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에 '4월의 사회적 독서' 목록을 띄워놓는다고 목록을 추슬러놓았었는데, 저녁을 먹은 포만감에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보통 매달 1일에 리스트를 올리곤 헸지만 아무래도 4월은 좀 특별한 달이어서 '만우절'에 뭔가 진지한(?) 일을 꾸미긴 어려운 게 아닌가 생각되어서였다. 하지만 일어난 시각이 이미 자정이 넘은지라 하는 수 없게 되었다(물론 평소 이 서재를 드나드는 분들은 대개 나의 농담도 진지하게 받아주시는 편이지만).

20권 가량의 책을 아래에 꼽아놓았지만 그걸 다 읽는다고 하면 '거짓말'스러운 것이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최소 목표치는 네 권이고 나머지는 '참고문헌'이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책들을 주로 꼽았는데, 내가 고려한 독자층은 대학 신입생들이다. 마침 1학년 전공과목을 맡고 있기도 해서 '프레쉬맨(과 우먼)'들을 강의실에서 자주 보게 되는데, '습관적으로' 눈높이를 못맞추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20년의 세월이 가로놓여 있다!). 4월의 목록은 그들에게, 혹은 프레쉬맨의 추억을 갖고 있는 모두에게 바쳐진다. 기본 목록으로 내가 꼽은 책은 강경애의 <인간문제>,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그리고 헤겔의 <정신현상학>(서문)이다.

 

 

 

 

한국문학 작품으로 강경애(1906-1944)의 <인간문제>(문학과지성사, 2006)를 골랐다(전집을 포함해서 강경애의 작품은 여러 출판사의 판본들이 출간돼 있다). 1934년동아일보에 연재됐던 장편소설로서 우리 근대문학사에 드문 여성작가의 대표작이자 최원식 교수에 따르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성과와 한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는 지난 2005년 3월 문화관광부가 정한 '이달의 문화인물'이었고, 작년은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온라인 문학관은 http://koreanliterature.kaist.ac.kr/kangkyungae/). 하지만 내가 대학 1학년일 때에는 읽어볼 수 없었던 작품인데, '믿을 만한 텍스로'로 처음 출간된 게 <인간문제>(창비, 1992)가 처음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해서 '말로만 듣던' 작품을 나로선 이번에 읽어볼 작정이다(이미 한달도 더 전에 작품과 연구서, 그리고 논문 몇 편 등을 구해놓았기 때문에 내가 따로 준비할 건 없다).

강경애의 <인간문제>와 같이 읽어볼 만한 작품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효시로 평가받는 막심 고리키(1868-1936)의 <어머니>(열린책들, 2006)이다. 지난 80년대 중반쯤에 국역본이 나오기 시작해서 지금은 러시아어 완역본만으로도 두어 종이 나와 있다. 고리키는 강경애가 태어날 무렵에 이 작품을 씌어졌고, <인간문제>가 발표되고 이태쯤 후에 세상을 떠났다. 아래는 1936년판 <어머니>의 표지(러시아 인터넷서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책이다).

Мать

주지하다시피 <어머니>는 러시아 노동계급의 형성과 노동자 의식의 각성과정을 형상화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비록 오래전 일이지만) 한때 대학 신입생들의 필독서 목록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었다. 그러한 독서의 사회사까지도 이 작품의 구성소가 아닌가 싶다(영역본은 http://etext.library.adelaide.edu.au/g/gorky/maksim/g66m/).   

 

 

 

 

<인간문제>와 <어머니>가 모두 한국(식민지 조선)과 러시아에서의 자본주의 발달과정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 문제작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고른 책은 이미 대학가에서는 자본주의 입문서로서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리오 휴버먼(1903-1968)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책벌레, 2000)이다(하지만 이 또한 내가 대학 1학년때는 읽을 수 없었던 책이다. 그때는 <철학에세이>를 '교재'로 읽었다). 그러니까 굳이 군말이 필요하지 않은 책이지만 '액면 확인'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의 저자 리오 휴버먼은 폴 스위지와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진보 잡지인 '먼슬리 리뷰 Monthly Review'를 공동으로 창간한 바 있고, 좌파 지식인치고는 보기 드물게 급진적 사상을 대중적으로 설명하는 데 독보적인 재능을 보였던 인물이다." 아직도 대학가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비결이라 할 만한데, 놀라운 것은 원저가 1936년에 나온 책이라는 것(내가 바로 확인해보지 못하는 것은 박스보관도서이기 때문이다). 강경애의 <인간문제>와 바로 동시대 저작이라는 게 흥미롭다.

개인적인 관심거리 하나는 휴버먼이 스탈린시대 소비에트 사회주의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하는 것인데(국역본에는 이 대목이 빠져 있다) 국역된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동녘, 1986) 외에도 먼슬리 리뷰에서 출간한 <소비에트 권력 50년(50 years of Soviet power)>(1967)을 참조해볼 참이다. 러시아혁명 50주년 기념으로 출간되었던 책이다(다시 상기하자면 올해는 러시아혁명 90주년이 되는 해이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를 이미 읽으신 분이라면 휴버먼의 또다른 책 <가자, 아메리카로! : 그리고 부자의 문전에 거지 나사로가 함께 살고 있었다>(비봉출판사, 2001)를 이 참에 읽어보시는 것도 좋겠다. <미국의 역사와 민중>(비봉출판사, 1982)라고 출간됐던 책인데, 말 그대로 '부자의 문전에 거지가 함께하는' 미국 자본주의사와 민중사의 풍경을 보여주는 책이겠다. 원제는 'We, the people : the drama of America'. 사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도 원제는 'Man's worldly goods : the story of the wealth of nations'이다. 둘다 국역본에 붙여진 제목이 탁월하달 수밖에.  

덧붙인 책들은 최근에 나온 자본주의 관련서들로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책들이다. 더글러스 다우드 외 6인이 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이해>(필맥, 2007)의 원제는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Understanding Capitalism)>이고, 마르크스부터 아마르티아 센까지 7명의 경제학자(혹은 경제학파)를 다루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앞에서 리오 휴버먼과 먼슬리 리뷰를 창간한 경제학자 폴 스위지이다. 대표작은 <자본주의 발전이론>(1942)으로 이 책과 더불어 비로소 미국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전통이 시작되었다고. 국내에는 이 주저 대신에 공저인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일월서각, 1986), <자본주의 이행논쟁>(광민사, 1980), <쿠바 혁명사>(지양사, 1984) 등이 소개돼 있는 정도이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동유럽의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다룬 <자본가 없는 자본주의>(시유시, 2007)에 대해서는 이미 소개한 바 있는데(요긴한 서평은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703301533101&code=900308), 저자들은 전통적인 자본주의 이행론과는 다른 '신이행이론'을 제안한다고. 이 "‘신이행이론’은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아담 스미스나 칼 마르크스의 고전적 견해-자본주의를 위해서는 자본가 계급이 먼저 존재해야 한다(capitalists before capitalism)는 견해-에 대한 강력한 반론인 동시에 ‘영미식 자본주의 모델’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새로운 유형의 자본주의 변종의 탄생을 알리는 것이다."라는 평가가 흥미를 끈다. 

그리고, 내주에 출간된다는 <자본주의와 자유>(청어람미디어, 2007)는 "20세기 후반의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의 자본주의 사상을 집약해놓은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경제적 자유를 이룩하기 위한 장치이자, 정치적 자유를 위한 필요조건으로서 경쟁적 자본주의의 역할에 주목한다." 시카고학파의 대부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저자의 1962년작인데, 1980년대 레이건과 대처 행정부의 경제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면서 또한 중국의 경제체제 전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하니까 관심을 가져보게 된다. 내주말이면 출간과 함께 보다 자세한 리뷰들이 나올 듯하다.

 

 

 

 

그리고 세번째 책은 더 소개할 것도 없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2006). 아직 안 읽어보신 분이라면 작년말에 나온 출간 30주년 기념판을 읽는 게 좋겠다. 최근에 나온 책 <리처드 도킨스>(을유문화사, 2007) 또한 원저는 작년에 <이기적 유전자> 출간 30주년을 기념하여 '우리의 사고를 바꾼 과학자'가 끼친 다양한 영향과 불러일으킨 다양한 반을을 모아놓은 책이다. 휴버먼이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가장 탁월한 대중적 해설자라면 도킨스는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가장 뛰어난 대중적 해설자이다.

해서, <자본론> 대신에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를 읽는 식으로 <종의 기원> 대신에 <이기적 유전자>를 읽을 수 있다. 시간이 없으신 분이라면 다이제스트판이라고 할 만한 <에덴의 강>(사이언스북스, 2005)을 읽어보셔도 좋겠다. 개인적으론 <리처드 도킨스>에 실린 글 중 마이클 루즈의 '리처드 도킨스와 진보 문제' 와 '다윈주의 좌파'란 원제를 가진 피터 싱어의 <다윈의 대답1>(이음, 2007)을 읽는 게 이번 달의 목표이다.

 

 

 

 

우리들 육신의 진화사, 즉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가에 대해 공부했다면 우리 정신의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해두는 게 공정하겠다. 헤겔의 <정신현상학>(한길사, 2005)는 바로 그 '정신의 역사', 혹은 '정신의 오디세이아'를 다룬다. 1807년 5월 예나에서 초판이 나온지라 올해는 출간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독영 대역본은 http://www.gwfhegel.org/PhenText/compare.html 참조). 초판을 낸 조세프 안톤 굅하르트 출판사는 이런 광고문을 냈었다고.

"이 책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 정신을 그것이 순수지나 절대정신에 이르는 단계로 파악한다.(...) 현상된 정신의 불완전성은 이러한 필연성에서 해서되고 보다 놓은 단계의 진리로 이행한다. 정신의 현상은 최종적인 진리를 우선 종교에서 발견하며 그 다음에는 전체의 결과인 학문에서 발견한다."

이러한 여정 전체를 따라가보는 일은 물론 1년 공부로도 턱없이 부족하다. 다만 이달에 할일을 그 문제적인 '서론' 정도를 읽어보는 것이다. 다행히 <정신현상학>의 새 번역본이 재작년에 출간됐고, 작년에는 테리 핀카드의 두툼한 평전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이제이북스, 2006)도 번역돼 나왔기에 여건은 좋은 편이다. 게다가 최신한 교수의 <정신현상학>(살림, 2007)과 강순전 교수의 <진리를 향한 의식의 모험: 헤겔의 정신현상학>(삼성출판사, 2006) 같은 도우미들도 나와 있으며, 인터넷에는 강유원의 헤겔 강의록도 번역과 함께 떠 있다. 거기에 장 이폴리트의 해설서 <헤겔의 정신현상학>(문예출판사, 1989)도 보탤 수 있겠다. 두루 참조하면 인류가 산출해낸 가장 어려운 책 중의 하나인 <정신현상학>의 '문턱'을 이달에는 넘어볼 수 있을까?..

07. 04. 01.

P.S. <인간문제>와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에 대한 '보유'를 달아둔다(일종의 '심화학습'이다). 사실, 노동계급(의식)의 형성이나 자본주의에 관한 책이라면 적잖은 책들이 나와 있다.

 

 

 

 

고전적인 저작은 물론 에드워드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창비, 2000)이다. 장서용으로라도 꽂아둘 만한 책이다. 이 책의 미국 버전이 마이크 데이비스의 <미국의 꿈에 갇히 사람들>(창비, 1994)이며, 한국 버전이 구해근의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창비, 2002)이다. <유럽의 산업화와 노동계급>(까치글방, 1997)은 이 주제에 대한 국내 학자들의 논문 모음집이다.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있어서 '자본주의'는 키워드 중의 키워드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관련서들은 차고 넘친다. 단지 몇 권을 임의로 꼽아본다. 피에르 잘레의 <자본주의란 무엇인가>(책갈피, 2006)은 얇은 책이다. 필자가 리오 휴버먼 등과 같이 '먼슬리 리뷰'의 필자로 활동한 경력이 있기에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와 같이 읽어봄 직하다. 그리고 백승욱 교수의 <자본주의 역사 강의>(그린비, 2006)와 작년에 작고한 경제평론가 정운영의 <자본주의 경제 산책>(웅진지식하우스, 2006)은 국내 필자의 저작이란 점에서 눈에 띈다. 물론 자본주의를 바라보는 인식틀 자체까지 '우리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본주의에 '현실적인' 대안이 있는가? 영국의 트로츠키주의자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반자본주의 선언>(책갈피, 2003)이 그러한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자본주의(세계화) 대 반자본주의(반세계화)'란 구도로. 소개에 따르면 "오늘날 반세계화 운동의 내부에는 몇가지 쟁점과 상이한 입장이 존재한다. 이 책은 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체계적인 답변을 제공하고 있다. 1장은 반자본주의 운동의 배경이 되는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과정에서 금융불안정과 과잉 생산 위기, 환경 위기가 심화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그리고 "2장은 반자본주의 운동 내부의 다양한 흐름을 여섯 가지로 분류한 후, 사회주의적 반자본주의의 입장에서 앞의 다섯 가지 반자본주의 운동 전략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분석한다. 다소 도식적이긴 하지만 반자본주의를 이처럼 유형화하고, 비교.분석한 것은 캘리니코스가 처음이다." 최근에 출간된 <제국이라는 유령>(이매진, 2007)은 바로 그러한 입장에서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제국>(이학사, 2001)을 비판하는 캘리니코스의 글을 포함하고 있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199687.html). 이건 덩치가 큰 주제인지라 따로 공부할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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