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 루마니아 출신의 작가 에밀 시오랑(E. M. Cioran, 1911-1995)에 대한 글을 몇 마디 적고자 했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계속 미루어졌었다(밀린 일들이 어디 한둘이랴!). 그리고, 도서관에서 대출했던 책 <독설의 팡세>(문학동네, 2004, 원제는 '고뇌의 삼단논법' 정도)을 다른 책을 대출하기 위해서 부득이 오늘 반납해야 했다. 해서, 아쉬운 마음에 몇 가지 메모만을 남겨둔다(세번째 이미지는 <고뇌의 삼단논법> 불어본(1952)이고, 네번째는 <존재의 유혹> 영역본, 그리고 마지막은 손택의 에세이집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Styles of Radical Will)>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폭발한다(Cogito ergo Boom)"는 물론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비튼 것인데, 이 새로운 명제의 출처는 수잔 손택의 시오랑론 '반(反)자기 사고 - 찌오런에 관한 고찰'(<급진적 의지의 스타일>(현대미학사, 2004)에 수록돼 있다)이다. 지나가는 김에 덧붙이자면, 국역본에서 '시오랑'이 루마니아 원음에 따라 '찌오런'이라고 표기된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원음주의'의 환상에 대해서는 자주 지적한 바 있다). 루마니아 태생이긴 하지만, 20대에 파리로 건너와 그가 평생을 산 곳은 프랑스 파리이며 이후에 대부분의 에세이도 루마니아어가 아닌 새로 배운 '불어'로 썼기 때문이다('외국어'로 글을 쓰는 일에 대해서 시오랑 자신이 비통해 했지만). 게다가 다른 번역본들과의 일관성 문제도 있다. 참고로 러시아어본들에서는 '시오란' 혹은 '쵸란'이라고 표기한다.

 

손택의 에세이는 영역본 <존재에의 유혹> 서문으로 씌어졌는데, 1960년대 중반에 나온 이 글이 영어권 최초의 본격적인 시오랑론이라고 한다.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 내가 쓰고자 했던 글의 제목이, 시오랑의 세계를 잘 요약해준다고 판단되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폭발한다"이다.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가 근대철학의 개시를 선언하는 것이었다면, 시오랑이 미덥잖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 코기토의 불철저성이다. 그에 따르면, "철학의 잘못은 너무 참을 만하다는 것이다."(<독설의 팡세>, 39쪽) 사유를 철저하게 극단에까지 밀어붙인다면, 그것은 '존재'를 통과하여 의당 '폭발'에까지 이르게 되지 않을까?

 

가령, 칸트의 비판철학을 떠받치고 있는 아포리아들을 하루만 물고 늘어져보아도 머리가 지끈지끈거릴 것이다. 세계는 유한한가, 혹은 무한한가에 대해서 우리는 무얼 사유할 수 있는가? 아이가 아이였을 때 흔히들 묻곤 하는 '왜 나는 나이고 너가 아닌가?'란 물음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대답으로 위안을 삼아야 하는가? 어떤 원리로부터 연역되는 가능한 철학적 귀결들을 그냥/마냥 참아낼 수 있는가? 하지만, '참을 수 없는 철학의 참을 만함'을 더이상 참지 못할 때, 우리는 '폭발'한다.

 

Emil Mihai (Michel) Cioran

 

때문에, 시오랑의 아포리즘들은 어떤 사유의 응집으로서가 아니라 그러한 폭발의 잔재로서 읽혀야 한다. 즉, 그의 아포리즘들이 지시하는 것은 사유가 아니라 사유의 종말로서의 폭발이다. '루마니아 출신의 작가, 철학자, 에세이스트'라는 백과사전의 정의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말하자면, '시오랑, 혹은 폐허의 철학자'로 이름붙일 수 있을까? 마치 폴란스키의 영화 <피아니스트>(2002)에서 폐허의 한가운데 놓였던 피아니스트 스필만을 떠올리게 한다. 혹은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1979/2001)의 한 장면. 하긴 그는 하루하루를 묵시록적 예언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기도 하다: "매일 최후의 심판이 내일이라고 약속해주는 나의 광기. 그 자비심이 없다면 나는 한 나절이라도 견딜 수 있을까?"(45쪽)   

 

 

시오랑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건 내 기억에 1990년대 초반쯤 계간 <작가세계> 특집을 통해서였다. 나는 대번에 그의 아포리즘들에 끌렸고, 곧이어 출간된 <절망의 맨끝에서>(에디터, 1994; 강, 1997), <내 생일날의 고독>(에디터, 1994) 등도 반가운 마음에 사서 읽었다. 한데, 시오랑론을 쓰기 위해서 필요한 한국어 번역본들은 대부분 제목의 선정에서부터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불어본들을 읽고 쓸 수는 없지 않은가? 90년대 후반 이후로 영역본들이 많이 나와 있길래 작년말에 도서관에 대거 주문을 넣은 것 정도가 나의 성의 표시이다. 3권의 러시아어본도 갖고 있는데, 모음집이어서 작품수로는 7-8권 가량이다. 대부분이 아포리즘집 형태인 만큼 시오랑의 책들은 두껍지 않다).

 

가령, <독설의 팡세>도 비록 그런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손 치더라도 원제와는 동떨어진 것이며, <내 생일날의 고독>은 원제가 '태어남의 잘못(=불편)'에 대하여'이고, <세상을 어둡게 보는 법>(이땅, 1992) 혹은 <동구로 띄우는 편지>(이땅, 1990)의 원제는 <역사와 유토피아>이다. <노랑이 눈을 아프게 쏘아대는 이유>(산수야, 1995)의 원제가 <고백과 저주>라는 걸 어찌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러니 수면제 대용이 아니라면(실제로 시오랑은 거의 평생을 불면증에 시달렸다) 국역본들을 읽고 제대로 된 시오랑론을 쓴다는 건 치기에 가깝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아직 시오랑에 대한 글을 완성하지 못하고, 그 빚을 다 탕감하지 못하는 이유이자 변명이기도 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폭발한다"를 가지고 모두 입막음이 되는 건 아니다. 내가 진 또다른 빚은 '눈물의 일반이론'에 관한 것인데, 예전에 같은 제목으로 역시나 '변명'에 해당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거의 10년쯤 전의 일이다. 부분적으로 따라가본다.

 

 

"나는 울고 싶은데 神은 내게 계속 쓰라고 명령한다. 그는 내가 빈들거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내 처는 줄곧 울고 있다. 나 역시 운다. 나는 의사가 와서 내가 쓰고 있는 동안 아내가 울고 있다고 말할까봐 불안하다. 나는 그녀에게 가지 않겠다. 내게 책임이 있는 건 아니니까. 내 어린것은 온갖 것을 보고 듣는다. 그 애가 나를 이해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나는 키라를 사랑한다. 내 어린 키라는 자기에 대한 나의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그 애 역시 내가 앓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에게 그렇게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 애는 내게 내가 잘 잤는지의 여부를 묻는다. 그러면 나는 내가 언제나 잘 잔다고 말해준다. 나는 무얼 써야 할지를 모르겠는데 神은 내게 쓰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결함을 지녔다. 나는 인간이다. 神이 아니다. 나는 神이 되고자 한다. 그러므로 나는 나 자신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나는 춤을 추고 싶고 그림을 그리고 피아노를 치고 시를 쓰고 싶다.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 이것이야말로 내 생의 목표이다."(니진스키,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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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관에 뚜껑이 덮였다. 못이 꽝꽝 박히고 짐마차에 실렸다. 마차는 삐걱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거리가 끝나는 데까지밖엔 전송하지 않았다. 마부가 채찍을 휘둘렀다. 말은 속보로 달리기 시작했다. 노인은 그 뒤를 쫓아가면서 어이어이 소리를 내어 울었다. 뛰어서 쫓아가느라고 그 울음소리는 몹시 떨렸고 가끔 끊어지기도 했다. 가엾은 노인은 모자를 떨어뜨렸지만 그것을 집으려고 멈추어서지도 않았다. 비가 그의 맨머리를 적셨다.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노인은 그런 것쯤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어 울며 마차의 이쪽저쪽을 겅중겅중 뛰어서 왔다갔다했다. 낡아빠진 프록코트의 옷자락은 날개처럼 바람에 나부꼈다. 호주머니란 호주머니에서는 책들이 비죽이 기어나오고 무슨 책인지 커다란 것이 한 권 소중하게 쥐어져 있었다. 길가는 사람들은 모자를 벗고 성호를 그었다. 어떤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놀란 얼굴로 이 가련한 노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책들은 쉴새없이 호주머니에서 진창으로 굴러떨어졌다. 사람들이 그를 불러 세워 물건을 떨어뜨렸다고 가르쳐주었다. 노인은 그것을 집어들고는 다시 마차 뒤를 쫓아갔다. 길모퉁이에서 어떤 거지 노파가 그에게 손을 내밀며 들러붙더니 함께 관 뒤를 따라갔다. 드디어 마차는 모퉁이를 돌아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도스토예프스키, <가난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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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글맞기도 하지만 괜히 잘 우는 사람들이란 고정관념을 나는 러시아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이 두 러시아인 댄서/작가에게 힘입은 것이라는 걸 부인하지 않겠다. 사실 러시아 문학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런 그들의 정서가 나에게 맞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다지 잘 우는 편은 아니지만,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력에 대한 고백으로서의 울음이 우리 생의 첫 발성(언어)이었다는 사실에 언제나 감동받는다. 외롭고 힘들어 지칠 때마다, 우리가 이 근원의 장소를 찾아가고 이 원초적 정념에 호소한다는 사실에 언제나 고무받는다.

 

 

예컨대, <파리, 텍사스>(1984)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가정이 파탄나자 트래비스는 자신이 잉태되었던 바로 그 근원의 장소로서 '파리'(프랑스의 파리가 아니라 텍사스의 파리이다)를 찾아 사진 한 장을 들고 황량한 텍사스 사막을 헤맨다. 그의 그런 행위에 의해 물리적으로 동질적인 어떤 공간이 '파리 Paris/텍사스 Texas'로 분절된다. 이 분절은 성(聖)/속(俗)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의미론적이고 구제론적인 것이다. 이 고질적인 의미론/구제론은 아주 인간적이고 너무도 인간적이다. 우리는 그리 돼먹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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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번도 울어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나의 눈물들은 생각들로 변했기 때문이다. 이 생각들은 눈물과 마찬가지로 쓰라리지 않을까?" 이것은 루마니아의 작가 에밀 시오랑의 말이다. 철학을 공부하다가 그만둔 그는 1937년 파리로 건너가서 이후 죽을 때까지 인근의 창녀들이 야밤에도 소란을 피우는 싸구려 호텔 다락방에 은둔하며 살았다. 그가 철학을 그만둔 데에는 한 가지 일화가 있다.

 

칸트와 피히테, 쇼펜하우어, 베르그송을 읽으면서 철학을 제외하곤 시에도 무관심했던 그는 남들처럼 논문을 쓰기로 결정하고 어떤 주제를 고를까 고심했다. 그리고는 진부하면서 뭔가 독특한 주제를 찾았다고 생각해서 지도교수에게 달려갔다. "'눈물의 일반이론'이 어떻겠습니까? 그건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가능이야 하겠지. 하지만 참고문헌을 찾는 게 어렵지 않겠나." 이에 "그건 문제가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 전체가 논문의 근거가 되니까요." 그는 자신에 차서 말했다. 그러자 지도교수는 경멸에 찬 시선을 보냈고, 그는 그 순간 철학에 대한 모든 기대를 포기한다.

 

그의 말: "나는 철학이 어려움에 처한 인간에게 아무런 말도 할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철학은 인간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법을 가르치지만 결국은 인간을 각자의 운명속으로 내팽개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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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젠가 나 자신이 그런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오랑이 포기한 '눈물의 일반이론'이란 것. 현재 이러고저러고 하는 것의 대부분은 이 '눈물의 일반이론'을 위한 연습이고 밑그림이라는 생각도 한다. 거꾸로 철학에 대한 나의 관심은 이에 근거한다. 어려움에 처한 인간에게 아무런 말도 할 게 없는 철학의 무능력 자체는 바로 우리의 무능력을 닮은 것이다. 우리는 거기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무엇을? 내던져지고 내팽개쳐진 각자의 운명(시오랑은 해체de-composition라고 부른다. 이 해체가 그의 글쓰기 양식을 규정한다.) 속에서, 각자의 눈물 속에서 의미있는 일반이론, 즉 연대(solidarity)를 끌어내는 일 말이다. 개인의 울음을 집단의 통곡으로 바꿔놓는 일 말이다. 언젠가는.

 

그 '언젠가'는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도 유예상태이다. 핑계로 무덤을 세웠다면 거의 마을묘지 수준이 되겠다. 다만, 시오랑에 기대어 말하자면, "우유부단하다는 것은 정직하다는 표시이고, 무언가에 확신을 갖는다는 것은 사기의 표시이다."(37쪽) 그러니 나의 우유부단이 죄악이 될 수는 없겠다. 바로 앞에서 시오랑의 철학도 시절 일화를 소개했는데, 출처를 따진다면 바로 <독설의 팡세>에 나오는 내용이었다. 다른 역자의 번역이기에 전문 인용해보겠다(내용은 비교해 보시길).

 

경험부족으로 철학에 취미를 갖게 되었던 나이에,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논문을 쓰기로 결심했다. 어떤 주제를 선택할 것인가? 나는 진부하면서도 동시에 특이한 주제를 원했다. 그것을 찾았다고 믿었을 때 나는 서둘러 스승에게 알렸다. "눈물에 대한 일반이론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수준으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군. 그러나 참고문헌을 찾기 곤란할 텐데." "상관없습니다. 역사의 권위가 뒷받침해줄 것입니다." 나는 무례하고도 당당하게 대답했다. 조급한 스승이 내게 경멸의 시선을 던졌을 때, 나는 내 안에서 그의 제자를 죽이기로 결심했다.(51-2쪽)

 

 

비록 계획했던 '눈물의 일반이론'은 아직 못 쓰고 있지만, 나는 전공관련으로 논문을 쓸 때마다 시오랑의 일화를 되새기곤 한다. 적어도 내가 살아온 삶의 내적 요구에 부응하는 주제들에 대해서만 쓰겠다는 것(시오랑과 달리 나는 참고문헌도 열심히 찾는다!). 그건 책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폭발한다"란 주제의 시오랑론을 쓰는 것도 그러한 요구의 하나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살아온 만큼 살아가기도 해야 한다는 것. 어쨌거나 (당분간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이건 또다른 요구이다. 이 둘 사이에서 내가 짜낼 수 있는 묘안은 이런 류의 페이퍼로 잠시 자리를 데우는/때우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릿광대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있으니까."(34쪽)

 

06. 0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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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1-20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핑계로 무덤을 세웠다면 거의 마을묘지 수준이 되겠다, 에서 한참 웃었네요.
저는 아마 국립묘지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묘비명에는 게으름이라는 단어에만 볼드 처리되어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로쟈 2006-01-20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파님/ 이보 안드리치를 전공하시나요? <드리나강의 다리>를 읽을 때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