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나온 책들 가운데 깜짝 눈길을 끈 책은 에드워드 윌슨과 베르트 횔도블러의 <개미 세계영여행>(범양사, 2007)이다. 나는 잠시 '긴장'했었는데, 혹 두 사람의 대작 <개미>가 번역된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확인해보니 <개미들>의 다이제스트판으로 지난 96년에 번역출간된 책 의 개정판이다(그러니까 나도 갖고 있는 책이다. 박스보관도서이긴 하나). 즉, "곤충학 분야에서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평가받는 베르트 휠도블러와 에드워드 윌슨의 <개미들>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책"이며 "개미학 개론서이자 개미에 대한 자신들의 연구 과정을 보다 쉽게 이야기화해서 만든 책"이다. 약간의 아쉬움을 달래면서 문화일보의 리뷰를 옮겨놓는다.

문화일보(07. 07. 13) '개미’ 통해 본 인간 세계의 성찰

이 책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책이 아니다. 1996년 같은 내용과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는 책이다. 절판됐던 책이 10여년 만에 그대로 재출간됐는데도, 이렇게 정색하고 지면을 할애하는 것에는 물론 이유가 있다. 개미학 개론서이자, 저자들의 연구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의 탁월함과 감동이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기 때문이다(*96년판은 원서의 표지를 그대로 쓰고 있다).



알려지다시피 저자들은 개미와 사회 생물학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적인 권위자다. 독일 뷔르츠부르크대와 하버드대를 오가며 연구한 베르트 횔도블러나 하버드대 생물학교수인 에드워드 윌슨은, 현존하는 가장 걸출한 과학저술가다.



우선 이들의 공동저작인 ‘개미(The Ants)’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의해 ‘모든 곤충학 저서 중 가장 훌륭한 책’으로 선정됐을 뿐 아니라, 과학도서로서는 드물게 퓰리처상을 받았다(*지난 1990년에 출간됐고, 746쪽 분량이다). 이들이 체계를 세운 사회생물학은 20세기 생물학뿐 아니라, 인문·사회학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국내에서 학문간의 통섭을 주장하는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도 하버드대에서 에드워드 윌슨에게 배운 학자 중 한 사람이다(*이젠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재천 교수의 <개미제국의 발견>(사이언스북스, 1999)는 다이제스트의 다이제스트 버전이라 할 만하다).



이들의 기념비적인 저작인 ‘개미’가 전문 생물학자를 겨냥한 전문서적이면서, 개미의 백과사전이라면 ‘개미 세계 여행’은 일반인을 위한 책이다. 그렇다고 격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처음 대하는 이들에겐 경이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개미에 대한 모든 것이 풍부한 도판과 함께 매력적인 문장으로 펼쳐져 있다.

개미는 우리가 사람 다음으로 흔히 볼 수 있는, 대수롭잖은 생명체다. 그러나 개미만큼 인간과 비슷한 사회 구조를 가진 생물은 어디에도 없다. 고도의 의사소통이 전제돼야 가능한 각종 합동 작전을 비롯해, 군체(群體) 구성원들의 조직화는 복잡하고 긴밀해서 경이에 가깝다. 일개미의 충성은 거의 완벽하다. 개미의 군체간 싸움도 인간의 전쟁보다 더 자주 일어난다. 종에 따라 개미들은 선전, 기만, 고도의 감시, 대규모 공격 따위를 단독이나 연합으로 수행한다.

개미 세계에서 조화와 충성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난소를 가진 일개미들은 더러 여왕과 경쟁을 벌이기도 하고, 순위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군체에 대해 몸을 던져 충성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군체 안에서 다른 개체와 투쟁하는 모습이 인간에 다름 아니다.

저자들은 개미에 대한 이같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하는 사소한 관찰에서 시작해 개미라는 개체의 삶과 죽음, 사회 조직, 환경과 세세한 생활, 그리고 성공적인 진화에 이르기까지를 흥미진진한 드라마처럼 풀어나간다. 책을 따라 개미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독자는 사회의 기생자에서 아이를 기르는 양육자, 군대, 사냥꾼, 건축가들을 만난다.

인간 세계의 또 다른 모습이자, 축소판이다. 사회생물학이라는 학문이 세계를 통틀어 500명 밖에 안되는 개미 연구가 사이에서 체계화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비단 개미 세계를 돌아보는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특이한 방법으로 인간 세계를 성찰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김종락기자)

07. 07. 14.

P.S. 저자인 에드워드 윌슨에 대해서는 구구한 설명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 개인적으론 '에드워드 윌슨과 나'(http://blog.aladin.co.kr/mramor/267854)란 제목의 리뷰도 쓴 적이 있는데, 최근 몇 년간 출간된 책들은 다 챙기질 못했다. <우리는 지금도 야생을 산다>(바다출판사, 2005)나 <생명의 미래>(사이언스북스, 2005) 같은 책들이 그렇다.

'에드워드 윌슨'과 '개미'라고 하니까 개인적으론 두 권의 책이 떠오른다. 하나는 '개미'와 관련된 것으로 데이비드 아텐보로의 <생명의 신비>(학원사, 1985)이다. BBC의 자연다큐로도 만들어진 듯한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주우, 1982; 사이언스북스, 2006)와 함께 고등학교 시절 내가 소장하고 있던 '가장 고급스런 교양서'였다. 특히 <생명의 신비>의 경우는 주로 개미에 관한 얘기를 독후감으로 써서 교육감상을 받은 기억이 있다(언젠가 재출간된 걸 본 듯한데 검색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에드워드 윌슨'과 관련해서는 <도덕적 동물>(사이언스북스, 2003)의 저자 로버트 라이트가 쓴 <3인의 과학자와 그들의 신>(정신세계사, 1991). 여기서 3인의 과학자는 에드워드 프레드킨, 에드워드 윌슨, 그리고 케네스 볼딩 세 사람인데, 에드워드 윌슨이란 독특한 과학자에 대해서 처음 접하게 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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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7-07-14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개미하면 떠오르는게 중학교 때 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인적으로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게 봤던...)이네요/

로쟈 2007-07-14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르베르의 <개미>는 저도 읽었었는데, 그래도 소설보다는 과학책이 더 재미있습니다...

가넷 2007-07-14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책'이라는데 가격은 그렇게 쉽게 접근할 만하지는 않군요...--;

로쟈 2007-07-15 10:4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이 책 같은 건 사정이 나은 편이죠. 화보도 없는 200여쪽짜리가 만원이 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마늘빵 2007-07-14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빈스키 님과 같이 개미는 중학교 때 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요즘엔 세 권짜리로 나오는거 같던데. 이쁘게 양장본으로. 전 이거 재밌었어요.

로쟈 2007-07-15 10:42   좋아요 0 | URL
베르베르야 그 자신이 놀랄 정도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읽혔으니까요...
 

알라디너라면 알겠지만 페이퍼를 다 마무리하고 등록을 누르자 로그인 화면이 뜨는 것만큼 황당한 일도 없다. '영어 광풍'에 관한 페이퍼와 함께 이 '시베리아'에 관한 페이퍼가 어제 연이어 그렇게 골탕을 먹게 했는데(마음 같아선 '시베리아 유형'을 보내고 싶다!), 홧김에 방치해둘까 하다가 간단히 마무리한다.

시베리아에 관한 책들이 종종 출간된다. 바이칼호 관광을 다녀온 분들이 주변에 드물지 않은 것처럼 시베리아나 시베리아 횡단열차 또한 아주 먼나라 얘기만은 아니게 됐다. 아, 올렉 멘쉬코프 주연의 <러브 오브 시베리아>(원제는 <시베리아의 이발사>) 같은 영화도 대번에 떠올려 볼 수 있겠다. 왠지 친근한 자작나무숲이 지평선을 가득 채우고 있는 동토의 땅. 유형지. 거기에 요즘엔 석유, 가스 매장지란 이미지가 들러붙은 땅 시베리아에 대한 책이 한권 더 출간됐는데, 이번엔 러시아 정치사 전공자의 저작이라 좀더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저자 인터뷰 기사를 읽어둔다.   

경향신문(07. 07. 14) [이사람]“문화·야생의 인프라 넘쳐납니다”

김창진 성공회대 교수는 2000년부터 매년 한번씩 시베리아에 다녀왔다. 총 7번이다. 올해에도 지인들과 곧 시베리아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매년 찾을 만큼 시베리아는 그에게 매력적이다. 그래서 책도 쓰게 됐다. ‘시베리아 예찬’(이룸). 하지만 단순한 여행서는 아니다. “시베리아를 소재로 근대 자본주의 문명을 비판적으로 보고자 했다. 시베리아는 자본주의 문명의 대안적 공간이자 상징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김교수가 러시아, 그 속의 시베리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어쩌면 88서울올림픽 때문이다. “냉전으로 80년, 84년 올림픽이 모두 반쪽으로 치러졌습니다. 88올림픽은 오랜만에 전 세계가 참여했죠. 북한과 함께 적대국가로 여겨졌던 (당시) 소련의 선수들이 서울에 와 경기를 하면서 소련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져 90년 한국과 소련은 수교했다.

일반인은 방문조차 할 수 없었던 소련 사회에도 틈이 생기면서 모스크바대학 유학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한국정치(현대사)로 국내에서 석사를 마치고 영국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던 그에게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사회주의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체제라고 자부한 소련이 왜 붕괴하고 있는지 구체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학문적 관심으로 소련을 택했고 91년 모스크바로 갔다. 하지만 그 곳에서 기대하지도 않았던 것에 매료당하게 됐다. 러시아문화였다. “80년대 초반 학생운동을 하면서 문화예술을 즐기는 건 용납이 안됐죠. 대학 때 세종문화회관 한번 가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스크바, 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 곳곳에서는 고급문화를 일상적으로 즐기고 있었어요.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레공연을 봤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을 우리 돈 단돈 몇 백 원으로 볼 수 있었어요.” 모든 인민이 예술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주의 이념 정책으로 예술은 생활 곳곳에 넘쳐났다. 그의 딸이 매일 보던 TV 만화영화도 “그렇게 서정적이고 자연친화적일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것이 96년. 시베리아에 처음 간 것은 한·소 수교 10주년을 기념해 간 2000년도의 연구여행 때였다. 유학 당시에는 돈과 시간이 없어서 가지 못했다고 한다. 유학 시절에는 러시아 문화에 매료당했다면, 시베리아 여행에서는 자연에 감탄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이어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면서 중간중간에 다섯 개 도시에서 내렸습니다. 공장, 농장 등에 들러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변해가는 모습을 현장조사했어요. 17박18일 동안 이어진 일정에서 바이칼호수 등 시베리아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됐습니다.”

그가 꼽는 장소는 알혼섬. “바이칼호수의 진면목을 보려면 호수 안에 있는 알혼섬에 가 봐야 합니다. 정답고 아름다운 풀밭, 바다 같은 호수, 원주민의 성소. 그 속에 있으면 도시생활의 각박함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돌아볼 수 있고, 우주에 대해 성찰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 부족한 문화 인프라, 자연친화적·영적인 환경 등을 갖고 있기에 러시아, 또 시베리아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김교수는 강조한다. 책의 부제가 ‘야생의 숲, 문명의 영혼’인 이유다. 그는 “러시아라고 하면 ‘마피아’나 ‘가난한 나라’를 떠올리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책은 시베리아의 자연·사람·문학·사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임영주 기자)

07. 07. 14.

P.S. 시베리아 하면 또 떠오로는 책은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에프의 <데르수 우잘라>(갈라파고스, 2005)이다(관련 페이퍼는 http://blog.aladin.co.kr/mramor/897491). 사둔 지는 꽤 됐지만 읽을 짬을 못내고 있는 책인데 당장 시베리아로 '피서'를 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닌 김에 관련서들과 함께 그냥 미친 척하고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시베리아가 좀더 실감나지 않을까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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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영어에 미친 나라'란 제목으로 몇몇 기사를 스크랩해놓은 적이 있는데, 이번주 한겨레21에 이 문제에 대한 강준만 교수의 유익한 분석칼럼이 실렸다. 영어 광풍은 개개인의 광기의 소산이 아니라 한국 근대사의 조건(시스템)이 낳은 자연스런(합리적인!) 결과라는 것. 문제를 보다 넓게/깊게 생각해보기 위해서 필독할 만하다.  

△ 영어 광풍의 시대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영어는 필수다. 치열한 경쟁이 지배하는 한국에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광풍에 휩쓸리는 건 ‘모순’된 현실에서 ‘합리적 적응’이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한겨레21(07. 07. 12) 영어 광풍은 합리적인 행위다

한국인은 왜 영어 공부를 하는가? 한국 최초의 영어 교육 기관인 동문학교가 서울 재동에 설립된 1883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12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한 가지 일관된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영어가 성공과 출세를 위한 필수 도구였다는 사실이다.

120여 년간 성공·출세의 도구

개화기 시절 미국 교육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지적했듯이, 조선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는 목적은 한결같이 ‘벼슬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런 의도가 있었건 없었건, 이 시기부터 영어의 위력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인물은 이승만이었다.


1886년 6월 정식 학교로 개교한 배재학당에 몰려든 학생들이 배재학당에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건 바로 영어 공부였다. 1894년 말 배재학당에 입학한 이승만도 훗날 “내가 배재학당에 가기로 한 것은 영어를 배우려는 큰 야심 때문이었고, 그래서 나는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다”고 회고했다.

개화기의 대표적인 영어 천재는 윤치호로 알려져 있지만, 이승만의 영어 능력도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영어를 공부한 지 6개월 만에 배재학당의 신입생반을 맡아 영어를 가르칠 정도로 급성장했다. 이승만은 입학한 지 2년 반 남짓한 때인 1897년 7월에 배재학당을 졸업했는데, 이승만은 각국 외교관들까지 참석한 졸업식 행사의 일환으로 ‘조선의 독립’이란 제목으로 영어 연설을 해 명성을 떨쳤다.

이후 이승만은 미국 유학을 떠나, 조지워싱턴대학 학사, 하버드대학 석사, 프린스턴대학 박사학위를 따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한데다 한반도 문제에 소련과 더불어 결정권을 가지면서 이승만의 영어 실력, 미국 학력, 미국 인맥은 그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이승만의 독보적인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해방과 함께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는 포고령 1호를 발표함으로써 영어 능력이 권력의 원천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해방 정국에서 가장 먼저 나온 신문은 국문 신문이 아닌 영어 신문이었으며, 좌익 계열 신문인 <조선인민보>의 창간호(9월8일)마저 1면에 영어로 ‘연합군 환영’이라는 톱기사를 실었다는 게 그걸 잘 말해주었다.

미군정 치하에선 영어를 할 수 있는 통역관들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통역 정치’가 판을 쳤다. 그런데 영어 통역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이는 거의 모두 일제 때 해외유학을 했거나 국내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대지주 집안 출신으로 해방 전엔 친일, 해방 뒤엔 친미 노선을 취한 사람들이었다. 해방 정국의 정치가 왜곡된 주요 이유 중 하나다.

미국 가려면 교회 먼저 가라

한국 군대 창설의 최대 문제 가운데 하나도 영어였다. 미군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했기에 미군정은 1945년 12월5일 군사영어학교를 만들었다. 이 군사영어학교 출신이 한국군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영어 능력은 개인적 벼락 출세를 가능케 한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일부 통역관들은 일본인이 남기고 간 적산가옥을 차지하고 온갖 특혜를 챙기거나 중개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일보> 1948년 8월12일자에 실린 ‘악질통역: 건국을 좀먹는 악(惡)의 군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밤이 되면 이 집 저 집으로 찝차를 몰고 돌아다니며 뚜쟁이 노릇하기에 분주하여 양쪽에서 몇 푼 안 되는 푼돈이나 얻어먹는 추잡한 통역으로부터 호가호세(狐假虎勢)하여 진주군의 권한을 최대한대로 악용하고 사복을 채우는 통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리 유형을 소개했다.

그렇게 영어 능력이 우대받는 해방 정국에서 최초의 베스트셀러는 영한사전이었다. 많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그 영어사전 속에 밝은 미래가 있는 것처럼 느끼면서 보물처럼 소중하게 간직하곤 했다”는 게 한결같은 증언이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우대했다. 이기붕은 미국 유학생 출신으로 미군정 통역을 하다가 이승만의 비서가 되어 그의 후계자 위치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영국 배를 타던 마도로스였던 신성모도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이승만의 사랑을 받아 국방장관에 올랐다.
6·25 전쟁을 겪으면서 한국인은 영어와 미국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전쟁 중인 1952년에 나온 <샌프란시스코>라는 가요는 “뷔너스 동상을 얼싸안고 소근대는 별 그림자/ 금문교 푸른 물에 찰랑대며 춤춘다/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 로맨스야/ 나는야 꿈을 꾸는 나는야 꿈을 꾸는 아메리칸 아가씨”라고 노래했다.

개신교 교회는 그런 이상향의 언어인 영어를 배우고 실제로 그 이상향에 유학을 갈 수 있는 주요 통로였다. 당시 YMCA는 “영어 수학 강습회를 하는 곳이다”라는 말이 널리 퍼질 정도로 영어 강습에 주력했는데, 1950년대 말까지 약 20만 명이 YMCA의 영어 강습회를 수강했다. 그렇게 영어를 익히면서 선교사나 미션계 학교를 배경으로 하면 미국 유학 가기도 쉽고 미국에 가서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근자에는 미국 가기 위하여 교회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승만만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우대한 건 아니었다. 세상이 그랬다. 야당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승만 시절은 물론 그 이후에도 장면, 조병옥, 윤보선, 장준하 등의 경우처럼 정치적 거물들은 모두 영어가 능통한 인물이었다. 5·16 쿠데타 당시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장도영도 비록 박정희와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했지만 한국군 장성 중에선 영어가 가장 능통한 인물이었다.

경제 개발기의 수출지상주의, 김영삼 정권 들어 외쳐진 세계화는 영어의 현실적 가치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1995년 2월23일 정부는 97학년도부터 초등학교 3~6학년생에게도 영어를 주당 2시간씩 정규 교과목으로 가르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어린이 영어학원이 급증하는 등 1996년 전국 방방곡곡에서 치열한 ‘영어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현실에 자극받은 작가 복거일은 1996년 11월 영어를 배우는 데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을 생각하면 그 투자의 효율을 높이는 첩경이 영어의 공용어화라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복거일이 1998년 6월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라는 책을 내면서 영어의 공용어화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지만, 2000년대 들어 한국 사회는 더욱 뜨거운 ‘영어 광풍’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는 모두 알고 있는 것이기에, 이제 곧장 오늘의 이야기로 들어가자.

“영어도 한마디 못해? 나가”

2007년 6월23일 밤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는 ‘영어 광풍’을 다뤘다. 이 프로그램의 메시지는 전 국민이 다 영어 광풍에 휩쓸릴 필요는 없으며, 영어가 필요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영어를 잘하면 된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겠다. 맞긴 맞는 말인데, 설득력이 떨어진다. 왜 그런가?

지난 4월 국내 영문학자들이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라는 책을 냈다. 영어 광풍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는 책으로 <그것이 알고 싶다>의 메시지와 통한다. 소중한 작업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아쉬움이 있다. 언론은 이 책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고, 잘 아는 사람들인 영문학자들이 한 이야기라 귀담아들을 가치가 있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바로 그 점이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무슨 말인가? 나도 ‘광풍’이라는 말을 쓰긴 했지만, 나는 그 광풍이 매우 합리적인 행위라고 본다. 광풍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아주 잘하는 사람들이거나 좋은 학벌을 갖춰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꼼꼼하게 살펴보자. 한국에선 애초부터 영어 공부의 주목적은 실용성이 아니다. 내부 경쟁용이다. 자녀를 영어권 국가에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보낸 부모들은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한국에서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영어를 공부시키는 것이다. 한국 영어 공부 120여 년의 역사가 웅변해주는 것도 그 점이다. 영어 공부는 일종의 권력투쟁이다. 자신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영어 광풍에 휩쓸려놓고선 이제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로 영어 광풍을 비판하는 건 말이 안 될 건 없지만 어째 좀 허전하다.

똑같은 대학, 똑같은 학과를 나와도 영어가 우열을 결정한다. 2006년 3월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서울대 경영학과 86학번 졸업생 51명을 조사한 결과, ‘영어 실력이 우수하다’고 응답한 그룹의 평균 연봉(1억600만원)은 ‘중간 혹은 그 이하’라고 답한 그룹(7천만원)보다 3천만원 이상 많았다. 이는 한국 사회 전반에 통용되는 일반적인 법칙이다.

그래서 계속 영어 광풍에 휩쓸리면서 그 광기를 키우자는 건가? 그게 아니다. 영어 광풍을 비판하는 것으로 그칠 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간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뜻이다. 한 네티즌의 반문처럼 <그것이 알고 싶다>의 “PD나 박상원씨도 자녀에게 그런 교육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물음을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또 다른 네티즌의 감상문을 보자.

“영어 무지하게 씹어대는 글 몇 개 썼지만, 사실 나도 영어 공부를 하는 넘 중에 하나로서 내 자신이 모순일세그려. 한국 사회가 날 이렇게 만들었지. 제발 대한민국, 나의 조국아. 힘 좀 키워서 미국넘들이 한국어 배울 수밖에 없도록 해다오. 나이 처먹고 영어 공부하려니까 머리가 안 따라간다. 요즘은 두통까지 생겼잖아.”

아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힘을 키워도 지금과 같은 방식의 내부 경쟁이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또 다른 광풍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게 돼 있다. 한 네티즌이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우리의 현주소는 “당신 영어 잘하니까 해외 쪽으로 일하는 곳에 특별 채용하겠소”가 아니라 “영어도 한마디 못해? 이거 저질이구만. 나가”라는 식이다.

즉, 문제의 핵심은 ‘내 마음의 식민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 마음의 식민주의’가 전혀 없다는 건 아니지만, 누구 못지않게 ‘식민주의’를 혐오하고 증오하는 사람일지라도 기존 시스템하에선 그런 식민주의의 선봉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더 주목해보자는 것이다.

영어 광풍은 우리 ‘대학입시 전쟁’의 정확한 반영이다. 한번 딴 간판이 평생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간판 쟁취를 위해 미쳐 돌아가는 건 매우 합리적이다. 영어 광풍은 그런 합리성의 부분일 뿐이다. 대학입시 문제를 끌고 들어가면 문제의 덩치를 더 키우는 게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하겠지만, 그게 진실인 걸 어이하랴.

사실 정작 흥미로운 현상은 우리의 대학입시 광풍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최소한의 국민적 합의조차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껏해야 본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내신 문제를 둘러싸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수준이다. 왜 그럴까? 당신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한국 사회와 관련해 ‘쏠림’ ‘소용돌이’ ‘1극 구조’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그 원리를 자신의 일상적 삶을 이해하는 데 적용할 정도로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지난 2002년 ‘월드컵 현상’과 현재의 ‘영어 광풍’은 정확히 같은 현상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좋건 나쁘건 우리는 1극으로 쏠려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사회문화적 구조와 습속을 갖고 있는 국민이라는 점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월드컵 현상과 정확히 같은 소용돌이
우리는 자주 그런 특성에 서구적 기준으로 비판을 퍼붓지만, 그게 바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이유이기도 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런 인정이 문제 해결의 올바른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동전의 양면 가운데 어느 한 면이 싫다고 그것만 없앨 수는 없는 일이다.

광풍은 한국적 삶의 본질이다. 이른바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좋은 의미로 쓰는 말이라면 바로 그것의 옆얼굴인 셈이다. 광풍을 사랑할 필요는 없지만, 혐오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혐오해야 할 건 ‘승자 독식주의’다. ‘쏠림’ ‘소용돌이’ ‘1극 구조’를 이용해 취하는 이득은 부당이득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승자 독식주의를 저지하기 위한 방안들을 차분하게 하나씩 실천해나가는 일이다. 특히 개혁이라는 미명을 앞세워 승자 독식주의를 정당화하는 걸 경계해야 한다. 이젠 ‘위에서 아래로’와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를 외쳐온 연역적 개혁의 한계를 인정하고 ‘아래에서 위로’와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를 실천하는 귀납적 개혁을 병행해야 할 때다. 각종 자발적 시민결사체들이 거대 담론과 정치에만 집중한 나머지 각 분야에서 얼마든지 통제할 수도 있었던 ‘영어 광풍’을 키우는 데 일조했던 건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07. 07. 14.

P.S. 본문에서 강준만 교수가 업급한 한국일보의 기사도 스크랩해놓는다. 나도 읽었던 기억이 있는 기사이다.

한국일보(06. 03. 06) [영어가 권력이다] 신분과 계급을 결정

#1. 2004년 외국계로 경영권이 넘어간 금융기관 A사의 L차장. 그는 지난해말 외국인 상사와의 면담에서 “일을 참 잘하는군요. 그런데 영어만 좀더 하면 훨씬 많은 기회가 주어질 텐데…”라는 말을 들었다. 입사 이후 14년간 열심히 일했고 과거 한국인 임원들에게서도 능력을 인정 받았던 터라 칭찬이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L차장은 지난달 부장 승진인사에서 탈락했다. 그는 “무능하다고 평가 받던 사람이 영어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승진하는 모습을 보고는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다.

#2. B사립대의 일문과 교수 K씨. 일본에서 학위를 받았지만 5~6년마다 주어지는 1년간의 연구년(안식년)을 일본에서 보낸 적은 한 번도 없다. 자녀들의 영어교육을 위해 늘 미국 행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미국에서 3년간 생활한 경험이 있는 큰 딸은 특차(토플)로 들어간 외국어고를 졸업하고 곧장 미국 명문대에 입학했다. 2년 전 연구년을 활용해 미국에 데려간 작은 딸(중 3)은 아내와 함께 눌러 앉혔다. “경쟁력이 없는 국내 명문대에 가느니, 영어실력을 쌓을 수 있는 미국 대학을 나오는 게 한국 사회에서 성공하는데도 훨씬 도움이 된다”는 게 K씨 생각이다.

외국어인 영어를 중심으로 신분과 계급이 결정되는 영어권력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 영어가 빈부격차, 도농격차를 확대 재생산하며 양극화를 재촉하는 핵심요인으로 떠오른 것이다. 영어가 진학과 취업, 승진 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지는 이미 오래됐다.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서울대 경영학과 86학번 졸업생 51명을 조사한 결과, ‘영어실력이 우수하다’고 응답한 그룹의 평균 연봉(1억600만원)은 ‘중간 혹은 그 이하’라고 답한 그룹(7,000만원)보다 3,000만원 이상 많았다.

C그룹 인사담당자는 “한국 사회의 개방화가 진전되면서 ‘글로벌 네트워크’로의 접속 가능성을 뜻하는 영어의 가치가 높아졌다”며 “신입사원 채용부터 연봉 책정, 승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사평가의 핵심 기준은 영어”라고 말했다.

영어는 우리 사회의 파워집단을 더욱 공고히 하는 ‘무기’로 작용하며 조기 영어교육을 받기 어려운 소외계층의 상실감을 부추기고 있다. 외교관과 고위 관료 등은 해외 근무나 연수기회를 자녀 영어교육에 적극 활용한다. 실제 중앙부처 국장급 간부 자녀들 중 해외유학 경험자는 절반 이상이며, 부모 귀국 후 현지에 남는 경우도 상당수다.

정부 관계자는 “고위 관료들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 근무에 목을 매는 이유도 자녀 영어교육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액 전문직과 대기업 임원들 역시 돈을 밑천으로 자녀들의 영어교육에 ‘올인’ 하고 있다.

전병만 한국영어교육학회장(전북대 교수)은 “한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촉진하는 영어권력 문제를 해결하려면 소외계층의 영어교육을 지원할 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06. 03. 06) [영어가 권력이다] 영어 잘하는 쪽이 연봉 40% 더 많아

공인회계사와 경영컨설턴트, 금융기관 직원 등 화이트칼라 근로자는 영어실력에 따라 몸값이 평균 30~40% 가량 차이 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서울대 경영학과 1986년 입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졸업 이후 유학이나 개인적 노력을 통해 동료보다 영어실력을 키운 집단의 평균 소득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40%나 많았다. 서울대 경영학과의 86학번 신입생은 276명이었으며, 이번 설문조사에는 총 51명이 응답했다. 직업은 국내외 금융기관ㆍ대기업 직원, 공인회계사ㆍ경영컨설턴트, 사무관 이상 공무원, 판사, 변호사 등으로 다양했다.

5점 척도로 평가한 영어실력(점수가 높을수록 우수)이 4점 이상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22명이었다. 이들의 작년 연간 수입은 전체 응답자 51명의 평균 수입(8,600만원)보다 2,000만원 가량 많은 평균 1억600만원으로 추정됐다. 반면 영어실력이 2~3점 수준이라고 답한 29명의 평균 연봉은 7,000만원 정도였다. 해외 근무나 연수경험이 있는 경우(27명ㆍ연봉 9,600만원)와 그렇지 않은 경우(24명ㆍ7,400만원)의 연봉격차도 2,200만원이나 됐다.

직업별 분석에서는 공인회계사와 경영컨설턴트, 대기업 직원 등 민간을 중심으로 영어실력이 몸값을 결정하는 현상이 뚜렷한 반면, 판사ㆍ공무원ㆍ교수 등의 경우 영어실력과 연봉과의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국내 대기업ㆍ금융기관에 근무하거나 공인회계사와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는 민간분야 종사자 28명(실적급을 받는 외국계 금융기관 직원 4명 제외)을 대상으로 영어실력과 연봉을 비교한 결과, 영어 능통자 12명의 연봉은 평균 1억250만원에 달했다. 나머지 16명의 평균 연봉은 그보다 3,200만원 가량 적은 6,815만원으로 나타났다.

사무관 이상 공무원, 판사, 교수 등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10명 중 ‘영어실력에 자신 있다’고 답한 사람은 3명이었다. 이들의 평균 연봉은 5,300만원 가량으로, 다른 8명의 평균 연봉(5,200만원)과 별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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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에 나온 영화이론서 세 권을 소개한다. 소개라기보다는 올여름의 독서목록에 올려놓은 책들에 대한 나대로의 워밍업이다. 두 권은 읽기 시작했고 한권은 재정적인 여유가 좀 생기는 대로 읽어볼 참이다. 세 권 모두 80년대 중반 이후 영화이론의 비교적 최근 경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 않나 싶다. '딱딱한' 이론서들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잠시 돌고래들의 서핑을 감상해본다(이들은 전생에 나보다 훨씬 많은 공덕을 쌓았음에 틀림없다!)...    

 

현대영화이론에 대한 입문격의 소개(http://blog.aladin.co.kr/mramor/429967)는 오래전에 페이퍼로 올려둔 바 있다. 그런 영화이론의 끄트머리 '포스트-이론'을 대표하는 흐름을 '인지주의'라고 하는데, 데이비드 보드웰은 그 대표격인 영화학자이다(홍상수와의 대담은 http://blog.aladin.co.kr/mramor/1102718 참조). 그가 노엘 캐롤과 함께 편집한 책 <포스트-이론>(1996)은 영화기호학과 정신분석학이 주축을 이루었던 '이론'의 종언과 인지주의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하는 책이다(그래서 영화연구 자체를 재구축하고자 한다). 해서 이 인지주의자들은 '포스트-이론가'라고도 불린다.

'이론과 포스트-이론 사이의 키에슬롭스키'란 부제를 달고 있는 지젝의 <진짜 눈물의 공포>(울력, 2004; 영어판 2001)는 키에슬롭스키론이면서 동시에 이 포스트-이론가들에 대한 논박을 시도하고 있는 책이다. 그 서론에서 지젝이 인용하고 있는 <포스트-이론>의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을 통일하고 있는 원리는, 여기에 실린 모든 연구들이 영화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정신분석학적 틀에 의존하지 않는 영화연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물론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론' 자체가 거의 소개돼 있지 않은 우리와는 무관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이론가' 크리스티앙 메츠의 책이 한권도 소개돼 있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니까). 

 

 

 

 

 

 

 

포스트-이론에서 기호학/정신분석학의 배제는 영화학에서 크리스티앙 메츠, 혹은 더 확장해서 프랑스산 영화이론에 대한 배제를 함축한다. 절반 정도만 국역돼 나온 <영화의 내레이션>(시각과언어, 2007; 영어본 1985)에서도 이미 이러한 '포스트-이론'적 시각은 확인된다. <진짜 눈물의 공포>을 우리말로도 옮긴 역자는 이렇게 정리해준다.

"영화의 내레이션 과정에 대한 보드웰의 작업은 7,80년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거대이론의 난점을 공략하고, 그에 대한 비판적 시선 위에서 영화이론을 새롭게 기획하고 재구성하려는 지적 노력의 소산이다."(417쪽)

반면에 "거대이론은, 영화로 한정시켜 말하자면, 영화와 사회, 인간 주체의 관계를 더욱 비판적이고 급진적인 수준에서 사고했던 이론적 움직임으로서, 구조주의 기호학과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를 모체로 하면서, 영화의 이미작용에 내재하는 의미와 질서, 그리고 그것에 연계되어 있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이론화한 바 있다."

하지만 "관객의 경험이 낳은 개별적인 의미를 희생시킨 채 관객 주체를 집합적 단수로 보고 규정적으로 파악한다든디, 주체의 존재를 단지 구조의 효과 정도로만 이해한다든지, 개별 텍스트들이 지닌 미묘한 차이를 무시하고 영화의 의미작용 과정을 통일되게 설명해내려는 지나친 전일화(totalization)에의 열망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거대이론이 안고 있던 피할 수 없는 난제들이었다."(418쪽)

"이에 대해 보드웰은 1950년대부터 영미를 중심으로 발달한 인지주의와 신형식주의를 자신의 이론의 모태로 삼으면서, 거대이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영화의 이론화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 문제의식이 얽혀 있다고 하겠는데, 그 첫번째는 실제 관람자가가 아닌 이상적 관객을 다루고 있는 정신분석적 영화이론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다.(...) 두번째는, 영화의 의미화 과정에 주목했던 구조주의 언어학의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영화 텍스트가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는 구조주의 영화이론이 너무 결정론적이고 비역사적이며, 다양한 텍스트들을 동질화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 비판의 출판점이다."(418-9쪽)  

흥미로운 것은 보드웰이 영미의 인지주의와 함께 1920년대 러시아 형식주의 이론가들을 자신의 이론적 모태로 삼는다는 점인데(그래서 그는 '신형식주의자'로도 불린다), 내러티브를 다루면서 자신이 왜 러시아 이론가들을 참조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서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책의 주제를 생각한다면 1920년대의 러시아 형식주의 비평가, 즉 빅토르 슈클로프스키와, 유리 티냐노프, 보리스 아이헨바움 같은 이들의 작업에 의존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헨리 제임스는 예외로 치더라도 위의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가장 중요한 내러티브 이론가들이다."(12쪽)

곁가지로 지적하자면, '아이헨바움(Boris Eichenbaum)'은 '에이헨바움'이라고 읽어야 한다. 형식주의자들의 용어인 'syuzhet'도 '수제'가 아니라 '슈제트(슈젯)'라고 읽어야 한다(불어식으로 '수제' 혹은 '슈제'라고 읽는 건 '상상력'의 소산이다). 서사학 관련서들에서 자주 범하는 실수들이다. 러시아어 고유명사 표기의 오류들은 대부분들의 번억서들에서 '관행화' 돼버렸는데, 이 번역서도 예외는 아니다(가령 영화제목에 <상트 뻬쩨르부르그의 종말>과 <전함 포촘킨>이란 표기가 나란히 등장하는 건 넌센스이다. 아무런 표기의 원칙도 없다는 뜻이기에). 정도가 심한 건 아니지만 가령 199쪽에서 러시아 비평가 '세르게이 발루카티(Sergei Balukhatyi)'는 '세르게이 발루하트이'라고 읽어야 한다. 이런 음역표기가 난해한 건 결코 아니다. 다만 역자나 출판사들이 무신경한 탓이다.

이 형식주의자들의 영화론을 담은 가장 중요한 선집은 <포에티카 키노>, 곧 <영화시학>(1927)이다(이미지는 독역본이다. 대역본인지는 모르겠다). 우리말로는 <영화 형식과 기호>(열린책들, 1995)라고 부분 번역돼 있는 책(<러시아 형식주의 영화이론>이라고 영역돼 있다).

보드웰이 인용하고 있는 에이헨바움의 지적: "견고한 입장의 전통적인 사고를 위반하는 원리를 형식주의자들이 옹호한다는 생각은 문학연구만이 아니라 예술 일반에 관한 연구에서도 '자명했다'. 형식주의자들은 자신의 원리들을 매우 엄격하게 고집하면서, 문학이론의 특수한 문제들과 미학의 일반적인 문제들 사이의 거리감을 좁혀놓았다. 그들의 사고와 원리는 상당한 구체성을 띠며 일반적인 미학이론을 지향한다."(12쪽)

이것은 러시아 형식주의의 방법론을 소개하고 있는 ''형식적 방법'의 이론'이란 에이헨바움의 글로부터의 인용인데(국역본은 <러시아 형식주의>(이화여대출판부) 등을 참조할 수 있다. 이대출판부본은 불어본에서 중역한 것이다). 첫문장은 오역이다. 보드웰의 책에서 원문을 옮기면 "The Formalist advocated principles which violated solidly entrenched traditional notions, notions which had appeared to be 'axiomatic' not only in the study of literature but in the study of art generally." 

여기서 '자명하게' 보인 것은 '형식주의자들의 생각'이 아니라 '전통적인 사고'이다. 다시 옮기면, "형식주의자들은 문학연구뿐만 아니라 예술연구 일반에서 자명한 것처럼 보였던, 견고한 전통적인 관념들을 위반하는 윈리들을 옹호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문예학과 미학 사이의 거리를 좁혀놓았다는 것. 이러한 형식주의의 작업을 보드웰은 높이 평가하면서 자신의 프로젝트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내레이션 연구에 한정돼 있긴 하지만 왜 그런가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확인해볼 수 있겠다.  

이어서 두번째 책은 '영화이해의 인지과학적 전환을 위하여'란 부제를 달고 있는 <영화인지기호학>(커뮤니케이션, 2007; 영어본 2000)이다. 저자인 워런 벅랜드는 이미 <영화연구>(현대미학사, 2002)란 책으로 소개된 바 있는, 영화인지기호학 분야의 선두주자이다. 잠시 소개를 옮겨보면, "영화인지기호학'이란 한마디로 영화를 인지학 혹은 인지과학적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기호학적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196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영화인지기호학의 연구 현황을 살피고, 미국의 인지적 영화이론의 취약점을 조명함으로써, 영화연구에서 후기이론(Post-Theory)의 등장을 예고한다."

'영화연구에서 후기이론의 등장을 예고한다'는 마지막 멘트는 얼핏 이해되지 않는데, 이미 살펴본 대로 '포스트-이론'은 벅랜드보다 앞서서 보드웰 등이 주창한 것이기 때문이다. 보드웰이 소위 대문자 이론을 비판하면서 1920년대 러시아 형식주의로 되돌아가는 '포스트-이론'적 자세를 취했다면, 벅랜드의 기본 입장은 '이론'과 '포스트-이론' 사이의 절충, 혹은 종합이다(더 멋있게 말하자면 '변증법적 지양'이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는 그의 문제의식은 이렇다.

"오늘날 '언어분석전통'과 '주체철학' 사이의 갈등은 언어학과 인지과학의 갈등으로 이해된다. 이 갈등은 1980년대 이래 영화이론에서 인지영화이론가들(예를 들면 보드웰)과 언어학과 기호학에 토대를 둔 현대영화 이론가들(예를 들면 메츠)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그가 보기에 보다 생산적인 것은 그러한 '대립'이 아니라 종합이다. "이 책은 '인지영화이론'과 '현대영화이론' 간에 전면적인 대립은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인지과학의 통찰과 언어학, 그리고 기호학을 통합하는 현대영화이론의 영역을 자세히 다룬다." 이 통합적인 현대영화이론의 이름이 '영화인지기호학'이다(말 그대로 '기호학'과 '인지과학'을 통합한 것이다). 이 정도면 구도는 대충 나온 셈인데, 앞서 다룬 보드웰의 <영화의 내레이션>을 다룬 대목을 호기심 삼아 읽어본다.

"보드웰이 메츠의 '거대 통합체'와 같은 초기의 기호학 작업을 <픽션적 영화에서의 서술>에서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지주의자들은 형대영화이론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을 뿐만 아니라 큰 가치도 두지 않는다. 그러나 보드웰은 같은 책 2장에서 다음과 같이 질문하면서 이것을 강조한다."(5쪽)

<픽션적 영화에서의 서술>이 바로 <영화의 내레이션>의 원제이다. 한데 이 대목의 번역은 좀 부정확하다. 원문은 "The cognitivists find very little of value or interest in modern film theory, although in Narration in the Fiction Film Bordwell acknowledges the value of some early semiotic work, such as Christian Metz's grande syntagmatique. Yet Bordwell undermines this acknowledgement in Chater 2 of the same book when he asks the following questions."(4-5쪽)  

번역문의 마지막 문장에서 '강조하다'라고 옮겨진 'undermine'은 '침식하다'란 뜻이다(그러니까 자기말을 무효화하는 것이다). 다시 옮기면, "인지주의자들은 현대영화이론에서 아무런 가치도, 흥미도 발견하지 못했다. 비록 <영화의 내레이션>에서 보드웰은 메츠의 '거대통합체' 같은 기호학적 초기 작업의 가치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보드웰도 바로 같은 책의 2장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지면서 자신의 인정을 무효화한다." 

보충하자면, 보드웰의 인정은 이런 것이다: "내러티브의 구조적 양상에 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더 풍성한 편이었다. 특히 그러한 연구는 프랑스 구조주의의 시각에 의해 이루어졌다. 크리스티앙 메츠의 거대통합체는 이 부분에서 가장 뚜럿한 성취라 하겠다."(<영화의 내레이션>, 14쪽) 그리고 이러한 '인정'을 다시 집어삼키는 질문들이란 "왜 언어학 개념들의 사용이 영화의 나레이션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이 되는가?" 등과 같은 질문들이다.

역시나 벅랙드의 번역본도 이런저런 오류들을 범하고 있다. 가령 'paradigmatic'을 '화용론적'(서문 4쪽)이라고 옮기거나 'poetics' 같은 말을 '시학'이 아닌 '시론'(6쪽)이라고 옮기는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다. 고유명사 표기에 있어서도 '에이젠슈테인'을 '아이젠슈타인'으로 옮기거나(<영화의 내레이션>에서는 '에이젠쉬테인'이라고 옮겼다) 폴란드의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Malinowski)'를 '멜리노브스키'로, 독일의 영화이론가 크라카우어(Kracauer)를 '크라카우'로, '알튀세르(Althusser)'는 '알튜세'로 '주네트(Genette)'는 '제네트'로 옮기는 것 등등은 역자의 무관심을 넘어 식견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영화잡지 <스크린(Screen)>은 왜 <씬>이라고 옮기는 것일까?). 값싼 책도 아니건만... 

끝으로 아직 손에 들지 않은 그레고리 커리의 <이미지와 마음>(한울, 2007; 영어본 1995). 부제는 '영화, 철학, 그리고 인지과학'이고 저자는 영화이론가가 아니라 철학자이다(과학철학쪽의 경력을 쌓고서 예술철학쪽으로 관심을 확장하고 있는 듯하다). 벅랜드의 책보다 먼저 출간되었기에 순서상 먼저 읽는 것도 좋을 듯하다. 소개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 이후 이루어진 ‘인지주의 혁명’은 모든 매체에서의 예술작품에 대한 창조, 해석, 감상을 이해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이런 새로운 탐구 영역을 영화예술에 적용하여 어떤 식으로 문제 해결이 기술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텍스트"라고 하니까.

영화적 재현과 내러티브의 문제를 다루면서, "소설과 영화의 해석에 대해 명료하고 정확하게 그 윤곽과 주요 논점을 제기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문학과 영화의 관계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게 덧붙은 소개말이다. 나로선 빠져나가기가 어렵다...

07. 0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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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7-07-13 10:05   좋아요 0 | URL
서광사에서 나온 '김산의 장자풀이'는 목록에 없군요. 읽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책인데..

로쟈 2007-07-13 10:52   좋아요 0 | URL
예전에 사둔 책들은 뺐습니다(오강남본만 제외하고). 그간에(최근 몇년간) 새로 나온 책들을 읽어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