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여우 창비시선 163
안도현 지음 / 창비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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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시인 안도현이 어느 새 중견이 되었다. 대여섯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지만, <연어>나 <관계>, <짜장면> 같은 소위 '어른을 위한 동화'들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지만, 그의 본업은 시라는 걸, 그는 시인으로서 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걸 이 시집은 여실히 증명한다. 거의 맨마지막에 놓인 시, <세상의 중심을 향하여>에서 그는 이렇고 적는다.

나를 세상의 중심으로 알고
퇴근 때마다 내 품으로 안겨드는 딸아, 그리고 아들아
이 아비는 목욕탕에 갈 때마다 남의 등을 밀어주기 전에
먼저 내 배꼽에 낀 때를 없애는 일에 몰두하였단다

하지만, 그가 여러 시들을 통해 벌이고 있는 일들은 단지 그 자신의 배꼽에 낀 때를 없애는 일 이상이다. 그는 시집을 낼 때마다 우리들의 등을 사정없이 밀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중심을 향하여/ 자꾸 날아가려고' 하는 새들이 '중심의 괴로움'(김지하)에 시달리 때, 자기 자신만을 믿는 안도현은, 시만을 믿는 안도현은 그대로의 중심에서 여유롭고 넉넉하다. 자신을 버리는 자만이 세상의 중심에 선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리라. 가령, 시집의 맨처음, 강물 속으로 무작정 뛰어드는 '어린 눈발들'을 안타까워 하는 강의 마음은 곧장 시인의 마음일 테다. 사실 이 한편만으로도 이 시집은 빛나지만, 이런 짧은 시 한편을 맛보기로 읽어도 보람이 있다(<3월에서 4월 사이>)

산서고등학교 관사 앞에 매화꽃 핀 다음에는
산서주조장 돌담에 기대어 산수유꽃 피고
산서중학교 뒷산에 조팝나무꽃 핀 다음에는
산서우체국 뒤뜰에서는 목련꽃 피고
산서초등학교 울타리 너머 개나리꽃 핀 다음에는
산서정류소 가는 길가에 자주제비꽃 피고

이 시가 아니면 '산서'마을에 꽃피는 소식을 접할 길이 있었을까? 매화꽃, 산수유꽃, 조팝나무꽃, 목련꽃, 개나리꽃, 도 자주제비꽃과 인사라도 나눌 기회가 있었을까? 해서 언제, 그 마을에 내려갈 기회가 행여 생긴다면, 우리는 구면의 꽃들을 보게 될 것이다. 아, 물론 3월과 4월 사이에... 시인이여, 이 무더운 7월과 8월 사이에는 어떤 꽃들과 사연들을 만나게 되는지요? 나는 다음 시집을 기대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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