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냐 공산주의냐

주말 북리뷰에서 새로운 관심도서가 눈에 띄지 않아서(리처드 슈스터만의 <몸의 의식>(북코리아, 2010) 같은 책을 나는 어제 손에 넣었다) 차라리 이번주 '장정일의 책속 이슈'를 스크랩해놓는다. 지젝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를 다루고 있어서다. 나도 '사회주의냐 공산주의냐'란 서평을 쓴 적이 있지만, '책속 이슈' 곧 책의 핵심을 잘 짚어주고 있다.  

 

한겨레(10. 11. 05) '공갈 자본주의’ 대신 공산주의의 새출발을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은 2008년 금융위기의 해결책을 놓고 대립했다. 금융 파국을 방지하기 위해 연방준비은행이 7000억달러나 되는 구제금융을 민간 금융사에 지원하려 하자, 공화당 의원들이 구제금융은 금융사회주의이며 비미국적이라고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오바마와 민주당은 초당적 협력을 강조하며, 끝내 월스트리트에 세금을 쏟아부었다.

슬라보예 지젝은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창비, 2010)에서 그때 미국에서 벌어진 사회주의적 조처의 목적은 “빈자가 아닌 부자를, 돈을 빌리는 자들이 아니라 빌려주는 자들을 돕는 것”이었다면서, 자본가들이 그토록 질색을 하는 ‘사회화’가 어떻게 자본주의 시스템을 구원하는 일에 복무할 때는 아무 거리낌없이 용인되고, 또 어떻게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도 가능한지를 명료히 분석한다.

공화당 의원들이 구제금융을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맹비난했던 배면에는, 자본주의 체제에는 근본적인 결함이 없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심리전적인 목적이 있다. 즉 그들은 구제금융을 극렬히 반대함으로써 금융위기는 체제의 근본적인 결함 때문이 아니라 그저 지나치게 느슨한 법적 규제와 거대 금융기관의 타락이었을 뿐이라는, 흠결 없는 자본주의 체제의 신화를 효과적으로 선전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는 이런 서사를 통해 점차 자연이 되어 간다.

반면 구제금융에 동조한 좌파들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메인스트리트(중산층)의 복지는 번영하는 월스트리트(금융자산)에 의존한다”는 사실에 속수무책이었고, 월스트리트를 걷어차면 실제로 타격을 입을 사람들이 평범한 노동자라는 것을 분명히 안다. 이런 사실이 가르쳐 주는 것은 자본주의를 살리기 위해 언제라도 사회주의 구원 투수를 투입할 수 있는 우파는 물론이고, 좌파마저 그런 자본주의의 공갈을 자연스러운 질서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압도적 자연화’가 이루어진 속에서는 투기로 무일푼이 된 은행을 국고로 지원하는 것을 당연시하면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쫓겨나는 공장을 국영화하는 건 비합리적인 것으로 믿게 된다. 이렇듯 자본주의는 공황이 발생할 때마다 자기 이데올로기의 기본적 전제를 반성하기보다 금융 감독과 같은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강화되고, 매번의 공황을 통해 중산층은 자본주의 질서에 더욱 길들여진다. 이게 사실이라면, 시장에서 참패하고 악마화(강제수용소화)된 국가 악몽으로 막을 내린 공산주의는 왜 매번 기본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숱한 진보적 인사들은 이 시대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인 양 하지만, 현실은 사회주의 대 공산주의의 대결이며, 진정한 진보인사는 공산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지젝은 말한다. 오래전에 사회주의 정책의 기초를 완료한 서구 유럽은 물론이고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공공연히 사회주의 정책을 쓸 수 있는 미국의 예, 그리고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아시아적 온정주의’로 위장된 중국이 보여주듯이 전세계는 이미 사회주의화되었다. 그러나 기뻐할 이유가 없는 것은 그 사회주의가 자본을 위한 사회주의이며, 자본주의는 가중되는 심각한 체제 모순 때문에 그만큼 강력한 국가의 권위(법·경찰)와 민중을 달랠 사회주의 복지정책마저 수용해 나간다.

세계는 영구혁명의 혼이 제거된 사회주의와 재장전된 공산주의의 싸움이라고 단정하는 이 책은, 공황과 재출발 사이를 왕복달리기 하는 자본주의의 희극적인 반복을 보면서 공산주의의 새 출발을 촉구한다. 그게 내가 읽은 이 책의 핵심이다. 지젝이라는 성체(聖體)를 뜯어 먹는 방법은 제각기이겠지만, 지젝의 거시기를 뽑아 내시로 만들고 비역까지 하는 일은 아주 손쉽다. 그의 급진주의적 정치이론은 모르쇠 하면서, 정신분석이나 문화이론의 가두리에 그를 감금하는 것이다.(장정일_소설가) 

10. 11. 06. 

 

P.S. '공갈 자본주의'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한 독자라면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살림, 2008)과 홍기빈의 <자본주의>(책세상, 2010),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 2010)를 참고해볼 수 있겠다. 장하준 교수의 책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유시장'을 문제(불행)의 원인으로 지목한다는 점에서 지젝과는 관점이 다르지만, 신자유주의 비판서로서 여전히 계몽적 가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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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1-06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 작가 고어 비달이 미국 경제 체제를
"가난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자유 기업,
부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주의" 라고 했다는데,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라는 것도 있군요!


로쟈 2010-11-07 20:47   좋아요 0 | URL
'그들만의 사회주의'(자기들끼리 해먹기)라서 문제인 것이죠...

2010-11-06 1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7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주 관심도서는 어제 구입한 W.J.T. 미첼의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그린비, 2010)이다. 부제는 '이미지의 삶과 사랑'. 저자는 시카고대학에서 영문학과 미술사를 동시에 강의하고 있는 드문 경력의 소유자로 대학원 시절 내러티브 이론에 관한 편저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이다. 국내에는 <아이코놀로지: 이미지, 텍스트, 이데올로기>(시지락, 2005)가 소개됐었다.

 

두번째 관심도서는 에드워드 윌슨의 <바이오필리아>(사이언스북스, 2010). 저명한 개미학자이자 사회생물학의 창시자가 펼치는 '생명사랑'론이다. <생명의 편지>(사이언스북스, 2007), <생명의 다양성>(까치글방, 2005)과 같이 '세트'로 묶을 만하다. 바이오필리아 3종 세트다.

 

역사분야쪽으론 앙리 피렌의 <마호메트와 샤를마뉴>(삼천리, 2010)가 있다. 소개에 따르면, "유럽 중세의 개막을 아주 새롭고 독창적인 관점에서 해석한 책이다. 일반적으로 '서로마제국의 몰락과 게르만의 침입'을 통해 5세기 무렵 고대에서 중세로 이행했다고 보고, 유럽의 기원을 실질적으로 게르만족의 이동과 로마제국의 해체 과정에서 생겨난 개념으로 본다. 이런 관점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저작이 바로 <마호메트와 샤를마뉴>이다."   

역자는 이렇게 거든다. "<마호메트와 샤를마뉴>의 역사학적 가치는 '폭발적인 연구를 유발한' 점에 있다. “피렌이 없었더라면 중세 초기의 경제사와 관련된 역사서술은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는 과장된 것이 아니다. 피렌 이후의 연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 책은 필독서이다. 중세 초기의 많은 연구서들이 피렌의 저서를 출발점으로 한다." 즉 중세초기 연구의 기폭제가 된 저작이라는 것. 그 성격이 문제적인 것인지, 고전적인 것인지는 좀더 확인해봐야 알겠다. 앙리 피렌(피렌느)의 책으론 <중세 유럽의 도시>(신서원, 1997)이 출간됐었다. 샤를마뉴에 대해선 발췌역이지만 아인하르트의 <샤를마뉴의 생애>(지만지, 2008) 등도 소개돼 있다.  

 

끝으로 남성중심적 고고학의 편견을 깨는 책, <누가 베이컨을 식탁으로 가져왔을까>(알마, 2010). 원제는 '보이지 않는 성'이다. 그건 물론 여성을 가리킨다. "선사시대 사냥은 남자들만의 세계이며 여자들은 기껏해야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식물을 채집했을 것이라는 게 그동안의 통념"이었고 저자들은 그걸 깨뜨리고자 한다고. 덕분에 떠올리게 된 책은 로잘린드 마일스의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동녘, 2005). "최초의 여성이 등장한 때부터 현대까지 세계의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여성의 시각으로 다시 쓴 세계사."이다. '보이지 않는 성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까... 

지방으로 강연을 가기 전에 급하게 몇 자 적는다. 몇 권만 꼽았을 뿐이지만, '전업'이 아닌 이상 이 책들을 다 읽을 순 없고, 일부는 눈요기로 때워야 할 형편이다(<바이오필리아>와 <마호메트와 샤를마뉴>는 아직 구입하지 못했다). '식탁'으로 가져온 책이라고 해서 다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10. 1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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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케빈 2010-11-05 11:04   좋아요 0 | URL
에드워드 윌슨의 바이오필리아 발행연도가 오기되었어요. 2010년인데..

로쟈 2010-11-05 11:11   좋아요 0 | URL
네, 수정했습니다.

침경 2010-11-05 11:10   좋아요 0 | URL
앙리 피렌은 임지현 선생이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의 맺음말에서 언급하며 역사적 시각을 호평했던 학자였고 그 인상이 강해서 관심을 갖게 된 저자인데, <중세 유럽의 도시>와 같은 역자의 번역으로 주요 저작이 한권 더 나왔군요.. 소식 감사합니다^^

로쟈 2010-11-05 11:11   좋아요 0 | URL
어디서 이름을 들어봤다 했더니 그 책에서 읽었네요.^^;
 

어제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에 관한 강의를 하면서 릴케에 관해서도 언급할 일이 있었다. 그건 자서전에도 나오지만 파스테르나크가 어린시절에 릴케를 직접 본 적이 있어서다. 1910년 릴케는 연인 루 살로메와 함께 두번째 러시아 여행에서 톨스토이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파스테르나크는 그때 두 사람이 기차에 오르는 모습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했다. 그의 나이 열살 때이다.   

<말테의 수기>(펭귄클래식, 2010) 새 번역본이 나온 걸 보니 다시금 두 사람에 대해서 떠올리게 된다. <말테의 수기>는 내가 스물여섯 살 때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의 하나다.스물여덟 살이던 말테 부릭게는 이렇게 적었었다.  

그의 공간: "나는 여기 나의 조그만한 방에 앉아 있다. 부릭게, 이 스물여덟이 돼버린 나라는 인간은 아무에게도 알려진 바 없다. 나는 이런데 앉아 있기는 하지만 전혀 존재가 없다. 그렇지만 그 존재 없는 인간은 무엇이든 생각해보려고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5층의 이 낡은 방에서, 그리고 파리의 회색 빛 오후의 하늘 밑에서..."   

그의 시: "아아, 시를 썼다고는 하지만, 젊어서 쓰는 시라는 것이 별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시는 언제까지나 끈기있게 기다려야만 될 것이다. 시는 감정이 아니라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의 현실: "집에 앉아 오후의 따뜻한 빛줄기를 바라보고 옛날에 살았던 처녀들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서 시나 소설을 쓴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인간의 운명이냐. 나도 이 세상 어느 곳에 집을 갖게 된다면 반드시 시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그러나 나의 생활은 정반대였다. 나 자신은, 딱한 일이지만, 은신할 수 있는 지붕조차 없으며 비는 사정없이 내 눈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그의 생활: "나는 홀로 아무것도 가진 것도 없이 세상을 헤매고 있다. 이것이 대체 무슨 생활이란 말인가? 집도 없고 상속받은 물건도 없고 개도 없다... 나는 늙는다고 하는 것을 즐거운 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삶: "나라는 인간은 아직 나이 어리고 보잘것없는 외국인에 지나지 않지마는, 그러나 이 부릭게로서는 5층 꼭대기 하숙방에 앉아야만 되고 써야만 될 것이다. 그렇다, 나는 써야만 되겠다. 쓴다고 하는 것, 그것이 모든 것의 종결이 될 것이다... 나는 아주 많이 쓰고 싶다."  

나도 스물여덟 살이던 해 일기에다 "언젠가는 나도 아주 많이 쓰고 싶다"고 적었었다. 지금이 그 '언젠가'인가? 뭔가 더 많이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이 지나기 전에 <말테의 수기>를 한번 더 읽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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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3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3 0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5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주로 책과 서가를 소재로 작품활동을 해온 임수식 작가의 전시회 '책가도'가 11월 3일(수)-11월 14일(일)까지 종로의 갤러리진선에서 열린다. <책을 읽을 자유>(현암사, 2010)에 들어가 있는 사진들이 모두 그의 작품이어서 개인적인 인연도 없지 않다. 내주 오후엔 오랜만에 잠시 전시회 구경을 가보려 한다. 간단한 단신을 스크랩해놓는다. 

아시아투데이(10. 10. 28) [투데이갤러리]임수식의 '책가도060' 

임수식 작가의 작품에는 색깔과 크기가 다른 책들이 다양한 형태로 책장에 꽂혀져 있다. 그가 꼼꼼하게 그려낸 '책가도' 한 개인이 산발적으로 읽은 책들이 결국 현재 그의 모습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의 작품은 책에 대한 의인화를 시도한 것이기도 하다. 책장에 가로놓인 책들은 장기간 누워서 잠에 빠져있기도 하고, 고단하다는 듯 기대어 서서 피곤함을 내비치기도 한다. 어떤 책들은 숨 막힐 듯 꽉꽉 붙어사는 한편, 호화롭게 한적함을 만끽하는 책들도 있다. '책가도'의 책들은 인간 생애의 다양한 단면을 선보인다. 갤러리진선(02-723-3340)  

10. 1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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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2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박균호 2010-11-02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알겠습니다...그렇군요...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오는 11월 13일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분신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때맞춰 각 언론마다 지난 40년의 세월과 현재의 노동현실을 재조명하는 특집기사을 마련하고 있다(경향신문의 '왜 다시 전태일인가' 연재 참조). 이 40주년의 의미를 되새겨볼 만한 책 세 권에 대한 리뷰기사를 모아놓는다(<서울과 노동시>(실천문학사)는 미간이다).      

경향신문(10. 11. 02) 노동자 피땀으로 세워진 빈곤과 차별의 도시 서울

“나는 평화시장의 일급 미싱사/ 손이 안 보이도록 옷을 만들지…이 옷을 누가 입을까 나는 관심이 없어/ 죽어라 뺑이치며 미싱만 밟을 뿐/ 이 옷이 얼마에 팔릴까 나는 몰라/ 하루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밀려드는 잠 쫓으려 타이밍을 먹고/ 입술을 깨물고 허벅지를 꼬집어 옷을 만들지/ 미싱을 타는 지금은 철야 이틀째”(김해자 ‘미싱사의 노래’)

1970년 11월13일 청계천 평화시장의 재단사였던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몸에 불을 붙였다. 전태일의 죽음은 노동운동에 불을 붙였고, 70년대 이후 많은 노동시들이 쏟아져나오게 된 모태가 됐다.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실천문학사에서 일제 시대인 192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서울을 배경으로 한 노동시들을 한데 모았다. 청량리와 서울역, 평화시장과 구로공단, 이태원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도시 공간이 노동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노동시를 통해 바라보는 작업이다. 실천문학사는 오는 13일 ‘서울과 노동시’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같은 제목의 시집을 출간할 계획이다.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임화부터 <노동의 새벽>의 박노해, 최근 시집을 출간한 송경동 시인까지, 192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90년에 걸쳐 서울을 배경으로 창작된 노동시 300여편이 수록됐다.

1920년대부터 경성을 배경으로 한 도시빈민과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다룬 노동시들이 본격적으로 창작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식민지 수도 경성은 근대적 도시로 변화하고 있었으며 한쪽에서 거대한 건물이 세워지고 새로운 거리가 생겨나는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는 가난한 농촌을 떠나 도시로 올라온 도시빈민들이 토막을 짓고 살았다. 이 시기에는 ‘카프’를 중심으로 한 작가들이 ‘프로시’라는 이름으로 프롤레타리아적 입장에서 시를 창작했다. 문학평론가 이성혁은 “노동시와 경성의 만남은 농촌의 빈곤화와 경성의 근대화 과정이 중첩되면서, 경성에 모여든 농촌 출신 빈민들의 현실을 드러내는 데서부터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 시가 임화의 ‘네 거리의 순이’, 백철의 ‘날은 추워오는데’, 오장환의 ‘수부’ 등이다.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는 노동시의 ‘침체기’였다.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박정희 정권이 집권하면서 진보적 목소리는 억압당했고 노동시들은 ‘서랍속의 불온시’로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많은 시인들이 노동자와 도시를 둘러싼 다양한 모습들을 시로 표현해냈다. 이시영은 ‘후꾸도’에서 도시에서 좌판을 벌여 먹고 사는 사내의 과거로 독자들을 끌고 들어가 농촌공동체의 따뜻함을 도시의 삶과 대비시킨다. 농촌과 도시라는 긍정과 부정, 낙관과 비관으로 자리잡는데, 이는 정호승의 ‘마지막 편지’에서도 드러난다. 또한 박노해의 ‘이불을 꿰매며’, 정희성의 ‘어머니, 그 사슴은 어찌 되었을까요’는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의 차이와 차별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 작품으로 꼽힌다. 노동의 생산성과 활력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도 쓰여졌다. 김광규는 ‘쓰레기 치는 사람들’에서 쓰레기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존재들로 노동자들을 형상화했고, 김지하는 ‘서대문 101번지’에서 흙과 노동의 싱그러움을 노래했다. 문학평론가 박수연은 “70년대의 노동시들은 직업 시인들에 의해 쓰여지며 미학적 완성도를 보여주지만 노동이 발휘할 수 있는 힘과 성과에 대해서 침묵하며 정치·사회적인 것과 계급노동자의 얽힘에 대한 분석이 결여돼 있다”고 분석했다.

 

1980년대에 들어와 노동시는 ‘르네상스’를 맞는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1982),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1984)이 이 시기에 출간됐다.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1980년대는 군사정권의 파시즘 체제와 자본의 무한 확장이 결속하여 만들어낸 시대”라며 “이를 심층에서부터 비판한 것이 노동시”라고 말한다. 박노해, 백무산이 대표 주자였으며 박영근도 “노동이란/ 굶주림의 추억으로부터 사슬의 두려움으로부터 일어나/ 사람의 일을 하는 것이다/ 사람의 땅에 서는 것이다”(‘노동2’)라고 읊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 황규관, 송경동, 문동만, 김사이 등의 시인들은 도시의 불모적 삶과 노동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담아낸 시편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송경동은 “아침이면 다시 지하방에서 솟아오른 사람들이 공단으로 피와 땀을 팔기 위해 활기차게 넘던 그 고가, 그 길밖에 없었던, 젊은 날들을 다 보낸, 지금은 테크노 디지털 밸리가 된 굴뚝 공단에 흉물처럼 남아 있는, 나처럼 남아 있는, 나는 아직도 그 불우하고 불온했던 삶의 고가에서 내가 잊혀질까 두렵다”(‘이 삶의 고가에서 잊혀질까 두렵다’)고 노래했다. 안현미는 “여상을 졸업하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높은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거짓말을 타전하다’)며 노동과 시쓰기를 병행해온 여성 시인의 성장통을 선명하게 담아냈다. 또한 최근 하종오 등의 시인들은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고 있는 사회 변화를 반영해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을 포괄한 시편들을 선보이고 있다. 유성호는 “서울에서 쓰여진 노동시편들은 길음동, 이태원, 평화시장, 화곡동, 구로동, 아현동을 돌면서 고되고 핍진한 노동 현실을 일관되고 견고하게 증언해왔다”고 평했다.

<서울과 노동시> 편집에 참여한 문학평론가 고명철은 “노동자로서의 계급 의식이 선명하지 않았을 당시의 서울, 노동자 계급의 명확한 인식을 하고 있었을 무렵의 서울, 계급에 대한 인식이 유연해진 서울, 계급 자체에 대한 인식보다 계급이 갖는 욕망에 주목해야 하는 서울 등 노동자와 서울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며 “서울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삶의 양상과 욕망의 풍경을 통해 서울을 과장되지 않게 정직하게 응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이영경 기자)  

문화일보(10. 11. 01) [AM7] ‘88만원 세대’ 노동의 의미를 묻다 

올해 11월13일은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을 사실상 최초로 주도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평화시장에서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지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근로 기준법은 노동자가 인간다운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최저의 기준이다. 그러니 전태일의 외침은 노동자도 인간이라는 위대한 선언이었다.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 등 네 인문사회과학 출판사가 힘을 합해 우리 시대의 전태일을 응원하기 위한 ‘너는 나다’(손아람, 하종강 외)라는 책을 펴냈다.

우리나라는 OECD에 가입한 나라들 중에서 저임금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영광스럽게도’ 1위다. 1,600만 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절반이 넘어선 유일의 나라다. 1990년대에 비정규직을 많이 늘렸던 나라들이 2000년대 들어 장기적으로 국가경제에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비정규직 수를 점점 줄이면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도 줄여가고 있지만 우리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불명예 1위는 또 있다. 연간 노동 시간, 성별 임금격차, 인구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 수 등도 모두 1위다. 40년 전 전태일은 하루 열다섯 시간의 중노동을 줄이기 위해 투쟁했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세계 10위를 자랑할 정도가 된 지금, 젊은이들은 노동시간을 더욱 늘리기 위해 투쟁한다. 청년 실업자가 100만 명을 넘어선지 오래고, 전체 노동자 가운데 청년층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은 여전히 30%대다. 전국 600여 개의 편의점을 조사해보니 66%가 넘는 곳에서 4110원의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다’는 소리를 일상적으로 들어야 하는 청년들이 편의점이나 할인마트의 ‘알바’를 동시에 여러 개 뛰어도 적자인생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니 몸 혹사를 자처하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임금에다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는 20대 중반의 청년들이 등장해 개인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생존조차 힘겨운 사회적 구조를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다. 학점, 자격증, 토익, 자기계발, 외모 등에 어떤 세대보다 열심이지만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열에 아홉은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할 것인가라는 ‘사치스런(?)’ 고민이 아닌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전태일의 후예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공론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이 책은 이 시대 노동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고 있다.(한기호_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Weekly경향(10. 11. 02)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펴낸 엄기호씨 

<이것은 왜 청춘이…>는 문화인류학 강사인 엄기호씨(39)가 덕성여대·연세대 원주캠퍼스에서 강의하면서 학생들과 20대의 삶, 즉 정치와 경제, 가족과 연애, 돈과 소비 등을 토론하고 공유한 기록이다. 20대를 다룬 책은 많다. <88만원세대> 이후 꽤 많은 ‘20대’를 다룬 책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런데 왜 또 20대일까. 



책을 쓴 이유는.
“나 역시 그동안 출판된 20대, 대학생에 대한 담론 대부분을 섭렵했다. 솔직히 나는 그 ‘20대 담론’이 불온하다고 생각한다.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 20대는 이렇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그 사람들, 그리고 그 20대는 도대체 누구냐는 것이다. 이를 테면 지금의 20대가 소비지향적이 되었다든지, 탈정치화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학교에서 강의하면서 내가 만나본 학생 중에서 이를 테면 G세대로 호명되는 그 20대는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누구냐는 것이 내 문제의식이다.”

비판의 대상에는 <88만원세대>도 포함되는가.
“<88만원세대>가 훌륭한 책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돌려서 생각해보자. 왜 갑자기 88만원세대가 사회문제가 되었나.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과거에는 잘 먹고 잘 살았던 애들이 못살게 되었기 때문 아닌가. 사실 명문대를 제외하고 지방대는 1997년 IMF 이전에도 88만원세대다. 부당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실제의 보편적 대학생들은 각종 세대론에서 묘사되고 있는 그 20대와 다르다는 건가.
“이를 테면 20대는 돈 귀한지 모르고 소비지향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건 부모님에게 돈을 받아 쓰는 조건에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지금 대학생은 일부 잘사는 집을 제외하고 다 아르바이트를 한다. 학비도 워낙 비싸니까 부모가 주는 돈으로 감당 못한다. 생활비도 높다. 아주 기본적인 휴대전화나 교통비만 하더라도 훌쩍 10만원이 넘어간다. 그렇다고 그 학생들에게 휴대전화도 갖지 말고 버스도 타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20대는 항상적 빈곤상태에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내 문제의식은 이것이다.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요즘 애들’은 누구냐는 것이다. 불온하다고까지 느끼는 것은 애들을 질타하는 목소리다. ‘우리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너희는 왜 그러냐’는 건 자기네들 살고 있는 삶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처럼 쓰는 것이다. 제대로 비교하려면 지금 쟤네가 어떻게 사는지 비교해야 하지 않나. 나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기들(20대를 비난하는 윗세대)도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면 솔직하게 각자가 어떻게 지금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는지 드러내야 한다. 서로가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그 다음에 그렇다면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가 논의될 수 있다.” 

10. 11. 02.  

 

P.S. 벌써 오래전 영화가 돼버렸는데(영화 촬영 장면을 직접 보기도 했건만)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의 한 장면을 찾아봤다. 이 영화의 각본은 당시 조감독이던 이창동 감독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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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03 09:40   좋아요 0 | URL
사회가 그때나 지금이나 불공정하긴 매 한가지라서가 아닐까요?

자꾸때리다 2010-11-03 17:39   좋아요 0 | URL
20대는 돈 귀한지 모르고 소비지향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여전히 유효한 말 아닌가요? 다만 유복한 가정 아이는 부모 카드로 핸드백 사고 돈 없는 아이는 뼈빠지게 알바해서 핸드백 사고... 소비지향이라는 건 변함 없죠. 한 사람의 20대로서 20대 개x끼론은 맞는 것 같습니다. 절망적이게... 그게 20대 자체의 문제이건 486의 탓이건...

커뮤니티활동시 2010-11-03 19:44   좋아요 0 | URL
소비 지향적인 것은 다분히 20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되네요...뼈빠지게 알바해서 핸드백을 산다기보다 오히려 생활비 학비 대는 데도 급급한 게 문제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