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에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력 사건과 관련한 칼럼 두 개를 옮려놓는다(사건은 김회장이 구속되는 선에서 조만간 마무리될 모양이다). 사건 자체야 어처구니 없지만(사실 더 뉴스거리가 될 만한 건 이 사건에 대한 경찰의 대응태도였다), 과연 그게 국민적 에너지를 투여할 만한 일인가에 대해선 의구심을 갖게 된다. 인민재판식 여론몰이 또한 국외자적 시각에서 보자면 좀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인 코드'와 관련되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한국인 코드'가 새삼 너무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뒷맛은 씁쓸하다. 아래는 그런 씁쓸함을 되새기게 해주는 칼럼들이다.  

문화일보(07. 05. 04) 미국과 다른 한국의 문화

한국에 20여년 살면서 한국인들이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집단적으로 무척 감정적인 대응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좋게 말하면 한 마음이 된다는 뜻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집단편집증 같기도 하다.

우선, 2002년 당시 효순·미선 양 사건을 돌이켜보자. 그 꽃다운 여학생들의 불행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진다. 하지만 그 사건은 그 뒤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듯이 미군 운전병이 그 학생들을 죽이겠다는 의도가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그 불행한 사고가 마치 주한미군, 나아가 미국 전체의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식의 반미감정 차원으로 비화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최근 버지니아공대 조승희 사건이 터지자마자 미국 정부는 가장 먼저 조승희 부모의 신변 보호에 들어갔다. 사건 초기 한때 재미 한국인들에 대한 보복 우려가 제기됐지만 기우로 끝났다. 한국교포가 보복 당할지 모른다는 발상은 어떻게 보면 한국인 스스로의 피해 의식의 소산이었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오히려 조승희 가족도 피해자라면서 동정론까지 펼쳤다.

한국인인 아내와 함께 미국이나 유럽여행을 하던중 전철이 고장나 발길이 묶인 적이 가끔 있다. 그러나 그 사고가 의도적인 게 아니었다면 이용객들은 묵묵히 전철이 출발할 때까지 기다린다. 이런 모습을 보며 아내는 한국에서라면 벌써 전철 역무원과 거친 목소리가 오갔을 것이라며 혼잣말을 하곤 했다.

최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건은 미국에서라면 이렇게까지 1주일 이상 전국이 들썩거릴 정도로 난리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김 회장의 행동이 옳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극히 개별적인 사안인 이 사건을 마치 한국 대기업 전체의 문제, 나아가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대립구도 식으로 몰아가는 듯한 움직임은 서양인의 시각으로 보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인 친구들은 대부분 본인이 술집에서 얻어맞으면 대항할 생각도 못하고 참았을 것이라고 한다. 술집 배후의 조폭 보복이 무섭기도 하거니와 술집에서 얻어맞아 이마를 10바늘 꿰맸대서 그것을 법에 호소한다고 쉽게 해결될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식 문제로 가면 달라진다고 했다. 결국 이 사건의 본질은 자식 사랑이 지나친 어느 아버지의 성급한 과잉대응이 아닐까.

한국인들의 끔찍한 자식 사랑은 사실 유별난 데가 있다. 한국인 아버지들은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내심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자문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속마음은 깊이 감추고 돌연 이 사건을 대기업 총수의 문제로 보아 가진 자와 힘 있는 자가 당하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하다.

과연 이번 사건을 막강한 대기업 총수 대 무력한 술집 종업원이라는 전형적 이분법의 틀에 담는 게 바람직한 자세일까. 미국인들은 조승희 사건에 대해 민족·인종·계급의 문제와 무관한 개인의 문제로 취급하면서도 그 사회·문화적 맥락을 차분히 따져보는 성숙한 자세를 보였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우선 개별 사안이라는 전제를 분명히한 뒤 혹시 그 배경에 있을지 모를 여러 사회·문화적 요인들을 생각해보는 게 문제 해결의 올바른 순서가 아닐까.

다섯살 때 하루는 동네 형에게 얻어맞고 피를 흘리며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아버님의 동정을 살 요량으로 울어보았지만, 아버님은 오히려 내게 다시 가서 그 형을 때리고 오든지 아니면 당신한테 한 대 더 맞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게 아닌가. 물론 나는 몽둥이를 숨기고 그 형을 불러내 한대 때리고 줄행랑을 쳤다. 그 형의 몸집이 아버님의 절반이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전혀 다른 문화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아무리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아도 한국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에릭 함슨 / 명지대 교수·영문학)

한겨레(07. 05. 07) 김승연 회장은 곧 잊혀진다

“당신들의 생명이 소중하듯이 내 생명도 소중합니다. 나는 살고 싶습니다. 제발, 제발 …” 참수를 당하기 전 화면에 비쳐진 고 김선일의 절규 앞에서 전율을 느꼈었다. 온나라가 아니 온세계가 다 그러했을 것이다. 연쇄 살인범 유영철 사건은 또 어땠을까. 희대의 줄기세포 사건, 황우석 교수 얘기는? 아니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겠다. 바로 얼마 전, 눈동자 너머로 깊은 우물이 패어있는 듯한 느낌을 안겨줬던 총기 난사범 조승희의 동영상을 보던 심정은 어떠했던가.

사건·사고라는 이름으로 세론에 떠오르는 온갖 ‘세상의 일들’은 언제나 늘 그렇게 터지고 그렇게 잊혀져가는 것일까. 김승연 사건, 정확한 명칭으로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부자의 보복폭행 의혹사건’이 휩쓰는 세상 속에서는 버지니아의 조승희도 서귀포의 양지승 어린이도 벌써 까마득한 옛일 같기만 하다. 냄비근성에 대한 탄식 못지않게 인간사가 본래 그렇지 뭐, 하는 체념이 앞서기도 한다. 날마다 일정 분량의 음식물을 섭취해야 하듯이 사람은 늘 일정한 감정 격발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 ‘감정’ 문제다. 더 정확히 속내를 드러내자면 감정‘만’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가 하는 자기반성이 그것이다.

김승연 회장 사건을 언론에서 처음 접했던 순간에는 자동반응처럼 특권층의 초법적 행동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 정도 갖춘 사람이 그런 수준의 보복행동으로 대응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깊은 경멸감이 일었다. 그 와중에 택시 안에서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기자의 목소리는 차갑고 매섭고 날카로웠다. 그는 사건의 내역을 보도하는 게 아니라, 그 내역을 빌미로 해서 자신의 분노를 토로하는 듯이 느껴졌다.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보세요! 저 악질 기업가가 정말 나쁜 일을 저질렀어요!’쯤을 외치는 듯이 전달되어 왔다. 보도라는 공적수단을 통해 한 인격체가 저렇게 매도되어도 되는 것일까. 더욱이 수사가 확정되기도 전에. 기자에 대한 반감과 더불어 폭력을 휘둘렀다는 ‘회장님’에 대한 동정이 치미는 기분은 참 미묘했다.

김수영의 시 ‘풀잎’에서 풀은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묘사된다. 학교시절에 그 풀은 민초를 뜻한다고 배웠다. 과연 민초가 그러한가. 한국의 언론보도가 더 빨리 눕고 더 빨리 울고 더 먼저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하긴 언론의 선정주의는 말하기도 지겹다. 과당경쟁 상황에서 이해가 가는 면도 없지 않다. 그렇게 과잉되게 ‘울고불고’ 해야 반응이 오는 사회심리에 더 큰 탓이 있는 것도 같다.

쉽게 타오르고 쉽게 꺼지는 불의 연료는 감정이다. 감정이 사건을 지배하는 한 그 사안에 종횡으로 연루된 복합적 성격은 규명되지 않으며, 은폐된 본질이 미처 토론의 수면으로 떠오르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건이란 끊임이 없는 법이어서 새 사건이 이전 사건의 파장을 금세 뒤덮어 버리기 때문이다. 흥분 곧 감정격발의 연쇄상태로 세상이 흘러가는 것이다. 사회문제 관심 주기는 상상할 수 없이 짧다.

법 위에 올라서서 쇠파이프를 휘두른 당사자들은 시간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금방 잊혀질 테니까. 선행폭력을 휘두른 이른바 술집 종업원(?)들은 희희낙락하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불쌍한 희생자로 둔갑했으니까. 기자들은 슬슬 다른 먹잇감을 찾고 있을 것이다. 이미 식상한 사안이 돼 버렸으니까. 그리고 국민은? 물론 또다른 사건으로 흥분할 준비를 하고 있겠지. 늘 그래왔지 않은가.(김갑수 문화평론가)

07. 05.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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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비평에서 흥미로운 리뷰 기사 하나를 옮겨놓는다. 이광수와 베르그송의 관계를 다룬 논문에 대한 소개인데, 이광수를 낭만주의자로 이해하는 논문의 결론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이광수에게서 '감상적 계몽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지울 수 있는가?) '이광수와 베르그송'이라는 아이템 자체는 신선해 보인다. 지난 3월의 '사회적 독서' 목록으로 <무정>을 올려놓은 적이 있는데, 그 참고자료로 분류해둔다.  

담비(07. 05. 03) 이광수가 과연 계몽주의자인가

이광수를 계몽주의자가 아닌 낭만주의자로 해석하는 문제적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철호 동국대 강사(국문학)는 최근 ‘비교문학’ 제41집에 발표한 ‘생명으로서의 문학-‘무정’의 생명론과 낭만적 자아의 문제’에서 1920년대에 이루어진 이광수의 베르그송 독서를 통해 이같은 논리를 개진하고 있다.

1920년을 전후해서 이광수는 새로운 문학세대를 준엄하게 설교하는 자로 군림했다. 그는 ‘창조’, ‘폐허’, ‘백조’, ‘영대’ 동인들을 도덕이라는 심판대 위에 불러 퇴폐한 것들이라고 규정해버렸다. 고민, 허무, 죽음, 눈물 등의 문학적 수사에 대해서 이광수는 민족 혹은 민족문학의 발전을 훼손시키는 데카당스의 망국정조일 뿐이라며 일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광수가 이들 동인지세대와 대립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기성의 권위나 억압에서 자아의 해방을 역설하는 데 가장 나섰던 인물은 바로 이광수였다. ‘무정’은 정의 만족이 곧 문학이라는 이광수식 믿음의 산물이다. 이광수는 이형식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것을 실현했으며 복잡한 내적 과정과 자아와 타자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영적 체험을 전경화시키는 등 많은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이광수가 다이쇼의 생명주의 사상에 기대 자신의 지적 갱생을 도모했다는 것은 그의 자전적 소설들에 암시돼 있다. 교사생활을 청산한 후 쓴 ‘金鏡’의 경우, 일본유학때 까지의 이광수의 내밀한 심경이 토로되어 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지난 수년간의 교사생활을 덧없이 반추한다. 이 단편의 중심내용은, 화자가 자기희생으로 일관했던 교사시대와결별하고 새로운 지적 포부를 토로하는 데에 있다. 톨스토이와 바이런을 난생 처음 접한 후 ‘번민’, ‘고통’, ‘죽음’에 시달리던, 그래서 그의 “靈에 폭풍광란에 雷雨까지 더하여 거의 狂할 뻔하였”던 유학시절은 현재의 교사생활에 견주면 오히려 삶의 활력으로 충만했던 시절이었다.

흥미로운 부분은 자신의 학식이 턱없이 부족함으로 토로하며 베르그송을 거론하는 부분이다. “벨그손의 철학을 외우다가 이해하지 못할 학리와 술어가 많음을 보고, 비로소 규범과학을 연구함이 연학의 초보임을 깨달아”하는 부분이다.

그가 미처 이해하지 못한, 그러나 도쿄 유학의 실행을 심리적으로 가능케 한 책이란 다이쇼 시기 전반에 걸쳐 널리 애독된 필독서 중 하나였던, 니시기다 요시토미의 ‘베르그송의 철학’(1913)이었다. 이 시기에 일본지식인 사회에 널리 회자한 베르그송의 ‘생의 철학’은 니시다 기타로에게 고스란히 전수되면서 다이쇼기 ‘생명주의’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1910년대 후반부터 동인지 세대의 문학 청년들 역시 니시다 기타로가 일본적 맥락에서 번안하고 집성한 베르그송의 생철학 사상에 적잖이 침윤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베르그송 철학을 원전이 아닌 다른 매개, 이를테면 이쿠다 쵸코, 쿠리야가와 하쿠손 등을 통해 수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게 직접 영향을 받은 작가들로는 김동인이나 염상섭이 대표적이지만, 그 당시 일본에 유학중이었던 김여제, 주요한, 최승구 등도 시라카바의 이상주의적인 경향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창작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광수를 계몽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은 문학사의 실상과 부합하지 않는다. 그의 주된 관심이 불합리한 관습과 윤리도덕의 혁신에 있었던 만큼, 이광수의 사회적 위상을 계몽주의의 차원에서 해석할 여지가 없지 않지만, 그는 ‘무정’을 연재했을 때나 데카당스의 미학을 비난하며 민족윤리에 봉사하는 문학의 소임을 강조했을 때나 낭만주의자로서 군림했다(*나로선 지나친 단순화이며 논리적 비약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1920년대 이후의 이광수는 초기의 진보적 성격을 상실해버렸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이 시기의 이광수는 비판적 활력을 상실한, 화석화된 낭만주의자의 잔영을 보여줄 따름이라고 이철호 씨는 결론짓는다.(리뷰팀)

07. 05. 03.

P.S. 이광수의 계몽적 기획와 <무정>에 관한 이해에 유익한 자료는 김현주의 <이광수와 문화의 기획>(태학사, 2005)이다. 저자의 학위논문을 보완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무정>에서 '정'이 갖는 의미에 관하여 설득력 있는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시각에 더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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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80 2007-05-04 01:32   좋아요 0 | URL
이쪽 분야로는 김현주의 논문도 좋지만 손유경의「한국 근대소설에 나타난 ‘동정’의 윤리와 미학에 관한 연구」(2006), 도 꽤나 자세히 이광수가 보여준 동정의 미학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특히 동정 담론의 기저에 망탈리테가 깔려있다고 보는게 손유경 논문의 핵심인 것 같더군요. 이광수의 계몽은 동정의 공적 발휘이며 상호부조론에 의해 타인의 고통을 개인이 구체적 감각으로 인지하면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지위와 계급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동정이 존재할 수 없다며 막연한 연민으로써의 인도주의를 비판하고 동정의 사상, 이념적 연동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광수에 대한 여러 연구자의 새로운 접근은 근대문학의 이분법적 구도를 탈피하는 유효한 접근이자 가능성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기인 2007-05-04 07:10   좋아요 0 | URL
오옷, 소이부답님 역시 부지런하시네요! 저는 아직도 손유경 선생님 논문을 못 읽었는데 -_-;;;; 등잔밑이 어둡다는(말이 되는지? -_-;;; ) 여튼 이광수 주요한 등이 시라카바학파의 영향을 받은 것도 맞고, 낭만주의적 경향이 있는 것도 긍정할 수 있는데 낭만주의와 계몽주의를 당대 조선의 상황에서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반이성/이성이라는 도식인지요... 당대 조선에서 계몽주의라는 운동이 낭만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판단도 가능할 듯 한데요 ^^

기인 2007-05-04 07:14   좋아요 0 | URL
뭐 원문 글을 읽어보고 판단해야할 문제이지만, 그래도 이런 도발적(^^) 문제제기들이 활력을 주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국문학 공부하다보면 그래도 2~3년에 한번은 이렇게 재미난(?)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로쟈 2007-05-04 15:08   좋아요 0 | URL
전공자들은 다 모이셨군요.^^ 손유경씨의 논문은 아직 출판이 안된 거지요?(논문 파일은 어제 다운받아놓았습니다). 2-3년에 한번씩 재미난 일이 터진다면, 가물에 콩나는 식인데, 흠...
 

지난달 1일은 만우절이어서 '사회적 독서'의 목록을 올리는 일이 멋쩍더니 이달은 또 메이데이(노동자의 날)인지라 이런 노동이 머쓱하다. 하지만 시간강사는 이런 휴무와 무관한 예외적 노동자인지라 5월의 리스트도 올려놓기로 한다(이 또한 예외적 노동인가?).

사실 리스트에는 스스로를 닦달하는 의미도 포함돼 있지만 3월에 학기가 시작된 이후에는 1,2월에 사회적 독서를 처음 구상할 당시에 예기치 않았던 '저항'에 직면하고 있어서 '닦달'의 의미가 무색해지고 있다. 지날달에도 기본 목록으로 내가 꼽은 책은 강경애의 <인간문제>,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그리고 헤겔의 <정신현상학>(서문) 등이었지만 이 책들에 대한 리뷰나 페이퍼를 쓰지 못했다(물론 대학 신입생들을 겨냥한 목록이었지만). 그건 3월의 목록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굳이 (스스로에게) 변명하자면 이 달 안으로 <인간문제>와 <어머니>에 대한 글을 포함해서 몇 가지 아이템에 대한 페이퍼를 쓸 계획이라는 것.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다 보니 아무래도 좀 만만한 책들을 리스트에 올려야겠다는 계산이 선다. 그래서 가정의 달에 꼽은 '사회적 독서'의 목록은 강준만의 <한국인 코드>(인물과사상사, 2006)로부터 시작된다. 사실 '가정의 달'이란 것 자체가 한국적 발상이자 '한국인 코드'에 부합하는 게 아닐까? 여하튼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도 있고, 또 지난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지식인으로 강준만을 빼놓을 수 없겠기에(나는 '강준만의 시대'란 표현에 동의한다) '우리시대의 볼테르'에 대한 예우도 갖출 필요가 있겠다. 내가 굳이 군소리를 붙이지 않아도 그의 책들은 많이 읽히고 있지만서도.

<한국인 코드>와 함께 내가 읽어보려는 책은, 며칠전 경향신문의 설문조사에서도 확인이 됐지만 지난 7-80년대 한국사회를 이끈 대표적인 지식인 리영희 선생을 다룬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개마고원, 2004)이다. 강준만의 편저로 돼 있는 책인데,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된 책이라 미처 눈길을 주지 못한 인연이 있다(눈길을 주지 못한 인연?). 이미 이 책들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프리'다. 역시나 베스트셀러들인 진중권의 <호모 코레아니쿠스>(웅진지식하우스, 2007)나 스콧 버거슨의 <대한민국 사용후기>(갤리온, 2007) 등을 들춰봐도 좋겠다. 요는 이러한 '거울'들을 통해서 한국인으로서의 우리 자신을 좀 들여다보자는 것이니까.  

 

 

 

 

두번째 책은 경향신문의 설문 중 한국사회에 영향을 준 국내저술 목록에서 단독 저작으로는 다섯번째로 꼽힌 임지현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소나무, 1999)이다. '미시적 파시즘'과 '대중독재'라는 화두를 통해서, 그리고 한동안 <당대비평> 지면을 통해서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에 준하는 활동을 펼친 바 있는 저자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백낙청-리영희-최장집-김우창 등의 뒤를 잇는 대표적 지식인의 자기반성적 성찰에 나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이념과 이데올로기의 '속살'을 만지는 게 그의 주특기이다). 개인적으론 그가 민족주의 운동의 전공자이면서 동유럽(특히 폴란드)과 러시아의 사정에 밝다는 점도 호감을 갖게 한다. 사회주의 인텔리겐챠들에 대해서 그보다 더 많이 공부한 사람은 많지 않다.  

 

 

 

 

세번째 책은 한국사회에 영향을 준 해외저술 가운데 다섯번째를 차지한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나남출판, 2003)이다(강원대출판부본은 절판되었다). 그래도 푸코의 저작들 가운데서는 가장 많이 팔린, 가장 대중적인 책이기도 하다. '푸코'란 이름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먼저 떠올리는 독자라면 먼저 크리스 호록스의 만화책 <푸코>(김영사, 2003)로 몸을 푼 다음에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감시와 처벌> 정도는 이미 독파한 분이라면 미란 보조비치의 <암흑지점>(도서출판b, 2004)과 대결해보는 것도 좋겠고, 벤담-푸코의 판옵티콘의 응용이라고 할 홍성욱의 <파놉티콘 - 정보사회, 정보감옥>(책세상, 2002)을 디저트 삼아 읽어볼 수도 있겠다.

 

 

 

 

끝으로 네번째 책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엮어낸 <소설 이천년대>(생각의나무, 2007)이다. 영화 <박하사탕>에서처럼 '나 다시 돌아갈래!'를 속으로 외치면서 <소설 구십년대>, <소설 팔십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되겠다(80년대에서 끝난다면 지옥일 테지만). 가정의 달 '5월'이 갖는 또다른 의미를 되새기기에 적합한 여정이 아닐까 싶다.

<소설 이천년대>에 대응할 만한 시집으로는 '젊은 시인 49인 자선 대표작' 모음집인 <21세기 우리 시의 미래>(실천문학사, 2007)가 눈에 띈다. 아무리 문학판이 '일류(日流)' 일색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의 시의 영토는 보전되고 있다. 그 영토에서 젊은 시인들이 각자 무슨 구멍들을 파고 있는지 잠시 엿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만한 계절이다. 5월은...

07. 05. 01.   

 

 

 

 

P.S. 이런저런 사정으로 5월의 사회적 독서를 6월까지 연장한다. 내가 따로 고려했던 몇 권의 책은 최상천의 개정판 <알몸 박정희>(인물과사상사, 2007), 그리고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창비, 2000)과 황광우의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창비, 2007)이다. 지난 년대에 대한 기억으로 며칠쯤은 채워져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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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itheme 2007-05-01 16:31   좋아요 0 | URL
이중에서 한권정도는 꼭 읽어보고 싶네요.

로쟈 2007-05-01 16:40   좋아요 0 | URL
두어 권 읽으셔도 됩니다.^^

antitheme 2007-05-01 20:06   좋아요 0 | URL
제가 소화할 수 있는만큼만 읽어야죠..^^

기인 2007-05-01 21:57   좋아요 0 | URL
오오;; 아직 2007년인데 소설이천년대는 쫌 그렇네요 ^^;;
메이데이에 공익은 쉬지 않습니다 ㅜㅠ

닉네임을뭐라하지 2007-05-01 23:13   좋아요 0 | URL
강준만의 두 권 다 작년에 읽었던 책이라 왠지 으쓱하군요. ㅎ
아, 사진을 보니 이창동 감독 신작 <밀양> 기대되는군요.

로쟈 2007-05-01 23:16   좋아요 0 | URL
antitheme님/ 물론이죠.^^
기인님/ 공익을 위해서라면!^^
연랑님/ 아, '프리'시네요.^^ <밀양>은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비80 2007-05-02 02:21   좋아요 0 | URL
다행스럽게 몇 권은 가지고 있네요.^^
생각의 나무 판 소설 시리즈는 얼마 전에 구입해 봤습니다. 소장 비평가들의 안목이 얼마나 새로운지 검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괜찮은 것 같습니다. 널리 알려진 작가의 이름난 작품은 최대한 배제하고 작품을 선정했다는 점에서 일단 기존의 컴필레이션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겠네요.

로쟈 2007-05-02 22:2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얼마전 서점에 가서 들었다가 생각보다 비싼 책이어서 도로 놓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동대장 2007-05-03 15:38   좋아요 0 | URL
항상 좋은 리스트에 감사 드립니다. 이번달에도 한권 골라 봐야겠네요......

로쟈 2007-05-04 18:16   좋아요 0 | URL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레디앙에 실린 박노자와의 인터뷰를 옮겨놓는다. 한미FTA에 관한 것인데, 그밖에 다양한 관심사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나로선 북한 체제와 민노당에 대한 그의 견해에 공감한다). 이미 우리시대의 논객이자 국외자적 지식인으로 자리잡았지만, 박노자는 가라타니 고진이 인용하고 있는 바로 그 ‘non-Jewish Jew’(비유대적 유대인)의 전형이 아닐까 싶다. 혹은 ‘non-Korean Korean’(한국인이 아닌 한국인). 그런 입지점에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요긴하며 필수적이다. 그의 모든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한미FTA 관련인지라 '사회적 독서'로 분류해놓는다. 

레디앙(07. 04. 09) 한미FTA 정치사회적 겨울 온다

"미국과 한국의 시장을 통합시킬 수 있다면 더 이상 신자유주의 노선에 반대하는 정책을 수립할만한 여지가 남지 않을 것이라는 발상이 아닌가 싶다. 어떤 세부적인 혜택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이 나라에서 부자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어떤 정책도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환영하는 것 같다"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박노자 교수는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지배층이 한미FTA를 추진하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그는 한미FTA 협정이 체결되면 우리 사회는 미국식 모델 외에 다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될 것이라면서 "사회와 국가의 장기 보수화, 일종의 정치사회적 겨울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박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를 들먹이고 진보적 슬로건을 하나의 어법으로 이용하면서 일부 민중을 포섭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국가를 미국형 사회모델, 한 편에는 소수의 부유층과 고소득층과 중산층 상층이 있고, 다른 한 편에는 70-80%나 되는 빈곤층과 준빈곤층, 몰락 중인 하급중산층이 있는, 민중에게 대단히 고통스러운 사회모델로 몰아가고 있다"고 노 대통령을 비판했다.

박 교수는 한미FTA의 효과로 소비자 잉여가 증대될 것이라는 논리에 대해 "소비자가 바로 노동자다. 소비하려면 우선 벌어들여야 하는데, 직장의 안정성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벌이고 있는 공무원 '퇴출 쇼'가 그런 것인데, 일종의 시범케이스"라고 말했다. 그는 "이 모델이 공고화된다면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은 공포의 나날이 될 것"이라며 "당장 다음 달을 예측할 수 없는 공포의 연속일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노 대통령에 대해 대단히 신랄했다. 그는 "(노 대통령같은) 그런 자들이 장기적으로 한국 민중에 가장 위험하다. 카멜레온처럼 기만책을 대단히 잘 구사한다. 일부 민중층을 포섭하는 언어적 수법에 능하다. 또 자수성가한 민중 출신이다. 그런 사람이 민중운동을 파괴하는 데는 가장 쓸모가 있다"고 맹비난했다.

박 교수는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진보는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고, 좌파는 결과의 평등을 추구한다"고 분별하면서 자신과 노 대통령을 진보로 규정한 데 대해 "조기숙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이화여대에서 시간강사를 하고 있는 수 많은 사람 중에 교수가 될 기회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수 많은 시간강사들, 수 년 동안 시간강사 일을 해온 사람들, 상당수는 정규직 교수에 비해 능력 좋고 업적 좋은 사람들, 조기숙 선생이 만들고 싶은 사회에서는 이들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질 것인가, 그것부터 물어보고 싶다"고 꼬집었다(*이러한 '맡바닥' 사정은 조교수보나 박교수가 훨씬 잘 아는 듯 보인다). 

박 교수는 이번 대선과 관련해 "지금 같아선 극우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것이 뻔해 보인다"면서 "(민주노동당이) 그것을 막을 수는 없어도 제대로 저항해서 수 백만 표를 얻을 수 있다면 앞으로 극우 세력과 제대로 투쟁하면서 한국의 보수화를 제지할 수 있을 것"이지만 "요즘 민주노동당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담하다"고 했다.

박 교수는 민주노동당의 문제로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먼저 당이 젊은층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민주노동당은) 80년대 운동권의 보수적이고 서열위계적인 문화가 강하다. 양성평등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우도 많지 않나 싶다"면서 "20대 여학생이 친근하게 대하기 굉장히 힘든 구조"라고 지적했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당 지도부나 국회의원 후보 선출시 비정규직에 쿼터를 부여하는 것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심상정 의원이 제안한 비정규직 대상의 당원 가입 특례안에 대해서도 "일리 있는 제안"이라고 호응했다.

박 교수는 민주노동당의 대선 레이스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면서 "대중적인 호소력이 가장 강한 사람이 선출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교수와의 인터뷰는 한미FTA 문제가 주제였지만, 한미FTA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다른 이슈들로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특히 북한 문제에 대한 박 교수의 분석은 독특하고 흥미로웠다.

박 교수는 북미관계와 관련, "북한 지배층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과 러시아, 남한까지 견제할 수 있는 카드는 미국"이라며 "북한은 미국이 허락만 한다면 가장 친미적인 국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미국이 허락한다면 북한의 자체 식민화가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면서 "미국 자본과 남한 자본, 일본 자본에게 자기 나라의 저임금 노동력을 어떻게 팔아먹을 것인가 하는 것이 북한 지배층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분석에서 보듯 북한의 현 지배층에 대해 박 교수는 대단히 비판적이다. 그러니 북한의 지배층을 추종하는 운동권 내의 일부 경향에 대해 박 교수가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지는 능히 짐작되는 바다. 그는 '탈북자' 문제와 관련, "남한 운동 진영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는 탈북자를 체제 부적응자나 심하면 배신자로 규정해서 왕따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면서 "주사파를 이해하기 힘든 게 이런 점이다. 본인들을 민족주의자라고 하는데, 같은 민족인 북한 사람들을 이렇게 대하면서 무슨 놈의 민족주의인가. 이건 조선민족이 아니라 북조선이라는 국가를 위주로 놓고 생각하는 아주 악질적인 국가주의"라고 맹비난했다.

박 교수와의 인터뷰는 7일 낮 12시부터 성균관대학교 야외 휴게실에서 약 90분에 걸쳐 진행됐다. 인터뷰를 마치고 혜화역으로 가는 길에 보니 대학로에선 한미FTA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한미FTA 협상이 타결됐다. 어떻게 평가하나.

= 자세한 평가는 세부 내용을 봐야 가능할 것 같다. 정부는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해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앞으로 대중국 정책 방향에 따라 결정될 문제다. 

- 한미FTA 특위 열린우리당측 간사인 송영길 의원은 한반도역외가공지역위원회 설치 건을 놓고 "동북아에서 경쟁력 있는 통일경제의 꿈"을 말했다.

= 송영길 의원이 말하는 경쟁력이라는 건 60~70년대 한국식 성장모델의 재판이다. 한국 노동자 대신 북한 노동자를 저임금 착취 모델로 몰아내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섬유제품 등을 미국에 팔아 60~70년대 한국자본주의의 기적을 재현해 보겠다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북한 정권이 한국 자본의 대리인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 북한 지배집단의 동향을 보면 여기까지는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이렇게 되면 북한 노동자들은 한국 자본과 북한 지배집단이라는 대리인에 의해 이중착취 상태에 놓일 것이다. 북한 민중이 절대적 기아사태를 면하면 다행이지만 이중착취 구조에서 생활수준도 크게 개선되지 못할 것이고, 결국 지금과 같은 무권리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송영길 의원의 기대대로 된다고 해도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송 의원의 기대대로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미국이 이란 침략 계획을 실행하지 않고 보류한다면 다시 한 번 동아시아로 눈을 돌려 잠재적 경쟁 상대인 중국을 약화시키는 집중적인 포위 프로젝트에 착수할 확률이 높고, 그 한 부분이 북한 때리기다. 북한은 미국의 대중국 전략의 종속변수다. 중국의 대국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에 따라 미국의 북한 때리기는 언제라도 재개될 수 있다.

- 미국에겐 대중국 정책이 상수라는 얘긴데.

= 그렇다.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유전처럼 약탈할만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미국에게 북한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공격할 수 있는 최적의 교두보다. 이는 열강정치에서 확인된 지 오래다. 러일전쟁을 앞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1901년부터 협상을 했는데, 당시 러시아측 요구가 뭐였느냐면 39선 이북 지역의 중립화였다. 한반도 북부지역을 일본 영향권과 대륙 영향권 사이의 완충지대로 파악한 것이다. 지금 중국이 북한을 보는 것도 당시 러시아의 시각과 같다. 당시 일본, 그리고 현 미국 세력의 영향권과 대륙 세력의 영향권의 충돌의 문제이지 북한 자체를 특별히 미워할 것도 없고 북한을 공격해서 얻을 것도 없다.

- 송영길 의원은 운동권 출신이고 햇볕정책의 신봉자다.

= 햇볕정책이라는 것이 북한의 지배집단을 잘 포섭하자는 얘기 아닌가. 싸우자는 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을지 몰라도 한국 지배계급의 자기 위주 발상이다.

- 구여권에 있는 운동권 출신 인사들 가운데는 한미FTA와 남북관계 개선을 같은 궤에 놓고 보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 지금 정부와 구여권이 팔아 먹을 수 있는 건 북한 문제밖에 없다. 복지정책은 내세울 게 없고, 부동산 값도 잡히지 않고 있다. 민생파괴와 농업파괴는 한미FTA로 이미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도시의 30~40대 화이트칼라, 농민, 노동자들에게 팔아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유일한 게 북한 문제다. 이들은 진보적 지지층에 먹힐 수 있는 북한문제와 전혀 먹히지 않을 것 같은 한미FTA를 묶어서 강매하려는 것이다. 북한과 잘 되기를 원하면 한미FTA를 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속아넘어갈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 그런 단기적 속셈 말고 통일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구상의 일단을 비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 만의 하나 미국이 앞으로 10~15년간 중국을 대상으로 침략과 포위 전략을 쓰지 않을 경우 북한은 동북아에서 일본 이상의 친미적인 국가가 될 수 있다. 북한은 이 지역에서 가장 취약한 국가다. 제일 약자다. 북한은 중국에게서 투자도 받고 원조도 받고 있는데, 이런 과정에서 종속적인 관계가 되어 가고 있고, 이는 북한 지배층으로선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 지배층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과 러시아, 남한까지 견제할 수 있는 카드는 미국이다. 북한은 미국이 허락만 한다면 가장 친미적인 국가가 될 수 있다. 미국이 허락한다면 북한의 자체 식민화가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미국 자본과 남한 자본, 장기적으로는 일본 자본에게 자기 나라의 저임금 노동력을 어떻게 팔아먹을 것인가 하는 것이 북한 지배층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될 것이다.



- 한반도 남쪽 진보진영은 어떤 각도에서 통일문제에 접근해야 하나.

= 한반도 진보진영에겐 나쁜 전통이 하나 있다. 외부에서 이상향을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다. 처음에는 소련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한국 공산주의 운동은 러시아 혁명의 파급 효과로 구성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러시아는 2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적 성격을 상실하기 시작했고, 30년대 이후로는 국가자본주의 국가가 됐다. 그런데 한국 공산주의 진영에서는 스탈린주의 및 러시아 혁명의 왜곡과 반동화를 비판한 사람이 없다.

중국만 해도 진독수와 같은 사람이 있었다. 한국에 트로츠기(*트로츠키) 전통이 생건 건 90년대 초반이다. 소련이 한국 공산주의자들에게 숭배 대상이었는데, 이게 나중에 엄청난 재앙을 낳았다. 그리고 수십년 후인 80년대 남한에서 그 비극이 재연됐다. 스탈린주의를 사회주의로 착각했고, 소련이나 동독을 희망으로 여겼다. 이것이 운동권 문화를 왜곡시켰고 운동권 붕괴의 원인이 됐다.

동구권이 붕괴된 후 이런 환상은 가라앉았다. 그러나 남아 있는 북한을 대상으로 해서는 지난 20년대부터 있어왔던 이상향 찾기의 욕망이 계속 투사되고 있다. 이른바 주사파들 사이에 이런 경향이 강하게 존재한다. 운동권은 이를 완벽하게 버리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고 대중화될 수 없다. 남한 대중은 북한의 실체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운동권에서는 계속 비현실적인 환상들을 붙들고 있다. 이것이 운동권 전체가 대중화될 수 없는 이유다.

- 소위 좌파 진영도 이렇다 할만한 대북 접근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겠나.

= 최적의 방향은 북한 민중이 혁명적인 노선으로 가는 것이다. 북한 지배계급에 대한 민중적 혁명이 한반도 정치를 급진화하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 상황에서 북한 민중의 계급적 각성을 기대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최선의 방향을 얘기하기 어렵다. 그래도 내가 보기엔 북한 민중의 계급적 각성에 기대를 거는 것이 민중 진영의 유일한 길이 아닌가 싶다. 이런 기대가 일정한 현실성이 있는 이유는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민중의 계급적 각성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전국 조직이 없어 그렇지 적어도 지역적으로는 노동자의 저항이 강해지고 있다. 민중 저항에 참여하는 사람만 해도 지난해 300만명이 넘었고, 저항의 방법도 급진화되고 있다.

중국 민중들이 중산계급과 지배계급의 개발연대에 대한 정치적 반대노선으로 가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 저항의 분위기가 맨 바닥에서 형성되고 있다.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 노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북한 민중이 그간 얼마나 속았으며 지배계급의 전략에 어떻게 놀아났는가 각성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런 각성에는 위험성도 따르는데, 남한 사회에 대한 미화로 빠져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한은 천국이라는 인식이다. 탈북자들이 대개 극우적인 성향을 띠는 것도 이런 이유다. 북한 지배계급에 대한 반항심이 남한 지배체제에 대한 동경으로 잘못 흘러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남한 민중세력이, 남한 지배체제와 북한 지배체제를 동시에 반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혹은 그런 운동의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북한 민중의 계급적 각성에 도움되지 않을까 싶은데, 실제로는 남한 운동 진영이 탈북자를 철저히 외면한다. 탈북자를 매개로 북한 민중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줄 수 있을 텐데도 그렇다.

남한 운동 진영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는 탈북자를 체제 부적응자나 심하면 배신자로 규정해서 왕따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 이건 대단한 손실이다. 인간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건 물론이고. 주사파들 이해하기 힘든 게 이런 점이다. 본인들을 민족주의자라고 하는데, 같은 민족인 북한 사람들을 이렇게 대하면서 무슨 놈의 민족주의인가. 이건 조선민족이 아니라 북조선이라는 국가를 위주로 놓고 생각하는 아주 악질적인 국가주의다.

- 어느 강연에선가 한미FTA를 '제2의 을사늑약', 이런 식으로 비유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청와대가 반대진영을 쇄국론자로 몰아붙이는 논거 중 하나가 '어떻게 한미FTA를 을사늑약과 비교하느냐' 하는 것이다.

= 나는 물론 한미FTA가 을사늑약과 같다고 보지 않는다. 하나의 비유였을 뿐이다. 그 비유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고종황제는 을사늑약에 반대했다. 주요 각료는 찬성했지만 황제가 반대했다. 지배층 중에서도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는 데 대한 반대가 있었던 셈이다. 자기 사유물처럼 국가가 남의 손으로 넘어가니까 고종으로선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미FTA는 좀 다르다. 한국의 지배계급 전체가 한미FTA를 찬성할 뿐더러 끌고 가고 있다. 대기업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기업에 종속된 중소기업도 환영하고, 고소득 전문직종에 있는 사람들도 환영한다. 이들 엘리트들이 한미FTA를 환영하는 이유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를 공고화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과 한국의 시장을 통합시킬 수 있다면 더 이상 신자유주의 노선에 반대하는 정책을 수립할만한 여지가 남지 않을 것이라는 발상이 아닌가 싶다. 어떤 세부적인 혜택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기보다는 이 나라에서 부자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어떤 정책도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환영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한미FTA 협정을 체결하면 부유세 같은 정책을 시행하는 게 어려워질 것이다. 미국에 없는 정책을 한국에서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의료보험도 자기 부담 위주로 가는 완성되지 못한 제도로 남거나 미국처럼 민간보험 위주로 퇴보할 수 있다.

미국이 하나의 모델이 되면 교육의 공공성도 흔들리기 쉽다. 아직까지 3불정책이 유지되고 있고, 평준화 정책을 탈피하고 싶어도 국민 불만을 생각해서 원칙을 지키고 있는데, 한미FTA가 체결되면 모든 학교가 귀족학교와 빈민학교로 나뉘는 시스템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국 지배층의 새로운 유토피아다.

- 한미FTA를 찬성하는 이유 중 하나가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의 역진불능성에 대한 기대에 있다는 지적은 흥미롭다.

= 한국이 참고할 수 있는 모델은 굳이 사회주의가 아니라도 많다. 일본 모델도 있고 서유럽 모델도 있다. 서유럽 모델 중에선 독일,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모델 등이 있는데, 국가를 통한 재분배가 위주가 된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선 북구식 복지국가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 여론조사 해보면 상당히 높게 나온다. 그런데 한미FTA로 인해 이런 모델에 대한 모색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이 사회와 국가의 장기 보수화, 일종의 정치사회적 겨울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정부는 한미FTA 찬반 논쟁을 '개방이냐, 쇄국이냐'는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 '개방이냐, 쇄국이냐'는 구도는 허구적이다. 조선 말기의 경우 강화조약 이전 조선의 무역의존도는 1%가 안됐다. 지금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한미FTA를 하지 않더라도 80%에 달한다. 한미FTA는 쇄국의 반대어로서의 개방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시장과 미국 시장을 높은 수준으로 통합하는 문제이고,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국가사회 발전모델을 미국식 모델에 종속시키는 문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를 들먹이고 진보적 슬로건을 하나의 어법으로 이용하면서 일부 민중을 포섭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국가를 미국형 사회모델, 한 편에는 소수의 부유층과 고소득층과 중산층 상층이 있고, 다른 한 편에는 70~80%나 되는 빈곤층과 준빈곤층, 몰락 중인 하급중산층이 있는, 민중에게 대단히 고통스러운 사회모델로 몰아가고 있다.

- 한미FTA로 피해를 입게 될 70~80%의 민중층 가운데 상당수가 이 협정을 찬성하고 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 문화적 헤게모니의 문제다. 한국은 국가와 보수적 재벌과 미디어가 영합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나라다. 보수신문의 한미FTA 보도를 보면 가히 대국민 선전선동, 대국민 홍보 수준이다. 게다가 한국에는 개발주의 신화가 강하다. 70년대 개발주의가 특정 시기에 일정 부분 성공한 면이 있고, 박정희 시대의 이런 성공 신화를 미디어들이 재생산하고 있다. 한미FTA에 대한 찬성 여론은 '박정희 신화처럼 해보자'는 분위기에 도움을 얻은 것 같다. 그런데 박정희 시대의 개발은 외자와 차관, 무역 위주의 개발이었고 지금과 같은 시장통합적 개발은 아니었다. 박정희 개발주의가 일정 부분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시장통합을 하지 않고 미국 재벌로부터 한국시장을 보호한 데 있다. 이게 성공비결이라면 비결인데, 한미FTA는 이 부분을 무시하고 시장통합으로 가는 것이다.

- 불리한 여론지형을 극복하고 반대론이 힘을 얻을 수 있을까.

= 아직 협상은 체결된 것이 아니다. 미국쪽 사정 때문에라도 협정 체결은 지지부진해질 수 있다. 한국의 경우 협정으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입을 계층과 지역이 존재한다. 반대 여론을 커지게 하자면 '당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얘기해야 한다. 농민들이야 너무 분명하니까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될 정도지만. 도시근로자들도 일부의 고소득 전문가층을 빼고는 장기적으로 혜택보다 피해가 많을 것으로 내다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식 모델이 강하게 도입되면 우선 직장의 안정성부터 흔들릴 것이다. 한미FTA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소비자잉여를 자주 얘기하는데, 소비자가 누군가. 바로 노동자다. 소비하려면 우선 벌어들여야 하는데, 직장의 안정성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그 효시로 보이는 것이 진행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벌이고 있는 공무원 '퇴출 쇼'가 그런 것인데, 일종의 시범케이스로 봐야 할 것이다. 장차 공공부문 시장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인데, 이 모델이 공고화된다면 한국에서 직장생활은 공포의 나날이 될 것이다. 당장 다음 달을 예측할 수 없는 공포의 연속일 것이다. 서울시의 공무원 '퇴출 쇼'를 보면서 궁금한 건 왜 사람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나 하는 것이다. 인권침해 요소가 대단히 큰 일 아닌가. 근무태만 같은 분명치도 않은 근거로 한 개인의 직장 안정성을 파괴하는 것이 법적으로 유효한가도 따져봐야 한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수 많은 다른 직장에서도 태만과 무능을 이유로 노동자들이 퇴출될 것이다.

무능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하는 사람이 언제나 보스일 것이고 보스가 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유럽의 경우 노동자 해고사항은 노조와 경영자측의 협의사항이다. 노조의 동의 없이 노동자를 해고시키는 것은 유럽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반면 한국은 공무원노조를 국가가 인정도 않고 있다. 해고할 때 노조 동의는 커녕 아무 고려 없이 경영자의 판단으로 노동자를 무능력자로 규정해 왕따시켜 밀어내는 것은, 일본 영화 '배틀로얄'에 그려진 대로 약육강식이란 사회진화론적 이론을 현실화시키는 잔인한 쇼다. 



- 피해당사들이 협정 체결 후 어떤 피해를 입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실감을 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런 각도에서 지금까지의 한미FTA 반대 투쟁을 평가한다면.

= 민족경제론적 발상으로 협정을 반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일종의 애국주의적 기조로 반대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국제적 분업구조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오늘날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분업구조가 복지망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에 적용될 때 민중의 생활을 파탄시킬 것이라는 게 문제다. 우리가 미국 농민이나 중국 농민을 혐오할 이유는 없다. 예컨데 중국 농민이 생산하는 농산물이 한국에서 소비되는 것이 그 자체로 해악은 아니다. 다만 현재의 구조에서 한미FTA가 체결될 경우 한국 농민층의 붕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고, 기댈수 있는 복지망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사태를 맞을 경우 농민들의 삶은 파탄으로 내몰릴 것이라는 점이다.

- 찬성측과 반대측이 공히 자신들의 논거로 드는 것이 있다. '국익'이다.

= 국익이라는 건 실체 없는 얘기다. 나라를 무엇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다. 만약 협정이 체결되면 일부 대기업은 득을 볼 것 같고, 거기에 하청화되어 있는 일부 중소기업들도 득을 볼 것이고, 귀족학교와 귀족병원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일부 고소득층도 득을 볼 것이다. 우리가 나라의 실체를 이 기업들과 이 고소득층으로 본다면 한미FTA는 국익에 부합하는 것일테다. 그러나 이 나라에는 부자들만 사는 게 아니지 않나.

- 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국익을 말한다.

= 한국에는 아직 국가의 신화가 강하다. 민중의 이득을 말하면 되고, 그게 훨씬 더 실체에 가까울텐데, 우리는 민중이라는 얘기를 고상하게 하려면 국가 얘기를 꺼내야 한다. 국가 없이는 고상하고 고매한 당위론적 담론이 서질 않는다. 우리의 사고방식 자체가 아직 국가주의에 지배당하고 있다. 

- 국제적 분업구조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정부는 반대론자들에게 반대만 하지 말고 대안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 내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대안은 한 국가 내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선의 궁극적인 대안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 당장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안은 국제적인 신자유주의적 분업구조에 깊이 들어가기 전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튼튼한 재분배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이 재분배 장치라는 건 농민들의 소득보전 같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부유세, 교육무상화, 의료무상화의 3대 조건이 충족된다면 한국은 그나마 민중들이 살만한 사회가 될텐데, 지금 전혀 그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

- 방금 말한 3대 조건이 충족되면 FTA도 가능하다는 의미인가.

= 이런 것들이 개선된 이후에도 굳이 FTA를 모색해야 한다면, 지역적으로 가까운 나라와 서로 민감한 부분을 100% 감안한 후에 체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의 경우 잘 하면 노동시장까지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언어 배우기도 쉽고, 지리적으로 가깝고, 시스템이나 문화가 비슷하고. 한국 노동자들에게 선진국인 일본 노동시장 유입을 보장하는 그런 FTA라면 민중들에게 덜 해롭지 않을까 싶다.

- 진보진영 일각에선 대안적 FTA를 모색하는 움직임도 있다.

= 자본보다 민중의 이해관계를 생각하는 FTA일 것이다. 예를 들면 일본의 노동시장 진입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우라나라에도 불법 체류자가 많지만, 일본에서 불법으로 노동하는 한국 노동자들도 많다. 고생도 많이 하고 잡혀서 송환도 당한다. 한국 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일본에 가서 노동하도록 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어떤 협정을 맺더라도 우선적인 고려는 이런 것이 돼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 협정을 밀어붙이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몇 가지 물으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자칭 '유연한 진보'라고 한다.

= 그 사람 얘기 별로 하고 싶지 않다(웃음). 그런 자들이 장기적으로 한국 민중에 가장 위험하다. 카멜레온처럼 기만책을 대단히 잘 구사한다. 일부 민중층을 포섭하는 언어적 수법에 능하다. 또 자수성가한 민중 출신이다. 그런 사람이 민중운동을 파괴하는 데는 가장 쓸모가 있다. 한국 사람들이 노무현 열풍 같은 것을 다시 재현하지 않으려면 지배계급이 어떻게 민중을 기만할 수 있는지 철저히 학습해야 한다. 2002년을 생각하면 허무하다. 당시 주관적으로는 스스로를 진보라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이라는 속 빈 이미지에 얼마나 놀아났는가. 이런 것이 재현되면 안 된다.

- 역시 유쾌한 질문도 아니고 유쾌한 답변도 나올 것 같지 않은데, 현 정부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을 했던 조기숙이라는 정치학자가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진보는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고, 좌파는 결과의 평등을 추구한다. 그런 분류법에 따를 때 자신과 노 대통령은 진보다.

= 조기숙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이화여대에서 시간강사하고 있는 수 많은 사람 중에 교수가 될 기회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조기숙 교수와 같은 정규직 교수가 5만명 있고 시간강사가 6만명 있다. 지금의 구조에서 6만명 중 정규 교수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소수다. 한국 대학의 재정상황이나 운영 방향으로 볼 때 많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수 많은 시간강사들, 수 년 동안 시간강사 일을 해온 사람들, 상당 수는 정규 교수에 비해 능력이 좋고 업적이 좋은 사람들, 조기숙 선생이 만들고 싶은 사회에서는 이들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질 것인가, 그것부터 물어보고 싶다. 한국 교수들 참 이상하다. 시간강사 한 달 벌이는 100만원 될까 말까 하고 조기숙 선생같은 정규직의 급여는 잘은 몰라도 300~400만원은 될 것 같은데(*확실히 잘 모르는 것 같다), 전혀 그런 것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이 없다. 희귀한 사람들이다. 시간강사들이 주당 시수도 훨씬 높고, 시간강사들이 많은 수업을 해가면서 적은 돈을 받으니까 정규 교수들이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건데, 말하자면 자신들이 하급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는 건데, 이런 데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안 한다. 희귀한 사람들이다(*박노자의 '진지함'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 노무현 정부를 파시즘에 가까운 정부로 규정하는 사람도 있다.

= (노 대통령은) 그냥 '쇼맨'이다. 쇼맨인데, 이 쇼맨의 특기가 뭐냐하면 민중진영의 일부를 포섭해서 무력화하는 것이다. 한미FTA 계기가 돼서 더 이상 이런 쇼맨들이 특기를 발휘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파시즘은.... 원래 한국 우파의 기본 심성이 파시즘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그의 동반자, 정적들도 다르지 않다.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더하면 더하겠지. 파시즘은 한국 우파의 기본 정서다. 국내에서 실행되고 있는 상당수의 법안들은 유럽의 기준으로 보면 극우적이다. 이주노동자에 관한 법안 같은 것이 그렇다. 유럽 극우들이 꿈꾸고 있는 것이다. 

- 이번 대선을 어떻게 전망하나.

= 지금 같아선 극우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게 뻔해 보인다. (민주노동당이) 이를 막을 수는 없어도 제대로 저항해서 수 백만 표를 얻을 수 있다면 앞으로 극우 세력과 제대로 투쟁하면서 한국의 보수화를 제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민주노동당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담하다.

- 민주노동당의 가장 큰 문제가 뭔가.

= 당은 정파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데, 당 사업의 중심에 정파갈등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것들이 서있는 것 같이 보인다. 결국 이 갈등에 에너지가 소모되면서 당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 당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20~30대층, 학생이라는 미래의 노동자를 흡수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젊은 노동자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당의 문화 자체가 20-30대 위주가 아니지 않나. 80년대 운동권의 보수적이고 서열위계적인 문화가 강하다. 양성평등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우도 많지 않나 싶다. 예컨데, 20대 여학생이 민주노동당을 친근하게 대하기 굉장히 힘든 구조다.

- 학생들은 민주노동당을 어떻게 보나.

= 40대 운동권 아저씨들이 거드름 피우는 곳으로 보는 것 같다(웃음). 80년대 운동권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얻어 작은 수령님 노릇하는 아저씨들의 놀이터, 이렇게 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 이래서는 성공 못한다. 당은 더 민주적이어야 하고, 미시적 문화도 젊은층과 여성 위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노르웨이 사회당이나 좌파를 보면 20대 국회의원도 있다. 민주노동당은 지도층이 40대 후반 아닌가.

- 다른 문제는.

= 당은 비정규직을 포획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당의 중심에 비정규직이 없다.

-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 얼마 전 심상정 의원은 비정규직 지분을 높이기 위한 당원 가입 특례를 제안한 적이 있는데.

= 일리 있는 제안이라고 본다. 또 당 지도부를 뽑을 때 비정규직에 일정한 쿼터를 할당하는 것도 방법이다. 국회의원 후보를 뽑을 때도 여성 쿼터처럼 비정규직 쿼터를 주는 방안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비정규직이 당 사업의 중심으로 들어오기 힘들 것 같다. 비정규직의 투쟁이 있는 곳마다 민주노동당이 달려가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기본일테고. 

- 당에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 좀 이상하게 생각되는 게 있다. 그 이론을 받아들이진 않더라도 '다함께'라는 그룹의 활동 자체는 생산적인 것 같은데, 당내에서 그 분들에 대한 반감이 강한 이유가 뭔지 이해하기 힘들다. 개인적으로 '다함께'의 활동 가운데 마음에 드는 부분은 탈북자에 대한 태도다. 민중진영이 가장 신경 써야 할 대상인데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그들은 하고 있다. 북한 정권에 대한 태도나 미국의 이라크 침략 반대 등은 다함께 이데올로기에 찬성하지 않아도 충분히 동의가 될만한 활동인데, 왜 당에서는 '다함께'를 왕따시키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들의 이론에 찬성을 하지 않는 것은 않는 것이고. 나만 해도 트로트키주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아무튼 나름의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동지들인데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얼마 전 <레디앙>에서 정성진 교수의 책을 놓고 오간 논쟁도 그렇다. 물론 정 교수의 논리에 몇 가지 점에서 오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적대적으로 몰아세울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특히 기사의 댓글들에서 확인되는 '다함께'에 대한 적대감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다함께'는 섹트적이지만 내부 문화가 비교적 민주주의적이고 학생을 확보하는 능력도 좋다. 당이 '다함께'의 활동방식에서 배울 것도 많다고 본다.

- 당내 대선 경쟁은 관심 갖고 보나.

= 유심히 보고 있다. 대중적인 호소력이 제일 강한 사람이 선출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은 대중성이 생명 아닌가. 나중에 그 사람의 정치노선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우선은 대중적인 호소력이 가장 강한 사람이 선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07. 0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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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0 1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4-10 20:16   좋아요 0 | URL
**님/ 파시즘과 스탈린이즘도 거부하기에 그에겐 '민중적 혁명'이 최선의 방책인 것이죠(그 혁명은 자발적인 봉기의 형식을 갖는 것인지 궁금하지만). 이 주장의 역설은 바로 그러한 혁명의 호기란 유럽과 같은 유연한 체제가 아니라 남북한 같은 파시즘/스탈린이즘 체제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하니, 우리에게 더 많은 억압을 달라!..

2007-04-10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4-10 21:57   좋아요 0 | URL
**님/ 그냥 단순한 논리입니다. 혁명은 관용적인 사회가 아닌 보다 억압적인 사회, 계급적인 각성과 사생결단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더 쉽게 일어나는 것이라는...

2007-04-10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4-10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엊저녁에 '4월의 사회적 독서' 목록을 띄워놓는다고 목록을 추슬러놓았었는데, 저녁을 먹은 포만감에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보통 매달 1일에 리스트를 올리곤 헸지만 아무래도 4월은 좀 특별한 달이어서 '만우절'에 뭔가 진지한(?) 일을 꾸미긴 어려운 게 아닌가 생각되어서였다. 하지만 일어난 시각이 이미 자정이 넘은지라 하는 수 없게 되었다(물론 평소 이 서재를 드나드는 분들은 대개 나의 농담도 진지하게 받아주시는 편이지만).

20권 가량의 책을 아래에 꼽아놓았지만 그걸 다 읽는다고 하면 '거짓말'스러운 것이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최소 목표치는 네 권이고 나머지는 '참고문헌'이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책들을 주로 꼽았는데, 내가 고려한 독자층은 대학 신입생들이다. 마침 1학년 전공과목을 맡고 있기도 해서 '프레쉬맨(과 우먼)'들을 강의실에서 자주 보게 되는데, '습관적으로' 눈높이를 못맞추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20년의 세월이 가로놓여 있다!). 4월의 목록은 그들에게, 혹은 프레쉬맨의 추억을 갖고 있는 모두에게 바쳐진다. 기본 목록으로 내가 꼽은 책은 강경애의 <인간문제>,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그리고 헤겔의 <정신현상학>(서문)이다.

 

 

 

 

한국문학 작품으로 강경애(1906-1944)의 <인간문제>(문학과지성사, 2006)를 골랐다(전집을 포함해서 강경애의 작품은 여러 출판사의 판본들이 출간돼 있다). 1934년동아일보에 연재됐던 장편소설로서 우리 근대문학사에 드문 여성작가의 대표작이자 최원식 교수에 따르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성과와 한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는 지난 2005년 3월 문화관광부가 정한 '이달의 문화인물'이었고, 작년은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온라인 문학관은 http://koreanliterature.kaist.ac.kr/kangkyungae/). 하지만 내가 대학 1학년일 때에는 읽어볼 수 없었던 작품인데, '믿을 만한 텍스로'로 처음 출간된 게 <인간문제>(창비, 1992)가 처음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해서 '말로만 듣던' 작품을 나로선 이번에 읽어볼 작정이다(이미 한달도 더 전에 작품과 연구서, 그리고 논문 몇 편 등을 구해놓았기 때문에 내가 따로 준비할 건 없다).

강경애의 <인간문제>와 같이 읽어볼 만한 작품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효시로 평가받는 막심 고리키(1868-1936)의 <어머니>(열린책들, 2006)이다. 지난 80년대 중반쯤에 국역본이 나오기 시작해서 지금은 러시아어 완역본만으로도 두어 종이 나와 있다. 고리키는 강경애가 태어날 무렵에 이 작품을 씌어졌고, <인간문제>가 발표되고 이태쯤 후에 세상을 떠났다. 아래는 1936년판 <어머니>의 표지(러시아 인터넷서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책이다).

Мать

주지하다시피 <어머니>는 러시아 노동계급의 형성과 노동자 의식의 각성과정을 형상화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비록 오래전 일이지만) 한때 대학 신입생들의 필독서 목록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었다. 그러한 독서의 사회사까지도 이 작품의 구성소가 아닌가 싶다(영역본은 http://etext.library.adelaide.edu.au/g/gorky/maksim/g66m/).   

 

 

 

 

<인간문제>와 <어머니>가 모두 한국(식민지 조선)과 러시아에서의 자본주의 발달과정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 문제작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고른 책은 이미 대학가에서는 자본주의 입문서로서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리오 휴버먼(1903-1968)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책벌레, 2000)이다(하지만 이 또한 내가 대학 1학년때는 읽을 수 없었던 책이다. 그때는 <철학에세이>를 '교재'로 읽었다). 그러니까 굳이 군말이 필요하지 않은 책이지만 '액면 확인'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의 저자 리오 휴버먼은 폴 스위지와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진보 잡지인 '먼슬리 리뷰 Monthly Review'를 공동으로 창간한 바 있고, 좌파 지식인치고는 보기 드물게 급진적 사상을 대중적으로 설명하는 데 독보적인 재능을 보였던 인물이다." 아직도 대학가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비결이라 할 만한데, 놀라운 것은 원저가 1936년에 나온 책이라는 것(내가 바로 확인해보지 못하는 것은 박스보관도서이기 때문이다). 강경애의 <인간문제>와 바로 동시대 저작이라는 게 흥미롭다.

개인적인 관심거리 하나는 휴버먼이 스탈린시대 소비에트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하는 것인데(국역본에는 이 대목이 빠져 있다) 국역된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동녘, 1986) 외에도 먼슬리 리뷰에서 출간한 <소비에트 권력 50년(50 years of Soviet power)>(1967)을 참조해볼 참이다. 러시아혁명 50주년 기념으로 출간되었던 책이다(다시 상기하자면 올해는 러시아혁명 90주년이 되는 해이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를 이미 읽으신 분이라면 휴버먼의 또다른 책 <가자, 아메리카로! : 그리고 부자의 문전에 거지 나사로가 함께 살고 있었다>(비봉출판사, 2001)를 이 참에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다. <미국의 역사와 민중>(비봉출판사, 1982)라고 출간됐던 책인데, 말 그대로 '부자의 문전에 거지가 함께하는' 미국 자본주의사와 민중사의 풍경을 보여주는 책이겠다. 원제는 'We, the people : the drama of America'. 사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도 원제는 'Man's worldly goods : the story of the wealth of nations'이다. 둘다 국역본에 붙여진 제목이 탁월하달 수밖에.  

덧붙인 책들은 최근에 나온 자본주의 관련서들로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책들이다. 더글러스 다우드 외 6인이 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이해>(필맥, 2007)의 원제는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 Capitalism)>이고, 마르크스부터 아마르티아 센까지 7명의 경제학자(혹은 경제학파)를 다루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앞에서 리오 휴버먼과 먼슬리 리뷰를 창간한 경제학자 폴 스위지이다. 대표작은 <자본주의 발전이론>(1942)으로 이 책과 더불어 비로소 미국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전통이 시작되었다고. 국내에는 이 주저 대신에 공저인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일월서각, 1986), <자본주의 이행논쟁>(광민사, 1980), <쿠바 혁명사>(지양사, 1984) 등이 소개돼 있는 정도이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동유럽의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다룬 <자본가 없는 자본주의>(시유시, 2007)에 대해서는 이미 소개한 바 있는데(요긴한 서평은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703301533101&code=900308), 저자들은 전통적인 자본주의 이행론과는 다른 '신이행이론'을 제안한다고. 이 "‘신이행이론’은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아담 스미스나 칼 마르크스의 고전적 견해-자본주의를 위해서는 자본가 계급이 먼저 존재해야 한다(capitalists before capitalism)는 견해-에 대한 강력한 반론인 동시에 ‘영미식 자본주의 모델’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새로운 유형의 자본주의 변종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다."라는 평가가 흥미를 끈다. 

그리고, 내주에 출간된다는 <자본주의와 자유>(청어람미디어, 2007)는 "20세기 후반의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의 자본주의 사상을 집약해놓은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경제적 자유를 이룩하기 위한 장치이자, 정치적 자유를 위한 필요조건으로서 경쟁적 자본주의의 역할에 주목한다." 시카고학파의 대부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저자의 1962년작인데, 1980년대 레이건과 대처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면서 또한 중국의 경제체제 전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하니까 관심을 가져보게 된다. 내주말이면 출간과 함께 보다 자세한 리뷰들이 나올 듯하다.

 

 

 

 

그리고 세번째 책은 더 소개할 것도 없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2006). 아직 안 읽어보신 분이라면 작년말에 나온 출간 30주년 기념판을 읽는 게 좋겠다. 최근에 나온 책 <리처드 도킨스>(을유문화사, 2007) 또한 원저는 작년에 <이기적 유전자> 출간 30주년을 기념하여 '우리의 사고를 바꾼 과학자'가 끼친 다양한 영향과 불러일으킨 다양한 반을을 모아놓은 책이다. 휴버먼이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가장 탁월한 대중적 해설자라면 도킨스는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가장 뛰어난 대중적 해설자이다.

해서, <자본론> 대신에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를 읽는 식으로 <종의 기원> 대신에 <이기적 유전자>를 읽을 수 있다. 시간이 없으신 분이라면 다이제스트판이라고 할 만한 <에덴의 강>(사이언스북스, 2005)을 읽어보셔도 좋겠다. 개인적으론 <리처드 도킨스>에 실린 글 중 마이클 루즈의 '리처드 도킨스와 진보 문제' 와 '다윈주의 좌파'란 원제를 가진 피터 싱어의 <다윈의 대답1>(이음, 2007)을 읽는 게 이번 달의 목표이다.

 

 

 

 

우리들 육신의 진화사, 즉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가에 대해 공부했다면 우리 정신의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해두는 게 공정하겠다. 헤겔의 <정신현상학>(한길사, 2005)는 바로 그 '정신의 역사', 혹은 '정신의 오디세이아'를 다룬다. 1807년 5월 예나에서 초판이 나온지라 올해는 출간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독영 대역본은 http://www.gwfhegel.org/PhenText/compare.html 참조). 초판을 낸 조세프 안톤 굅하르트 출판사는 이런 광고문을 냈었다고.

"이 책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 정신을 그것이 순수지나 절대정신에 이르는 단계로 파악한다.(...) 현상된 정신의 불완전성은 이러한 필연성에서 해서되고 보다 놓은 단계의 진리로 이행한다. 정신의 현상은 최종적인 진리를 우선 종교에서 발견하며 그 다음에는 전체의 결과인 학문에서 발견한다."

이러한 여정 전체를 따라가보는 일은 물론 1년 공부로도 턱없이 부족하다. 다만 이달에 할일을 그 문제적인 '서론' 정도를 읽어보는 것이다. 다행히 <정신현상학>의 새 번역본이 재작년에 출간됐고, 작년에는 테리 핀카드의 두툼한 평전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이제이북스, 2006)도 번역돼 나왔기에 여건은 좋은 편이다. 게다가 최신한 교수의 <정신현상학>(살림, 2007)과 강순전 교수의 <진리를 향한 의식의 모험: 헤겔의 정신현상학>(삼성출판사, 2006) 같은 도우미들도 나와 있으며, 인터넷에는 강유원의 헤겔 강의록도 번역과 함께 떠 있다. 거기에 장 이폴리트의 해설서 <헤겔의 정신현상학>(문예출판사, 1989)도 보탤 수 있겠다. 두루 참조하면 인류가 산출해낸 가장 어려운 책 중의 하나인 <정신현상학>의 '문턱'을 이달에는 넘어볼 수 있을까?..

07. 04. 01.

P.S. <인간문제>와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에 대한 '보유'를 달아둔다(일종의 '심화학습'이다). 사실, 노동계급(의식)의 형성이나 자본주의에 관한 책이라면 적잖은 책들이 나와 있다.

 

 

 

 

고전적인 저작은 물론 에드워드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창비, 2000)이다. 장서용으로라도 꽂아둘 만한 책이다. 이 책의 미국 버전이 마이크 데이비스의 <미국의 꿈에 갇히 사람들>(창비, 1994)이며, 한국 버전이 구해근의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창비, 2002)이다. <유럽의 산업화와 노동계급>(까치글방, 1997)은 이 주제에 대한 국내 학자들의 논문 모음집이다.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있어서 '자본주의'는 키워드 중의 키워드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관련서들은 차고 넘친다. 단지 몇 권을 임의로 꼽아본다. 피에르 잘레의 <자본주의란 무엇인가>(책갈피, 2006)은 얇은 책이다. 필자가 리오 휴버먼 등과 같이 '먼슬리 리뷰'의 필자로 활동한 경력이 있기에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와 같이 읽어봄 직하다. 그리고 백승욱 교수의 <자본주의 역사 강의>(그린비, 2006)와 작년에 작고한 경제평론가 정운영의 <자본주의 경제 산책>(웅진지식하우스, 2006)은 국내 필자의 저작이란 점에서 눈에 띈다. 물론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인식틀 자체까지 '우리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에 '현실적인' 대안이 있는가? 영국의 트로츠키주의자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반자본주의 선언>(책갈피, 2003)이 그러한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자본주의(세계화) 대 반자본주의(반세계화)'란 구도로. 소개에 따르면 "오늘날 반세계화 운동의 내부에는 몇가지 쟁점과 상이한 입장이 존재한다. 이 책은 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체계적인 답변을 제공하고 있다. 1장은 반자본주의 운동의 배경이 되는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과정에서 금융불안정과 과잉 생산 위기, 환경 위기가 심화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그리고 "2장은 반자본주의 운동 내부의 다양한 흐름을 여섯 가지로 분류한 후, 사회주의적 반자본주의의 입장에서 앞의 다섯 가지 반자본주의 운동 전략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분석한다. 다소 도식적이긴 하지만 반자본주의를 이처럼 유형화하고, 비교.분석한 것은 캘리니코스가 처음이다." 최근에 출간된 <제국이라는 유령>(이매진, 2007)은 바로 그러한 입장에서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제국>(이학사, 2001)을 비판하는 캘리니코스의 글을 포함하고 있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199687.html). 이건 덩치가 큰 주제인지라 따로 공부할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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