견했지만 똑같은 영상을 유럽인 친구에게 보내 업로드하게 하는 실험을 하자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콘텐츠를 현금화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쳤다. 이런 ‘디지털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의 소셜 미디어 기업들이 활용하는 새로운 형태의 통제다. 근대에 중동과 북아프리카 사람들을 바라보던 서구의 차별적인 시선과 별다를 바가 없다. 아랍인들은 다시 한 번 당연히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159-61)


맺는말│공존할 것인가, 돌연변이가 될 것인가


이스라엘은 여전히 포위 상태에서도 번성하는 민주주의이자 극단주의에 맞선 싸움의 핵심 동맹자로 규정된다. 주요 방위 수출국이라는 이스라엘의 지위는 전설과도 같다. 지구상의 수많은 나라에 군사 원조와 무기, 훈련을 기꺼이 제공하는 나라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드문 경우에만 이런 이미지가 깨진다. 국제앰네스티와 휴먼라이츠워치는 이스라엘이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고 비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시, 드론, 열렬한 종족민족주의 등에서 글로벌 리더라는 이스라엘의 지위는 조만간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은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경제적 대가를 치를 필요가 전혀 없다. 어느 편인가 하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이는 전쟁은 특히 유럽에서 세계적 무기 경쟁을 부추길 것이다. 드론부터 미사일과 감시 기술, 휴대전화 해킹 툴에 이르기까지 가장 치명적인 공격용·방어용 무기에 훨씬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고조되는 투자의 직접적 수혜자다. 169-70)


그저 지구상에서 가장 침투력과 살상력이 강한 몇몇 군사 장비를 원하는 나라들을 넘어서 이스라엘이 호소력을 계속 확대하길 바라는 것은 종족민족주의의 열정을 공유하는 국가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런 나라들은 엄격한 종교 생활을 자랑스럽게 옹호하며 다문화주의와 자유의 가치에 반대한다. 이 나라들은 사회적으로 관대한 좌파가 전통적 이상을 훼손하고 그 대신 인종, 젠더, 결혼, 섹슈얼리티에 관한 도덕적으로 혼란스러운 관점을 내세운다고 비난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치학자 요람 하조니Yoram Hazony는 자신의 전망을 설명한 바 있는데, 이스라엘 유대인의 상당수가 이런 견해를 공유한다. 그는 미국은 기독교도가 다수인 기독교 국가이며, 따라서 기독교도가 나라의 법률과 사회적 규칙을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수집단은 ‘별도 취급’을 받을 수 있지만, 어쨌든 다수집단이 지배적이어야 한다. 비슷한 부류의 다른 나라들에도 이스라엘의 경험이 계속 유의미하려면 극단적 무력과 감시, 기술을 성취해야 한다. 171)


이스라엘은 수많은 나라에 숱하게 많은 방위 장비를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자국의 끝없는 점령에 대한 정치적 반발을 차단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NSO 그룹의 휴대전화 해킹 툴 페가수스를 비롯한 수많은 하이테크 무기를 판매하는 일종의 무기 정책은 권위주의 국가든 민주 국가든 상관없이 동맹과 우방을 보장해준다.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국가라고 자부한다. 이 전략이 지금까지 작동한 것은 이스라엘이 두려워하는 것이 단지 제2의 러시아라는 딱지가 붙는 사태뿐이기 때문이다. 외국 영토를 침략, 점령해서 엄청난 비난을 받는 것 말이다. 인권을 침해하는 이스라엘을 고립시키기 위한 거대한 국제적 캠페인이나 억압적 국가들에 장비를 판매하는 이스라엘 무기 회사를 표적 겨냥한 법적 소송이 벌어지지 않는 한, 이 산업은 계속 승승장구할 것이다. 막대한 이윤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도덕은 이 산업과 아무 관계가 없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실험실이 빛을 잃으려면 비난이 가해져야 한다. 173-4)


그다지 큰 환호를 받지는 못하지만, 많은 기관 투자자가 이스라엘의 인권 침해에 공모하는 것에 우려를 표하면서 이스라엘 기업들에서 투자를 회수하기 시작하고 있다. 자산 규모 950억 달러로 노르웨이 최대의 연금기금인 KLP는 2021년 요르단 강 서안 정착촌에서 ‘용인할 수 없는 수준으로 인권 침해 위험을 높인다’는 이유로 16개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했다. 같은 해에 뉴질랜드의 슈퍼펀드는 다섯 개의 이스라엘 은행이 보유한 지분 650만 달러를 매각하면서 ‘제외된 기업들이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촌 건설에 프로젝트 금융을 제공한다는 믿을 만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식으로 물결이 바뀔 수 있다. 2021년 ‘책임 있는 투자자Responsible Investor’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투자 매니저의 67퍼센트가 조만간 인권 문제가 핵심적인 투자 고려 사항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중국이나 미얀마–또는 팔레스타인–에서 억압과 공모하는 기업들에 투자하는 것은 이제 점점 옹호할 수 없는 일이 되고 있다.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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