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진행해온 강의들이 하나둘 마무리되면서 연말임을 느끼게 된다. 아니, 가장 확실한 실감은 매서운 추위가 느끼게 해주지만. 주문했던 책을 잔뜩 받아놓은 터라, 여유만 있다면 한달은 너끈히 책속에 파묻혀 지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실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호사는 연말연초의 일주일 가량이 될 듯싶다. 각설하고, 며칠전 책장을 둘러보다가 꺼내온 책은 사와야마 미카코의 <육아의 탄생>(소명출판, 2014)인데, 지난 봄에 나온 책이다. 지난 가을 끄트머리에 나온 <엄마의 탄생>(오월의봄, 2014)과는 초점이 좀 다르지만 제목 때문에 나란히 떠올리게 돼 같이 묶었다. 여차하면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의 <아동의 탄생>(새물결, 2003)까지 릴레이로 읽어봐도 좋겠다 싶다.

 

 

김보성, 김향수, 안미선 공저의 <엄마의 탄생>은 '대한민국에서 엄마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가 부제. 제목에서부터 문제의식은 얼추 엿볼 수 있는데, 모성의 신화를 비판적으로 해부한다.

오래된 사회적 통념과 편견 아래 굳건히 자리매김한 ‘엄마 노릇’에 의문을 던지고자 기획되었다. 완벽한 모성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며, 엄마 역할 또한 여성과 아이의 외부에서 ‘만들어져’ 주입된 것임을 추적해 밝히려 했다. 이러한 외부의 시선 아래서 육아를 해야 하는 여성들은 ‘헌신적인 어머니’로 찬양받거나,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엄마’로 비난받거나, 그도 아니면 ‘개념 없는 초보맘’으로 무시당하기 일쑤다. 이 극단적인 평가들 모두 실제 여성의 현실이 아니라 ‘위대한 모성’‘어머니는 강하다’ 식 이데올로기의 산물일 뿐이다.

 

절판된 책들이긴 한데, 섀리 앨 서러의 <어머니의 신화>(까치, 1995), 아드리엔느 리치의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평민사, 2002) 등이 같은 주제를 다룬 책들이다. 아직 절판되지 않은 책으로는 인류학자 새라 블래퍼 허디의 <어머니의 탄생>(사이언스북스, 2010)도 관련서인데, 분량과 가격 모두 좀 부담스럽긴 하다(<어머니의 신화>와 <어머니의 탄생>은 소장도서인데, 어디에 있는지는 찾아봐야겠다). 

 

 

<엄마의 탄생> 참고문헌에서도 몇 권 더 추려볼 수 있는데, 엘리자베트 바댕테르의 <만들어진 모성>(동녘, 2009)과 이경아의 <엄마는 괴로워>(동녘, 2011), 그리고 EBS다큐프라임을 엮은 <마더쇼크>(중앙북스, 2012) 등이다. <마더쇼크>의 부제는 '엄마의 행복한 자아를 찾기 위한 모성의 대반전'인데,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가장 쉽게 읽어볼 수 있는 수준의 책 같다(처음 보는 책이긴 한데, 사실 모성은 관심주제가 아니었는지라 주목하지 못한 게 이상하진 않다. 하지만 나름 베스트셀러로군).

 

 

<육아의 탄생>은 사회학 분야의 책으로 분류돼 있지만 근대가족의 탄생을 다룬 역사서이기도 하다.

‘근대가족’이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던 의미와 그 모순으로 가득 찬 모습을 근대가족 형성의 역사적 과정과 주체라는 측면에서 다시 묻는다. 이를 위해 근대가족모델로서의 ‘가정’을 형성한 ‘미야케 쓰네카타/야스코’라는 한 쌍의 부부의 역사적 경험 측면에서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포함하여 거기에 내포된 모순과 갈등 양상을 탐색한다. 특히 ‘육아’가 왜 ‘교육’적인 성격을 강화시켰고 근대가족은 ‘교육에 열성적’인 ‘교육가족’의 양상을 어떻게 노정하게 되었는지를 고찰한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근대가족과 ‘육아’를 다시 묻고 상대화하려고 모색한 시도에 초점을 맞춘다.

이 주제의 책들도 몇 권 더 참고할 수 있다. 조은 교수의 <근대가족의 변모와 여성문제>(서울대출판부, 1997), 그리고 일본 학자들의 책으로 우에노 치즈코의 <근대가족의 성립과 종언>(당대, 2009)과 오치아이 에미코의 <근대가족, 길모퉁이를 돌아서다>(동국대출판부, 2012) 등이 거기에 해당한다. <근대가족의 성립과 종언>도 소장도서이긴 한데(다른 두 권은 장바구니에 담았다), 막상 이렇게 관심을 갖게 될 때는 책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여하튼 '모성'과 '근대가족'을 주제로 한 책들을 모아서 주제별 독서를 시도해봐도 좋겠다. 가족을 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14.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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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에 '이주의 발견'을 적는다. 앤드루(앤드류) 솔로몬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1,2>(열린책들, 2015). 통상 주목할 만한 책은 출간일을 연초로 잡는 게 상례라서 이런 대작이 나온 게 의아했는데, 역시나 출간일은 내년 1월 2일로 돼 있다. 실물이 보름 가량 앞당겨 나온 셈(담당 편집자가 연말 연차를 쓰려고 한 것일까?). 저자는 우울증 환자들의 필독서로 돼 있는 <한낮의 우울>(민음사, 2004)의 그 솔로몬이다. 어떤 책인가.

 

전미도서상 수상작이자 퓰리처상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한낮의 우울>의 작가 앤드루 솔로몬이 기념비적인 새 책으로 돌아왔다. 집필에 10년이 걸린 이 책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모와 다른 아이들>은 전미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선정되었고 수많은 언론으로부터 ‘혁명적’인 책으로 찬사를 받았다. 이 책에서 앤드루 솔로몬은 예외적인 자녀를 키우면서 남다른 깨달음을 얻은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300가구가 넘는 가족들을 상대로 4만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솔로몬은 극단적인 도전에 직면한 보통 사람들에게서 감동적인 힘을 발견한다. 그는 예외적인 정체성을 가진 자녀―게이, 청각 장애인, 소인, 다운증후군, 자폐증, 정신분열증, 신동, 강간으로 잉태된 아이, 범죄자가 된 아이, 트랜스젠더 등―를 둔 가족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도대체 이 녀석은 누굴 닮았을까?'라고 평소 의구심을 갖고 있는 부모라면 필독해볼 만한 책인 것. 원제가 'Far from the Tree'인 것도 이해가 된다. '나무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가지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이해하면 될까. 사례가 될 만한 아이를 데리고 있는 건 아니라서(분류하자면 '신동'도 아니기에),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는 아닌 듯하지만 시야를 좀 넓혀보면 또 전혀 무관하지도 않다.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인 에릭 캔델의 추천사는 이렇다.

 

인간 행동을 깊이 연구한 솔로몬은 '21세기의 심리학적 권리장전'의 초석이 될 지성사를 썼다. 이 권리장전은 인종과 종교뿐만 아니라 '정체성'에 따른 삶과 자유, 행복 추구에까지 기본권을 확장한다. 그는 우리 사회의 정체성 집단들에 대한 견줄 데 없이 교육적인 경험을 제공하며, 통찰과 연민, 지성으로 가득 찬 경험을 선사한다.

차이에 대한 이해와 관용을 함양하기 위해서라도 일독해봄직하다. 다만 너무 묵직한 분량이어서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부담스러울 듯하다. 아니, 아이들에겐 (혹 있다면) <아이와 다른 부모들>을 권해야 할까... 

 

14.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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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용 책을 따로 구입하거나 읽는 편이 아니지만, 올해는 그렇게 할 만한 책이 생겼다. 빌 오라일리와 마틴 두가드가 공저한 <예수는 왜 죽었는가>(문학동네, 2014). '신화가 아닌 역사'가 부제.

 

 

폭스 뉴스의 시사 토크쇼 '오라일리 팩터'를 진행하는 빌 오라일리에 대해 내가 아는 건 유명 언론인이라는 것과 '꼴보수'라는 것인데, 모르던 사실은 십여 권의 책을 쓴 저자라는 점. 그런데 마틴 두가드와 공저로 쓴 책들은 모두 '죽이기(killing)' 시리즈다. <예수는 왜 죽었는가>도 원제는 <예수 죽이기>이고, 이미 <킬링 링컨><킬링 케네디><킬링 패튼> 등의 베스트셀러를 합작한 바 있다.

 

 

책의 내용도 궁금하지만, 어떻게 써야 베스트셀러가 되는지 살펴보는 것도 독서 포인트(오라일리의 책으론 '오릴리'란 저자명으로 <좋은 미국, 나쁜 미국, 멍청한 미국>(서울문화사, 2001)아 출간됐었다). 소개는 이렇다.

아마존 역사 분야 1위, 60주 연속 베스트셀러. 이미 고정관념처럼 굳어진 종교화된 예수를 그리지 않는다. 저자들은 성서의 기록에 충실하면서도, 예수 당대의 역사를 섬세하게 복원해낸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듯 고대 유대의 현장을 다큐멘터리처럼 생동감 있게 전해주고 있다. 유대 사회의 갈등과 모순만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역사도 함께 그려내 마치 한 편의 거대한 장편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이 책은, 이러한 한국 교회의 현실을 생각하고 읽는다면, 통쾌한 역설이 된다.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두 저자는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다. 이들은 역사적 사실을 통해 객관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위대한 인물의 헌신과 저항, 그리고 그 이름이 인류의 가슴에 영원히 새겨지게 된 경위를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뜨겁게 밝히고 있다. 

 

아마도 '역사적 예수'를 다룬 책으로 분류될 수 있을 듯한데, 이 분야의 책으론 <역사적 예수 논쟁>(새물결플러스, 2014)이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다. 신학자 존 도미닉 크로산의 <역사적 예수>(한국기독교연구소, 2012)와 영화감독 폴 버호벤의 <역사적 예수의 초상>(영림카디널, 2012) 등은 예전에 구입해놓은 책들이지만, 이사를 하면서 행방을 알 수 없게 됐다(크리스마스 전에 한번 찾아봐야겠다).

 

 

국내서로는 <예수는 없다>(현암사, 2001)의 저자 오강남 교수의 <그리스도교 이야기>(현암사, 2013)와 <유대인 이야기>(행성B잎새, 2013)의 저자 홍익희의 <세 종교 이야기>(행성B잎새, 2014)도 참고할 만하다. 그래, 크리스마스용 독서라는 걸 올해는 해보기로 하자...

 

14. 12. 14.

 

 

P.S. 당연한 일이지만 책장을 둘러보니 예수 관련서는 한참 더 꼽을 수 있다. 조철수의 <예수 평전>(김영사, 2010)과 올해 나온 책으로 조반니 파피니의 <예수 이야기>(메디치, 2014), 그리고 레자 아슬란의 <젤롯>(와이즈베리, 2014)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다시 손에 들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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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동녘, 2013)에 대해 강의하면서 오랜만에 들뢰즈에 대한 관심을 되살리게 됐는데, 마침 주저 <안티 오이디푸스>(민음사, 2014)가 새 번역본으로 출간되었다. <앙띠 오이디푸스>(민음사, 1994/2000)로 진작에 번역됐었지만 들뢰즈 수용 초창기의 번역인 탓에 오류가 많아 독자들의 불만을 샀었다.

 

 

새 번역본은 제목도 바로 잡고(<앙띠 오이디푸스>는 희한한 조어다. 이걸 제목을 재생산한 책들까지 나오긴 했지만). 들뢰즈 전공자로 <천개의 고원>(새물결, 2001)을 옮긴 김재인 박사가 번역을 맡아서 번역에 대한 신뢰를 높였다(두 번역서 사이에 나온 역자의 박사학위논문 주제도 들뢰즈이다).

 

 

하여, 들뢰즈와 가타리의 '자본주의와 분열증' 시리즈로 <안티 오이디푸스>와 <천개의 고원>을 연속해서 읽어볼 수 있겠다. 내친 김에 <의미의 논리>(한길사, 1999)도 다시 손에 들어볼 수 있겠다. 참고로, 지젝은 가타리와의 공동작업의 결과인 '자본주의와 분열증' 시리즈를 들뢰즈의 최악의 저작으로 평가절하한다. 대신에 <의미의 논리>는 최고작으로 치켜세운다(<신체 없는 기관>). 그에 대한 동의여부는 독후로 미뤄두고 일단은 '들뢰즈를 읽을 시간'을 빼놓는 게 중요하겠다. 캘린더를 다시 확인해봐야겠다...

 

14. 1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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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서 가운데 '이주의 발견'은 커트 스테이저의 <원자, 인간을 완성하다>(반니, 2014)이다. '인간과 지구, 우주를 창조한 작지만 위대한 원자들'이 부제.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인간도 원자적 차원에서 보자면 탄소 복합물이다. 저자는 여덟 가지의 원자를 통해서 인간 존재를 해석한다.

 

양자물리학에서 볼 때 세상 모든 만물의 본질은 원자이고, 공기가 응축된 경이롭고 복잡한 덩어리인 인간 또한 원자로 구성된 물질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원자가 우리 인생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별종 과학자’ 커트 스테이저는 이 책에서 산소와 수소, 철, 탄소에서 나트륨, 질소, 칼슘, 인에 이르는 8가지 원자를 통해 인간의 존재를 해석한다. 우주와 인간의 아름다운 순환 고리를 시종일관 우아하게 펼쳐놓고 있는 저자는, 인간과 원자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저자 커트 스테이저는 대학에서 자연과학을 강의하며 여러 저널에 기고 활동도 겸하고 있는 과학자. <원자, 인간을 완성하다>과 최신간이며 <미래의 지구> 등의 저서를 더 갖고 있다.

 

 

원자 얘기가 나온 김에 원소와 주기율표를 다룬 세 권의 책도 한번 더 적는다. 샘 킨의 <사라진 스푼>(해나무, 2011), 휴 앨더시 윌리엄스의 <원소의 세계사>(알에이치코리아, 2013), 그리고 프리모 레비의 감동적인 회고록 <주기율표>(돌베개, 2007). 중고등학생들이 겨울방학에 읽어봄직하다. 아이한테 권해주려면 나도 찾아봐야겠다...

 

14. 1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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