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길에 습관대로 대형서점에 들러봤지만 눈에 띄는 신간이 별로 없었다. 모처럼 '조용한' 주로 분류해야겠다. 그런 가운데 버스에서 읽은 책은 김예슬의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느린걸음, 2010)와 함께 이장욱의 첫 소설집 <고백의 제왕>(창비, 2010)이다. 전자는 3/4쯤 읽었고('김예슬 선언'은 의외로 '유나바머 선언'을 떠올려주었다. 아니, 자연스러운 건가?), 후자에선 평판작 '변희봉'을 읽었다. 첫머리에 실린 '동경소년'을 잡지에서 읽을 때 다 모아놓으면 그림이 되겠다 싶었는데 그 '그림'의 표제가 '고백의 제왕'이다. 몇 편 더 읽으면 나의 느낌을 말해볼 수 있겠다(일단 내가 받는 인상은 역시나 그가 시인이라는 것이다. 그의 단편들은 언어의 바깥을 지시하기보다는 그 지시가능성 자체를 음미해보는 쪽이다. 그는 '변희봉'에 대해 쓰는 것이 아니라 '밴, 히봉'에 대해 쓴다). 작품을 이모저모 뜯어보고 있는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  

  

서울신문(10. 04. 17) 순결한 고백이 추한 욕망을 만날 때…

시인이자 소설가, 문학평론가인 이장욱(42)의 첫 번째 소설집 ‘고백의 제왕’(창비 펴냄)이 보여주는 세계는 현실의 공간일 수도, 환상의 공간일 수도 있다. 혹은 현실적인 환상, 환상적인 현실일 수 있다. 

서로 다른 서사를 품은 8편의 단편소설을 하나로 묶는 것은 일관되게 등장하는 ‘유령’, 그리고 ‘죽음’이다. 한결같이 낯설고 기괴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담(奇談) 류와는 궤를 달리 한다. 이장욱의 탄탄한 문장이 선연한 이미지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들의 무대는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이어주는 기괴한 곳, ‘아르마딜로 공간’과 같은 곳이다. 그리고 모든 작품의 뿌리에는 ‘비(非)존재로서의 존재들’-예컨대 외계인 또는 우리 사회의 이주노동자 등과 같은 이들-에 대한 위로와 성찰이 담겨 있다. 타임워프(시·공간 이동)와도 같은 이상한 곳 ‘아르마딜로 공간’에서는 ‘지난해의 여름을 달려가던 택시’가 ‘25년 전의 겨울을 걸어가던 빨간 모자를 쓴 여자아이’를 치는 등 숱한 죽음이 잇따른다.  

‘변희봉’에서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영화 ‘괴물’, ‘플란다스의 개’에 출연했던 배우 변희봉은 끊임없이 마주친 인물임에도 만기와 그의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는 부재의 인물이다. 게다가 ‘배우 밴히봉’의 존재에 대해 무한 의문과 회의를 품고 동대문운동장 곁을 지나던 만기 앞에는 엉뚱하게도 사직구장에서 사라져버린 롯데 이대호의 파울공이 떨어진다. 말이 없던 여자친구는 점점 형체가 희미해지며 결국 눈에 보이지 않게 되고(‘동경소년’), 죽어버린 유령 아내와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난다(‘기차 방귀 카타콤’).  

그런가하면 ‘곡란’에서는 하루에 두 번 기차가 서는, 간이역이 있는 시골 마을 모텔이 아예 자살 명소와도 비슷하다. 함께 자살하기 위해 방에 들어선 세 사람이 주저하는 곳에는 과거에 이곳에서 목숨을 끊었던 온갖 유령들이 바글바글하다. ‘곡란’은 그들이 묵은 모텔의 이름 ‘목란’의 외벽 전구가 군데군데 끊어져 ‘곡란’으로 보인데서 나온 제목이다. 왜곡된 소통의 상징과도 같은 장치다.  

표제작 ‘고백의 제왕’은 대학 동창들의 송년회 술자리에서 ‘고백의 제왕’으로 통했던 친구 곽(郭)에 대한 기억으로 시작된다. 그가 풀어놓았던 고백들은 진실 여부를 떠나 너무 구체적이고 충격적이어서 듣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중학생 시절 환갑이 넘은 식당 아주머니와 가진 첫 경험, 자신의 누이를 자살하도록 만들었던 기억, 홍일점으로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J의 임신, 낙태 등 일련의 고백들은 자리를 냉랭하게 만들거나 분란의 공간으로 바꿔내는 마성(魔性)을 띤다. ‘고백’이라는 가장 진정성어린 형식이 개인의 추한 욕망과 맞물리며 낳는 결과를 묵시록적으로 보여준다.  

이장욱은 ‘작가의 말’에서 “결국은 어둡고 고요한 진심만이 남는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 “존재하는 것은 타자(他者)라는 관념이 아니라 당신이며, 추상적인 언어가 아니라 구체적인 말”이라고 소통하는 삶에 대한 애정과 바람을 담았다.  

 

1994년 시로 등단한 이장욱은 첫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2005)로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았고, 시인으로서 내놓은 시집 ‘정오의 희망곡’ 등 역시 젊은 감각으로 노래한 새로운 서정에 대해 시단의 상찬이 쏟아졌다. 또 단편 ‘변희봉’은 지난 2월 이장욱에게 ‘젊은 작가상’을 안겼고, 지난달에는 ‘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에 선정되기도 했다.(박록삼기자) 

10. 04. 17.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보 2010-04-17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백의 제왕'이란 소설집 제목에서 '나는 선언의 천재'로 시작하는 황병승 시가 연상되네요.

선언, 고백 이런 단어만 놓고 보면 낡은 느낌인데,시인들은 언어를 다루는 신비한 능력이 있나봅니다.



로쟈 2010-04-17 09:33   좋아요 0 | URL
그게 시인들의 프라이드죠...
 
지젝의 레닌주의와 과거로부터의 교훈
이건희주의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
로베스피에르부터 마오까지의 혁명적 테러

<레닌 재장전>에 대한 서평을 옮겨놓다 보니 지난 2월 수유너머N에서 가졌던 화요토론회 자리가 생각났다. 안 그래도 토론회 사진이 홈피에 올려져 있다는 얘기를 얼마 전에 들었던 참이어서 들어가봤다(http://nomadist.org/xe/galary/13552). 이런저런 근심으로 무거운 머리를 잠시 내려놓는다(이런저런 근심은 사실 지난 겨울의 무모한 일정이 낳은 후유증이다). 발표문은 이미 두 개의 페이퍼로 정리해놓은 바 있으니 참고하시길.  



10. 04. 15. 

P.S. 레닌주의는 일단 국가권력을 쟁취하고, 이어서 일상의 혁명으로 나아가는 식이지만, 수유너머에 처음 다녀오면서 그 순서를 거꾸로 할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우리의 일상을 먼저 바꾸면서(공부하는 일상으로!) 시스템을 바꾸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 레닌과 마오가 각각 발명한 혁명의 공식을 우리 시대에 맞게 한번 더 발명해야 하는 건 아닐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0-04-16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16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주 대학신문의 메인서평이 <레닌 재장전>(마티, 2010)을 다루고 있기에 스크랩해놓는다. '본격적인' 서평의 모양새여서 흥미롭게 읽었다. 필자는 홉스봄의 <혁명가>(길, 2008)와 아렌트의 <폭력의 세기>(이후, 1999) 등을 옮기고, <대중과 폭력>(이후, 1998)을 쓴 김정한 박사다.

대학신문(10. 04. 11) '레닌’이라 쓰고 ‘혁명’이라 읽기 

혁명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일어나는 것이다. 한 천재적인 수완을 가진 개인이나 음모적인 비밀결사로 만들어지는 혁명은 없다. 그것은 다양한 사회적 힘들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정세 속에서 어떤 우발적인 사건이 도화선이 돼 일어날 뿐이다. 1917년 러시아혁명도 그 시작은 이와 다르지 않았다. 3월 8일(구력 2월 23일) ‘세계 여성의 날’에 식량 부족에 항의하는 여성들이 거리 시위를 벌였고, 이를 진압해야 할 일부 군인들이 시위에 동참해 부패의 온상인 관공서를 점령하면서 차르가 퇴임하는 ‘2월 혁명’이 일어났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갑작스런 상황이었다. 당시 레닌은 스위스의 취리히에 망명해 있었고, 1917년 1월의 한 연설회에서 “우리 나이 든 세대는 이제 다가올 혁명의 결정적인 전투를 보지 못하고 죽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레닌에게도 혁명은 죽기 전에 이루지 못할 꿈과 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2월 혁명’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페트로그라드로 돌아온 레닌은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내디뎠다. ‘4월 테제’를 제시한 것이다. 그는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즉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차르 독재가 무너진 후 꾸려진 임시정부는 자유민주주의 성향의 인물들로 채워져 있었지만 러시아 인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니! 처음에는 볼셰비키조차 레닌의 구상에 냉담하게 반응했고, 그가 오랜 망명생활로 말미암아 정치적 감각을 상실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결국 ‘4월 테제’는 대중들을 사로잡았고, 마침내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하고 공산주의를 선포하는 ‘10월 혁명’의 초석이 되었다.

레닌은 무엇을 한 것일까? 볼셰비키조차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말하지 않을 때, 또는 멘셰비키처럼 그것이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당연한 듯 고수하고 있을 때, 그는 대중들의 흐름을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것으로 전환할 길을 모색했다. 이는 근본적인 사고의 좌표를 전복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예컨대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자본주의가 ‘성숙’한 다음에나 가능하며, 그러므로 후진국인 러시아에서는 부르주아 혁명을 통한 자유민주주의 수립이 당면한 과제라는 당대의 ‘상식’을 뛰어넘어, 레닌은 혁명에 관한 모든 것을 새롭게 사고했다. 이것이 『레닌 재장전』의 핵심 전언이다. 현존 질서에 근본적으로 도전하는 정치적 기획에 대한 ‘사고금지’(Denkverbot)가 불문율이 된 오늘날, ‘레닌’이라는 이름을 다시 불러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유민주주의가 강요하는 ‘사고금지’를 무력화시키고 근본적인 사고의 좌표를 바꾸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레닌으로 돌아가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레닌’이라는 이름을 학계에 불러들이는 데 크게 공헌한 지젝이 말하듯이, 레닌을 반복한다는 것은 그의 말과 행위를 똑같이 되풀이한다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인 해방의 정치가 붕괴하고 상상할 수조차 없던 시대에 ‘혁명의 기획을 재창조하려는 레닌의 제스처’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레닌이 실제로 한 일이 아니라 하지 못한 일, 끝내 소련의 몰락으로 귀결했으나 세상을 바꿀 가능성의 문을 열었던 시도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금융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자본주의나 자유민주주의를 변혁하는 정치를 사고하지 못하는 한계를 돌파하는 데에서 시작될 것이다.

물론 이런 전체적인 주제에도, 이 책에 수록된 논문들은 대부분 2001년 독일에서 열린 한 국제콘퍼런스의 발표문들에 기초해 있어서, 모두 레닌을 재장전하고는 있지만 그 조준하는 방향은 저자에 따라 다양하고 차별적이다. 레닌의 정치가 지닌 현재적 의미를 탐색하는 글도 있고, 그의 철학적 입장을 되짚어보는 논문도 있으며, 레닌 하면 떠오르는 악명 높은 전위당 문제를 파헤치는 것도 있고, 단순히 레닌의 여러 한계를 소묘하는 데 머무는 것도 있다.

여기서 이 책에 담긴 수많은 내용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 가운데 인상적인 쟁점은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겠다. 하나는 헤겔의 변증법이다. 예컨대 미카엘-마차스, 앤더슨, 쿠벨라키스가 지적하듯이, 레닌은 1914년 제2인터내셔널이 해체돼 세계적인 좌파 연대가 무산된 후 베른도서관에서 헤겔을 읽기 시작하는데, 이 헤겔의 변증법이 레닌의 정치적 사고를 전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논조는 프랑스에서 구조주의 철학이 등장하면서 반헤겔, 반변증법의 기치가 대세를 이루었던 점과 대조적이다. 물론 지젝은 이미 오래전부터 마르크스, 라캉, 헤겔을 결합하는 철학적 작업을 계속해왔지만, 과연 레닌과 더불어 헤겔이 복권될 것인지 사뭇 지켜볼 일이다.  



다른 하나는 역시 국가 문제이다. 레닌 자신은 “모든 혁명의 중요한 문제는 국가권력이다”라고 말한 바 있지만, 라자뤼스나 네그리가 그러하듯이 최근의 국가 비판은 혁명을 국가권력의 장악으로 이해하는 것을 비판하고 ‘비국가주의 정치’를 요청해왔다. 그러나 이 책의 일부 저자들은 그런 시도가 국가권력을 너무 쉽게 기각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예컨대 벤사이드는 대항권력이라는 수사학으로 정치권력의 쟁취라는 문제를 제거함으로써 혁명의 난점을 회피하는 데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권력을 모른 척할 수는 있을 테지만, 권력이 우리를 모른 척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본격적인 논쟁이 없지만, 차후 ‘레닌과 헤겔’, ‘레닌과 국가’라는 쟁점에 대해서는 더욱 깊이 있는 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맥락에서는 레닌을 반복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1980년대 말에 등장한 이른바 PD(민중 민주) 계열의 좌파들이 레닌주의를 모델로 삼아 전위당 노선을 추구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물론 소련의 해체와 더불어 레닌주의 노선은 폐기됐지만, 그 유산은 오랫동안 좌파들을 악몽처럼 짓눌렀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 ‘레닌에 대해 말하지 않기’라는 암묵적인 금기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견고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레닌과 미래의 혁명』에 실려 있는 2부의 난상토론을 일독해보길 권한다. 특히 2008년 촛불시위를 평가하면서 레닌이 우리에게 어떤 정치적 함의를 제시하는지 고민해볼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김정한 박사_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 

10. 04. 1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빵가게재습격 2010-04-15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을 이렇게 소개하시니까 1만명이 안 낚이는 겁니다...포맷을 바꾸시면 어떨까요? <(지젝의) 혁명 고전 강의>, <그 괴물은 (레닌에게서) 무엇을 보았나>, <혁명을 부탁해> 뭐 이런...^^;; 썰렁한 흰소리 한 죄로 재빨리 도망갑니다.(이 댓글이 페이퍼에 문제가 되면 삭제요청을 해 주세요~ 아무튼 도망갑니다.)

로쟈 2010-04-15 22:46   좋아요 0 | URL
그 점은 저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기획중인 책도 있지만 당장은 곤란하기에 이렇게라도...^^;
 

어제 온라인에서의 블로거 활동에 관해 한 주간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요즘 '1인 3역'을 계속해나가는 게 불가능하지 않나란 자기반성도 하던 차였는데(이러다간 조만간 침몰하지 않을까 싶다), 내친 김에 '로쟈'가 언론에 처음 노출된 게 언제였던가 찾아봤다. 온라인에서의 활동은 1999년부터였지만, 언론에 처음 이름이 오른 건 2003년 가을 지젝의 방한을 다룬 오마이뉴스 기사를 통해서였다('지젝'도 2001년 6월 한국경제의 한 칼럼에서 처음 이름이 비친다. 네이버 검색으로는 그렇다). 마침 지젝의 번역서 몇 권에 대한 서평을 올려놓던 시절이다. 그렇게 처음 기사화된 이름을 보고 좀 재미있으면서도 낯설게 느꼈던 듯싶다. 하지만 일회적이었고, 2007년 1월초 '오피니언 리더'로서의 '인터넷 서평꾼'을 다룬 한겨레 기사에서 언급된 이후에야 비로소 '로쟈'란 이름은 주목을 받는다. 한겨레21에 '로쟈의 인문학 서재' 칼럼을 연재하는 건 그해 8월부터다. '로쟈'란 이름을 언제까지 끌고 나갈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우려되기도 한다. 오래전 오마이뉴스 기사를 '아카이브' 자료로 챙겨놓는다.  

 

오마이뉴스(03. 10. 09) 어려운 지젝, 사람들 왜 모이나

지젝이 왔다. 그런데 과연 온 것인가. 자연적 실체로서 그는 비행기를 타고 입국하여 몇몇 강연을 진행 중에 있다. 오긴 온 것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그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아니 오래 전에 도착하였으나 그 학문적 실체가 제대로 구성되거나 조명되지 않았다. 상상적 실재로 우리 주변에 머물러 있을 뿐, 지젝은 늘 오고 있는 중이다.

몇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사상계의 거목에 대한 탐사가 손쉬운 접근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은 그가 단순히 '철학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최신의 서구 철학계(이 용어에 대하여 지젝은 거부하겠지만)가 모든 종류의 정보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어마어마한 질량을 압착한 한 권의 사유물을 토해내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지적 바탕이 없고서는 그의 저작, 심지어는 목차조차 도대체 어떤 사유의 그물로 짠 것인지 짐작하기 어렵다.

플라톤에서 코소보 사태까지, 구조주의에서 공포소설까지, 그저 두루두루 아울러서 지식을 자랑하는 게 아니라, 거의 한 문장 속에 동시에 출현시켜 그 자체로 세계의 복합성을 문자로 드러내버리는 지젝의 사유는 전공자는 물론이거니와 '국영수 중심'으로 성장해온 우리의 인문 환경에서는 도무지 해독 불가능한 암호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젝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적도 있는 박학다식한 동구권 학자'에 머무르고있다.

방한한 지젝, 하지만 그의 학문은 여전히 오고 있는 중
두번째 이유로는 성실하지만 부주의한 번역물과 불성실하고 빈약한 오역물이 지젝에 대한 관심을 차단시킨다. 문학과 영화에 대한 약간의 관심만으로도 충분히 그 착오를 가려낼 수 있을 <환상의 돌림병>(인간사랑)이나 <향락의 전이>(인간사랑)의 오역은, 저작권법에 따라 다른 이가 좀더 섬세하게 번역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했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이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지젝의 저작에 대한 리뷰를 쓴 '로쟈'씨가 작년 12월 말에 쓴 내용에 따르면 <향락의 전이>(인간사랑)의 경우 "일반 독자가 이 교양서를 읽어낼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한다. 또한 "지젝의 작업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이 역서는 짜증만을 불러일으키며, 처음으로 그에게 다가가는 독자들에겐 고역만을 선사한다"고 쓰고 있다.

이 책은 원래 초역판이 2001년 7월에 출간되었다가 번역 과정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2002년 9월에 '개역판'으로 내면서 책값을 무려 9000원이나 인상하여 하드커버로 출간하였는데, 의미있는 교정과 보완은 전무하다는 것이 로쟈씨의 의견이다.

세번째 이유는 단순하면서도 복합적인 이 세계의 불가해한 속성 때문이다. 그의 저작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 것은 지적 유희가 아니라 전체를 조망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의 실례이다. 현대사회의 본질은 (그것이 미국이든, 이라크든, 슬로베니아든, 한국이든) 기본적으로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적인 억압적 융합과 긴장과 대립에 따라 매우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현상 속에 감춰져 있으므로 그 실체에 대한 접근은 어쩔 수 없이 다양한 이론적 바탕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의 말대로 전통적인 이데올로기의 억압은 사라지거나 축소되지 않고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든다. 그리고 '귀환'한다. 다양한 시선이 필요한 이유가 된다. 



지젝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세 권의 책
지젝과 더불어 사색하는 것은 흥미롭지만 괴롭다. 누구보다 소통을 열망하는 학자지만 우리의 허약한 지적 기반은 의미있는 최소한의 소통, 곧 '독서'조차 불편하게 만든다. 지젝은 말한다. 현대는 '카페인 없는 커피, 알코올 없는 맥주, 아편을 대신한 마리화나, 사이버 섹스 등 실체가 없는 가상현실에 대해 열망'한다고.

그에 따른 반작용으로 현대는 혁명, 테러리즘, 파시즘, 스탈린주의 등 '실재에 대한 강렬한 열망에 따른 근본주의적 충동'에 사로잡힌다고 지젝은 말한다. 따라서 그 사이 제3의 길, 곧 자유·다양성·인권·관용 등의 민주적 가치를 모색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올바른' 발언만 따로 추스르고, 그 정치적 발언록의 즙만 짜낼수록 지젝은 우리로부터 멀어진다. 그러므로 세 권만 따로 추려 읽도록 하자

<삐딱하게 보기>(시각과언어. 김소연 옮김). 홀로코스트, 후천성 면역결핍증, 체르노빌, 그리고 현실 사회주의 몰락 이후를 성찰하는 지젝의 진지하면서도 날렵한 시선이 충만한 저작이다. 라깡식 판독법으로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을 경쾌하게 드러내준다.

<항상 라깡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새물결. 김소연 옮김). 지젝이 영화학자들과 더불어 라깡의 정신분석학 방법론으로 히치콕의 영화를 분석한 책이다. 리얼리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이 골고루 지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히치콕 영화의 분석을 통해 현대 사회의 주체 형성을 다루고 있다.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한나래. 주은우 역). 할리우드로 집약되는 현대 대중문화의 풍부한 사례를 통해 라깡을 재구성한다. 라깡을 사이에 두고 푸코, 하버마스, 롤스 등이 얽힌다.(정윤수/박형숙 기자) 

10. 04. 15. 

P.S. 본기사에 딸린 박스기사에는 이런 지적도 들어 있다. "한편 지젝 학문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헤겔, 마르크스, 프로이트, 라깡 등에 대한 출판 인프라가 빈약한 우리네 인문학 풍토에서, 그들을 '뛰어넘는' 지젝에 대한 과도한 열광은 또 다른 '지적 패션'이라는 지적도 들린다." 그간에 '빈약한 출판 인프라'가 괄목할 만큼 좋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지젝의 책은 이후에도 매년 3-4권씩 출간됐고, 올해도 예외는 아닐 듯하다. 지젝의 이미지를 아바타로 내걸고 '로쟈'는 그 '지적 패션'을 '지적 일상'으로 바꾸려고 나름 애써왔지만(1만명의 독자층을 만드는 것이 잠정적인 목표치가 될 수 있다), 낙관적으로 말해서 전망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10년, 혹은 20년이 걸리면 가능할 수 있을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딧불이 2010-04-16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를 첫머리에 쓰면 안보이나요? <하우 투 리드 라캉>을 엊그제 배달받고 들여다봤는데 제게는 읽는 것이 괴롭지만 흥미롭습니다. 라캉의 다음을 읽는데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쟈 2010-04-16 01:11   좋아요 0 | URL
어느 책인지는 모르겠지만(네 < >로 묶으면 안보이게 되더군요) 흥미로움이 괴로움보다 점점 커지기를 바라겠습니다.^^

푸른바다 2010-04-16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3년 서울대에서 지젝이 강연할 때 가보셨는지요?^^

로쟈 2010-04-16 22:22   좋아요 0 | URL
물론이지요.^^
 

이번주에 나를 가장 놀라게 한 저자는 미국의 시사평론가이자 금융 전문 저술가, '비즈니스 역사가'로도 불리는 론 처노다. <금융제국 J.P. 모건>(플래닛, 2007)의 저자. 놀라운 건 '자본주의자의 원형'으로도 일컬어지는 록펠러의 두 얼굴을 다룬 책 <부의 제국 록펠러>(21세기북스, 2010)도 그의 작품이라는 사실(그냥 혼자서 뒤늦게 알고는 놀랐다는 얘기다). 두 책 모두 높은 평판을 얻은 대작이다. 국내에서도 기업가 평전이나 논픽션들이 가끔씩 나오고 있으니 전범으로 삼을 만하다. 하지만 여건상 이런 수준의 책이 나오기는 어려운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16세기 문화혁명>(동아시아, 2010)의 저자 야마모토 요시타카와 함께 뒤늦게 감탄하게 되는 저자다. <부의 제국 록펠러>에 대한 소개기사도 늦게나마 스크랩해놓는다.  


한국경제(10. 03. 06) 교활한 석유재벌 vs 고결한 기부왕…'록펠러의 두 얼굴' 

존이 어렸을 때,빌은 그에게 자신이 받아줄 테니 높은 의자에서 뛰어내리라고 부추기곤 했다. 그러다가 하루는 받아 안아줄 듯이 팔을 내밀고 있다가 내려버렸고,존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때 빌은 아들에게 다시 한번 가르침을 상기시켰다. "기억하라고 했지.어느 누구도 완전히 믿어선 안 돼.이 아빠마저도 말이야." 얼마 뒤에는 클리블랜드 시내를 지나가면서 빌은 같이 가던 아들들에게 사격이나 가장행렬을 구경하려고 허둥지둥 몰려가는 군중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일렀다.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마라.되도록 사람이 몰려 있는 곳에 가지도 말고.자기 일에만 집중하는 거야."

최고의 부자이자 최고의 자선사업가인 존 D 록펠러(1839~1937)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그는 경쟁자들을 고사시키는 '냉혈 비즈니스'로 당대 제일의 갑부가 됐고 이로 인해 부도덕한 기업인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며 열정적이고 통 큰 자선사업과 기부,굳건한 신앙심으로 '고결한 귀족'의 이미지를 한꺼번에 보여준 인물이다.  

유명한 비즈니스 전기 작가 론 처노는 《부의 제국 록펠러 1,2》에서 상반된 그의 면면을 객관적이고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의 내면에 두 명의 분신이 있다는 것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지독한 스크루지와 너그러운 산타클로스.허풍쟁이 약장수인 아버지와 신실하고 엄격한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의 심리적 양면성은 '냉혹한 석유재벌'과 '신앙심 깊은 자선왕'의 이미지를 동시에 빚어냈다.  



그는 맨손으로 사업을 일궜고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를 조직해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90% 이상을 정유하고 판매했다. 그가 사업에서 물러났을 때 미국인들의 평균 수입은 주당 10달러였다. 1893~1901년 그의 회사 배당금은 2억5000만달러에 달했고 그 가운데 4분의 1이 그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최대한 벌고 최대한 아껴 최대한 베푸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며 평생 5억3000만달러를 기부했다. 한편으로는 학문에 관심을 보이고 대학과 의료연구 기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개인적으로도 절제와 검소를 실천했다. '스탠더드 오일 제국'과 '자선 제국'을 함께 세운 셈이다.  



저자는 '죄악과 고결함이 한데 섞인' 록펠러의 이 같은 모습을 중심으로 남북전쟁 후 도금시대로 불릴 만큼 물질주의에 휩싸인 1870년대 미국의 역사까지 종횡으로 엮어낸다. 조지프 퓰리처와 앤드루 카네기,마크 트웨인 등 굵직한 인물들과의 사연도 드라마틱하게 비춘다. 미국비평가협회상 수상과 타임 선정 '올해 최고의 책' 등 잇달아 찬사를 받은 책.(고두현 기자) 

10. 04. 14. 

 

P.S. 한번 더 적자면, 국내에 소개된 론 처노의 책은 <금융 권력의 이동>(플래닛, 2008)까지 포함해서 3종 다섯 권이다. 소개되지 않은 후속작으론 <알렉산더 해밀턴>(2004)과 <워싱턴>(2010)이 있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4-15 0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15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쿼크 2010-04-15 01:27   좋아요 0 | URL
예전에 읽었던 '니콜라 테슬라'의 책에서도 JP모건이나 록펠러가 언급되어있어서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에디슨이 주장했던 직류 발전기와 테슬라가 주장한 교류 발전기 싸움에서 테슬라가 이겨 현대의 가정에 교류 전류가 들어오긴 했지만 JP모건과의 싸움에 져 무선 송전기의 야망을 접어야 했지요. 만약 그때 JP모건이 눈감고 테슬라를 도와줬다면 아마 지금쯤이면 무선으로 전기를 공급받고 있는 세상에 살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에서야 이런 기술이 나오고 있죠. 무선으로 배터리 충전시키는 방식으로요...정확히 기억 나진 않지만, JP모건쪽에서 전선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테슬라는 모건이 준 연구비로 몰래 무선 송전 타워를 만들어 그쪽 분야를 연구하려 했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전기자동차도 모건과 록펠러 그리고 헨리 포드 때문에 결국 접어야 했다는 기록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결국 휘발유 자동차 시대를 맞이했지요... 저도 올해 안에 나름 읽을 책으로 JP모건1,2를 꼽았는데 두께가 만만치않아 읽을 수 있을지나 모르겠습니다. 여담이지만 테슬라가 죽고 난 뒤에 FBI가 테슬라 모든 자료를 가져갔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그래서 미국이 기술 강국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DKshield 2010-04-15 15:45   좋아요 0 | URL
그부분은 사실 인터넷에서 오버되었습니다.^^;;;

핵무기를 만들어낸지 50년이 지난 지금과 테슬라가 그걸 연구하던 시기는 아직 핵무기의 핵자도 모르던 시기라는 큰 차이가 있으니 말입니다. ^^;;

테슬라는 이론적으로만 가능했던것을 실행해보겠다고 노력한 것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당대의 과학능력으로는 불가능 했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어려운 기술을 당대에 가능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죠^^:;;

루체오페르 2010-04-15 01:34   좋아요 0 | URL
록펠러에 대한 여러 일화가 있던데 사실인진 모르겠으나...
한창 전성기때 암진단을 받고 충격을 받아 이제 베푸는 삶을 살아야겠다 결심하고 기부왕으로 살다보니 몇년남았다던 삶에서 몇십년을 더 살아 90여세에 운명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아마 이 책에서 진실여부가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정말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썼다 의 표본일지도..라는 생각이 드네요.

로쟈 2010-04-15 18:44   좋아요 0 | URL
베버의 말대로 '자본가의 원형'이지요...

푸른바다 2010-04-15 04:11   좋아요 0 | URL
록펠러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야말로 '시차적 관점'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로쟈 2010-04-15 18:43   좋아요 0 | URL
자본주의 자체가 그렇지요...

2010-04-18 2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18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19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