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나티 고진의 <트랜스크리틱>(한길사, 2005)의 '제1부 칸트'를 지난번에 이어서 계속해 읽으며 정리해본다, 아니 읽은 걸 정리해둔다. 제1장의 2절 '문예비평과 초월론적 비판'의 내용을 따라가 보려고 하는데, 고진은 어떤 '새로운' 주장을 제기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칸트에 대한 '교과서적인' 정리부터 챙겨두자. 서양근대철학회 편 <서양근대철학>(창비, 2001)에서 칸트에 관한 장의 한 대목이다(아마 다른 서양철학사들에서의 정리도 엇비슷할 것이다).

 

"<순수이성비판>이 순수이론적 이성에 대한 고찰로서 진리(眞)의 인식 문제를 다루고, <실천이성비판>이 도덕(善)의 실천문제를 논한 것이라면, 남은 문제는 이론과 실천, 현상세계와 이념세계는 서로 어던 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예술에서의 미적 판단(美)과 자연의 합목적성의 문제로 집약되어 1790년에 출간된 <판단력비판>에서 논의된다. 이 세 비판서는 인간의 이론적 인식과 도덕적 실천 그리고 감정과 정서를 다룸으로써 진․선․미 또는 인간의 인식과 의지와 감정의 세 영역을 포괄적으로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357-8쪽)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것으로 고진이 제기하는 문제는 그러한 세 영역의 구분이 칸트의 비판 이전이 아니라 이후에 정립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칸트의 세 비판은 각기 과학 인식, 도덕, 예술(과 생물학)을 대상으로 한다. 그리고 칸트는 각 영역의 특이성과 그것들의 관계구조를 밝힌다. 그러나 칸트 이후의 사람들이 잊어버린 것은 그런 구분이 원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칸트의 ‘비판’으로 발견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칸트 이전과 이후에 과학 인식, 도덕, 예술 등의 구분은 근본적으로 변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구분에 기초해서 칸트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구분 자체를 초래한 칸트의 ‘비판’을 읽어야 한다.”(74쪽)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은 영역본에 "One should read the Kantian critique that itself created the categorization."라고 돼 있다. 내가 읽기에 이 문장은 "우리는 그러한 구분(범주)를 창조해낸 칸트의 비판 자체를 읽어야 한다" 정도의 뜻이다. 고진의 논점을 다시 확인하면 이렇다: 칸트가 과학, 도덕, 예술의 관계를 명시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칸트가 제1비판, 제2비판에서 드러낸 ‘한계’를 제3비판에서 해결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칸트가 드러낸 것은 이들 셋이 구조적인 고리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현상, 물자체, 초월론적 가상이 그 가운데 어느 하나를 제외해도 성립하지 않는, 라캉의 비유로 말하자면 '보로메오의 고리'를 이룬다는 것과 대응하고 있다.”(75쪽) 

 

라캉의 '보로매오의 고리'는 흔히 ‘보로메오의 매듭’으로 번역되는 것이다.  상상계(I)와 상징계(S), 그리고 실재계(R)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로 엮어져 있다는 걸 보여주는 모델. 칸트에게서 감성과 오성, 그리고 상상력(구상력) 간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는 것인데, 만약에 그렇다면, 칸트의 '비판'은 순차적인 과정을 통해서 '마침내' 제3비판에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순수이성비판>에서 이미 완결을 본 것이 된다. 이에 착안하여 고진은 <순수이성비판>에서 <판단력비판>의 문제틀을 독해/확인하고자 하는 것. 그렇다면, <판단력비판>과 마찬가지로, <순수이성비판>의 기원 또한 예술의 문제에 놓여 있다.

"칸트의 '비판'은 애초에 예술의 문제에서 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칸트의 비판이 어디서 왔느냐에 대해서는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다양한 어원적 탐색이 이다. 하지만 어원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흔히 가까운 기원을 은폐한다. 오히려 나는 칸트의 비판(critique)은 말 그대로 비평(cirticism)에서, 다시 말해 아리스토텔레스에 기초한 고전 미학이 통용되지 않는 상업적 저널리즘에서 성립하는 비평, 즉 누구도 결말을 지을 수 없는 평가를 둘러싼 ‘아레나’(투기장)에서 왔다고 생각한다.”(75쪽, 강조는 나의 것)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이 흥미롭다:"칸트는 라이프니츠-볼프 학파의 형이상학 아래 있던 자신을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게 한 것’은 <인성론>의 흄이라고 썼다.(...) 파이잉거에 따르면, 칸트 자신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칸트를 깨어나게 한 것은 스코틀랜드의 사상가 홈(Henry Home; 1696-1782)의 <비평의 원리>(1762)였다고 한다(<순수이성비판 주해>, 1921)." 흄의 <인성론>, 즉 <인간본성의 논고>에 대한 해제는 이준호 교수의 <데이비드 흄>(살림, 2005)를 참조. 그런데, 보다 문제적인 인물은 이 아니라 이라는 것(위의 사진).  

참고로 한 백과사전의 짤막한 설명은 이렇다. "KAMES, HENRY HOME, LORD [Kames, Henry Home, Lord] , 1696-1782, Scottish judge and philosopher. A man of broad interests and a wide-ranging intellect, his works included dissertations on Scottish law, agriculture, and problems of moral and aesthetic philosophy. Among his writings were Introduction to the Art of Thinking (1761) and Elements of Criticism (1762)."

이러한 사실을 언급한 이는 한스 파이잉거(Hans Vaihinger)인데(세번째 사진), 그가 근거로서 인용하고 있는 것은 <논리학>(1782)의 이런 대목이다: "홈이 미학을 비판이라고 명명한 것은 옳다. 미학은 판단을 충분하게 규정하는 선천적 규칙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역본에는 "Home has more correctly called Aesthetics Criticism, because it does not, like Logic, furnish a priori rules."(37쪽)이라고 돼 있다. 여기서 칸트의 비판(critique)이 유래했을 거라는 얘기.  



 

 

  

지나가는 김에 번역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예전에 일역본을 따라 '선천적'으로 번역되던 'a piori'는 요즘 '선험적'이란 역어로 옮겨진다. (백종현 교수의 제안에 따라) '선험적/선천적'이 '초월적/선험적'이라고 옮겨지는 식이다. 하지만, 아직도 시중에 나와 있는, 국내 1세대 칸트학자들의 <순수이성비판> 번역본들은 '선험적/선천적'을 취하고 있고, 칸트철학을 '선험철학'으로 규정한다. 백종현 교수 등에 따를 경우엔 '초월철학'이라고 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용어상의 혼란은 정리된 게 아니어서, 가장 최근에 나온 <순수이성비판> 해설서로 백종현의 <존재와 진리 - 칸트 순수이성비판의 근본문제 >(철학과현실사, 2000/2003)와 바움가르트너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읽기>(철학과현실사, 2004)는 각각 '초월철학'과 '선험철학'으로 옮기고 있다. 해서 번역서들에서 '선험적'이란 말이 나오면 어떤 계열에 따른 번역인가를 확인해야 오해를 줄일 수 있다. 두 가지 '체계'가 있는 걸로 보아야 할까? 하지만 일반 독자들로선 불편하다.

아무튼 국역본 <트랜스크리틱>은 일역본의 용례를 따른다. 아직 새로운 관례에 따르는 새 번역본 <순수이성비판>이 아직도 출간되지 않는 것은 유감스럽다(백종현 교수의 <실천이성비판> 번역은 2002년에 출간된 바 있다. 개인적으론 칸트의 '도덕형이상학'을 '윤리형이상학'으로 '의역'하는 것에는 거부감을 느끼지만). '그들만의 철학', '그들만의 칸트'는 언제쯤 '우리의 칸트', '우리 세대의 칸트'가 될 수 있을까?   

다시 고진으로 돌아오면, “칸트가 홈에게서 배운 것은 ‘취미판단’, 즉 미학적 취미판단의 가능성에 대한 반성과 그 근거에 대한 연구였다. 홈은 취미판단의 보편성, 즉 미추의 기준을 찾아 그것을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원리에서 도출해내려고 애를 썼으며, 미추에 관한 인간 감수성의 선천성(=선험성)을 주장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을 칸트가 모범으로 삼았다는 얘기.  

칸트 전공자들의 문헌들을 별반 읽어본 바 없지만, 헨리 홈에 대한 내용은 국내 학자들에게서 거의 다루어진 바가 없지 않나 싶다(국내에 나와 있는 해설서들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해서 고진의 이러한 주장은 신선한데, 사실 이러한 견해는 고진 자신도 일본의 칸트 학자 하마다 요시후미에게 힘입은 것이다. 하마다의 <칸트 윤리학의 성립>(1981)이란 저작이 말하자면, '연기자' 고진에게 차려진 '밥상'인데, 하마다에 따르면 칸트가 '비평'이란 말을 인간의 이성 능력 자체의 근본적 음미를 의미하는 독자적인 '비판' 개념으로 다시 파악하여 자신의 용어로 사용한 것이라고. 

 

 

 

 

 

 

 

 

 

홈과 칸트에게서 문제된 것은 취미판단의 주관성(개인성) 주장과 보편성 요구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이때 칸트가 도입하는 것은 일반성과 보편성의 구별이다. 그는 "미에 관한 취미판단이 확립하려는 것이나 요구하는 것은 (일반적 규칙이 아니라) 보편적 규칙"임을 <판단력비판>에서 적시한다(이 <판단력비판> 또한 새로운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할 만한 새 번역본이 나와야 할 것이다). 즉, "어떤 무언가를 '미'라고 인정하도록 강요하는 규칙"은 없지만, 단순한 쾌적함과 구별되는 취미판단은 '보편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보편성의 보증을 칸트는 '공통감각(common sense; sensus communis)'에서 찾는다.    

 

<새로운 학문>(동문선, 1997)의 저자 G. 비코(1668-1744)에 따르면, 공통감각이란 "어떤 계급, 어떤 민족, 어떤 국가, 인류 전원이 공유하는, 조금의 반성도 수반하지 않는 판단력"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통감각은 역사적으로 변화해가는 것이라면, 보편성을 보증해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보편성이 있다면 그러한 다수의 공통감각을 초월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딜레마가 취미판단의 영역으로서 예술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확실히 칸트는 자연과학, 도덕성, 예술을 구별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 자체는 그의 목적지점(terminus ad quem)이 아니다. 왜냐하면 칸트는 어디서든 보편성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80쪽, 굵은 글씨는 국역본에 빠진 부분을 영역본 39쪽을 참조하여 채워넣은 것이다). 따라서, 미적 판단에서 보편성이 의심스럽다면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칸트는 거기서 출발했다. 칸트의 '비판' 근본적인 것은, 우선 모든 것을 취미판단에서 마주친 문제에서부터 다시 생각한 데 있었다."(80쪽, 강조는 나의 것)

 

이 점이 고진의 칸트 읽기에서 일차적으로 강조되는, 강조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나로선 이것을 고진의 첫번째 테제라고 부르고 싶다(요컨대, '<순수이성비판>을 <판단력비판>과 동일한 문제의식으로 읽어내기'이다). 영문으로 반복하자면, "The radicalism of his[=Kant's] critique exists in that he reconsidered the question of universality from the vantage of the judgment of taste."

 

이어지는 내용은 그렇다면, 공통감각이란 무엇이냐 라는 것. 고진은 이 공통감각을 개인의 쾌/불쾌, 쾌적함과는 구별하면서 '공동의 언어게임'의 문제로 재규정한다(이에 대해서는 조금 나중에 '타자'의 문제와 함께 상술된다). 이럴 때 "취미판단에서의 보편성은 서로 다른 규칙체계를 소유하는 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이다."(81쪽) 그리고 이 취미판단에서의 보편성 요구는 모든 종합판단에 흐르는 공통된 문제이므로 흔히 '대상에 대한 몰관심성'에서 미가 발견된다고 할 때의 몰관심성, 혹은 관심을 괄호 안에 넣기는 지적, 도덕적 관심의 경우에도 두루 적용된다.

 

그러니까 "칸트가 취미판단의 특성으로 삼은 것은 인식에 대해서도 도덕에 대해서도 들어맞는다."(82쪽) 어떤 식으로? 과학에서의 대상인식에서는 도덕적, 미적 판단을 괄호에 넣고, 도덕적 영역에서는 쾌나 행복을 괄호에 넣는 방식으로. "우리는 어떤 대상에 대해 참인가 거짓인가, 선인가 악인가, 쾌인가 불쾌인가라는 적어도 세 영역에서 동시에 받아들"이지만, 이러한 괄호넣기(몰관심성)에 의해서 세 가지 영역을 구분해내는 것이다.

 

즉, "인식적, 도덕적, 미적 영역은 어떤 태도변경(초월론적 환원)에 의해 확정되는 것이지 그것들이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고진의 두번째 테제라고 해둔다. 반복하자면, "[C]ognitive, moral, and aesthetic domains are all constituted by a change of attitude (i.e., transcendetal reduction); and in the beginning these domains do not exist in and of themselves."(41쪽)

 

그러므로, "칸트에게서, <순수이성비판>에서 <판단력 비판>으로의 이행을 찾아내는 것은 옳지 않다. <순수이성비판>은 이미 문예비평이 준 곤란함에 입각해서 쓰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순수이성비판>을 그러한 관점에서 다시 읽는 일이다."(83쪽) 고진이 리오타르를 비판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아렌트는 <판단력비판>을 정치학의 원리로 읽으려고 했고(<칸트의 정치철학강의>), 리오타르는 거기서 '메타언어의 설정이 없는 언어게임간의 조정'을 보려고 했다(<열광>). 그것은 사실상 휴머니즘으로 회귀하는 것이고, 보편성을 기껏해야  '공통감각'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는 일이다."(83쪽)

 

마지막 문장엔 착오이긴 하지만 문제가 되는 오역이 포함돼 있는데, 영어본을 옮기면 이렇다: "But Lyotard's reading is a regression to Hume insofar as it considers the issue of universality to be simply one of the coalition among common senses."(42쪽) 즉, 국역본은 '흄'을 '휴머니즘'으로 잘못 옮겼다. 역자는 후기에서 국역본 <트랜스크리틱>이 실질적으로는 일어본보다 영역본에 더 가깝다고 했지만, 영역본과의 대조는 소홀히 한 것 같아서 아쉽다(대조했더라면 '음역' 과정에서 생기는 이런 오역을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글을 너무 오래 끌었다. 이 2절도 아직 다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이어지는 3절 '시차(視差)와 물자체'와 함께 다음에 마저 다루기로 한다. 앞에서 고진의 두 가지 테제를 내 식으로 정리했는데, 반복하자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순수이성비판>을 그러한 관점에서 다시 읽는 일이다."

 

06. 01. 20 - 02. 01.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woshot 2006-01-20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는 진도가 팍팍 나갔으면 좋겠네요:)

로쟈 2006-01-21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들을 가방에 다 싸들고 다닐 수가 없는 데다가(학교에 놔두고 왔습니다) 인터넷 사용에 제한이 있어서 진도는 아마 더디 나갈 것 같습니다. 양해해주시길...

yoonta 2006-01-24 0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랜스크리틱은 아직 읽지않고 있어서 일단 님이 정리한 글로 간접적으로 트랜스크리틱을 겸험하고 있는데요..

님의 글을 읽다가 한가지 의문점이 떠오르는데...
칸트가 취미판단의 '보편성'을 찾아내기 위해서 취미판단의 주관성과 보편성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한 공통감각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것인가요...아니면 취미판단의 주관성과 보편성사이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취미판단의 보편성을 공통감각을 통해 제시하는 것인가요?

전자와 후자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어보이는데요..취미판단의 주관성이 공통감각을 통해서 취미판단의 보편성속으로 환원할수있다고 보는 것인지(공통감각=취미판단의 보편성이라고 보는건지 아니면 공통감각을 통해 취미판단의 보편성으로 이행되는것인지도 애매하네요) 아니면 취미판단의 주관성/보편성의 이원적 대립이 공통감각이라고 하는 제3의 어떤것을 통해 해소되는 어떤 것으로 보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군요...

고진이 강조하고 싶은 칸트의 중요지점으로 '공통감각'이 제시되는 것 같은데 칸트가 말하는 선험적(a priori)이라는 말이나 초월적이라는 말의 본래적 의미와도 연결되는 문제인것도 같고 들뢰즈의 '초월론적 경험론'과도 연결시켜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러고 보니 아직 이 페이퍼가 완료가 된게 아니네요.. 로쟈님 페이퍼가 완성될때까지 좀더 지켜봐야겠군요..^^

로쟈 2006-01-24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좀더 지켜보셔야 할 거 같습니다. 그나저나 책들이 학교에 있어서 매번 지체되는군요(오늘도 휴업입니다). 물론 <트랜스크리틱>을 직접 읽어보시는 게 더 빠르겠네요. 칸트에 관한 건 200쪽 정도의 분량이지만 금방 읽힙니다...

lastmarx 2006-02-15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의 <트랜스크리틱>을 너무나도 즐겁게 일독했습니다. 다시 정독을 할 생각입니다. 앞부분 칸트의 '비판'은 솔직히 낯설었으나 고진의 비판, 비평은 명쾌했습니다. 뒷부분 맑스의 비판, 비평은 지금까지 그 어느 맑스 해설자보다 넓고 깊은 인식을 보여줍니다. 이 책을 읽고 다른 맑스주의자들의 논리와 주장을 보면 시시하게 느껴질 듯합니다. 로쟈님의 노트와 영역본 대조는 큰 도움이 됩니다. 천천히 전개되더라도 정확하게 논평, 정리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거의 완벽한 리뷰를 하셨지만 특히 이 책만큼은 더욱 기대하겠습니다. 건강하시고요.

로쟈 2006-02-16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을 '발견'하신 건가요? 맑스에 대한 2부를 정리해주시면, 저랑 '계산'이 맞을 거 같습니다.^^ '완벽한 리뷰'라기보다는 '굼뜬 리뷰'인데, 언제 다 기어가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장애물들이 워낙 많아서...
 

 

지난 연말에 루마니아 출신의 작가 에밀 시오랑(E. M. Cioran, 1911-1995)에 대한 글을 몇 마디 적고자 했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계속 미루어졌었다(밀린 일들이 어디 한둘이랴!). 그리고, 도서관에서 대출했던 책 <독설의 팡세>(문학동네, 2004, 원제는 '고뇌의 삼단논법' 정도)을 다른 책을 대출하기 위해서 부득이 오늘 반납해야 했다. 해서, 아쉬운 마음에 몇 가지 메모만을 남겨둔다(세번째 이미지는 <고뇌의 삼단논법> 불어본(1952)이고, 네번째는 <존재의 유혹> 영역본, 그리고 마지막은 손택의 에세이집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Styles of Radical Will)>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폭발한다(Cogito ergo Boom)"는 물론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비튼 것인데, 이 새로운 명제의 출처는 수잔 손택의 시오랑론 '반(反)자기 사고 - 찌오런에 관한 고찰'(<급진적 의지의 스타일>(현대미학사, 2004)에 수록돼 있다)이다. 지나가는 김에 덧붙이자면, 국역본에서 '시오랑'이 루마니아 원음에 따라 '찌오런'이라고 표기된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원음주의'의 환상에 대해서는 자주 지적한 바 있다). 루마니아 태생이긴 하지만, 20대에 파리로 건너와 그가 평생을 산 곳은 프랑스 파리이며 이후에 대부분의 에세이도 루마니아어가 아닌 새로 배운 '불어'로 썼기 때문이다('외국어'로 글을 쓰는 일에 대해서 시오랑 자신이 비통해 했지만). 게다가 다른 번역본들과의 일관성 문제도 있다. 참고로 러시아어본들에서는 '시오란' 혹은 '쵸란'이라고 표기한다.

 

손택의 에세이는 영역본 <존재에의 유혹> 서문으로 씌어졌는데, 1960년대 중반에 나온 이 글이 영어권 최초의 본격적인 시오랑론이라고 한다.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 내가 쓰고자 했던 글의 제목이, 시오랑의 세계를 잘 요약해준다고 판단되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폭발한다"이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가 근대철학의 개시를 선언하는 것이었다면, 시오랑이 미덥잖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 코기토의 불철저성이다. 그에 따르면, "철학의 잘못은 너무 참을 만하다는 것이다."(<독설의 팡세>, 39쪽) 사유를 철저하게 극단에까지 밀어붙인다면, 그것은 '존재'를 통과하여 의당 '폭발'에까지 이르게 되지 않을까?

 

가령, 칸트의 비판철학을 떠받치고 있는 아포리아들을 하루만 물고 늘어져보아도 머리가 지끈지끈거릴 것이다. 세계는 유한한가, 혹은 무한한가에 대해서 우리는 무얼 사유할 수 있는가? 아이가 아이였을 때 흔히들 묻곤 하는 '왜 나는 나이고 너가 아닌가?'란 물음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대답으로 위안을 삼아야 하는가? 어떤 원리로부터 연역되는 가능한 철학적 귀결들을 그냥/마냥 참아낼 수 있는가? 하지만, '참을 수 없는 철학의 참을 만함'을 더이상 참지 못할 때, 우리는 '폭발'한다.

 

Emil Mihai (Michel) Cioran

 

때문에, 시오랑의 아포리즘들은 어떤 사유의 응집으로서가 아니라 그러한 폭발의 잔재로서 읽혀야 한다. 즉, 그의 아포리즘들이 지시하는 것은 사유가 아니라 사유의 종말로서의 폭발이다. '루마니아 출신의 작가, 철학자, 에세이스트'라는 백과사전의 정의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말하자면, '시오랑, 혹은 폐허의 철학자'로 이름붙일 수 있을까? 마치 폴란스키의 영화 <피아니스트>(2002)에서 폐허의 한가운데 놓였던 피아니스트 스필만을 떠올리게 한다. 혹은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1979/2001)의 한 장면. 하긴 그는 하루하루를 묵시록적 예언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매일 최후의 심판이 내일이라고 약속해주는 나의 광기. 그 자비심이 없다면 나는 한 나절이라도 견딜 수 있을까?"(45쪽)   

 

 

시오랑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건 내 기억에 1990년대 초반쯤 계간 <작가세계> 특집을 통해서였다. 나는 대번에 그의 아포리즘들에 끌렸고, 곧이어 출간된 <절망의 맨끝에서>(에디터, 1994; 강, 1997), <내 생일날의 고독>(에디터, 1994) 등도 반가운 마음에 사서 읽었다. 한데, 시오랑론을 쓰기 위해서 필요한 한국어 번역본들은 대부분 제목의 선정에서부터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불어본들을 읽고 쓸 수는 없지 않은가? 90년대 후반 이후로 영역본들이 많이 나와 있길래 작년말에 도서관에 대거 주문을 넣은 것 정도가 나의 성의 표시이다. 3권의 러시아어본도 갖고 있는데, 모음집이어서 작품수로는 7-8권 가량이다. 대부분이 아포리즘집 형태인 만큼 시오랑의 책들은 두껍지 않다).

 

가령, <독설의 팡세>도 비록 그런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손 치더라도 원제와는 동떨어진 것이며, <내 생일날의 고독>은 원제가 '태어남의 잘못(=불편)'에 대하여'이고, <세상을 어둡게 보는 법>(이땅, 1992) 혹은 <동구로 띄우는 편지>(이땅, 1990)의 원제는 <역사와 유토피아>이다. <노랑이 눈을 아프게 쏘아대는 이유>(산수야, 1995)의 원제가 <고백과 저주>라는 걸 어찌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러니 수면제 대용이 아니라면(실제로 시오랑은 거의 평생을 불면증에 시달렸다) 국역본들을 읽고 제대로 된 시오랑론을 쓴다는 건 치기에 가깝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아직 시오랑에 대한 글을 완성하지 못하고, 그 빚을 다 탕감하지 못하는 이유이자 변명이기도 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폭발한다"를 가지고 모두 입막음이 되는 건 아니다. 내가 진 또다른 빚은 '눈물의 일반이론'에 관한 것인데, 예전에 같은 제목으로 역시나 '변명'에 해당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거의 10년쯤 전의 일이다. 부분적으로 따라가본다.

 

 

"나는 울고 싶은데 神은 내게 계속 쓰라고 명령한다. 그는 내가 빈들거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내 처는 줄곧 울고 있다. 나 역시 운다. 나는 의사가 와서 내가 쓰고 있는 동안 아내가 울고 있다고 말할까봐 불안하다. 나는 그녀에게 가지 않겠다. 내게 책임이 있는 건 아니니까. 내 어린것은 온갖 것을 보고 듣는다. 그 애가 나를 이해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나는 키라를 사랑한다. 내 어린 키라는 자기에 대한 나의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그 애 역시 내가 앓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에게 그렇게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 애는 내게 내가 잘 잤는지의 여부를 묻는다. 그러면 나는 내가 언제나 잘 잔다고 말해준다. 나는 무얼 써야 할지를 모르겠는데 神은 내게 쓰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결함을 지녔다. 나는 인간이다. 神이 아니다. 나는 神이 되고자 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 자신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춤을 추고 싶고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치고 시를 쓰고 싶다.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이것이야말로 내 생의 목표이다."(니진스키, <고백>) 

 

∴ ∴ ∴


 

 

"드디어 관에 뚜껑이 덮였다. 못이 꽝꽝 박히고 짐마차에 실렸다. 마차는 삐걱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거리가 끝나는 데까지밖엔 전송하지 않았다. 마부가 채찍을 휘둘렀다. 말은 속보로 달리기 시작했다. 노인은 그 뒤를 쫓아가면서 어이어이 소리를 내어 울었다. 뛰어서 쫓아가느라고 그 울음소리는 몹시 떨렸고 가끔 끊어지기도 했다. 가엾은 노인은 모자를 떨어뜨렸지만 그것을 집으려고 멈추어서지도 않았다. 비가 그의 맨머리를 적셨다.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노인은 그런 것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어 울며 마차의 이쪽저쪽을 겅중겅중 뛰어서 왔다갔다했다. 낡아빠진 프록코트의 옷자락은 날개처럼 바람에 나부꼈다. 호주머니란 호주머니에서는 책들이 비죽이 기어나오고 무슨 책인지 커다란 것이 한 권 소중하게 쥐어져 있었다. 길가는 사람들은 모자를 벗고 성호를 그었다. 어떤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놀란 얼굴로 이 가련한 노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책들은 쉴새없이 호주머니에서 진창으로 굴러떨어졌다. 사람들이 그를 불러 세워 물건을 떨어뜨렸다고 가르쳐주었다. 노인은 그것을 집어들고는 다시 마차 뒤를 쫓아갔다. 길모퉁이에서 어떤 거지 노파가 그에게 손을 내밀며 들러붙더니 함께 관 뒤를 따라갔다. 드디어 마차는 모퉁이를 돌아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도스토예프스키, <가난한 사람들>)

∴ ∴ ∴

능글맞기도 하지만 괜히 잘 우는 사람들이란 고정관념을 나는 러시아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이 두 러시아인 댄서/작가에게 힘입은 것이라는 걸 부인하지 않겠다. 사실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런 그들의 정서가 나에게 맞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다지 잘 우는 편은 아니지만,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력에 대한 고백으로서의 울음이 우리 생의 첫 발성(언어)이었다는 사실에 언제나 감동받는다. 외롭고 힘들어 지칠 때마다, 우리가 이 근원의 장소를 찾아가고 이 원초적 정념에 호소한다는 사실에 언제나 고무받는다.

 

 

예컨대, <파리, 텍사스>(1984)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가정이 파탄나자 트래비스는 자신이 잉태되었던 바로 그 근원의 장소로서 '파리'(프랑스의 파리가 아니라 텍사스의 파리이다)를 찾아 사진 한 장을 들고 황량한 텍사스 사막을 헤맨다. 그의 그런 행위에 의해 물리적으로 동질적인 어떤 공간이 '파리 Paris/텍사스 Texas'로 분절된다. 이 분절은 성(聖)/속(俗)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의미론적이고 구제론적인 것이다. 이 고질적인 의미론/구제론은 아주 인간적이고 너무도 인간적이다. 우리는 그리 돼먹은 듯하다.

∴ ∴ ∴

 

"나는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나의 눈물들은 생각들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들은 눈물과 마찬가지로 쓰라리지 않을까?" 이것은 루마니아의 작가 에밀 시오랑의 말이다. 철학을 공부하다가 그만둔 그는 1937년 파리로 건너가서 이후 죽을 때까지 인근의 창녀들이 야밤에도 소란을 피우는 싸구려 호텔 다락방에 은둔하며 살았다. 그가 철학을 그만둔 데에는 한 가지 일화가 있다.

 

칸트와 피히테, 쇼펜하우어, 베르그송을 읽으면서 철학을 제외하곤 시에도 무관심했던 그는 남들처럼 논문을 쓰기로 결정하고 어떤 주제를 고를까 고심했다. 그리고는 진부하면서 뭔가 독특한 주제를 찾았다고 생각해서 지도교수에게 달려갔다. "'눈물의 일반이론'이 어떻겠습니까? 그건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가능이야 하겠지. 하지만 참고문헌을 찾는 게 어렵지 않겠나." 이에 "그건 문제가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 전체가 논문의 근거가 되니까요." 그는 자신에 차서 말했다. 그러자 지도교수는 경멸에 찬 시선을 보냈고, 그는 그 순간 철학에 대한 모든 기대를 포기한다.

 

그의 말: "나는 철학이 어려움에 처한 인간에게 아무런 말도 할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철학은 인간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법을 가르치지만 결국은 인간을 각자의 운명속으로 내팽개치고 마는 것이다."

∴ ∴ ∴

나는 언젠가 나 자신이 그런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오랑이 포기한 '눈물의 일반이론'이란 것. 현재 이러고저러고 하는 것의 대부분은 이 '눈물의 일반이론'을 위한 연습이고 밑그림이라는 생각도 한다. 거꾸로 철학에 대한 나의 관심은 이에 근거한다. 어려움에 처한 인간에게 아무런 말도 할 게 없는 철학의 무능력 자체는 바로 우리의 무능력을 닮은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무엇을? 내던져지고 내팽개쳐진 각자의 운명(시오랑은 해체de-composition라고 부른다. 이 해체가 그의 글쓰기 양식을 규정한다.) 속에서, 각자의 눈물 속에서 의미있는 일반이론, 즉 연대(solidarity)를 끌어내는 일 말이다. 개인의 울음을 집단의 통곡으로 바꿔놓는 일 말이다. 언젠가는.

 

그 '언젠가'는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도 유예상태이다. 핑계로 무덤을 세웠다면 거의 마을묘지 수준이 되겠다. 다만, 시오랑에 기대어 말하자면, "우유부단하다는 것은 정직하다는 표시이고, 무언가에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사기의 표시이다."(37쪽) 그러니 나의 우유부단이 죄악이 될 수는 없겠다. 바로 앞에서 시오랑의 철학도 시절 일화를 소개했는데, 출처를 따진다면 바로 <독설의 팡세>에 나오는 내용이었다. 다른 역자의 번역이기에 전문 인용해보겠다(내용은 비교해 보시길).

 

경험부족으로 철학에 취미를 갖게 되었던 나이에,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논문을 쓰기로 결심했다. 어떤 주제를 선택할 것인가? 나는 진부하면서도 동시에 특이한 주제를 원했다. 그것을 찾았다고 믿었을 때 나는 서둘러 스승에게 알렸다. "눈물에 대한 일반이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수준으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군. 그러나 참고문헌을 찾기 곤란할 텐데." "상관없습니다. 역사의 권위가 뒷받침해줄 것입니다." 나는 무례하고도 당당하게 대답했다. 조급한 스승이 내게 경멸의 시선을 던졌을 때, 나는 내 안에서 그의 제자를 죽이기로 결심했다.(51-2쪽)

 

 

비록 계획했던 '눈물의 일반이론'은 아직 못 쓰고 있지만, 나는 전공관련으로 논문을 쓸 때마다 시오랑의 일화를 되새기곤 한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삶의 내적 요구에 부응하는 주제들에 대해서만 쓰겠다는 것(시오랑과 달리 나는 참고문헌도 열심히 찾는다!). 그건 책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폭발한다"란 주제의 시오랑론을 쓰는 것도 그러한 요구의 하나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살아온 만큼 살아가기도 해야 한다는 것. 어쨌거나 (당분간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이건 또다른 요구이다. 이 둘 사이에서 내가 짜낼 수 있는 묘안은 이런 류의 페이퍼로 잠시 자리를 데우는/때우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릿광대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있으니까."(34쪽)

 

06. 01. 20.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01-20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핑계로 무덤을 세웠다면 거의 마을묘지 수준이 되겠다, 에서 한참 웃었네요.
저는 아마 국립묘지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묘비명에는 게으름이라는 단어에만 볼드 처리되어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로쟈 2006-01-20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파님/ 이보 안드리치를 전공하시나요? <드리나강의 다리>를 읽을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군요.^^
 

 

 

 

 

지젝의 <삐딱하기 보기>(시각과언어, 1995)를 다시 읽는다. 같이 읽을 원서는 'Looking Awry'(MIT출판부, 1991). 작년 2월쯤인가 나는 책의 3부를 마저 읽었고, 1-2부는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더랬다(당시에는 원서를 갖고 있지 않았다). 지젝의 영화론에 대한 글을 쓸 일이 생겨서 이 참에 그의 영화책들을 전반적으로 다시 훑어볼 계획을 세우게 됐다. 어디까지 진행될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시작은 <삐딱하기 보기>부터이며, 내가 의도하는 건 '<삐딱하게 보기> 제대로 읽기'이다.

'제대로'라는 건 읽는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읽는 것처럼 읽겠다는 얘기. 혹은 <나의 결혼원정기>(2005)에서 홍만택(정재영)의 말투를 빌면, “다 자쁘뜨러”, 곧 '다 자빠뜨려'가며 읽는다는 것이다('다 잡뜨라 Do zavtra!'는 러시아어로 “내일 또 만나요!”라는 뜻이다. 이게 한국에 오면 "그녀들을 자빠뜨리기?"로 와전되지만). 다음에 다시 만날 때까지 가능하면 말끔하게 정리해두는 것이 그 목표이다. 무릇 고전들이란 그렇게 '다 자빠뜨려'가며 읽어야 하는바, <삐딱하게 보기>나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 등은 내가 조만간 자빠뜨릴 계획으로 있는 책들이다(물론 <그라마톨로지>는 상당한 견적이 나오는 책인지라 언제 작업에 들어갈지 장담할 수 없지만, 아마도 내달쯤 집에서 인터넷을 하게 되면 계획은 생각보다 빨리 구체화될 수도 있을 듯하다. 작업의 '속도'가 현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테니까). 계획상으로야 올해 쓸 책만도 댓권이지만, 머릿속으로야 무얼 못하겠는가.

untitled 250

먼저,  머리말부터 읽어본다. 지젝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작업의 내용이 발터 벤야민의 추천에 따르는 것임을 밝힌다. 벤야민은 뭐라고 추천했는가? '고도로 정신적인 문화적 산물들'을 '통속적이고 평범하며 세속적인 문화적 산물들'과 나란히 독해하라! 예컨대, 모차르트(1756-1791)의 오페라 <마술피리>에 등장하는바, 사랑하는 커플(love couple)의 숭고한 이상형(사랑한다면 이들처럼!)과 모차르트와 동시대인이었던 칸트(1724-1804)의 결혼에 대한 정의를 병치시키는 것. 칸트는 뭐라고 정의했던가? "결혼이란 반대의 성(性)을 가진 두 성인 사이에서의 성기의 상호사용에 대한 계약이다"! 독신자이긴 했어도 역시나 래디컬한 칸트이다. 해서 내가 병치시켜놓은 것은 오페라 <마술피리>의 한 장면과 미국의 사진작가 신디 셔먼의 'Untitled #250'이다. 좀 삐딱하다고? 하지만, <삐딱하게 보기>에서 지젝이 내내 하는 일이 이런 삐딱한 짓 아닌가!

지젝식의 '삐딱한 짓'이 의도하는 것은 책의 부제대로 '대중문화를 통한 라캉 이해(=입문)'을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이 책의 작업은 자크 라캉의 고상하기 그지없는 이론적 주제들을 현대 대중문화에서 본보기가 될 만한 경우들과 아울러, 또한 그것들을 통해서 해독하는 것"이다(나중에 지젝이 밝힌 바에 따르면, 그 자신이 라캉을 이해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러한 독해에 선행하는 라캉이 있다기보다는 이러한 통해와 '아울러', 이러한 독해를 '통해서' 비로소 그 자신도 라캉에 대한 이해에 도달했던 것. 이런 게 '변증법적 학습' 아닌가?).

 

 

 

 

대중문화의 사례들로 그가 자주 참조하게 되는 것은 히치콕(물론 요즘에는 '진지한 예술가'로 간주되지만, 히치콕은 당대에 가장 '대중적인' 감독이었다)을 비롯하여 필름 느와르, SF소설, 탐정소설, 감상적인 키치(Kitsch), 그리고 스티븐 킹 등을 망라한다. 라캉의 공식 '사드와 함께 칸트를(Kant wirh Sade)'을 라캉 자신에게 되돌려주면서 '히치콕과 함께 라캉을',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와 함께 라캉을', '스티븐 킹과 함께 라캉을' 하는 식으로 변주/응용하는 것이다(거기에 간혹 '셰익스피어'나 '카프카' 같은 '위대한 이름'들도 끼어들지만).  

한편으로 라캉에 대한 '삐딱하게 읽기'를 제안하는 지젝은 그러한 독해가 오히려 아카데미에서의 '주류적' 라캉 수용이 놓치고 있는 것들을 더 잘 설명해줄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라캉 자체가 "히치콕의 <현기증>으로부터 스티븐 킹의 <애왕동물 공동묘지>(황금가지, 2006)에 이르는, 맥컬로우의 <음란한 강박관념>으로부터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이르는 광란의 질주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해서 라캉 교리론(dogmatics)에 대한 '삐딱한 읽기'로서의 <삐딱하게 보기>는 이 양방향의 운동이고 질주이며 탐닉이다. 혹은 그러한 운동/질주/탐닉에 제대로 몸을 맡길 때에야 우리는 제대로 '삐딱하게 보기'의 여로에 들어선 것이 된다. 마치 롤러코스터 같은 여로에.   

해서, "지젝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제 곧 '현실에서 실재로'(1부 1장)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같이 복창해 보실까요? "다 자빠뜨려!"

06. 01. 19-20.

 

 

 

 

P.S. 지난 80년대인가 <성자가 된 청소부>란 베스트셀러가 있었다. 저자가 인도 사람이고 부제가 '산다는 것과 초월한다는 것'이니까 대략 어떤 내용일지 짐작할 수 있는 책이다(검색해 보니, <이슬람 성자가 된 청소부>란 제목의 책도 있다. 하긴 '성자'와 마찬가지로 '청소부'도 종교를 초월할 테니까!). '청소부'란 말이 '환경미화원'으로 대체되기 이전에 나왔던 책이었다. 한데, 제목에서 비치는 그러한 '상향 초월'은 나로선 별로 달갑지 않았다. 제대로 된 초월이라면 거꾸로 '청소부가 된 성자'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검색해보니, <백화점 청소부가 된 이목사>란 책은 있다. 이재정 목사의 책이란다). '낮은 데로 임하셨던' 그리스도의 모범도 그런 게 아닌가.

 

 

 

 

성서의 대표적인 이야기들에서 가장 많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아무래도 '다윗과 골리앗'의 다윗 같다(나중에 '다윗왕'이 되는). '시편'에 실린 노래들의 상당수도 또한 다윗의 노래이다. 거기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다윗의 노래가 시편의 제3편이며, 반란을 일으킨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어 여호와께 간구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2.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3.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4.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를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도다
5.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6. 천만인이 나를 둘러 치려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7.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8. 구원은 주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지난주에 또 교회에 붙들려가 들은 설교가 이 3편에 관한 것이었는데, 내게 가장 흥미로운 절이었으나 목사님의 '진지한 말씀'에서는 다른 절들과 달리 자세히 음미되지 않은 절이 있었으니 바로 7절이었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영역으로는 "Arise, O Yahweh! Deliver me, O my God! For You have struck all my enemies on the jaw; You have smashed the teeth of the wicked."

주께서 이제껏 나의 원수들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어으셨다는 걸 상기시키며 다윗은 한번 더 그래주십사 하고 간구하는 것이다(짐작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은 신약의 것이지 구약의 것은 아니다. 아니면 신약의 경우에도 '사랑'의 방식이 좀 특이한 것이든지. 축귀(逐鬼)용 안수기도 같은 걸 생각해 보라). 마지막 구절이 가진 함축을 알기 쉬운 말로 하면, "주여, (이번에도) 적들의 '아구창'을 갈겨주소서!"라는 것. 

물론 이것만이 기도/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를 점잖게 제쳐두는/빠뜨리는 '고상한' 설교말씀에 나는 공감할 수 없다(어떤 이는 이 시편을 '스트레스의 대처'라고 이름붙였다!). 그것은 '다윗의 모범'을 따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원수를 용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원수의 아구창을 먼저 갈긴 이후의 문제가 아닐까? "기도와 함께 주먹을!" 지젝의 '삐딱하게 보기'는 그런 깨달음도 부수적으로 던져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ookjacket

여기서 다루어질 내용은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미술문화, 2004)의 '서문'이다. 먼저, 원서의 표지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그래서 이미지를 키웠다). 저자는 이 표지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은 화가 데이비드 리드(David Reed; 1946- ).

 

"내가 이 책의 권두화로 선택한 이미지는 유명하고도 친숙한 영화인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1958)에서 오려낸 한 장면을 약간 수정해서 찍은 스틸 사진이다. 수정은 화가 데이비드 리드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그는 자신의 그림중 하나 - 1990년작 <#328> - 를 호텔 침실 장면 속에 집어넣었다. 원래 그 자리에는 히치콕이 영화의 신빙성을 보태기 위해 침대 위에 걸어놓았을지도 모르는 특징없는 호텔 그림이 있었다.(...) 스틸 사진 자체는 1995년작이다."(19쪽) 아래의 작품이다(그 아래는 변주 작품). 

 

"리드는 오려낸 이 장면을 TV수상기에서 반복해서 방영되는 일종의 순환 테이프로 변형시켰는데, 당연히 이 TV수상기는 킴 노박이 분한 <현기증>의 여주인공 주디가 빌려 쓰고 있던 샌프란시스코의 호텔 침실에 있는 가구들처럼 별다른 특징이 없다.(...) 리드가 영화의 장면을 수정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TV수상기는 이 예술가에 의해 침대 바로 옆에 놓여졌는데, 그것은 정확하게 영화 속의 침대를 복원하고 있으며 리드 자신에 의해 임의로 만들어졌다는 점만 빼면, 그 영화에 등장하는 침대와 마찬가지로 전혀 특징이 없다."

 

단토는 리드의 이러한 작업이 갖는 의의를 설명하기 위해서 리드가 갖고 있는 몇 가지 강박관념을 지적한 이후에 이것을 자신의 이론적 맥락 속에 집어넣는다: "나의 목표는 리드가 - 침대, 욕실 가운, 심지어는 침실 설치작품의 일부로 삽입된 그림 <#328> 등은 말할 것도 없고 - 순환테이프라고 하는 영화장치, 그림 더빙 메커니즘, 그리고 모니터 등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컨템퍼러리 미술 실천의 견지에서 무엇을 예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화가들이 이제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전혀 다른 매체 - 조각, 비디오, 영화, 설치 등등 - 에 속하는 장치들을 갖고서 자신의 그림을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 컨템퍼러리 미술의 실천방식이다. 리드와 같은 화가들이 대단한 열정을 갖고서 이런 일을 행하고 있다는 것은 동시대의 화가들이 매체의 순수성을 자신의 규정적 의제로 고집하였던 모더니즘의 미적 전통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벗어났는지를 증명하고 있다."(22쪽, 강조는 나의 것)

 

해서, 단토가 보는바, "시각예술에서의 동시대를 잘 보여주는 표본"이 데이비드 리드이다.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비평가 그린버그와는 다르게, 단토는 이러한 탈모더니즘적 미술, 탈역사적 컨템퍼러리 미술에 대한 성찰과 옹호를 통해서 예술철학자이자 비평가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정당화한다. 이성복의 시구를 빌면,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를 (역사)철학적으로 해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예술의 종말 이후>에 설정된 과제이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예술의 종말 이후>는 1995년 미국의 워싱턴 소재 국립미술관에서 여섯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앤드류 멜론 강좌 강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거기서 단토는 '컨템퍼러리 미술과 역사의 경계'라는 제하의 강연을 했는데, 이것이 이 책의 부제이다(번역서에서 이 동일한 부제는 '동시대 미술과 역사의 울타리'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고 있다. 역자들이 '반복'을 싫어하는 듯하다). 

 

예술이론에 관한 멜론 강좌는 1951년부터 시작됐다고 하는데(이샤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도 이 강연에 바탕을 둔 책이다. '낭만주의적 사유의 원천들'이란 주제의 벌린의 강연은 1965년에 있었고, 각각 1954년과 1956년에 강연한 허버트 리드 경과 곰브리치도 또한 단토의 선배 연사였다), 단토의 강연은 44회인 셈이고 그의 지적대로 리드의 (영화수정) 작업은 1958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작업이다. 그것은 '역사적 불가능성'이다. 그러한 불가능성이 암시하는 것은 예술사/미술사에서 회귀불가능한 어떤 내러티브의 구성 가능성이다. 그리고, 예술의 종말이란 그러한 내러티브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자세한 건 본문에서 밝혀질 것이다).

 

 

 

 

 

 

 

 

 

이 책의 목표를 다시금 정리하면 이렇다: "이 책은 미술사의 철학, 내러티브의 구조, 예술의 종말, 그리고 예술비평의 원리는 논하는 데 바쳐진 책이다. 이 책은 어떻게 해서 데이비드 리드의 예술과 같은 것이 역사적으로 가능해졌으며, 그러한 예술을 얻허게 비평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을 묻고자 한다. 또한 나의 책은 이런 견지에서 모더니즘의 종말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고, 예술에 관한 전통적인 미학적 태도에(게) 불경스러운 짓을 가하는 형태로 나타난 모더니즘의 신경과민을 진정시키고자 할 것이며, 탈역사적 현실에서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약간이라도 밝혀내고자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역사의 문제로서 어디를 향해 나아갔는지를 알게 되면 어떤 마음의 위안을 얻게 될 것이다."(25쪽, 강조는 나의 것)

 

 

요컨대, <택시드라이버>1976)의 단토-드니로 버전으로 말하자면, "예술의 신이시여, 어디로 더 가시나이까? 다 왔거든요!"(옆에 있던 술취한 아저씨: "이봐요, 아가씨, 어데까지 가요? 거, 몸매가 예술이네!")

 

06. 01. 18-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빌헬름 라이히의 <파시즘과 대중심리>에 관하여 내가 갖고 있는 책들은 독어본을 제외한 4종의 번역본이다. 이번에 나온 황선길 역의 <파시즘과 대중심리>(그린비, 2006)와 함께 오세철/문형구 역의 <파시즘과 대중심리>(현상과인식, 1980/1987), 그리고 영역본 'The Mass Psychology of Fascism'(1970 )과 러시아어본 'Психология масс и фашизм'(2004)이다(러시아어본은 여러 권이 나와 있으며 내가 갖고 있는 것은 악트출판사의 2004년판이다).

 

재작년 모스크바에서 러시아어본을 구입할 당시에 내가 염두에 두고 있었던 책은 현상과인식사판의 국역본이었지만, 작년에 새로운 번역본이 출간될 거라는 소식을 접하고 은근히 고대한 바 있다. 이번에 나온 책은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라이히 정본으로서 흠잡을 데 없어 보인다. 이젠 독자들이 좀 읽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 

 

한데, 새 번역본을 읽어나가다가 좀 의아스런 대목들과 마주치게 됐다. 본문 첫장인 '제1장 물질적 힘으로서의 이데올로기'의 첫 페이지부터이다: "독일에서 민족사회주의가 권력을 장악한 지 몇 개월이 지났을 때, 여러 해 동안 자신들의 혁명적 굳건함과 자유를 위한 출격준비를 행동으로 증명한 사람들조차도 사회적 사건에 대한 맑스주의적 기본개념의 정당성에 대하여 자주 의혹을 표명했다."(33쪽)

 

굵은 글씨로 표시한 건 처음 읽으면서 낯설게 느낀 대목들인데, 일단 예전에 '국가사회주의'라고 주로 번역해온 단어 'Nationalsozialistische'(영어로는 'National Socialism')이 최근에는 '민족사회주의'로 번역된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학계에 따르면, 나치즘의 이론이 국가보다 민족을 더 우위에 두고 있는바, '국가'는 '민족'을 위해 존재하는 식이라는 사고 방식을 고려한 수정된 번역이라 한다(물론 독어나 영어 등에서는 '국가'와 '민족'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nation'이라 통칭하므로 이런 번역문제가 제기되는 건 한국, 일본 등 아시아권에 국한될 듯하지만). 어쨌거나 새 번역어가 단번에 입에 익지는 않을 테지만 새로운 '관행'에 따라야 할 터이다.

 

이어서 '자유를 위한 출격준비'. 그린비판의 번역은 <파시즘과 대중심리> 독어본이 아니라 라이히재단에서 제시한 라이히 '수고본'을 옮긴 것이기에 다른 번역본들과 차이가 나는 대목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자유를 위한 출격준비'까지 그러한 차이와 관련되는 것인지는 좀 의심스럽다. 현상과인식사판의 이 대목 번역은 이렇다: "독일에서 국가사회주의가 권력을 장악한 지 몇 개월이 지났을 때, 혁명적 굳건함을 가지고 혁명에 투신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인정된 사람들까지도 사회과정에 대한 마르크스의 기본개념의 정확성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하였다."(37쪽)

 

그리고 영역본: "In the months following National Socialism's seizure of power in Germany, even those individuals whose revolutionary firmness and readiness to be of service had been proven again and agian, expressed doubts about the correctness of Marx's basic conception of social process."(3쪽)

 

오세철본은 영역본을 옮긴 것이고 러시아어본의 번역도 영역본과 일치한다. 나로선 황선길본 번역이 부정확한 게 아닌가 싶다('자유'라는 단어가 어떻게 끼어든 것인지 모르겠다. 거기에 '출격'?). "자신들의 혁명적 굳건함과 자유를 위한 출격준비를 행동으로 증명한 사람들"이란 짐작에 "(사회주의)혁명에 대한 투철한 신념과 행동의지(준비)를 갖춘 사람들" 정도의 뜻이기 때문이다. 아무려나 우리말로 어색하며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사회적 사건에 대한 맑스주의적 기본개념". 이에 대한 영역이 "Marx's basic conception of social process"인 것에서 알 수 있지만, '사회적 사건'보다는 '사회과정'이라는 역어가 더 적절해보인다(러시아어본도 '사회과정'이라고 옮기고 있다). 해서, '정당성'과 '정확성'은 문맥상 호환의 여지가 있다고 쳐도 이 대목의 새 번역의 '정확성'에 나로선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다른 곳도 아니고 첫 페이지이기 때문에 더더욱.

 

조금만 더 읽어보자. 황선길본 35쪽에서 라이히가 맑스주의자들을 비판하고 있는 오토 슈트라서(1897-1974)를 인용하고 있는 대목이다. 참고로, 그레고르와 오토 슈트라서 형제는 나치당 형성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이들로서 바이에른의 중산층 출신이고 1920년 신생 나치당에 입당, 1923년 히틀러의 '비어 홀 폭동'에 참가했다. 히틀러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레고르는 불법화된 나치당을 이끌었고, 설득력 있는 대중 연설가이며 타고난 조직가였던 그는 동생 오토와 함께 요제프 괴벨스의 도움을 받아 대중운동을 조직했다. 그들은 민족주의적·인종주의적인 색채가 가미된 사회주의를 역설함으로써 중하층 계급과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해서, 1928년 이후 나치당이 얻은 대중적 지지는 부분적으로 이들 형제의 노력에 기인한 것이었다고 한다(하지만, 이후에 이들은 히틀러의 노선에 환멸을 느껴서 탈당하게 되며, 그레고르는 1934년 에른스트 룀의 숙청기간에 살해되었고, 오토는 간신히 탈출하여 캐나다에 정착했다가 1955년 독일로 돌아와 정계복귀를 기도했지만 실패했다 한다). 

 

그는 무어라고 연설했는가: "당신들 맑스주의자들은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서 맑스의 이론을 즐겨 인용한다. 맑스는 이론을 실천에 의해서만 검증된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당신들은 항상 노동자 인터내셔널의 실패에 머무르고 있다.(...) 1880년 이후 실천을 통한 사회혁명의 가르침에 대한 검증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에 대한 오세철본의 번역: “마르크스주의자 당신들은 당신들의 방어를 위해 마르크스의 이론을 인용하기를 좋아한다. 이론은 실천에 의해서만 입증된다고 마르크스는 가르쳤으나 당신들의 마르크스주의는 실패로 판명되었다. 당신들은 항상 노동자 인터내셔날의 실패에 대한 설명에 머무르고 있다.(...) 80년이 지났는데도 사회혁명 이론구체적인 확신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39쪽)

 

그리고 영역본: "You Marxists like to quote Marx's theories in your defense. Marx taught that theory is verified by practice only, but your Marxism has proved to be a failure. You always come around with explanation for the defeat of the Workers' International.(...) Eighty years have passed, and where is the concrete confirmation of the theory of social revolution?"(5쪽)

 

 

 

 

 

 

  

 

 

 

굵은 글씨는 일단 차이가 나는 대목들인데, 비교해 보면 알겠지만 일단 황선길본에서는 '당신들의 맑스주의는 실패로 판명되었다'란 대목이 누락됐다. 그리고, "80년이 지났는데도"가 "1880년 이후"로 옮겨졌다. 나는 이 대목을 읽고 처음에는 오세철본이 오역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지만, 영역본과 러시아어본에서 모두 '1880년'이 아니라 '80년'이라고 돼 있었다. 연설시점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기점을 <공산당선언>(1848)으로 삼은 게 아닐까 싶다. 이후 80년이면, 대략 1928년 이후가 되며 슈트라서 형제가 활동하던 시기이다. 그렇다면, '1880년 이후'란 번역은 픽션에 속한다. 나머지 '사회혁명의 가르침' 대 '사회혁명의 이론'이나 '검증' 대 '구체적 확신' 등의 차이가 선택적인 걸로 용인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고작 몇 페이지를 읽은 소감이긴 하지만(역자는 열번 이상 읽지 않았을까?), 모처럼 출간된 <파시즘과 대중심리>의 새 번역본이 기대에 값한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필요한 대목들이 2판에서라도 수정/교정되어 라이히 정본으로서 널리 읽히고 인용되기를 기대해본다.   

 

06. 01. 18.

 

 

 

 

 

 

 

 

 

P.S. 몇 페이지밖에 안 읽었어도 건질 건 건져야겠다. 당대 맑스주의의 문제점(결점이면서 태만)을 꼬집으면서 라이히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이런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맑스주의적 정치는 그 정치적 실천에 있어서 대중들의 성격구조와 신비주의의 사회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36쪽) 그렇다면, 거꾸로 라이히가 이 책에서 고려하고자 하는 것도 분명해진다. 그것은 '대중의 성격구조'와 '신비주의의 사회적 영향'이다. 여기서 '신비주의'란 '파시즘 이데올로기'를 가리키는바, 그 '영향'이란 건 이데올로기의 '물질적 힘'이다. 이제나 저제나 좌파 관념론자들이 간과하거나 사고하지 못하고 있는 어떤 것 말이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Joule 2006-01-18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서재에 가져가서 볼게요.

Joule 2006-01-18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참, 홀링데일의 니체요. 루 잘로메 말고 나머지 번역상태는 괜찮은가요.

로쟈 2006-01-18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홀링데일의 책은 도서관에서 대출했다가 바로 반납했기 때문에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책은 아니므로 별 문제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lefebvre 2006-01-18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글을 로쟈님 글 앞쪽으로 옮겨놓았습니다. 이유는......양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

로쟈 2006-01-18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문점들을 해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라이히의 독일어 수고를 직접 옮긴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번역의 의의를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독일에도 없는 책이죠!) 한데, 이미 나와 있는 독어본, 영어본들이 수고본과 결정적인 차이를 갖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심사항이 될 만한 것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의미있는 차이'일 경우, 아마 역자도 기존의 독어본을 같이 참조했을 터이므로 국역본에서 언급해주었더라면 보다 완벽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1)'민족사회주의'는 제가 의문을 제기한 게 아니고 (2)'자유를 위한 출격준비'는 라이히의 '시적인' 표현으로 이해하면 되겠군요.^^ (3)그렇다면, '사회적 사건'에 대해서만 옮긴이와 '해석'을 달리하는 듯합니다. '독일 파시즘(즉, 나치즘)의 등장과 성공'에만 국한된다고 보진 않지만, 그 경우에도 '특정한 사건'이라기보다는 일련의 '흐름'이나 '진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4)'정확성'과 '정당성'도 선택(해석)의 문제로 보이며, 저는 어느 한쪽이 오역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본문에서도 오역이라고 하진 않았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사소한 '옥에 티'도 커보이는 걸로 생각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瑚璉 2006-01-18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접 옮기신 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느니 참 좋군요.

그런데 로쟈 님께 하나만 질문드리자면, 저로서는 정확성과 정당성을 상호교환이 가능한 개념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만 저 개념들이 선택이 가능한 것일까요? (그냥 딜레탕트의 질문으로 간주해 주십시오)

로쟈 2006-01-18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말에 '맞다' 같은 경우 '옳다'의 함의도 갖기 때문에 '정확성'과 '정당성'을 모두 가리킬 수 있습니다. 영어의 'correct'에도 두 가지 뜻이 다 있구요. 우리말이 '너무 예민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