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 전시회 소식은 지난주에 전한 바 있는데, 한겨레 관련기사가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255305.html). 모처럼 대규모의 러시아 미술전이 개최된 참인지라 주요 화가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간혹 페이퍼로 올려놓을 계획이다.

한겨레(07. 12. 07) '인민’과 함께 한 혁명전야

아이바조프스키, 보그다노프-벨스키, 바스네초프, 먀소예도프, 페로프, 수리코프, 크람스코이, 레핀…. 금시초문이라고 부끄러워 말라. 아직 우리가 만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스키’ ‘프’자 돌림이니 물론 러시아인.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러시아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고골, 체호프,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문인들과 비슷하게 러시아 제정 말기 혁명전야를 살았다.

러시아 문학은 1920년대 이후 일본 유학파에 의해 국내에 소개된 반면 러시아 화가들은 그렇지 않았다("러시아문학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건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최소한 1908년 최남선이 <소년>지에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미술인들이 배운 것이라야 유럽 야수파, 인상파에 국한됐다. 1990년 러시아와의 수교 이후도 마찬가지. 냉전시대를 건너 한국을 찾아온 한-러 수교 5돌 기념전은 칸딘스키, 말레비치처럼 서유럽 미술사에 편입된 아방가르드 유파가 주인공이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02-525-3321)에서 내년 2월27일까지 열리는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은 딱하게도 칸딘스키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미술사를 훑는 91점의 끄트머리에 달랑(?) 넉 점만을 소개하고 있는데도…. 이해할 만하다. 한국인에게 러시아 미술은 칸딘스키 외에는 전인미답이기 때문.

이 전시회는 사회변혁을 꿈꾸며 치열하게 살아간 화가들의 세계를 들춰봄으로써 러시아 혁명전야를 통째 복원해 볼 수 있으며, 한때 ‘브나로드’(인민 속으로)를 외치며 농촌으로 스며들었던 식민지 조선 문인들의 마음 풍경을 엿볼 기회다.

전시의 중심은 1870년 먀소예도프, 페로프, 사브라소프, 크람스코이 등이 세운 ‘이동예술전협회’ 회원들. 졸업작품의 주제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시로는 반역적인 주장과 함께 왕립 페테르부르크미술아카데미를 자퇴한 이들은 ‘미술이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는 취지로 이동예술전협회를 결성해 전국을 누비며 전시회를 열었다. 이 단체는 정부 후원 없이 오랫동안 큰 큐모로 존속하며 인민들과 교감했다. 1880년 레핀, 수리코프 등 2세대 작가들이 가세하면서 인상파의 빛과 색, 외광의 눈부심을 수용하면서 미술계 주류를 형성하게 된다. 이들의 구호는 미술판 브나로드인 “미술을 인민에게”.

이들이 즐겨 그린 소재는 혁명전야의 실상.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는 유형지에서 갓 돌아온 언니와 겁을 먹고 경계하는 동생들의 눈초리를 통해 시대상을 드러낸다(*'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먀소예도프의 ‘지방자치회의 점심식사’는 허름한 농민들이 의회 담벼락에 기대 허기를 끄는 반면 실내에서는 지주들이 포도주를 곁들인 성찬을 즐기는 순간을 잡아 지방자치회가 허울임을 폭로한다. ‘유형수들의 휴식’(야코비), ‘익사한 여인’(페로프),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레핀), ‘임시숙소’(마코프스키), ‘노부모의 상경’(레베데프), ‘농가의 깃털 작업장’(키브셴코), ‘암산’(보그다노프-벨스키), ‘방앗간 주인’(크람스코이) 등도 가슴을 울린다.

또 다른 중심은 기업인 후원자. 91점 가운데 41점은 국립트레티야코프미술관에서 온 것으로, 트레티야코프미술관을 세운 부유한 상공인이자 미술애호가인 미하일로비치 트레티야코프(1832~1898)의 콜렉션이다. 크레티야코프는 “돈을 벌게 해준 사회에 유용한 시설을 남겨 환원하고 싶다”며 미술품을 사들였다. 그는 구두쇠였지만 마음에 드는 그림이면 아무리 비싸도 돈주머니를 털었다. 평소 누구한테나 콜렉션을 무료로 개방했던 그는 죽기 6년 전 40년동안 수집한 3천여점의 작품을 모스크바시에 기증하고 큐레이터를 겸직했다.

또다른 후원자는 철도왕 마몬토프(1841-1918). 예술가이기도 한 그는 1870년 모스크바 근교 자작나무 숲에 자리한 아브람체보 영지를 구입해 예술가 마을을 만들었다. 이 공동체에서 레핀, 바스네초프, 수리코프, 세로프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뒷바라지했다. 마몬토프의 조카 ‘타티야나 마몬토바의 초상’(레핀)이 그 증거. 아내를 관장으로 앉히고 생색을 내는 우리나라 기업인들과 대비된다.

이밖에 작가 마이코프,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고골, 작곡가 차이코프스키 등의 초상은 당대 지식인들의 네트워크를 잘 보여주며, 풍속화, 풍경화에서는 작가들의 조국애가 흠씬 묻어난다. 리얼리즘 회화가 너무 강렬한 탓인지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작품은 오히려 덤처럼 느껴진다. 부나비처럼 유행을 따라다니는 한국 미술판에 ‘러시아 거장전’은 신선한 충격이다. 관객이 얼마나 들지 주목거리(*듣자 하니 아직까지는 별다른 호응을 얻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 자주 오는 기회는 아닌 터인데).(임종업 기자)

07. 1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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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7-12-07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 근처에서 하니 한 번 가봐야겠네요

로쟈 2007-12-07 10:51   좋아요 0 | URL
좋은 동네에 사시는군요...
 

컬처뉴스에서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이제이북스, 2007)에 대한 리뷰를 옮겨온다(http://www.culturenews.net/read.asp?title_up_code=006&title_down_code=002&article_num=8754). 강의들 때문에 나는 이 책의 완독을 겨울방학으로 미뤄두었는데(하지만 방학땐 '계절학기' 강의가 있다!) 곁들여 읽어야 할 책도 많다는 걸 리뷰에서 다시 확인하게 된다.

컬처뉴스(07. 12. 05) 마르크스가 불러온 데리다의 유령'들'

“선생님의 저서를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난해하다’, ‘도통 종잡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어렵다고요? 파악이 불가능하다고요? 만약 정말로 제 글이 이해가 안 된다면 당신의 한국어 번역작업이 어떻게 가능하지요?” “우리나라의 경우, 일부 소장학자들과 작가들에게서 때때로 선생님의 글쓰기 스타일을 모방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글들을 봅니다.” “납득이 잘 안 되는데요. 제 글이 지극히 난해해서 이해도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제 글을 모방하는 사람들이 있다니요?”

국내의 한 일간지(<조선일보>, 1997년 1월 20일자)에 실린 이 대담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참 웃긴 대담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이 대담은 일종의 ‘징후’였다. 자크 데리다(1930~2004)가 한국에 와서 엄청나게 고생하게 될 것이라는 징후.(*참고로, 이 대담은 김성도, <하이퍼미디어 시대의 인문학>(생각의나무, 2003)에 수록돼 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1996년 『그라마톨로지』(1967)와 『입장들』(1972)로 처음 국내에 소개된 이후 데리다의 국역본들은 끊임없는 오역 논란에 시달렸다. 그래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치밀한 번역과 쉬운 용어선택으로 번역의 전범을 보여줬다”(<조선일보>, 1996년 2월 9일자)던 『그라마톨로지』마저 오역의 수렁에서 허우적대다가 ‘퇴출’된 건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제 화젯거리도 아니다.

어쨌거나 이런 사정으로 데리다는 지난 10여 년간 국내에서 ‘유령’ 취급을 받아왔고, 3년 전 불귀의 객이 됨으로써 진짜 ‘유령’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국역된 데리다의 1993년작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그렇게 우리와 인연이 끊길 뻔한 데리다(의 유령‘들’)를 성공적으로 다시 불러오고 있다. 진태원이라는 소장학자의 도움으로. “자네는 학자야, 그것에게 말을 걸어보게.”

그러나 『마르크스의 유령들』의 재출간(원래 이 책은 지난 1996년에도 국역된 바 있다)이 주목받아야 할 이유는 이 책이 ‘읽을 만하게’ 다시 소개됐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데리다의 유령이 마르크스의 유령‘들’과 함께, 혹은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통해서 돌아왔다는 사실, 더 나아가 그 덕택에 우리는 이제야 데리다의 유령‘들’을 맞이할 준비가 됐다는 사실이야말로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반겨야 할 이유이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데리다가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발표할 당시 큰 주목을 받은 이유는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데리다가, 마르크스주의의 토대였던 현실 사회주의 블록이 해체된 시기에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이었다. 즉, 당시에 이 책이 주목받은 이유는 이 책이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호출하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호출을 “데리다가” 수행해서였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서 이 책이 주목을 받고 있다면/받아야 한다면 그건 명확히 이 책이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약 72권에 달하는 데리다의 책들 중 아무 것이나 지금, 이 시기에, 매끄럽게 국역된다고 해서 (예상컨대 1994년작 『우정의 정치학』이라면 예외겠지만) 주목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다시 말해서 프랑스에서는 데리다가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데려왔다면, 한국에서는 마르크스가 데리다의 유령‘들’을 불러온 셈이라고나 할까.

왜 마르크스인가(혹은 왜 마르크스의 유령‘들’인가)? 무엇보다도 그건 데리다로 하여금 마르크스의 어떤 정신/유산을 불러오게 했던 바로 그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리다가 ‘새로운 세계 질서의 열 가지 재앙들’이라고 말한 대규모 실업, 무자격 시민들(홈리스, 망명객, 무국적자, 이민자 등)의 집단적 배제, 무자비한 경제전쟁, 자유시장의 무능력, 외채 누적, 군수산업과 군수무역, 핵무기의 확산, 종족/인종간 전쟁, 마피아 같은 환영국가의 권력 증대, 국제법과 국제기구의 한계들이『마르크스의 유령들』이 출간됐을 때보다 훨씬 더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이런 열 가지 재앙들을 사유하기 위해서 꼭 마르크스를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르크스를 단지 지나쳐버릴 수는 없으며,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바로 그 이유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기나긴 보충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유보는 있다. 복수(複數)로 표기된 제목이 암시하듯이, 우리는 마르크스의 유령‘들’ 중 특정한 유령/정신(들)을 선별해야만 한다. 게다가 마르크스 자신에게 들러붙어 있는 유령‘들’에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데리다가 이 유령‘들’을 떼어내야 한다고/낼 수 없다고 주장하는지는(옮긴이의 생각과는 달리) 좀 불분명하지만, 이 유령‘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서는 마르크스의 한계와 모순을 정확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데리다가 5장에서 다루는 『독일 이데올로기』(1845) 2부의 ‘마르크스-슈티르너 논쟁’을 이해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국역본 『독일 이데올로기』에는 1부만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 선별작업을 만끽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먼저 『마르크스의 유령들』 4장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4장에서 주로 다뤄지는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1852)은 여러 종의 국역본이 존재하며 번역 상태도 양호하다.

그리고 5장에 도전할 때에는 에티엔 발리바르의 『마르크스의 철학, 마르크스의 정치』(1993) 국역본 2장을 함께 읽는 것이 도움이 될 듯싶다. 여담이지만, 발리바르는 현존 마르크스주의자들 중 그 사유방식이 가장 데리다와 비슷하다. 그러니 데리다의 마르크스 애도 작업, 혹은 데리다 식의 마르크스 읽기의 이론적 효과를 만끽하고 싶은 분들은 발리바르를 같이 읽으시면 된다(이런 점에서 추천할 만한 발리바르의 또 다른 저서는 얼마 전 국역된 『대중들의 공포』이다).

마지막으로, 왜 데리다의 유령이 아니라 유령‘들’인가? 우리가 맨 처음 알게 된 데리다는 ‘문학비평가’(특히 ‘예일 마피아’의 숨은 대부)로서의 데리다였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유령들』 이후의 데리다는 ‘정치철학자’로서의 데리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초창기의 저작들, 그도 아니면 적어도 『다른 곶』(1991)부터 데리다는 충분히 정치적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데리다가 정치에 대한 사유를 본격적으로 전면에 드러낸 것은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직 찾아오지 않은 데리다(혹은 데리다의 또 다른 유령)가 있으니 그건 바로 ‘윤리학자’로서의 데리다이다. 특히 쇠렌 키에르케고르(1813~1855)의 『공포와 전율』(1843)을 꼼꼼하고 읽고 있는 『죽음을 선사하기』(1999) 전후의 데리다가 그러한데, 정치철학자로서의 데리다만큼이나 윤리학자로서의 데리다 역시 매혹적이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바로 이런 데리다의 맹아를 엿볼 수 있는 저작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의 재출간과 더불어 데리다의 유령‘들’을 맞이할 준비가 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우리에게 도착한 책 중 윤리학자로서의 데리다를 엿볼 수 있는 텍스트는 1997년작 『환대에 대하여』인데, 아쉽게도 이 책의 국역본은 읽기가 쉽지 않다). 요컨대 마르크스의 유령이 하나가 아니듯이, 데리다의 유령 역시 하나가 아닌 것이다.

자신의 말에 따라 선왕의 유령에게 말을 건 호레이쇼에게 마셀러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존엄한 혼령인데, 우리가 너무 난폭하게 대한 것 아닐까?”(『햄릿』, 제1막 1장). 우리에게 그것은 누구/어떤 유령일까? 정치철학자로서의 데리다, 혹은 윤리학자로서의 데리다? 이에 대한 대답은 충분히 데리다를 읽지 않았던(그런데 그 누구가 데리다를 충분히 읽을 것인가) 우리가 우리 몫의 애도 작업을 충분히 수행할 때에 가능할 것이다. 데리다를 따라서, 데리다의 유령‘들’뿐만 아니라 데리다에 들러붙어 있는 유령‘들’까지 얘기할 수 있을 때에 말이다.(이재원_출판기획자) 

07. 12. 06.

P.S. '윤리학자' 데리다는 물론 레비나스를 읽는/읽은 데리다이다. 두 사람을 다룬 표준적인 책은 사이먼 크리칠리의 <해체의 윤리학: 데리다와 레비나스>(2판, 2000)이다. 물론 지금은 더 많은 관련서들이 나와 있다.

그리고 키에르케고르와 함께 데리다가 <죽음을 선사하기>에서 말을 건네고 있는 철학자는 체코의 얀 파토치카(1907-1977)이다. 지난 겨울 영역된 그의 책 몇 권을 구해놓고 번역을 주선해볼까 생각도 하던 참이었다. 윤리학자 데리다의 유령과 함께 파토치카의 유령도 조우할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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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7-12-07 0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르크스의 유령들 읽으려고 시도했으나 100페이지도 못가서 포기했어요... 역시 내공부족은 어쩔수 없나봐요 ㅡㅜ

로쟈 2007-12-07 08:45   좋아요 0 | URL
제가 관심을 갖는 독자 유형이시네요.^^; (아주 많지는 않으실 거라고 보지만) 인문/이론서를 보다 많은 이들이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거나 이끌어주는 책들(?)이, 혹은 서포터들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 '아르바이트'를 저도 가끔씩 하는 것이지만 근본적인 방책은 못되구요.--;

릴케 현상 2007-12-07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은 유형인데^^ 관심 좀 주세요. 퐁쥬 시가 좋길래 별 생각없이 '시네퐁쥬'를 읽다가 기겁을 한 적이 있네요

로쟈 2007-12-07 11:48   좋아요 0 | URL
데리다도 자신의 분류를 따르자면 '신계몽주의자'가 될 텐데, 난해하기만 한 철학자로 치부되는 건 불운한 일입니다.--;
 

며칠전 '프란츠 파농 읽기'란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오늘이 그의 기일이라고 한다. 한국일보의 '오늘의 책'에서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그린비)를 다루게 된 연유이다. 우연찮게도 엊그제 책의 영역본을 도서관에서 대출했는데 타이밍을 잘 맞춘 듯하다. 파농은 개인의 행방으로서의 '존재의 탈식민화'도 역설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탈식민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전략이고 당위이다.    

한국일보(오07. 12. 06) [오늘의 책<12월 6일>]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프랑스령 서인도제도 태생의 흑인 정신과 의사로 알제리 독립투쟁을 이끈 혁명가였던 프란츠 파농이 1961년 12월 6일 36세로 사망했다. 그의 생애는 짧았지만 그 삶과 사상은 20세기 후반 세계의 민권 운동과 탈식민주의 운동, 흑인 운동의 길잡이였다.

파농, 하면 떠오르는 책은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1961)이다. 한국에서는 당초 1979년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로, '사람'과 '자(者)'라는 단어 하나 차이지만 한층 선명한 제목으로, 번역됐었다. 서구 제국주의ㆍ식민주의가 제3세계에 가하는 야만적 폭력, 물리적 폭력은 물론 인간을 사물화시키는 경제적ㆍ문화적 폭력을 정신병리학자의 임상체험을 통해 고발하고 탈식민화를 위한 '정화'로서의 혁명적 폭력을 역설한 파농이즘이 담긴 이 책은 한국 젊은이들의 필독서가 됐다.

이 책에 장문의 서문을 쓴 사르트르는 "제3세계가 자신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자신에 대해 얘기할 수 있게 된 것도 파농을 통해서였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식민지나 제3세계, 혹은 이데올로기라는 말들이 낡아빠진 것으로 여겨지는 지금, 파농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2002년 프랑스어판 서문을 쓴 알리스 셰르키(파농과 함께 알제리 독립투쟁에 참여한 여성 정신분석학자)는 이렇게 묻고 답하고 있다. "이 책을 다시 읽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 책이 지금의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파농의 삶과 사상은 여전한 현재적 가치를 갖는다.

이데올로기의 몰락이라 일컬어지는 시대를 넘어서, 지금처럼 경제의 세계화와 주체의 상실이 지배하는 시대에, 젊은 시절 파농이 외친 한 마디, 요컨대 그의 사상을 실천적으로 끌어간 한 마디, '내 몸이여, 나를 언제나 의문을 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오!'라는 절규는 오늘날에도 많은 젊은이들의 정신 속에서 메아리치고 있다. 언어와 출신지의 경계를 넘어서!"(하종오기자)

07. 1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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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7-12-06 08:31   좋아요 0 | URL
전 올해 마음의 길잡이를 못 찾아 헤맬 때 파농을 다시 읽었어요. 난 알리스 셰르키의 서문은 오히려 사족이라고 봐요. 여전히 가슴 떨리는 건 파농, 그리고 사르트르죠.

로쟈 2007-12-06 12:32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이 여전히 유효한 현실이 유감스럽습니다...
 

'박사 난민'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얘기다. 기사를 읽어보니 어쩌면 우리도 곧 그런 지경에 이르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소위 '대학원 육성'이니 '대학원 중심 대학'이니 하는 구호들의 공허한 귀결이 '박사 난민'들의 '박사 알바' 아닐까? 남의 일 같지 않은 노릇이다.

한겨레(07. 12. 04) 일본 ‘박사 난민’ 사회문제로 편의점·술집 ‘박사 알바’ 수두룩

일본에서 ‘박사 난민’이 넘쳐나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대학원에서 어렵게 공부해 박사학위를 따고도 일정한 직장을 잡지 못하고 시간강사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는 이른바 ‘프리터 박사’가 전국적으로 1만2천명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 10월20일 출판된 <고학력 워킹푸어-‘프리터 생산공장’으로서의 대학원>(저자 미즈키 쇼도)은 발매 두 달도 못돼 5만5천부의 판매부수를 기록하며 박사 난민의 실태를 드러내는 기폭제가 됐다.

2004년 규슈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리츠메이칸대학 연구원 겸 시간강사’인 저자 미즈키(40)도 1년 계약이 끝나는 내년 봄 이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신분이다. 그는 <도쿄신문>과 인터뷰에서 “독신이어서 겨우 먹고 살수 있는 정도이다”며 “그나마 시간강사라는 직업이 있으니까 상당히 나은 편이다”라고 쓴 웃음을 지었다. 그가 알고 있는 한 여성 박사(33)는 대학 시간강사 외에도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면 월 15만엔을 벌어 생활비로 충당하고 있다. 선술집 알바나 학원강사를 겹치기로 뛰면서 ‘파친코 프로’가 된 박사도 있다고 한다.

지난해 박사과정 수료자는 과거 최다인 1만5966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사망·소재불명자’가 9.2%인 1471명에 이른다는 놀라운 통계결과도 있다. 미즈키는 “우수했던 여성 친구는 어느날 갑자기 연구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 지 담당교수도 알지 못한다. 그런 사람을 몇 명이나 알고 있다. 심신에 어딘가 병이 든 사람이 많다. 집안에 틀어박힌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박사 1인당을 키우는 데 1억~1억5천만엔의 비싼 국비가 투입되는 점을 고려하면 본인이나 국가나 막대한 손실이다.

박사난민 양산에는 무계획적인 대학원 중점화 정책이 있다는 지적이다. 1991년 당시 문부성이 “세계적인 수준의 교육연구의 진척’으로서 대학원 강화를 표명했다. 이에 따라 도쿄대를 비롯해 많은 대학이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지 않은 학생이나 미취업으로 고민하는 학생에게 앞다투어 적극적으로 대학원 진학을 권했다.

1985년 약 7만명이었던 대학원생이 단 20년여만에 두 배가 넘는 16만명으로 부풀어 올랐다. 일본 대학들은 저출산으로 인한 대학진학자 감소를 대학원 진학 증가로 만회한 셈이다. 문부과학성은 넘쳐나는 박사 대책으로 박사학위 취득 이후 대학 등 연구기관에 3~5년간 적을 두고 장려금 등을 받는 ‘포스트 닥터’를 실시하고 있으나 이도 올해 1만5천명이 넘을 정도로 포화상태이다.(도쿄/김도형 특파원)

07. 12. 04.

P.S. 이공계는 사정이 다른가? 대학원 육성/강화로 고급 두뇌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칼럼도 옮겨놓는다.

매일경제(07. 12. 04) 인재강국으로 가는 길

한국은 고급 두뇌 확보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18세 이상 인구 대비 이공계 박사 비중은 유럽연합(EU) 주요 국가가 0.6%인데, 한국은 0.4%에 불과하다. 바이오, 나노 등 미래 유망 산업을 주도할 이학박사 배출 수는 미국에 비해 7%에 불과할 정도로 열악하다. 한국 대학에서 이공계 박사가 100명 나올 때 미국 대학에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수가 27.3명이다. 일본 독일 등이 한두 명인 것에 비하면 너무 많은 수다. 그나마 이들 중 절반 가까이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아 고급 두뇌의 외국 유출은 엄청나다. 외국인 근로자 중 전문 인력 비중은 7.6%로 미국 영국 등 선진국 30~40%와 비교할 때 고급 두뇌의 국내 유치는 형편없다.

한국의 고급 두뇌 문제는 정부와 대학의 공급자 주도 정책에 주로 기인한다. 산업화 시대에 적합한 범용 인재 중심의 양산 정책에만 매달리면서 대학의 질적 경쟁력은 약화되었고, 이공계 인력의 시장 가치 저하, 고급 두뇌 이탈 등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다행히 한국은 교육열이 높고 이공계 인력의 잠재적 풀(Pool)도 충분해 적절한 유인책과 대학의 질적 경쟁력만 확보되면 고급 두뇌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

첫째, 세계적 수준이 될 가능성이 있는 연구중심대학에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 일찍부터 대학원을 고급 두뇌 산실로 인식한 선진국은 대학원 위주의 연구중심대학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전체 대학 중 5%인 연구중심대학이 정부지원 연구비 90% 정도를 가져가고, 과학기술 분야 박사 90% 이상을 배출한다. 특히 최고 교수 확보에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세계적 교수 한 명은 탁월한 연구 성과를 창출하는 것 외에도 고급 두뇌를 끌어 모으는 집적지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둘째, 이공계 교육 품질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현재 중ㆍ고교 과정 수학ㆍ과학 교육이 시원찮아 대학에서 애를 먹고 있다. 대학의 학부 전공 교육도 부실하여 대학원에서 하는 연구를 따라잡기가 어렵다. 미국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어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수학ㆍ과학 교육에 대한 로드맵을 새로 짜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도 서둘러야 한다.

셋째, 잠재적 고급 두뇌들에게 다양한 진로 기회와 비전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미래는 과학기술 기반 사회이기 때문에 이공계 직업 분야 전망이 밝다. 미국은 2014년까지 10대 직업군 중 7개에서 이공계 인력이 핵심을 담당한다고 한다. 이들 직업 성장률은 26%로 평균 15%보다 훨씬 높다. 전통적인 엔지니어링뿐만 아니라 금융공학, U-비즈니스, 디자인, 엔터테인먼트, 특허ㆍ표준 등 창조적 전문 직업 분야에서도 이공계 인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정부와 대학은 다양한 전문대학원 설립, 외국 우수대학과 프로그램 제휴 등을 통해 이공계 인력의 다양한 진로 선택을 활성화해야 한다.

넷째, 의학 인력의 적극적인 활용 가능성도 주목해야 한다. 미래 유망 산업은 의학과 관련된 것이 많다. 바이오, 의료기기, 신약 개발, 의료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들 분야는 의학만으로 되지 않는다. 이학, 공학, 의학이 협업을 해야 한다. 인재가 의학계로 진출하는 것은 시장논리여서 어쩔 수 없다면 이제는 의학인력과 협업을 통해 미래 산업을 이끌어갈 수 있는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다섯째, 이미 육성된 국내외 고급 두뇌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한국은 박사급 연구 인력 중 70% 정도가 대학에 편중돼 있다. 이들이 학교 바깥 세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지역과 산업에 실제적인 기여를 하도록 해야 한다. 대학은 지역과 산업에 적합한 실용적 연구를, 기업은 연구 결과에 대한 상업화를, 지역은 이들에 대해 체계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국내 고급 두뇌 부족분은 세계적 연구소와 연합 프로젝트를 추진하거나 네트워킹을 통해 보충하는 길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국외 R&D 거점 마련을 통해 현지 고급 두뇌를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고급 두뇌 확보는 정부와 대학만의 일이 아니다. 고급 두뇌를 필요로 하는 기업도 힘을 보태야 한다. 기업은 고급 두뇌 요건을 대학에 구체적으로 주문하고 재정을 비롯한 실제적인 지원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무엇보다 총 고용 인력 중 16.8%에 불과한 과학 기술 인력 고용 비중을 선진국 수준인 30%로 끌어올리는 등 과학기술 인력 활용(고용)을 책임져 주어야 한다.(류지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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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그 2007-12-04 22:29   좋아요 0 | URL
저는 지난주에 대학원 합격하고서 세상 물정 모르고 좋아하고 있었네요... 어째 만만찮은 앞날을 예견하는 듯합니다.^^;

로쟈 2007-12-04 22:31   좋아요 0 | URL
ㅎㅎ 축하합니다. 축하할 일인가는 더 생각해봅시다.^^;

sweetmagic 2007-12-05 01:32   좋아요 0 | URL
박사난민 ㅋㅋㅋ
문제의 심각성을 절감통감합니다.
심신의 어딘가에 병이 생긴다는 말에서는 ..........더 할말도 없습니다요.

로쟈 2007-12-05 08:37   좋아요 0 | URL
자살도 합니다.--;

순오기 2007-12-05 03:56   좋아요 0 | URL
우리도 곧 이렇게 될거라는 위기감이 확~ 느껴집니다.
박사난민보다 박사알바라는 말이 더 피부에 와 닿네요ㅠㅠ

로쟈 2007-12-05 08:37   좋아요 0 | URL
이미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릴케 현상 2007-12-05 11:01   좋아요 0 | URL
석사는 괜찮은거죠^^ 전 2학기까지 마쳐야 '중퇴'로 쳐준대서 버티고 있어요 ㅋ

로쟈 2007-12-06 00:12   좋아요 0 | URL
석사는 사정이 좀 낫겠습니다. 돈이 덜 들어갔으니...

비연 2007-12-05 13:46   좋아요 0 | URL
남의 일이 아니네요..흑흑.

로쟈 2007-12-06 00:13   좋아요 0 | URL
난민공동체라도 만들어야겠습니다.^^;

사량 2007-12-05 23:01   좋아요 0 | URL
저런 책이 '5만 5천부'나 팔리는 나라라면 별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데요. 정말 아무런 대책 없는 한국에 비하면...-_-;

로쟈 2007-12-06 00:14   좋아요 1 | URL
번역돼 나오면 박사들 호주머니깨나 털어먹겠습니다.--;

자꾸때리다 2007-12-06 12:08   좋아요 0 | URL
어딜가도 이런 소리는 있는 듯 하네요. 의사 선배들도 요즘에 학교 와서 단골 메뉴로 하는 말이 앞으로 의사 수가 '폭증'해서 먹고 살기 힘들 거라고 하던데요.

로쟈 2007-12-06 12:30   좋아요 0 | URL
사실 의사, 변호사야 이전에 너무 많이 '먹었던' 것이죠...
 

폭력의 문제와 관련하여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을 뒤적이다가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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