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발견'으로 캐스파 헨더슨의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은행나무, 2015)을 고른다. 미처 예기치 않은, 상상하지 못한 책이다. 현재로선 '공존하려는 인간에게만 보이는 것들'이란 부제만 떠 있어서 실제로 어떤 책인지도 상상하기 어렵다.

 

 

다만 같이 꽂아둘 만한 책들은 떠오르는데, 알베르토 망겔의 <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백과사전>(궁리, 2013),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열린책들, 2011) 등이다. 차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을 다룬 책이 아닐까, 라는 것. 나머지 두 책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의 상상(작품) 속에만 존재하는 공간과 영감을 제시해놓은 것과 대비되겠다. 하지만 이 역시 제목에 비추어 상상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책이 대체 무엇에 관한 것이고, 어째서 묵직한 분량을 자랑하는지는 실물을 봐야 알 수 있겠다.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해 상상해보는 것만으로 최소한 하루의 반나절은 의미심장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서가에 빈자리를 미리 마련해두면서...

 

15. 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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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대학 신입생들의 독서토론 시간에 추천할 만한 책이 없는냐는 질문을 받고 떠올린 책의 하나는 '채현국이 구술하고 정운현이 기록한' <쓴맛이 사는 맛>(비아북, 2015)이다. 채현국 선생은 지난해 1월초 한겨레신문의 인터뷰에서 노인세대에 대한 일갈을 서슴지 않아 크게 화제가 되었던 분이다(기사를 찾아보니 작년에 한 잡지에서는 '올해의 인물'로도 꼽았군).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란 제목으로 나왔던 인터뷰 기사는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18266.html 참조. <쓴맛이 사는 맛>은 그 기사가 계기가 돼 선생을 찾아간 언론인의 '채현국 보고서'다.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의 제목이 '너희들은 저렇게 되지 마라'이다.

 

 

기록자는 존경받는 어른이 드문 시대에 그가 '제대로 늙은 어른'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었다고 평한다. '꼰대'나 '어버이연합'만 떠올리다가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쓴맛이 사는 맛"이란, 제대로 된 말씀을 들으니 경탄과 환호가 저절로 이어졌었다. 김주완의 <풍운아 채현국>(피플파워, 2015)에 뒤이어 나온 <쓴맛이 사는 맛>은 그런 배경에서 나온 책이다. 인터뷰 기사의 확장판으로 읽어도 되겠다.

시대의 어른 채현국의 삶이 깊어지는 이야기. 채현국은 '거리의 철학자', '파격의 인간', '현대판 임꺽정' 등으로 불리며 존경을 받아왔다. 한때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전국 2위일 정도의 사업을 일군 거부였으며, 민주화운동가들을 뒤에서 후원했으며, 현재는 효암학원이라는 사학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교육자이다. 스펙 쌓기, 취업 전쟁 등으로 지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힐링'이라는 휘황찬란한 말로 포장된 위로가 넘쳐나는 오늘날, 채현국의 진심 어린 조언과 충고는 젊은이들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간다. 그가 몸으로 직접 겪고 증명한 삶에서 우러나온 조언은 제대로 된 어른을 만나고 싶어 하는 청년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이런 분을 만나본 지가 가물가물하다. 제대로 된 나라, 제대로 된 세상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오늘 대학의 공기를 처음 들여마신 젊은이들이 "너희들은 저렇게 되지 마라"란 선생의 충고를 새겨들었으면 좋겠다...

 

15. 03.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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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에 가기 전에 '이주의 발견'을 고른다. '이주의 이론서'라고 해도 되겠다. 줄리엣 미첼의 <동기간>(도서출판b, 2015). 저자는 영국의 정신분석가이자 사회주의 여성주의자로 소개된다. 정신분석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을 제기했는데, 정신분석과 페미니즘의 관계는 사실 편이 나뉘는 걸로 안다.

 

 

<동기간>은 제목이 시사하듯 초점이 좀 다르다. '수직적 관계의 정신분석에서 수평적 관계의 정신분석으로'라는 표지 문구가 잘 집약하고 있다.

영국의 정신분석학자인 줄리엣 미첼의 책으로 기본적으로는 정신분석이라는 이론적 관점에서, 그동안 배타적으로 중시되어왔던 부모와 자식 간의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동기간이라는 측면 관계를 다양한 자료를 통해 분석하고 있는 저술이다.

희소한 접근방식이므로 정신분석이나 이론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손길이 바로 갈 만하다.

 

 

말이 나온 김에 페미니즘과 정신분석 관련서를 찾아봤다. 모두 갖고 있는 책들인데, 절판된 책이 많아졌다. 엘리자베스 라이트가 엮은 <페미니즘과 정신분석학 사전>(한신문화사, 1997)은 기본 '도구'이지만 찾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아직 품절되지 않았다. 국내 저자들이 쓴 <페미니즘과 정신분석>(여이연, 2003)과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페미니즘 이론을 통한' 텍스트 읽기를 보여주는 캐런 코우츠의 <아동문학 작품 읽기>(작은씨앗, 2008)은 절판된 상태.

 

 

줄리멧 미첼의 책으론 <여성의 영지>(2015)도 눈에 띄는데, 국내 번역된 <여성의 지위>의 원저인지는 확인해봐야겠다. 예상대로다. 초판은 1971년에 나왔고, 국내엔 <여성해방의 논리>(광민사, 1980)와 <여성의 지위>(동녘, 1984)란 제목으로 두 차례 번역됐었다. <미친 남자와 메두사>(2001)는 히스테리를 재조명한 책으로 돼 있는데, 수직관계 대신에 측면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한 책이라 한다. 근간으로는 <줄리멧 미첼과 수평축>이란 연구서도 나올 예정인데, 역시나 동기간 정신분석을 다룬 책으로 보인다. 한데, 대부분 외동인 한국의 핵가족 현실에서는 동기간 분석의 유효기간이 길어보이진 않는군. 혼자인 아이의 정신분석이 앞으로 개척되어야겠다...

 

15. 03.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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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스티븐 케이브의 <불멸에 관하여>(엘도라도, 2015)를 고른다.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의 세번째 책인데, 첫 권이 셀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엘도라도, 2012)였고, 둘째 권이 수전 울프의 <삶이란 무엇인가>(엘도라도, 2014)였다. 출간 간격을 보면 점점 빨리 나오는 거 같은데, 넷째 권도 올해 나오는지 궁금하다. 공통점은 모두 강의를 바탕으로 한 책이라는 것. 소개는 이렇다.

 

TED에서 최단시간에 170만 명이 시청하며 화제가 된 스티븐 케이브 박사의 ‘불멸’에 대한 명강의가 책으로 나왔다. 죽고 싶지 않은 인간의 오래된 욕망, ‘불멸’을 ‘4가지 이야기’로 구분해 설명하면서, 불멸의 욕망이 어떻게 인류의 문명을 이끌어왔는지 풀어내고 있다. 프랑스의 알랭 드 보통과 비견되며 뛰어난 강연으로 소통하는 영국의 대중철학자 스티븐 케이브는 어둡고 막연할 것 같은 주제를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내러티브로 진행한다. 철학책이자 역사책인 <불멸에 관하여>는 “영원한 삶이 정말로 가능한가?”, “영생이 그토록 갈망할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그 대답의 과정을 파헤치고 있다. 

 

죽음을 주제로 한 책은 적지 않은데, 지난해 나온 책만 해도 여럿이다(표지만 다 무채색이로군). 불멸도 따지자면 같은 범주에 넣을 수 있겠다. 어떤 책을 기본서로 삼을 수 있을지는 좀 훑어봐야 알 것 같다. 화제작이었던 셀리 케이건의 책은 원서까지 구해놓았는데, 자꾸 독서 기회를 놓치게 된다. '문학 속의 죽음' 같은 강의를 하게 되면, 억지로라도 시간을 낼 거 같다. 아, 그 주제의 책도 이미 나와 있긴 하다.

 

 

학술적인 성격의 책이지만 최문규 교수의 <죽음의 얼굴 - 문학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죽어가는가>(21세기북스, 2014), 황훈성 교수의 <서양문학에 나타난 죽음>(서울대출판문화원, 2013), 그리고 임철규 교수의 <죽음>(한길사, 2012) 등이다. <죽음>은 어디에 놓았는지 찾아봐야겠다...

 

15. 0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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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가 끝나고 나니 다시 책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목록이 업데이트 되고 있다는 뜻인데, 오후 일정에 들어가기 전에 '이주의 발견'을 골라놓는다. 루시 워슬리의 <하우스 스캔들>(을유문화사, 2015)이란 책이 눈에 띄어서다. '은밀하고 달콤 살벌한 집의 역사'가 부제인데, 원제는 '벽이 말할 수 있다면'이다.

 

현관에서 화장실까지 집 안으로 들어온 역사. 영국의 주목받는 역사학자이자 BBC 텔레비전 역사 프로그램 진행자 루시 워슬리가 농가에서 궁전까지를 망라하는 집의 역사를 다룬 BBC 인기 텔레비전 4부작 시리즈 '벽이 말할 수 있다면'에 참여하고 내놓은 책이다. 침대의 역사, 속바지, 질병, 성병, 수면의 역사, 침대 살인, 목욕의 몰락과 부활, 화장과 화장실, 욕실의 탄생, 양치질, 하수 설비의 기적, 화장지의 역사, 잡동사니의 역사, 난방과 조명, 누가 청소를 할 것인가, 공손한 미소와 매너, 죽음과 장례식, 요리에 익숙했던 남자들, 부엌의 정체, 악취의 매서운 위력, 냉장고, 소스의 정치적 결과, 힘겨운 설거지 등 가정생활에 얽힌, 때론 낯 뜨겁지만 그만큼 더 매력적인 인간의 생활사를 그려내고 있다. 

기절할 정도로 새롭진 않지만 주제가 꽤 참신하게 여겨진다. 물론 발상보다는 내용으로 승부를 해야 하는 책이긴 한데, BBC 시리즈였다니 그 또한 어느 정도 보증이 되는 듯싶다. 안심하고 읽어볼 만한 책이겠다.

 

 

자연스레 떠오르는 건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까치, 2011)다. 부제는 '사생활의 간략한 역사'이지만, 원제는 '집에서(At Home)'였다. "집 안 구석구석에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삶의 일상적인 것들을 살펴보며 그것에 숨겨진 역사들을 낱낱이 파헤치는 이 책은 그야말로 사생활의 역사에 관한 거의 모든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담고 있다." <하우스 스캔들>과 자웅을 겨뤄볼 수 있지 않을까.

 

 

 

영국 책들에 견줄 만한 프랑스 책들은 좀더 학구적이고 묵직하다. 미셸 페로의 <방의 역사>(글항아리, 2013)와 필립 아리에스와 조르주 뒤비 등이 엮은 <사생활의 역사>(전5권)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사실 이 정도 책들이라면 거실 서가를 장식할 권리가 충분하다. 장서용(심지어 장식용)으로라도 꽂아둘 만하다는 것이다. 벽들에게 뒷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15. 0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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