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의 필요성이 없어지면서 쏟아져나오는 신간들에 대해 참견할 자리가 마땅치 않았는데, (구당이 명당이라고) '최근에 나온 책들'을 마저 연재하기로 한다. 한 넉달은 쉰 듯한데, 그렇다고 그간에 뭔가 재충전된 건 아니며 단지 에드워드 로렌츠의 <카오스의 본질>이 신간으로 나온 걸 보고서 문득 연재에서 다루고픈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사람의 뇌 또한 '카오스의 가장자리' 아닐까?). 그럼 시작해보기로 할까? 

 

 

 

 

제일 먼저, 에드워드 로렌츠의 <카오스의 본질>(파라북스, 2005)이 출간됐다. 이게 '드디어'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데, 카오스이론, 혹은 복잡계이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인 '에드워드 로렌츠'를 저자로 한 책이어서 무엇보다도 그냥 반갑다. 로렌츠란 성으로 더 잘 알려진 이름은 '콘라트'이지만, '나비효과'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에드워드'란 이름도 함께 기억해두는 것이 형평에 맞겠다.

소개에도 나와 있지만, "'브라질에 있는 나비가 한번 날갯짓을 하면 텍사스에 토네이토가 분다' 이는 최근 들어 동명의 영화 등을 통해 너무나 잘 알려진 '나비효과'의 유명한 명제이다. 하지만 이것이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에 필적한다고 평가받는 카오스 이론의 장을 연 논문 제목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물론 이러한 사실을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인 <카오스>(누림, 2006 *새로 나왔군!)의 저자 제임스 글릭은 빼놓지 않고 있으며(역자 박배식 교수는 <카오스의 본질> 또한 우리말로 옮겼다), 최근에 재출간된 <카오스에서 인공생명으로>(범양사, 2006)에서도 저자 미첼 월드롭이 언급했던 기억이 있다. 기상학자 로렌츠와 그의 '이상한 끌개'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소개에서 언급되는 있는 영화는 애쉬턴 커쳐가 나오는 영화 <나비효과>를 말한다.

 

이번에 약간 놀란 건 로렌츠의 나이가 생각보다 많은 것. 1917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90세이다. 책에서 읽을 때의 '젊은 기상학자'가 더이상 아닌 것이다.

로렌츠의 원저는 1993년에 나왔으며, 일역본은 1997년에 나온 것으로 돼 있다. 카오스이론에서만큼은 우리가 일본보다 10년 정도는 뒤처지는 것 같은데, 이게 그저 '인상'일 뿐일까?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카오스이론이나 복잡계과학에 관한 번역서들 가운데는 일본책들이 적지 않다. 국내에서는 수학자 김용운 교수의 책 정도가 눈에 띌 따름이다. 벌써 10년쯤 전에 유행을 탄 카오스이론이지만, 스튜어트 카우프만의 <혼돈의 가장자리>(사이언스북스, 2002)나 <카오스의 본질> 같은 주요 저작들이 번역된 김에 한번쯤 '뒷북'을 쳐보는 것도 의미있어 보인다. 피서객들이 다 빠져나간 백사장을 되밟다보면 간혹 동전들 이상의 횡재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조금 복잡해보이지만, 사실 정재승 교수의 베스트셀러 <과학콘서트>의 내용 대부분이 이 카오스이론/복잡계과학과 연관된 것들이다. 콘서트장의 연주를 즐기는 것 이상을 원한다면, 이제 '악보'를 찬찬히 들여다볼 수도 있겠다.

 

 

 

 

최근에 나온 과학서들 가운데, <뇌가 나의 마음을 만든다>(바다출판사, 2006)도 눈길을 줄 만한 책이다.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세계의 뇌 과학자 중 한 명인 라마찬드란 박사가 BBC의 ‘리스 강연’에서 행한 내용을 담고 있다. 라마찬드란 박사는 환상사지나 공감각 같은 희귀한 신경이상 사례들을 통해 우리 뇌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더 나아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자유 의지란 무엇인가?’. ‘자아란 무엇인가?’ 같은 이제까지 철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여겨졌던 질문들에 대해 외 과학자로서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며,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문화의 연결을 시도한다." 그러니 읽어봄 직하다. 뇌과학 관련서들이 근래에 부쩍 눈에 띄는데, 사실 게놈프로젝트 이후에 꼽을 만한 메가프로젝트란 대뇌지도 만들기 아니었나? 그게 얼만큼 진행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하다.

 

 

 

 

그리고, 두번째 책은 영국 비평가 매슈 아널드/아놀드(1822-1888)의 <교양과 무질서>(한길사, 2006). 아널드 전공자인 윤지관 교수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기억에, 아널드에 대한('Arnold'를 꼭 '아널드'라고 표기해야 할까?) 박사학위논문을 펴낸 <근대사회의 교양과 비평>(창비, 1995)이 10년도 더 전에 나왔으니까 본 저작에 대한 소개 자체는 상당히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 전에 <삶의 비평>(민지사, 1985)이란 아널드의 책이 한번 소개된 걸로 돼 있지만, 본격적인 것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번에 나온 <교양과 무질서>는 어떤 책인가? 소개를 좀 따라가본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인 지식인 매슈 아널드는 당대의 사회적 갈등과 계급현실에 대한 처방으로 '교양(culture)'의 이념을 내세운 것으로 유명한 문학비평가이다. 오늘날 '교양' '교양인' '교양교육' 등의 개념을 널리 사용하게 된 배경 중 하나로 매슈 아널드를 꼽아도 무방할 정도라고 한다. <교양과 무질서>는 그런 매슈 아널드의 사상을 집약한 정치·사회평론서이다." 그러니가 '교양의 원조'라 할 수 있겠다.

"<교양과 무질서>는 1867년부터 당시의 사회·정치적인 쟁점을 두고 매슈 아널드가 1년 이상 벌인 논쟁문을 묶은 책이다. 차티스트 운동이나 각종 법률의 제정 등 정치적·경제적 개혁이 진행되고 있던 당시 빅토리아 사회는 거대한 변화의 과정에 있었고, 그 과정에서 대중교육 문제가 커다란 사회적 과제로 등장한다. 이러한 당시 사회의 갈등과 혼란을 '무질서'로 규정하는 지은이는 그 대안으로 '교양'을 제시한다. 노동계급을 포함, 파당성에 사로잡혀 '무질서'를 일으키는 중간계급을 '속물'이라고까지 비판하는 매슈 아널드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 많은 파란을 일으킨다. <교양과 무질서>에서 지은이는 이러한 반론에 하나하나 반박하며 자신의 교양 개념을 자세히 설파한다. "교양이란 우리의 고정관념과 습관에 신선하고 자유로운 생각의 줄기를 갖다대는 것"이라고 말하며 교양의 시대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널드의 정치적 입장은 오늘날의 스펙트럼에서 볼 때 중도보수에 가깝지 않나 싶다(여러 번 언급했지만, 우파의 교양론에 대응하는 것은 좌파의 품성론이다). 단, 이 보수주의의 자격조건이 교양(culture)이며, 그게 결여된 이들을 통칭해서 '속물(philistines)'이라고 칭하는 것. 그러니까 우리 주위에서 유감스러운 것은 '교양 대가리'라곤 없는 속물적인 우파들이 보수주의를 떠들어대는 것이다. 물론 아널드의 분류에 따르자면 속물적인 좌파들 또한 비판에서 열외가 되는 것은 아니겠다. 사실 이러한 교양주의가 '창비'와 보다 급진적인 노동/민중문학론자들을 가르는 입각점이 아니었나 싶다. 한편, 아널드가 폄하해마지 않는 '무질서'에 대해서는 '다른 과학', '다른 지배자'가 필요한 듯하며, 참조할 만한 책 몇 권을 나열해보았다.   

 

 

 

 

세번째 책은 촘스키와 함께 미국의 '좌파적 교양'을 책임지고 있는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대표작 <미국민중사>(시울, 2006)이다. 예전에 <미국민중저항사>(일월서각, 1986)이라고 나왔던 책의 개정판인데, 20년만에 나온 것이니까 어느덧 '한 세월'을 감당한 책이기도 하다. 이로써 하워드 진에 대해서만큼은 '연장 탓'이 통하지 않게 되었다. 읽을 수 있는 만큼 읽으면 되는 것이다.

잠시 소개를 옮겨오면,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 <오만한 제국> <전쟁에 반대한다> 등의 책들을 통해 노엄 촘스키와 함께 미국의 가장 대표적인 실천적인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역사학자 하워드 진.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지향하며 민중의 시각으로 미국사 전체를 읽어낸 <미국민중사>는 그의 역사학자로서의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난 역작으로, 1980년 첫 출간 이래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대표적인 저서이다." 미국에서도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민중사'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이 미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미국을 구성하는 일반 사람들에게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그 미국의 민중은 누구를 뜻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처음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청도교인이나 지배층의 부유한 백인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책은 오히려 기존 역사의 현장에서 소외된 이들에 더 주목하고 있다. 나아가 책은 소외된 이들의 시각을 적극적으로 끌어온다. 예컨대 콜럼버스의 아메리칸 대륙 발견에서 하워드 진은 인디언 부족인 아라와크족의 시각을 빌려온다. 그리고 헌법제정의 역사에는 노예의 관점을, 산업주의 발흥의 역사에는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들의 관점을, 멕시코 전쟁의 역사에는 탈영병들의 시각을, 뉴딜의 역사에는 할렘 흑인들의 관점을 도입한다." 이러한 관점들을 중재해줄 수 있는 객관적 시점이라는 게 과연 가능한가, 그런 의문을 갖게 한다. 정복자와 피정복자가 서로 동의할 수 있는 역사? 진의 표현을 빌자면,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뜻있는 건 이번에 데이비드 조이스의 평전 <하워드 진>(열대림, 2006)이 같이 출간된 것. "노암 촘스키와 더불어 '실천적 지식인',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하워드 진의 생애와 저술을 다룬 전기"로서 "책은 주로 민권 운동과 반전 운동에 중점을 두고 진의 생애를 돌아본다. 전기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지은이는 진의 삶이 보여주는 궤적 속에서 그의 주요 저서를 소개하고, 그의 혁명적 사상을 분석하며, 그의 삶과 업적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평가한다." 그러니 길잡이로서 유익하겠다. 물론 하워드 진의 자서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이후, 2002)와 나란히 읽으면 더 좋겠다. 참고로, 미국사 관련서들을 몇 권 나열해 보았다.  

 

 

 

 

네번째 책은 고모리 요이치의 소세키 평전 <나는 소세키로소이다>(이매진, 2006)이다. 제목은 소세키의 대표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따왔는데, 이 일본근대문학의 태두를 다루고 있는 저작이 이번에 처음 나온 건 아니지만, 저자가 <포스트콜로니얼>(삼인, 2002)의 저자 고모리 요이치라는 게 눈길을 끈다. 현재 도쿄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인 저자는 가끔씩 내한강연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일본의 내셔널리즘에 대해서 적극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는 고모리 교수의 문학비평가로서의 솜씨를 구경해볼 수 있는 책이겠다.

 

 

 

 

소개에 따르면, "일본 근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나쓰메 소세키 평전. 금전, 호적, 우정, 사랑, 영국 유학 등 다양한 요소들을 동원해 소세키와 그의 작품을 해석하고 평가한다. 폭넓고도 치밀한 연구를 통해, 소세키라는 필명을 얻기 전의 '나쓰메 긴노스케'의 삶을 드러내고자 했다. 어릴 때 친부모와 양부모에게 버림받은 기억, 런던 유학 시절에 고향에서 죽어가는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죄책감, 다섯 번의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 최초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부터 마지막 장편 작품인 <한눈팔기>, 필생의 역작으로 꼽히는 <문학론>과 '자기본위'라는 말로 유명한 강연 <나의 개인주의>까지, 지은이는 소설 속에 조각조각 나뉘어 숨어 있던 소세키의 삶을 하나하나 짚어낸다"

일본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출세작도 소세키론이었다는 걸 염두에 두면, 일본비평가들에게 작가 나쓰메 소세키는 자기입증을 위한 척도 같은 게 아닐까도 싶다(과문했던 나는 국내에서 소세키가 유행을 타기 전 아쿠다가와, 미시마 유키오, 다자이 오사무 등이 일본근대문학을 대표하는 걸로 알았다). 프랑스문학쪽으로 가면 마르셀 프루스트나 사뮤엘 베케트 같은 경우가 그런 듯싶은데, 쟁쟁한 비평가나 철학자들이 이들에 대한 연구서들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문학의 경우는 어떠한가? 어느 작가론을 써야 비평가로서 자기존재를 입증할 수 있나?.. 

 

 

 

 

끝으로 마지막 책은 사랑 이야기이다. '중세 최대의 연애사건'으로도 불리는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책이 <내 사랑의 역사>(북폴리오, 2006)로 또 출간된 것이다. 원제는 '엘로이즈와 아벨라르'(2003) 순절한 사랑의 대명사가 된 이 커플의 이야기는 어떤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일까?

"12세기 프랑스의 수녀였던 엘로이즈는 중세 철학의 대가이자 성직자인 아벨라르와 숙명적이고도 질긴 사랑을 나눴다... 12세기 초, 파리의 열혈 논객이었던 아벨라르는 성당 참사관인 퓔베르의 집에 하숙을 청하고, 퓔베르의 조카딸이었던 엘로이즈를 가정교사로 맞게 된다. 스승과 제자 사이로 만난 이들은 곧 육체에 대한 탐닉과 사랑에 빠져 비밀결혼을 하고 아들까지 낳게 되지만, 이 사실을 안 퓔베르는 아벨라르를 거세시키는 것으로 복수를 한다. 이후 두 사람은 헤어져 수도승과 수녀로 살아가게 되지만 15년 후 다시 만나게 된다. 사랑과 종교, 철학이 어우러진 이들의 삶은 어떻게 끝맺게 될까?..."

이번에 나온 "책은 최근에 발견된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편지 뭉치와 각종 사료를 바탕으로 두 사람의 삶을 마치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풀어나간다"고 한다. 이미 이전에 출간된 독어권의 책 <중세 최대의 연애사건>(생각의나무, 2005)과 나란히 읽으면 이들의 사랑을 훔쳐보는 데 더 도움이 되겠다.  

한편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거나 변주한 책들도 적지 않은데, 장 자크 루소의 <신 엘로이즈>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겠다. 생각보다는 방대한 분량인데다가 그만한 문학성을 갖추고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루소와 누벨 엘로이즈>(만남, 2002) 같은 연구서만 달랑 하나 갖고 있다는 건 좀 궁색한 일이다. 예전에 출간된 루소전집에 들어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새 번역본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사랑의 역사'가 좀더 번듯하게 채워질 수 있도록... 

06. 09. 05-06.

P.S. 참고로, 아널드의 <교양과 무질서>에 대한 서평 하나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6. 09. 09) 어지러운 사회 바로잡는 힘

-19세기 영국의 시인이요, 비평가였던 매슈 아널드(1822~88)의 <교양과 무질서>가 아널드 전문가에 의해 번역·출판됐다. 우리가 이 책의 출간을 반갑게 여기는 것은 이 문화·사회·정치 비평의 고전에서 아널드가 펼치고 있는 논설이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데에도 여러모로 의미 있는 시사를 던져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아널드의 시대에 영국은 산업혁명의 여세로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한편 정치적 개혁과 사회적 변화에서 야기되는 혼란과 무질서를 겪고 있었다. 더욱이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제시된 진화론을 비롯한 과학사상은 오래된 맹목적 신앙을 뿌리째 흔듦으로써 엄청난 정신적 의혹과 혼란을 초래했다. 그러므로 아널드가 ‘도버 해변’이라는 유명한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꿈속의 땅처럼 눈 앞에 펼쳐진 세계/다채롭고, 아름답고, 싱그러우나/실은, 그 속에 기쁨도, 사랑도, 빛도/확신도, 평화도, 고통을 위한 도움도 없네./우리의 이 어두워 가는 평원엔/갈등과 패주의 경적이 어지럽고/밤마다 무지한 군대들이 충돌하고 있을 뿐”이라고 노래했던 것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아널드의 혼란 인식은 이런 일반론에만 머물지 않고 그 나름의 구체성을 띠고 있다. 특히 귀족, 중간 계급 및 노동 계급 등 이른바 3대 계층에 대한 그의 인식에는 각별한 데가 있다. 그가 보기에, 귀족들의 개인적 자유 및 야외 스포츠 선호는 그 뿌리가 야만성에 있었고, 그 자신이 속한다고 여겼던 중간 계급은 온통 속물주의로 물들어 있는가 하면, 거칠고 무식한 노동계층은 우중(愚衆)이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무질서는 필연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사회현상이었다.

-아널드는 중간 계층이 사회 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 계층은 물질주의에 물든 채 가난한 계층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하고 부도덕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당대 중간 계층의 도덕적 지주이던 청교도 정신이 편협하고 무미건조하기만 했다. 뿐만 아니라 아널드는 당대를 풍미하던 자유방임주의가 정치적 편견과 무책임으로 흐를 가능성을 경계했는데, 이는 제2장 ‘내키는 대로 하기’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가 지도자적 자질의 필수 덕목으로서의 교양을 강조하게 된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실로 교양이야말로 사회의 모든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 방안이라고 그는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 교양은 무엇보다도 ‘완성에 대한 공부’이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즐거움을 위해서 보려는 욕망’과 ‘세상을 지금보다 더 낫고 행복하게 하려는 숭고한 열망’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교양은 단순히 희랍어나 라틴어 문헌을 겉핥기할 수 있는 능력이나 순수한 과학적 지식을 의미하지 않고 삶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과 선을 행하는 도덕적 힘을 의미했다.

-이런 의미에서 아널드가 이 책에서 ‘단맛과 빛’이라는 말로 제1장의 제목을 삼은 것은 아주 시사적이다. 조너선 스위프트는 일찍이 꿀벌의 덕성을 논하면서 꿀벌은 인간에게 꿀을 제공해서 단맛을 볼 수 있게 하는 한편 밀랍을 제공하여 촛불을 켤 수 있게 한다고 한 적이 있다. 여기에서 아널드가 ‘단맛’과 ‘빛’이라는 스위프트적 은유를 빌려서 교양의 속성을 규정하는 동시에 중간 계층이 바로 이 단맛과 빛을 결여하고 있음을 개탄한 것은 아주 흥미롭다.

-아널드가 말하는 단맛과 빛은 그 성격에 있어서 인간의 헬레니즘적 성향과 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의 완성 또는 구원’이라는 지상 목표를 위해서는 헬레니즘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도덕적 실천을 최고 덕목으로 삼는 헤브라이즘의 보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즉 헬레니즘의 ‘올바른 생각’과 헤브라이즘의 ‘올바른 행동’이 상호보완되어야 인간의 교양도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널드의 교양론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까지도 여전히 적정할까? 물론 아널드가 이 책을 쓰던 1860년대는 우리 시대와 현저히 다르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처해 있는 정치·경제·사회적 상황은 140년 전 영국인이 처해 있던 상황과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교적 짧은 기간에 걸친 우리의 민주정치 실험과 급속한 경제 개발은 과격한 사회적 변혁을 일으키면서 혹심한 가치관의 혼란과 정신적 폐해를 야기해왔고, 이는 아널드가 짚었던 빅토리아 시대의 병폐와 그리 다르지 않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아널드가 제기한 문제는 여전히 우리에게 설득력이 있으며 그가 제시한 처방책도 우리에게 유효하다. 만약에 ‘교양과 무질서’가 이런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호소력을 지니지 않는다면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도 없을 것이다.(이상옥|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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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9-04 21:12   좋아요 0 | URL
연재가 끊겨서 섭섭했었는데 반갑네요^^

로쟈 2006-09-04 21:22   좋아요 0 | URL
'시간 버리기'에는 이만한 일도 없지만, 아무래도 생계를 고려해야 하는지라(^^;)...

twoshot 2006-09-04 23:40   좋아요 0 | URL
'Arnold'를 '아널드'라고 부르는 것이 좀 거북합니다. 영화배우 애슐리 쥬드를 애슐리 저드라고 불러야하고 랄프 파인즈를 레이프 파인즈로 불러야 한다는 건 별 거부감이 없습니다. 쥬드와 저드, 랄프와 레이프는 많이 다르다고 느낍니다. 사람이름인데 정확히 불러주자는 취지는 십분 공감 합니다만 아놀드라 하던걸 아널드로 불러야한다는 건 왠지 거부감이 들어요. '교양'이 부족해서 그런가요?-_-;

로쟈 2006-09-05 09:10   좋아요 0 | URL
그건 저도 불편합니다. 그리고 동의하지도 않습니다(더불어, 저는 '애슐리 쥬드'를 좋아합니다). 우리의 '아널드'가 '속물적 교양'에 대해서는 얘기 안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꾸때리다 2006-09-05 09:13   좋아요 0 | URL
오 드디어 다시 연재하시는 군요.~~~

가을산 2006-09-05 10:17   좋아요 0 | URL
다시 시작하셨군요. 아이구 반가워라.

로쟈 2006-09-05 11:59   좋아요 0 | URL
예, 힘 좀 빼고 그냥 가볍게 연재할까 합니다. 한데, 말려주시는 분들은 안 계시나요?^^

philocinema 2006-09-05 20:53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님의 신간리뷰를 보게 되니 기쁘고, 마음이 설레이는군요...

페일레스 2006-09-05 21:44   좋아요 0 | URL
말리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등떠밀어 드리고 싶기도 합니다. ^^
로쟈님의 글이 계속되길 바랍니다. 물론, 생계에 지장을 미치지 않는 한에서.

로쟈 2006-09-05 22:55   좋아요 0 | URL
risper3님/ '사랑이야기'가 들어가서인가요?^^
페일레스님/ 생계에 지장을 미치지 않기 위해서 앞으론 좀 헐렁하게 쓸 예정입니다. 그나마 벼랑끝이 아니어서 다행이네요(!)...

yoonta 2006-09-06 01:26   좋아요 0 | URL
니체도 그의 대표작들의 대부분이 연금생활을 할수있게 된 이후에 나왔다죠? 로쟈님도 생계문제때문에 고민하지 않게 되는 순간에 나오게될 글들이 어떤 것들일지 궁금해집니다..하루빨리 안정된 생계수단을 확보하시길 바래요..^^

로쟈 2006-09-06 14:18   좋아요 0 | URL
생계가 해결되면 사실 '역사 이후'이죠.^^ 오랜만에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건강하시죠?^^
 

아무리 간단하게 저녁식사만 하는 자리라고 해도 '가족행사'가 낀 주말은 그냥 없는 듯이 지나간다. 휴일에 잠시 낮잠이라도 자고 일어나면 몸은 좀 가뿐해지지만 밀린 일들이 머리를 무겁게 짓누른다(간혹 '제 정신이야?'라고 다그치기도 한다). 저녁시간에 세탁기로 돌려놓은 빨래를 베란다 빨랫줄에 널면서, 문득 중학생 때 빨리를 널러, 또 걷으러 대야를 들고 (아파트가 아니라) 당시에 살던 단층 단독주택 옥상에 오르락내리락 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낭패스럽게도 소나기가 오는 바람에 널어놓은 빨래를 다시 걷어다가 세탁해야 했던 일들도(그러니까 빗방울이 떨어지자 마자 가장 먼저 떠올려야 했던 일은 '옥상의 빨래'였다!).

돌이켜보면, 그런 게 또 '행복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아파트 베란다에 너는 빨래는 그런 '모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그래서 비에 젖은 빨래를 다시 빨아 널어야 하는 불편은 덜게 됐지만, 덩달아 덜게 된 건 '일상의 모험' 한 가지이다. 그러한 손익계산을 하자치면, 삶은 공평하다. 나아지는 게 없다. 아니, 공평하게 말하자. 삶은 언제나 퇴색한다. 더이상 청춘을 찾아보기 어려운 부모님의 얼굴처럼(내가 중학생일 때 어머니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으셨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세탁기 이야기'나 옮겨적을까 하고 옛날에(10년 전에) 만든 시집들을 들춰보다가 다소 엉뚱한 곳에 시선이 머물렀다. '이 세상의 소금을 노래함'이란 시에 눈길이 간 것. 약간 교정해서 옮겨놓는다.  

이 세상의 소금을 노래함

소금은 짜다. 소금은 단순하다.

이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소금은 말한다, 아니면

퍽퍽하리라고, 맹탕이 되리라고, 밥맛이 떨어지리라고-

아무도 소금을 무시할 수는 없다. 된장 공장 같은

삶의 현장에서 짠맛이 빠진다면,

오, 어느 된장국에 우리가 숟가락을 담글 것이냐?

하여 우리는 소금을 묵인한다. 소금의 활동을 묵인한다.

맛소금, 막소금, 더러는 막돼먹은 소금이 도처에서

활발하다. 닭도리탕에도, 미역국에도, 더러는 레미콘에도.

소금은, 맛의 주연이고 베테랑이며 조국 근대화의 주역이니.

보라, 땀에 배인 소금의 과거, 짭짤한 소금의 현재, 빛나는 소금의 미래!

세상에 뿌려진 소금만큼 소금의 끗발은 줄지 않는다.

소금은 미나리가 아니고 미나리 사촌이 아니니

오, 이 땅의 소금들이여!

하여 우리는 눈물을 훔치며 다짐했던 것이다. 인제 다신

맹탕의 삶을 살지 않으리라, 삶을 물말아 먹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맵짜지기로, 소금이 되기로, 소금기둥이 되기로!


소금은 짜다. 소금은 단순하다.

이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소금은 말한다, 장조림도 말한다.

아침밥을 먹고 오늘도 삶의 현장으로 달려간다. 숨이,

턱밑까지 찰 때쯤, 우리는

소금의 문턱에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설렁탕집에서 엊저녁에 꼬리찜을 먹은 게 '잔상'으로 남았던 모양이다. 요즘은 국산 소금이라도 믿을 수 없다고 하지. 중국산 소금을 잔뜩 사다가 염전에 뿌리고 그걸 다시 거둬들인다나. 해서, 이 세상의 소금들은 한가지로 다들 빛나지만 실제로는 여러 종류가 있는 것. 내 세대의 386 소금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겠다. '이 세상의 소금들'에 경의를 표하지만, 소금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06. 09. 03.

 

P.S. 시집엔 '이 세상의 소금을 노래함'이란 장의 머리에 키에르케고르의 독설도 함께 인용해놓았는데, 이런 내용이다: "세상에 나서서 큰소리로 질타나 하면 마치 사람의 운명이 변혁되는 줄로 믿는다는 것은 커다란 애교이다." 이 덴마크의 철학자에겐 유머가 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내가 젊었을 무렵 요리점에 가면, 나도 세상의 청년들처럼 급사를 향하여 '여봐, 스테이크 하나, 고급 스테이크 한 접시, 등심살로 너무 기름기가 많지 않은 것을 가져와' 하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급사는 거의 내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것을 황송하게 듣는 일은 없었다. 또한 내 목소리가 주방에까지 들려서 요리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 따윈 더더군다나 없었다. 설령 모두가 그러했다 하더라도 스테이크의 품질이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문제는 '스테이크의 품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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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출신의 러시아 작가, 혹은 러시아어로 소설을 쓰는 우크라이나 작가 안드레이 쿠르코프(1961- )의 작품이 번역돼 나왔다. <펭귄의 우울>(솔출판사, 2006)이 그것. 저명하다고는 하나 러시아 문학의 근황에 어두운 나로선 쿠르코프란 작가에 대해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고 몇몇 자료들을 뒤적거려보았다. 출판사와 알라딘의 책 소개 등을 자료로 하여, 이 또 다른 문학의 세계를 잠시 엿보기로 한다.  

-구소련 해체 이후, 가장 뚜렷하게 서구인들에게 현대 러시아문학을 각인시킨 작가로 꼽히는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대표작. 간명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하는 소설로, 소비에트 붕괴 후의 혼란한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안드레이 쿠르코프는, 정치와 사회를 과감하게 풍자하고 추리소설과 판타지, 순문학을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쳐온 작가. <펭귄의 우울>에서는, 한 나라와 한 시대가 아닌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일반적인 소시민들의 삶을 그린다. 무표정한 얼굴, 뒤뚱뒤뚱 우스꽝스럽게 걷는 애완동물 펭귄은 이들의 우울한 일상을 대변한다.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자본주의 물결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작은 도시 키예프. 주인공 빅토르는 여자 친구가 떠나가버린 후, 우울증 걸린 펭귄 '미샤'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그에게 특별한 청탁이 들어온다. 키예프의 유명 신문에 언젠가 죽을, 미지의 인물들을 위해 조문을 쓰는 것. 그러나 이 요청을 수락함으로써 빅토르와 미샤는 더이상 도망갈 수 없는 함정으로 빠져든다...

이어서 출판사쪽 소개: 우리에게 러시아문학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로 대변되는 19세기문학 이후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20세기 문학이 물론 두 작가만큼 소개된 건 아니지만,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소비에트 해체 이후와 아무래도 혼동한 듯하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구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문학이 활발하게 번역되기 시작했는데, 그중 가장 뚜렷하게 서구인들에게 현대 러시아문학을 각인시킨 작가가 우크라이나 출신의 안드레이 쿠르코프다(*최상급은 언제나 과장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뚜렷하게 각인시킨 작가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정치와 사회를 과감하게 풍자하고 추리소설과 판타지, 순문학을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는 그의 소설들은 유럽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일본어, 에스파냐어, 네덜란드어, 터키어 등으로 번역되었다(*군대에선가 일어 통역원으로도 근무한 적이 있다고. 감옥의 간수 경력도 갖고 있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서도 능력을 발휘해 수십 여 편의 예술영화와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한 그는 베를린 영화제 심사를 맡기도 했으며, 우크라이나의 한 주간지에 ‘2005년 우크라이나를 움직이는 사람 100명’에 선정될 만큼 이미 자국과 유럽 여러 나라에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 중 이 책 <펭귄의 우울>은 일본에서도 번역되어 호평을 받은 바 있는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대표작이다(*아래가 일역본의 표지).

(*) 한편 영역본의 제목은 <죽음과 펭귄>이며, 원저의 제목은 밝혀져 있지 않지만 <빙판으로의 소풍>이 아닌가 싶다(이걸 확인해볼 시간이 지금은 없다).


-간명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우울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유머 있게 풍자하는 <펭귄의 우울>은 소비에트 붕괴 후의 혼란한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 빅토르를 통해 한 나라와 한 시대가 아닌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하는 일반적인 소시민들의 삶을 보여준다. 무표정한 얼굴, 뒤뚱뒤뚱 우스꽝스럽게 걷는 애완동물 펭귄 또한 쿠르코프가 그리고자 하는 우울한 일상을 대변한다.

-부산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양민종 교수는 '추천의 글'을 통해 “포스트 소비에트 소설은 ‘철학’이라는 말에 경기를 일으켰다. 눈을 뜬 다음 잠자리에 들 때까지 헤겔, 마르크스-레닌을 거쳐 과학적인 사회주의에 이르는 철학의 과잉공간에서 살다가 비로소 해방을 맞았으니 이해할 법하다.”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면서도 보편성을 띤 소설로 진화한 작품”이면서 “독자에게 글 읽는 즐거움을 주는” “단숨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 내리게 하는 마법을” 가졌다고 말하고 있다.

-옮긴이이자 소설가 이나미는 “서사 면에서 스토리 전개가 매우 속도감 있고, 문장도 간결하면서 흡인력이 있고, 등장인물들은 각자 자기 위치에서 과하거나 부족함 없이 마지막까지 역할을 충실히 한다. … 소설 곳곳에서 진한 페이소스가 느껴지며, 초현실적이고, 블랙 코미디적 요소와 아이러니가 적절하게 가미되어 읽는 재미와 함께 책장을 덮고 나서도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고 평하고 있다(*그 여운에 당신도 한번 동참해 보시길).

06. 09. 01

P.S. 그러니까 지난 90년대 이후 쿠르코프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작가로 보인다. 그처럼 우크라이나인이면서 러시아어로만 작품을 쓴 가장 대표적인 작가가 니콜라이 고골(1809-1852)이다. "우울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유머 있게 풍자"한다고 하면 고골의 적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작가의 상륙을 환영한다. 쿠르코프-펭귄에게 주는 주의! 한국이란 나라도 상당히 미끄럽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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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01 12: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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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장재선 기자의 블로그에서 지난번 YES24주최로 열렸던 지리산 문학캠프의 장면들을 옮겨온다. 신경숙, 김훈, 공지영 세 작가가 초대작가로 참석하여 작품 낭송과 함께 독자들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아래 내용은 장기자가 전부 타이핑한 것이며(그러니까 신문기사로 정리되기 이전의 날 자료이다), 중간에 오타가 난 한 문장은 건너뛰었다.

먼저, 문학캠프의 소개: "한국의 대표작가 신경숙, 공지영, 김훈과 만나는 지리산 문학캠프가 2006년 8월 24일에서 26일까지 지리산에서 있었다. 지리산 문학캠프는 YES24가 주최한 ‘네티즌 추천 한국의 대표작가 - 노벨문학상 후보를 추천하세요’의 후속 행사로, 2004년에서 2006년까지 ‘차세대 노벨문학상 후보’ 1위로 뽑힌 김훈(1회), 공지영(2회), 신경숙(3회)과 독자들이 만나는 자리였다."

모임 제목 :제 3회 네티즌 추천 한국의 대표작가 YES24 지리산 문학캠프
장소, 때 : 8월 24일 목요일 저녁 8시 전남 구례 지리산 송원리조트

사회 허순용 YES24 팀장 " 문학 지원사업으로 진행하는 행사다. 축제처럼 편안하게 즐겨줬으면 좋겠다. 오늘은 신경숙 선생 모셨다. "

신경숙 (인사말) "오면서 오랜만에 무지개를 봤다. 쌍무지개였다. 사진기가 없어서 못 찍고 눈에 담았다. 내려오면서 가끔 가끔 차창 밖을 내다보니까, 정말 오랜만에 나왔는데, 비 오는 산하를 쳐다보니까 참 좋았다. 시간은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그 현재의 순간을 기쁘게 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함께 하는 동안을 충만하게 보냈으면 한다."″

 

 

 



신경숙 자선작품 <종소리>(문학동네, 2003) 낭독 시간

"종소리를 선택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시간에 낸 책이기 때문.(웃음) 기차 타고 내려오면서 낭독 연습했다. "(나즈막하지만 소구력 있는 목소리. 약간 탁성의 슬픈 정조가 배어있는.)

"지루한 것을 견뎌야 하는 때가 있는 것이 그 연습이라 생각하고 들어달라.  종소리를 쓸 때 2000년대가 시작될 때였다. 옆에 자리한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하거나 안 듣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하고 싶은 말이 소통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 안 해야 말이 늘어나면서 나중엔 아무 말도 안 하게 되는 사이가 된다. 서로 조금 상처가 되더라도, 내 치부가 드러나더라도 서로 말을 하고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적막한 집에 새가 날아와서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는 것이 이 소설을 관통한다. 마음을 닫아버린 소통되지 않는 두 사람 사이에 자유로운 새가 날아온다. 남편이 병에 걸리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회복된다. 모든 것이 다 끝나버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지점에 인간의 위대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낭독 중간에 신씨 눈시울이 붉어짐) "중간에 목이 메었다."

어느 독자로부터 제목이 총소리가 아니고 왜 종소리인가, 라는 질문을 받았다. 산문적이지 못한 대답인데 마음 안에서 울리는 소리가 무엇을 깨고 나오면서 점점 커졌으면 하는 생각으로 종소리라고 했다...

"몇 년 전에 유영철 사건 있었는데, 뉴스를 접할 때 내상을 입었다. 신문에서 그 사건에 대해 세세히 보도했는데, 그것을 읽을 때 정말 마음이 다쳤다. 감당할 수 없는 일로 계속 다치고 그러는데, 정말 심각하게 타격이 오더라. 과연 인간이 무얼까,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때 피해를 당한 가족이 떠돌아다니면서 과연 이런 사람들이 세상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반대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소설적 치료를 했다. 내가 살아야 하겠기에. 그것으로부터 다친 내 마음을 치유해야 하겠기에. 아직 발표는 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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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의 질문 응답 시간

-소재 발굴 어디서 하나?

"우리 주변에서 정말 소설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어떤 큰 일이라도 내 감정선을 건드리지 않으면 소설이 되지 않으나, 어느날 찻집에서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소설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종소리는 어느 샐러리맨이 한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 새로 옮긴 회사를 가지 않고, 옛 회사를 자꾸 간다는 이야기. 그것의 외연을 확장했다. 여기서 새는 인간을 굽어보는 시선의 상징. 문학은 금지된 것, 말하면 안되는 것들과 근접해 있기 때문에 숨통을 틔어줄 수 있다고 봤다."

-작가를 존경하는 독자다. 캠프가 어떤 의미가 있나?

"(한참 망설이다가) 혹시 제가 오버하는 지 몰라서 검열을 해봤는데 …참 행복하다. 제가 소설을 읽을 때 잠깐 멈추니 너무 집중해서 들어주시니 너무 좋다. 얼굴에 열이 오를 정도로...독자들이랑 함께 하는 시간을 자꾸 가져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놀랐다. 어쩌면 그렇게 열심히 들으실까. 열심히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사랑에 대해 주로 다루는데,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결혼은 하셨는지?

"사랑. 내가 이런 사람이로구나 깊이 알게 되는 것은 사랑을 할때라고 생각. 자신이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내 마음 속의 가장 어두운 존재에 다녀가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 그리움이 없는 상태에 자신을 두지 않기 바란다. 결혼은 했다."

-직함이 작가신데, 작가로서의 꿈과 개인 신경숙의 꿈은?

"저는 직함이 작가라고는...고맙다. 좀 낯선 말 같아서. 어렸을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 별다른 ..굉장히 대답을 잘해야 하겠는데...책을 읽으면서 자랐고, 책을 쓴 사람에 대한 외경심 때문에 꿈이 작가가 됐던 듯 싶다. 꿈을 다 이루고 살 수는 없지만, 나는 지금도 과정에 있고,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드느냐면 늘 미래에 있다고 대답. 작가로서의 꿈은 내 소설을 읽을 때 가능한 한 좋은 쪽으로, 삶을 읽어내는 쪽으로 마음이 흔들리기를 바란다. 개인적인 내 꿈은 좋은 작품을 쓰는 것. 시시한 대답이네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게으름 때문에 안 하지 말고,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작가이기 때문에 인생에 플러스, 마이너스가 된 것은? 글을 쓸 때 독자들이 이해해줄 것인지에 대해 불안하지 않으신지?

"글을 쓸 때는 쓰는 일에 빠져있기 때문에 그 때는 읽어줄 사람까지는 생각하지 못한다. 풍금이 있던 자리를 출간할 때가 막 서른이 넘어갈 때였는데, 처음으로 독자에 대해 생각해봤다. 스물아홉때, 이렇게 서른이 돼도 되나, 하는 생각에 직장 일도 멈추고 열심히 글을 쓰고 나면 서른 이후의 삶에 당당해질 수 있을듯 싶었다. 1년동안 단편 8개를 썼다. 책이 처음으로 묶여 나왔다. 독자들과 그렇게 열렬히 만날 줄은 몰랐다. 글을 실컷 썼으니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야 하겠다 생각. 1주일 후에 재판, 2주 후에도 많이 읽어줘서... 내가 다시 직장으로 가지 않게 됐다. 다음 책을 쓸 수 있게 하는 시간을 벌고, 갖고 싶었던 책상을 갖게 됐다. 대답을 이렇게 밖에 못했다. 질문도 좀 야릇했던 것 알죠?"

-소설은 언제 쓰는지? 글쓰기 습관? 방해되는 것?

"쓰려고 하는 시간이 길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그냥 밤낮없이 쓴다. 끝을 낼 때까지 쓴다. 작품을 쓰는 동안 인간 관계가 단절된다. 작품을 쓰려는 분은 일단 시작했으면 완성을 시키는 습관이 좋다. 자꾸 중단하면 안 된다. 자꾸만 써보면, 어느 순간 소설이 된다. 그렇게 되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 좋은 작품을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 글 쓸 때 습관은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온갖 청소를 다 한다. 주변이 깨끗해야. 그런 상태서 시작해서 끝이 나고보면 난리다. 작품을 쓰는 동안엔 틈만 나면 손을 씻는다. 머리는 절대 안 감으면서... 방해되는 것은 저 자신이다. 어떤 뭔가를 자제하지 못할 때가 있다."

-고2, 고3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깊은 슬픔을 읽고 진로 결정 영향 받았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어머니, 고향은 어떤 의미인가?

"문학이 어머니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어머니 역할을 문학이 해야. 내 소설에 등장하는 어머니가 편안하거나 행복한 존재가 아니다. 어머니라는 존재에게도 어머니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숙한 생각을 갖게 하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다."

-어떤 작가의 작품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은가?

"제 작품을 쓰고 있지 않을 때 항상 다른 작품을 읽는다. 늘 책과 함께 한다. 한 계절엔 미술책만, 또 한 계절은 음악책을 읽으면 책을 고르는 눈이 생긴다. 가끔 고전을 뒤적여보는데, 악령, 이방인도 그렇고요. 감정이 느슨해졌다고 생각하면 안 읽히는 책을 읽는다. 제목이 떠오르지 않으면 그림책도 많이 뒤적여본다. 시집도 보고요. 한 작가의 작품만 찾아보면 그의 세계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청준, 조세희, 최인훈의 작품을 다 찾아본 경험."

-연재 작품 소개, 다음 작품은?

"1800년도 말쯤에 고종 시대에 살았던 여자 리진에 관해 쓰고 있다. 그 기간을 알려고 열심히 책을 읽었다. 책 읽기는 영상물을 접하는 것과 다르다. 그 자리에 있기만 하면 다 흘러간다. 책 한 페이지 이해하지 못하면 뒷장 넘기기 힘들다. 책을 다 읽었다면 책 한 페이지마다 독자가 다 개입한 것.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기 눈으로 보면서 한 줄 한 줄 다 해석한 것. 리진,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근대 여명기를 배경으로 절대로 잊지못할 사람을 만들고 싶었다. 100년도 전에 살았던 여자에게 베를리오즈를 듣게 하고, 카메라에 서게 하면서 문득 이 사람이 나보다 먼저 세익스피어를 접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즐거웠다. 나는 그 사람이 참 좋다. 연재할 때는 제목이 '푸른 눈물'인데 단행본으로 할 때는 다른 것으로 하려고 생각 중이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최근 2, 3년간 개인사 때문에 글 쓰는 시간이 줄었다. 현대문학과 일본 쓰바루라는 잡지에 일본 쓰시마 유코라는 작가와 연재하고 있는데, 그 책이 완성되고, 리진도... 장편 2개 계획. 어머니 이야기, 어느날 갑자기 앞을 못 보게 된 사람 이야기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질문을 많이 할 줄은 몰랐다."

- 술버릇은?

"술은 잘 마시진 못하지만 왠만큼 마신다. 술을 마시면 옛날 집을 자주 찾아가는 버릇이 있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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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네티즌 추천 한국의 대표작가 제1회 김훈, 제 2회 공지영
때곳: 2006년 8월 26일 지리산 송원리조트

인사말

김훈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직업이 아니고 혼자 숨어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서 이야기를 하는 게 두려운 생각이 든다. 얼굴을 보니 글 똑바로 써야하겠다는 생각."

공지영  "생애 네 번째 등산.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 그런지 얼굴이 품위가 있다. "

작품 낭독 시간

 

 

 



공: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도입부 낭독.

"첫 장면에 상징적인 것 넣으려고 노력. 이 소설에서도 그렇게 했다.  7년전을 회상하는 여주인공의 심정. 하늘과 땅, 서민아파트와 저쪽의 경계, 밝음과 어두움의 경계…. ″

 

 

 

 

김: <화장> 일부 낭독

"사랑이라는 것의 아득함. 나도 잘 모르겠어. 무엇을 쓰려 했는 지... 그러나 안타깝게 만질 수 없는 것들의 아득함이 있다. 손으로 만질 수 없는 모든 것들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손으로 만질 수 없으니까 말로 부르려 해서 말이 나온다. 그 말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신뢰할 수 없는 것인가. 인칭과 인칭 사이의 절망감. 아득함을 묘사한 것."

독자와의 질의 응답

-왜 작가가 됐느냐.

김: "왜 소설을 쓰느냐고 묻는 답답한 젊은이들이 있다. 밥벌이를 하는 노동. 매우 힘들고 고달픈 노동. 돈을 벌어 밥을 먹기 위해 쓰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이것을 써서 밥을 먹을 수 없다면 이것을 하지 않는다. 밥벌이 노동을 통해서 자기를 표현할 수 있다면,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도 약간의 행복을 느끼겠는데, 그게 성공했다는 자부심에 도달한 때가 거의 드물었고, 나는 글을 써서 출판사에 넘길 때, 나는 내가 쓰려 했던 것이 이게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아는데, 그러면서도 그것을 넘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매일 매일의 불완전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다. 말할 수 없이 비통하다. 그 비통함을 견디며 밥벌이 노동을 한다. 여러분, 내 말 듣고 실망하셨죠."(웃음)

공: "김훈 선생과 저는 많이 다르지만, 같은 게 있다. 저도 생계가 되지 않는다면 다른 일을 해야 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거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 책 안 쓸 때는 책 읽는다. 그래서 할 줄 아는 것을 잘 써보려고 한다."

-언제 글을 쓰고 슬럼프가 찾아오면 어떻게 하느냐.

공: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이면 퇴근을 하려고 한다. 슬럼프가 와도 붙어앉아서 열심히 쓸 수 밖에 없다. 소설이 머리 속에서 70%정도 돼야 소설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는다."

김: "조직, 직장 구속이 없지만, 자기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면 우리는 망한다. 강철과 같은 기율이 있어야만 자기를 통제할 수 있다. 그게 없으면 우리는 건달. 그래서 자기를 긴장시킬 수 밖에 없다. 아침에 책상에 앉아보면 하루 글쓰기 양과 질이 예상된다. 놀 때는 혼자 논다. 영화관 같은 데 가지 않고 강가나 들에 나가 자전거 타고 논다. 연필로만 쓰는 게 못된 습관. 나는 컴퓨터를 모른다. 기계를 만지면 꼭 고장이 난다. 글이 안 써지면 연필 탓하며 다른 연필 사는데 역시 잘 안 써진다." (방청석 연방 웃음 터짐)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성격은. 옷을 잘 입는데 어디서 사나.

공: "학교 다닐 때 새침하고 말을 잘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때는 말광량이였다. 중학교 때 세계명작 읽어보니 주인공은 대부분 새침해서 닮으려고 했다. 대학 영문과 학생은 대부분 여학생. 끝에서 세 번째로 못했던 학생. 옷은 인터넷서 주로 싸게 사 입는다. 튕기지 말고 있을 때 온 마음을 다해서 사랑해주라고 말하고 싶다."

- 학창 시절에 국어는 언제나 100점 맞았나

김: "60년대 대학에 갔더니 대학에 바로 가지 못한 고교생들을 수용한 포로수용소 같았다. 1년내내 데모. 휴교 많았다. 교련반대 데모를 했다. 1주일에 1시간. 교련받고 1년 공부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했다. 이렇게 말하면 공지영씨가 나를 경멸할까."

공: "아니에요. 일리가 있네요."

김: "대학에서 영시를 가르쳐주는데, 너무 좋았다. 데모하느라고 그것을 포기하고 배우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혼자 영시 공부했다. 예이츠 시를 라임 맞춰 다 외울 수 있다. 내가 학교를 안 나왔다는 거에 대해서 아무런 자의식이 없다."

 

 

 



-<강산무진> 잘 읽었다. 제 나이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다. 책에서 주로 다루시는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 여성과 남성에 대해서 직접 이야기해주셨으면 한다.

김: "생로병사. 인생에는 생로병사만 있다. 연애는 병의 문제가 아닌가. 인간의 문제를 떠난 세계가 있다. 초월, 구원 등. 나는 그런 영역으로 가지 않고 인간이 인간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생로병사로 대표되는 추잡하고 어두운, 가여운 중생의 세계에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 공지영씨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는 인간의 어두운 측면과 구원의 세계가 조화가 있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그 책을 사보는 것이겠지.(방청석 웃음) 나와 동갑짜리 작가 박영한씨의 상가에 갔다. 나는 뭐하며 살아야 하나. 살아감과 죽어감이 완전히 같은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생로병사는 구별할 수 없는 한 덩어리라는 것을 그 빈소에서 느꼈다."

-(김에게) 기자와 작가 중 어떤 직업이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고 하나. (공에게) 노동운동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셨는데.

공: "1980년대 초반 문학공부하면서 문학관 성립.사회문제를 파헤치는 작가가 되자. 그런데 2∼3년전에 문득 생각. 우리 사회는 무척 변했는데, 나는 왜 문학관이 한 번도 변하지 않았을까 되돌아봐.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환경의 변화에 맞춰 변신해야. 요즘 진보 노동권은 그런 고민이 적지 않은 게 아닌가. 80년대 운동권 노래는 새로운 현실에 맞춰 정서의 힘을 보여줬다. 그런 것에 자부심. 요즘 정권은 많이 바뀌었는데, 운동권은 전혀 변하지 않아서 사회에서 오히려 소외된다. 안타깝게 생각한다.

김: "73년에 신문기자 시작. 그 해에 박정희 정권 긴급조치 발동. 긴급조치 시대에 나의 직업적 청춘이 거기서 썩어문드려졌다. 모든 언론은 검열을 받거나 통제 받았다. 기자란 직업에 대한 기억은 행복한 것이 아니다. 기자들 격렬하게 저항. 대부분 신파, 대부분 좌절됐다. 경찰이 고문을 해도 정당한 기사를 쓸 수 없었다.창경원서 호랭이 새끼난다고 하면 사회면 톱기사로 썼다. 그런 시대를 우리가 정리하지 못하고, 좌절, 실패하고, 그것을 고스란히 옆에 계신 공지영 선생 세대로 넘어간 것. 운동권 가요가 나온 시대까지 간 것. 그런 시절이 있었고... 소설을 쓰니 행복하냐, 그렇지 않다. 소설을 쓰면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예를 들어, 시간을 묘사할 수 없다. 시간의 흐름을 나는 묘사할 수 없다. 새로운 시간들이 인간의 생명으로 들어오는 것을 체험할 수는 있지만 묘사할 수는 없다. 그런 한계 때문에 자유로운 것은 아니로구나, 생각."

- 영상세대는 문학보다는 영상에 길들여져있는데, 문학의 매력이 무어라고 생각하느냐. 한국문학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계획은.

공: "영상매체와 비교해달라는 말을 계속 듣고 있다. 제가 라디오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책 관련 질문을 꼭 한다. 공통점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성공한 영화배우의 특징도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 성공한 감독도 마찬가지. 종이책은 모든 콘텐츠의 기본이기 때문에 중요. 활자로 1차 검증한 다음에 2차 매체로 넘어가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은 오픈 마인드가 된다. 영화는 그렇지 않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앞으로도 가장 중요할 것. 김훈 선생 책이 일본, 프랑스서 번역되고 내 책도 활발하게 번역 소개되고 있다."

김: "저는 영화를 보지 않는다. 평생 본 영화는 10편 넘지 않는다. 고교 때 강제로 끌고 가기에 봤다. 저는 영화관이라는 컴컴한 공간에 들어가기 싫다. 땀 냄새 나고 컴컴한 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놀 때는 들에 나가 놀아야지.. 영화는 인간을 압도한다. 짓눌러 버린다. 책은 여백이 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던져버릴 수 있지 않다. 책만 봤다. 자랑이 아니라 나의 낙후성을 이야기한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책 속에는 글자가 있다. 언어의 구조물이 있다. 길은 세상의 길바닥에 있다. 책 속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길은 매우 아름다운 것. 책 속에 어른거리는 길은 매우 아름다운 것. 세상의 길과 연결하는 게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책의 길과 연결됐을 것. 말이 세상을 바꿀 수 있지만, 매우 멀고 아득하다. 무기는 세상을 바꾼다. 미국의 무기는 정확하고 분명하고 신속하게. 말이 세상을 바꾸지 못하면, 우리는 세상을 영원히 바꿀 수 없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눈물겹게도 중요한 것. 허약하기 때문에. 말로 해서 바꿀 수 있는 한도내에서만 바꿀 수 있다. 이게 내 고민."

- 좋은 문장은?

김: "나는 한국어가 불편. 조사 때문이다. 조사가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동사가 목적어를 바로 지배하는 명석한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 한국어를 읽는다는 것은 조사를 읽는다는 것. 조사가 몇 개 안된다. 너무 옹색한 살림살이. 좋은 문장은 뭐냐. 조사들을 어색하지 않게 해 놓는 것이 일단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 엄청 힘든 일. 나도 잘 모르겠다. <칼의 노래> 첫 문장은 '꽃이 피었다'. 처음엔 '꽃은 피었다'였다. 고심 끝에 ' 꽃이 피었다'로. '꽃은'은 보는 자의 주관이 들어가 있으나, '꽃이'는 그렇지 않다. 한문과 영어를 잘 구사할 수 있어야만 좋은 한국어문자을 쓸 수 있다고 생각."

공: "여성작가가 대거 등장하던 시기에 섬세한 결이 강조되면서 내 문장에 대해 이야기되었다. 나도 나름대로 공을 들였는데, 평론가들이 말하는 아름다운 것과 멀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 보기는 괴테의 '모든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리라' 인생의 찰나적 통찰을 몇문장으로 잡아내는 것이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 아름답고 곱고 화려한 것을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평가와 내 생각이 달랐다. 인생을 탁 잡아내 읽는 이를 바꾸는 것을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

- 나이먹을 수록 잘 쓰나.

김: "내 나이 내년이면 육십. 서녀편은 쓰고 가려고 한다. 내 속에 소설로 써야 할 이야기가 무진장 쌓여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서너편은 기어이 쓰려고 한다. 서너편 더 쓴다고 해서 후세대가 작가로서 나를 기억해줄지, 안할지에 대해서 나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 술은 잘 먹나?

김: "(한참 말이 없다가) 술 끊으려고 해요. (웃음) 와인을 먹으면 로맨틱해진다. 뼈에 술이 스미는 느낌.계통이 없이 취한다. 내가 좋아하는 술은 위스키. 논리적이고 기하학적으로 술이 취하기 때문."

공: "위스키 빼고 다 잘 먹는다."

-자신에 대한 평가에 대해.

김: "나를 누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해 생각이 없다. 나에 대해 누가 말하는 것이 하찮게 생각된다. 논쟁으로 누가 나를 이기려고 했을 때 내 논리로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인간의 진실은 논쟁으로 가릴 수 없는 그 너머에 없다. 남의 시선에 관계없이 함부로 살아왔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경우 바른 사람이다."

-미모 비결?

공: "술, 담배, 그리고 내일은 꼭 세수하고 자겠다는 굳은 결심."

김: "공지영씨가 미인이다. 그러나 우리 문단의 미모 수준이 과히 높지 않다."(웃음)

-인물 직업 세부 묘사. 취재 비결?

김: "기자시절 취재가 큰 도움. 재구성. 예를들어, 여성 화장 묘사는 여성잡지 광고를 통해서."(*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만 작가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흥미롭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영화화?
공: "흔쾌히 승락했다. 송해성 감독을 조감독 시절부터 잘 알고 있었다. 목돈이 들어오기 때문에 쾌락."

-강동원, 이나영 캐스팅 만족하나?

공: "강동원 만났을 때, 저렇게 잘 생긴 사람이 죽으면 참 슬프겠다 생각. 예고편에서 이나영 연기를 봤는데, 연기 잘한다 생각했다."

-후학들에게
공: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스님 '앉아 있을 때 앉아 있고, 걸어갈 때 걸어가라.'  일어나기도 전에 걸어가는 것 생각하기 십상. 그 순간을 명징하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일까, 함께 생각해보자."

김: "사소한 일에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우리 시대에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문제라고 생각. 인터넷이 발달해서 젊은이들은 히어링이 안되는 듯. 말하기에만 능해.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 듣기를 할 줄 아는 사람. 작은 일에 감동하는 사람이 됐으면. 내가 존경하는 데레사 수녀님이 쓰신 글. ' 사람들이 자신더러 인류를 위해 일했다고 하는데, 나는 인류라는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인류를 위한 적이 없고, 나는 다만 쓰레기통에 버려진 개별적인 존재를 데려다가 길렀을 뿐. 눈 앞에 펼쳐진 구체적인 사소한 일에 감동하고 의미를 되새기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06. 0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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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할 때 가장 자주 애용하는 것은 구글이다. 그리고 구글에서 인명을 검색할 때면 어지간한 경우에 인터넷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내용이 가장 먼저, 혹은 적어도 최초 화면에 뜨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래저래 참조하는 일이 잦은데, 그와 관련한 기사를 읽게 되어 옮겨놓는다. 한국일보의 최근 기사는 중국 당국의 인터넷 검열에 대한 위키피디아와 구글의 각기 다른 대응방식을 지적하면서 언어권별로 게재항목의 양적, 질적 차이를 비교하고 있고(물론 한국어 자료는 대단히 빈약하다), 몇달 전 한겨레의 인터뷰기사는 현재 한국에서의 위키피디아의 현황에 대해서 알려준다.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한국일보(06. 08. 31) 위키피디아

-역시 지미 웨일즈(40)였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http://en.wikipedia.org)의 창시자 웨일즈는 최근 중국어판 위키피디아 회의에서 "위키는 중국 본토에서 이용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원활한 접근을 위해 독립성을 희생시키는 일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구글과 같은 상업성 포털들이 돈벌이에 눈이 멀어 중국 정부의 정치적 검열을 받아들인 것과 대조된다. 전 세계 네티즌들의 헌신과 열정을 먹고 자라는 위키피디아의 이념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갈채와 함께 경의를 보낸다.

■ 2001년 미국에서 시작된 위키피디아는 네티즌들이 항목을 고르고 집필ㆍ편집하는 온라인 백과사전이다. 지금은 200여 개 언어로 돼 있다. 위키 때문에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의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영어 위키에 오른 항목만 130만 개. 브리타니카는 고작 7만5,000 항목 정도다. 네티즌들이 너나 없이 올린다니까 내용은 엉터리일 것이다? 천만의 말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위키에 들어가서 어느 항목이라도 읽어 보면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아니면 절대 만들 수 없는 내용이라는 걸 알 수 있다.

■ 세계적 과학전문지'네이처'가 작년에 위키와 브리타니카의 과학 관련 항목 50여 개를 골라 신뢰성을 비교한 결과 대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데이트 기능은 아예 게임이 안 된다. 작년 4월 교황 베네딕토 16세 기사를 쓰면서 위키피디아를 참고했는데 즉위식 시작 직후 그 내용이 바로 추가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오늘 다시 베네딕토 16세를 검색하면서 예상은 했지만 또 한번 놀랐다. 영어 위키 22쪽, 독일어와 프랑스어 위키 각 11쪽, 일본어 위키 3쪽, 한국어 위키 3분의 1쪽. 지식기반사회라는 21세기에 각 나라(언어권)의 지식 수준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 양적 차이보다 더 큰 것은 질의 수준이다. 영어 위키의 경우 단순 서술 외에 관련 내용 외부 링크가 아주 치밀하게 돼 있다. 클릭 한번으로 교황이 처음 발표한 회칙 전문을 라틴어 영어 등 10개 언어로 바로 볼 수 있다. 이런 수준이 가능하려면 우선 그만큼 아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또 그런 사람들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지식을 공유하려는 헌신이 있어야 한다. 한국어 위키(위키백과ㆍhttp://ko.wikipedia.org)는 이제 겨우 게재 항목이 2만 2,000여 개다. 우리는 영원히 게임이 안 될 것 같은 자괴감이 든다.(이광일 논설위원) 

한겨레(06. 05. 31) ‘위키백과’는 공산주의? 중립시각 ‘열린사전’이죠

-한국어명 ‘위키백과’인 위키피디아는 누리꾼에게 이제 생소하지 않다. 정보의 양에서 브리태니카 백과사전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엔카르타를 능가할 정도다. 350만 건 이상의 글이 수록돼 있으며, 방문자 조사 사이트 알렉사닷컴에 따르면 시엔엔닷컴을 앞지르고 16위에 올라있다. 그 성장 비결은 바로 누리꾼의 자유로운 참여에 있다.



-지난달 31일 낮 12시 현재 한국판 위키피디아에는 2만4146 건의 정보가 담겨있다. 영어권에 비해 정보량은 부족하지만 성장하고 있다. 한국판 위키피디아의 관리자 정경훈(20·서울대 컴퓨터공학과)씨를 만났다.

-위키피디아는 무엇인가?

=열린 백과사전으로, 배타적인 저작권을 갖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 및 출판할 수 있다. 위키백과는 리차드 스톨만이 설립한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Free Software Foundation)에서 만든 라이센스(GNU Free Document License) 형식으로 배포된다. 즉 상업적인 이용도 가능하지만 구입자나 인터넷 사용자나 별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세계적인 현황은?

=위키피디아는 언어별로 제공돼 현재 214개 언어로 서비스된다. 한국어 위키백과 역시 한국어만 알고 있으면 국적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다른 백과사전과의 차별성은?

=우선 공짜다. 돈이 없어도 정보의 공유 및 생산이 가능하다. 이론상으로는 컴퓨터가 없는 사람까지도 이용이 가능하다. 또 편집자가 없거나 전부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중립적인 시각을 유지하도록 관리자가 노력한다. 예를 들어 독도 문제의 경우 한국 입장과 함께 일본 입장도 병기한다. 읽는 이들도 하여금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확성에서 떨어질 수 있을텐데.

=한국판의 경우 3000여명이 계정을 갖고 있다. 이들 중 전문가도 있고, 비전문가도 있다. 하지만 의견을 공유하고 고쳐나가기 때문에 점점 정확성을 갖춰나갈 것이다. 또 다양성을 갖추고 있다. 기존의 기계적인 분류보다는 참여자의 관심사를 반영하기 때문에 색다른 항목도 나온다. 생일에 죽은 사람, 펠레의 저주 등 기존 백과사전에 찾아볼 수 없는 정보도 제공한다.

-관리자의 역할은?

=저작권 위반 여부나 낙서, 광고 등을 감시하는 등에 그친다.

-비판이나 해프닝도 있을 것 같은데.

=영어판에서도 있었는데 한국판에서도 ‘위키피디아는 공산주의다’ ‘위키피디아는 주체다’ 등의 악성 글이 남기도 한다. 또 유명인을 사칭해 약력이나 팬사이트를 소개하는 경우도 있었다.

-영어권에 비해서 정보량이 부족한데.

=국내 포털사이트처럼 저작권 개념이 없다. 일단 포털사이트에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면 저작권은 사이트에 넘어가고 평점 등의 대가를 받는다. 저작권이 없는 대신 대가도 없어 아직 활동이 부족한 것 같다. 하지만 자유로운 참여가 가능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활성화를 위한 방법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나?

=영어권의 경우 서버 관리를 위해 미국 플로리다주에 기술자 3명을 고용하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자원봉사자다. 한국어판 역시 야후가 기증한 서버를 사용해 따로 비용이 들어갈 일이 없다.

-참여방법은 어떻나?

=영어판(www.wikipedia.org)이나 한국판(ko.wikipedia.org)을 방문해 계정을 만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앞으로 전망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식을 자발적으로 모아 우리 모두의 지식으로 공유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위키백과가 하는 일이다. 참여자가 많을수록 인터넷 상에서 이뤄지는 정보 불균형 등이 바로잡힐 것으로 생각된다.



위키피디아(Wikipedia)는?
200여개 이상의 언어로 서비스되고 있으며, 모두가 함께 만들며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다국어판 인터넷 백과사전이다. 또 배타적인 저작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사용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2001년 1월15일에 시작된 위키백과는 비영리 단체인 위키미디어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창립자는?
1995년 미국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워드 커닝햄이 네티즌들끼리 협동해서 웹 페이지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 위키피디아의 시발점이 됐다. 이후 지미 웨일스 등이 비영리재단인 위키피디아재단을 설립해 온라인 서버를 관리하고 있다. 상근 편집진은 없으며, 1200명의 자원자들로 구성된 편집자들이 네티즌들이 올린 자료들의 정확성, 저자권 침해 여부 등을 검증한다. 웨일스는 올해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06. 0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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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위키시대의 지식인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8-05 09:59 
    한겨레의 오피니언 란인 훅(hook)에 가끔 들러보는데, 인터넷 액티비즘에 관한 눈에 띄는 칼럼이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http://hook.hani.co.kr/blog/archives/9879). 필자는 이진순 교수다. 다른 기사를 보니 "1985년 김민석(민주당 최고위원)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총여학생회장으로 활동했던 그는 현재 미 올드도미니언대에서 시민저널리즘과 뉴미디어, 국제커뮤니케이션 등을 가르치고 있다." 
 
 
딸기 2006-09-04 16:52   좋아요 0 | URL
흐아앗 이거 기사 쓸까 하고 있었는데... ㅠ.ㅠ

로쟈 2006-09-04 21:21   좋아요 0 | URL
한발 늦으셨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