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비평에서 흥미로운 리뷰 기사 하나를 옮겨놓는다. 이광수와 베르그송의 관계를 다룬 논문에 대한 소개인데, 이광수를 낭만주의자로 이해하는 논문의 결론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이광수에게서 '감상적 계몽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지울 수 있는가?) '이광수와 베르그송'이라는 아이템 자체는 신선해 보인다. 지난 3월의 '사회적 독서' 목록으로 <무정>을 올려놓은 적이 있는데, 그 참고자료로 분류해둔다.  

담비(07. 05. 03) 이광수가 과연 계몽주의자인가

이광수를 계몽주의자가 아닌 낭만주의자로 해석하는 문제적 논문이 발표되었다. 이철호 동국대 강사(국문학)는 최근 ‘비교문학’ 제41집에 발표한 ‘생명으로서의 문학-‘무정’의 생명론과 낭만적 자아의 문제’에서 1920년대에 이루어진 이광수의 베르그송 독서를 통해 이같은 논리를 개진하고 있다.

1920년을 전후해서 이광수는 새로운 문학세대를 준엄하게 설교하는 자로 군림했다. 그는 ‘창조’, ‘폐허’, ‘백조’, ‘영대’ 동인들을 도덕이라는 심판대 위에 불러 퇴폐한 것들이라고 규정해버렸다. 고민, 허무, 죽음, 눈물 등의 문학적 수사에 대해서 이광수는 민족 혹은 민족문학의 발전을 훼손시키는 데카당스의 망국정조일 뿐이라며 일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광수가 이들 동인지세대와 대립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기성의 권위나 억압에서 자아의 해방을 역설하는 데 가장 나섰던 인물은 바로 이광수였다. ‘무정’은 정의 만족이 곧 문학이라는 이광수식 믿음의 산물이다. 이광수는 이형식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것을 실현했으며 복잡한 내적 과정과 자아와 타자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영적 체험을 전경화시키는 등 많은 고민을 보여주고 있다.

이광수가 다이쇼의 생명주의 사상에 기대 자신의 지적 갱생을 도모했다는 것은 그의 자전적 소설들에 암시돼 있다. 교사생활을 청산한 후 쓴 ‘金鏡’의 경우, 일본유학때 까지의 이광수의 내밀한 심경이 토로되어 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지난 수년간의 교사생활을 덧없이 반추한다. 이 단편의 중심내용은, 화자가 자기희생으로 일관했던 교사시대와결별하고 새로운 지적 포부를 토로하는 데에 있다. 톨스토이와 바이런을 난생 처음 접한 후 ‘번민’, ‘고통’, ‘죽음’에 시달리던, 그래서 그의 “靈에 폭풍광란에 雷雨까지 더하여 거의 狂할 뻔하였”던 유학시절은 현재의 교사생활에 견주면 오히려 삶의 활력으로 충만했던 시절이었다.

흥미로운 부분은 자신의 학식이 턱없이 부족함으로 토로하며 베르그송을 거론하는 부분이다. “벨그손의 철학을 외우다가 이해하지 못할 학리와 술어가 많음을 보고, 비로소 규범과학을 연구함이 연학의 초보임을 깨달아”하는 부분이다.

그가 미처 이해하지 못한, 그러나 도쿄 유학의 실행을 심리적으로 가능케 한 책이란 다이쇼 시기 전반에 걸쳐 널리 애독된 필독서 중 하나였던, 니시기다 요시토미의 ‘베르그송의 철학’(1913)이었다. 이 시기에 일본지식인 사회에 널리 회자한 베르그송의 ‘생의 철학’은 니시다 기타로에게 고스란히 전수되면서 다이쇼기 ‘생명주의’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1910년대 후반부터 동인지 세대의 문학 청년들 역시 니시다 기타로가 일본적 맥락에서 번안하고 집성한 베르그송의 생철학 사상에 적잖이 침윤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베르그송 철학을 원전이 아닌 다른 매개, 이를테면 이쿠다 쵸코, 쿠리야가와 하쿠손 등을 통해 수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게 직접 영향을 받은 작가들로는 김동인이나 염상섭이 대표적이지만, 그 당시 일본에 유학중이었던 김여제, 주요한, 최승구 등도 시라카바의 이상주의적인 경향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창작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광수를 계몽주의자로 규정하는 것은 문학사의 실상과 부합하지 않는다. 그의 주된 관심이 불합리한 관습과 윤리도덕의 혁신에 있었던 만큼, 이광수의 사회적 위상을 계몽주의의 차원에서 해석할 여지가 없지 않지만, 그는 ‘무정’을 연재했을 때나 데카당스의 미학을 비난하며 민족윤리에 봉사하는 문학의 소임을 강조했을 때나 낭만주의자로서 군림했다(*나로선 지나친 단순화이며 논리적 비약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1920년대 이후의 이광수는 초기의 진보적 성격을 상실해버렸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이 시기의 이광수는 비판적 활력을 상실한, 화석화된 낭만주의자의 잔영을 보여줄 따름이라고 이철호 씨는 결론짓는다.(리뷰팀)

07. 05. 03.

P.S. 이광수의 계몽적 기획와 <무정>에 관한 이해에 유익한 자료는 김현주의 <이광수와 문화의 기획>(태학사, 2005)이다. 저자의 학위논문을 보완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무정>에서 '정'이 갖는 의미에 관하여 설득력 있는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시각에 더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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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80 2007-05-04 01:32   좋아요 0 | URL
이쪽 분야로는 김현주의 논문도 좋지만 손유경의「한국 근대소설에 나타난 ‘동정’의 윤리와 미학에 관한 연구」(2006), 도 꽤나 자세히 이광수가 보여준 동정의 미학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특히 동정 담론의 기저에 망탈리테가 깔려있다고 보는게 손유경 논문의 핵심인 것 같더군요. 이광수의 계몽은 동정의 공적 발휘이며 상호부조론에 의해 타인의 고통을 개인이 구체적 감각으로 인지하면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지위와 계급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동정이 존재할 수 없다며 막연한 연민으로써의 인도주의를 비판하고 동정의 사상, 이념적 연동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광수에 대한 여러 연구자의 새로운 접근은 근대문학의 이분법적 구도를 탈피하는 유효한 접근이자 가능성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기인 2007-05-04 07:10   좋아요 0 | URL
오옷, 소이부답님 역시 부지런하시네요! 저는 아직도 손유경 선생님 논문을 못 읽었는데 -_-;;;; 등잔밑이 어둡다는(말이 되는지? -_-;;; ) 여튼 이광수 주요한 등이 시라카바학파의 영향을 받은 것도 맞고, 낭만주의적 경향이 있는 것도 긍정할 수 있는데 낭만주의와 계몽주의를 당대 조선의 상황에서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반이성/이성이라는 도식인지요... 당대 조선에서 계몽주의라는 운동이 낭만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판단도 가능할 듯 한데요 ^^

기인 2007-05-04 07:14   좋아요 0 | URL
뭐 원문 글을 읽어보고 판단해야할 문제이지만, 그래도 이런 도발적(^^) 문제제기들이 활력을 주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국문학 공부하다보면 그래도 2~3년에 한번은 이렇게 재미난(?)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로쟈 2007-05-04 15:08   좋아요 0 | URL
전공자들은 다 모이셨군요.^^ 손유경씨의 논문은 아직 출판이 안된 거지요?(논문 파일은 어제 다운받아놓았습니다). 2-3년에 한번씩 재미난 일이 터진다면, 가물에 콩나는 식인데,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