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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텍스트의 정치학
TORIL MOI / H.S MEDIA(한신문화사) / 1994년 7월
평점 :
품절
다른 많은 유행사조와 마찬가지로 페미니즘도 자생적인 사조라기보다는 수입 사조이다. 포스트 모더니즘과 비슷한 시기에 상륙하여 많은 문제거리들을 제기하며 소위, '이념'과 '운동'의 새로운 관심사를 형성하였다. 한때 '한국문학에서의 포스트 모더니즘'(이걸 포더니즘이라고 줄여 부르자는 이도 있다) 운운하는 담론들이 유행했듯이, '한국 문학에서의 페미니즘'도 유행을 탔고, 나는 페미니스트이다, 아니다라는 식의 정체 폭로도 잇달았으며, 그런 건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니다 라거나, 진짜 페미니즘은 이런 거다라는 식의 선언적인 주장도 간간히 들려 왔다.
그래서? 이제 페미니즘이란 말은 더이상 우리에게 낯설지 않으며, 페미니스트란 말이 남녀 모두에게 미묘한 반감 같은 걸 불러일으키면서도, 우리 사회의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한 바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겠다. 하지만, 페미니즘이란 표제로 출간된 그 많은 책들이 과연 얼마나 읽혔으며, 얼마나 이해되었고, 이 세계/사회에 대한 우리의 인식 지평을 확대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까? 더 나아가 그럴 만한 책들이 과연 있었을까? 묻게 될 때, 얼른 떠오르는 책이 있던가? 개인적으로 문학비평과 이론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적어도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이거다,라고 추천할 만한 책은 얼른 입에 떠올려지지 않는다. 그런데, 프랑스 페미니즘에 관한 저작으로 유명한 토릴 모이의 이 책은 아마도 그런 종류의 책에 현재로선 가장 근접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페미니즘의 역사와 이론에 대한 저자의 이해와 분류는 매우 간명하다. 그래서 이해가 용이하다. 서론에 밝힌 바대로, 버지니아 울프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현단계 페미니즘은 영미쪽이냐 프랑스쪽이냐가 갈린다(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는가?). 저자의 주장을 단순화시켜 말하면, 영미쪽은 남녀간의 차이보다는 동일성에 초점을 맞추고(그래서 차별의 철폐와 권익 증진에 관심을 둔다), 프랑스쪽은 남녀간에 차이에 초점을 맞추면서 가부장적 사회체제를 대체할 만한 모성적/여성적 공동체(혹은 정치)를 대안으로 모색한다. 크리스테바 전문가답게 저자는 물론, 프랑스쪽의 해체론적/정신분석적 페미니즘쪽으로 약간 기운다(역자들은 이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표하고 있다). 이러한 구도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나는 이론적 관심사를 저자는 실제 문학비평/이론 분야에 한정하여 요령있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입장에 동의하든, 안 하든, 페미니즘 문학론에 대한 개관으로서 아주 유용해 보인다. 조금 과장하면, 표준적인 교과서라 할 만하다. 문제는 이제 우리의 현실, 우리의 문학에 얼만큼 생산적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리라. 굳이 문학쪽에 관심을 둔 독자가 아니더라도, 페미니즘의 여러 '풍경들'을 둘러보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번역도 잘 읽히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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