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쟈와 함께하는 인문학 여행

아트앤스터디의 오프라인 배움터(인문숲)에서 진행하게 될 '로쟈의 러시아문학 기행: 푸슈킨에서 체호프까지' 강좌를 소개한다. 처음에 8주 강좌 제안을 받고, 대학에서 평소에 하던 강의를 압축해서 해보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그렇게 해서 기획된 강좌다. 평소 러시아문학에 관심을 가졌던 분이라면, 그리고 특별히 '로쟈'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분이라면, 이 참에 러시아 명작들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셔도 되겠다. 사실 두 시간 강의에서 한 작가와 대표작을 소개한다는 건 무리하기에 입문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서 '여행' 혹은 '투어'라는 말을 붙였다. 강의는 내년 1월 4일부터 2월 22일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 7:30-9:30까지 진행된다). 내가 적은 강좌의 개요는 이렇다.  

러시아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나 초심자에게 러시아문학을 읽고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배경지식과 대표 작가·작품에 대한 입문적인 소개를 제공한다. 본 강의는 일종의 러시아문학 ‘투어’로서 푸슈킨부터 체호프까지 19세기 러시아문학의 탄생에서부터 절정과 황혼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따라가게 되며, 러시아문학의 독특한 향취를 맛보고 각각의 명작들이 제기하는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그밖의 강의소개는 아트앤스터디에서 제공한 것이며, 8주 강좌에서 다룰 작품들의 목록과 일정은 홈피를 참고하실 수 있다(http://www.artnstudy.com/inmoonsoop/Lecture/default.asp?lessonidx=off_hwLee01&OVRAW=%EB%A1%9C%EC%9F%88&OVKEY=%EB%A1%9C%EC%9F%88&OVMTC=standard&OVADID=19304485042&OVKWID=221901605542). 

'러시아문학으로의 초대'라는 강의 개관에 이어서 다루게 될 7명의 작가와 7편의 작품은 아래와 같다. 교재는 지정하지 않았지만, 처음 읽으시는 분이나 새로 구입하시려는 분은 참고하시면 좋겠다.  

1. 푸슈킨의 <에브게니 오네긴>  

  

2. 레르몬토프의 <우리시대의 영웅> 

 

3. 고골의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4. 투르게네프, <첫사랑> 

 

5.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6.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7. 체호프의 <갈매기> 

 

09. 12. 12. 

P.S. 강의장소인 '인문숲'의 위치는 아래와 같다. 확대해서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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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현대 러시아작가 7인을 만나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9-19 01:35 
    아트앤스터디 '인문숲'에서 지난 겨울 '로쟈의 러시아문학 기행'의 속편으로 '로쟈의 인문학 서재: 현대 러시아작가 7인을 만나다'를 진행한다(http://www.artnstudy.com/inmoonsoop/Lecture/default1010.asp?lessonidx=off_hwLee07&OVRAW=%EB%A1%9C%EC%9F%88&OVKEY=%EB%A1%9C%EC%9F%88&OVMTC=standard&OVADID=193044
 
 
Joule 2009-12-12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사를 미뤄야 하나. 쩝.

2009-12-12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2 1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3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2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2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12-12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년전엔가 톨스토이 중편<하지 무라드>를 읽다가 그 전에 읽은 <현대의 영웅>에 체첸 이야기기가 나온 게 기억나서 다시 훑어본 적이 있습니다.'레르몬토프와 톨스토이가 바라본 체첸의 차이점'이라는 제목으로 연구노트를 만들려다가...생각만 했지요.

로쟈 2009-12-12 21:59   좋아요 0 | URL
어떤 차이점인지 궁금한데요.^^ 영어권에서는 이 주제의 연구서와 논문도 나와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12-13 22:20   좋아요 0 | URL
톨스토이가 좀 더 체첸을 이해하려는 느낌이 있다는 느낌 정도...하지만 러시아를 일본으로, 체첸을 조선으로 본다면 하지 무라드가 일종의 전향한 독립군 같다는 느낌이 난 것도 사실이었어요.

로쟈 2009-12-13 22:28   좋아요 0 | URL
한편으로 하지 무라트는 톨스토이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것으로도 읽힙니다. 이상적 자아상의 투영으로요...

노이에자이트 2009-12-14 16:57   좋아요 0 | URL
톨스토이가 도덕적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이 러시아에 투항하긴 했으나 조국에 대한 애착은 여전한 하지 무라드와 비슷하다는 해설을 읽었습니다.

마냐 2009-12-12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오래전 기억을 끄집어내게 하시는군요. 저 한때는...저 이야기들로 밥벌이를 할 꿈을 갖기도 했는데요. ^^;;;

로쟈 2009-12-13 20:43   좋아요 0 | URL
밥벌이가 좀 어려운 분야이긴 해요.^^;

sophie 2009-12-13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2월초에 드가는데.. 후속강의가 이어지는 건가요?

로쟈 2009-12-13 20:49   좋아요 0 | URL
보따리장수의 처지에서 말씀드리자면, 그게 '장사'가 되면 이어지는 거라고 할 수 있죠...

하영-이룰수없는아련한첫사랑- 2009-12-13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선생님 글을 읽기만 하고 도망(?)가는 도둑(?)중의 한명입니다.^^ 생각은 많으나 말은 거기 못미치고 글은 더욱 뒤쳐지며 실천은 부끄러울 정도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앞으론 가끔 제 생각도 좀 써보려고 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 고골, 톨스토이, 뚜르게네프...막 설레는 이름들입니다.
어린 시절엔 그들의 번득이는 재능과 글 솜씨가 부럽더니 요즘은 그들이 얼마나 삶과 사람을 사랑했는가 하는 게 부럽습니다. 기대되는 강의네요 중요한 시험과 겹친 것이 아쉽습니다. 하긴 TV에 나오신 것도 못봤네요 ㅜ.ㅜ

로쟈 2009-12-13 22:10   좋아요 0 | URL
커밍아웃하신 건가요?^^ 반갑습니다. 러시아 작가들을 '셀레는 이름'이라고 해주시니까 더더욱! 가끔 댓글로 안부도 전해주시길.^^

펠릭스 2009-12-14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문학이 5%(인텔리겐치아)를 위한 문학이었다면, '나로드'로 봐선 문학 또한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척도로, 있는 자의 유희일 뿐이라 생각했을 것같아요.

로쟈 2009-12-14 00:25   좋아요 0 | URL
오늘날도 사정은 비슷할 듯싶은데요.^^; 못 읽는 대중에서 안 읽는 대중으로 바뀌었을 뿐...
 

어제도 모임이 있어서 자정이 넘어서야 귀가했다. '책읽는 밤'의 영향인지 방문자가 600명 가량 늘었고, 즐찾도 대여섯 명이 많아졌다. 시청자가 아주 없지는 않은 듯하다(KBS 내에서는 최저 시청률을 다투는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주로 금요일에 대형서점에 들르곤 하는데, 연거푸 연말모임이 겹치는 바람에 두 주 동안 신간을 둘러보지 못했다. 온라인 검색에서와는 다른 '눈요기'를 놓치고 있어서 아쉽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각 언론의 북리뷰나 일람해보는 것이다. 12월도 중순을 넘어가면 출판쪽에서는 비수기인지라 보통 '대작'들이 나오지 않는다. 내년 1월로 넘기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 때문인지, 그냥 기분인지 마음을 잡아끄는 책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에 음모론의 단골주인공인 프리메이슨에 관한 책 몇 권에 대한 소개가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  

 

세계일보(09. 12. 12) '세계를 지배하는 비밀조직' 진실을 파헤치다

‘다빈치 코드’로 뜬 미국 작가 댄 브라운의 신작 ‘로스트 심벌’로 세계 최고의 비밀결사인 프리메이슨이 다시 조명받고 있다. 조지 워싱턴을 비롯해 프랭클린 루스벨트, 해리 트루먼,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부자 등 미국 역대 대통령 3분의 1 이상이 프리메이슨 회원으로 알려지면서 적잖은 역사학자들은 “미국의 역사는 곧 프리메이슨의 역사이며, 미국의 실체를 바로 알려면 먼저 프리메이슨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할 정도로 프리메이슨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있다. 마침 프리메이슨을 다룬 3권의 책이 동시에 번역 출간돼 관심을 끌고 있다. 



먼저, 한국문학번역원장을 역임한 진형준 홍익대 인문대 학장이 집필한 ‘프리메이슨 비밀의 역사’(살림). 프리메이슨을 ‘서구 신비주의 전통을 바탕으로 모든 종교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종교를 추구하며, 형제애를 강조하는 정신 또는 그 모임’으로 정의하는 저자는 프리메이슨의 기원을 기존에 알려진 16∼17세기 중세 유럽에 널리 퍼져 있던 석공 길드가 아닌, 고대 이집트의 신비주의 전통에 영향을 받은 피타고라스학파에서 찾는다. 기원전 6세기 크로톤에서 정치개혁을 단행한 피타고라스학파는 엄격히 계급을 구분하였고 회원 간의 형제애와 비밀 체험을 강조하는 등 프리메이슨의 기본 정신과 매우 흡사한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은 프리메이슨들의 역사와 신화, 상징 등을 다방면에 걸쳐 기술하는 한편 그동안 일반인들이 프리메이슨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했던 갖가지 논란들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심벌코드의 비밀’(팀 웰레스 머피 지음, 김기협 옮김, 바다출판사)은 프리메이슨 탄생의 역사를 천착했다. ‘서양 문명에 숨겨진 이단의 메시지’라는 흥미로운 부제를 달고 있는 책은 고대 이집트로부터 중세 유럽을 거쳐 현대 프리메이슨 조직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정통 기독교의 테두리 바깥에 존재해 왔던 숨겨진 세력의 역사를 담고 있다. 특히 그들이 자신과 자신들의 조직을 지키기 위해 건축과 회화 등 기독교 문화 안에 몰래 기록해 놓은 비밀 암호를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프리메이슨 특유의 모자이크 문양과 기둥, 사다리 등의 상징이 담겨 있는 제도판(製圖板). 하늘을 향해 길게 뻗은 사다리는 프리메이슨의 진보를 향한 정신을 보여준다.

책은 과학이 이단으로 간주되던 시대에 ‘상징’과 ‘암호’는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지식과 발견을 서로 전하던 독창적이고도 현명한 방법이었을 거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서양 문명에는 정말 암호와 상징이 가득 숨어 있을까? 저자의 대답은 그렇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런 상징의 역사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미국 1달러 지폐 뒷면의 피라미드 상단에 그려져 있는 ‘호루스의 눈’은 프리메이슨이 세상을 지배하리라는 상징이고, 지금도 프랑스의 렌르샤토 마을에 모여드는 순례자들은 막달라 마리아를 숭배하는 이단의 무리 라는 것이다. 



‘프리메이슨, 빛의 도시를 건설하다’(크리스토퍼 호댑 지음, 윤성원 옮김, 밀리언하우스)는 무수히 많은 신화, 전설, 음모 이론들의 실체와 미스터리를 파헤쳐 프리메이슨이 건설한 빛의 제국 미국과, 수도 워싱턴 DC의 탄생에 얽힌 충격적인 비밀을 풀어준다. 실제 프리메이슨 회원인 저자는 프리메이슨이 감춰놓았다는 다양한 상징물과 암호를 찾아 워싱턴 DC의 거리와 건축물을 구석구석 답사하고 생생한 사진과 역사적 기록을 함께 제시한다.

미국 국회의사당 초석 비문, 국방부 펜타곤 건물 지붕의 펜타그램 모양, 워싱턴 DC 몰에 숨은 세피로스 등 현재 워싱턴 DC 거리 곳곳에 숨어 있는 프리메이슨의 상징들과 만날 수 있다. 또한 프리메이슨 입회식 장면의 배경으로 나온 템플하우스의 주소에 얽힌 숫자 ‘33’의 비밀, 주인공 로버트 랭던이 ‘워싱틴의 심장’으로 묘사한 170m 높이의 웅장한 오벨리스크의 상징, 사건의 단서가 되는 프리메이슨 크립토스 조각상에 담긴 불가사의 한 암호와 미국 국새에 그려진 피라미드의 감춰진 비밀도 파헤친다.(조정진 기자) 

09. 12. 12. 

 

P.S. 프리메이슨에 관한 책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00년 이후에 나온 책으로 크리스티앙 자크의 <프리메이슨>(문학동네, 2003), 폴 제퍼스의 <프리메이슨>(황소자리, 2007)을 더 얹을 수 있다. 폴 제퍼스는 이 방면의 전문저술가로 보이는데, <미국의 프리메이슨>(2007)이란 책도 그의 것이다. 러시아에서도 18세기 계몽주의자들 가운데 프리메이슨이 많아서 지성사적 관심대상이 되곤 한다. 별로 내키는 독서는 아니지만 "세계사 거대 사건의 배후에는 늘 그들이 있었다"는 문구에 혹해서 대출해볼 수는 있겠다. 이렇게 다 들통날 정도면 그게 과연 '비밀조직'인가라는 의문도 풀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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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12-12 11:44   좋아요 0 | URL
저도 인터뷰하신 것 보았어요! 카메라도 잘 받으시고 말씀을 어찌 잘하시던지 ^^*

로쟈 2009-12-12 13:05   좋아요 0 | URL
그게 그 중 잘 나온 대목으로 편집했을 테니까요.^^;

노이에자이트 2009-12-12 21:50   좋아요 0 | URL
이인호<러시아 지성사>에도 프리메이슨에 관한 논문이 있지요.그때는 '자유석공회'라는 번역어를 쓴 게 지금과 다릅니다만...

로쟈 2009-12-12 21:57   좋아요 0 | URL
네, 박사학위논문으로 기억합니다...

L.SHIN 2009-12-12 22:20   좋아요 0 | URL
프리메이슨..프리메이슨. 프리메이슨!

로쟈 2009-12-13 20:47   좋아요 0 | URL
'자유석공조합'이란 번역어와 어감이 너무 다르긴 합니다...

L.SHIN 2009-12-13 21:16   좋아요 0 | URL
네, 사전적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잠자는 숲속의 벤야민

일반인 교양강좌 준비로 들뢰즈와 벤야민의 책들을 한두 권씩 가까운 서가로 옮겨놓고 있는데, 마침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리라이팅'한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트 프로젝트>(그린비, 2009)가 출간됐다. 저자는 <계몽의 변증법>을 리라이팅했던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그린비, 2003)의 저자 권용선 씨. 수유너머에서 강의한 내용을 이번에도 책으로 펴낸 듯싶다. 참고문헌으로 챙겨놓는다.  

 

한겨레(09. 12. 11) 베냐민의 아케이드 정치적 독법으로 안내 

완결되기를 거부했고, 완결되지 않아 전설이 된 책. 발터 베냐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이르는 말이다. 자본주의와 현대성에 대한 탁월한 분석으로 이름 높은 베냐민의 유작이지만, 완결된 책이라기보다 메모·단상의 형태로 남겨진 사유의 덩어리에 가까웠던 까닭에, 그 존재가 알려진 뒤에도 상당 기간 독자들의 접근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불친절한 책으로 남아 있었다.

<세계와 역사의 몽타주,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그린비 펴냄)는 전설과 풍문에 주눅 든 독자들을 위해 권용선(사진) 수유+너머 연구원이 쓴, <아케이드 프로젝트>로 안내하는 인문학적 개념 지도다. 유념해야 할 사실은 지도는 지도이되 목적지에 이르는 최적·최단의 경로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권 연구원은 말한다. “베냐민의 ‘아케이드’로 가는 길은 무수히 많다. 나는 엔(n) 개의 길 가운데 내가 보았던 것 하나를 이야기할 뿐이다.”  



이 필생의 역작을 통해 베냐민이 성취하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자본주의 도시공간의 해부학이라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현대성의 자기파괴적 속성에 대한 비판, 나아가 탈자본주의적 출구를 탐색하는 혁명의 문화정치학이란 해석도 있다. 권 연구원은 “다 맞는 말”이라면서도 “다만 나는 정치적 방식의 독해를 선호한다”고 덧붙인다.

정치적 독법에서 핵심적인 개념이 ‘환등상’이란 우리말로 번역되곤 하는 ‘판타스마고리아’인데, 이 개념은 ‘잠-꿈-각성’이라는 상이하면서도 연속적인 계기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환상’이나 ‘환영’과는 구별된다. 요컨대 파리의 아케이드라는 19세기의 판타스마고리아에는 소비 자본주의의 현실을 은폐하는 기만의 요소(잠)뿐 아니라 동시대인들이 꿈꿨던 유토피아를 향한 소망(꿈)과, 기만의 현실을 차고 이륙하기 위한 도약(상기·각성)의 계기가 공존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비약의 가능성을 포착하는 일”이라고 권 연구원은 말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복원된 청계천을 보면서 대중의 저급성이나 권력과 자본의 토건적 상상력을 냉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판타스마고리아적 형식에 속박된 개인적·집합적 꿈(인간과 자연, 개인과 사회의 공존과 화해)의 기억을 상기시켜 변혁의 동력으로 삼는 것이다. 문제는 그 각성의 계기들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무의지적 기억’처럼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섬광처럼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 찰나의 계기들을 어떻게 붙잡을 것인지가 관건인 셈인데, 이에 대한 베냐민의 처방을 권 연구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진보에 기대 과거를 낡은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을 찾듯 은폐된 과거의 흔적들을 섬광처럼 잡아채서 발굴하는 것, 다름 아닌 ‘기억’을 역사화시켜 전유하는 방식이다.” (이세영 기자)  

09. 12. 11.  

P.S. 벤야민의 판타스마고리아 개념을 또 다른 도시공간인 19세기 페테르부르크에 적용한 책은 이덕형 교수의 <도스토예프스키 판타스마고리아 상트페테르부르크>(산책자, 2009)이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함께 환영의 도시를 거닐다'가 부제. 물론 나 같은 전공자에겐 유익한 필독서이지만, 벤야민에게 관심이 있는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어봄 직하다. 도시공간의 모더니즘에 대한 분석으로 가장 탁월한 책의 하나는 마샬 버먼의 <현대성의 경험>(현대미학사)이다. 오랜만에 언급하게 되는데, 번역만 더 깔끔했다면 강의실에서도 필독서로 쓸 수 있었을 텐데란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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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a49 2009-12-11 09:48   좋아요 0 | URL
도스토예프스키 판타스마고리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가는 비가 뿌리던 프스키 판타스마고리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거리가 생각납니다.

로쟈 2009-12-12 09:53   좋아요 0 | URL
책을 보시면 기억에 더 새로울 수도 있으실 듯해요...

2009-12-11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2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펠릭스 2009-12-12 07:31   좋아요 0 | URL
저자의 '슈우너머 연구원'에 '고미숙' 박사도 생각나네요.
비슷할지 모르나 '판타스마고리아'의 개념을 '지방'의 권력층인
'자치단체장들'도 사용하는 숫법이기도 하죠...(11,17:04)

로쟈 2009-12-12 09:55   좋아요 0 | URL
연구거리가 되겠는데요.^^
 
헤세의 차라투스트라 VS 니체의 차라투스트라

'출판저널'(12월호)에 실은 '로쟈가 읽은 책 속의 한 장면'을 옮겨놓는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뤘는데, 지난달에 읽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이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에 대한 쿤데라의 해석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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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저널(09년 12월호) 인생의 매 순간이 반복된다면?

“영원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것이 어느 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밀란 쿤데라의 화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2)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에 대한 성찰로 시작한다. 이 수수께끼 같은 사상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었지만 쿤데라는 자신만의 해석을 더 보탠다. 곧 “영원회귀라는 사상은, 세상사를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 보지 않게 해주는 시점을 일컫는 것이라고 해두자”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사’란 어떤 것인가? 단 한 번뿐인 삶, 오직 순간성만을 갖는 세상사다.     

쿤데라가 보기에 영원회귀 사상이 역으로 주장하는 바는 한 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삶이란 그림자에 불과하며 아무런 무게도 갖지 않는 무의미한 삶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한 번의 실수’처럼 정상참작의 대상이 되며 노스탤지어까지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반대로 인생의 매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우리는 마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영원성에 못 박힌 형국이 된다. 더불어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는 엄청난 무게의 책임을 짊어지게 될 것이다. 영원회귀의 삶이 너무도 무거운 삶이라면, 단 한 번의 삶은 깃털만큼이나 가벼운 삶이다. 짐이 무거울수록 우리의 삶은 지상에 더 가까워지면서 생생한 현실감을 갖게 될 테지만, 반면에 짐이 전혀 없다면 우리의 존재는 참을 수 없을 만큼 가벼워지면서 자유롭다 못해 무의미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쿤데라는 묻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무거움, 아니면 가벼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가벼움과 무거움’이란 쿤데라의 탐구주제는 주로 주인공 토마스에게 할당돼 있다. 프라하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토마스는 아내와 이혼하면서 아들까지 떼어주고 부모와도 절연한 채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바람둥이다. 여자를 갈망하는 한편 두려워하는 그는 그 두려움과 갈망 사이에서 ‘에로틱한 우정’이란 타협점을 고안해낸다. 감상을 배제하고 상대방의 인생과 자유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는 조건하에서 에로틱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 ‘에로틱한 우정’이 혹시나 ‘공격적인 사랑’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우려하여 그는 ‘3의 규칙’까지 만들어낸다. 짧은 기간 동안 연달아 한 여자를 만날 수 있지만 3번 이상은 안 되며, 수년 동안 한 여자를 만날 수 있지만 적어도 3주 이상의 간격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그가 권장하는 규칙의 내용이다.   

하지만 테레사를 만나면서 토마스의 규칙은 흔들린다. 그는 보헤미아의 한 작은 마을에 진료차 내려갔다가 우연히 카페의 여종업원 테레사를 잠깐 만난 적이 있는데, 열흘 후에 테레사는 토마스를 만나기 위해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손에 들고 무작정 프라하로 찾아온다. 그들은 그날로 동침을 하지만 테레사가 독감을 앓게 된 탓에 바로 떠나지 못하고 그의 집에서 일주일을 더 머물다가 내려가게 된다. 어떤 여자든 간에 한 여자와는 살 수 없고 오직 독신일 경우에만 자기 자신답다고 확신하던 토마스였지만 테레사가 떠난 뒤에는 아파트 창가에 서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진다. “테레사와 함께 사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혼자 사는 것이 나을까?”   

이러한 선택이 반복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비교를 통해서 어떤 결정이 옳은가를 판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토마스는 우주 어디엔가 우리가 두 번째 태어나는 행성이 있다고 가정해보기를 제안한다. 지구에서 보낸 전생과 거기에서의 경험을 완전하게 기억하면서 두 번째의 삶을 살게 되는 것. 더 나아가 두 번의 전생 체험을 갖고 세 번째로 태어나는 행성도 가정해볼 수 있겠다. 이것이 토마스가 생각하는 영원회귀이다. 그런 경우에 매번 다시 태어나면서 우리는 더 현명해지고 더 완숙한 경지에 도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구라는 이 ‘무경험의 행성’에서는 그런 이점을 기대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치 아무런 리허설 없이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우리는 선택해야만 한다. 이러한 선택에 직면하여 토마스가 중얼거리는 독일어 속담이 “아인말 이스트 카인말(Einmal ist Keinmal)”이다. 한번 일어난 일은 전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쿤데라는 토마스란 인물 자체가 바로 이 한 문장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준다. 말하자면 그는 “아인말 이스트 카인말”의 소설적 육화이자 구현이다.   

토마스에게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대충 이백 명쯤 될 거라는 그의 여성 편력에도 반영된다. 특이한 것은 그를 여성에 대한 추구로 내모는 것이 관능적 욕구가 아니라 세계를 정복하려는 욕망이라는 점. 그는 한 여자를 다른 여자와 구별해주는 백만분의 일의 차이에 사로잡혀서 이 객관적인 여성세계가 지닌 무한한 다양성을 수중에 넣고자 한다. 강박적인 여성 편력에 사로잡힌 바람둥이를 쿤데라는 여자들에게서 자기 자신을 찾으려고 하면서 매번 실망하는 ‘서정시적’ 유형과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면서 언제나 만족하는 ‘서사시적’ 유형으로 구분하는데, 토마스는 이 가운데 후자에 속한다.   

하지만 테레사와의 동거는 그의 여성 편력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비록 한 여자와 정사를 나누는 것과 함께 잔다는 것은 서로 전혀 다른 두 가지 열정이라고 생각하지만, 테레사를 알고부터 그는 술의 도움 없이는 다른 여자와 사랑을 나누지 못하게 된다. 그런 토마스의 모습을 보고 사비나는 바람둥이 토마스의 그림자 위에 낭만적 사랑에 빠진 연인의 모습이 비친다고 말한다. 즉 돈 주앙 토마스는 한편으로 테레사만을 생각하는 트리스탄이기도 하다. 테레사에 대한 토마스의 특별한 사랑과 동정은 소설에서 “에스 무스 자인(Es muss sein)”이라는 또 다른 독일어 문장으로 표현된다. “그래야만 한다”는 뜻의 이 말은 베토벤의 마지막 4중주에 쓰인 가사다.   

‘어려운 결단’의 표현이기도 한 “그래야만 한다”는 여성 편력 때문에 자신을 떠난 테레사에게 다시 돌아가기로 한 그의 결단을 대변해준다.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기로 한 결단이기도 하다. 이러한 결단과 함께 토마스는 가벼움의 세계에서 무거움과 필연성의 세계로 돌아온다. 이렇듯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진동하는 토마스의 삶은 “한 번뿐인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와 “그래야만 한다” 사이에 걸쳐 있는 삶이기도 하다. 어느 쪽이 옳은가? 오직 단 한 번밖에 살지 못한다면 그러한 가치판단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그것이 영원회귀 사상이 던져주는 메시지다.  

09. 1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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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나 카레니나와 비인칭적 열정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1-06 20:52 
    출판저널(1월호)에 실은 '로쟈가 읽은 책 속의 한 장면'을 옮겨놓는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다루고 있다.      출판저널(10년 1월호) '결혼'과 '불륜'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사가 예고도 없이 토마스를 찾아 프라하에 온 날 그녀가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책은 <안나 카레니나>였다. 덕분에, 두 사
 
 
들국화 2009-12-09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거리가 있는 소설이라고 봅니다. 영원회귀사상과 토마스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 로쟈님 글도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2.저는 "그래야만 한다"보다 "그럴 수 밖에"라는 번역이 더 마음에 드는군요.
3.<출판저널>, 구독할 만한 잡지인가요?

로쟈 2009-12-09 21:10   좋아요 0 | URL
"그럴 수밖에"보다는 더 강한 의미 같아요("그래야만 해?"란 질문의 응답이기도 합니다). <출판저널>은 홈피 http://www.publishingjournal.co.kr/ 를 둘러보시길...

펠릭스 2009-12-09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벼운 것'에 대한 연민이 곧 '영원회귀'를 낳은 것은 아닌지요, 그것은 끝임없이 '미분'되지만 '영(없음)'에 도달할 수 없는 안타까움 같은 것으로 '테레사'에게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지요.

로쟈 2009-12-10 19:4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이네파벨 2009-12-09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쿤데라....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오랜만에 그의 이름을 보게 되네요.
꽃다운 시절 수십번 반복해 읽은 그의 소설들을 다시 한 번 잡아봐야겠어요...

로쟈 2009-12-10 19:42   좋아요 0 | URL
그때가 20년 전이죠.^^;

비연 2009-12-09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이죠. 이 책 읽고 한동안 밀란 쿤데라에 열중했었던 적도 있었구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제목 자체가 크게 다가오는 책입니다.

로쟈 2009-12-10 19:45   좋아요 0 | URL
팬들이 많으시네요.^^

2009-12-10 0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0 0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Joule 2009-12-10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과 영화가 날줄 씨줄로 엮여 있는 로쟈 님의 이런 페이퍼 좋아해요. 예전에는 추석 특집 같은 걸로 올라오곤 했던 것 같은데 이제 유명인사가 되셔서 잡지에 실리는군요. 하지만 이런 글들 모아서 책으로 낸다면 그게 가장 재미있겠어요. 1년에 한 권씩만 쓰세요.

로쟈 2009-12-10 19:45   좋아요 0 | URL
더 쓰면 혼나겠는데요.^^;

페크pek0501 2009-12-11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리창 닦는 직업에 대하여 - 그의 내면적 <그래야만 한다!>에 의해 인도되지 않은 직업에 종사하며 일단 일을 끝내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사람들의 행복을 이해했다. 그는 한 번도 이런 행복한 무관심을 체험하지 못했다. 예전에 수술이 그가 원한 대로 성공하지 못하면, 그는 절망에 빠져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심지어는 여자에 대한 입맛을 잃기까지 했다. 그의 직업이 지닌 <그래야만 한다!>는 그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와도 같았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26쪽....... 직업을 다양하게 바꿔가며 살 수 있다면 우린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을 듯해요.

로쟈 2009-12-13 00: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런 대목도 있지요...

페크pek0501 2009-12-13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신 : 이 책을 읽었었는데 로쟈님의 위의 글을 보니 제가 놓친 게 있는 듯했어요. '어 이런 내용도 있었나'라고 할 정도로요. 그래서 다시 책을 꺼내 보았어요. 평소 밑줄 그으며 책을 읽는 버릇이 있어 줄 친 곳 위주로 다시 읽었더니 신기하게도 로쟈님이 언급한 내용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어요. 즉 내가 놓친 게 있다는 것은 읽을 때엔 인지했는데, 시간이 지나서 잊었던 거였어요. 그래서 얻은 결론은 리뷰를 읽는 행위는 중요하다는 것, 입니다. 지주 들러야겠어요.

로쟈 2009-12-13 20:45   좋아요 0 | URL
덧붙여, 직접 써보는 게 중요하지요.^^
 

이번주 창비주간논평을 옮겨놓는다. '사회통합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전략'이란 부제가 칼럼의 주제를 말해준다. 지난봄에 <성장친화현 진보>(미들하우스, 2009)란 책이 소개됐지만 눈여겨보지 않았고, 찾아보니 알라딘에서도 거의 '잊혀진' 책이다. 칼럼 덕분에 다시금 주목하게 됐다. 미국이라면 집권 민주당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제도권 야당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해서 의제화할 필요도 있을 듯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제3의 길'과 마찬가지로 절충주의적인 게 아닌가 의심스럽지만, 성장친화적인 한국민들에게 현재로선 '진보'가 다가갈 수 있는 '현실적인' 통로일 듯싶으니까...

창비주간논평(09. 12. 09) 두바이의 몰락과 '성장친화형 진보'  

두바이가 몰락했다. 세계 경제위기의 유탄을 맞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위험성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선진국에서 두바이식의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자는 주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그들은 사회통합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의 방법을 찾으려 노력해왔다. 이른바 유럽의 리스본 전략이나 미국의 해밀턴 프로젝트 등이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국내에서도 '사람에 투자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대규모 개발사업에 가려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국내에는 성장을 위해 두바이식 개발과 규제완화가 필수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두바이식 개발은 경제이론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국내의 성장담론은 세계적 추세와 괴리된 지 오래다. 필자는 답답한 심정에 오래전부터 '두바이 대 리스본'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왔다. 토목 기반의 개발이 단기간의 외형적 발전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장점이 있지만 환경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없음을 비판하고, 이에 견주어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인적 자원의 투자를 강조하는 것이 요지였다.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을 넘어
마침 미국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성장친화형 진보》(The Pro-Growth Progressive)라는 책을 최근 번역하면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한 전략의 특징을 소개할 수 있었다. 이 책의 내용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성장친화형 진보'는 바로 시대가 요구하는 의제에 새로운 대답을 제시한다.

성장친화형 진보의 특색은 진보가 오랫동안 추구해왔던 가치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해법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성장 대 분배·복지'라는 기존의 이분법적 틀로는 효율적인 분배와 복지를 통해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성장친화형 진보의 주장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고착된 이분법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시대에 대처하는 새로운 사고를 만날 수 있다.

기존의 진보적 정책도 성장을 촉진해왔다. 미국에서도 진보정부 집권기의 성장률이 보수정부의 그것을 앞선다고 일반적으로 관측된다.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은 사회통합에 필수적일 뿐 아니라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모험적 사업에 뛰어드는 동기를 유발한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노동자의 경우 정리해고를 수용할 여유가 더 많고, 복지제도가 발전하면 모험적 사업의 위험부담을 줄여 기업가정신과 혁신을 북돋운다. 그러나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에 갇힌 우리 사회의 다수에게 이러한 성장촉진형 분배는 피부에 와닿지 않을 것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이기에 성장친화형 진보가 널리 이해되기는 쉽지 않다.

세계화시대, 새로운 진보적 전략
성장친화형 진보는 세계화와 지식정보혁명이라는 환경에서 진보적 성장대안을 제시한다. 세계화는 폭발적인 기술발전을 일으키고 있다. 한 국가 내에서 승자산업과 패자산업이 확연하게 갈리는 한편, 기술발전에 따라 숙련노동자와 비숙련노동자의 임금격차도 커지고 있다. 두바이식 개발에 몰두하는 한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나는 것은 필연적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양극화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사회통합은 심각하게 위협받을 것이다.

성장친화형 진보는 이러한 도전에 응전하는 전략이다. 경제이론에 따르면 세계화시대 각국의 경쟁력은 인적자본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경제전략가들은 새로운 자원배분을 통해 인적자본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효율적 정책을 추구해왔고, 그 일련의 작업이 성장친화형 진보로 귀속되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실업보험 등 다양한 지원책이 입안·시행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수동적 지원에서 벗어나 노동자 숙련도를 높일 새로운 방식이 세계 각국에서 시도되고 있다. 특히 숙련도를 높이는 최고의 방법이 직장내 훈련임을 감안하면 기업을 지원하여 고용을 늘리는 정책이 곧 훌륭한 기술훈련임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산이 세계화를 대처하는 방법이라는 정·재계의 주장은 중국이라는 대규모 개발도상국이 등장하면서 근거를 상실했다. 이제는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 숙련도 향상이 각국의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등장하는 중이다.

맞춤형 선제적 지원정책으로 나아갈 때
성장친화형 진보는 선제적 지원정책이라는 특성이 두드러진다. 다양한 복지정책도 효율성 측면에서 우열을 가릴 수 있다. 과거에는 무조건적인 정부지원에 대한 거부감으로 주로 지원정책의 입안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제는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부문과 계층을 위한 선제적 지원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유무역협정으로 피해가 발생한 이후에 지원하는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정부가 사용가능한 통계와 정보를 사용하여 사전적으로 특정 부문이나 계층을 지원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효율적일 때가 많다.

복지의 수혜계층에 대해서도 정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빈곤층 자녀가 교육을 받지 못해 빈곤을 대물림하는 상황에서 정부지원이 필요하다면, 선제적으로 보육과 교육에 대한 지원비를 늘리는 것이 복지지출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취약계층의 일생주기에서 어떤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지원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성장친화형 진보는 진보적 정책의 효과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요구한다.

효율적 복지로 성장-통합의 양날개를
한정된 복지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타당하지만, '복지병(病)'에 대한 우려를 털어버리고 보수진영의 저항을 줄이면서 정책을 입안할 수 있는 지혜로운 전략이기도 하다. 가령 근로빈곤층을 지원하려고 최저임금을 무조건 높인다면 기업에 부담을 주어 실업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세계화시대에 이같은 정책은 기업의 해외이전을 불러올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를테면 근로장려세제는 기업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노동자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적절한 최저임금과 근로장려세제를 합리적으로 결합하면 기업과 노동자 양측에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이처럼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펴되 복지수혜자에게도 책임을 부과하고 특히 근로빈곤층을 집중적으로 지원하여 근로의욕을 장려하는 것은 사회통합을 촉진하고 복지정책을 지속가능하게 만든다. 성장친화형 진보와 맥을 같이하는 제3의 길 논자들이 ‘기회와 책임’을 강조하는 이유다.(홍종학/ 경원대 교수, 경제학) 

09. 1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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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2-09 20:34   좋아요 0 | URL
내년도 대통령 여름 휴가 독서목록으로 추천합니다.

로쟈 2009-12-09 20:47   좋아요 0 | URL
'녹색'과 '서민'에 이어서 '진보'까지 넘보게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